*본 대담은 스포일러 등의 문제로 전문을 싣고 있지 않습니다.

 

<미세레레>로 돌아온 프랑스 스릴러의 자존심,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국내 프랑스 번역의 1인자 이세욱의 대담 

 

         

 

이세욱  당신의 소설을 번역하는 것은 『늑대의 제국』 『검은 선』에 이어 이번으로 세번째다. 앞선 세 작품은 번역자가 아니라 독자로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첫 소설을 읽자마자 당신의 특별한 재능에 주목했고, 이후 당신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죽 지켜보았다. 당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공할 서스펜스의 위력에 휘말린다. 마치 악마적인 기계장치에 빠져버린 것처럼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헤어날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독자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프랑스 신문과 방송들도 당신을 일컬어 ‘서스펜스의 거장’ ‘마법사’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당신만의 비방이 있는가?

그랑제  비결이 있다면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자체에 있다. 서프라이즈로 가득 찬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들은 스릴러 작가들이 어떤 비법이나 특별한 작법에 따라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무엇보다 먼저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본디 그 자체에 뜻밖의 전개나 반전 등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독자들의 의표를 찌르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구성의 비법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해낸 이야기 자체다. 진실을 찾아 나아가는 인물들과 우여곡절과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을 담고 있는 아주 복잡한 이야기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나는 어떤 구성 방법을 적용해서 작업하지 않는다. 그저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내 이야기는 뭐랄까, 하나의 음악처럼 만들어진다. 먼저 하나의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다음에 나는 그 멜로디를 편곡하여 관현악으로 만든다. 하지만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멜로디이지 화음이나 편곡이나 어떤 기교가 아니다. 특히 기교는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냈다고 할 때는 그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혼령의 숲』은 한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파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여자는 수사판사이고 애정 문제로 마음을 앓고 있다. 450쪽이 지나면 독자들은 이 여자를 아르헨티나의 으스스한 숲속에서 보게 된다. 처음엔 어느 누구도 이런 도착점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런 놀라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 그것이 내 작업의 요체다.
따지고 보면 이런 글쓰기는 내가 기자였던 시절에 일하던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 독자들에게 무언가 놀라운 것,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들을 제공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서스펜스의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은 뻔한 결말이다. 결과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면 책장을 빨리빨리 넘기고 싶은 욕구가 생길 리 없다. 끊임없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세욱  그러자면 아주 자세한 시놉시스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랑제  그렇다. 나는 각각의 장章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기록한 아주 상세한 시놉시스를 만들어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대개 각각의 장은 기계장치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으면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번 장만 읽고 그만 자야지 하다가도 그 장이 끝나면 더 읽고 싶어져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이세욱  놀라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당신의 소설들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야기의 뼈대에 살을 붙이기 위해 엄청난 연구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소설에는 역사, 사회, 과학 등에 관한 정보가 아주 풍부하다. 때로는 그 정보들이 너무 촘촘해서 지나치게 교육적인 의도를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랑제  사실 기자 시절에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하는 버릇을 들였다. 나중에 소설을 쓰면서 내가 조사하고 연구했던 것들을 종종 활용했다. 지금도 나에게 부족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르포 기사를 쓸 때처럼 여행을 하고 조사 작업을 벌인다. 그럼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채워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일은 아주 미묘하다. 서스펜스와 정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다보면 독자들을 따분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한편으로는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상상력을 전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내 상상력은 실제의 역사와 현실에서 비롯된다. 사실 내 이야기에는 언제나 현실적인 바탕이 있다. 실제와 허구를 결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일어났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에 사실이 아닌 것을 뒤섞으면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세욱  같은 맥락에서 디테일의 정확성을 고집하는 까닭을 묻고 싶다. 당신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세부사항을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의지,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미세레레』의 주인공 카스단이 매일같이 먹는 약은 그냥 여느 항우울제나 항불안제가 아니라 ‘데파코트’ 500밀리그램 한 알과 ‘세로플렉스’ 10밀리그램 한 알을 섞은 것이다. 빌헬름 괴츠가 사는 곳은 그냥 ‘가장’이라는 거리가 아니라 정확하게 그 거리 15-17번지에 있는 건물의 3층이다. 볼로킨이 스스로에게 마약 주사를 놓는 장면이나 SM 클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랑제  내 소설들에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못 환상적이다. 그 자체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있을 법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매우 사실적인 느낌을 주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내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세욱  독자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묘사된 장면의 내부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인가?

그랑제  그렇다. 독자들이 내 이야기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디테일들은 또다른 측면에서 소설에 기여한다. 독자들이 현실감을 느끼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문득 칠레의 현대사를 놓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독자들은 아주 주의 깊게 그 정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그것은 내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세욱  하지만 외국 독자들에게는 사실성을 높이려는 당신의 배려가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디테일들이 때로는 문화적 장벽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랑제  내가 프랑스의 옛 영화나 흘러간 노래들을 소설에서 다루면 프랑스의 젊은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낯설어한다. 하물며 외국의 독자들은 프랑스 사회와 문화의 세세한 요소들을 얼마나 낯설게 느끼겠는가? 나는 종종 내 소설의 번역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문화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이세욱  문화적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소설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현실적인 공간들을 답사하고 당신을 직접 만나는 것도 그런 길들 가운데 하나다. 주석을 달아서 번역자가 불쑥 개입하는 방식도 있지만 나는 소설의 서스펜스를 감소시키는 그런 무거운 방식을 피하고자 한다. 소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은 내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출판사의 온라인 카페에 올릴 생각이다.

그랑제  어쨌거나 매우 고마운 일이다. 보아하니, 한국 독자들도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세욱  그렇지는 않다. 스릴러는 SF와 마찬가지로 하위 장르에 속한다는 편견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당신처럼 스릴러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작가도 드물고 독자들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당신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 스릴러의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은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랑제  한국의 스릴러 영화는 매우 강력해 보이던데.

이세욱  한국 영화를 많이 보는가?

그랑제  스릴러 영화를 여러 편 봤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아주 훌륭하더라. <괴물>도 봤다. 비록 영화를 통해 풍광을 보았을 뿐이지만, 한국이 매우 매력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가는 길에 부산을 경유한 게 전부라서 한국에 가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이세욱  여행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여행을 아주 많이 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미세레레』를 번역하면서 소설의 무대로 설정된 파리의 여러 성당과 몽수리 정수장, 라르마탕 서점 등을 찾아가보았다. 『늑대의 제국』을 번역할 때는 터키를 여행하기도 했다. 일종의 ‘그랑제 문학 순례’인 셈인데 그때마다 공간의 특성을 포착하는 당신의 감수성에 놀랐다.

그랑제  대학 시절에 나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책만 들이파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을 뿐 여행 따위는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책이었고, 가장 멋진 여행조차 책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마치고 언론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르포 기행을 많이 하게 되었다. 프랑스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던 내가 온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뉴욕 같은 대도시들뿐만 아니라 북극 지방이나 사막이나 정글 같은 아주 험난한 여행지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르포 기사를 쓰는 한편으로 여행중에 내가 느낀 바를 기록해나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그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경험, 공간에 대한 감수성을 활용해서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추리소설은 언제나 여행을 담고 있다. 어떤 세계, 어떤 영역으로 들어가는 여행 말이다. 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주인공들과 더불어 칠레와 아르메니아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요컨대 나는 여행, 취재, 조사 작업, 시사 감각, 어떤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 등이 내 소설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아주 기쁘게 여겼다. 하지만 서른 살이나 되어서야 여행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주 늦은 나이에 세상물정을 알게 된 셈이다.

이세욱  내가 알기로 당신은 한때 악의 기원에 관한 3부작을 쓰고자 했다. 그런데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신이 그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이유는 무엇인가?

그랑제  사실이다. 3부작이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3부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에서 3부작을 쓰는 것이 너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작가치고 3부작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스릴러 작가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심하다. 그래서 나는 3부작 타령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애초에 계획했던 작품들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구상했던 3부작의 첫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검은 선』이고, 두번째 작품은 악마의 문제를 다룬 『림보의 서약』이다. 세번째 책은 『혼령의 숲』인데, 선사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악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인간이 악한 동물이라는 것, 같은 종의 개체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희귀한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국 나는 독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3부작을 다 쓴 셈이다. 다만 그 작품들에 ‘3부작’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모든 소설에서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세레레』를 읽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당신의 3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을 읽었는데 아주 좋더군요.” 『미세레레』는 3부작에 들어 있지 않지만, 독자들은 이 작품 역시 악의 기원을 규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모든 책에서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세레레』 역시 악에 관한 하나의 설명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나쁜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문제를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벌어진 흉악한 범죄들을 놓고 보면, 괴물과도 같은 범인들의 배후에 끔찍한 어린 시절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 악의 열쇠, 악의 기원은 사랑이 없는 세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나쁜 교육이다.

이세욱  사실 폭력이나 악은 당신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다. 한국의 일부 독자는 당신의 소설들이 인간의 잔인하고 어두운 이면을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듯하다. 당신이 폭력을 묘사하는 것은 사회 고발의 한 형식인가?

그랑제  언제나 그렇다. 처음엔 약간의 오해도 있었다. 내 소설에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내 묘사가 너무 치밀하고 정교하다면서 나 자신이 폭력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했다. “아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쓴다. 내가 폭력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은 폭력이야말로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을 용인한 적이 없다. 폭력을 이해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에 관한 글을 쓴다. 그들은 사랑의 문제를 안고 있다. 나라고 해서 애정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인간은 왜 폭력적인가? 인간은 왜 타자에게 고통을 가하는가? 나에겐 그게 미스터리다. 나는 인간의 그 미스터리에 관해서 쓰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든 인간이 괴물로 돌변했던 시기가 있다. 나는 몇몇 아시아 국가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거기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8년 캄보디아에 혹독한 독재체제가 들어섰을 때 문맹의 젊은 농민들이 갑자기 괴물로 변하여 사람들을 죽였다. 이십 년 전에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런 사건들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다. 사람들이 돌연 괴물로 변하는 일은 캄보디아나 르완다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벌어진다. 인간은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잔인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내 소설들은 주로 악당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악한 자들은 사람들을 잇달아 살해함으로써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 전쟁 때에는 모든 병사가 연쇄살인범으로 변할 수 있다. 한 가정의 착한 아들이었던 병사가 갑자기 상부의 명령을 받고 살인마로 변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현상은 인류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전에는 내가 그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은 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가? 인간은 왜 타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는가? 정말이지 나는 그 물음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다음 소설에서도 그 문제를 다룬다. 선사시대에 인간들 사이에 폭력과 전쟁이 출현한 것은 그들이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남의 가축과 식량을 훔치려고 함에 따라 전쟁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모두가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도처에서 짐승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다가 원시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 경작을 시작하고 가축을 갖게 되면서 자기네 것을 노리는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만남에서 소유 의식과 시샘과 폭력이 생겨난다.

이세욱  장자크 루소가 생각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나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인가?

그랑제  그렇다. 바로 루소가 한 얘기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착한 미개인이 있었다. 소유가 발생하면서 착한 미개인이 악당으로 변한 것이다. 루소가 약간 몽상적이긴 했지만,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시샘, 이웃이 가진 것을 탐하는 마음, 그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세욱  다시 『미세레레』로 돌아가서, 프랑스 언론의 보도를 보니까 이 작품의 탄생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전하고 있더라. 애초엔 영화의 시나리오로 구상되었다던데……

그랑제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프랑스의 한 영화잡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시네 라이브>라는 잡지다. 그 친구들이 한 가지 기획을 했다. 작가들에게 자기들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고르게 한 다음 그 영화의 속편을 구상하여 시놉시스를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장 먼저 원고를 청탁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속편이 나오지 않은 작품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마라톤 맨>을 골랐다. 당신도 아마 보아서 알겠지만, 아주 훌륭한 스릴러 영화다. 나는 그것의 속편을 구상했다. <마라톤 맨>에서 나치 잔당과 대결을 벌였던 주인공이 몇 해 뒤에 다시 나치 잔당과 맞닥뜨리는 상황을 상상했다. 동일한 주인공이 남미와 미국에 정착한 네오나치 세력과 대결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써나갔다. 읽어보니 재미가 있었다. <시네 라이브>의 친구들에게 원고를 보냈더니 아주 훌륭하다면서 잡지에 곧 싣겠다고 했다. 내 소설을 내는 출판사에도 미리 알려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알뱅 미셸 출판사의 사장에게 말했다. “리샤르, 미리 알아두라고 하는 얘긴데, 이런 시놉시스를 잡지에 실을까 하는데……” 그는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아니, 이런 것을 잡지에 거저로 내준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잡지에 실을 수 없어. 이 시놉시스로 소설을 쓰게. 내가 잡지사에 협박을 해서 싣지 못하게 하겠어. 만약 그들이 이것을 싣는 날에는 소송을 당하게 될 거야.” 결국 <시네 라이브>는 시놉시스를 싣지 못했고,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미세레레』를 썼다. 결과적으로 리샤르의 생각이 옳았다. 덕분에 내가 멋진 소설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세욱  몇몇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으로 아는데, 요즘도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가?

그랑제  이젠 영화 쪽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때는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시나리오의 형태로 쓰기도 했다. <비독>이 그런 경우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작업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어떤 멋진 이야기가 떠오르면 소설을 쓸 것이다. 내가 잘하는 일만 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나는 혼자 작업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자기가 구상한 이야기를 남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시나리오 작가든 자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만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이세욱  당신의 소설들을 영화로 각색하는 일에는 여전히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그랑제  내 소설을 각색하는 경우에는 감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어느 정도 작업에 참여한다. 현재는 『미세레레』의 각색을 놓고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이다. 곧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미켈레 플라치도를 만나기로 했다. <로만초 크리미날레(범죄 소설)>라는 갱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그 영화 한번 봐라. 한 세대 전의 이탈리아 사회를 아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다. 그 감독이 『미세레레』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다음에 만나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소설들의 공동각색 작업은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처음으로 각색한 영화를 봤을 것이다. <크림슨 리버> 말이다. 관객들은 그 영화의 결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샀다. 그것을 두고 나는 곧잘 이런 농담을 했다. “영화를 잘못 만든 것이 나에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책을 많이 팔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제 곧 <미세레레>의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아 그래, 한 가지가 더 있다. 카날 플뤼스에서 방송하게 될 스릴러 시리즈의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카날 플뤼스는 프랑스의 거대 티브이 채널이다. 거기에서 <황새의 비행>을 가지고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 원래 어떤 제작사에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가져간 작품인데 십 년이 지나도록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작권을 되찾아서 다른 제작사와 티브이 시리즈를 만들기로 다시 계약한 것이다. 사실 내 소설들을 영화화하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영화로 각색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잘라내어 영화를 만들기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 난관이 너무 많다.

이세욱  『검은 선』과 『림보의 서약』도 영화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랑제  먼저 『림보의 서약』에 대해서 말하자면,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 감독은 내 친구인 프레데릭 셴데르페르다. <범죄 현장> <비밀 요원> <악당> 등을 만든 감독이다. 우리는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다. 그뒤에 제작자가 다른 것을 요구해왔다. 그 바람에 소설의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내가 보기에 셴데르페르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영화라는 게 늘 그런 식이다. 몇 해 동안 공을 들이고도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기 일쑤다.
『검은 선』은 프랑스의 또다른 감독 올리비에 마르샬이 영화로 만드는 중이다. 캐스팅은 이미 끝냈다고 하는데, 감독이 티브이 쪽의 다른 일을 맡는 바람에 촬영이 지연되고 있는 듯하다. 내 소설들이 영화로 각색될 때마다 매우 불안하다. 결국 내 소설과 전혀 다른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세욱  어쨌거나 소설을 낼 때마다 영화 제작자들이 달려든다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닌가?

그랑제  그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내 소설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크게 성공한 적은 없다. <크림슨 리버> <늑대의 제국> <돌의 집회> 어느 것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제작자들이 계속 내 소설을 산다. 대개는 어떤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해서 성공하지 못하면 제작자들이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게 영화 산업의 생리가 아닌가? 그런데 내 경우에는 매번 제작자가 나타난다. 내 이야기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욱  <돌의 집회>의 여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당신이 직접 모니카 벨루치를 선택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랑제  그건 기자의 추측이다.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판에서 작가에게 무슨 힘이 있는가? 내가 영화 제작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흔히들 영화에서는 감독이 대장이다, 제작자가 대장이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영화판에는 대장이 없다. 영화마다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니카 벨루치를 캐스팅한 것은 당시에 그녀가 스타였기 때문이다. 그런 스타가 주연을 맡으면 영화가 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대장은 바로 모니카 벨루치다. 시나리오 작가는 대개 여러 번 작품을 고쳐쓴다. 처음엔 제작자의 주문에 따라 시나리오를 쓴다. 그러고 나서 감독이 선정되면 이번엔 감독의 요구에 따라서 모든 것을 다시 쓴다. 새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감독은 캐스팅에 들어가고 스타를 끌어들인다. 그러면 작가는 그 스타에 맞춰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피카소가 해놓은 스케치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색칠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영화판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서 끼어들어서 걸작 스케치를 망쳐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뤽 베송처럼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이세욱  당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는가?

그랑제  없다. 정말이지 그건 전혀 다른 일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선 나는 작가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지만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른다. 다음으로, 영화는 글쓰기와 전혀 다른 직업 철학을 요구한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작업한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영화를 만들 때는 그와 정반대다. 영화감독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촬영감독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하고 배우들을 배려해야 하며 제작자의 요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그러지 않았는가. 영화감독 노릇을 하는 것은 놀이공원의 범퍼 카를 타고 『전쟁과 평화』를 쓰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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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랑제의 '미세레레'는 이세욱님의 번역이어서 더 기대됩니다.
검은선이 충격적이었지만 참 좋았고...그래서 그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게도 됐었으니까요.
이세욱님의 경우 '로아나'에서 신뢰을 굳히게 되었는데,
로아나 한권을 번역하기 위해 영역본까지 두루 섭렵하신 열정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암튼, 책은 주문 완료 하였으니,
'닥치고 독서~!'하면 될테고,
혹시, 인터뷰 전문 내용을 볼 수 없을까요?--;

외국소설/예술MD 2011-12-05 16:31   좋아요 0 | URL
네, 인터뷰 전문은 2권 맨 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비밀인데요. 이세욱 번역가를 직접 만나는 행사도 곧 할 겁니다.;
 

이금이 작가 인터뷰.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라는 것.


저자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만큼, 그 분들은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금이 작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그 사람의 '캐릭터'가 아니라, 그런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진 사람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의 공통점, 혹은 자녀를 두고 있는 세상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의 공통점이겠죠. 집 나와 산 지 10년을 맞이한 담당MD는 그 '모든 부모님들'의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이금이 작가의 '보편적 개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MD 최원호





-소희의 방


알라딘: 우선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금이: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웃음) 작가는 작품으로 인사를 드려야겠죠. 1년에 두 권 정도를 내고 있습니다.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쓰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알라딘: 이번에 쓰신 <소희의 방>은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속편 격입니다. 속편을 쓴 게 처음은 아니신데요.

이금이: 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이 있어요.

알라딘: 청소년 소설에서 속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금이: 속편을 쓰겠다고 특별히 마음먹었던 적은 없어요. 제가 쓰고 싶다고 해서 써지는 것도 아니고요. 독자들이 10년 가까이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뒷 얘기가 궁금하다고 편지를 써 주었는데도 그동안 쓰지 못했어요. 그 이야기가 저를 당기지 않으면 저는 쓸 수가 없어요. 저를 포함한 누구도 그걸 쓰겠다, 써 달라고 얘기할 수가 없는거죠. 그래서 원래 속편을 염두에 둔다거나 하지 않아요. 굳이 이유를 두자면... <너도 하늘말나리야> 같은 경우에는 약간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리고 결국엔 저역시도 '아 더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나중에 든 생각이고,

어느날 강연회를 마치고 오는데, <소희의 방>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쓸 때는 몰랐는데, 쓰고 나서 보니 소희가 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소희의 말들을 따라다니면서 그걸 기록했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작품을 1년 만에 썼거든요. 제가 장편을 이렇게 일찍 써낸 경우가 없어요.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할까

알라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소재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보다 어두운 소재들을 사용하시는데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이금이: 현실이...그렇잖아요(쓴웃음).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대상이 그러니만큼 어두운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청소년 소설의 경우에는 좀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하는데, 글과 현실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잖아요. 제가 쓴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도 들어요. 왜 이렇게 모범적인 애들만 나오느냐고도 하고(웃음).

알라딘: 이 질문을 드린 건 08년에 발표하신 단편집 <벼랑> 이후로 더욱 어두운 소재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도 무척 미묘한 결말을 맺으셨고요. 어떤 계기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금이: 벼랑(웃음). 그거 쓸 때 저도 한참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우리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무척 많을 때였어요. 평범한 길을 가지 않기로 한 큰아이, 작은아이 생각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죠. <벼랑>에도 그런 '다른 길'을 선택한 아이들이 나오죠. 제 자신이 바로 그 현장에 있었어요. 그래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얘기를 하지 못했어요. 소설 속의 아이들, 등장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거죠. 그게 우리 아이들이었고 저였으니까.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를 쓸 때는 예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알라딘: 그렇게 노력하신 이유는...?

이금이: 글쎄요. 원래부터 의도를 가질 수는 없어요. 만약 의도를 갖고 시작했다고 해도 쓰다보면 원래 의도와도 달라지니까요.대신 저는 '이 작가는 우리 현실을 어른 입장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쓴 것 같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요.

알라딘: 방금 말씀하신 게 일종의 작가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금이: 작가관...이라고 하면 이해와 소통이랄까? 사실 제 글들은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이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비극적인 결말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독자로서도 그래요. 비극으로 종결된 책을 읽고 나서 '그래서 어떡하라구?" 라는 생각이 들면 힘들어요. 실제 현실이 그렇죠. 답이 없고... 그건 저도 아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알게 될 것들이잖아요. 청소년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에게 미리부터 세상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알라딘: 그렇다면 <벼랑> 이후에 다소 어두워진 느낌은 어떤 일관된 변화는 아닌 거군요?

이금이: 제가 특히 초기에 비판을 받았던 게, 전체적으로 너무 낙관적이라는 거였어요. 제 성격이 원래 갈등을 싫어해요. 실제로도 막 따지고 해야 할 상황이라도 그냥 '아 됐어' 하고 말아요. 작품에서도 그런 성격들이 드러나죠. 등장인물들이 다 자식 같은데 거기다가 어떻게 막 쏘아붙이겠어요. 못했어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이게 내 작품들의 공통된 약점이 아닌가 해서 노력한 점은 있어요. '문학적'인 노력이죠(웃음). 저는 이야기가 딱 짜여진 게 실제 삶에서도 가능한 걸까 생각을 해요. 생각하다 보면 완전하게 짜여진 플롯과 마무리를 써도 되느냐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그게 고민이 돼요.

알라딘: 2006년에 알라딘과 인터뷰를 하셨을 때,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성과는 있으셨는지(웃음).

이금이: (웃음) 제 스스로는 간간히 들어간다고 봐요. 나름(웃음) 구현하고 있어요. 독자분들이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알라딘: 본격적으로 코믹한 작품을 쓰실 생각도 있나요?

이금이: 그건 안되겠어요(웃음). 전체적으로 그렇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알라딘: 얼마전 하셨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 어린이들에게 한마디를 요청받은 적이 있으셨죠.

이금이: 네, 오디오북 이야기가 나오면서요.

알라딘: 그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 직접적으로 나 아닌 누군가와 소통하기는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이금이:
장애를 실제로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 세계를 결코 알 수 없는데...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한참 생각하다가 마음의 눈이라는 얘길 하긴 했는데...(한숨) 실제로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그런 얘길 진심으로 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 아이들의 삶을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글을 쓸 때도 간접 경험이 필요해요. 꼭 내가 겪은 일들이 아니라도요.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가끔은 소설에서는 모든 걸 이해하는데 실제로는 못하는 엄마라는 얘기도 들어요(웃음). 아마 아이들의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노력하는 엄마,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엄마가 되려고 해요. 청소년 소설까지 쓰면서 그런 엄마라니(웃음). 그런데 우리는 그 시기(청소년기)를 지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과 어른이 대립할 때면 어른들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지내본 사람들은 그래도 아니까요. 아직 아이들은 어른이 어떤 건지 모르잖아요.

알라딘: 그럼 그 소통에 대한 생각들이 실제로 자녀분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되나요?

이금이: 큰 아이는 무던한데... 둘째는 그렇지 않아요(웃음). 이제 다 컸잖아요. 떠나보낸다고 생각해요. 욕심을 가지면 안돼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욕심... 저를 이해해주기보다는 나중에 자기들도 애를 낳아서(웃음) 그 아이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걸 겪으면서는 알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중에라도 '엄마 마음을 알겠다'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잠시 침묵. 엄마 생각함) 그런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을 쓰실 생각은 없으세요?

이금이: 저는 픽션이 좋아요(웃음). 논픽션으로 쓸 소재가 생겨도 그걸 가지고 픽션을 쓰는게 재미있어요. 그냥 논픽션을 쓰기에는 아까워요(웃음). 그리고 소설 외에 다른 글을 쓰기가 참 힘들기도 해요. 심사평 몇 줄 쓰는 것도 정말 힘들어요(웃음).

알라딘: 지금까지 말씀하신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꾸로 현실에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피엔딩을 선호하시는 건, 희망 같은 걸까요 아니면 그리 되어야 한다는 당위 같은 걸까요.

이금이: 기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는 그 댓가를 얻어야 기분이 좋아요. 등장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어떤 이상적인 세계죠.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글 속에서라도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좋아요.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 중에 굳이 나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고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에도 이런 모습들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끔. 롤 모델을 삼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제시하고 싶어요. 다만 그게 문학적으로 얼마나 개연성이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알라딘: 이제 막바지입니다(웃음). 독자분들께 추천하고픈 책이 있으시다면.

이금이:
추천을 잘 못해요(웃음).

알라딘: 그럼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이금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파우스트>예요. 청소년들은 재미가 없을텐데(웃음). 저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어요. 정확하진 않은데 '놀기에는 너무 젊었고 소망하기엔 너무 늙었다*' 같은 문장이 있어요. 대단한 문장이죠. 처음에 다소 지루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참고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 고전을 많이 읽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건 작가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더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에요. 고전이, 살아가면서 앞에서 이끌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읽었더라면.

(*민음사판 파우스트에서는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로 나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라틴 문학을 좋아해요.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요. 이사벨 아옌데 같은 작가들. 주로 여성이 주인공이고, 자신을 극복하는 당당한 주인공들이 멋져요.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강렬한 주인공들이죠. 그런 게 좋아요.

알라딘: 마지막으로 이 흉흉한 시대에(웃음) 독자분들께 안부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금이: 요즘 사회 분위기가 참...(웃음). 요즘은 블로그에 글을 잘 못 쓰겠어요. 연평도 문제라거나, 이런저런 문제들 앞에서 일상의 기쁨을 얘기한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지도 모르잖아요.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위안도 받고...

...미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달려 있어요. 현재를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알라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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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k7529 2011-01-06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좋아하는 작가분입니다... 외국에 있어서 새 작품 소식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네요. 한동안 <너도 하늘말나리야>와 "소희"라는 이름을 잊고 지냈는데, 이 인터뷰가 그 기억들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서울로 올라간 소희가 어떻게 지낼지.. 보고 싶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1-21 09:41   좋아요 0 | URL
네, 시리즈는 역시 좋아하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맛이 최고죠. 소희를 다시 만나보시면 아마 좀더 컸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2011-01-06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부에 이은 2부는 주로 독자 여러분들의 질문을 통해 진행됩니다.

 앞에꺼 안보신 분들을 위한 1부 가기 링크.




영화라는 우정.




알라딘- QnA의 첫 질문은... 고민상담입니다(웃음). 아무리 진지하고 깊은 내용을 담은 영화라도, 거기에 담긴 사유보다는 우선적으로 영화 자체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정성일- 허허허

알라딘- 네, 자신이 인문학도여서 그런걸까라고 자문을 하셨어요(웃음). 질문은 이렇습니다. 감각으로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감각에서 출발한 사유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하는 겁니다.

정성일- 우선 지젝 식으로, '당신의 죄의식을 즐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웃음)

감각이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세잔은 가능하다고 했어요. 더 가까워진다, '보여진다'는 거죠.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감각과 의미라는 두 단어는 국어에서는 별도이지만, 불어에서는 같은 단어(sens)예요. 같은 단어 속에 감각과 의미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그 두 요소가 이미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그게 불가능하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 걸까...

영화는 1895년에 파리에서 탄생했어요. 근대화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의 미술이나 음악 등에서 그 기류를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인상파 미술을 생각해볼 수 있죠. 영화는 '세상의 공기를 감각으로 캐치하려던 시대'에 태어난 예술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발명된 동기는 예술이 아니었어요. 영화는 그저 기술일 뿐이었죠. 실제로 초기에는 유사 써커스이기도 했고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과 아무런 미적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19세기의 저 수많은 과학적 발명 중에 유일하게 영화만이 예술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영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주1

좀 더 직접적으로 답하면, 영화를 완성된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왜 이것이 예술인가라고 질문하세요. 그러면 감각이 의미를 부여합니다. 묻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의미는 발생하지 않고, 영화는 '그제서야 예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겁니다.

알라딘- 영화에 있어 감각적 요소는 본질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거군요. 질문하신 분께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정성일- (웃음) 저는 한국 사회에서 영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중에 철학자나 사회학자 같은 분들, 영화가 사유의 대상이게끔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저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영화에 대한 좋은 얘기들이 많아요. 들뢰즈나 랑시에르, 푸코, 지젝... 프레드릭 제임슨도 그렇죠.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사실 방금 언급한 사람들이 너무 대가죠(웃음).

저는 책을 탐욕스럽게 읽는 편이에요. 열심히 끌어다 읽어요. 특히 한글로 쓰여진 영화 관련 글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중에 끌리거나 매력 있는 글은 거의 못 봤어요. 자기 전문 분야의 책들을 참 잘 쓰는 분들도 영화 얘기만 하면 이상하게 유치해져요. 그런 걸 읽다보면 가끔은 제가 이 사람에 대해 그간 오해했었나 싶어서 그 사람 전공 분야 책을 다시 봐요. 그런데 그건 정말 잘 썼어요. 이상하지(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서 자기 분야 얘기를 하려고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회나 역사나 철학을 설명하려고 영화를 갖다 쓰는거죠. 영화 자체를 이해하지 않고 영화를 매개로만 사용하면 좋은 내용이 나올 수가 없죠. 앞서 말한 들뢰즈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매개로 한, 혹은 영화를 빙자한(웃음) 철학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건 분명한 '영화 책'이에요. 철학을 말하기 위해 영화를 끌어들인 게 아니라, 철학을 이용해서 영화를 말하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식인들이 영화를 중요한 예술이라고 말할 거라면, 그에 합당하게, 보다 진지하게 대해 달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알라딘- 앞서 언급하신 들뢰즈 외에 좋은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정성일- 우리나라에는 동경대 총장으로 더 유명한 불문학자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 비평들이죠. 그의 비평은 절대적이에요. 일본에서 영화 평론을 하는 그 누구도 그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했어요. 물론 그 영향력이 지나친 감은 있지만... 그의 오즈 야스지로 비평을 보면 단순한 감독론의 비평 범주를 넘어서 있어요. 그 글은 영화 자체의 가능성과 일본 영화계 전체의 속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힘이 있어요. 결국 일본 영화의 새 세대가 나오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알라딘- 트위터에 글을 쓰실 때 <시>와 <하녀>, <인셉션>과 <엉클 분미>처럼 두 개의 영화를 비교하는 형식을 자주 이용하시는데요. 특별히 그런 방법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정성일-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서요(웃음). 트위터는 140자 안에 결판을 내야 하는 거니까 바로 얘기를 해야 돼요. 그때 하나의 영화만 말하면 기준점을 잡기가 힘든데, 다른 영화가 상대 기준점이 되는거죠.

저는 생각이란 곧 접속사라고 생각합니다. A와 B를 연결할 수 있고, A와 C를 연결할 수도 있어요. 그 연결하는 방법이 곧 그 사람의 애티튜드가 됩니다. 좀 따분하게, 건조하게 얘기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던 변증법적 사고의 기초죠.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사실 이 얘기는 왜 그럴까 하고 방금 생각해본 거예요.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랬어요(웃음).




알라딘- 영화 <해안선>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 이 영화의 리뷰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리뷰 후반부에 보면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질문을 주신 분 역시 그 자막을 기억하고 계신다는데요, 그런데 DVD판 <해안선>에 그 자막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게 감독의 의도라면...

정성일- 어? 아니, 아니예요. 그건 절대 감독의 의도가 아닙니다. 확실해요. 몇 달 전에 김기덕 감독과 만나서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 그 자막 얘기도 나왔어요. 감독이 그 자막은 너무 중요하다고 직접 말했어요. 아마 DVD판에서 그 자막이 삭제된 건 감독도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DVD 제작과정에서 재편집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물론 판본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요. <춘향뎐>이나 <취화선> 같은 경우에도 국내 개봉판과 깐느 개봉판이 다르죠. 특히 음악에는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죠. 브루크너나 모짜르트 등만 봐도 악보가 여러 판본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같은 경우에는 보다 명확하게 예술가의 의도를 재현한다거나, 보다 나은 미적 성과를 목표한다거나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해안선>의 삭제 편집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명백한 훼손입니다.

알라딘- 만약에 그 편집이 감독의 의도에 의해서였다면 어떨까요? 달라진 판본에 따라 비평도 수정되어야 할까요?

정성일- 디렉터즈 컷 같은 여러 수정본들이 있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주로 극장 배급용 영화들이 2시간 이내로 편집되어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에요. 연출가는 고심하게 되죠. 특히 헐리우드의 경우에는 편집권이 감독이 아니라 배급자에게 있어요. 그때 보통의 경우 감독은 자기 영화가 편집되는 데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DVD로 출시할 때 감독판을 내는 거죠. 이 경우에 감독이 자기 의도를 복원하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다른 예로는 홍상수 감독 같은 경우인데요. 홍상수 감독은 무조건 처음 내놓는 게 곧 최종본이에요. 불가피한 이유로 편집을 약간 더 손보는 경우는 있었는데, 그 경우도 그러고 나면 그게 최종본이죠. 여기에 정답은 없어요. 감독별 스타일 문제고 그건 다 선의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수정판본들은 앞선 판본과 다른 영화가 되죠. 저는 앞선 판본의 비평은 개별적인 해석으로써 존중해요. 그러므로 새 판본에 대한 비평은 새로 쓰여져야 합니다. 새로 쓰지 않고 기존의 비평을 새 버전에 맞춰 수정하는 행위는 쓰레기 같은 짓이에요. 새로 편집된 영화는 그 기본 전제부터가 다른 영화이고, 그건 곧 새로 쓰여진 영화라는 말입니다. 매 판본마다 다른 비평이 필요해요. 감독의 '진본'이란 없어요. 두 개의 판본이 있다면 A와 B라는 두 개의 영화가 있을 뿐입니다. 그게 어떤 판본이냐와는 별개의 문제죠. 감독의 의도이든, 작고한 감독의 복원판을 찍어내는 장사든...

알라딘- DVD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부가영상같은 서플먼트는 잘 보시나요?


정성일- 아뇨. 거의 본편만 봅니다.

알라딘- 아, 약간 의외네요. 영화에 대한 보조 자료들이 들어있어서 잘 챙겨보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감독 코멘터리 같은 것들요.

정성일- 그 코멘터리들을 보면 대개 잡담하고 있잖아요. 오히려 본 영화의 느낌을 망치는 것 같아서 싫어요. 서플먼트는 신중하게 골라서 봅니다. 개중에는 그 영화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피핑 톰>의 서플먼트가 그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프랑스 출시판에 수록된 것도 좋았어요. 끌레어 드니가 코멘터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홍상수에 대한 아주 색다른 이해를 보여줘요. 반면에 마틴 스콜세지가 홍상수 영화에 코멘터리를 단 것도 있는데... 그건 뭐 스콜세지라는 이름 말고는 볼 게 없던데요(웃음).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어요. 잘못하면 영화 자체의 감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의 대다수 코멘터리들을 보면 스태프들의 잡담으로 이뤄져 있어요. 사람들은 소중한, 중요한 얘길 듣고싶어 해요. 저는 쓸데없는 코멘터리를 경멸합니다.




알라딘- 영화를 직접 만들 때와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의 차이를 물어오신 분도 계십니다.

정성일-
영화에 대해 쓸 때는 영화를 마음 속에 두죠. 어떤 객관적인 개체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영화를 생각합니다. 영화를 찍을 때는 그 모든 순간들을 포함해서 제가 진짜 평론가가 된 것 같았어요. 쇼트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과정들, 거절하고 받고 기다림을 결정하는 매 순간들이 비평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었어요.

알라딘- 원론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말하는 것이 겹쳐가는 거군요.

정성일-
네. 영화를 비평할 때도, 찍을 때도 똑같은 시네아스트죠. '비평가였고 감독도 된' 게 아니예요. 뭔가 아주 다른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알라딘-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쓰시는 글이 너무 어렵지 않은가 하는... 말하고 보니 질문이 아니네요(웃음). 다르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성일의 글을 읽고 싶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난이도를 조절해줄 생각은 없는지? 혹시 본인의 글이 어렵다는 사실을 몰라서는 아닌지(웃음)...


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죠. 저는 읽는 이를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게 글이란 내 자신의 생각이 진전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록일 뿐이에요. 영화를 통해 어떤 사고를 갈데까지 가도록 하는거죠. 제 글은 '내 질문에 내가 답을 하는 과정'입니다. 나와 영화가 대면하는 게 아니예요. 영화를 본 나와 글을 쓰는 내가 대면하는 거죠.

종종 저는 문장 대신에 단어들을 나열할 때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생각이 나고 그걸 쫓아가느라 그래요. 그런데 글을 다듬으려는 과정에서 그 생각 혹은 느낌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제겐 처음에 떠올랐던 생각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질문만 있는 경우도 있어요.

(잠시 침묵) 질문은 종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 영화가 끝나요.

(잠시 침묵) 내 두뇌 안에서 어떤 영화를 종결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끝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제게는 가장 위대한 영화예요.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그 나아감이에요.

독자 여러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서 대답 혹은 해답을 구하지 마십시오. 마치 이야기를 나누듯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글의 리듬을 통해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리듬을 통해 질문하고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이 제가 쓰는 글입니다. 저는 제가 영화를 생각하는 과정이 그 영화가 가진 리듬에 포개졌으면 합니다. 제 어떤 글을 읽었는데 그 영화의 리듬을 느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제게는 최상의 찬사가 될 겁니다. *주2


알라딘- 오늘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번외 질문들

알라딘- 이번 책을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딱 한 권의 책만 추천해 주신다면?

정성일- 아까 말씀드렸던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로 하죠. 영화에 관한 위대한 책이에요. 오즈 감독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를 맹렬히 파고듭니다.

알라딘- 요즘 개봉작 중에 추천하고프신 영화는 뭐가 있나요?

정성일-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그리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죠. 한번 봐봐요.

알라딘- 넵.




.
*주1)
영화가 발생할 당시, 그리고 영화가 예술로 접어들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예술로써의 영화'에성을 부여했다는 점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께는 영화 역사서와는 별도로 빌리 하스의 <벨 에포크, 세기말과 세기초>, 그리고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를 권해 드립니다. 참고로 '영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의 답은 같은 문단에 힌트가 있습니다.






*주2)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 '리듬'은, 결화가 뿜는 총체적인 감각적-정서적 진동 및 그 박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문장의 리듬'을 예감케 하는 영화 책으로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을, 또한 리듬에 관한 언급을 포함해 인터뷰 전체에 흐르는 들뢰즈의 전류를 느낄 수 있는 책으로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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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9-3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그러니까 본인 글이 독자에게는 어렵거나 말거나 그냥 죽 맘대로 쓰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어렵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신 거고요. 저로서는 숱한 철학자/비평가 이름의 언급보다는 누군가의 자유로운 '생각'을 그것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주제에 따라가야 하니 어려울 수 밖에 없는거고. ㅠ 문제는 제가 책에 나온 영화를 다 본 게 아니라서 더 심각해지고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9-30 17:04   좋아요 0 | URL
누구를 독자로 상정하느냐는 결국 저자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확실히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어떤 개념이나 현상을 해설해주고 풀이하는 역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목적이 다르다고 봐야겠죠. 어쩌면 그게 '정성일답다'는 그 개성(위력)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공부라도 하실까요 ^^;;

... 2010-09-30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고다르의 <알파빌>을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9-30 17:48   좋아요 0 | URL
아, 인터뷰에는 <알파빌>이 없었는데 뭔가 영감을 불러일으켰나보네요 ㅎ.
물론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임다 T_T

... 2010-09-30 17:55   좋아요 0 | URL
MD님 댓글읽고 보니 제가 쓴 두 문장이 연결이 잘 안 되는군요. 저만의 의식의 흐름...ㅎ
이전 페이퍼 어디선가 정성일씨 책 소개하시면서 알파빌을 알려주셨어요. 책 속에서 장 뤽 고다르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왔는데 저는 프랑스 고전영화를 많이 보진 못했거든요.

외국소설/예술MD 2010-10-01 00:12   좋아요 0 | URL
아.. 표지 얘기에 알파빌이 있었죠. 사실 저도 그게 SF라는 걸 몰랐다면 볼 생각이 없었을 거예요 ㅎ.
덕분에 불란서 영화들에 대해 더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꼭 알파빌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불란서) 영화를 딱 만나시기를.

어영부영 2010-09-30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고민을 해결해주셨군요..부..부끄럽..저는 앞으로 저의 죄의식을 즐기겠..ㅋㅋ그리고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괜한 오해와 편견을 안 갖게 되는 듯 싶네요..하아..공부를...ㅡ.ㅡ;;

외국소설/예술MD 2010-10-01 00:17   좋아요 0 | URL
천기누설 무릎팍..;

요즘 다시 이것저것 뒤적이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 어디엔가는 분명히 자신이 도전하고 싶어하는 공부가 있다는 겁니다. 근거없는 예감이지만요. 그걸 찾으면 사는게 더 좋아지겠죠.

부디 좀더 즐겁게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Tomek 2010-10-0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D
와라라라락~

외국소설/예술MD 2010-10-04 16:43   좋아요 0 | URL
마음에 드셨어야 할 텐데요. 늘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

파인 2011-01-2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적이에요, 수첩에 적었습니다 ^^;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

외국소설/예술MD 2011-01-21 09:40   좋아요 0 | URL
네 그죠. 좋은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의 중요함 말이죠..ㅎ

책사랑 2012-03-0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락의 에티카 구매하러 알라딘 방문했다가 여기까지 오게됐네요~ ㅋㅋ
1, 2부 휘리릭 읽고 댓글 남깁니다ㅋㅋ
평소에 정말정말 궁금했던 질문 & 감독님의 답변이 잘 압축돼 있어서 좋았어요.
정성일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한결같음과 치열함! 가슴이 뜨거워져요.
yo! 좋은 인터뷰 기사 고맙습니당~ㅋㅋ

외국소설/예술MD 2012-03-06 10:16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을 보는 게 제 일을 통틀어 가장 기쁜 일이에요. ㅎㅎ

어떤날 2014-12-2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주석 단락 참고도서를 보니 영화 및 미학 공부를 꼼꼼히 하신 분 같습니다.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4-12-26 11:57   좋아요 0 | URL
저도 덕분에 간만에 본문을 읽었더니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도서 목록에 넣은 책들 중에는 이제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것들도 있네요. 다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좋은 계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가다 2022-04-16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이가 들수록 귀찮아져요, 타인이. 내가 이렇게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싶어진다는. 이해는 상대가 원하면 할 거고 안 원하면 안할 거고. 설득하고 설명하고 이런 게 귀찮아지더라고요. 알아들을 사람, 듣고 싶은 사람은 읽으시고 아니면 지나가세요, 이런 심정이랄까요. 정성일씨는 뭐 젊었을 때부터 첨부터 그랬나 싶긴 한데 첨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셨겠지만 하다보니 사람들이 어렵다 그랬을 거고 근데 자긴 고쳐지지 않았을 거고 그러다보니 걍 알아듣고 싶으신 분은 읽으세요 이런 생각이 되신 게 아닌가 싶네요.
 

 언젠가 영화는 세상이 될 것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인터뷰, 1부.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둘러싼 이미지는 여러 가지입니다. 달필과 달변. 말을 글처럼(!) 사용하는 사람. 엄청 어려운 말을 자주 쓰는 사람. 영화를 쇼트 단위로 분해(혹은 난도질)해버리는 숏커트 매니아. 그래서 영화의 구조 안에서만 사는 것같은 사람. 영화 구조주의자. 영화 순혈주의자. 영화에 대한 낭만도 환상도 없이 온갖 분석에만 몰두하는 외골수. '평론가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것들만 헤집는 것 같다'라고 할 때 누군가에게는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


  이중에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아닐까요. 혹은, 사실이긴 한데 사람들이 그 사실 자체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혹시 그에 대한 어떤 오해는 우리가 영화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답변을 들으면서 더 하고싶은 질문이 계속 생겨나는, 그러나 시간상 참아야만 했던 안타까운 인터뷰였습니다. 그러나 윤곽은 잡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영화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술MD 최원호






알라딘- 책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웃음). 왜 잘 팔릴까요.

정성일- 음... 잘 모르겠어요. 영화가 흥행할 때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잖아요? 영화 <아저씨>가 원빈이 나온다는 이유(웃음) 하나만으로 성공한 건 아니니까요. 그것처럼 이 책에도 그런 여러 요소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출판계가 돌아가는 건 잘 모르고, 그건 아마 이 분야의 전문가 분들께 여쭤봐야 답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각 분야들의 전문가를 존중합니다(웃음).

사실 영화에 관련된 책을 내는 사람들은 영화 책들이 그렇게 큰 반응을 얻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도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과의 인터뷰 책을 냈었는데 그게 그렇게 판매가 좋진 않았던 걸로 알아요. 그러고보면 1970년대에는 문학비평집들이 많이 읽혔지요. 김현, 정과리... 많이 사서 읽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 사게 됐어요. 딱 한 권 예외가 있는데 신형철이 쓴 <몰락의 에티카>예요. 그 외의 평론들은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과 교감이 없이 그냥 자기 얘기만 하는 것 같거든요.

다시 생각해 봤는데, 이번 책을 사시는 분들은 그냥 영화 팬, 나머지는 올드독 팬들이 아닐까 싶은데(웃음).


  단 한 권.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평론집  




알라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비교적 일반적인 의미, 즉 시뮬라르크의 증대와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한 것, 즉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분석 혹은 예측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의 어떤 진심 혹은 열망이 세상과 결국 소통할 방법을 찾게 되는, 영화가 곧 세상이 되는, 희망이나 목표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두 의미는 서로 역설적이고요. 혹시 그런 중의적 배치를 염두에 두셨나요?

정성일- 음... 우선 감사합니다. 이 책 내고 인터뷰를 여러 번 했지만 그걸 물어봐준 사람은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 제목을 단순히 한 시네필의 호기어린 메시지 아니면 들뢰즈의 맥락대로만 생각해서 좀 실망했었어요.

물론 저 제목은 들뢰즈의 말이죠. 들뢰즈가 썼을 때는 음울한 의미였어요. 실재와 재현이 뒤섞이고 때로 자리가 바뀌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죠.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9/11을 말할 때 사람들이 마치 영화 같다고 했었죠. 현실이 영화를 재현하는 것, 스펙터클이 이 세계의 뭔가를 뒤집었어요. 리얼리티가 재현을 재현하게 되는 역재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21세기의 유일한 목표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만큼 실재의 위치가 뒤집혀서, 잘못 지정되어있다는 것이고, 그게 시급한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철학에 비추어진 영화는 주로 비관적이에요.

(잠시 침묵) 일개 영화 평론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해야 해요. 그렇다면 좋은 영화를 방어함으로써 나쁜 것과 구분짓고, 그것으로 긍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해보죠. 언젠가 세상은 '나쁜' 영화가 될 것이다, 가 철학의 이야기라면, 저는 언젠가 세상은 '좋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싶다, 좋겠다, 되어야 한다...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죠. 영화는 과제입니다. 영화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로맨틱한 환상 같은 걸로요. 그렇지 않습니다.



알라딘- 방금 말씀과 책 속의 김선일 비디오, 지아장커와의 대담 등을 종합해보면, 영화는 단순히 스펙터클이나 가상 현실의 체계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체적으로 동시대를 표현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한 또다른 종류의 어법일 수 있다는,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이건 그간 정성일이라는 이름에 대한 선입견과는 거의 반대되는 이야기들 같습니다. 이를테면 영화 순혈주의자라거나(웃음), 혹은 영화 영성주의자라거나 하는, 영화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사람 같은 이미지 말이죠.

정성일- 하하, 영성주의자라. (웃음)

알라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시대와 영화가 서로 어떤 합일점 혹은 통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정성일- '이미' 모든 예술 중에 영화가 세상과 가장 가까이 있어요. 그래서 잘못하면 이 세상과 영화는 서로 뒤섞이거나 위치가 혼동될 위험을 갖고 있죠. 그와 반대되는 게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루카치는 말년에 음악에 대해 몰두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실패했죠. 그만큼 멀리 있어요. 말하자면 현실과 예술의 거리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영화는 가장 가까이에, 음악은 가장 멀리에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영화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찍어도 그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영화 속에 세상의 흔적이 잠입하고, 그것이 영화에 어떤 동력을 제공하고, 움직이고 활동하게 만들죠. 이런 특성은 세상이 영화에 미치는 힘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영화가 세상을 흡수하는 능력이기도 해요. 그때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자의 의지예요. 현실의 어떤 점을 흡수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현실에 직접적으로 굴복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심미적으로 흘러가 버리기도 해요. 둘 다 아닙니다. 틀린 방법이에요.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선한 의지' 예요.

자, 이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죠.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는 악인가. 이쯤되면 철학의 지점에 다다라요. 따라서 저는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윤리-미학-정치라고 생각해요. 이 요소들 중에 하나만 무너져도 성립할 수 없어요. 이 윤리-미학-정치가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흔히 돈이냐 예술이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데, 그건 틀린 질문이에요. 너무 많은 것들을 단순화하죠. 틀린 질문이 틀린 답을 유도하고, 그런 식으로는 절대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 못해요. 예술이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질문의 가능성을 좁혀버려서는 안돼요.



알라딘- 책에서도, 지금 인터뷰에서도 사회와 영화와의 관계, 탐색의 다양성, 이런 주제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CinDi(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 참여하시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인가요?

정성일- 네 참여하죠. 그건 임무예요. 굉장히 큰 임무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동시대에 영화는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줘야만 해요. 단지 그 이유 뿐입니다. 아마추어적이죠. 그런데 영화제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여야만 하거든요. 취미에서 한발만 벗어나도 바로 비즈니스-폴리틱스의 세계가 되어 버려요.

영화제에는 돈이 들어가는데, 취미다보니 그냥 돈은 쓰기만 하고 끝나요(웃음). 소위 문화 사업, 돈을 못 버는 일이죠. 여기에 누가 돈을 대면 돈 대신에 명분이나 다른 어떤 것을 가져가고 싶어 해요. 결국 영화제의 비전이나 태도attitude가 후원자들이 부여한 임무와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져요. 고용되는 것, 직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영화제는 취미여야 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아마추어랄까(웃음). 물론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죠. 맞아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비교적 잘 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알라딘- 이쯤 되면 추천도서를 받는데요. 지금 인터뷰 분위기에 맞춰서(웃음), 미학적으로만 분석한 영화 책 말고, 세상과 관계하는 영화에 대해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 있을까요?


정성일- 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책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영화 평론가답게(웃음) 60-70년대의 고다르 영화로 하죠. 저는 영화와 정치의 관계, 정치적 테제의 표현, 매체의 미학적 문제, 그리고 그런 메쏘드method들을 실행하는 방식 모두를 고다르에게서 배웠습니다. 거기에 대해 고민이 생길 때면 늘 다시 고다르로 돌아가요.

물론 이건 제 경우이고, 다른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1920년대의 소비에트 영화, 혹은 지젝이라면 레닌이겠죠. 요새 재장전도 하고(웃음). 혹은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 영화들. 68중심의 유럽 영화들. 90년대의 중국 지하전영.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역시 제게는, 영화정치라는 하드한 측면에서만 보자면 고다르죠.


  <레닌 재장전>, 알랭 바디우 외 (물론 지젝도 있음)



알라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 보면 소위 영화광들이 렌즈와 필름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고찰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문제들이 대단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이어 말씀하셨는데요. 그 중요함이란 어떤 것인가요?

정성일- 결국... 영화에서 봐야 하는 건 영화죠.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은 보통 영화에서 줄거리나 배우를 본다는 거예요. 비평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제가 동료들의 비평에서 가장 실망하는 경우는 비평이 영화와 TV를 구별하지 못할 때예요. 그럼 영화에서 영화를 본다란 뭘까. 쇼트를 보는 겁니다. 쇼트의 활동 범위. 활동력. 목적. 미학적 개념. 씬 속에서의 위치. 그리고 그 위치들의 상호 조직과 관계. 즉, 영화 안에서 쇼트라는 세포가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쇼트의 질료적 기반은 절대적으로 테크놀러지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지금 우리 대화가 영화로 촬영된다고 치면, 그 포맷이 1.33이냐 1.66이냐, 아니면 씨네마스코프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으로 만들어집니다. 지금 우리를 찍는 장면, 이 씬을 규정하는 건 출연하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그 질료인 거예요. 저는 <아저씨>에 원빈이 나오냐 현빈이 나오냐, 무슨 빈이 나오냐는 관심이 없습니다(웃음).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를 1.33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게리>는 그가 유일하게 씨네마스코프로 촬영한 영화입니다. 이 포맷 자체가 이미 그 두 영화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해요. 그걸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씬-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씬을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결정을 해야 돼요. 카페 가운데냐 창가냐, 아침이냐 오후냐, 빛의 각도가 어느 정도냐, 여기서 영화의 하드웨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ASA(필름 감도) 몇 짜리 필름을 쓸 것이냐는 지금 창밖의 풍경을 함께 담을 것이냐, 아니면 노출 차이를 통해 하얗게 날려버릴 것이냐를 결정하는 잣대가 됩니다. 그 감도 차이만으로도 이 쇼트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갖게 돼요. 연출자의 의도가 전적으로 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이건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블록버스터든 독립영화든, 제작비가 얼마든, 모든 쇼트는 주어진 환경 하에서 그걸 만드는 사람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시네필이라면 거기에 호기심을 보여야 해요. 영화에 대한 질료적 이해 없이는 결코 쇼트의 관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음악을 그냥 많이 듣는다고 해서 음악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한계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씨디 장수와 그에 비례한 지식만 늘어납니다. 누가 작곡하고 누가 연주하고...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들어도 뭔가 제자리를 도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죠. 그러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분과 그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한참 얘기하다가 그 분이 조심스럽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혹시, 악보를 못 읽으시는 건 아니죠?'

그때 진짜 철렁했어요. 허를 찔린 기분이었죠. 지금은 아주 잘은 아니지만 악보를 읽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음악이 더 이해가 되고, 더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이해의 폭을 넓힌 거죠.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무 생각없이 보는 영화에서 얻는 건 목록들, 그러니까 감독 이름, 배우 이름, 제목 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양적으로만 팽창할 뿐이죠. 많이 본다는 것, 양적 팽창이 질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moment, 그것이 질료적 기반에서 시작됩니다.





  *글이 길어져(정확히는 답변이 길어져) 이 인터뷰는 2부로 나뉩니다. 지금까지는 MD의 질문이었으며, 2부는 독자 여러분들의 질문으로 이루어집니다. <해안선>의 마지막 자막에 대한 해설, DVD와 코멘터리의 세계, 영화로부터 주어진 감각과 그에 대해 사유하기, '정성일 씨는 왜 글을 어렵게 쓰시나요'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부 가기는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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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MD김효선 2010-09-1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열하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9-16 20:07   좋아요 0 | URL
열성같은 걸 막 끼얹나..

poptrash 2010-09-1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 준비를 제대로 안하셨나봐요 예술역사엠디님...

외국소설/예술MD 2010-09-17 13:26   좋아요 0 | URL
지적은 이유부터 부탁드립니다.. 어떤 점이 문제인가를 보고, 추가할 사항이면 추가를 하고, 해명할 게 있으면 해명하고, 부족한 점이면 받아들이고 하겠습니다.

aida 2010-09-17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질문과 답변이 특히 재밌네요.
덕분에 잘 봤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09-17 17: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질문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더 들어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잠시 화장실 가서 주먹 꽉 쥐고 돌아왔어요.

독자 2010-09-1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준비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위에 위에 댓글다신 분께서 어떤 점을 보고 준비를 안하셨다고 하는지 그게 더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만 잘 정제해서 질문한 것 같아 보이는데.. 굳이 아쉬움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대부분 시간상의 제약에서 비롯된 것일 테여서, 여기서 논해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아 보이구요. 아무튼 전 잘 읽었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09-17 17:5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진짜 고수는 부족해도 아닌 것처럼 마감질을 잘 해야 하겠죠...
2부도 꽤 재밌습니다. 중요한 질문들도 있고요. 애티튜드에 대한 얘기가 중점이 될 것 같습니다.
딱 요거만큼은 기대해주셔도 좋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2010-09-1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성일씨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인터뷰의 핵심은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정성일은 좋은 질문을 한 사람에게는 좋은 답변을 준다'. 물론 앞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답변이 직접적이지 않았다고 좋은 답변이 아니라고하는 할 수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유적인 답변에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더라구요. 이런 직접적인 질문을 하는 인터뷰만 있는것은 좋은것은 아니지만 앞선 매체와의 인터뷰를 보완하는 인터뷰라고 생각해서 참 좋은 것 같습니다(질문자님의 의도시겠지요?). 질문자님의 직관도 반짝반짝~ 2부가 기대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09-17 20:48   좋아요 0 | URL
앞선 매체들의 인터뷰를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제 의도를 거의 완벽하게 맞추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면모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이전 인터뷰들을 보면서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조차 추상적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조차 있어서, 아예 인터뷰에다가 해설과 각주를 붙일까 고민했습니다. 주제넘은 일인 것같아 접었습니다만..

대신에 그의 글과 그 글을 둘러싼 오해들에 대해서는 2부에서 본인의 입장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2부에서는 여타 매체들의 앞선 인터뷰들의 링크도 수록할 예정입니다.

즐겁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노 2010-09-2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꼼꼼히 읽고 질문을 찾아 던지신 거 같네요, 잘 읽고 갑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09-27 14: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흡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

별헤는밤 2010-09-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은 후에 이 글을 읽고나니 한 번 더 요점정리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인터뷰어의 노력이 인터뷰이의 성실한 답변에서 모두 드러나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ㅎ

외국소설/예술MD 2010-09-27 14:01   좋아요 0 | URL
네 2부도 곧 올라갈 예정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

어영부영 2010-09-2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추석이 지났어요. 추석이 지났는데요. 추석이 지났다구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9-30 12:01   좋아요 0 | URL
날짜 기약은 드리지 않았지만 기다리셨으니 죄송합니다.;
인터뷰는 부업이다보니..(웃음)

아마 오늘중으로 업로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당연히) 제가 질문지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합니다. 이번에도 그냥 혼자 인터뷰를 진행할까 했습니다만.
왠지 독식하는 듯한 기분. 맛있는 걸 혼자 등 돌리고 먹는 기분. 영화평론가 정성일이라니 말입니다.

당신이 영화 순혈주의자-영성주의자이건, 혹은 그 반대편이건간에 마음 속에 질문 하나쯤은 품고 있을법한 분이니까요.
최소한 그라면 다른 입장, 다른 포지션이더라도 '대화'가 가능할 듯한 기대감. 그건 갈수록 만나기 힘들어지는 미덕이니까.
마치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에게 Q&A가 주어지자 모두가 '야구'에 대해 물었던 것처럼.

질문은 13일까지 모집합니다. 모든 질문을 다 전달해 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미리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p.s: 광고말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의 표지는 영화 알파빌의 한 장면이죠.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이미 구입하신 분들은 책을 먼저 읽었다는 이점이 있으니(;;), 뒤늦게 이 책을 찾아오신 분들을 위해 저 두 권을 합친 <정성일 영화평론집 세트>용 경품을 마련했습니다. <언젠가..>의 표지 포스터인데요, 정성일 님의 싸인이 첨가돼 있습니다. 저도 알파빌 좋아해서 정말 갖고 싶습니다. 이미 구입하신 분들께서는 (역시 이미 구입한) 저같은 기분일까요.; 수량 한정이며, 알라딘 단독입니다. 뒤늦게 찾아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벤트는 다음주쯤 시작할 예정입니다.

p.s2: 추신이 더 길었지만 추신 때문에 쓴 글은 아니고 그냥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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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2010-09-0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진지하고 심원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사유'가 아니라 '감각'에 방점이 찍히는 것 같아서 안 느껴도 되는 이상한 죄의식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이건 제가 골수에 사무친 인문학도라서(는 절대 아닐 것 같고)
감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유가 가능한 지, 가능하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하네요.

어영부영 2010-09-0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추신: 포스터는 안부럽네요 훙! 이쁜여배우가 나오는 포스터따위,

Tomek 2010-09-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질문.
『필사의 탐독』중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관한 질문입니다. 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비디오로, 그리고 DVD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끝에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기원합니다.”라는 자막에 대해서 선생님은 장문의 글을 쓰셨습니다. 저는 모든 영화를 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 장면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정확히는 자막)은 제게 기괴한 쇼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그리고 비디오로 본 <해안선>에는 이 자막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지만, DVD에는 이 자막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자막이 김기덕 감독의 의도 하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제작사에서 임의로 뺀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일부러 DVD의 음성해설과 부가영상까지 모두 챙겨보았지만, 이 자막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었습니다. 물론 이 자막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이렇게 되면 영화의 판본이 어느 것이 최종본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해안선>에서 마지막 자막의 누락이 김기덕 감독의 최종 판본이라면, 선생님은 그 자막에 대한 생각을 철회하실 것인지요? 그리고 영화에 대한 최종 판본이란,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두 번째 질문.
트위터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트위터에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선생님은 예외 없이 두 편씩 비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 그리고 최근의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물론 이런 글쓰기는 선생님의 오랜 전통(?)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비교를 통한 영화 읽기 혹은 생각하기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탄식.
바다출판사는 먼저 책을 산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하라! 진행하라!

치니 2010-09-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것이 없고 흥미 위주로만 세상을 살다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진 알겠는데 그걸 참 어렵게 풀어 썼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좀 있었어요. 글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처럼, 어렵더라도 이해가 좀 안되더라도 자신이 쓰고 싶은대로 쓰고, 그걸 따라오는 건 독자의 몫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아니면 정성일 선생님 본인은 정작 어디가 어렵다는 건지 당최 모르시다보니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요 ㅠ)

2010-09-12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