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우리 청춘의 얼굴

 

 

 

1

 

인생사 긴긴 여정의 어느 시점이 되면 얼굴의 면적이 썩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다. 그렇게 한 번 변하고 나면 다시는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오늘에 비하면 어제란 늘 아름답다-으로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올 수 없는 안면적대격변의 강을 건넌 자, 우리는 그를 주저 없이 아저씨라 부른다. 아저씨.

 

조인성도 그걸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 함께 TV를 보던 동생은 조인성도 늙는다며 그 증거로 얼굴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애들의 날카로운 시선에는 또 그게 걸리나 보다. 하여간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부러웠기 때문이다.

 

 

 

2

 

얼굴 면적의 격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 형태를 지닌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중론이었다.

 

첫째, 팽창하는 우주 식.

둘째, 모여라 꿈동산 식.

셋째, 바나나는 길어 길면은 기차 식.

 

 

 

3

 

영원히 견고할 것만 같았던 안면적 격변의 삼원론의 아성은 최근 이원론 학파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흔들리는 중이다. 우주팽창과 꿈동산은 사실 같은 현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핫바드대학교 인류안면변화연구소(Change of Human Face Research Lab in Hotbard University, CHFRLHU)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래 대두로 인식되던 개체의 안면적이 의미 있는 증가폭을 보일 때, 인간은 이를 큰 얼굴이 더 커졌다고 인식하기보다 이목구비가 안면의 정중앙 xy축의 교차지점으로 수렴 중이라고 인지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 동일한 물리적 현상에 대한 해석이 관측자의 기존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반면, 안면 이론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는 MYT의 페이스 부크Face Booc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Face Is Not an Organism, It Is a Science(얼굴은 기관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에서, 우주팽창과 꿈동산을 결정하는 기준은 관측자의 기존 인식이 아니라 안면적의 최종값이라고 주장하였다. 논문은 기존 관측자의 인식과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안면적의 값이 팽창인식상수(cognition index of face expansion)이상일 때는 우주팽창으로, 그 이하일 때는 꿈동산으로 인식된다고 하며, 이 팽창인식상수란 진공에서의 광속도, 플랑크 상수와 같은 불변하는 상수임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고 보고했다. 현재 팽창인식상수가 우주의 불변상수인가, 아니면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지표에 불과한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논쟁의 결과와 무관하게 안면적 격변의 기본 형태는 삼원론에서 이원론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면적 변동은 이제 방사형 팽창식과 바길길기(바나나는 길어 길면은 기차)식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4

 

와 같은 헛소리를 길게 쓰면서 으하하 나만 재미있으면 됐지 뭘, 하는 생각을 했다.

 

 

 

5

 

하여간 조인성의 얼굴은 바길길기 방식으로 길어지고 syo의 얼굴은 방사형 팽창식으로 넓어질 모양인데, 어쨌든 길어지거나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조인성조차 피해갈 수 없는 얼굴의 운명이라면, 왕창 커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단일축 방향으로 확장되는 편이 좀 낫지 않은가 하는 것이지.

 

 

 

6

 

아니면 그냥 조인성이라서 부러운 것일 수 있다.

 

 

 

7

 

생각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게 맞는 것 같다.

 

 

 

8

 

어쨌든 내가 청춘일 때, 그 시대 청춘의 대명사로서 함께(?) 한 세월을 헤쳐나간 우리 시대의 얼굴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각별하다. 한 세대 위, 형과 삼촌의 경계 어디쯤의 스타들이 늙어가는 것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아예 한 세대 밑의 애기애기했던 친구들이 얼굴에 수염이 자글자글해지는 모양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늙지 말지 조인성. syo가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늙고 있는데 뭐하러 형까지 늙어요…….

 

 

 

9

 

박보검도 언젠간 늙겠지, 걔는 조인성하고 약간 닮았잖아, 그럼 걔도 길어지는 쪽이겠네. 라고 말했더니 동생은 박보검은 다르다며 진저리를 쳤다. 동생아. 나도 조인성은 다를 줄 알았어.

 

 

 

--- 읽은 ---



100.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지음 / 홍한결 옮김 / 월북 / 2019

 

이것은 syo가 지향하는 여러 갈래의 문체 중 한두 가지를 잘 비벼 놓은 문장이 그득 들어찬 책이었다. 잘 먹고 운동 잘하고 이렇게 저렇게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런 글들을 쓸 수 있겠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착각의 시절. 세상에 이런 책이 있으니까 syo는 독자의 방향으로만 뚜벅뚜벅 간다.

 

세상일이란 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대규모로 죽을 쑤는 원인은 바로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성,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바로 그 특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 , 인간은 세상에서 패턴을 읽어낸다. 그리고 알아낸 것을 다른 인간에게 전할 수 있다. 또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줄 알아서, '이걸 이렇게 바꾸면, 저게 저렇게 돼서, 살기가 좀 더 편해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문제는 그중 어느 하나도 그리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패턴이 없는 곳에서도 패턴을 읽는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부족할 때가 많다고만 해두자. 우리는 이걸 이렇게 바꾸면, 이상한 게 덩달아 바뀌고, 또 다른 게 이상해지다가, 결국 이게 뭐야, 살려주세요…… 하게 된다는 예상을 하지 못한다. 이는 과거의 화려한 실적으로 증명된다.

_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101.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

 

- 일독(190516)

- 재독(210330)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을 바란다. 그럴 수 없다는 것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래서 이 말은,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가책 없이 할 수 있고 또 누구나 동의하는 진리의 말인 동시에, 실은 듣는 사람도 속이고 무의식중에 나 자신까지 속이는 완벽한 거짓말이기도 하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완벽이라는 개념을 아무리 좁게 잡아도 그렇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속성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완벽한 완벽, 완벽히 불가능한 완벽의 불가능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 말고, 딱 하나의 속성 내에서 모순되지 않는, 시간과 입장에 따라 변하지 않는, 유사한 입장에 속해 있는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똑같은 판결을 내리는, 그런 부분적 완벽을 놓고 보아도, 어쩌면 가능할 것 같은 그 완벽 역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사실을 글자로서 음성으로서 인식하여 뇌에 저장해 놓는 것과, 이 사실 자체를 눈에 바르고 귀에 발라 놓는 것은 천지차이다. 부분적 완벽을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완벽은 그 자체로 늘 전체를 지향하는 개념이라 부분적이라는 말의 포획틀에 얌전히 잡혀 있는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는 인간을 전체로 파악하고 실망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래야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단지 요즘 인간에 대한 실망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어서. 어차피 실망이란 실망하는 사람의 것이어서 내가 거듭 실망하고 실망해도 아프고 변하는 것은 나일 뿐이라서. 인간이란 결국 때가 되면 스스로 스토아 철학자가 되고 마는 것인가.

 

, 이런 이야기를 왜 여기서 길게 하고 있는지(읽어보시면 대충 아실 수도).

 

우리가 왜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하)는지, 이 책은 그 이유를 충분히 제시한다. 요약서가 아니고, 가이드맵에 가깝다. 한나 아렌트로 달려가기 위한 첫 번째 책으로 손색이 없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결정하기가 덜 자유로울수록 더욱 겉치레를 하게 되고, 사실들을 감추고, 어떤 역할을 하려고 애쓴다.

_ 리처드 J. 번스타인,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102.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최지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

 

당당한 사람보다 단단한 사람이 멋있어 보일 때 어른이 된 것 아닐까. 당당하기도 쉽지는 않지만 단단하기란 거의 위대한 일에 가까워서, 모루 위의 쇠처럼 두들겨 맞고 버티는 과정에서 내적으로 단련되는 방식으로 말고는 어떻게 해도 얻어낼 수가 없는 귀한 특성이다. 또한 마르고 거친 환경 속에서 시간을 통과한다고 저절로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딱딱함을 단단함으로 착각하고 살기란 얼마나 쉬운지.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 할 길에는 세상의 말이 만들어 놓은 두 개의 함정이 숨어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유연함이라고 부르며 우리에게 주사하기를 원하는 물렁함을 거부해야 하고, 같잖은 자기계발서들이 단단함이라고 부르며 쟁취하라고 종용하는 딱딱함을 피해야 한다. 그 이중의 회피를 달성했거나 달성 중인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를 엿보면서 내 단단함으로 가는 지도의 세부를 조정하는 일. syo가 지치지 않고 에세이를 찾아 읽는 이유다.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나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주체적인 인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컬러 차트에 들어맞지 않는 디테일한 개인이 돼보는 것이다. '쟤 왜 저래'라는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되도록 개의치 않기로 하자. 남들의 의견이라는 실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을 신경 쓰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으니까.

_ 최지미,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103. 네 칸 명작 동화집

로익 곰 지음 / 나선희 옮김 / 책빛 / 2018

 

이 책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컨셉을 나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 읽는 ---

머릿속에 쏙쏙! 물리 노트 / 사마키 다케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류동민

어떻게 최고의 나를 만들 것인가 /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법의 정신 / 샤를 드 몽테스키외

독일사 산책 / 닐 맥그리거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 짧은 안내서 / 버나드 크릭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 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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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3-30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이런 능청스런 글 제 취저예요 흐흐흐

syo 2021-03-30 20:41   좋아요 0 | URL
흐흐흐 이런 웃음 제 취저예요 흐흐흐

행복한책읽기 2021-03-30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럼 곤란하쥬. 긴 페퍼를 연달아 올리다니. 대끼 syo^^

syo 2021-03-30 20:41   좋아요 0 | URL
대끼요? ㅋㅋㅋㅋㅋㅋㅋ 뭐죠 그게 ㅋㅋ

공쟝쟝 2021-03-30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만있는 조인성은 왜 후두려패는데 ㅋㅋㅋ (근데 잘팼어) 조인성 흘러내리는 거 저두 너무 공감... 조인성, 공유와 현빈을 본받아라!!! 마, 아무리 모태 미남이라도 코르셋 꽉 좋이고 더 노력하란 말야!!!!
그나저나 공돌이로 무장한 개놈버전 쇼님은 당할 수가 없다.... ㅠㅠ 아 ㅠㅠㅠ 내가 이번달엔 제일 웃긴 사람이고 싶었거늘... 3번 문단에서 패배했습니다..

syo 2021-03-30 20:42   좋아요 0 | URL
후드려팬거 아니라니까, 부러워서 그런다고.
길어져도 조인성이 길어지는 거잖아....

이번 달 그거 이제 30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다음 달에 제일 웃긴 사람 해요. 밀어줄게 ㅋㅋㅋ

stella.K 2021-03-3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늙어도 꾸준히 TV에 나와주는 배우들이 좋더군요.
어느 샌가 모르게 안 나오는 배우랑 배우질은 안하고 CF나
예능에만 나오는 배우는 좀 아쉽더군요. 설마 보검이는 안 그러겠죠? ㅠ

syo 2021-03-30 20:43   좋아요 0 | URL
티비에 나오건 안 나오건, 저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죠 ㅎㅎㅎㅎ
보검이 화이팅.....

Angela 2021-03-3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슬퍼요 ㅜ 내 이야기인줄

syo 2021-03-31 11:40   좋아요 0 | URL
안면적 격변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의 고민 너의 고민 우리 모두의 고민.....
 


포교중단

 

 

 

1

 

연애하라는 말은 어떤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한다. 모든 행복한 연애와 폭망한 연애는 그 기승전결 전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이었고 어떤 인간이 아니었는지를 가르쳐주는 학습지이고, 사람이 살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의 최소 절반은 실상 나라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연애 자체가-연애하지 않았다면 맞닥뜨릴 일이 없었을-많은 물음표를 낳기도 하지만, 연애의 과정을 촘촘하게 거친 사람들은 연애 바깥의 많은 일에다 찍을 수 있는 다양한 문장부호들을 마련하게 된다. 말줄임표, 쉼표, 느낌표, 대쉬, 따옴표, 그리고 무엇보다 마침표.

 

그렇지만 연애의 이런 효익이 연애하지 않는 이에게 연애하라고 강권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연애에서 얻을 수 있는 답안들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만능 키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해답을 담지하는 물건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고, 대체로 연애하라는 말은 그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인생에 새로 던져진 여러 개의 물음표에 그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연애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연애하라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고, 연애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연애하라는 말이 아니라 연애하기 좋은 사람의 연락처를 건네야 한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연애하라는 말을 폐기할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2

 

연애라는 것은 참 묘하다. 연애가 좋은 사람에게는 연애란 좋은 것이며, 연애가 싫은 사람에게는 연애란 싫은 것이다. 그런데 연애가 좋은 사람에게도 연애란 때로 싫은 것이며, 연애가 싫은 사람에게도 연애란 때때로 좋은 것이 된다. 이 말은,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자기가 연애하는 이유를 설명(그럴 필요는 없지만)할 때 연애의 좋은 점을 일일이 나열할 까닭이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당연히 이럴 필요도 없지만)할 때 연애의 구린 점을 줄줄이 꿸 까닭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냥 입을 다물고 각자의 연애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연애인 듯 연애 같은 연애 아닌 연애를 하거나 그러면서 살면 편한 것.

 

 

 

3

 

결혼하라는 말에는 학을 떼면서도 남들한테 연애하라는 말은 무심히도 하고 다녔던 이중적인 나새끼의 실체를 곰곰 생각해 본 결과, 연애하라는 말은 결혼하라는 말과 그래도 다른 데가 좀 있었다. 결혼하라고 강권하는 이들도 결혼이라는 것이 주는 행복을 권하는 마음이 기본이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결혼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완결의 과정을 향해 가는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심지어 누군가에게는 골인 지점)이라는 오랜 관념의 냄새를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따라서 내게 결혼을 권하는 사람 두 명 중의 한 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이란 결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syo가 연애를 권할 때, 그건 연애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은 당신이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면허증이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재밌어서, 신나서, 권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좋다고 해서 너도 좋을 거라고, 그러니까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폭력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매당하는 것이 결혼이든 연애든 빡치는 데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명백히 다른 것이 있다. 결혼을 강권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수정과 속 계피라고 생각한다면, 연애를 권했던 syo는 연애를 수정과 속 잣 같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연애란 잣 같은 것이다. 아니다, 이건 정확한 비유가 되지 못하겠다. 더 섬세하게 빗대자면,

 

결혼 권하는 사람이 결혼을 팥죽 속의 팥 같다고 생각한다면, 연애 권하는 syo는 연애를 팥죽 속의 죽 같다고 생각한다. 연애란 정말 죽 같은 것이다. 팥죽 속에 팥은 있지만 죽은 없다. 같은 팥으로 만들어도 이 집 팥죽과 저 집 팥죽은 다른 죽이기 십상이다. 나는 팥죽을 쑨다고 쒔는데 어찌 된 일인지 팥물이 되었거나, 믿을 수 없게도 팥밥이 되었거나, 심지어 시루떡이 튀어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왕왕 벌어지는 인생 속에서, 당신이 팥이라면 연애는 죽 같은 것이다. 팥죽은 먹고 싶은 날 먹고 아닌 날은 그런 음식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도 괜찮다. 인생의 모든 날이 동짓날은 아니니까. 나는 연애를 권하는 일을 시원하게 집어치웠고, 내 팥죽을 쑤는 데 더욱 노력할 작정이다. 죽 같은 연애 죽 쑤지 않기 위해 정성껏 죽을 쒀야지.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_ 김금희, 경애의 마음

 

나는 자주 어두운 밤과 환한 낮의 경계를 걷는다. 굳이 해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어둠의 시간과 무화과 잎을 둘러야만 간신히 존중받을 수 있는 낮의 시간. 나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지만, 때로 어둠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 어둠이 잠시 주어지는 무대가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무대이면 좋겠다.

_ 홍승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철두철미 소요객인 사람과 열정적 관찰자에게 다수를, 사람 물결을, 움직임을, 순간과 무한을 자기 거처로 삼는 것은 어마어마한 즐거움이다. 자기 집을 벗어나 있기, 하지만 어디서든 자기 집인 양 느끼기.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 세상 속에 숨어 있기. 이런 것들이 독립적이고 열정적이며 편향되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느끼는 쾌락들, 말로는 어설프게밖에 규정할 수 없는 쾌락들 가운데 몇 가지이다. 관찰자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는 군주다.

_ 샤를 보들레르, 『샤를 보들레르 :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 읽은 ---



94. 매일 갑니다, 편의점

봉달호 지음 / 시공사 / 2018

 

편의점에서 일해보지 않으면 편의점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syo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던 시절이 그랬다. 에세이는 어떤 보편적인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하면서 개별성을 양념으로만 사용했다. 소설은 모두가 몸담은 지나치게 큰 세계의 이야기를 하거나 작가 이외에는 아무도 몸담고 있지 않을 듯한 너무 작은 세계의 이야기를 즐겨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해, 이제는 모든 직업 종사자들의 에세이가 최소 한 권씩은 나와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일 역시 소설 밖 인물들이 하는 일과 싱크로율이 꽤 올라갔다. 읽기 좋은 시대다. 어떤 일로 하루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변하며 어떻게 변하지 않는지를,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생은 짧고, 읽는 것 말고는 달리 알 기회를 가지기조차 어려운 무언가들이 잔뜩 널린 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읽기 좋은 시대다.

 

왕년에는 어떻게 하면 제국주의에 불벼락을 내릴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잔머리 굴리며 요령만 피우는 알바 녀석들에게 분통을 터트리고, 기껏 막대 사탕 하나 사 갈 거면서 진열대에 있는 이 물건 저 물건 몽땅 조물락거리는 초딩 꼬맹이들에게 준엄히 야단을 친다. 왕년에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맹세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음료 빨대와 나무젓가락을 뭉텅뭉텅 집어 가는 얄미운 손님들의 불행을 바라고, 편의점 파라솔을 노인정인 양 몇 시간째 차지하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들과 매일 신경전을 벌인다. 왕년에는 노동 해방 평등 세상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계산기 두드리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인건비를 줄여볼까머리를 싸맨다.

  한때 혁명에, 민주주의에, 고귀한 이상에 목숨을 걸었던 우리는 이제 일상에 목숨을 건다. 우리는 그렇게 어제를 떠나보내고 오늘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으로 진짜가 되려 하는가.

_ 봉달호, 매일 갑니다, 편의점

 

 



95.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

 

친구는 이제 나카야마의 작품을 읽지 않을 모양이다. 좀 더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사실 읽을 책은 많고, 나카야마라는 작가가 이 장르에서 읽어야 할 작가의 줄을 세웠을 때 맨 앞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반전 있고 할 말 하고 자극적이다. 그래도 귀환하기 전의 개구리 남자가 더 재미있었다.

 

  “만약 당신이 겁쟁이인 척하는 거라면 출소해도 계속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바짝 긴장했다.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면 그냥 흘려들어요. 방금 한 말은 주치의의 충고 같은 거니까.”

히바는 나른한 듯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일반론인데 정신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런 척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심신상실로 진단되면 정기 검진은 비교적 형식적으로 치르죠. 기소 전 정신감정에서는 반년에 걸쳐 검사를 하는데, 몇 달에 한 번 30분 정도 하는 정기 면담은 그냥 잡담이나 하는 거고요.”

  후루사와는 표정근에 힘을 줬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불안이 얼굴에 비칠 것이다. 히바가 무슨 속셈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는 선량한 인간상을 밀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불과 30분 면담을 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간에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알 수 있어요. 악용되면 안 되니까 자세히는 말 안 하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거나 어떤 행동을 취합니다. 개인차는 있지만, 예를 들어 눈을 피하거나 특정 얼굴 부위를 손으로 가리거나 하지요. 무의식중에 나오는 반사 반응 같은 거라서 훈련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막기는 어려운 겁니다.”

  무심코 손이 얼굴에 가려고 했다. 안 돼, 위험해. 저자가 판 함정이면 어쩌려고.

  “누구나 자기 성격의 싫은 부분은 숨기고 싶은 법이니까 내버려두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아무튼 어차피 할 거라면 계속해야 합니다. 이유를 알겠습니까?”

_ 나카야마 시치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96. 책에 바침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 리네 호벤 그림 /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

 

친구는 영생을 선언했다.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죽지 않을 생각이라고. 평소 여러모로 존경해온 북몬스터 중 한 사람이긴 했지만, 설마 내가 진시황이랑 알고 지냈을 줄이야.

 

그런데 그런 마음이 남의 마음만은 아닌 것. 확실히 책은 많고 자꾸자꾸 생겨나서, 인생을 책에 바치는 것이나 진배없는 삶을 사는 독자들 역시 많고 자꾸자꾸 생겨난다. 알라딘 3개월 구매액이 100만원에 육박했으니 좀 줄여야지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요24에서 책을 구매하는…… 그러더니 다음 달부터 다시 알라딘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걸로 봐서 그래요 구매액도 짐작할 만한…… 그런 사람들 스스로야 물론 책을 내 인생에 바친 거지 내 인생을 책에 바친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잘 알잖아요. 우리, 망했어요. 책이 이겼고 우린 졌어요. 망했어…….

 

읽힌 책은 그것을 읽은 독자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아주 중요한 장의 특별한 한 단락이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독자가 가장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부분, 가장 편안함을 느낀 부분이었다면 언제나 그렇다. 모든 텍스트는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이와 동시에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여행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따금씩 그 여행을 회상하기 위해서라도 읽힌 책은 여행 기록처럼 보관될 필요가 있다. 여행 기록들이 다 그렇듯이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_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책에 바침

 

 

 


97. 홉스

리처드 턱 지음 / 조무원 옮김 / 교유서가 / 2020

 

성이 턱이라니, 제길, 당했다. 이름 가지고 놀리기 없긴데, 자꾸만 본 적도 없는 리처드라는 남자의 턱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대뜸 책과 아무 상관도 없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은 턱 이야기를 하며 글문을 열었을까? , 그것이 문제다. 이 장르가 원래 재미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읽는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 없는 재미를 작가 이름에서 찾으려 들다니, 나란 인간도 진짜 제대로 된 독서가가 되려면 인격수양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쨌든 홉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느낌.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전에 이 책의 좋고 나쁨을 평할 수는 없을 듯하다. 부디 다른 독자들의 평을 참고하세요.

 

다르게 말해서 홉스는 색과 관련된 용어를 다룰 때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도덕적 용어를 다뤘다. 비록 공통의 언어와 감각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이 실제로 또한 객관적으로 빨갛게 여겨지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것이 실제로 또한 객관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지만, 사실 이와 같은 관념은 환영이거나 환상으로서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든 속성일 뿐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색에 대한 감각은 외부세계에서의 영향에 의해 느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색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눈에 부딪히는 빛의 파동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승인과 거부는 인간의 감정적 심리를 구성하는 정념과 욕구 체계에 끼치는 외부 영향에 의해 야기되는 느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_ 리처드 턱, 홉스

 

 

 


98.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 이정민 지음 / 2021

 

연애를 오래 하고 많이 하면 닳고 닳아, 소소하고 달달한 것들에 대한 면역이 생기고 짠맛 쓴맛 매운맛에만 반응하는 연애인이 될 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인 것이, 갈수록 풋풋 달달 아코아코 한 것들에 환장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이 켜놓고 나간 노트북을 들여다 보다가 다카타 히로코라는 이름의 여성으로부터 온 메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할 만한 전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닌데 이러는 나는 참 내가 봐도 아니어서, 엉망진창은 어어어엉망진창이 되어만 가고. 그러다 결국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깨달은 바가 생겨, 어느 저녁, 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노트북을 열어봤으며, 여자로부터 온 메일을 봤고, 이것에 대해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결코 지나가는 일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음을 밝힌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되고,

 

  "다카타 히로코는 여자가 아닙니다. 대학 다닐 때 내가 걱정을 많이 끼친 조교수님이에요. 지금은 손주까지 본 할아버지이고. 부모님이 자식 이름을 지을 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히로코(廣湖)라고 지어서 본인은 꽤 난감해했는데 깊고 넓은 호수 같은 남자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거지. 그럴 거면 아예 호수보다야 바다지, 하면서 넓은 바다라는 뜻의 히로미(廣海)가 낫지 않겠냐는 것이 다카타 교수님의 자학 개그였어. 거짓말 같으면 내 스마트폰 통화 내역이든 문자든 메일이든 다 봐도 돼. 문자나 메일을 보낼 때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돼서 그냥 전화로 하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들키면 안 되는 건 다 지웠으면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감사 메일은 손주가 영화를 스크린에 비추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여 요즘에는 영사기사 일이 어떤지 물었을 때 받은 것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영사기사가 필요 없는 시대라는 것도."

  아내가 메일을 훔쳐볼 수도 있는 노트북을 고타쓰 위에 올려놓고 외출하는 남자였다는 것을 지금껏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자한테서 온 메일이 굉장히 많았어."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인기가 많은 줄 착각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내인걸."

  "나는 그런 당신만 있으면 돼요."

  약간 화난 목소리로 덧붙인 "고생은 시키고 있지만" 하는 말은 못 들은 척하고, 맥주를 가지러 부엌에 갔다. 주방 매트의 모서리를 밟았지만 이제는 말려 올라가지 않았다.

  사유미는 코를 훌쩍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있는 힘껏 활짝 웃으며 맥주를 건넸다.

  "미안, 좋아해."

  "갑자기 왜 그래?"

  이 한마디 말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되는 행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보면서 사유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천천히 남편에게 고백했다.

  ――미안해,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해.

_ 사쿠라기 시노,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우오와와아아아아아아아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대에에에에에으아오아와와!

 

나는 또 저렇게 되었던 것이다.

 

조금 진정하고 다시 보니, “나는 그런 당신만 있으면 돼요.”가 보였고, "여자한테서 온 메일이 굉장히 많았어.",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인기가 많은 줄 착각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하는 말이 너무 귀엽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대충 어떤 말투, 어떤 표정, 어떤 몸짓으로 저런 말을 했을지 상상이 되면서, 저 장면 속으로 휙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오, 저 귀요미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는 말 앞에 미안해가 들어가는 마음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고 아는 사람은 온몸으로 아는 그런 것이다.

 

 

 


99.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16

 

그러니까 역사책 독서가 주는 고뇌란, 지금 이 시점에서부터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읽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빗살무늬 토기가 민무늬 토기가 되고 민무늬 토기가 친환경 BPAfree 원터치 오케이 밀폐용기가 되는 과정을 따라 시간 순으로 읽어야 하는 건지, 정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두 방법의 장단점이 명확하다. 앞의 경우는 당장 오늘날 여기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이해하기 용이한 반면, 상영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영화관에 들어간 것 같은 불안감도 준다. 뒤의 경우는 인과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서사를 잘 따라갈 수 있으나, 젠장 아무리 용을 써도 좀처럼 그리스 로마 시대와 춘추전국 시대까지 읽고 나면 기력이 딸려서 자꾸 다른 책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렇게 한 권으로 세계사를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책들을 들춰보게 되는데, , 이런 독서도 한두 권이지. 결국 두꺼운 책을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만 생긴다. 그러면 나는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또 저 지겨운 페르시아 전쟁인가…….

 

  역사에서 배운 교훈이 현실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 뿐이지요. 역사 속 위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너무 위대해서 우리는 흉내도 내기 힘들뿐더러 귀감으로 삼기에도 벅찹니다.

  ‘과거의 인물, 사회의 패턴을 알면,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에는 패턴과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미래에 웅용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의 패턴과 법칙을 구체적으로 미래에 어떻게 적용해서 생각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력에 따를 문제이지 역사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_ 우야마 다쿠에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 읽는 ---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 최지미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 루크 페레터

인간 루쉰 / 린시엔즈

끝내주는 맞춤법 / 김정선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 리처드 J. 번스타인

독일사 산책 / 닐 맥그리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아르놀트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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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21-03-29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x1000 이상! 공감한 문장 때문에 그냥 갈 수 없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잘 알잖아요. 우리, 망했어요. 책이 이겼고 우린 졌어요. 망했어…….] 이 부분이요. T_T 읽을 책은 밀려 있고, 쓸 글도 밀려 있고, 그래도 월요일 힘내봐요. 스스로 힘내자고 중얼거려 봅니다. syo님,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syo 2021-03-29 20:21   좋아요 1 | URL
밀려 있고 밀려 있고, 어차피 망한 거, 기분 좋게 망합시다!
302moon님, 월요일이 끝나셨는지 모르겠지만, 또 한 주 힘차게 보내시기를 바랄게요.

토마스 2021-03-2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즐겁게 읽은 리뷰였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syo 2021-03-29 20:22   좋아요 1 | URL
좋은글이라는 표현은 기꺼이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토마스님 서재에서 글 읽다가 부끄러워서 돌아나왔어요. ㅎ

바람돌이 2021-03-29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혼은 권하지 않았지만 연애는 꼭 하라고 권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잘 안해요. 일단 내가 아는 사람은 너무 괜찮은데 그에 합당한 괜찮은 상대가 잘 안보인다는것. 제 나이에서 이제 괜찮은 젊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으므로.... 소개해줄 능력 없으면 입이라도 다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ㅎㅎ

우리는 이미 망했다는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ㅠ..ㅠ 일본인들이 참 저런 식의 하룻밤에 시리즈나 몇개로 보는 역사 이런거 참 잘 내던데 뭐든지 분류하고 정리하고 하는게 학문분야에서도 그런것 같더라구요. 문제는 역사쪽같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저런 분류가 딱히 성공적이라고 부를 때가 거의 없다는게 문제인거 같아요. ㅎㅎ

syo 2021-03-29 20:26   좋아요 1 | URL
사실 권하는 것도 어느 정도 된다 싶은 사람한테나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三에게 결코 연애를 권하지 않는데요, 왜냐하면 상대방은 무슨 죄냐 싶어서......
어쨌든 이제부터는 입을 다물기로 하였답니다.

그러고보니 일본에서 저런 제목 달고 건너온 책들을 만족스럽게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네요.
그 동네 참 저런 거 잘 하는데.....



공쟝쟝 2021-03-29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대가 연애를 권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세상이 모든 소설이 모든 노래가 모든 드라마/영화 등등이 연애/사랑/로맨스 타령이니 (훗날의 인류는 이 시대를 연애시대~로 기억할 지도...?) 포교중단은 잘 생각하셨쇼!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어맛! 홉스, 안녕? ㅋㅋㅋ

syo 2021-03-29 20:27   좋아요 1 | URL
아닐걸?
훗날의 인류는 이 시대를 비연애를 권하는 예술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비연애시대로 기억할걸? 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9 21:3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흐름에 탑승해서.. 전도해야겠군! 오소서 4B의 세계로~~~~ 이곳은 안전합니다!!

syo 2021-03-29 21:38   좋아요 0 | URL
4B가 무엇이옵니까?

공쟝쟝 2021-03-29 21:40   좋아요 0 | URL
비출산 비혼 비연애 비섹스!!!!! ....역시 쇼님은 안되겟지....?

syo 2021-03-29 21:41   좋아요 0 | URL
4B는 너무 찐하니까, 저는 2B만 하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9 21:44   좋아요 0 | URL
전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원최 진한 사람이라 4b가 된지 오래.... tmi 뿌리기

syo 2021-03-29 21:46   좋아요 0 | URL
지금도 여러 연필을 번갈아가며 쓰고 있지만, 글 쓸 때는 2B가 딱 내 취향!

행복한책읽기 2021-03-2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해 라니. 것도 미안하게. 아. 진짜. syo의 문장 솎아내는 솜씨라니. 내게도 이런 사람 있걸랑요. 결혼을 권함. 아이를 권함.^^;;;

syo 2021-03-29 20:29   좋아요 1 | URL
달달하고 오글거리는 대사에 좀 약한 편이어서요. 나이 먹어도 참 이 취향은 어떻게 되질 않네요. 으하하하하.

Angela 2021-03-3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인데, 연애를 해야되는데, 어쩌죠? 고수님?

syo 2021-03-31 11:3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봄인데 연애를 해야 하는 게 아니구요.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하려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봄이라고 조바심 내실 필요가 전혀 없다고 아뢰오.....
 


아 염세 오짐

 

 

 

1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은 깃발에 그려진 이념이 실현된 세상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상 그들이 깃발에서 보는 세상은 저마다 다르다. 오히려 그래서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일이 필요하고 유효하다.

 

 

 

2

 

과학은 목적이 없다고 말하는 목적은 과학에는 편견이 없다는 편견을 퍼뜨리기 위해서이다. 우리 시대에 자본의 도움 없이 저 혼자 기동하는 과학은 거의 없고, 모든 자본은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자본의 목적이 과학의 목적이 되고 자본이 가진 편견이 과학이 가질 편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이 과학을 가르친다. 과학조차 당했다면 누가 있어 버텨낼 수 있을까. 자본은 우리 모두의 선생이다.

 

 

 

3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일은 실망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일이다. 높은 곳에 올려놓은 도자기일수록 떨어지면 깨질 확률이 크고, 깨지면 파편이 멀리까지 튈 확률이 크다. 바닥에 내려놓고 보면, 사실 인간이라는 것은 별반 훌륭한 동물이 아니다. 이건 내가 처음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지겹도록 듣고 겪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기대하고, 실망한다. 우리가 올려놓은 인간은 늘 떨어져서 깨지고 파편이 되어 우리를 찌른다. 그 파편을 다 치우고 나면 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다른 도자기를 가져다가…….

 

이런 미친 짓이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늘 SeinSollen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생겨 먹어야 하는 대로 생겨 먹지 않은 동물이면서, 아니, 오히려 그런 동물이기에 늘 인간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실망의 씨앗을 뿌리는 짓일 뿐이다. 씨앗을 뿌린 사람이 잘못했다. 그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우리가 선택하는 제일 쉬운 길이 더 크게 실망하고 더 크게 비난하는 것이다. 10만큼 나쁜 놈을 100만큼 나쁜 놈으로 만들고 나면, 다른 아홉 명의 10만큼 나쁜 놈들을 0만큼 나쁜 놈이라고 편하게 착각할 수 있다. 나쁨의 총량은 보존되었고, 그 덕에 우리는 계속 인간에 대한 기대와 착각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다른 인간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발밑에 다시 실망의 씨앗이 자란다. 작년에 뿌린 실망이 올해도 풍년인데.

 


 

4

 

매사 이런 생각만 가득한데 어떻게 또 연애는 그렇게 무사태평하게 하고 사는지. 도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연애 만세. 올아이원포크리스마스 이즈 유…….




그때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다른 말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넌 정말 대단해." 지원과 나는 어느 순간 그 말이 다른 어떤 말들보다 서로를 감동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나와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정말 감탄스럽다는 표정을 하고는 조용히 "넌 정말 대단해" 고 말하면, 나는 "아냐, 네가 더 대단해"라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는 같이 자고 난 뒤에도 그런 소리를 잘도 했다. 심지어 우리는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해." "아냐, 네가 더 대단해……

_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안도현부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_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읽은 ---



89. 잊혀진 여성들

백지연 외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0

 

이 책이 최종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은 바로 이런 책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다. 존재 자체가 역설적인 것이다. 찾아보면 그런 것들은 꽤 많은데, 대체로 이롭고 필요하다. 병이나 죄와 싸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백수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이한 방식으로 먹고 사는 셈인데, 그런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적이 우리의 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적들이 끝내 정복되어 사라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모순 역시 재미있다.

 

긴즈버그는 연방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늘 9명이라고 대답했다. 연방대법관은 9석이다. 나는 여성인 긴즈버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당연한 일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남성이 하나의 정치적 입장이듯 여성역시 그렇기 때문에, 여성 9명으로 이루어진 연방대법원이 어떤 입장도 배제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는 건 아무래도 멍청한 짓일 것이다. 물론 대법관 9석 전원이 남자인 것보다 낫겠지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이 다 날아갈 때까지 눈 뜨고 멍하니 지켜볼 만큼 남성이라는 집단도 무디지는 않아서,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래서 긴즈버그의 저 말은 syo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뒤이은 말, 자신이 9명이라고 대답하면 질문하는 사람들은 전부 놀라지만, 그들은 9명의 남자 대법관에 대해서는 어떤 의문조차 품지 않는다-는 말이 겨냥하는 바에 대해서는 100% 공감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남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영역에서 의문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보잘 것 없으면서 두텁기만 한 벽을 찢어버리고 기어이 역사에 얼굴을 들이민 소수의 여성들에게 누가 어떤 장막을 둘러쳐 그들을 숨겨 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그림 속 유디트는 제물의 멱을 자르는 사제처럼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성서에는 유디트가 큰 칼을 '두 차례 내리쳐서' 적장의 머리를 끊어냈다고 기록돼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단말마의 비명을 듣는 유디트의 모습은 성서에 나오는 나약한 여성과 확연히 다르다. 아르테미시아는 보는 이마다 넋을 잃을 만큼 빼어났다는 유디트의 아름다움을 지혜, 용기,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고 관철할 수 있는 결단력 그리고 건장한 육체로 해석해 표현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적장의 몸통 위에 하인 아브라가 타고 올라가 누르는 장면도 성서에는 없다. 원래 성서에서 유디트의 하인 아브라는 밖에서 유디트를 기다리고 있다가 유디트가 홀로 베어온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받아 곡식 자루에 넣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작품들에서 유디트의 하인은 밖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해서 유디트의 조력자가 아닌 공범으로 활약한다.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외면받았던 화가의 절박했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아르테미시아는 한 사람이 침략자를 난폭하게 난도질하는 그림을 통해 불공평한 사회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카타르시스로 승화시켰다.

_ 백지연 외, 잊혀진 여성들

 

 

 


90.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

최원형 지음 /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 하는 서술들이 귀여워서, 귀여움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막상 권유에 따르기는 만만치가 않다. 개념적으로는 가벼운 책이지만 실천적으로는 무거운 책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세상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무게가 산출되는 책들이 있다.

 

책의 무게 = {(개념적 무게) x 0.01 + (실천적 무게) x 0.99}

 

그리고 이런 책들은 제목에 ‘10을 달았다고 해서 얕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의도적으로 환경을 망가뜨릴 거야하는 마음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야. 그저 배가 고파서 뭔가를 먹어야 했을 뿐이고, 컵라면이 제일 간편했고, 라면을 먹으려니 나무젓가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컵라면 하나가 불러오는 환경오염은 상상 이상이더구나. 모르는 사이에 인도네시아 어느 숲에 사는 오랑우탄을 사라지게 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었고. 이렇듯 미처 인과관계를 모르고 원인을 제공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단다. 하지만 이걸 전부 세세하게 알게 됐을 때는 너무 늦을지도 몰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번 찾아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생활습관 한 가지를 바꿔 보는 건 어떨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지.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도 꾸준히 지속하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이야. 우리도 아주 사소한 습관을 들여 꾸준히 반복해 보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누가 알겠니?

_ 최원영, 방상호,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

 

 

 


91.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김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저런 행갈이 방식과, 저렇게 한쪽을 채우는 함량을 지닌 책들에 대해서는 입 아파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그냥 흐름과 트렌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기만 하다면. 지혜롭거나, 아름답기라도 하다면. 그런데 이 책 속 글은 시종일관 식상하며 진부하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

어떤 사람은 나를 동그라미로 보고

누구는 네모로 본들 신경 쓰지 마.

굳이 나서서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어.

 

나를 어떻게 보든 난 나일 뿐이고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좋은 사람일 수 없어.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일 뿐이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_ 김재식,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11행짜리 여섯 문장 가운데, 뭐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저런 수준의 이야기는 내 친구 100명 중 120명은 해줄 수 있는, 그냥 구하기 쉬운 말에 그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술집 저 포장마차의 테이블 테이블마다 저것과 거의 똑같은 말들이 소주 냄새를 풍기며 입김처럼 허공으로 소멸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말들은 공짜고, 뻔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92.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

 

2회독.


발췌를 무려 90개나 땄다. 20대 중반이 됨과 동시에 러셀은 탈덕한 줄 알았건만…….

 

철학자는 먼저 현존하는 세계의 특징들 가운데 어떤 것이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 어떤 것이 고통을 주는지 결정한다. 그러고는 갖가지 사실을 세심하게 선별한 다음, 그의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우주를 움직이는 일반 법칙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렇게 진보의 법칙을 자기 나름대로 공식화하면 이제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할 차례이다. "이 세계는 내가 말한 대로 발전해야만 한다. 그것은 숙명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편에 서고 싶은 자, 운명에 맞서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기 싫은 자는 나를 따르라."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철학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당하는 반면에 그에게 찬동하는 이들은 승리를 확신한다. 이들로서는 우주가 자기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다툼에서 이기는 편은 덕을 지닌 이들로 여겨지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_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93.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

 

재미있었다. 반전도 계속 이어졌고, 캐릭터도 선명한 편이어서 전개를 따라가기도 편했다. 무거운 이야기 같으면서도 어쩐지 무겁지만은 않았다. 그건 장점 같기도 하고 단점 같기도 한데.

 

제일 좋았던 곳은 경찰서 대혼전 씬.

 

초기작이라 그런가 여기저기서 작가의 욕심이 느껴졌다. 특히 음악에 대해 잘 아는 티를 너무 냈다. 다른 서술에 비해 지나치게 공을 들여서, 음악에 관한 대목만 고해상도라는 느낌이다. 사실 딱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지나고 나면 나머지 부분이 어쩐지 빈해 보인다.

 

거기 말고도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곳이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견딜만한 불쾌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불쾌감일 수도 있겠다. 어떤 놈에게는 쾌감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에게는 견딜 수 없는 상처를 환기하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그렇게 쓰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너도 그렇게 쓰지 말아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려고 힘쓴 모양인데, 내 생각은 뜻밖에도 작품 자체에 계속 머무른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지 싶긴 했다.

 

모호하고 형태가 없는 불안은 이름이라는 윤곽을 얻음으로써 극심한 공포로 변모한다. 그것은 명료한 형태를 갖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질 때마다 배로 증가하고 가속화된다. 두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명함 대신 남긴 쪽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 치졸한 문장과 이성이 헤아려지지 않는 글자는 오히려 치밀한 두뇌에서 엮어 낸 범행 성명문보다 읽는 사람의 생리를 더 자극했다.

  고테가와는 서명이 없어도 그 기사를 누가 썼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 기자는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는 범인을 현대 사회의 병리에 침해당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그 병에 걸린 자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다.

  ‘개구리 남자라고.

_ 나카야마 시치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94. 철학의 슬픔

문성원 지음 / 그린비 / 2019

 

2회독.


레비나스를 알아볼까 하는 비전공 철학 꼬꼬마들은 문성원 선생님을 피해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판매지수가 망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철학의 슬픔이 아닐 수가 없다. 호퍼의 철학으로의 외도를 전면에 배치한 표지도 예쁘고 좋았는데. 레비나스에 대한 입문서로 읽기도 좋지만, 철학-윤리-정치 에세이로 읽어도 좋다. 문성원 선생님이 글을 원체 잘 쓰시니까.

 

우리가 파악하는 세계는 우리 자신의 자리를 포함한다. 그 자리로부터 우리는 세계와 관계한다.

_ 문성원, 철학의 슬픔

 

 

 

--- 읽는 ---

책에 바침 /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춘추전국 이야기 1 / 공원국

가벼운 영어 / 가벼운학습지

홉스 / 리처드 턱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엘고르 옌센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 나카야마 시치리

매일 갑니다, 편의점 / 봉달호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 사쿠라기 시노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 토머스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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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3-23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방가^^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연애 전선에는 이상 없음을 넘어, 무사태평하다니. 아. 이 봄날 syo님 연애 꽃은 만발하겠군요. 즐기시라~~~~^^ 안도현 담아가요. 근데 식상하고 진부한 책은 왜 읽으심?? 딱 봐도 진부해 보이는데 ^^;;;

syo 2021-03-23 12:12   좋아요 1 | URL
백수에다가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연애 말고는 딱히 없어서 그런가 연애는 늘 무사태평따끈뜨끈합니다. 즐겁고 즐기지요 ㅎㅎㅎㅎ

식상하고 진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3-23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구리 남자 읽고 있어요. 무사태평한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보내시길ㅎㅎ

syo 2021-03-23 12:13   좋아요 2 | URL
오, 개구리남자. 저는 후속편 읽고 있는데, 전편이 나은 것 같아요.
할 때는 좀 심심한 것 같아도 돌아보면 무사태평이 늘 최고입니다.
반님도 봄과 어우러져 늘 무사태평하시기를.

독서괭 2021-03-23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번 글 1-3 모두 매우 공감합니다. 2번은, 과학은 아니지만 이번 램지어교수 사건이 떠오르네요. 일본 자본으로 연구하는 사람의 위안부연구라니 결론이 너무 뻔하지 않나요..
나쁨의 총량 보존. 크.. 설득력 있습니다.
오늘도 책 세권 잘 담아갑니다~^^

syo 2021-03-23 12:16   좋아요 2 | URL
다 공감하시다니, 독서괭님도 염세괭님이셨군요....
쓰면서 램지어 사건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전형적이고 뻔한 구도라 오히려 무시하게 되었네요. 쓰레기 같은 짓이었지만 오히려 온 세계의 주의를 환기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사건이었네요.

scott 2021-03-23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봄날에 연애?? 추카~*추카~*

syo 2021-03-23 12:1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제 연애는 지난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스캇님의 3계절 늦은 축하 감사히 받을게요 ㅋㅋㅋ

청아 2021-03-2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잘 쓰시는 거예요? 출간 준비 하시는 거 맞죠? 그래야 하는데! 🤔 작년에 뿌린 실망 올해도 풍년..하🍻

syo 2021-03-23 12:20   좋아요 2 | URL
출간 준비라니 웬말씀이세요 ㅋㅋ
알라딘에 지금 출간 시급한 글쟁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 나무의 복지와 건강을 위해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30대거든요.

새파랑 2021-03-2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다양한 분야에 독서량이 엄청나시네요^^ 대단~!

syo 2021-03-23 12:22   좋아요 2 | URL
얇은 책 많이 읽고 후딱 까먹는 전략입니다.
그 전략 덕분에 이제껏 적지 않은 책을 읽고도 뭐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오늘날의 syo가 될 수 있었답니다!
..... 그래서 아무래도 이런 짓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3-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뤼노 라투르> ... 저도 근래 알게되어 찜해 놓았는데 반갑습니다. ^^

syo 2021-03-29 12:53   좋아요 0 | URL
라투르 좋지요!
나름 ‘최신‘ 사상이라 힙하기도 하고....
네, 저는 사실 힙해보이려고 라투르 읽어요 ㅋㅋㅋㅋㅋㅋ

뒷북소녀 2021-03-2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 없는 에세이>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품절이네요.ㅋㅋ

syo 2021-03-29 12:5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 품절이네요.ㅠ

공쟝쟝 2021-03-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설득되는 나쁨의 총량... 환멸의 총량... 실망의 총량...총량의 총랴...ㅇ...

syo 2021-03-29 12:55   좋아요 0 | URL
설득력 총량의 법칙에 따라서, 평소 설득력 없는 말을 일삼아오다가 이번에 설득력을 몰빵한 것이지요.
 

 

삼매三昧

 

 

 

꽃이 피는 것은 내게도 큰 일이다. 벽과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 거미가 집을 짓는 것도, 그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내게는 다 큰 일이다. 눈을 감지 않아도 시계 가는 소리, 새 우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시끄럽지 않은 눈을 기르는 것이 요즘 내 직업이다. 묵묵한 것이 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몸의 균형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다 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않는다.

 

맴도는 것들의 소란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이 계절 빚은 얼굴로 남은 한 해를 또 꾸려낼 테다. 고단함이 있겠고, 나를 펴고 접고 휘두를 저 바깥의 장난이 있겠고, 마주 앉아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고 어르는 손길도 있겠지만, 모두들 때가 되면 인사를 나누며 지나칠 것이다. 지금 여기는 일단 봄이다.

 

주초에는 대구에 있었다.

 

 

 

--- 읽은 ---



82. 아무튼, 인기가요

서효인 지음 / 제철소 / 2020

 

여수는 좋은 시집이었다. 나는 그 책을 움직이는 KTX 안에서 읽었다. KTX 창가 자리는 시 읽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시 한 편을 읽고 창 너머로 눈을 던지면 이미 달라져 있는 풍경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 , , , 구름, 차들, 내가 빠르게 달려서 더욱 천천한 것들을 눈으로 더듬다 다시 고개를 떨구면 달라져 있는 시가 있다. 그렇게 창밖과 창 안에서 다투듯 번갈아 달라지고 반복적으로 달라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출발지의 나와는 다른 내가 거기 그렇게 있곤 했다. 그렇게 읽기에 여수는 특히 좋은 시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효인 선생님을 굉장히 진지하고 뭔가 끝없이 아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역시 책 한두 권 읽고 사람됨을 넘겨짚는 건 위험하다. 아니다, 오히려 이롭다. 그 시와 이 산문이 내게 달리 다가와서, 산뜻한 기분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칼국수 달인 수제비 이야기는 하기도 지쳤다. 글잘잘-글은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도 식상하다. 지치고 식상한 말을 자꾸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널려 있어서 이 세상은 위험하다. 아니다, 오히려 이롭다.

 

1995년 캠핑은 룰라가 지배했다. 다들 날개 잃은 천사가 된 듯 굴었다. 어지간한 아이들은 엉덩이를 씰룩대다 박자에 맞춰 골반을 쳤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일부러 얼굴 피부를 태웠다. 당시에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개성 있는 래퍼였던 이상민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는 미운 우리 새끼이자 아는 형님으로 거듭났으며다른 남자 멤버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김건모의 <핑계>를 흥얼거리던 친구들도 많았다. 밀리언셀러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의 현재 모습은역시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무슨 연유로 불현듯 사라지는 걸까. 그것은 그들의 사정이다. 가끔은, 이럴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노래는 몸속 이름 붙이지 못한 장기 한구석에 숨어 이따금 등장한다. 하필이면 그때 그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까 노래는 기억을 불러오는 주술과 다름없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은 대체로 용감하고 대책 없고 삐딱하고 뜨거워서 무슨 기억이든 아주 오래 머리와 몸에 남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열다섯 살에게는 실수하지 않는 게 좋다.

_ 서효인, 아무튼 인기가요

 

 

 


83.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 차은정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6


2회독이다. 


그 때문에 영어권의 철학(아카데믹하고 분석적인)이나 독일어권의 철학(분석적이지는 않지만 아카데믹한)에서 보면 프랑스 현대사상은 마치 현대미술이나 현대시처럼 난해하다. 제대로 독해해내지 않으면 의미 불명의 문장들뿐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타일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에크리튀르야말로 일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사상의 유행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프랑스 현대사상이 아카데믹한 스타일로 쓰였다면 이 정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_ 오카모토 유이치로,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이 책의 주제가 되는 곳은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 제일 오래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근본 없는 무국적 뜨내기가 철학 나라에 입국 한 번 해보겠다고 맨바닥 먼지 구덩이에 뒹굴며 울고 울었던 나날들이 주마등 같다.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게 해서 어려운 것 같은 책들, 아니 이걸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던 문장들, 괜히 과학처럼 굴고 싶었는지 택도 없는 공식에 도식을 차용하는 바람에 진짜 과학과 공학에 익숙한 사람에게 끝도 없는 혼란을 초래하던 그 기호들…….

 

이 책이 그 모든 난해한 겉옷들을 풀어 헤치고 프랑스 현대 사상을 쉽게 쉽게 설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무슨 책을 가져와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개론서/입문서를 오래 읽으며 얻은 지혜라고는 딱 그거 하나다. 누가 설명을 해도, 심지어 사상가 본인이 본인의 사상을 설명할 때도, 이해가능성과 설명가능성 사이에는 반드시 trade-off가 존재한다. 거두절미한 생선은 먹기는 좋지만, 머리와 꼬리가 없는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는 일은 결코 없다.

 

 

 


84.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

 

2회독이다.


웃기면서 신랄한 독후감을 읽고 싶은 욕망이 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저 웃긴 독후감도, 신랄하기만 한 독후감도 안 된다. 신랄하게 웃긴, 혹은 웃기게 신랄한 것들만 이 욕망의 불길을 잠재울 수 있다. 왜 때문에 이러는지 여태 모르고 살았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같다. 그건 가슴 속에 화가 많아서 그래. 웃기면서 신랄한 글의 기저에 깔린 정서는 근본적으로 분노. 뜨겁거나 차갑거나 그것은 분노다. 심지어 미지근할 때도. 그 감정의 방향이 타인을 향해 있건 나를 향해 있건 어쨌든 그것은 분노다. 심지어 온 세상이 다 똥같다 싶을 때도. 웃김은 그 분노의 몸매고, 신랄함은 분노가 걸친 옷이다. 그리고 문체는 그 분노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런 욕망의 시간이 찾아오면, 얼굴, 몸매, 입성의 삼박자가 고루 취향에 맞는 몇몇 책들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는데, 그렇게 열심히 뒤졌으나 실제로 찾아낸 작가는 몇 안 된다. 닉 혼비, 금정연, 그리고 조 퀴넌.

 

아무 저의 없이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 년 전 나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이블린이라는 여자에게 책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블린은 내 친구와 평생 펜팔을 했는데, 그녀가 운영하는 가게는 늘 자리가 잡힐 만하면 태풍에 싹 쓸려갔다. 그녀는 내가 보내는 거라면 뭐든지, 소설, 전기, 스포츠 서적, 잡지를 가리지 않고 읽을 것이다. 나는 가장 마지막 소포를 보내고 18개월이 지나서야 책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기쁨에 찬 편지를 받았다. 소포는 1년 반이나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고, 그제야 우체국에서 일하는 도적놈들은 어차피 값나가는 물건도 없으니 원래 수신인에게 보내주자고 결정한 것이었다. 필리핀에 있는 내 친구, 내가 만난 적 없는 그 친구는 책을 재미로 읽기도 하지만 가게가 태풍에 쓸려가는 현실을 잊으려고 책을 읽는다. 자신이 까막눈 도적놈들이 우글대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잊으려고 책을 읽는다.

_ 조 퀴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85.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

 

2회독이다.


이건 공부법을 알려주겠다는 의도에서 쓴 책이라기보다, 나라는 철학자는 철학적 개념을 활용해 응용의 최전방인 공부법조차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인간임을 보여주겠다는 결의로 쓴 책 같다는 느낌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에 대해 입문서 수준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면 이 사람이 누구의 뭘 가져와서 어떻게 비비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다. , 저자가 이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 철학적 지식의 수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의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다. 사이토 다카시나 오가와 히토시 같은 일군의 저자들 손에서 창조되어 바다를 건너온 철학-응용도서가 대체로 그렇듯, 그냥 그런 수준이다. 그리고 눈곱만큼 들어 있는 공부 방법론 역시 추상적이거나 피상적이고, 공부법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기계발서에 비해서도 훨씬 모자란다. 즉 이 짬짜면은 한 그릇에 두 가지 요리가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짜장면은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수준이고 짬뽕은 맛이 없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면 기존의 동조가 빚어낸 바보 같은 짓이 일단 불가능해진다. ‘옛날에는 참 바보였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이전의 동조 능력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생의 에너지가 사그라지는 시기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견디면 이내 다가올 바보로 변신할 가능성이 열리리라. 이 책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다.

_ 지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과연, 프랑스 현대철학 전공자답게, 문체에서 사짜 냄새 비슷한 것이 난다. 라캉, 들뢰즈에게서 그런냄새를 좀 맡았다. 깊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도 희한하게 사짜처럼 하는.

 

 

 


86.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조성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이것이 데이터고, 이렇게 분석하면 나오는 이것이 인사이트이다- 하는 리듬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지를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데 열중하는 책이다. 기술적인 내용은 기술적인 책에서 배워야 하겠고, ‘빅 데이터는 겁나 빅한 데이터를 말하는 거 아니냐?’ 하는 수준의 이해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이다음 단계는, 빅데이터로 직접 밥벌이하지는 않더라도, 빅데이터를 사용해 우리를 밥벌이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에게 코 베이고 혀 짤리는 일은 피해야겠다 싶은 사주경계형 교양독자들을 위한 책 되겠다. 찾아봐야지.

 

데이터는 신대륙과도 같다. 그 존재를 모를 때는 좁은 구대륙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웠지만, 이제 바다 건너 신대륙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경쟁 없는 그곳에 가서 새로이 원하는 만큼 땅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전 세계 데이터를 대상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빅데이터는 정부나 대기업을 위한 혁신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일반 소비자이자 데이터 생산자인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빅데이터는 잘 쓰면 약이요 못 쓰면 독이 된다. 우리가 항상 봐야 하는 관점은 이익과 비용이다. 빅데이터로부터 우리가 얻는 이익이 무엇이고 그에 따른 비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정확히 그 실익을 저울질할 수 있다.

_ 조성준,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87. 폴리나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

 

표지를 보고서, 저 수염 난 아저씨가 저 애기한테 설마? 했다. 도대체 나는 뭘 보고 들으며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가. 그런 거 전혀 없고, 겁나 아름다웠다. 마치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선 속에, 공백 속에, 뭔가 있다!

 

동작이 더 가벼워야지. 힘들어 보이면 안 돼. 힘들어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한 거야. 관객들은 네가 전달하는 감정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봐서는 안 돼. 잊지 말아라, 폴리나. 우아하고 유연해 보이지 않으면 관중들에겐 네게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일 거야.

_ 바스티앙 비베스, 『폴리나』

 

 

 


88. Chaeg 2021. 1. 2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월간지는 사랑이 없으면 꼼꼼히 읽기가 어렵다. 한 번이라도 꼼꼼히 읽어봐야 사랑에 빠진다. 한번 궤도에 올라타면 오래도록 이어질 이 사랑과 열중의 닭-달걀 나선으로의 최초 진입은 우연의 작품일 때가 많다. 그런 우연은 소중하다.

 

그리고 전지윤 선생님은 소중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과 서로의 삶을 바라보는 진실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글을 읽고, 서로간 격려의 말을 주고 받고, 이를 곰곰이 되새기며 명상이나 수행을 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화면 속 이야기들도 모두를 구해내는 수퍼히어로가 아닌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그럴싸한 사진과 영상을 제법 잘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결국 진심과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의 어여뿐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많은 서사를 진실하게 담고 있는 책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_ ()(월간지) 편집부, Chaeg 2021. 1. 2

 

 

 

 

--- 읽는 ---

잘생긴 개자식 / 크리스티나 로런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 나카야마 시치리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 우야마 다쿠에이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 마수취안

헤겔과 그의 시대 / 곤자 다케시

알수록 쓸모 있는 요즘 과학 이야기 / 이민환

을의 민주주의 / 진태원

애덤 스미스 구하기 / 조나단 B. 와이트

대멸종 / 시아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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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3-18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의철학>너무 반갑네요! 게다가 2회독을 하셨다니요.!!
어찌보면 간단한 얘기를 어렵게 했던것도 같아요. 읽다가 내가 글을 읽는건지 퍼즐을 푸는건지 자주 헷갈렸어요. 지금도 생각하니 조금 어지럽습니다.

syo 2021-03-18 13:51   좋아요 2 | URL
오, 미미님도 읽으셨군요!
결국 이거 읽고 나서 공부에 도움이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가 실제적인 문제인 건데, 제 입장에서는 단호하게 1도 쓸모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ㅎㅎㅎㅎ
이건 그냥 철학이라는 것이 여기저기에 비빌 여지가 있는 고무찰흙같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책 같아요.

청아 2021-03-18 14:01   좋아요 1 | URL
제가 건진거 하나. 자기 인생에 대해서 년도별로ㅡ 사회적 이슈와 결합해 ㅡ정리해보라고 한거 좋았어요ㅋㅋㅋ아직 완성은 못했는데 저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금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고무찰흙ㅋㅋ👍

syo 2021-03-18 19:34   좋아요 1 | URL
이런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는 편이시군요 ㅎㅎㅎㅎ
저는 하고 싶던 것도 남이 시키면 죽어라 안하는 희한한 녀석이어서 ㅋㅋ

2021-03-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8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3-18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의 철학!!!! 읽고 영어 잘하는 법 알아내겠습니다!!!!

syo 2021-03-18 19:35   좋아요 1 | URL
못 알아내요. 그 책 읽고는 아마 안 될 겁니다 ㅎㅎㅎㅎ

302moon 2021-03-1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효인 시인이 아무튼, 시리즈 중 한 권 내셨다는 거 이제 알았습니다.<- 신간 리스트 작성을 안 하다 보니 뒤늦게 알게 되는 거 같아요. 그냥 읽고만 가려다 댓글 달아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생각해요, 글을 엄청 맛있게 잘 쓰시는 듯! :)

라로 2021-03-18 20:41   좋아요 0 | URL
앗! 처음엔 엔신님인 줄 알고 너무 반갑다는 댓글 달다가, 다른 분이라 실수 할 뻔 했다는 댓글을 달다가 어쨌든 아는 분을 떠올려주셔서 감사하는 댓글로 마무리합니다. 이 댓글은 그냥 읽고만 가려다 댓글 다신 분의 댓글을 보고 반가와 그냥 반갑다고 생각하려가 댓글 단 사람의 댓글이 되겠네요. ^^;;

syo 2021-03-21 19:45   좋아요 0 | URL
산문 읽으니까 오랜만에 서효인 선생님 시도 또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좋은 글 쓰는 사람은 글 하나 읽으면 다른 글도 읽고 싶게 만들지요.
칭찬 말씀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3-1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 퀴넌 뒤에 내 이름도 달고 싶다 감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3-21 19:44   좋아요 1 | URL
조만간입니다. 얼른 반작가님 되세용 ㅎㅎㅎ

유부만두 2021-03-1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페이퍼를 2회독 했습니다.

syo 2021-03-21 19: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시간을 허공에 투척하셨군요..... 기쁘면서 슬프네요...

공쟝쟝 2021-03-25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쭉 읽어내리다 눈에들어오는 <잘생긴.. 개자식...> 그러고 보니 라캉 네가 한국에 와서 참 고생이 많다...ㅋㅋㅋㅋㅋ
 

 

생각이 바퀴고 말이 수레

 

 

 

말 농사를 퍽 오래 지었지만 아직도 시큼텁텁하여 남 먹이기에 모자란 말들만 수확하는 건, 아무래도 말의 당도는 사람의 온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고작 이 작은 이치 하나를 깨닫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니. 그러면서 갈아엎은 글이 얼마며 파묻어 버린 말은 또 얼마야.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바라본 그림과 그려본 그림만큼 달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단숨에 알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 이미 아는 작고 쉬운 것들을 다시 깨닫는 비경제적인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겠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읽어도 남들 다 알고 심지어 나도 아는 것들의 극히 일부분만 깨닫는 데에 그치듯, 역시 죽는 날까지 쟁기를 끌고 호미를 휘둘러도 나는 내가 원하는 당도의 말을 거두어들이지는 못하겠어도, 물론 그럴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는 걸 깨닫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서, 쟁기를 차게 내던지던 날이 있었듯 호미를 꺾고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날이 또 있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밭 위에 서서 그 부끄러움, 그 땀, 세상에 뿌려진 수많은 말들의 그 복잡미묘한 맛, 그런 것들 덕분에 조금은 더 적합한 온도가 된 내 자신을 알아채거나 혹은 모른 채로, 거친 풀들을 베어내고 땅을 뒤집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를 다시 해보자, 처절하지만 철저하게, 나는 늘 시작을 사랑하니까, 시작을 잘하니까, 처음부터 다시 일구는 사람의 지나간 모든 처음들이 쌓여 반복된 처음을 처음 만나는 처음으로 만들어 주는-이 또한 작은 하나의-이치를 믿고서, 내가 잘 하는 것들을 잘하는 것으로, 그리고 잘하는 것들을 잘 하는 것으로, 고작 나만큼의 달콤한 말을 만들기 위해 나의 온도를 조금 더 올리는 것으로, 말을, 말을 하자.

 

 

 

--- 읽은 ---



78.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18

 

문장 문장을 환하게 빚어내는 기예만 가지고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문장과 문장들, 문장의 덩어리인 문단과 문단들의 밀도와 배치를 글의 목적에 조응시켜 읽는 이들이 저마다 해석의 별자리를 짚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능력, 그런 힘이 없다면 좋은 문장가는 될 수 있어도 좋은 작가가 되기는 어렵다. syo가 작가가 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아무리 써도 내가 만족할 만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이미 뼈저리게 알았으므로 다시 새롭게 뼈저릴 필요는 없는데, 세상에 좋은 글이 너무나 많아서 책 읽는 syo의 뼈는 365일 저리다.

 

하던 대로 발췌는 하는데, 한 꼭지 글 속의 모든 문단이 하나의 이야기를 향한 버릴 수 없는 포석이다 보니, 이렇게 한 문단 떼오는 일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꼭지를 통째로 따 먹어야 한다.

 

장르를 막론하고 편안한 소설을 묘사하는 단어는 '가독성'이다. 희한하게도 가독성은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접근이 쉽고 아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책은 우리가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소설들과 몹시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이런 픽션들로 충족되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세계관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 자기와 똑같은 차를 모는 등장인물의 삶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 1990년대에는 루콜라를 먹다가 몇 년 후부터는 케일과 퀴노아를 먹는 사람들의 욕구 말이다. 그런 디테일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쁠 것이 전혀 없다. 디테일은 시간과 장소와 계급 속에서 서사를 갈아낸다. 하지만 이미 뻣뻣하게 경직되어 수상쩍은 진실로 변해버린 문화적 클리셰를 비추는 거울 역할 말고는 독자에게 아무런 의미도 전하지 못하는 픽션의 도구가 되어버리면, 그때는 시시콜콜한 묘사 역시 바싹 메말라 무의미해지고 만다.

_ 시리 허스트베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79.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6

 

두 번째 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 그때는 그저 호오, 재밌군- 하는 감각만 있었지, 이주윤 선생님에 대한 지금과 같은 불타는 애정이 없던 시절이었다. 20184월이었으니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재미있게도, 당시 syo는 이 책에 대해 이런 짧은 평을 남겼다.

 

낄낄 웃다가 끝났다. 확실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맞춤법 책.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른 작품들, 이를 테면 에세이 같은 거, 기대해 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에세이 같은 거를 읽고 사랑에 푹 빠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데는 거기가 아니고, 맞춤법 책을 읽고 쓴 평에다 당당하게도 이를테면이를 테면이라고 적어놨다는 것, 그 지점이 웃음 포인트다. 그 부분을 빼면, 나머지 감상은 세월의 공격을 잘 회피한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에게 이 책을 추천해줬던 모양인데, 당시 은 자신이 글고자라는 사실에 좌절하고 글쓰기에 도전했다가 즉시 포기하는 패턴을 계절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syo는 알라딘에 글을 쓰라는 처방을 내려주었고, 가끔이지만 은 그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의 서재에 가면 일 년 한 개꼴로 리뷰가 있는데, 2018년 알라딘 서재를 완전히 떠난 이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리뷰가 또 이 책이다. 재미있는 인생. 물론 의 글은 다시 봐도 형편없기가 세상에 짝이 없는 경지다. 2018이나 2021이나, 안 될 놈은 안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인생.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1.24명에 그친다고 합니다 이 말인즉슨, 대한민국 여자는 평생을 살면서 아이 한 명을 낳을까 말까 한다는 얘기이지요. 상황이 이러한데 여자에게 경우도 없이 낳았느냐 묻는 것은 굉장히 실례가 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병과 관련된 경우에는 낫다를, 출산과 관련된 경우에는 낳다를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정 헷갈리신다면 그냥 낫다라고 쓰시기를 조심스레 권해 봅니다. 여러분과 만나고 있는 여자가 무언가를 낳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며, 여러분이 무언가를 낳을 일도 없을 테니 어지간하면 상황에 맞을 겁니다.

_ 이주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80.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5

 

요건 뭐랄까, 팜플렛 느낌이라서 소소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백종현 선생님은 요거 말고도 비슷한 컨셉의 <칸트 이성철학 95>라는 책을 내셨고, 또 이 책의 거대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칸트사전>이라는 책도 내셨다. 그건 1100쪽이 넘는 대작이다. , 이 책보다 읽음직한 책들이 많다는 이야기.

 

인간은, 요컨대, 세계 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상상력과 지성이 합치할 때 생명감을 느끼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칸트의 이성 비판은 이로써 우리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이지만, 그러나 인간에게 가치 있는일은 논리적 사고 활동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도덕적 완전성, 아름다운 세계, 그리고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 실현된다는 희망 내지 확신을 가지고 역행하는 일임을 일깨워준다.

_ 백종현,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

 

 

 


81.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

 

최근에 워튼의 징구를 읽었는데, 친구는 그렇다면 꼭 읽어보라며이선 프롬을 권했다. 밀리에 있어서 일단 책장에 담아두고는, 언제나 그렇듯 다른 책들을 읽느라 혼 빠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 퀴넌의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에서 이디스 워튼을, 특히 이선 프롬을 상찬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syo의 독서월드에는 단기간에 두 명의 작가로부터 추천받은 책은 독서 목록의 최상단에 즉시 진입시키는 훌륭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의 작동은 늘 성공을 낳았다. 이번에는 어땠을까?

 

당연히 성공이었다. 헨리 제임스의 싸다구를 날리는 이디스 워튼의 심리 묘사 실력은 든든했고, 그 심리가 사랑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징구보다 이 책이 더 좋았다. , 저 불쌍한 애들은 결국 뽀뽀 한두 번 해보고 저렇게…….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지난 세기쯤 완전히 멸종하는 바람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말은 웃자고 하는 말이 되었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라는 말도 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놓고 사람만 변할 수가 없고, 사람을 놓고 사랑만 변할 수도 없다. 사랑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사랑도 변하지만, 그건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보다는 진행하는 전자기파에서 발생하는 전기장과 자기장 변동관계와 더 유사하다. 쉽게 말하면 닭이냐 달걀이냐의 관계긴 한데, 그 닭이 1초에 1달걀을 낳고 그 달걀이 1초에 1닭으로 태어나는 속도랄까. 헛소리 같긴 해도, 그러니까 사람과 사랑은 거의 동시에 변하고 변함 당하는 관계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그럼 제가 오해한 거네요. 이제 그런 생각 안 할게요.”

  “그래, 깨끗이 잊어버려, !”

  매티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말투가 갑자기 열기를 띠는 걸 눈치채고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갑작스런 홍조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속에 서서히 퍼져가는 어떤 생각을 내비치듯, 느리고 섬세하고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그녀는 일감을 손에 걸친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선은 뭔가 뜨거운 것이 둘 사이에 놓인 그 좁은 헝겊을 타고 전해오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 끝을 만졌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로 보아 그녀도 그의 손짓을 보며 이쪽에서 마주 흘러가는 열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헝겊의 저쪽 끝에 두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_ 이디스 워튼, 이선 프롬

 

 

 

--- 읽는 ---

아무튼, 인기가요 / 서효인

인기 없는 에세이 / 버트런드 러셀

철학의 슬픔 / 문성원

HOW to READ 라캉 / 슬라보예 지젝

공부의 철학 / 지바 마사야

나의 외국어 학습기 / 김태완

대멸종 / 시아란 외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 앤드루 맥아피, 에릭 브린욜프슨

폴리나 / 바스티앙 비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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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5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서 三 님의 리뷰를 읽고 싶어지는 것은 저뿐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ㅋㅋㅋㅋ
오늘 三 님 서재 조회수 폭발하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

‘이를 테면 낫다,낳다 / 하루,2틀/눈을 부라리며,불알이며 등등은 도저히 참고 봐줄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서 보고 왔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5 11:51   좋아요 0 | URL
저도 삼님의 리뷰를 읽으러 당장 가겠습니다!

syo 2021-03-15 12:10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읽었습니다. 서른 넘은 놈이 열세살 짜리도 안 쓸 독후감을 써놔서 한층 재미가 있었습니다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선 프롬 좋지요? 헤헤. 다시 읽어도 좋더라고요. 샤라라랑-
그래도 읽으면서 아아, 나는 별로였다 이런 거 나오면 어떡하지, 좀 쫄렸어요. ♡

syo 2021-03-15 12:12   좋아요 0 | URL
민음사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려구요. 뭔가 이 책의 맛을 다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의 맛이 원래 어떤 맛인지 1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blanca 2021-03-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 최고죠.. 삼님 ㅋㅋㅋㅋ 위에 댓글 읽고 쓰러집니다. 이 페이퍼 읽고 상처받고 두 분 싸움 나는 건 아니겠죠? 그 정도로 얕은 관계는 아닌 거죠. ㅋ

syo 2021-03-15 12:13   좋아요 0 | URL
우리는 싸우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패류와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냥 먹을 뿐입니다 으하하하하

tope 2021-03-1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최근에 <에로스의 청원>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빌려 읽었다가 너무 좋아서 구매했어요 ㅎㅎ

syo 2021-03-15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은 건 저 책이 처음인데, 줄줄이 독서를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중입니다 ㅎㅎㅎ 이제야 발견했다니....

반유행열반인 2021-03-1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보다 삼님 서재를 구경해보니 나도 안 읽은 수많은 고전 읽으셔서 놀랐어요 ㅋㅋㅋsyo님 아직 못 읽은 안나카레니나도 읽으심ㅋㅋㅋ존중해드립시다.

syo 2021-03-15 18:4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안나 카레니나 같이 읽자 해놓고 저만 토낌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15 18:55   좋아요 0 | URL
그럼 올해는 저랑 안나카레니나 읽어 보실까요 ㅋㅋㅋ(펭귄 시리즈 소진해야 한다...종이책도 있긴 한데..) 약속해도 또 토끼?실 것 같지만ㅋㅋㅋㅋㅋ

syo 2021-03-15 19:02   좋아요 1 | URL
🐰요? ㅎㅎㅎ
그럼 안나 한번 같이 가실까요?

반유행열반인 2021-03-15 19:05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로 시간 잃어버리기 보다는 좀 더 난이도 낮아보여서요...먼저 읽은 사람한테 늦은 놈(벌써 놈이다)이 뭐 쏘기 이런 거 하죠 ㅋㅋㅋ쏘고 나서도 한 해 안에 읽기 안 읽으면 다음 해에 또 쏘기...(다독가 취준생한테 도전장 던졌어...겁대가리 어디갔어...)

페넬로페 2021-03-1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님 서재 닉네임을 알고 싶어요~~
삼 입니까?

잠자냥 2021-03-15 17:51   좋아요 1 | URL
설마했는데 정말 ‘三‘이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저 책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클릭하고 나서 리뷰 12개 중 구매자 리뷰 말고 전체 리뷰 보다 보면 ‘三‘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보입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3-15 17:56   좋아요 0 | URL
설마요? ㅎㅎ
감사합니다, 잠자냥님♡♡

syo 2021-03-15 18: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원래는 다른 닉네임이었는데 제가 핸드폰 뺏어서 바꿨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라로 2021-03-15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만 삼님의 서재를 찾지 못하는 건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저 문법책 저도 많은 도움 받았는데, 하나도 기억 못하고 (내용 말고 가르친 문법) 사용할 때 더 헷갈린다는 것이 제 문제,,다시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ㅋ 아,,, 그리고 종이책으로 2권(두 권,,아니라 2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더 샀어요. 애들 주려고,,, 토비님이 책 많이 팔았어!!ㅋㅋ

syo 2021-03-15 18: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찾아봐야 뭐 없습니다
어차피 다시 오지도 않는 삼인걸요

라로 2021-03-15 19:49   좋아요 0 | URL
오케이! 그럼 그것이라도 시간 아끼는 걸로~~~!!😉

북다이제스터 2021-03-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삼 님 글에 조회 수 하나 보시했습니다. ㅋ
근데 전혀 잘 못 쓰신 글은 아니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ㅋㅋ
제가 그 정도 쓰려면 한참 걸릴 듯 합니다. ㅠ

syo 2021-03-16 09:42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세요 ㅋㅋㅋㅋ 절대 아닙니다. 걔가 쓴 거 그건 글 아니죠. 그낭 글자입니다 ㅋㅋㅋ

난티나무 2021-03-1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달려가고 싶지만 참는다...요. ㅎㅎㅎ
책 또 사야 되네요.ㅠㅠ

syo 2021-03-16 09: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알라디너가 알라디너한테 책을 파는 동안 웃는 놈들은 알라딘....

psyche 2021-03-1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려가서 보고 왔네요. ㅎㅎ

syo 2021-03-16 09:43   좋아요 0 | URL
정말 딱 그정도가 적확한 리액션인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