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중단
1
연애하라는 말은 어떤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한다. 모든 행복한 연애와 폭망한 연애는 그 기승전결 전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이었고 어떤 인간이 아니었는지를 가르쳐주는 학습지이고, 사람이 살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의 최소 절반은 실상 나라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연애 자체가-연애하지 않았다면 맞닥뜨릴 일이 없었을-많은 물음표를 낳기도 하지만, 연애의 과정을 촘촘하게 거친 사람들은 연애 바깥의 많은 일에다 찍을 수 있는 다양한 문장부호들을 마련하게 된다. 말줄임표, 쉼표, 느낌표, 대쉬, 따옴표, 그리고 무엇보다 마침표.
그렇지만 연애의 이런 효익이 연애하지 않는 이에게 연애하라고 강권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연애에서 얻을 수 있는 답안들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만능 키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해답을 담지하는 물건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고, 대체로 연애하라는 말은 그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인생에 새로 던져진 여러 개의 물음표에 그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연애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연애하라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고, 연애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연애하라는 말이 아니라 연애하기 좋은 사람의 연락처를 건네야 한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연애하라는 말을 폐기할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2
연애라는 것은 참 묘하다. 연애가 좋은 사람에게는 연애란 좋은 것이며, 연애가 싫은 사람에게는 연애란 싫은 것이다. 그런데 연애가 좋은 사람에게도 연애란 때로 싫은 것이며, 연애가 싫은 사람에게도 연애란 때때로 좋은 것이 된다. 이 말은,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자기가 연애하는 이유를 설명(그럴 필요는 없지만)할 때 연애의 좋은 점을 일일이 나열할 까닭이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당연히 이럴 필요도 없지만)할 때 연애의 구린 점을 줄줄이 꿸 까닭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냥 입을 다물고 각자의 연애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연애인 듯 연애 같은 연애 아닌 연애를 하거나 그러면서 살면 편한 것.
3
결혼하라는 말에는 학을 떼면서도 남들한테 연애하라는 말은 무심히도 하고 다녔던 이중적인 나새끼의 실체를 곰곰 생각해 본 결과, 연애하라는 말은 결혼하라는 말과 그래도 다른 데가 좀 있었다. 결혼하라고 강권하는 이들도 결혼이라는 것이 주는 행복을 권하는 마음이 기본이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결혼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완결의 과정을 향해 가는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심지어 누군가에게는 골인 지점)이라는 오랜 관념의 냄새를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따라서 내게 결혼을 권하는 사람 두 명 중의 한 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이란 결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syo가 연애를 권할 때, 그건 연애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은 당신이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면허증이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재밌어서, 신나서, 권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좋다고 해서 너도 좋을 거라고, 그러니까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폭력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매당하는 것이 결혼이든 연애든 빡치는 데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명백히 다른 것이 있다. 결혼을 강권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수정과 속 계피라고 생각한다면, 연애를 권했던 syo는 연애를 수정과 속 잣 같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연애란 잣 같은 것이다. 아니다, 이건 정확한 비유가 되지 못하겠다. 더 섬세하게 빗대자면,
결혼 권하는 사람이 결혼을 팥죽 속의 팥 같다고 생각한다면, 연애 권하는 syo는 연애를 팥죽 속의 죽 같다고 생각한다. 연애란 정말 죽 같은 것이다. 팥죽 속에 팥은 있지만 죽은 없다. 같은 팥으로 만들어도 이 집 팥죽과 저 집 팥죽은 다른 죽이기 십상이다. 나는 팥죽을 쑨다고 쒔는데 어찌 된 일인지 팥물이 되었거나, 믿을 수 없게도 팥밥이 되었거나, 심지어 시루떡이 튀어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왕왕 벌어지는 인생 속에서, 당신이 팥이라면 연애는 죽 같은 것이다. 팥죽은 먹고 싶은 날 먹고 아닌 날은 그런 음식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도 괜찮다. 인생의 모든 날이 동짓날은 아니니까. 나는 연애를 권하는 일을 시원하게 집어치웠고, 내 팥죽을 쑤는 데 더욱 노력할 작정이다. 죽 같은 연애 죽 쑤지 않기 위해 정성껏 죽을 쒀야지.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_ 김금희, 『경애의 마음』
나는 자주 어두운 밤과 환한 낮의 경계를 걷는다. 굳이 해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어둠의 시간과 무화과 잎을 둘러야만 간신히 존중받을 수 있는 낮의 시간. 나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지만, 때로 어둠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 어둠이 잠시 주어지는 무대가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무대이면 좋겠다.
_ 홍승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철두철미 소요객인 사람과 열정적 관찰자에게 다수를, 사람 물결을, 움직임을, 순간과 무한을 자기 거처로 삼는 것은 어마어마한 즐거움이다. 자기 집을 벗어나 있기, 하지만 어디서든 자기 집인 양 느끼기.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 세상 속에 숨어 있기. 이런 것들이 독립적이고 열정적이며 편향되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느끼는 쾌락들, 말로는 어설프게밖에 규정할 수 없는 쾌락들 가운데 몇 가지이다. 관찰자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는 군주다.
_ 샤를 보들레르, 『샤를 보들레르 :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 읽은 ---
94. 매일 갑니다, 편의점
봉달호 지음 / 시공사 / 2018
편의점에서 일해보지 않으면 편의점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syo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던 시절이 그랬다. 에세이는 어떤 보편적인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하면서 개별성을 양념으로만 사용했다. 소설은 모두가 몸담은 지나치게 큰 세계의 이야기를 하거나 작가 이외에는 아무도 몸담고 있지 않을 듯한 너무 작은 세계의 이야기를 즐겨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해, 이제는 모든 직업 종사자들의 에세이가 최소 한 권씩은 나와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일 역시 소설 밖 인물들이 하는 일과 싱크로율이 꽤 올라갔다. 읽기 좋은 시대다. 어떤 일로 하루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변하며 어떻게 변하지 않는지를,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생은 짧고, 읽는 것 말고는 달리 알 기회를 가지기조차 어려운 무언가들이 잔뜩 널린 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읽기 좋은 시대다.
왕년에는 어떻게 하면 제국주의에 불벼락을 내릴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잔머리 굴리며 요령만 피우는 알바 녀석들에게 분통을 터트리고, 기껏 막대 사탕 하나 사 갈 거면서 진열대에 있는 이 물건 저 물건 몽땅 조물락거리는 초딩 꼬맹이들에게 준엄히 야단을 친다. 왕년에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맹세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음료 빨대와 나무젓가락을 뭉텅뭉텅 집어 가는 얄미운 손님들의 불행을 바라고, 편의점 파라솔을 노인정인 양 몇 시간째 차지하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들과 매일 신경전을 벌인다. 왕년에는 ‘노동 해방 평등 세상’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계산기 두드리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인건비를 줄여볼까’ 머리를 싸맨다.
한때 혁명에, 민주주의에, 고귀한 이상에 목숨을 걸었던 우리는 이제 일상에 목숨을 건다. 우리는 그렇게 어제를 떠나보내고 오늘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으로 ‘진짜’가 되려 하는가.
_ 봉달호, 『매일 갑니다, 편의점』
95.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
친구는 이제 나카야마의 작품을 읽지 않을 모양이다. 좀 더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사실 읽을 책은 많고, 나카야마라는 작가가 이 장르에서 읽어야 할 작가의 줄을 세웠을 때 맨 앞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반전 있고 할 말 하고 자극적이다. 그래도 귀환하기 전의 개구리 남자가 더 재미있었다.
“만약 당신이 겁쟁이인 척하는 거라면 출소해도 계속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바짝 긴장했다.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면 그냥 흘려들어요. 방금 한 말은 주치의의 충고 같은 거니까.”
히바는 나른한 듯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일반론인데 정신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런 척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심신상실로 진단되면 정기 검진은 비교적 형식적으로 치르죠. 기소 전 정신감정에서는 반년에 걸쳐 검사를 하는데, 몇 달에 한 번 30분 정도 하는 정기 면담은 그냥 잡담이나 하는 거고요.”
후루사와는 표정근에 힘을 줬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불안이 얼굴에 비칠 것이다. 히바가 무슨 속셈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는 선량한 인간상을 밀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불과 30분 면담을 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간에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알 수 있어요. 악용되면 안 되니까 자세히는 말 안 하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거나 어떤 행동을 취합니다. 개인차는 있지만, 예를 들어 눈을 피하거나 특정 얼굴 부위를 손으로 가리거나 하지요. 무의식중에 나오는 반사 반응 같은 거라서 훈련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막기는 어려운 겁니다.”
무심코 손이 얼굴에 가려고 했다. 안 돼, 위험해. 저자가 판 함정이면 어쩌려고.
“누구나 자기 성격의 싫은 부분은 숨기고 싶은 법이니까 내버려두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아무튼 어차피 할 거라면 계속해야 합니다. 이유를 알겠습니까?”
_ 나카야마 시치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96. 책에 바침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 리네 호벤 그림 /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
친구는 영생을 선언했다.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죽지 않을 생각이라고. 평소 여러모로 존경해온 북몬스터 중 한 사람이긴 했지만, 설마 내가 진시황이랑 알고 지냈을 줄이야.
그런데 그런 마음이 남의 마음만은 아닌 것. 확실히 책은 많고 자꾸자꾸 생겨나서, 인생을 책에 바치는 것이나 진배없는 삶을 사는 독자들 역시 많고 자꾸자꾸 생겨난다. 알라딘 3개월 구매액이 100만원에 육박했으니 좀 줄여야지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요24에서 책을 구매하는…… 그러더니 다음 달부터 다시 알라딘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걸로 봐서 그래요 구매액도 짐작할 만한…… 그런 사람들 스스로야 물론 책을 내 인생에 바친 거지 내 인생을 책에 바친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잘 알잖아요. 우리, 망했어요. 책이 이겼고 우린 졌어요. 망했어…….
읽힌 책은 그것을 읽은 독자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아주 중요한 장의 특별한 한 단락이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독자가 가장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부분, 가장 편안함을 느낀 부분이었다면 언제나 그렇다. 모든 텍스트는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이와 동시에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여행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따금씩 그 여행을 회상하기 위해서라도 읽힌 책은 여행 기록처럼 보관될 필요가 있다. 여행 기록들이 다 그렇듯이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_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책에 바침』
97. 홉스
리처드 턱 지음 / 조무원 옮김 / 교유서가 / 2020
성이 턱이라니, 제길, 당했다. 이름 가지고 놀리기 없긴데, 자꾸만 본 적도 없는 리처드라는 남자의 턱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대뜸 책과 아무 상관도 없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은 턱 이야기를 하며 글문을 열었을까? 아, 그것이 문제다. 이 장르가 원래 재미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읽는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 없는 재미를 작가 이름에서 찾으려 들다니, 나란 인간도 진짜 제대로 된 독서가가 되려면 인격수양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쨌든 홉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느낌.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전에 이 책의 좋고 나쁨을 평할 수는 없을 듯하다. 부디 다른 독자들의 평을 참고하세요.
다르게 말해서 홉스는 색과 관련된 용어를 다룰 때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도덕적 용어를 다뤘다. 비록 공통의 언어와 감각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이 실제로 또한 객관적으로 빨갛게 여겨지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것이 실제로 또한 객관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지만, 사실 이와 같은 관념은 환영이거나 환상으로서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든 속성일 뿐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색에 대한 감각은 외부세계에서의 영향에 의해 느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색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눈에 부딪히는 빛의 파동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승인과 거부는 인간의 감정적 심리를 구성하는 정념과 욕구 체계에 끼치는 외부 영향에 의해 야기되는 느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_ 리처드 턱, 『홉스』
98.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 이정민 지음 / 2021
연애를 오래 하고 많이 하면 닳고 닳아, 소소하고 달달한 것들에 대한 면역이 생기고 짠맛 쓴맛 매운맛에만 반응하는 연애인이 될 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인 것이, 갈수록 풋풋 달달 아코아코 한 것들에 환장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이 켜놓고 나간 노트북을 들여다 보다가 다카타 히로코라는 이름의 여성으로부터 온 메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할 만한 전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닌데 이러는 나는 참 내가 봐도 아니어서, 엉망진창은 어어어엉망진창이 되어만 가고. 그러다 결국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깨달은 바가 생겨, 어느 저녁, 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노트북을 열어봤으며, 여자로부터 온 메일을 봤고, 이것에 대해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결코 지나가는 일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음을 밝힌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되고,
"다카타 히로코는 여자가 아닙니다. 대학 다닐 때 내가 걱정을 많이 끼친 조교수님이에요. 지금은 손주까지 본 할아버지이고. 부모님이 자식 이름을 지을 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히로코(廣湖)라고 지어서 본인은 꽤 난감해했는데 깊고 넓은 호수 같은 남자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거지. 그럴 거면 아예 호수보다야 바다지, 하면서 넓은 바다라는 뜻의 히로미(廣海)가 낫지 않겠냐는 것이 다카타 교수님의 자학 개그였어. 거짓말 같으면 내 스마트폰 통화 내역이든 문자든 메일이든 다 봐도 돼. 문자나 메일을 보낼 때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돼서 그냥 전화로 하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들키면 안 되는 건 다 지웠으면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감사 메일은 손주가 영화를 스크린에 비추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여 요즘에는 영사기사 일이 어떤지 물었을 때 받은 것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영사기사가 필요 없는 시대라는 것도."
아내가 메일을 훔쳐볼 수도 있는 노트북을 고타쓰 위에 올려놓고 외출하는 남자였다는 것을 지금껏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자한테서 온 메일이 굉장히 많았어."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인기가 많은 줄 착각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내인걸."
"나는 그런 당신만 있으면 돼요."
약간 화난 목소리로 덧붙인 "고생은 시키고 있지만" 하는 말은 못 들은 척하고, 맥주를 가지러 부엌에 갔다. 주방 매트의 모서리를 밟았지만 이제는 말려 올라가지 않았다.
사유미는 코를 훌쩍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있는 힘껏 활짝 웃으며 맥주를 건넸다.
"미안, 좋아해."
"갑자기 왜 그래?"
이 한마디 말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되는 행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보면서 사유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천천히 남편에게 고백했다.
――미안해,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해.
_ 사쿠라기 시노,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우오와와아아아아아아아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대에에에에에으아오아와와!
나는 또 저렇게 되었던 것이다.
조금 진정하고 다시 보니, “나는 그런 당신만 있으면 돼요.”가 보였고, "여자한테서 온 메일이 굉장히 많았어."나,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인기가 많은 줄 착각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하는 말이 너무 귀엽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대충 어떤 말투, 어떤 표정, 어떤 몸짓으로 저런 말을 했을지 상상이 되면서, 저 장면 속으로 휙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오, 저 귀요미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는 말 앞에 ‘미안해’가 들어가는 마음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고 아는 사람은 온몸으로 아는 그런 것이다.
99.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16
그러니까 역사책 독서가 주는 고뇌란, 지금 이 시점에서부터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읽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빗살무늬 토기가 민무늬 토기가 되고 민무늬 토기가 친환경 BPAfree 원터치 오케이 밀폐용기가 되는 과정을 따라 시간 순으로 읽어야 하는 건지, 정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두 방법의 장단점이 명확하다. 앞의 경우는 당장 오늘날 여기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이해하기 용이한 반면, 상영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영화관에 들어간 것 같은 불안감도 준다. 뒤의 경우는 인과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서사를 잘 따라갈 수 있으나, 젠장 아무리 용을 써도 좀처럼 그리스 로마 시대와 춘추전국 시대까지 읽고 나면 기력이 딸려서 자꾸 다른 책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렇게 한 권으로 세계사를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책들을 들춰보게 되는데, 아, 이런 독서도 한두 권이지. 결국 두꺼운 책을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만 생긴다. 그러면 나는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또 저 지겨운 페르시아 전쟁인가…….
역사에서 배운 교훈이 현실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 뿐이지요. 역사 속 위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너무 위대해서 우리는 흉내도 내기 힘들뿐더러 귀감으로 삼기에도 벅찹니다.
‘과거의 인물, 사회의 패턴을 알면,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에는 패턴과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미래에 웅용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의 패턴과 법칙을 구체적으로 미래에 어떻게 적용해서 생각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력에 따를 문제이지 역사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_ 우야마 다쿠에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 읽는 ---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 최지미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 루크 페레터
인간 루쉰 上 / 린시엔즈
끝내주는 맞춤법 / 김정선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 리처드 J. 번스타인
독일사 산책 / 닐 맥그리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아르놀트 하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