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연결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던 또다른 책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육아서에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부모의 권위라던가, 격 같은 것들은 부모가 세우려고 한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언행과 태도가 저절로 만드는 것이라고. 개인의 품격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겠다. 열심히 쌓은 벽의 높이가 곧 그 사람의 격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쓰자면 이렇게나 고리타분한 말을, 이토록 다정하게 쓸 수 있는 작가는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사람일까.

 

"당신이 잘 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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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현관에 들어서면 엄마는 침실에서 훌쩍 거실로 나와, 오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랑 뭘 먹었는지, 라이브는 어땠는지, 공연에는 누가 왔는지를 소근소근 얘기했다. 엄마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아빠가 그제야 한숨 돌리는 듯 보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빠에게는 '긴 하루의 끝에 별거 아닌 일이라도 엄마에게 잠시 얘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아빠가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 틀림없다. 결혼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그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늘 말했다. "세상에는 별거 아닌 일을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의외로 많지 않거든." 이라며. -39쪽 

 

그런 사람이 꼭 배우자일 필요는 없지만, 있어야 하는 건 맞아. 내가 아무리 시시껄렁하고 사소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잡담을 해도 나를 그냥 그대로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 없으면, 어디 가서 하루종일 받히고 깎인 마음을 누이고 쉬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얘기.

책 사이사이에 밑줄 긋고 싶어질 정도로 공감이 가는 문장들이 떠나고 싶은 눈을 붙잡긴 했지만, 종국에는 혼자 이러고 말았다. 아, 마음이 아니라고 할 때 그만 헤어졌어야 해.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이 책을 끝끝내 붙잡고 있었나 허탈했다. 누구 말마따나 늦은 밤까지 이걸 붙들고 앉아있었던 등짝에 북극빙장을 날리고 싶어지는군. (북극빙장 : 겨울철에만 쓸 수 있는 기술로 냉수마찰한 손을 목덜미 또는 등짝에 내리치는 것을 이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므로 남용은 자제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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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정원사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25
테리 펜.에릭 펜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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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건 영화건 그 무엇이건, 한두 단어로 그 안의 세계 하나를 박제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인 동시에 오만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를 통해 내가 세상에서 읽고 싶은 것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다가왔던 한 단어를 적는다.

 

Heritage.

 

정원사가 소년에게,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남겨준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이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내게 시의적절한 주제를 찾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고 독자로서의 내 권리이니까, 내게 이 책의 주제는, 앞으로 또 어느 순간엔가는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이다.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역시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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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에 따라 5년에서 17년까지도 산다는데, 그 정도면 곤충 세계에선 '장수 만세'다. 그러니 땅 위에서 사는 시간이 짧아서 불쌍하다고 하는 소릴 매미가 알아듣는다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뭐래도 매미의 일생은 땅 위에서 사는 단기간만이 아니라 굼벵이 시절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언젠가 그럴듯한 날개를 달아본다면 좋겠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다 해도 그것 또한 어엿한 나의 삶이라고. 누가 뭐래도 나의 삶은,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는 지금 이 순간까지 포함된 것이다. 진짜 삶이란 다른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삶이다. -144~145쪽

 

그러니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서 지내보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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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열두 살에 이해할 수 있었던 책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여덟 살 제이미한테는 흥미 없는 것이었다.

뉴저지의 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읽어 주라는 내 말에 발끈하며 물었다. "아니, 그러면 더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부모 노릇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시간을 더 들이고 투자하는 것이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103쪽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제일 큰 화두는 어떻게하면 양육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키우지 않았나 싶은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역시 같은 문제를 놓고 머리를 굴리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성인으로 다 길러놓은 분들은 하나같이 우직하리만치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 키우는 것이 가장 품이 덜 들더라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런 어른들의 시선으로 읽으면 지금으로선 납득이 안 되어도 들어서 손해날 말씀은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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