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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으면 다 언니 -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는 9명의 이야기 : 황선우 인터뷰집
황선우 지음 / 이봄 / 2021년 5월
평점 :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듣다가 김하나 저자가 궁금해졌다. 해서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다. 그러고 나니 당연하게도 책의 공동 저자였던 황선우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김하나 작가와 집을 공유하는 사람이자 패션 잡지의 피쳐 기사를 오랫동안 써온, 필력이 장난아닌 사람으로 추정됐다. 이 사람은 언제 책을 내고 '저자'가 되려나. 기대가 무색치 않게 얼마안가 출간 소식이 들렸다. 알고 보니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황선우 저자는 카카오 페이지에 인터뷰 글을 연재하며 차근히 단독 저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패션 잡지사 재직 시절에도 수많은 인터뷰 기사를 썼기 때문인지 황선우 저자의 첫 책도 인터뷰집이다. 사진 작가 정멜멜과 함께 9명의 '언니'들과 대화를 나눴고 사진을 찍었다. 인터뷰이로 선택한 '언니'들의 면면이 다채롭다.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PD 김유라, 영화 <벌새> 감독 김보라, <월간 이슬아> 작가 이슬아, 21대 국회의원 장혜영, 피아니스트 손열음,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전주연, 웹소설 <에보니> 작가 자야, 스브스 뉴스 <문명특급> PD 재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이 그들이다. 인터뷰어 황선우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고유한 성취를 이루어낸 인터뷰이, 나이와 상관없이 리스펙트하고 싶은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전에 없던 방식으로 자기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골라 만났다. 절반정도는 아는 인물이고 절반은 생소한 이름들이다.
인터뷰는 각자 나름의 성취를 이뤄낸 과정과 그 일을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성공스토리와 다르게 느껴진 점은 인터뷰이들이 가진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마음이었다. 김유라 PD는 함께 일하는 파트너인 할머니의 평안을 최우선에 두고 있었고 이슬아 작가는 부모님을 목표 독자 삼아 글을 쓴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클래식의 대중화 작업을 할 때 자신의 동생들처럼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고 말한다. 재재 PD는 <문명특급>의 성공에서 동료들의 비중을 여러번 강조했다. 이들은 김보라 감독의 말처럼 "도움을 받거나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성취가 가능했음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혼자라고 느끼지만 자신을 덜 고립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도움을 받거나 같이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서요.
pp.92-93, 김보라
출발 자체가 수익보다 할머니가 좋은 경험을 하고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시작한 채널이었으니까. 계약 조건도 할머니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깨지 않는 게 우선이었어요.
p.41, 김유라
저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제 음악을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딱 제 동생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기준인 것 같아요.
p.201, 손열음
제 입장에서도 사실 커피보다 우리 회사를 좋아하다 여기까지 온 거예요. 우리 회사가 커피 회사니까 잘해야 하고, 그래서 커피를 공부하는 거죠. 다른 곳에서 커피를 공부하는 것은 저에게 별로 의미가 없게 느껴져요.
p.282, 전주연
인터뷰이를 꼼꼼하게 연구한 인터뷰어의 노력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에서 드러났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인터뷰이들의 친근하면서도 솔직한 태도는 인터뷰어의 신뢰감에서 비롯했을 게다.
수많은 질문과 답이 매끄러운 문장으로 화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김하나 저자는 황선우 저자의 집필 과정을 "방망이를 깎기"에 비유했다. 이 책도 역시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고, 끝까지 퇴고를 거듭했음이 분명하다. 여느 책에서 한 개 이상 당연히 보이는오탈자가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이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은 이슬아 작가다.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남달랐다. 이슬아 작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봐야 한다"며 못하는 과정 또한 공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용기와 패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슬아 작가의 책들을 찾아 봐야겠다.
저도 못 쓴 글은 공유하기 싫은데, 글은 써야만 늘잖아요. 근데 쓸 때는 마감이 코앞이고.(웃음) 잘 못하는 과정까지 다 마감에 포함되어야 하니까 천천히 성장하는 과정을 마감과 함께 들킨다는 느낌이에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자라온 거 같고.
p.131, 이슬아
황선우 저자의 인터뷰집은 일하는 방식에 대한 대화다. 인정받는 결과에 대한 상찬이 아닌 결과가 나오기까지 들어간 노력과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9명과 나눈 대화가 그보다 많은 사람들을 들여다 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고 길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직업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인지 쉽게 규정되거나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본질을 말해주는 건, 무슨 일을 하는가를 드러내는 타이틀 뒤에 그 일을 해내는 방식이다.
p.285
"젊은 여성들에게 소중한 영감과 참조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던 애초의 목표는 초과 달성한 듯 보인다. 젊은 여성의 시기를 한참 지난 나에게까지 책이 도착했으니. 황선우 저자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에세이가 됐든 또 다른 인터뷰집이 됐든 그녀의 글을 접하는 것은 읽는 사람으로 누리는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