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요새는 글을 늦게 쓰는 습관이 들어서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새벽 두세 시가 되곤 했다. 글을 쓰고나서 바로 잠이 오는 것도 아니어서 조금은 뭉그적거리다가 잠이 쏟아지면 그제서야 잘 수 있었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늦은 시각에 그냥 영화 커뮤니티 사이트의 지난 글들을 뒤적거리던 참이었다.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 글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아는 이의 이름이 있었다.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전공 수업들 가운데 영화사 수업을 가장 좋아했었다. 영화사 수업을 듣는 일은 마치 집을 짓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영화'라는 집을 이루는 각각의 구조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 벽돌을 쌓고 미장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혼자의 힘으로만 그 작업을 한다면 버거웠겠지만, 다행히 나는 좋은 선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사 수업은 대부분 강사 선생들이 맡아서 했는데, 그 선생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좋은 식견을 지닌 이들이었다. 나는 나의 젊은 시절에 그런 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미국 영화사'였다.

  그 수업은 매 강의마다 과제로 봐야할 영화들이 적게는 서너 편, 많게는 예닐곱  편이었다. 강의를 맡은 영화평론가 선생은 그 영화들을 직접 비디오 테이프로 다 떠서 수강생들에게 건넸고, 우리는 그걸 일주일 동안 돌려가면서 봤다. 그렇게 본 영화들이 그리피스(D.W. Griffith)의 'The Birth of a Nation(1915)', 'Intolerance(1916)',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의 'Greed(1924)' 같은 작품들이었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 그런 영화들을 보라고 하면 못볼 것 같다. 마른 골판지를 씹는 듯한 그런 영화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그 영화들이 10시간 짜리에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더라도 다 보았을 것이다.

  수업은 그날 보기로 한 영화와 수강생의 발제, 선생의 해설로 이루어지는 꽤 빡빡한 강의였다. 일주일 동안 미국 영화사 과제 영화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지만, 우리들 가운데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수업에 대한 선생의 열정과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속성 스파르타 강훈을 받듯 미국 영화사에 대한 대략의 지도가 한 학기 동안 그렇게 마음 속에 그려졌다. 선생은 매우 소탈하고 격의없는 성품의 사람으로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는 이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나와는 비슷한 또래여서, 나는 선생을 나 보다 먼저 영화를 공부한 선배처럼 생각했다.

  우리끼리는 그를 '홍 선생'으로 불렀다. 홍 선생은 늘 커다란 가방에 수업에 쓸 자료와 비디오 테이프들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맡은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매 수업 시간에 발표할 발제에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서 주는 때도 있었다. 기말 보고서는 미국 영화들 가운데 한 편을 택해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선생은 학생들이 보고서로 쓰려는 영화들에 대해 미리 듣고, 도움이 될 만한 참고 자료들까지 건넸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이 끝났을 때, 나는 '영화'라는 집의 작은 한 부분을 완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수업이 끝난 것을 모두들 아쉬워 했다.

  가끔씩 우리는 미국 영화사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참 좋은 수업이었고, 선생의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학과 강의와 더 이상의 인연은 없었는지 선생의 강의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선생은 잡지에 계속 글을 써내어서, 그렇게 글로나마 만나는 것이 반가웠다. 그의 글은 명료하고 단아했다. 비문(非文)과 자의식 과잉, 현학적 문체로 범벅이 된 여느 평론과는 결이 달랐다. 독자가 알아듣기 쉽게 편한 문체로 간결하고 정확하게 쓰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글을 좋아했었다.

  '부고, 홍성남 영화평론가 별세'

  글을 클릭하자, 부고 기사 페이지로 연결되었다. 작년 10월의 기사였다. 나는 꽤 오랫동안 영화와 담을 쌓고 지냈으므로 선생의 소식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있었다. 가끔씩 보게 되는 신작 영화평이나 영화 잡지 기사에서 선생의 이름이 어느 때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평론이 아닌 영화계의 다른 일을 하는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세상을 뜨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선생이 꽤 긴 시간 투병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기사를 읽고 황망한 마음이 들어 한참동안 거실을 서성였다. 선생의 미국 영화사 수업과 나의 젊은 날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영화를 사랑했었고,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한 사람이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났다. 그가 이 세상에서 영화와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바스락, 추억의 한 귀퉁이가 접히면서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부디 지금 있는 그 곳에서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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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검은 태양'의 결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재즈를 좋아하지도 않고, 트럼펫도 불지 못하고, 노래도 할 줄 몰라. 그러니까 진정한 흑인이 아니지. 노예라구!"

  고철이나 훔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애송이 양아치 메이(Mei)는 재즈광이다. 식료품 구입하기도 빠듯한 처지에 재즈 음반들을 열심히 사서 듣는다. 동료와의 다툼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탈영한 미군 병사 길(Gill)은 메이가 살고 있는 곳에 몸을 숨긴다. 곧 철거를 앞둔 오래된 교회 꼭대기가 메이의 집이다. 흑인 재즈 연주자들을 신처럼 떠받드는 메이는 흑인 병사 길을 환대한다. 그러나 다리에 총상을 입고 쫓기는 처지의 길은 오로지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는 메이가 틀어놓는 재즈를 견디질 못한다. 급기야 메이가 아끼는 개 몽크를 죽게 만들고, 격분한 메이는 길에게 검둥이 노예라고 모욕을 준다. 기관총을 든 탈영병과 도시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좀도둑,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두 사람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쿠라하라 코레요시(蔵原惟繕) 감독의 1964년작 '검은 태양(Black Sun)'은 여러모로 이색적인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는 재즈 음악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메이는 음반 가게에서 Max Roach의 음반을 산다. 비밥(bebop)의 선구자라고 할 수 Max Roach, 그의 강렬한 비밥 재즈가 영화를 휘감는다. 주인공 메이는 재즈에 반쯤 미쳐있다. 그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개의 이름은 재즈 연주자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에서 따왔다. 이 재즈 신도의 흑인에 대한 환상은 미군 흑인 병사 길에게 그대로 투사되지만, 도주 중인 탈영병은 메이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린다.

  이 영화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인종차별주의적인 관점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길의 총을 빼앗아 제압한 메이는 자신의 단골 재즈 클럽에 데려가기 위해 길의 얼굴에 흰색 분칠로 분장을 시킨다. 거리에는 수색 중인 미군들이 깔려있다. 정작 검문을 당한 것은 검은칠로 분장을 한 메이이다. 메이는 클럽 손님들에게 길을 자신의 노예라고 소개하고, 그들은 길을 서커스단의 원숭이처럼 억지로 춤을 추게 만든다. 그들이 흠모하는 재즈 연주자들은 사진과 음반 속에서 존재할 뿐이며, 현실의 흑인은 그저 열등한 인종으로 인식된다. 영화의 이런 장면은 일견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배제된, 인종에 대한 노골적 편견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클럽의 젊은 일본인들의 길에 대한 태도는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의 모습을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쿠라하라 코레요시 감독은 도시의 최하층 부랑자 메이와 흑인 병사 길을 하나로 묶는다. 영화 초반부에 강에서 건져지는 병사의 시신이 흑인인지 백인인지는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길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쿠라하라 감독은 영화 중간에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시위 장면을 몽타주로 제시한다. 조국에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흑인을 대표하는 존재인 길은 낯선 이국 땅인 일본에서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흰색 분칠로 자신의 피부색을 감추어야만 하고, 총상 입은 다리는 썩어들어가고 있다. 그는 연신 '엄마(mama)'를 중얼거리며, 메이에게 자신을 바다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머물던 교회가 철거되면서 있을 곳도 없어진 메이와 죽음의 기운을 느끼는 길, 이 두 사람의 여정은 마치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를 떠올리게 만든다. 말이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쌓인 적대감은 해소되고 둘은 연대감을 느낀다. 결국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한 메이와 길, 그곳의 풍경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쓰레기가 넘실거리는 공장 부지와 접한 해안가,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는 가운데 두 사람은 공장의 옥상에 도달한다. 옥상의 대형 광고 풍선에 몸을 묶은 길은 메이에게 밧줄을 끊어서 자신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검은 태양'은 인종간의 갈등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문화 충격을 비주류적인 감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마무라 쇼헤이와 스즈키 세이준이 상업적인 관점을 놓치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코레요시 쿠라하라는 자신의 독창성을 좀 더 우위에 둔다. 촬영 기법에서도 이 감독은 핸드 헬드를 여유있게 구사하며, 메이가 거주하는 비좁은 교회 공간도 효율적으로 포착한다. 그가 당시 닛카츠(日活) 영화사에서 태양족(太陽族) 영화를 찍으면서 체득한 젊은 세대에 대한 탐구는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소비지향적이며 서구 문물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보여주는 전후 세대의 모습과 함께 미군정 이후 일본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미군의 존재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놓치지 않는다.

  영어 자막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 경우, 당연히 길의 대사 부분은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길의 대사가 단순하고 별로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도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다. 이건 관객의 영어 실력과는 별 상관이 없다. 영어 원어민의 리뷰를 읽어보면 길의 대사를 알아먹을 수 없다고 불평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길 역을 연기한 배우 치코 롤랜드(Chico Roland, 그의 본명은 Chico Lourant이다. 아마도 일본어의 영어 발음 때문에 로랑을 롤랜드로 바꾼 듯하다)가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는 배우로서의 발성이 전혀 되지 않으며, 부상병 역을 연기한다고 거의 뭉개지고 웅얼거리는 말투로 일관한다. 롤랜드는 당시 여러 편의 일본 영화에서 나름 조역을 담당했는데, 그 이력이 참으로 흥미롭다. 주한 미군 출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생계를 위해 트럼펫을 배워 재즈 연주자가 되었다. 쿠라하라 코레요시 감독은 그를 재즈 클럽에서 보고는 이 영화에 캐스팅했다. 감독의 요구대로 영화 속에서 롤랜드는 트럼펫도 불고, 노래도 부른다. 어떤 면에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대사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몰입감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관객은 길의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메이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내적인 유대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낙오자가 비극적 최후를 향해 질주하는 영화 '검은 태양'에는 그런 뒷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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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영화 속 확장된 상상의 영토로서의 사막, 사막의 하얀 태양(Белое солнце пустыни, The White Sun of the Desert, 1970)



  이 영화의 대본은 3년 동안 소련 영화계를 떠돌아 다녔다.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연출을 제안받은 감독들마다 손사래를 쳤다. 그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타르코프스키 감독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블라디미르 모틸(Vladimir Motyl)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떨어졌다. 이래저래 잘 풀리지 않았던 이 감독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모틸 감독은 연출료로 받게 될 돈이 절실했다. 영화는 촬영 시작부터 불운의 연속이었다. 소품으로 대여한 물품들이 도난당하는가 하면, 내정된 주연 배우가 술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바람에 교체해야만 했다. 뜻대로 나오지 않는 장면들 때문에 재촬영을 거듭하다 보니 예산이 초과되었고, 급기야 모틸 감독은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어렵게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그는 영화를 겨우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 국가 영화 위원회(Goskino)의 반응이 영 신통치가 않았다. 영화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개봉하기 어렵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모틸 감독이 나중에 행운,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난다. 당시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서부 영화의 광팬이었다. 그는 이 영화가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막의 하얀 태양'은 소련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미국 영화에 서부극(Western)이 있다면, 소련에는 그것과 대비되는 Red Western인 Eastern이 있었다. 광활한 영토를 가진 소련은 촬영 장소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북부 시베리아부터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초원에 이르기까지 어떤 배경의 시나리오든 소화해낼 여력이 있었다. 다게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사막 지형을 품고 있어서 총잡이 활극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영화들은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1960년대, 이국적인 배경의 영화들이 높은 흥행 실적을 기록하자 비슷한 영화들이 연달아 제작된다. 코미디 영화의 대가였던 레오니드 가이다이(Leonid Gaidai) 감독의 1967년작 '카프카스 납치(Kidnapping, Caucasian Style)'는 북 카프카스 지역을 배경으로 '신부 납치'라는 지역적 소재로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는 1967년 개봉작 가운데 최대 흥행 실적을 올렸다. 그 시기에 나온 소련 영화들은 내부적으로 개척해나간 상상의 영토들을 보여준다. 역시 가이다이 감독의 작품인 '이반 바실리예비치 씨, 직업을 바꾸다(Ivan Vasilievich: Back to the Future, 1973)'는 타임 슬립을 소재로 이반 뇌제가 다스리던 16세기와 현실을 오간다(제작사 Mosfilm에서는 한글 자막을 지원하는데, 자막의 수준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사막의 하얀 태양'의 배경도 확장된 상상의 영토였다. 1920년대 카스피해 동부 해안, 적백 내전의 끝자락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던 적군(赤軍) 병사 수코프는 사막의 모래에 파묻힌 사이드를 구해준다. 지역 산적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재산을 빼앗긴 그는 절망한 상태. 살려준 수코프에게 왜 살렸냐며 원망하기도 하지만, 마음으로는 고마움을 느낀다. 사이드와 작별한 수코프는 적군 지휘관과 조우하고, 지휘관은 지역 갱단 두목 압둘라의 여러 부인들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떠맡긴다. 적군에 의해 쫓기는 압둘라는 무슬림의 법에 따라 함께 데려가지 못하는 부인들을 다 죽일 계획이었다. 그가 돌아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여자들을 수코프는 마지못해 호위한다. 그런데 탈출에 성공한 압둘라는 부하들과 함께 수코프를 추격한다. 과연 수코프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련의 Eastern을 헐리우드 웨스턴과 비교하는 일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전반적으로 제작 품질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도 보고 있노라면, 왜 국가 영화 위원회에서 개봉을 주저했는지 알게 된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그다지 개연성 없는 줄거리와 늘어지는 내러티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총격전에 실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해 개봉된 소련 영화들 가운데 관객 동원 5위를 기록했고,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인기를 더해갔다. 확실히 이 영화에는 러시아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 감각과 정서가 있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단번에 인기곡으로 등극했다. 소련 영화에서 노래는 무척 중요하다. 이 나라 국민들의 노래(러시아 로망스) 사랑은 정말이지 지극해서, 뭔 영화마다 노래들이 뮤지컬처럼 흘러나온다.

  초기 단계의 시나리오에서 무슬림 압둘라와 그의 여러 아내들의 이야기는 검열 당국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 결과 적군 병사 수코프의 활약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압둘라의 아내들에게 해방을 선언하는 수코프, 그런 그에게는 적군으로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에서 특이한 점이 엿보이는데, 중간 중간 수코프가 고향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내레이션으로 들어간다. 수코프는 수구적 잔재가 존재하는 그 땅에 혁명이 가져올 자유를 꿈꾼다고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한다. 헐리우드 웨스턴이 돈과 욕망, 복수와 정의에 대해 다루는 것과는 다르게 소련의 이 사막 활극은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을 부르짖는다. 결국 소련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대원칙에서 '사막의 하얀 태양'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압둘라와 그 잔당들은 소탕의 대상이며, 압둘라의 아내들에게는 자유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물론 수코프는 그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다. 사이드를 비롯해 마을 주민, 무기를 소유한 전직 세관 직원 파벨이 그를 돕는다. 중립적 위치에 있었던 파벨이 수코프의 편에 서는 계기가 흥미로운데, 그는 수코프의 어린 부하 페트루카의 죽음을 보고 마음을 돌린다. 2년 전에 죽은 아들로 상심한 파벨은 페트루카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페트루카를 압둘라가 죽이자 파벨은 복수를 결심한다. 파벨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이런 인간적인 모습 또한 소련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호소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시대와 이국적 공간 속 이야기에서도 가족이라는 근원적이고 전통적인 개념이 가진 영향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수코프가 압둘라의 아내들을 적군 지휘관에게 인계하고 고향땅을 향해 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수코프가 나중에 아내를 만났는지, 아니면 어떤 불운에 의해 집에 돌아가지 못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다. 이 열린 결말은 한편으로는 기나긴 혁명의 여정에 놓여있던 소련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적군 병사 수코프가 꿈꾸던 혁명의 이상은 오랜 역사적 실험 끝에 좌절되었다. 소련 영화의 확장된 영화적 영토인 '사막'은 그렇게 모험과 방랑, 표류의 공간으로 남았다.     



*사진 출처: eg.ru   수코프 역의 아나톨리 쿠즈네초프(
Anatoly Kuznet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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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분장을 한 남자는 카바레의 무대에서 강렬한 음률에 따라 노래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고 있다. 그는 정면을 응시하면서 묻는다. '여기 대체 왜 온 거야?'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지금부터 난 말이지, 댁들을 신나게 놀려먹을 생각이거든!' 어째 영화가 첫 장면부터 심상치가 않다. 휴일, 느긋한 마음으로 영화 한 편 보려는 사람은 이 영화를 피하는 것이 낫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100분 동안 분노와 광기의 홍수를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고의 감독 고란 파스칼리예비치(Goran Paskaljević)의 '화약고(Bure baruta, 1998)'는 마케도니아의 극작가 데얀 두코프스키의 희곡 'Powder Keg'를 영화로 펼쳐놓았다. 원작의 제목 대신에 'Cabaret Balkan'이라는 영문 제목을 쓴 것은 이미 'Powder Keg'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발칸 카바레'는 뭔가 급조된 제목 같지만,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카바레 가수가 중간 중간 목놓아 부르는 절규 같은 노래의 가사는 꽤나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1990년대 중반 유고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배경으로 촘촘히 짜나간다. 그 시기 발칸은 보스니아 내전으로 불타고 있었다.

  베오그라드의 밤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긴장시킨다. 등장 인물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양상은 다양하다. 부수고 때리는 물리적인 폭력부터 대부분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언어적인 폭력, 신체적인 위협과 살인, 강간 시도에 이르기까지 영화 내내 폭력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애송이 젊은이는 길에서 차 사고를 내고 도망쳤다가 집을 찾아온 차주의 복수를 경험한다. 그 아파트 지하에는 보스니아 난민 가족이 겨우 연명해가고 있다. 늙은 가장은 버스 기사로, 그 아들은 마약상의 똘마니로 살아간다. 전직 교수가 모는 버스는 늦은 출발에 분노한 사이코 청년에 의해 탈취당한다. 그 버스 속 승객들은 잠시 동안 지옥행 특급을 경험하고, 거기서 겨우 빠져나온 젊은 여자는 애인과 다투다가 둘은 마약상의 인질이 된다. 버스 기사의 아들은 그 인질극의 조연을 담당한다. 마치 작은 지류들이 흐르다 급류를 만나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지듯 이 모자이크 직조화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광기를 담아낸다.

  등장 인물들은 화가 나 있고, 이성은 마비되어 있으며, 절망과 고통에 몸부림친다. 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이 영화를 인종 청소의 광기에 휩싸인 보스니아 내전의 참혹함과 연결지어 보는 관점은 일면 타당하다. 원작자 데얀 두코프스키(Dejan Dukovski)는 인터뷰에서 작가의 의무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굴절된 부분을 올바로 비춰주는 거울이 되는 데에 있다고 밝혔다(출처: critical-stages.org). 잘못된 정치 행태, 예를 들면 파시즘을 태동하게 만드는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 감지와 기록이 작가의 본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두코프스키는 '광기'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발칸 내전의 끔찍한 양상들을 개별 인물들의 행동으로 재현한다. 특이한 점은 거기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애지중지하는 폭스바겐이 망가진 것을 본 차주는 가해자 청년의 집을 찾아가 모든 것을 다 깨부순다. 커피 마시며 좀 쉬고 있다 버스를 탈취당한 기사는 필사적으로 버스를 쫓아가 사이코 탈취범에게 죽음의 응징을 가한다. 단속에 걸렸다가 나쁜 경찰에 의해 고자가 되어버린 남자는 경관을 급습해 거의 산송장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폭력의 발화는 그칠 줄 모르며 불길을 더해간다. 관객은 영화 내내 넘실거리는 분노와 광기를 목도한다.

  "발칸은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폭력이 흘러서 모이는 곳이지. 그래서 과다출혈처럼 전쟁이 터지는 거야."

  카바레 가수는 그렇게 읊는다. 그 피터지는 살육의 현장과 그 근방에 있는 이들은 모두 고통을 받고 있다. 누군가의 폭력에 망가진 이는 어떤 식으로든 그 상흔을 또 다른 구성원에게 남기는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위협받는 생존에 대한 압박감은 모두를 광기의 레이스로 몰아넣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것을 형상화시켜서 보여준다. 차 휘발유 도둑으로 몰린 남자는 몰려나온 아파트 주민들에 의해 쫓기다 높은 철망을 오른다. 그가 마치 십자가의 예수처럼 양팔을 벌리며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가운데, 새어나온 휘발유에 붙은 불로 폭발이 이어진다. '화약고'는 결국 발칸 수난극을 완성하며 그렇게 막을 내린다.

  이 무지막지한 폭력의 서사시는 너무나도 어둡고 끔찍하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을 치뤘던 유고 국민들의 내적 외상과 죄의식에 대한 심리적 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잔혹한 정치 지도자가 감행한 피의 내전, '화약고'는 그것이 드리운 길고 고통스러운 그림자를 여러 등장 인물들의 망가진 삶으로 재현한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이 영화가 건조하게 늘어놓는 폭력과 광기에는 그 어떤 탈출구도 찾을 수 없다. 고란 파스칼리예비치 감독은 발칸 지역의 특수성과 복잡한 역사로 얽힌 분쟁의 숙명을 '화약고'로 처절하게 그려낸다.



*사진 출처: s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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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KBS에서 방영된 자연 다큐멘터리 '완벽한 행성, 지구'를 보는데, 내레이션이 감성적이면서도 편안하게 들렸다. 다큐 중간에 해설자의 이름이 떠서 보니 배우 김승우였다. 대개 그런 자연 다큐멘터리들의 해설은 성우나 아나운서들의 몫이지만, 가끔은 배우들이 할 때가 있다. EBS에서 했던 3부작 자연 다큐 '천국의 새'에서는 배우 이혜영이 내레이션을 했다. 정말로 멋지고 완벽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배우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발성'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무성 영화 시절의 배우들은 그런 발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었다. 자막과 음악으로 처리되는 화면에서 배우들은 무성 영화에 특화된 표정과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글로리아 스완슨(Gloria Swanson)은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였다. 스완슨은 자신의 영화사까지 차려서 영화를 찍을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유성 영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 시기 배우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천하의 스완슨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 이후로 잠정 은퇴 상태였던 스완슨을 다시 불러낸 것은 빌리 와일더였다.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는 잊혀진 배우 스완슨을 완벽하게 복귀시켰다. 빌리 와일더는 이 영화에서 헐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자신만의 음울하고 통렬한 성찰을 보여준다.

  헐리우드의 B급 시나리오 작가인 조(윌리엄 홀덴 분)는 살던 집의 집세가 밀리고 차까지 압류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떻게든 글을 써서 먹고 살 방도를 찾으려 하지만, 정글같은 헐리우드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압류 회사 직원을 피해 차를 몰다가 우연히 막다른 길에 들어선 그는 황량한 외관의 대저택을 발견한다. 차만 숨기고 나오려던 그는 얼떨결에 집사(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분)의 안내로 주인과 만나게 된다. 조는 키우던 원숭이의 죽음으로 애통해하는 중년의 여자가 은퇴한 무성 영화 배우 노마 데스먼드임을 알아차린다. 여주인은 조가 시나리오 작가라는 말을 듣고 복귀작으로 집필중인 시나리오 원고를 맡긴다. 마지못해 일을 시작한 조는 점차 노마가 제공하는 돈과 안락한 삶에 익숙해진다. 현실과 담을 쌓고 과거의 영광에 도취해 살아가는 노마는 조에게 구애하고, 조는 그런 당혹스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시나리오 집필에 착수한다. 영화사 시나리오 담당인 베티와 함께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조, 노마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조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영화는 풀장에 뜬 시신과 함께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조는 이미 죽었고, 영화는 죽은 자인 조의 시점에서 회고하는 6개월 전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흔히 필름 느와르로 분류되는데, 과연 그렇게 보는 것은 타당할까? 확실히 영화의 분위기는 으스스하고 기괴하다. 노마가 살고 있는 대저택의 외관은 거의 버려진 폐가처럼 보인다. 세상과는 동떨어진 격리된 장소, 그곳의 주인은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박제해놓은 집에서 살고 있다. 거실은 배우 시절의 사진 액자가 잔뜩 들어차 있고, 그곳에서 노마는 무성 영화 시절의 영화계 친구들과 가끔씩 카드놀이를 한다. 자신이 주연한 영화를 틀어놓고 보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이 은퇴한 여배우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단 한 가지, 젊음만이 없을 뿐이다. 자신이 늙었고, 다시는 영화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노마는 마치 화석처럼 살아가고 있다.

  빌리 와일더가 글로리아 스완슨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노마 역에 스완슨이 아닌 다른 배우를 쓸 수 있었을까?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후, 단절된 경력 속에서 잊혀진 배우 스완슨, 그리고 그의 집사 맥스로 나온 이는 무성 영화 시절을 대표하는 감독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이다. 대표작 'Greed(1924)'로 잘 알려진 이 감독은 실제로 스완슨이 만든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기도 했다. 노마가 집에서 감상하는 자신의 영화 'Queen Kelly(1932)'는 스트로하임이 연출한 작품이다. 스트로하임은 그 영화를 찍다가 제작비를 너무 많이 써서 스완슨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일이 있다. 빌리 와일더는 이전 무성 영화 시대의 쟁쟁한 인물들을 한데 그러모은다. 노마의 카드 놀이 친구로 등장하는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은 무성 영화 시절의 감독 겸 배우였고, 노마가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방문할 때 만나는 세실 B. 드밀(Cecil B. DeMille)은 무성 영화 시절에 스완슨과 함께 했고 유성 영화시절에도 명성을 날렸던 감독이었다.

  비극은 노마가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에 안주하지 못하고 현실로 틈입하려고 끈질기게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돈으로 굴복시킨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의 젊음과 사랑은 결코 노마의 것이 될 수 없다. 영화사에서는 늙어버린 여배우가 아닌 소품으로 쓰려는 노마의 비싼 클래식 자동차에 관심을 둘 뿐이다. 시들고 낡은 것은 버림받는다. 빌리 와일더는 영화 산업이 어떻게 자신의 영역 속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소모시키며 그것을 바탕으로 번영하는지를 노마와 그 주변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선셋 대로'는 빌리 와일더가 바라보는 헐리우드의 냉혹한 속성, 은막 뒤의 감춰진 것들에 대한 처절한 초상이며 성찰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MGM의 제작자 메이어는 와일더가 영화 산업과 그 종사자들을 모독했다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노마의 애완 동물로 살다가 죽은 원숭이가 비싼 관에 감싸여 정원에 매장된 것처럼, 원숭이를 대체하는 노리개감인 조 또한 풀장에 엎어진 시신으로 발견된다.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여배우의 병적인 집착은 스스로를 살인범으로 만들며, 체포의 순간조차도 복귀 영화 '살로메'의 한 장면을 촬영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노마가 보여주는 과장된 표정과 손짓, 연기는 이 여배우가 새로운 시대에 도태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자체로 입증한다. 썩은 고기를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이 몰려들고, 영화계 가십을 전문으로 쓰는 칼럼니스트는 넋나간 여배우의 옆에서 신나게 기사를 전송한다. 그 칼럼니스트는 영화 '트럼보(Trumbo, 2015)'의 헬렌 미렌이 연기한 헤다 호퍼(Hedda Hopper) 본인이 맞다. 호퍼 자신도 무성 영화 시절에 정력적으로 활동했던 배우였다. 호퍼는 무성 영화 경력을 마감하면서 영화계 주변에 떠도는 온갖 소문과 잡담을 쓰는 칼럼니스트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빌리 와일더가 그려낸 이 메타 영화(Meta-cinema)는 느와르와 로맨스, 심리 스릴러를 넘나들며 영화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인생을 재현(retrospection)하고 모방하는 영화는 결코 시들고 추한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마치 늘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흡혈귀처럼 끊임없이 먹어치우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아가는 거대한 생물체처럼 보인다. 글로리아 스완슨이 연기한 퇴락한 배우 노마와 영화 속 과거의 무성 영화 배우들, 영화계의 작은 소모 부품으로 존재하다 사라지는 조와 베티 같은 인물들은 거대한 영화 산업에서 생기는 부산물과도 같다. 이러한 영화 속 영화 이야기는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The Player, 1992)'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2001)' 같은 영화들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주된다.

  빌리 와일더는 자신이 직접 겪은 영화계와 그 경험담을 토대로 무성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전환한 헐리우드 격변기에 대한 탐구를 '선셋 대로'로 풀어냈다. 결국 그가 파내어 팔아먹은 영화계 이야기는 빌리 와일더에게 경력의 전성기를 이어가게 했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주춤했던 윌리엄 홀덴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 영화로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글로리아 스완슨에게 성공은 이어지지 않았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스완슨에게 비춰지던 낙조(落照)였던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부와 명성을 가진 이 여배우에게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다. '선셋 대로'에는 그렇게 영화와 그것과 함께한 이들의 인생, 스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비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사진 출처: framerated.co.uk



** 연휴 잘 보내고, 수요일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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