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실패한 뒤에 알콜 중독자가 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러워. 왜냐하면 그건 정말 지루한 일이거든."

  남자의 이름은 마이클, 화면 너머로도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아침 10시 59분, 술집 출근 도장을 찍는 58살의 머리 허연 알콜 중독자에게 오늘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Bill Ross IV와 Turner Ross, 두 형제들의 다큐 'Bloody Nose, Empty Pockets(2020)'는 라스베가스의 술집 'Roaring '20s'의 마지막 영업일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진정한 술꾼들의 다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을 술 취하게 만드는 희한한 다큐. 그대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즐거울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아주 흥미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술집의 터줏대감 같은 마이클을 시작으로 하나 둘씩 술꾼들이 모여든다. 서로를 잘 아는 그들은 정답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수염을 기른 큰 체구의 바텐더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벽면의 TV들에서는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 헐리우드 고전 영화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 다큐는 2016년에 만들어졌다. 트럼프가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술꾼 한 명은 예언자적 통찰을 보여준다.

  "내 장담하지. 저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탄핵이 되거나, 안그러면 암살을 당할 거야."

  손님들의 면면은 참으로 다양하다. 트랜스 젠더, 흑인 노숙자, 아인슈타인 머리를 한 백발의 남자, 60살 된 늙은 여자, 호주 출신 중년 남자, 음악가 등등...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려 22명에 이른다. 그들은 모두 코가 깨질 때까지, 바의 마지막 영업을 기념하며 동이 트는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 다큐 내내 넘쳐나는 술에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주크 박스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 나오고, 손님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춤을 춘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온갖 개똥 철학이 쏟아지고, 올라오는 취기와 함께 외로움의 눈물도 흘린다. 불쾌한 말다툼도 생긴다. 그래도 심각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술 냄새가 진동하는 'Bloody Nose, Empty Pockets'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이 그 바의 손님이 되어있음을 깨닫는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다면 꺼내어서 들이키게 될 것이다.

  폐업하는 술집의 마지막 하루를 찍다니, 참 다큐 편하게 만드네, 라고 생각했었다. 이 다큐의 제작자들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감독의 개입을 최소로 하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 제작자의 각인이 들어간다. 챕터를 나누듯 시적인 소제목들이 붙어있고, 술집 바깥의 풍경들이 삽화처럼 제시된다. 러닝타임 1시간 38분 동안 관객들은 'Roaring '20s'의 구석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술꾼들의 세상을 관조한다. 만약 동네에 저런 술집이 있다면 자주 가게 될 것 같은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 그런 술집이 문을 닫는다면 많이 아쉽겠다 싶다. 아침에 첫 출근 도장을 찍었던 마이클이 마지막으로 술집 문을 나서면 다큐가 끝난다. 그런데...

  'Roaring '20s'는 라스베가스에 있는 술집이 아니라, 루이지애나 주의 테리타운에 위치한 곳으로 아직도 영업하고 있다. 다큐에 나왔던 술꾼들은 오디션을 보고 출연한 일반인들이었다. 단 한 명, 마이클은 진짜 배우였다. '아니,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마치 뒤통수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건 다큐가 아니라 영화인가? 무려 10년 동안, 제작자인 로스 형제들의 머릿속에서는 독특한 다큐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술집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열망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다큐 제작으로 이어졌다.

  원하는 술집을 찾기 위해 곳곳의 바들을 전전했고, 서로 케미가 잘 맞는 술꾼들의 조합을 보여주기 위해 수백 명의 일반인들을 인터뷰했다(출처 mubi.com과의 인터뷰).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렇게 모인 이들은 진짜 술을 마시며 자신들 그 자체를 연기했다. 물론 설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의 벽면 TV에서 나오는 헐리우드 고전 영화들과 뉴스 화면들은 제작자들의 의도대로 편집되어서 나온 화면들이었다. 그 영화들은 내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는 1952년작 필름 느와르 'The Narrow Margin'도 있었다. 원래 촬영 현장에서는 사운드 녹음 때문에 주크 박스를 틀지 않으려고 했으나, 술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노래 없는 술집은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이 외쳤고, 결국 다큐는 술과 노래의 향연으로 채워졌다. 등장 인물들이 직접 부르는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의 노래, 호주 민요 'Waltzing Matilda'에 맞춰 함께 추는 춤은 안온하고 정겨운 술집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하이브리드(hybrid) 다큐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제법 그럴듯한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과연 술꾼들의 내면 풍경과 그들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술집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그려낸 어떤 영화나 다큐가 있었던가? 이것은 분명 이전에는 없었던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길이다.

  "난 아침해가 싫어."

  문 닫는 새벽의 바를 나온 세 명의 술꾼들은 시멘트 바닥에서 해장술을 들이킨다. 그 가운데 한 명의 여성이 밝아오는 아침을 못마땅해 하며 하는 그 말은 진정한 술꾼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Bloody Nose, Empty Pockets'는 다큐일까, 영화일까? 그런 질문에 그것이 중요하냐고 되묻는 제작자 로스 형제들은 이 작품이 '영화'라고 대답한다. 다큐이면서 극적 허구를 포함하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실제 보다 더 가까이 진실에 접근한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은 'Bloody Nose, Empty Pockets'에서 그 오묘하고도 기이한 마법을 목격한다.



*사진 출처: mubi.com




**독자들 가운데 종종 영화를 보는 경로에 대해 문의하는 경우가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무료 채널:

1) 다큐멘터리- documentarymania.com  watchdocumentaries.com 2000년대 이후부터 최신작까지 다양한 해외 다큐들을 제공함
2) 러시아(구 소련) 영화- mosfilm.ru 유튜브에도 전용 채널이 개설되어 있음. 검색은 오직 '러시아어'로만 가능함.
3) archive.org- 저작권이 풀린 오래전 영상물과 텍스트 자료들이 제공됨. 단점이라면 영화들은 대부분 자막이 없음.
4) 유튜브- 헐리우드 고전 영화를 비롯해 1970년대 이후 동유럽 영화, 1980년대 이후 중국 영화들을 찾아볼 수 있음.


유료 채널:

1) amazon prime
2) criterionchannel.com- 1950년대와 60년대의 일본 영화, 각국의 다양한 예술 영화들의 목록을 검색할 수 있음.
3) 넷플릭스- 신작 영화를 비롯해 특히 자체 제작한 다큐들의 작품성이 좋음.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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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Chang의 대표작, Mambo Girl(1957)과 'The Wild, Wild Rose(1960)' 

  러닝타임 95분의 영화가 30분으로 느껴지는 마법, 이것은 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Grace Chang의 영화 '맘보 걸(Mambo Girl, 1957)을 볼 때 일어났다. 영화는 시작부터 흥겨운 맘보 음악과 춤으로 시작한다. 체크 무늬의 날렵한 바지를 입은 여성이 놀라운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낸다. 무려 7분에 달하는 도입부의 장면은 이 여배우가 영화의 진정한 주인임을 알려준다. 중국의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그레이스는 1949년, 가족의 홍콩 이주로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MP & GI 영화사는 극장 체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영화 산업을 확장해 나갔다. 홍콩에 세운 자회사에서는 광둥어가 아닌 만다린(Mandarin, 표준 중국어)으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레이스는 그 영화들의 주역을 도맡았다. '맘보 걸'은 그레이스가 24살이 되었을 때 찍은 작품으로 큰 흥행 성적을 거두며, 이 여배우의 독보적 스타 파워를 입증하는 계기가 된다. 

  학교의 퀸, 그리고 '맘보 걸'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는 카이링은 남부러울 것이 없다. 번화가에서 커다란 인형 가게를 하는 부모와 귀여운 여동생, 그리고 카이링을 떠받드는 친구들과 부유하고 멋진 남자 친구까지 있다. 카이링의 20살 생일을 앞두고 남자 친구 다니안은 성대한 생일 파티를 계획한다. 한편 카이링의 집에서는 부모가 카이링의 정확한 생일 날짜를 두고 옥신각신한다. 출생증명서를 꺼내보며 확인하는데, 마침 카이링의 여동생이 그 서류를 보게 된다. 카이링은 입양된 딸이었던 것. 나중에 친딸을 얻었지만 부부는 카이링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키웠다. 그 사실을 알고 고민하던 여동생은 카이링을 시기하는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출생의 비밀은 카이링에게 가출을 감행하게 만든다. 친모를 찾아나선 카이링, 사랑스런 맘보 걸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자 친구가 열어준 생일 파티에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이링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날 밤, 집의 옥상에 올라가서 도시의 밤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허공에서 환영(幻影)을 목격한다. 나이들고 가난한 전통복식 차림의 여성은 오래전 헤어진 딸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른다. 카이링은 그 환영이 자신의 친어머니라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을 연상케 한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햄릿의 부왕은 유령으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카이링의 친모를 찾기 위한 여정은 결국 번화한 나이트클럽 거리에서 끝난다. 카이링은 자신의 모친이 클럽의 여가수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늙은 종업원의 안내로 만나게 된 여성은 클럽 파우더룸에서 손님의 물건을 관리하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은 자신에게는 딸이 없다며, 카이링의 추측을 끝끝내 부인한다. 그러면서도 카이링의 양부모와 집안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는다.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Stella Dallas, 1937)'의 바바라 스탠윅처럼 카이링의 친모는 딸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실망한 카이링은 집으로 돌아가고, 카이링은 자신을 기다리던 이들과 함께 한바탕 기쁨의 춤판(!)을 벌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기이한 뮤지컬에는 진정한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쉽게 친엄마 찾기를 포기한 카이링은 양부모의 안온한 집과 자신의 친구들에게서 다시금 행복을 되찾는다. 그런데 그 장면을 카이링의 친모는 집앞의 열려진 문틈으로 엿본다. 함께 온 클럽의 노종업원은 딸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자는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영화 '첨밀밀(甜蜜蜜, 1997)'이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내면에 대한 은유이듯, '맘보 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당시 홍콩의 지위를 떠올리게 만든다. 열려진 문 앞에서 서성이던 친모(중국)는 양부모(영국)의 품에 안착하는 입양딸 카이링(홍콩)을 보며 마지못해 떠난다. 이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영구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떠난 친모는 언젠가 열려진 문 안으로 들어와 딸을 찾아갈 것임을 관객들은 짐작하게 된다.

  영화 '맘보 걸'이 맛뵈기였다면, 그레이스 장의 본격적 공연은 1960년에 제작된 'The Wild, Wild Rose'에서 펼쳐진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의 '홍콩 나이트클럽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그레이스가 가진 재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경음악풍의 노래로 번안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그레이스의 놀라운 창법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도입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의 '입술은 침묵하고'와 같은 노래가 이어지며, 후반부에는 기모노를 입고 부르는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의 '어떤 갠 날'이 나온다. 그레이스는 오페라 아리아를 비롯해 재즈곡도 부르며, 플라멩코 춤 공연도 해낸다. 이 여배우에게는 소화하지 못할 그 어떤 음악 장르, 춤의 종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무려 2시간 1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느껴진다. 

  서구 오페라의 장르적, 문화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 'The Wild, Wild Rose'는 분명히 비극임에도 영화가 온전히 한 편의 공연물로 기능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 중심에는 '그레이스 장'이라는 배우이면서 가수, 무용가인 종합 예술인이 자리한다. 당시의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 예능인의 공연을 관람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홍콩 영화의 독특한 성취를 보여주는 일련의 뮤지컬 영화들의 인기는 영화와 함께 했던 여배우들의 은퇴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홍콩 영화사의 한 장이 닫힌다. 새로운 장을 연 것은 소씨 형제들(邵氏兄弟), 쇼 브라더스(Shaw Brothers Production)가 만드는 무협물들이었다.  



*사진 출처: no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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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계 미국인 감독 앤드류 안(Andrew Ahn)의 장편 데뷔작 'Spa Night(2016)'를 보는 동안 떠올렸던 영화는 스티븐 프리어스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My Beautiful Laundrette, 1985)'였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성애자가 주인공이다. 한국인 이민자 2세인 앤드류 안은 첫 영화로 자신의 출신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의 대사는 대부분 한국어이며,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주제의 이야기이고, 정서적으로도 잘 와닿는다. 하지만 그러한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서양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그런 퀴어 영화(Queer film)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좀 뻔한, 진부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낯선 땅에 정착하는 이민 1세대의 고군분투,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2세대, 거기에 동성애가 버무려진 'Spa Night'는 그럼에도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 내러티브의 핍진성이 돋보인다.

  창작자에게 가장 편하고, 다루기 쉬운 소재는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이다.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세하고 치밀하게 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들은 관객들과 만나 공명을 이루어낸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동성애자인 앤드류 안은 첫 영화로 그것을 성취한다. 'Spa Night'는 도입부를 목욕탕에서 시작한다. 사우나실에 있는 아버지는 열기를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더 있으라고 말한다. 파랑색 이태리 타올로 아버지와 아들은 때를 민다. 목욕을 끝낸 후 휴게실에서 팥빙수를 같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가족에게 한국식 목욕탕은 화합과 소통의 장소이다. 부모는 아들에게 한국인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비춘다. 그러나 아들 데이비드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완곡히 부인한다.

  매일 조깅을 하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18살의 데이비드는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이 많다. 셀카로 몸을 찍어보며 수시로 변화를 체크한다. 이 청년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데이비드의 내면에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자각의 감정이 올라온다. 그것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몸'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돈 문제로 갑자기 문을 닫게 된 식당, 부모는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경제적인 곤궁은 데이비드에게도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한다.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부모는 무리를 해가며 아들을 입시 학원에 등록을 시키지만, 공부에 뜻이 없는데다 부모의 곤경을 보기 힘든 효자 아들은 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모호한 감정의 실체와 마주한다.

  열기와 습기가 어우러진 사우나 안의 뿌연 거울 앞에 선 데이비드의 모습은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게이들의 공공연한 만남의 장소인 그곳 목욕탕은 데이비드에게 혐오와 고통, 강렬한 호기심의 장소가 된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잘 알지만, 청년은 자신이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서 대학에 갈 생각이 없고, 부모가 원하는 며느리를 맞이할 수도 없다. 미국 땅에서 유색인종, 거기에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약자로 더 복잡하고 불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18살의 청년에게 그 어떤 것도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Spa Night'는 데이비드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자각하는 부분에서 멈춘다. 데이비드에게 그것이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 지점인 것처럼, 이 영화도 앤드류 안의 영화적인 첫 목소리인 셈이다.

  2019년작인 'Driveways'는 'Spa Night'의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어서 펼쳐진다. 싱글맘 캐시는 아들 코디와 함께 뉴욕 교외에 위치한 언니의 집을 찾는다. 언니 에이프릴이 세상을 뜨자 남겨진 집을 처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거의 왕래가 없었던 12살 차이의 언니의 집 안을 본 캐시는 놀라고 만다. 캐시의 언니는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로 집을 채운 호더(hoarder, 비정상적으로 물건을 수집하고 쌓아놓고 사는 사람)였다. 집을 팔기 위해서는 그 물건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 캐시는 게임기만을 끼고 사는 8살 아들과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옆집에 사는 한국전 참전 군인 델은 그들 모자(母子)와 소박한 유대를 쌓아가고, 특히 내성적인 코디는 델과의 만남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백인 배우들을 기용하려던 원래의 계획을 앤드루 안은 아시안계 배우로 바꾸었다.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홍 차우(Hong Chau)는 싱글맘으로 자신의 삶과 양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캐시를 잘 보여준다. 아들 코디 역의 루카스 제이(Lucas Jaye)의 명징하고 직관적인 연기는 그 자체로 빛난다. 앤드루 안에게 아시안으로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아시안 배우들을 쓰기로 한 것이다. 'Driveways'는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캐시의 부산스러운 백인 이웃 린다와 그 손자들이 microagression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 관계와 소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세상에 그저 둘 밖에 없는 것 같은 외로운 엄마와 아들은 낯선 곳에서 인생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캐시가 언니의 집을 치우면서 잘 알지 못했던 언니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 보게되는 것, 게임기와 일본 만화에만 관심을 갖던 코디가 말년의 퇴역군인 델과 우정을 쌓아가는 것, 그 과정들은 절제되어 있으면서 따뜻한 감정의 물결이 소용돌이친다. 'Spa Night'에서 개인적 정체성의 탐구를 보여주었던 감독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Driveways'는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관계의 보편성, 그것이 갖는 삶의 의미를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늘 혼자 식사하고 잠드는, 퇴역 군인 회관에 가끔 들러 빙고 게임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노인은 8살 꼬마와 친구가 된다. 그 우정은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그에게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코디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코디는 더이상 게임기가 아니라 동네의 흑인 남매와 같이 길에서 즐겁게 논다.

  첫 장편 영화 'Spa Night'로 선댄스에서 수상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화려하게 알렸지만, 영화는 한국계 이민자 가정이라는 배경적 묘사 때문에 그다지 큰 공감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속작 'Driveways'는 매우 소박한 영화임에도 인간 관계라는 보편적 주제를 자신만의 독자적 연출로 풀어냄으로써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내었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심심하게 느껴지는 'Driveways'보다 'Spa Night'가 더 집중력있고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양 관객들에게는 'Driveways'가 꽤 밀도있게 다가갔던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고 울었다는 리뷰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퇴역 군인 델 역을 맡았던 Brian Dennehy의 유작으로서 가지는 나름의 의미도 더해졌을 것이다. 앤드류 안의 두 영화는 자아 탐구에서 시작된 영화적 여정이 세상과 타자로 조금씩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세 번째 영화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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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아사코
(寝ても覚めても, 2018)'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심드렁하게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궁금해졌다. 이건 걸작이니 꼭 보아야 한다고 말한 외국의 평론가가 있었다. 르 몽드(Le Monde)에 영화 비평을 쓰는 자끄 만델바움이었다. 정말 내가 이 사람과 같은 영화를 본 것이 맞을까?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말해야 '영잘알'이 되는 기이한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오사카에 사는 아사코는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바쿠와 사랑에 빠진다. 불 같았던 사랑의 감정은 갑작스런 바쿠의 잠적으로 상처 속에 봉인된다. 2년 뒤, 아사코는 도쿄에서 바쿠와 똑같이 생긴 외모의 회사원 료헤이를 보게 된다. 료헤이가 바쿠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사코는 료헤이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르고,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청혼한다. 그런데 아사코는 예전의 지인 하루요를 만나 바쿠의 소식을 듣는다. 유명 모델이 된 바쿠, 아사코는 감정의 혼란을 느끼고 그런 아사코에게 바쿠가 찾아오는데...

  바쿠와 처음 만나게 된 사진 전시회에는 일본의 사진 작가 고초 시게오(牛腸茂雄)의 'Self and Others'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에 앓은 병으로 신체 기형의 후유증을 갖게 된 이 사진 작가는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물이 1977년에 나온 사진집 'Self and Others'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사토 마코토는 2001년에 이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다큐를 동명의 제목으로 만들었다. 이미지의 리듬감이 느껴지는 이 다큐를 보고 나면 영화 '아사코'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다. 그 사진집에는 아이들을 비롯해 평범한 사람들의 초상 사진이 실려 있다. 고초 시게오의 작업은 마치 다이앤 아버스와 로버트 프랭크의 시적인 결합처럼 느껴진다. 그의 사진들은 개인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규정되고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다.

  두 명의 어린 소녀들의 사진은 영화의 제목 'Asako I & II'와 겹친다. 관객은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바쿠와 료헤이를 서로 다른 인물로 상정한다. 그것처럼 그 두 사람을 사랑하는 아사코는 분리된 정체성을 가진 걸까? 바쿠와의 첫키스가 이루어진 길거리에서 어린 학생들은 부주의하게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불꽃 튀는 사랑의 감정, 서로 하나임을 느끼는 희열은 마치 꿈 속 장면처럼 제시된다. 둘은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사고가 나는데, 그 어떤 상처를 입지도 않고 살아남는다. 그 사랑은 임사체험(臨死體驗)처럼 격렬하고 비현실적이다.

  바쿠(ばく)라는 이름이 가진 곡물 '보리'와 동물 '맥(獏)'이라는 이중적 의미 가운데, 일본의 전통 요괴를 지칭하기도 하는 '맥'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중국의 전통 설화에서 유래된 이 괴물은 일본에서 꿈, 특히 악몽을 먹어버리는 요괴가 되었다. 영화 속 바쿠는 그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이미지를 차용한다. 그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처럼 보인다. 잘 생기고 자신감이 넘쳐 흐르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없는 제멋대로인 남자, 그러므로 아사코의 지인들은 바쿠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7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바쿠가 다시 아사코를 찾아왔을 때, 아사코는 두려움에 떨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장면에서 흐르는 불길한 음악은 너무 직설적이라 무슨 스릴러물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사코는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료헤이에게 정착하기로 결정했지만, 그 결정이 바쿠의 등장으로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과거의, 꿈 속의 연인 바쿠에게 아사코는 결국 달려간다. 모든 것을 버리고 바쿠의 차를 타고 떠나지만, 아사코는 자신의 내면적 감정이 료헤이에게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므로 가는 도중에 멈춘다. 바닷가 방파제에서 아사코는 바쿠와 헤어진다. 이 장면이 무척 흥미로운데, 영화는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돌아가는 장면을 아주 꼼꼼하게 보여준다. 데려다 주겠다는 바쿠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사코는 근처의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표를 끊고,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여느 다른 영화라면 이런 부분은 생략되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 과정을 그대로 펼쳐놓는다. 아사코는 방파제를 달리고, 골목을 탐색하며, 자신의 힘으로 이동한다. 미몽(迷夢)에서 깨어난 이 여자 주인공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만 다시 현실로 진입할 수 있다.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바쿠의 기억에 매여있는 아사코의 모습은 연극 배우 친구 마야가 연기한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와 겹쳐진다. 장군인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몰락한 집안의 세 자매는 어떻게든 시골에서 벗어나 모스크바로 가기를 꿈꾼다. 그들에게 모스크바는 꿈의 도시이며 희망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냉엄하며, 모스크바는 그저 먼 곳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이 희곡의 대사에서 '모스크바'는 여러 번 나온다. 아사코에게 '바쿠'는 세 자매가 갈 수 없는 '모스크바'와도 같다. 꿈과 현실,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아사코는 서로 갈등하고 대결한다.

  자, 꿈 속에서나 볼 것 같은 너무나 멋진 '나쁜' 남자와 수수하고 평범하지만 현실의 '착한' 남자, 그 둘 사이에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아사코는 과거의 연인과 떠나면서 료헤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만, 결국 돌아온다. 료헤이가 받아줄까? 잘못을 저지른 여자는 속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죄의식을 짊어진 채, 그저 함께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관객은 아사코의 친구 마야가 공연하기로 했던 연극을 떠올려야만 한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의 '들오리', 료헤이는 그 연극을 보러 갔다가 지진을 경험한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료헤이는 아사코와 재회하고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들오리'는 어떤 작품인가?

  성공한 사업가 베를렌, 그에게는 아들 그레거스가 있다. 부도덕하고 비열한 아버지를 경멸하는 그레거스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늙은 부친은 재혼을 앞두고, 아들에게 사업을 이으라고 권유하지만 그레거스는 거절한다. 아버지 베를렌은 젊은 시절, 엑달과 벌목 사업을 하다가 범법 행위를 저질렀는데 그 죄를 엑달에게 뒤집어 씌웠다. 교도소에 다녀온 이후, 엑달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것은 그의 아들 얄마르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사진사로 일하는 얄마르는 새로운 사진술로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길 꿈꾼다. 그런 그에게 친구 그레거스의 등장은 예기치 못한 풍파를 일으킨다. 얄마르는 부인 지나와의 사이에 딸 헤드비를 두고 있는데, 이 착하고 순수한 딸은 그의 기쁨이다. 그런데 그레거스는 지나가 자신의 아버지 베를렌의 정부였으며, 헤드비가 그 둘의 딸임을 알려준다. 충격을 받은 얄마르는 부인과 딸을 증오하게 되고, 헤드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5막으로 이루어진 이 긴 비극은 일상적 행복 뒤에 가려진 위선과 죄를 다룬다. 그레거스는 엑달과 얄마르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의 그런 결정은 행복하게 살아가던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해 현재의 삶은 산산조각이 난다. 료헤이에게 돌아간 아사코가 용서를 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입센의 '들오리'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새로 이사한 집 앞의 불어난 강물이 '더럽다'고 말하는 료헤이, 아사코는 거기에 '그렇지만 아름답다'고 덧붙여 말한다. 료헤이의 신뢰를 깨뜨렸으면서도 그의 곁에 머무는 것은 과연 위선일까? 그러나 흙탕물이 흐르는 강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아사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죄의식 위에서도 두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행복은 한 점 티끌없는 무류성(無謬性)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과거의 조각들을 끌어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로맨스'라는 틀을 빌어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아사코'가 대단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기존의 문학과 사진 예술을 차용한 부분이 흥미롭기는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그렇게 깊이있는 울림을 주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러닝타임이 5시간이 넘는 이 감독의 'Happy Hour(2016)'를 한 번 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사진 출처: fandango.com  



**여주인공 아사코 역의 카라타 에리카는 영화에서 오사카 출신의 아사코를 간사이 사투리로 연기한다. 그런데 치바현 출신의 이 배우의 사투리 연기는 너무나 어색하게 들린다. 좀 더 치열하게 사투리 연습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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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아빠의 모습이 보이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마침내 군복 차림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12살 아이작, 7살 조이는 아빠를 열렬히 환영하며 끌어안는다. 남자는 2주간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아이들과 보내는 좋은 시간도 잠시, 남자는 다시 떠난다. 카트린 아인혼과 레슬리 데이비스의 다큐 'Father Soldier Son(2020)'는 제대 군인 가족의 삶을 10년의 시간을 두고 담아낸다.

  삼촌 내외와 함께 지내는 아이작과 조이, 부모는 이혼했고 아빠는 먼 나라 아프간에서 군 복무 중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영웅이며, 거대한 산과 같은 그리움이다. 그런데 그 아빠가 부상을 입고 제대한다.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견뎠지만, 결국 절단 수술을 받게 된다. 군인으로만 살아온 남자는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도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는 동안 아빠의 동거녀 마리아, 마리아의 아들 조던이 새로운 가족으로 들어온다. 다큐는 파병 군인의 부상과 제대, 그 가족이 보내는 긴 재건의 시간을 펼쳐 보여주면서도 거기에 그 어떤 정치적 신념과 쟁점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물 흐르듯 펼쳐지는 이 가족 드라마를 보며 관객은 미국의 골치아픈 아프간 전쟁에 대해 구태여 떠올릴 필요가 없다. 어떤 면에서 그것이 다큐 제작자들의 의도이기도 하다. 아인혼과 데이비스는 '가족'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출처 coffeeordie.com과의 인터뷰).

  일반적으로 전쟁 다큐가 보여주는 긴박하고 치열한 전투 현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상, 부상과 죽음, 그러한 장면들은 이 다큐에서 볼 수 없다. 브라이언이 주둔한 아프간 쿤두즈 기지와 그가 수행한 전투가 짧게, 삽화적 장면처럼 들어가기는 한다. 그러나 다큐는 그가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아프간 파병 군인에 대한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냈는데, 육군 중사 브라이언도 취재 대상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해서 'Father Soldier Son'의 10년에 걸친 여정이 시작되었다.

  두 명의 여성 제작자들이 보여주는 가족 드라마의 풍경은 매우 인간적이다. 가족 구성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고 집안의 자잘한 소품들을 담아내는 것에도 남다른 데가 있다. 다큐 속 집안의 풍경은 이 가족이 군인 가장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군복과 군모를 일상복처럼 걸치고 지낸다. 이오지마에서 성조기를 세우는 군인들 미니어처를 비롯해 전쟁 관련 소품들이 진열된 거실, 아이작은 소파에서는 군용 담요를 덮고 낮잠을 잔다. 아버지 브라이언은 아이들이 강한 남성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조이가 학교 레슬링 경기에서 패하는 모습을 보이자 브라이언은 아들을 다그친다. 아이작이 하는 컴퓨터 게임은 전쟁 서바이벌 게임이다.

  브라이언이 상정한 '군인'이라는 이상적 직업, 사명감과 자부심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린 조이는 군인이 되어 아빠의 다리를 못쓰게 만든 놈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한다. 조이와는 다르게 아이작은 대학에 진학하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브라이언과 새엄마 마리아는 아이작의 꿈에 냉소적이다. 브라이언은 아이작이 결국 군대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상으로 상이군인이 된 아빠가 어떻게 아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반길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남자의 삶에서 군대는 전부였고, 그것이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하더라도 운명처럼 끌어안고 살아야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두 아들의 내면에 무겁게 드리웠다는 점이다.

  다리 절단 수술 후 의족에 적응해야 하는 힘든 재활의 시간, 제대 군인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경제적인 어려움... 그에 더해 12살이 된 조이의 죽음으로 가족은 길고 고통스런 시련의 시간을 보낸다. 비운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동생 조이는 아이작의 인생 행로를 바꾸게 만든다. 고교 졸업 후 아이작은 군에 입대한다. 입대 지원서를 쓰고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수료식에 이르기까지 다큐는 담담하게 아이작이 군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들은 미 육군에서 자원 입대 홍보 영상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로 보인다. 거기에서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수행하는 군사 작전과 정치적 결정으로서의 파병과 같은 배경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다큐는 오직 '가족'의 풍경에만 집요하게 천착할 뿐이다.

  가족 심리 상담학자들에게 이 다큐는 매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아버지가 만들어낸 가족 문화와 양육 방식, 그것이 어떻게 한 가족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구성원의 삶을 변화시켜 가는가를 'Father Soldier Son'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자신의 부모와 성장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이 다큐의 경우에는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이 반영되었다는 점이 일반적인 가족과 좀 다를 뿐이다. 여느 전쟁 관련 다큐와는 달리 군인의 '가족'에 촛점을 맞추고, 10년의 시간을 두고 담아낸 이 다큐에는 가족 관계의 역동성(Family dynamics)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2년을 군에서 보낸 후, 아이작은 자신의 입대 결정은 부모의 이혼, 동생의 죽음, 아버지에 대한 의무감 같은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 보다는 혼란과 불안함 속에 있는 이 젊은이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조이의 죽음 이후,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은 브라이언은 군복 무늬가 그려진 배냇저고리를 산다. 겉보기에 이 가족은 시련을 이겨내고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재건된 가족의 풍경에서 '조화'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사회인과 가장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브라이언, 그런 남편의 모습을 감내해야하는 마리아, 자신의 욕구 보다는 아버지의 기대에 종속된 아이작, 떠도는 주변인처럼 보이는 마리아의 아들 조던, 이들 가족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진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이 다큐는 애국심과 같은 보수적 가치를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는 의혹을,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전쟁과 정치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유화적으로 그려냈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Father Soldier Son'이 담고 있는 가족이란 주제의 근원성, 상처와 회복의 과정은 묵직한 감정의 파고를 일으킨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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