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서 입을 내 추리닝 바지를 하나 사려는데, 순면 소재로 된 것을 찾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쇼핑몰에서 검색을 해보면 죄다 합성섬유(주로 Polyester)가 혼방이 된 상품들이 주르륵 떴다. 합성 섬유의 혼용 비율이라도 좀 낮으면 좋으련만, 면은 50%도 안 되는 비율로 섞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00% 순면 소재의 옷은 내구성과 복원력이 혼방 섬유에 미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폴리에스터 혼방 옷을 피하는 이유는 피부에 닿는 감촉도 좋지 않고, 세탁 시 미세 플라스틱이 계속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예전에도 순면으로 된 추리닝은 좀 찾기가 어렵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은 순면 소재의 홈웨어를 거의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추리닝뿐만 아니라 티셔츠의 경우에도 순면 제품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특정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합성 섬유를 혼방한 의류들은 넘쳐나는데 천연 소재의 옷들은 씨가 말라버린 듯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보니 그런 현상 뒤에 가려진 산업적 배경을 대략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면섬유를 만드는 면화 가격의 상승에 있었다. 면화는 매우 돈이 많이 드는 작물이다. 특히 이 작물을 재배하는 데에는 엄청난 '물'이 소모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면화는 결코 환경친화적이지 않다. 노동집약적이며 환경 파괴적인 이 작물의 가격이 이전부터 낮게 형성된 데에는 그 주된 재배 지역이 중앙아시아라는 점에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수자원을 빨아들이며 면화 생산지는 늘어갔다. 우리가 이전에 흔하게 입었던 값싼 면 티셔츠는 그런 이유로 가능했다.

  하지만 '물'은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화수분이 아니었다. 호수와 지하의 수자원이 고갈되어 감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면화 생산 지역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에 더하여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직격탄을 면화 재배 지역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면화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재배 면적의 감소와 더불어 물류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자, 면화 가격이 이전에 비해 급등했다. 의류 생산업체들이 예전의 가격으로 면 의류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당면한 현실이었다. 소비자들은 가격 상승에 민감하다. 그러니 생산자들도 머리를 쓸 수밖에 없다. 가격이 오른 면섬유를 쓰는 대신에 값싼 화학 섬유를 혼방해서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내가 순면 소재의 추리닝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입던 질 좋고 값싼 옷들을 이제는 구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것도 같다. 이것은 단지 의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제품의 생산 원가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석유를 비롯해 원재료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더불어 인건비도 오를 수 밖에 없다. 일상을 엄습하는 고물가의 공포는 이미 Covid-19의 대유행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내가 Shadow Inflation이 미국을 덮치고 있다는 뉴욕 타임즈의 글을 읽은 것이 2021년 10월이었다(https://www.nytimes.com/2021/10/10/upshot/shadow-inflation-analysis.html).

  나는 당시에 그 기사를 읽으면서도 인플레이션과 물가 인상은 남의 나라 일이려니 했다. 그러던 것이 작년과 올해 들어서 말도 못하게 뛴 물가에 놀라고 있다. 식료품값은 체감상 30~40%, 어떤 것들은 50%가 넘게 오른 품목들이 있다. 전기 요금을 비롯해 가스 요금과 같은 공공 요금, 개인 서비스 요금도 함께 올랐다. 오른 가격을 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그러니 요새는 장을 볼 때, 뭔가 좀 저렴한 가격에 나왔다 싶으면 물건을 쟁여놓는 습관까지 생겼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보면 때로 허탈할 때도 있다. 이전보다 제품의 중량이 줄어들었거나, 재료가 달라졌거나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제조사들도 갑작스런 가격 인상이 부담스러우니 그런 꼼수를 쓰면서 생존의 묘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지금의 정부에게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념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대통령의 정치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작정이다. 그저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면서 이 길고 힘든 고물가의 터널을 지나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순면 추리닝 바지를 왜 구하기 힘든지 그 이유를 찾는 여정은 이렇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용어 설명

그림자 인플레이션(Shadow Inflation):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과 양이 이전에 지불했던 동일 금액에 대비해서 떨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 예를 들어 당신이 즐겨찾는 음식점이 있다고 하자. 음식값은 오르지 않았는데, 그곳의 음식이 언제부터인가 양도 적어지고 재료도 부실해진 것을 당신은 알아챈다. 그렇다. 그것이 그림자 인플레이션이다.
 
Shadow Inflation: the phenomenon of decreasing quantity or diminishing quality of goods and services compared to a comparable purchase that previously had more value at the same price point: Does your favorite restaurant suddenly have smaller portions, cheaper ingredients, or fewer servers, for the same old price? Blame the economy for this shadow inflation(출처: www.diction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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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에 엄마를 산책시키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 입구를 지나가는데, 거기에 못 보던 소식지가 있었다. '**구 노인회 소식지'라고 적힌 4쪽 자리 신문이었다. 엄마가 공원 벤치에서 깔고 앉으면 좋겠네, 그런 마음으로 한 부를 집어 들고 왔다. 뭐 노인회 회원들 공치사나 적혀 있겠지 싶어서 별로 읽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첫 페이지의 글이 유독 눈에 와서 박혔다. 글쓴이는 치매 노모를 둔 사람이었다.

  얼핏 보기에 그 글은 시 같았다. 단문으로 띄엄띄엄 줄을 바꿔가며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매우 간결하게 써 내려간 그 글의 행간에는 치매 간병을 하느라 9년을 보낸 이의 고통이 베어져 있었다. 처음에 글쓴이는 노모의 간병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집에 보냈다. 모친은 요양보호사가 집안 물건을 훔친다면서 욕하고 헐뜯었다. 외부 사람을 집에 들이기 싫어하니, 글쓴이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친을 보살폈다. 그런데 워낙 강골의 성격을 지닌 어머니는 병증이 심해지면서 자식들을 꽤나 들들 볶았던 모양이다. 긴병에 효자없다고 자식들은 간병에 넌더리를 내기 시작했다. 글쓴이의 형제들은 논의 끝에 모친을 요양원에 보내려 했다. 노모가 안가겠다고 버티며 실랑이하는 사이에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제 요양원에서 지내는 모친은 글쓴이가 면회 갈 때마다 그곳에서 자기를 빼달라며 울며 매달린다고 했다.

  '부모 잘 모시는 것을 자식의 도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저는 어머니 돌아가시기만을 바라는 패륜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그 글귀에 이르자 글쓴이의 어려움과 슬픔이 절절히 느껴졌다. 스스로를 패륜아로 지칭한 글쓴이를 그 누가 비난하고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나는 새삼 '좋은 글'의 요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오늘 읽은 이 짧은 산문은 무슨 대단히 박학다식하거나 유려한 문체로 쓰인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글쓴이의 진심은 글의 투박한 외면을 뚫고 전면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때로 진심, 우리가 진정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문체(style)가 주는 즐거움과 감동을 뛰어넘는다. 자기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하는 개방성이야말로 좋은 글쓰기의 기본 요건이 된다.

  나는 오늘도 엄마를 모시고 아침 공원 산책을 다녀왔고, 낮 동안에 엄마를 보살펴 드렸다. 이렇게 지낸 지가 어느덧 2년째이다. 엄마는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방금 했던 이야기를 고장이 난 테이프 틀어놓듯 반복한다. 그렇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이 밀려있다. 최근에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메일 박스에 쌓이는 뉴스 레터와 외국어 공부를 조금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같은 일상이 다시 반복된다. 이건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아이구, 이 사람 정말 힘들겠구나."

  엄마는 내가 깔고 앉으라고 준 노인회 소식지를 읽고 나서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을 바람에 공원의 나무들은 우수수 낙엽을 떨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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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소금 포대 근처에 하얀 가루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오래된 집이라 베란다 천장에서 페인트가 탈락한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건 소금을 담은 비닐 포대의 조각들이었다. 그랬다. 비닐이 삭아서 조각조각 떨어지고 있었다. 이 소금을 샀던 때는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던 해였다. 그 해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소금값이 급등했었다. 급한 마음에 나도 부랴부랴 20kg 소금 한 포대를 샀었다. 그렇게 소금을 사놓고 간수를 빼놓는다고 베란다 한 귀퉁이에 두었다. 이제 12년이 지난 지금 그 소금 포대의 비닐이 시간의 무게를 못 이기고 삭아내리고 있었다.

  그 소금을 그동안 먹지 않고 놔둔 건... 아끼느라 그랬다. 뭐랄까, 나에게 그 소금은 오염되지 않은 바다가 준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다. 나는 그 소금 포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배출이 시작되면서 다시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소금 사재기 열풍 속에서도 내 마음은 편안했다. 나에게는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기 전에 생산된 소금 한 포대가 있다! 혼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면 아주 내가 부자가 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소금 포대가 삭아내리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참 세월의 흐름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나는 소금 포대 정리에 나섰다. 꽁꽁 동여맨 포대의 끈을 풀자 단단하게 굳은 소금이 보였다. 소금을 퍼내려고 했지만, 간수가 다 빠지다 못해 굳어버린 소금은 돌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주방 가위로 소금을 조금씩 깨나가면서 소금 덩어리를 해체해 나갔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포대였다. 부서지는 비닐 조각들이 소금 속에 계속해서 섞였다. 나는 비닐 포대와 접한 가장자리 부분은 놔두고 안쪽을 우물 파 내려가듯 덩어리를 부수어 가며 소금을 퍼내었다. 그렇게 큰 항아리에 깨끗한 소금을 채워나갔다.

  포대 바깥 부분의 소금은 단단한 덩어리인 채로 크게 조각을 내어 항아리에 담았다. 눈가루처럼 날리는 비닐 조각들이 꽤나 신경 쓰이기는 했다. 나는 소금 덩어리의 겉면을 대충 털어내면서 비닐 조각들을 제거했다. 그렇게 20kg 소금 한 포대를 항아리 세 개에 나누어 담았다. 베란다는 어느새 소금밭이 되어있었다. 진공청소기를 2번이나 돌렸는데도 소금 알갱이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소금 덩어리를 부수고 퍼내어 담느라 손목은 시큰거렸다. 팔목은 소금 덩어리에 긁혀서 상처가 나 있었다.

  겨우 베란다 청소를 해놓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소금을 담을 때 계속해서 부서지던 비닐 포대 조각들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런 소금을 그냥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에, 나는 시험 삼아 항아리의 소금을 담아서 물에 씻어 보았다. 비닐 조각들이 물에 둥둥 떠다녔다. 두어 번 헹구면 되겠지. 하지만 무려 5번이나 헹구고 나서야 비닐 조각이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양재기 가득 담았던 소금은 이제 한 움큼밖에 남지 않았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나는 조침문(弔針文)을 지은 조선 시대 유씨 부인의 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이 순수한 소금을, 한갓 비닐 조각들 때문에 내가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거듭해서 내 어리석음과 무신경함을 탓하고 있었다. 아니다, 분명 이 귀한 소금을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구글 신이 있다. 나는 간절히 구글 신의 가호를 빌며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랬다. 유튜브에는 천일염 잘 씻는 법을 알려주는 이가 있었다. 소금을 씻을 때는 미리 받아놓은 물에다 씻어야만 녹아서 버리는 소금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천일염을 물에 씻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소금에 섞인 이런저런 이물질들을 제거하는 데에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씻은 소금을 체에 밭쳐서 한 며칠 두면 물기가 빠진다. 물기를 더 제거하기 위해서는 키친 타월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두면 되었다.

  "아, 그거 못 먹겠네. 그냥 버려."

  밤늦게 전화로 내 하소연을 들은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지난 12년 동안 든든한 만기 적금과도 같았던 소금은 이제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나에게는 앞으로 물에다 씻어서 써야 할 20kg의 소금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 소중한 소금을 버릴 수는 없다. 시큰거리는 손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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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은 계란의 껍질이 죽어도 안까질 때: 계란을 잘 삶는 방법

  일단 물을 가스불에 올려놓는다. 물이 끓으면 불을 끈다. 그때에 달걀을 물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그 시점부터 보통 10분 정도 삶으면 완숙에 가깝게 된다. 불을 끄고 뜨거운 물을 버린 후, 계속해서 찬물을 붓는다. 찬물에 적어도 15분 이상 계란을 놔둔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계란은 껍질이 잘 까진다. 하지만 매우 신선한 계란의 경우에는 껍질이 잘 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참조하시라. 의외로 식초나 굵은 소금을 넣는 것은 껍질을 잘 까지게 하는 데에는 별로 효과가 없다.


2. 스텐 보온병의 찻물때 제거: 깨끗한 스텐 보온병 만들기

  보온병에 커피나 차를 넣어서 마시다 보면 보온병 내부에는 자연스럽게 찻물때가 낀다. 이럴 경우에 그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무리하게 수세미를 쓸 필요가 없다. 적당량의 과탄산소다만 있으면 된다. 물때가 낀 보온병에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과탄산소다를 넣는다. 그리고 거기에 끓는 물을 붓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반드시 '끓는 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미적지근한 물이나 적당히 뜨거운 물 정도로는 찻물때 제거가 어렵다. 그렇게 10분 정도 놔둔다. 마찬가지로 도자기 머그컵의 찻물때도 그렇게 제거할 수 있다. 과탄산소다를 녹인 물은 부엌 개수구에 버리면 자연스럽게 배관 청소도 된다.


3. 운동화 밑창이 떨어졌을 때: 운동화 전용 접착제를 산다

  러닝화나 운동화를 신다 보면 밑창이 갑피와 분리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럴 때 쓰는 전용 접착제가 있다. 대개의 운동화 밑창은 폴리우레탄(polyurethane)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같은 계열의 성분을 쓴 접착제를 써야 잘 붙는다. 다이*의 운동화 전용 접착제는 폴리우레탄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마 전, 내 러닝화의 앞코 부분이 약간 벌어져서 그 접착제를 한번 써보았다. 이게 정말 붙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써보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앞코 부분은 멀쩡히 잘 붙어있다. 이 접착제는 사용할 때 바로 붙이면 안된다. 접착제를 붙이려는 부위에 짜놓고, 5분이나 10분 정도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끈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뒤에 강한 힘을 주어서 두 접착면을 붙인다. 집게 같은 것으로 접착 부위를 고정해서 반나절 정도 놔두는 것이 좋다.


4. 다 쓴 칫솔의 쓸모: 창틀의 틈새 청소

  칫솔모가 휘어진 칫솔은 곧바로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으로 보내지 말자. 창틀의 틈새 청소와 방충망의 부분적인 먼지 제거에 헌 칫솔은 매우 유용하다. 어느정도 더 닳아질 때까지 그 칫솔을 창틀 청소에 쓸 수 있다.  


5. 끈적거리는 모든 것은 가라: 오렌지 껍질의 활용 비법

  스카치 테이프를 자르는 전용 가위는 쓰다 보면 테이프 끈기 때문에 잘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오렌지 껍질을 써본다. 오렌지 껍질의 겉부분을 가위의 날 부분에 반복해서 문질러주면 된다. 끈적거리는 테이프 자국이 제거되면서 반짝거리는 윤까지 난다. 오렌지 껍질은 개수대나 후라이팬의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6. 생선과 육류를 쓴 식기의 비린내 제거: 락스 희석액을 쓴다

  락스는 화장실 청소에만 유용한 아이템이 아니다. 그것은 주방에서도 꽤 쓸모가 있다. 생선이나 육류 요리 후, 식기를 아무리 깨끗이 설거지해도 비린내가 남는다. 그럴 때는 락스를 적당량의 물에 희석해서(락스 용기 뒷면의 사용법 참조) 식기를 헹구어 낸다. 락스는 물과의 희석 비율만 정확히 지킨다면 매우 좋은 소독제가 된다. 내가 읽은 가장 놀라운 락스 활용법은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사의 글에서였다. 온갖 기생충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오지의 선교사는 채소 식재료를 락스 희석액에 반드시 담근 후에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기생충을 비롯해 벌레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락스는 그곳 선교사에게는 생존의 필수품인 셈이었다.


7. 쌀과 곡식의 보관: 생수 PET병을 모아서 쓰라

  쌀을 보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장고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10kg 또는 20kg이상의 쌀을 냉장고에 두고 먹기는 쉽지 않다. 물론 햅쌀의 경우는 냉장 보관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생수 PET병에다 쌀을 소분해서 담는다. 그렇게 담은 쌀을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둔다. 쌀을 담은 병마다 실리카겔 작은 봉지를 하나씩 넣어두는 것도 좋다. 10kg 쌀 한 포대를 담는 데에는 보통 2L 생수병 6개 정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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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나서 발바닥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족저근막염이 도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 병이 도지는 조짐이 있기는 했다. 그럴 땐 좀 쉬어야 하는데, 그걸 그냥 무시하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 가을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산책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근처 공원을 1시간 남짓 걷는 것이 전부이다. 무슨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매일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족저근막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족저근막염의 원인을 살펴보니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띈다. 노화(老化). 나이가 들면서 몸 이곳저곳이 아픈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정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찾아서 보니, 족저근막염에는 휴식이 답이란다. 의사는 그 병엔 소염진통제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늘 하던대로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신발장에서 비치 샌들을 꺼내어 신었다. 이 샌들은 10년 전인가, 인터넷에서 5천원을 주고 산 것이다. 족저근막염이 도졌을 때마다 나는 이 샌들을 꺼내어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 한 며칠, 그 샌들을 신고 집에서 걷다 보면 통증이 좀 잦아들곤 했다. 내일은 산책을 나가지 말고 쉬어야지. 생각은 그렇게 해도 한편으로는 걸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또 나가게 된다. 

  올해는 이래저래 몸이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 봄에는 오십견이 생겨서 팔을 드는 것이 꽤나 고통스러웠다. 매일 억지로 스트레칭 체조를 해가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을에 접어드니 이제서야 어깨를 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늙어서 그래. 혼잣말을 하면서 거울을 보니, 앞머리 사이로 뭉텅이진 흰머리가 보인다. 올해 들어서 흰머리가 더 많이 나고 있다. 그동안 염색을 하기 싫어서 안하고 살았다. 귀찮기도 하고, 염색약 알레르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염색을 해야한다면 뭘로 해야하나... 알아보니 염색이 되는 샴푸도 있었다. 그 샴푸는 가격도 꽤나 비쌌다. 이걸 써보면 어떨까? 

  '회사의 부장님이 이 샴푸를 쓴다 하더라구요. 염색은 자연스럽게 잘 된대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써볼까 싶었죠. 그런데 부장님 손톱이 눈에 띄는 거에요. 손톱 밑이 거무스름하게 물이 들어있어요. 아, 저 샴푸를 쓰면 손톱도 저렇게 색이 변하는구나... 그걸 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던데요.'

  누군가 그런 글을 써놓았다. 그렇구나. 그 샴푸는 염색의 귀찮음을 상쇄하는 대신에 손톱에도 검은 물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문득 오래전, 엄마의 흰머리를 뽑을 때가 생각났다. 내 모친은 일찍부터 머리가 세었다. 엄마에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때가 30대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그 즈음에 엄마는 나에게 흰머리 하나에 10원을 주겠노라며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흰머리를 뽑다가 더이상 흰머리가 보이지 않으면 검은 머리카락을 뽑고는 엄마를 살짝 속이곤 했다. 엄마는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팔순이 가까운 엄마의 휑한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늙음이 주는 좋은 점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나이가 들면 인생의 지혜가 생긴다느니 하는 말은 내게는 그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체력은 떨어지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니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긴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읽으니 장년의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때 배웠던 중국어를 독학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 한 2년쯤 되었다. 의외로 뭔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이걸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가게 되면 그곳 현지인에게 가벼운 인사말을 건넬 수는 있을 것이다.     

  어제, 매일 확인하는 Merriam-Webster 홈페이지의 'word of the day'는 'foliage'였다. '잎사귀'를 뜻하는 이 단어는 중세 프랑스어의 'foille(잎)'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니 나무의 생장은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봄이 되면 작은 새잎들이 돋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무성해지며, 가을에는 그 잎들이 모두 떨어진다. Merriam-Webster는 'foliage'의 연관 단어로 'deciduous'를 알려준다. 그 단어는 '잎이 떨어지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잎이 떨어져도 봄에 다시 녹색의 잎을 틔우는 나무와는 달리 사람의 인생은 점차적으로 노쇠해질 뿐이다. 늦은 밤, 나는 발바닥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어쩌겠는가, 늙어감을 그저 견디며 살아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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