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영웅은 정말 자기 객관화를 못 하나 봐요. 아니, 콘서트를 열려면 드넓은 평야에서 하든가 해야지. 그런 작은 콘서트장이 웬 말이랍니까." 

  누군가 임영웅 콘서트 티켓 예매에 실패하고는, 그렇게 인터넷 댓글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기 객관화를 못 한다라는 말은, 자신의 공연을 보려는 관객 수를 너무 적게 가늠했다는 뜻이다. 전 국민 효도 테스트. 임영웅 티켓 예매와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이 가수의 팬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솔직히 나는 트로트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가수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엄청난 인기-그것이 중장년층에 한정된다 해도-를 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트로트 가수를 넘어서 어르신들의 아이돌이 되어버렸다. 가수로서 노래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감이 가는 외모도 임영웅의 인기에 한몫한다. 하지만 이 가수가 구축한 견고한 팬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는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가수로서 성공하기까지의 '서사'이다. '영웅'이라는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그 이름은 예명이 아닌 본명이다. 어떤 면에서 이 가수의 성공 신화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 말한 '영웅의 서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임영웅은 아주 어린 시절에 부친을 사고로 잃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한 그에게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가수의 꿈을 가지고, 무명 가수로서 지낸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그는 케이블 TV 방송국의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매주 펼쳐지는 노래 경연에서 시청자들은 가수 개개인들이 살아온 삶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째 쟤들은 하나같이 다 힘들게 살았나 모르겠다. 저런 데라도 나와서 정말 다 잘되었으면 싶어."

  임영웅이 나온 '내일은 미스터 트롯' 경연을 보고, 나의 모친은 그런 말을 하셨다. 임영웅뿐만 아니라 최종 경연에 오른 다른 참가자들 모두에게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 낸 과거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 제작진은 그런 참가자들의 개인사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잘 포장할 줄 알았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 기존의 노래 경연 대회와 달랐던 점은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잘 다듬어진 참가자들 각각의 서사는 경연이 진행될수록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덤으로 이어졌다. 그 가수들의 과거는 참으로 불운했지만, 이제는 그 어려움을 딛고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간절한 소망 말이다.

  그러한 팬덤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에 내재된 계층적 단절과 소외에 대한 은유도 자리한다. 트로트 장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는 대부분 해방 이후에 나고 자란 중장년층 사람들이다. 그 세대의 젊은 날은 모두가 가진 것 없이 힘들게 견뎌낸 가난, 번듯한 삶에 대한 성공의 열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중산층에 진입했을까? 1970년대의 개발독재, 1980년대의 부동산 투기 열풍을 지나면서 그 과실을 수확한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에서 계층 상승의 욕망을 실현하기는 어려워졌다. 1990년대 IMF 사태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의 계층적 유동성은 점점 더 작아졌다.

  이제 그 시대를 거쳐온 세대는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좌절된 계층적 욕망을 새로운 세대의 가수들에게 투사한다. 그 가수들 가운데 중산층 출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편모슬하, 조실부모, 가난, 오랜 무명 시절... 이러한 굴곡진 개인사는 가수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재능이 있음에도 단지 '불운'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이 가수들의 노래를 열심히 듣고 응원한다면 이들에게는 새로운 앞날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트로트 경연 대회 참가 가수는 인기 가수 ***가 아닌 우리 ***가 된다. 임영웅의 어르신 팬들은 그를 '우리 영웅이'라고 지칭한다. 그들에게 있어 임영웅의 노래는 힘들었던 삶에 대한 위로이자, 팍팍한 현실에서의 활력소가 된다. 어쩌면 임영웅의 팬들은 트로트 경연대회의 시청을 시작으로 임영웅의 '영웅 서사'를 함께 만들어 온 공동의 창작자일지도 모른다. 조지프 캠벨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화 속 영웅이 마주하게 되는 고난과 시련, 조력자의 등장, 귀환에 이르는 일련의 여정을 형상화했다. 그 신화 속의 영웅과 가수 임영웅이 다른 점이 있다면, 임영웅은 친근한 이웃집 청년, 집안의 막내아들과도 같은 평범함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평범함은 역설적으로 임영웅에 대한 거대한 팬덤과 직결된다. 이 가수에게 있어 팬들은 무수한 어머니, 아버지가 된다. 확장된 가족 공동체로서 임영웅의 팬덤에 내재된 연대감, 소속감은 매우 끈끈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임영웅의 '영웅 서사'적 팬덤과는 별개로, 나는 그가 가수로서 성취한 대중음악적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품는다. 분명, 임영웅이 가진 세련된 창법은 트로트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손쉽게 해체해 버린다.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곡하고, 그 노래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낸다는 점도 가수 임영웅이 가진 장점이다. 어쩌면 임영웅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과, 자신에게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트로트 사이에서 그럭저럭 줄타기를 잘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흘러간 가수들의 트로트 노래를 재발견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새롭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그의 노래에는 확실한 '빛깔'이 없다. 트로트 경연 대회 우승자로서의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그가 '돈 잘 버는 성공한 트로트 가수'에서 '독창적인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가수'로 나아가는 것. 어떤 의미에서 그 길이 가수 임영웅이 진정한 '영웅 서사'를 완성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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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 어느 해였던가? 신춘문예 당선자의 소감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당선자는 기차를 타고 여행 중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홀로 떠나는 여행길에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는 건 참 좋겠구나. 혼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오늘, 나는 우체국에서 어느 신문사에 보내는 신춘문예 원고를 등기로 부쳤다. 이십 대의 어느 날이었던가, 그때 보내고는 나는 신춘문예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랬다가 어제 문득, 올해 신춘문예 일정을 확인해 보고는 응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에이, 거긴 문예창작과 애들이 목숨 걸고 글 써서 달려드는 전쟁터인데 내가 뭘... 그래도 내가 써놓은 글을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나름 뿌듯하다.

  영상원에서 공부할 때, 나는 연극원 수업을 좋아해서 그쪽 수업을 꽤 많이 들었다. 내가 들은 수업 가운데에는 서사창작과 수업도 있었다. 수업 과제 때문에 동물원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법원 재판을 방청한 기억도 난다. 소설가 천운영 씨가 강의했던 수업이었다. 천운영 씨는 소설 쓰기의 기본을 '취재'로 생각했다. 그 수업의 말미에 내가 무슨 소설을 써서 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소설은 현실에 천착한 글쓰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내가 그 수업에서 얻은 나름의 수확이었다. 

  서사창작과 수업에서는 극작과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기억나는 것이 시 창작 수업이었는데, 매주 시를 한 편씩 써와서 발표했다. 그렇게 시를 써서 발표하면 수강생들은 돌아가면서 그 시에 대해 평을 한다. 그것을 '합평'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이 수강생 각자에게 절대로 평온한 시간은 아니었다. 다들 자기 글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애들이, 남이 자기 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내가 그 수업 시간에 확인한 것은 나에게는 시에 대한 재능은 없다, 는 사실이었다. 그 수업 시간에 만났던 두 사람은 이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시인과 소설가가 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러가 버렸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이 사자성어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은 언젠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뜻이다. 나는 기억이 사라져가는 엄마에게 매일 사자성어를 외우게 하는 공부를 시킨다. 아직 언어에 대한 인지능력만은 손상되지 않고 온전한 우리 엄마는 대략 서른 개의 사자성어를 틀리지 않고 다 맞춘다. 거기에는 '낭중지추'도 있다. 나는 엄마에게 그 사자성어의 뜻을 말할 때마다 기묘한 서글픔을 느낀다. 과연 세상이 재능을 가진 사람을 다 알아주는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만이 아니다. 문운(文運)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자신의 글쓰기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그저 버겁고 괴로운 과업이 될 뿐이다. 아마도 신춘문예 당선도 그 '문운'이라 부르는 것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우체국에서 받은 등기우편물 영수증의 번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게 그건 마치 로또 복권의 번호 같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단'이라는 장밋빛 꿈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들이붓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네 글은 말이다. 디테일이 좀 부족해."

  시나리오 창작 수업을 강의하셨던 칠순의 소설가 선생님은 나에게 딱 그 한마디만 하셨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노작가 선생님의 그 말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되새긴다. 아마도 내가 받은 창작 수업은 그 짧은 조언만으로도 족한지도 모른다. 오늘 쓰는 이 글에는 디테일이 살아있을까? 이런 평범한 수필을 써 내려가는 일도 늘 그리 쉽지는 않다.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나 바닷가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숙제 같다. 때론 힘들고 지루하지만, 재미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좀 어떤가. 오늘도 나는 이렇게 글 한 편을 써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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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3-11-28 06:49   좋아요 0 | URL
신춘문예는 작가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등용문으로 여겨집니다. 수차례 도전하여 당선되는 작가들의 당선 소감을 보면 작가 지망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바탕으로 신춘문예의 명맥을 잇는 듯합니다. 희소식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푸른별 2023-11-28 17:10   좋아요 0 | URL
요즘같이 다양한 매체를 통한 등단의 기회가 있는 시대에, 신춘문예의 의미가 무얼까 생각하게 되네요. 순수문학 등단의 최후의 보루, 같은 느낌도 들고요. 재능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그 바늘귀 같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겠지요. 자성지 님의 좋은 댓글, 잘 읽었습니다.
 

 

  "홍삼은 먹어도 되나요?"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그것이라고 한다. 나는 의사가 쓴 수필집을 읽다가 그 부분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진료를 봐야 할 환자는 밀려있는데, 기껏해야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시간을 빼앗다니. 의사 입장에서는 꽤나 짜증스러운 질문인 모양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 질문이 환자가 정말로 의사한테 하지 말아야 할 무의미한 질문인가? 일전에 안과 진료를 받는데 그런 비슷한 질문을 한 환자를 보았다. 진료실 문이 열린 상태여서 의사와 환자가 나누는 대화가 대기실까지 다 들렸다.

  "환자분, 잘 들으세요. 백내장은 영양제 먹는다고 해결이 안 된단 말입니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환자는 아마 루테인이나 뭐 그런 영양제 이야기를 하면서 의사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 안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응대하는 태도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큰 소리로 무안을 주는 걸까, 대기실에서 그 대화를 듣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가 말을 좀 길게 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비단 홍삼이나 영양제 질문 같은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여름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종합병원에 다니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의사를 만난다. 그런데, 이 의사 선생도 뭔가 내 말이 길어지면 초조한 기색을 내비친다. 그럴 때 이 의사가 주로 하는 행동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얼른 진료실을 나가야겠구나.

  특별히 내 주치의가 불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 선생은 자신이 보기에 환자가 불필요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듯 하다. 그렇다고 내가 진료실에서 말을 길게 하지도 않는다. 나는 병원 가기 전에 미리 할 말을 정리해서 타이머 켜놓고 연습한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딱 5분으로 정해놓고 말이다. 그 의사 덕분에, 이제 나는 진료실에서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 것도 같다.

  유튜브에서 그런 동영상을 보았다. '대형병원에서 의사 진료를 잘 받는 방법'이라는 동영상에는 서울 대학 병원 의사가 나와서 그 비법을 알려준다. 10분 남짓한 그 짧은 동영상은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지켜야 할 매뉴얼 북 같은 인상을 준다. 대형병원에서 의사가 환자 1명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5분 정도이며, 그 이상을 쓰려면 의료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그 의사는 강조한다. 그러니까 저렴한 의료 수가만큼 의사가 환자한테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 현실에서 환자는 진료실에서 자신에게 배분된 그 '5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진료받을 때는, 증상을 객관적 수치로 구체적으로 진술할 것. 예를 들면 언제부터 아팠는지, 통증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그 양상은 어떠한지 의사에게 말한다.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환자가 받을 검사를 지시한다. 이 때 환자는 자신이 받는 검사가 무엇인지 확인한다. 그렇게 해서 치료가 진행중일 때, 추가적으로 처방되는 약이나 검사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환자가 의사에게 다른 대안은 없는지 물어볼 수 있다.

  '아니, 이 양반은 철저히 의사인 자기 입장에서만 말하는구먼. 이건 뭐 환자가 의사한테 다 맞춰줘야 하네.' 

  누군가 그 동영상에 그런 댓글을 달아놓았다. 그 댓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큭,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환자분들 잘 들으세요. 진료실에서는 의사한테 딱 필요한 말만 하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종이에다 쫙 질문 써서 물어보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홍삼 먹어도 되나요, 그딴 질문은 하지 마시고요. 내가 그 동영상을 아주 거칠게 해석해 본다면 그러하다. 몸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가는 건데, 환자 노릇 하기도 참 더럽게 힘드네...

  진료실에서 의사 붙잡고 자기 몸 아픈 이야기를 한없이 늘어놓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환자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끊어내는 것도 의사의 진료 비법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많은 의사가 성토하는 현재의 의료 수가 체계에서, 의사가 진료 시간 잡아먹는 환자를 '극혐'한다는 것도 이젠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 사실을 모르는 환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자, 그러면 다음 예약은 3개월 뒤로 하겠습니다. 환자분, 더 물어보실 것은 없나요?"

  열린 안과 진료실 문 사이로 의사의 말소리가 들린다. 환자가 무슨 말을 하자, 의사는 다시 한번 세극등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중년 남자 환자의 진료가 끝났다. 그 의사 선생은 올해 내가 만난 의사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다.

  이제 삼십 대 중반의 젊은 그 의사는 의사가 지녀야 할 가장 좋은 덕성(德性)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재능이다. 안과 의사로서 눈을 잘 보는 것은 기본이다. 이 선생이라면 '루테인 먹어도 되나요?' 같은 질문에도 웃으면서 말해줄 것 같다. 환자가 의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 직업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내포되어 있다. 올해 내가 만난 여러 의사 가운데,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좋은 의사는 그 안과 의사 단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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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1-25 22:38   좋아요 0 | URL
환자는 환자인거지
좋은 환자노릇도 해야하다니..
거참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씁쓸하네요.
따지고보면 의료수가가 낮다고
그들이 받는 급여수준이 일반직장인에 비할바가 아니지 않나요? 요즘 동네의원 의사들도 불친절한 분이 어찌나 많은지 기분이 나빠 병원가기를 자꾸 미루게 되거든요.
다른 병원가자니 또 다시 시작해야하고 다시 설명해야하고
좀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푸른별 2023-11-25 22:46   좋아요 1 | URL
은하수님도 그런 경험이 있군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들 한번쯤 겪지 않았을까요? 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는 것도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아요. 아픈 건 참지 말고 병원에 가세요. 은하수님의 병을 잘 치료해줄 좋은 의사 선생님을 꼭 만나게 될 겁니다.
 

 

  "저, 선생님이 등록 요청한 논문은 학사 학위논문이잖아요. 그건 학위 논문에 해당하지 않아요. RISS에서 등록, 검색되는 논문은 석박사 논문만 해당하거든요."

  RISS(학술연구 정보서비스)의 담당자는 예의 바르지만 건조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럼, 학사 논문이 RISS에 등록되는 방법은 없는가 나는 물었다. '기타 논문'으로 접수하면 된단다. 내가 그 '기타 논문'으로 접수해야 할 논문은 영상원 예술사 학위 취득 논문이다.

  그 논문을 나는 쓸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는 반백이 되고, 급기야 폐렴까지 걸렸었다. 그런 사실 따위는 '학사 학위'라는 사실 하나에 무의미하게 수렴될 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 영재를 육성하기 위해 문화체육부가 세운 국립 예술학교이다. 이 학교는 특이한 학위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학사 학위에 해당하는 '예술사'와 일반 대학원의 석사 학위에 해당하는 '전문사'가 그것이다. 내가 예술사 학위 논문을 쓴 지 15년이 지나서야 RISS에 내 논문을 등록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 논문을 표절해서 레포트 사이트에서 팔아 처먹고 있는 표절 잡범을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표절 레포트를 발견한 것은 11월 10일이었다. 내 논문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지 궁금해서 논문 제목을 검색창에 써보았다. 그랬더니 바로 뜨는 것이 그 표절 잡범이 작성한 레포트였다. 그 쓰레기 글은 아수라 백작의 얼굴 같았다. 내 논문과, 같은 과 1년 선배의 논문을 반반씩 짜깁기한 표절 레포트였기 때문이다. 그 머저리가 레포트를 등록한 때는 2010년. 그러니까 13년 동안 그 잡범은 남의 논문을 베껴서 돈을 벌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벌었을까? 스타벅스 커피 몇 잔 값이나 되려나? 나는 새삼 그 액수가 궁금해졌다.

  그 인간은 내가 피와 땀으로 써내려간 논문을 표절했다. 나는 그 파렴치한 행위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우선, 그 표절 잡범의 글을 대행해서 팔아주고 있는 레포트 사이트에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허섭스레기 같은 그 사이트는 고객 서비스 따위는 아예 없는 모양이다. 내가 보낸 메일에 아무런 답이 없었다. 나는 그 사이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저작권 침해 신고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거기에 신고하려면 '증빙자료'가 있어야 한다. 즉, 내가 표절자가 베낀 원문 저작자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냥 단순하게 내 논문 파일 원본을 그 레포트 사이트에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학위 논문 원본을 그따위 회사에 절대로 보내고 싶지 않다. 대신에 공신력 있는 RISS 사이트에서 내 논문이 검색되도록 하고, 그 링크를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건 좀 시일이 걸리는 모양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표절 잡범이 베낀 내 논문의 일부분을 이미지 파일로 떠서 압축 파일을 만들었다. 마침내 오늘, 그 레포트 사이트에 저작권 침해 신고를 했다.

  그렇게 저작권 침해 신고를 한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논문의 저작권을 새롭게 변경했다. 모교 도서관의 논문 등록 담당자가 그 과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내 논문의 영리적 목적의 이용과 내용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 논문을 dCollection에 새롭게 등록했다. 디콜렉션은 디지털 학술 정보 유통 서비스로 대학의 학술 정보를 모아두는 일종의 거대한 지식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각 대학교의 학위 논문이 이곳에 등록되면 디지털화된 자료가 연구자들에게 제공된다. 이곳에서는 '학사 학위' 논문도 '논문' 취급을 해준다. 내가 영상원을 졸업할 때에는 학위 논문을 학교 도서관에만 제출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논문 제출 시스템이 바뀌어 예술사 논문도 디콜렉션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다.

  그동안 내 논문은 한예종 도서관의 전자 검색 서비스로만 한정적으로 검색될 수 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 표절 잡범을 영상원 출신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외부인은 검색할 수 없는 영상원 졸업생의 논문을 베껴다가 비열하게 팔아 처먹은 그 잡범은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쓰레기 잡범이 13년 동안 표절 레포트로 푼돈이나 벌고 있을 때, 내 논문은 그 머저리의 레포트에 참고 문헌으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모교의 전자 도서관에 처박혀 있던 내 논문을 세상 밖으로 꺼낼 필요성을 느꼈다.

  RISS에 학위 논문이 아닌 '기타 논문'으로 등록되어도 좋다. 그래. 학사 학위 논문은 연구 가치도 떨어지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무수한 종이 뭉치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 논문은 영상원에서 보낸 6년의 세월, 그 전부인지도 몰랐다. 난 가끔 그런 질문을 해본다. 내가 만약 다시 서른살로 돌아간다면 그때에도 영화를 공부하려고 할까? 참으로 괴롭고 슬픈 질문이지만, 나는 그 질문에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인생의 어떤 선택은 고통과 후회를 동반하는 것이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표절 레포트 저작권 침해 신고 건이 어떻게 끝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바대로 표절 잡범의 쓰레기 글이 레포트 사이트에서 더는 볼 수 없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도둑질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훔치는 행위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타인이 애써서 만들어 낸 무형의 지식 자산을 교묘하게 탈취하는 것도 도둑질에 해당한다. 누군가 내 논문을 표절해서 무려 13년 동안 자신의 것으로 팔아먹었다. 그러한 지적 절도 행위를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 표절 잡범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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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 신고 후기:

  내가 레포트 판매 대행업체에 저작권 침해 신고를 하고 나서 하루 뒤인 11월 24일 오늘, 업체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내가 신고한 자료는 삭제되어서 더는 서비스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업체는 해당 레포트를 등록한 회원에게 신고 내용을 알리고, 강력하게 경고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확인해 보니, 이제 그 표절 레포트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구글 검색어를 치면 레포트 제목은 그대로 나온다. 그 링크를 클릭하면 '저작권자의 신고로 삭제된 자료입니다'라는 안내문이 팝업창으로 뜬다.

  11월 10일, 내가 표절 레포트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그 레포트가 삭제되기까지 2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비록 그 표절 잡범의 사과는 받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일이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이 글을 읽고 마음으로 함께 응원해 준 독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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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1-23 23:19   좋아요 0 | URL
사필귀정!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응원하며 기다려 봅니다^^

꼬마요정 2023-11-24 00:08   좋아요 0 | URL
저도 응원합니다!!

푸른별 2023-11-24 12:03   좋아요 1 | URL
은하수님, 꼬마요정님. 따뜻한 응원의 말, 고마워요.
 

 

  어제, 2주 전에 받았던 공단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우편물은 2통이었다. 하나는 일반 건강검진, 또 다른 하나는 암 검진 결과 통보서. 마침 산책하러 나가는 길이라 겉옷 안쪽 주머니에 대충 집어넣었다. 뭔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혼자 생각에는, 안 좋은 소식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생각해 보니, 그렇게 건강을 잘 챙기며 살아오지 못했다. 먹는 것도 대충, 운동도 걷기 운동 조금. 이번에 검진할 때, 의사가 내 검진 문진표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근력 운동을 전혀 안 하시네요. 근력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전에는 달리기를 했었는데, 그것도 하다 보니 힘들어서 그만두었어요."
  "달리기는 근력 운동이 아니에요."
  "근력 운동은 그러니까... 아령 같은 거 들고 하는 운동, 그런 거 말하는 거죠? 스쿼트는 매일 조금씩 합니다."
  "스쿼트도 근력 운동이긴 하지만, 어쨌든 근력 운동량 자체를 늘려야 합니다."

  덤벨, 케틀벨, 뭐 그런 걸 사야하나...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떠올린 것은 플랭크(Plank)였다. 뭐 이런 것도 제대로 하려면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아야겠지. 그래도 유튜브로 찾아보면서 대충 감을 익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해보니, 이거 정말 너무 힘들다. 플랭크 자세로 20초씩 3번, 1세트 해내기가 무지하게 힘들다. 그다음 날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뭐든 처음은 힘들다.

  산책을 다녀와서 조심스럽게 우편물을 뜯었다. 암 검진 결과 통보서는 별 것이 없다. 일반 건강검진 통보서가 문제였다. 가족력 때문에 늘 신경을 썼던 질환이 있었다. 나는 그 병을 피하고 싶어서 지난 10년 동안 살얼음을 걷듯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결과 통보서는 이제 그 병이 내 가까이에 왔음을 알려주었다. 결국 유전(遺傳)을 이기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식탁 위에 뜯어진 우편물을 놔두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가 아픈 건 당연하다. 올해는 특히, 그동안 자주 가지 않았던 병원도 갈 일이 많았다. 고도 근시에다 노안까지 겹친 내 눈의 시력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 안경도수를 높이기 싫어서 저도수로 맞추어 버텨왔다. 안과 의사 선생은 도수를 높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조만간 안경도 새로 맞춰야 할 것 같다.

  치과 검진은 정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잇몸이 내려가고 시린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이젠 딱딱한 음식을 먹는 일은 생각도 못 한다. 전에 그런 음식을 잘못 먹었다가 치아가 살짝 깨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깨진 부분을 조금 다듬는 정도로만 끝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임플란트 안 하고 내 자연치로 버티는 것이 어디냐 싶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나이는 먹어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이십 대에 있는 것 같아."

  나는 친한 수녀님이 오래전, 나한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수녀님이 그 말을 했던 때의 나이가 얼추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스스로 내 사진을 찍는 일도 웬만해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사진 속의 내 모습은 볼 때마다 낯설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게 보이다니... 반짝거리는 청춘의 날들은 손가락사이로 어느새 스르륵 빠져나갔다. 이제는 병 때문에 고생하지 않게 조심해서, 살살 살아야지. 나는 다음 달에 병원 진료 예약을 하고 정밀 검사를 받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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