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 글렌 굴드 - 55년 녹음
바흐 (J. S. Bach) 작곡, 글렌 굴드 (Glenn Gould)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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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빌헬름 켐프를 통해서였다. 불면증을 앓는 귀족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친절한 설명서를 읽었던 때문이었을까? 괴로운 일이 있거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이 곡을 즐겨서 들었다. 그런데 켐프의 연주는 명료하기는 하지만 매우 건조하다는 느낌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장 기유가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한 골드베르크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켐프 이후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음반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만난 글렌 굴드의 음반은 참으로 낯설기 그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연주한 골드베르크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 놀랐던 것도 같다.


  그가 가진 재능에 못지않게 피아노 앞에서 일삼는 기행 때문에 더욱 더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굴드의 면모는 음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연주 속에 작게 들리는 허밍이라던가 숨소리는 이 피아니스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하는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거기에다 그의 골드베르크 연주는 일반적인 빠르기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에게 이 곡은 편안함과 위안 대신 굴드가 선사하는 긴장과 각성처럼 여겨질런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음반을 즐겨 듣는 이유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했던 피아니스트의 내면을 추측하고 엿볼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알 수 없는 여러 통증과 질병 때문에 항상 한보따리의 약병을 가지고 다녔으며, 자신만의 앉은뱅이 피아노 의자에 집착했고, 콘서트에서는 자신의 연주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며 스튜디오 녹음을 고집했던 피아니스트였다.


  그에 관한 다큐를 작년에 볼 기회가 있었다.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프랑수와 지라르의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단편”을 보고 나서도 굴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남는다. 어쩌면 한 사람의 삶을,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그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에 관한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그리고 그가 연주한 골드베르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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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입문
빌 니콜스 지음, 이선화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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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보면 더 잘 찍을 수 있을 겁니다.”

  

  지인이 다큐를 만들고 싶어하는 나에게 해준 말이다. 이미 여러 번의 제작 경험이 있는 그의 조언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했다.


  빌 니콜스의 “다큐멘터리 입문”은 나의 초조함과 불안함이 찾게 만든 책이다. 그동안 다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또 나름대로 열심히 보아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다큐멘터리가 무엇인지 명확히 말할 무엇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내가 다큐에 대해 품은 모호함과 어려움은 오늘날의 다큐가 가진 폭넓은 다양성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빌 니콜스는 그런 나에게 이 책을 통해 친절한 선생님이 되어주길 자청한다. 그는 다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차근차근 또박또박 일러주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라는 하나의 별천지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특히 이 책에 예로 든 많은 다큐 작품들은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많은 작품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는 지인의 충고는 그런 점에서 적절한 것이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이제부터 시작이니 걱정 말라고 따뜻하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선생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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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el Kennedy - Vivaldi II
나이젤 케네디 (Nigel Kennedy) 연주 / 이엠아이(EMI)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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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제까지 듣던 비발디의 음악은 아닐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솔직히 이 음반을 듣고나니 놀라움 반, 실망 반이다. 물론 나이젤 케네디에게서 반듯하고 잘 정돈된 비발디 연주를 기대한 것이 나의 실수(?)라면 실수일 수도 있겠다. 


  협연자인 케네디와 베를린 필 단원들과의 호흡은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너무 잘 맞았던 것이었을까? 전체적으로 템포가 매우 빨라서 기존의 비발디 연주에 익숙한 이라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경쾌함을 넘어서 미끄러지듯 잡을 수 없는 음률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나이젤 케네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음반이 또 하나의 베스트에 들어가겠지만, 원전에 충실하고 보편적인 해석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이 음반은 나이젤 케네디 표 비발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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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1 책세상총서 20
볼프강 벨쉬 지음, 박민수 옮김 / 책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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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류 담론이란 것이 사실은 학자들의 경쟁적인 이기심이 빚어낸 외국이론의 수입 전시장처럼 생각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이제 근대에 막 진입하고 있다고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나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더욱 그러한 확신은 굳어진다. 이젠 포스트 모더니즘의 인기가 시들한 대신, 라깡을 비롯한 프랑스 철학이 큰 유행이 되어버린 것 같다.


  벨쉬의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은 우리에게는 한물 가버린 것처럼 보이는 포스트 모더니즘 논의를 차근차근 명확하게 짚어가며 설명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해 이보다 더 잘 정리된 해설서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벨쉬의 학자적 안목은 빼어나다. 이 책에서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한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각 분야에 나타난 포스트 모던적 현상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벨쉬는 무엇보다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리오타르와 그의 저작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어떤 면에서 리오타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입구이자 출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리오타르가 그토록 옹호하고자 했던 가치, 즉 다양성에의 열망과 그것의 실현은 벨쉬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포스트 모더니즘에는 다양성의 무조건적인 추종으로 인한 혼란의 야기라는 측면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 확립된 보편과학과 근대성에 대한 메타 담론의 해체 필요성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모던의 실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할 때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치는 유효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벨쉬는 자신의 책을 통해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풍경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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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의 소설에는 종종 글쓰기의 괴로움과 작가라는 직업의 압박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 《미저리》는 어떤 면에서 그러한 괴로움이 극단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샤이닝”의 주인공 잭의 직업도 작가이다. 호텔의 겨울 관리인을 자청한 것도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잭이 관리인으로 있게 된 이 호텔은 알 수 없는 괴기가 서린 곳으로 잭과 그 가족은 거기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고통을 받게 된다. 당연히 잭의 글쓰기 계획은 무산되고, 잭이 미친 듯이 써내는 것이란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잭은 바보가 된다’라는 문장뿐이다.

 

  “샤이닝”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주체할 수 없이 스크린 위를 범람하는 붉은 피와 도저히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족에 대한 끔찍한 살의는 분명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포의 심연을 들여다보노라면 거기엔 글쓰기와 가족이 주는 견딜 수 없는 강박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려고 고군분투하는 작가에게 가족이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그 점은 작가의 마음에 고통과 증오를 불러온다.

 

  결국 잭의 글쓰기가 성공적으로 완수되기 위해서는 가족이 제거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용납될 수 없는 무의식적 욕망은 그런 이유로 꿈의 형태를 빌어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지각되지 않는 무의식의 소원성취 방식으로서의 꿈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왜곡되는 모든 꿈에서 소원은 무의식에서 비롯되며, 낮에는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 

 

  영화 “샤이닝”은 작가의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이 실현하고 싶어 하는 꿈을 충실히 구현해낸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글쓰기와 가족, 그 두 가지가 빚어낸 끔찍하지만, 안전한 악몽이 된 것이다. 

 

1)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인숙 역, 꿈의 해석, 열린 책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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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11-13 16:06   좋아요 0 | URL
전 이 영화 아직 못 봤는데요. 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하더라구여. 님의 리뷰를 보니 더 보고 싶어지는데요.^^

푸른별 2005-11-13 18:49   좋아요 0 | URL
십년 전에 보고, 이번에 일 때문에 다시 보게 되었지요. 리뷰라는 것이 그렇지만 참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읽는 이와 얼마나 소통할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지요. 내가 써놓고 보니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샤이닝에 관해서는 다른 유명한 리뷰들이 많은데 내 글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서 이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DVD 발매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삭제본인지 모르겠어요. 한번 보세요. 기이하고 참 독특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