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매카시즘은 1950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앞서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이 시작된 나라가 있었다. 종전 후 미 군정이 들어선 일본에서였다. 영화계에도 거센 사상 인증 광풍이 몰아쳤다. 당시 도호 소속 감독이었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영화사에서 나와야만 했다. 먹고 살 방도가 막막해진 영화 감독은 고철 수집상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모은 고철이 한국 전쟁에 쓰이는 군수 물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고물상 일을 때려친다. 골수 좌파 지식인이었던 그에게 전쟁은 범죄 행위였다. 그는 독립 영화사를 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의 영화에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신념이 깔려 있다. 바로 이마이 타다시 감독이다. 그가 1963년에 만든 영화 '무사도 잔혹이야기(Bushido: The Cruel Code of the Samurai)'에도 그런 그의 확고한 신념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영화는 도쿠가와 막부 형성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7대에 이르는 무사 가문의 잔혹사를 담았다. 영화의 제목에서 '잔혹(殘酷)'이라는 말을 대체할 단어는 없다. 지배 계급에 대한 피지배 계급의 굴종과 피학의 역사. 영화의 원작은 난조 노리오의 소설 '피학(被虐)의 계보'이다. 작가 난조 노리오의 이력도 독특하다. 그는 경제학과 교수로 당대의 엘리트였다.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설로 시대와 인간에 대한 탐구를 했던 작가였다. 어떤 면에서 이마이 타다시가 난조 노리오의 소설을 택한 것은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원작이 가진 통렬한 사회 비판의 메시지는 영화를 통해 완벽히 구현된다.

  일본의 전국 시대, 낭인자객의 삶을 살던 이쿠라는 사무라이로 받아준 영주 집안에 충성을 맹세한다. 그것이 이쿠라 가문의 시작이었다. 영주의 잘못을 덮기 위해 할복으로 삶을 마감했던 그의 비극은 7대에 이르는 후손까지 이어진다. 죽은 영주에게 충성을 바친다며 할복하는 2대, 남색을 밝히는 영주의 시동(侍童)이 되었던 3대, 아내와 딸을 영주에게 바쳐야 했던 4대, 정신병을 앓는 영주 뒤치닥꺼리하는 메이지 시대의 5대, 가미카제로 허무하게 죽은 6대, 그리고 현대의 삶을 사는 7대로 이어진다. 7대에 이르는 이쿠라 가문의 사무라이를 연기한 나카무라 킨노스케의 열연이 돋보인다. 
         
  각각의 이야기들을 괴로움과 먹먹함 없이 보기는 어렵다. 왜 그들은 '무사도'를 맹신하며 자신과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광신의 모습에 가깝다. 딸을 대영주의 노리개로 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까지 겁탈하려는 영주에게 4대 이쿠라는 그 어떤 반항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할복의 명도 기꺼이 받는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사무라이의 본분은 충성임을 가르치고, 어린 아들은 그것을 열심히 외운다. 이쯤되면 무사도는 신념이 아니라 저주 같다.


  개화기 메이지 시대에도 그 저주는 이어진다. 가문에서 내쳐진 미친 영주를 돌보게 된 5대 이쿠라는 사법 시험을 앞두고 있다. 영주 수발을 하느라 사법 시험은 떨어지고, 심지어 자신을 대신해 돌보던 약혼녀가 겁탈을 당했는데도 영주를 보살핀다. 이 사무라이 집안에는 굴종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새겨져 대물림되는 것인가? 한탄이 절로 나온다. 막부는 끝났지만 이쿠라 가문의 수난은 이어진다. 침략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가 주군의 위치를 대신한다. 양복을 입은 현대의 이쿠라에게는 '회사'가 새로운 주군이다. 상사는 이쿠라에게 경쟁 회사에 근무하는 약혼녀를 이용해 입찰 정보를 빼오도록 압력을 넣는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려는 이쿠라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복잡한 도시의 도로를 한 무리의 회사원들이 걸어간다. 이마이 타다시는 관객에게 직설적으로 묻는 것 같다. 과연 피지배 계급의 맹목적 충성과 자발적 굴종의 역사가 끝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 샐러리맨들에게 그 장면은 매우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회사의 노예가 아니며, 오너는 모셔야할 주군이 아니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런 눈에 보이는 외적 객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무사도 잔혹이야기'는 신념의 차원, 더 나아가 무의식까지도 지배하는 계급 의식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요구한다.

  흑백 필름 속에 펼쳐진 이쿠라 가문의 잔혹극 속에 빛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마이 타다시는 어둡고 황량한 배경 속에 그들을 가두고 피학의 비극을 그려낸다. 이쿠라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오직 주군을 위해 칼을 휘두른다. 그것은 결국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앗아간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던 신념은 '무사도'란 이름의 괴물이었다. 일본의 역사를 관통하는 계급의 문제, 그 무섭도록 견고한 착취와 학대의 역사를 '무사도 잔혹이야기'는 처절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 잔혹사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또한 그것이 이쿠라 가문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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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idecaphobia. 왜 이 단어의 뜻을 다큐의 제목으로 썼을까? 'The Fear of 13(2015)'은 사형 선고를 받고 22년 동안 복역하다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난 닉 야리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는 수감 기간 동안 우연히 접하게 된 책들로 인해 진정한 내적 계몽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단어들을 독방에서 수십 번씩 이미지를 상상해가며 깨우쳐 간다. 'tridecaphobia' 같은 단어도 그랬다. 겨우 초등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1000권이 넘는 온갖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자아의 눈을 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책에서 획득한 지식과 스토리텔러의 재능을 다큐 내내 입증해 보인다. 그는 명료한 발음과 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다큐의 내레이션을 전적으로 지배한다. 그 뿐만 아니라 실감나는 묘사를 위해서 표정, 의성어, 손짓과 몸짓을 사용하는 재능까지 보여준다. 원맨쇼가 따로 없다.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오게 되었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 마약과 비행으로 얼룩졌던 청소년 시절, 객기와 불운의 온갖 총합처럼 보이는 억울한 누명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닉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다큐의 구성은 단순하다. 닉이 들려주는 과거가 재연된 화면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보다보면 그런 구성에 지루함마저 느끼는데, 그 지점에서 이 다큐의 감독 데이비드 싱턴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다큐에서 감독이 한 역할은 닉에게 판 깔아주며 발언의 기회를 전적으로 넘긴 것과, 그저 그런 재연 화면 구성한 것 밖에 없다. 'The Fear of 13'은 그런 면에서 다큐 감독의 작가적 관점에 대한 유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싱턴은 그만큼 닉 야리스를 신뢰한 것일까? 물론 닉 야리스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강간죄로 22년 동안 복역했고, 무죄로 풀려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리스 본인이 들려주는 인생의 고백은 모두 진실일까? 닉 야리스의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과 고백에 한치의 거짓도 들어가지 않았음을 입증할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싱턴은 감독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내던져 버렸다.

  이런 데이비드 싱턴과 대비되는 지점의 다큐 감독이 있다면 에롤 모리스일 것이다.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 1988)'에서 에롤 모리스는 살인의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랜달 아담스의 이야기를 파고 들어간다. 그는 사건의 기록을 검토하고, 직접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 했다. 에롤 모리스는 그 과정을 통해서 랜달 아담스에게 씌워진 살인 혐의는 잘못된 것임을 입증해 보인다. 이 놀라운 다큐는 랜달 아담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그는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랜달 아담스가 무죄일 것이라는 가정을 에롤 모리스는 치밀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The Fear of 13'의 데이비드 싱턴은 닉 야리스의 발화에 처음부터 진실의 권위를 부여한다. 매우 무능하며 게으른 태도이다. 이 다큐에서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20세기 감옥의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사형수의 오딧세이아'이다. 이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그의 유창한 말솜씨는 관객의 이성적 사고와 합리성에 도전장을 던진다.

  수감 기간 중에 알게 되어서 옥중 결혼에 이르게 된 아내에 대해 닉 야리스는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낸다. 실제는 어땠을까? 그는 4번째 결혼한 여자와 살고 있다. 그는 방송에도 출연해서 나름 유명인사가 되었고 책도 여러 권 썼다. 주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3백만 달러의 보상금도 받아냈다. 이 다큐가 유명해졌다는 데에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 모양이다. 감독이 출연료를 주기로 했는데 주지 않았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에롤 모리스가 겪은 기막힌 불운(랜달 아담스는 다큐 수익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걸었다)이 데이비드 싱턴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사형수가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나는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The Fear of 13'은 감동보다는 쓰고 기이한 뒷맛을 남긴다. 아주 잘 연출된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큐는 그가 들려주는 놀라운 인생사로 가득차 있지만, 거기에는 관객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실의 영역이 있다. 나는 새삼 미드 닥터 하우스의 명언을 떠올렸다. 'Everybody lies'. 우리는 다큐가 진실을 들려준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The Fear of 13'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러하다. 닉 야리스는 다큐에서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수많은 책 속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인생 이야기죠."

  이 다큐의 관객들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그의 대단한 능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사형수의 오딧세이아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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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욜(Yol, 1982)'이라는 터키 영화가 있다. 내가 그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94년, MBC 주말의 명화에서 였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래전 이야기다. 교도소에서 임시 휴가를 받아 나온 5명의 인물들의 이야기. 영화 속 끝없이 펼쳐진 설원, 각각의 인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 터키에서도 저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랬었다. '국경의 법칙(Law of Border, 1966)'도 터키 영화다. 감독은 외메르 뤼프티 아카드, 주연 배우는 일마즈 귀니. 이 영화에서 감독과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했던 일마즈 귀니가 바로 '욜'의 감독이었다.

  '국경의 법칙'은 터키-시리아 국경 부근에 사는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가진 것이라고는 척박한 모래 땅 뿐인 가난한 이들은 국경 지대를 넘나들며 밀수로 먹고 산다. 그러나 그 일은 목숨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국경 지대에는 국경 수비대가 설치한 지뢰들이 가득하고, 히디르(일마즈 귀니 분)를 비롯한 밀수업자들은 국경 수비대와 늘 마찰을 빚는다. 새로 부임한 수비대장 제키는 히디르를 설득해 위험한 밀수일을 그만 두게 하려고 한다. 또한 마을에 학교를 세우는 일에도 협조를 구한다. 히디르는 어린 아들 유수프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 세우는 일을 돕고, 밀수일도 그만 둔다. 한편, 히디르와 경쟁하는 밀수업자 알리 첼로는 히디르와 동료를 제거하고 자신이 밀수일을 독점하려고 하는데...

  이 영화의 화질은 아쉽게도 그리 좋지가 않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래된 필름. 내가 본 것은 2011년에 복원된 필름인데도 그렇다. 영화가 그렇게 된 데에는 터키의 복잡한 현대사와도 관련이 있다. 1980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을 모조리 없애버렸고, 그 과정에서 이 영화는 단 한 벌의 카피본만 남았다. 그것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복원이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감상시 그런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시나리오를 쓴 일마즈 귀니는 쿠르드족 출신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의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었다. 영화 배우의 길에 들어서서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던 그는 당시 터키의 유명한 감독이었던 아카드를 찾아간다. 아카드는 귀니가 가져온 시나리오를 현실에 맞게 각색할 것을 충고했다. 귀니는 국경 지대의 주민과 밀수업자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국경의 법칙'을 찍게 되었다. 영화는 피폐한 국경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한 이들의 고통,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 선인과 악인의 대결,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터키의 웨스턴'이라고 종종 소개되기도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도 하다. 히디르와 알리 첼로의 대결이 긴박감 넘치는 총격전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웨스턴'의 외피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는 다른 근원적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학교'로 대변되는 국가 권력은 근대를 상징한다. 유목과 밀수로 먹고 사는 마을 사람들은 낙후되고 무지한 전근대를 상징한다. 학교를 여는 일에 반대하는 마을의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이 학교에 다 가버리면 양들은 누가 돌보냐구!"

  그들에게 아이들은 소중한 노동 인력으로 취급된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의무교육은 아동 노동의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였다. 마을에 부임한 여교사는 히디르에게 유수프의 미래를 생각해 보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가 권력의 직접적 대변자인 경비 대장, 학교의 여교사, 그들은 히디르와 마을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교육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며, 밀수 말고 당장 먹고 살 방도는 가망성이 없는 농사 뿐이다. 히디르는 다시 예전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큰 양떼를 국경 너머로 이동시키는 돈벌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알리 첼로 일당과 벌이는 싸움은 히디르를 돌아올 수 없는 국경 너머로 몰아세운다.

  아카드 감독은 전근대에 머문 가난한 이들이 근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비극을 충실하게 그려낸다. 의외로 흑백 필름의 촬영과 현상이 아주 잘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대부분 야외 촬영으로 이루어진 장면들에서 그 정도로 영화를 뽑아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또한 히디르와 동료들이 알리 첼로 일당을 처단하는 장면에서 점프컷 편집으로 이야기를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시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구, 감독님 영화 열심히 찍었군요'하는 소리를 했더랬다. 

  주연을 맡은 일마즈 귀니는 진중하고 균형잡힌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아카드 감독과 함께 작업하면서 영화 연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영화 이후 그는 자신의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아카드 감독에게도 귀니와의 작업은 그 자신의 영화 세계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성 짙은 그의 후기 작품들은 1970년대에 나왔기 때문이다. '국경의 법칙'을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능을 막 꽃피우려는 영화인과 오랜 경력을 쌓은 대가의 협업은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는 분명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터키의 웨스턴'이라는 소개는 그다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국경과 경계를 넘어선 그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 '국경의 법칙'은 오늘도 자신을 알아줄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itpworld.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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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가 있다. 양주 회사에 근무하는 서른 여섯의 샐러리맨 에부리만(Everyman의 일본식 발음)은 모든 일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의 유일한 위로는 '술'이다. 어느날 우연히 술자리를 함께 한 잡지사 편집자들로부터 글쓰기를 제안받는다. 떠밀리다시피 잡지 기고 작가가 된 에부리는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수필로 써나간다. 잡지에 실린 에부리의 글은 의외로 독자들의 호응을 받고, 급기야 '나오키 문학상'후보에 오른다. 회사에서 별다른 존재감도 없고, 술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던 에부리의 평판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오키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그는 축하의 술자리에서 마음속 깊이 감추어둔 울분과 고통을 털어놓는데...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의 1963년작 '에부리만 씨의 우아한 생활(The Elegant Life of Mr. Everyman)'은 나오키상 수상작인 야마구치 히토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에부리와 가족의 일상을 코미디의 느낌을 담아 보여준다. 에부리는 빠듯한 살림살이에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구멍이 난 낡은 런닝셔츠와 암시장에서 파는 군복을 개조한 양복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관객들은 에부리가 전중파 세대(戰中派, 2차 대전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로 겪었던 삶의 역경들을 알게 된다. 오직 자신만 아는 철없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도 에부리를 힘들게 한다. 키하치 감독은 영화의 서사를 에부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애니메이션 장면을 중간 중간 넣어서 보여주는 파격을 선보인다.   

  Everyman.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에부리'를 별칭으로 택한 주인공의 자전적 고백은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에부리가 나오키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그는 회사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데, 마치 봇물터지듯이 쏟아지는 과거 회상에 주위 사람들이 다 가버린다. 오직 남은 두 명의 회사 직원만이 새벽 4시까지 에부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그는 일본의 침략 전쟁 시기에 젊은이들에게 애국과 참전을 부르짖었던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냉혹하고, 비정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젊은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 감정에 북받친 그는 종전을 앞두고 필리핀 전장에서 죽어간 병사의 옷에서 나온 편지를 읽는다. 일순, 영화는 반전 영화로 급변하면서 끝을 맺는다.

  전중파 세대는 일본 제국주의의 교육을 받았으나, 종전과 함께 국가에 대한 신념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겪었다. 원작자 야마구치 히토미는 자신의 소설에서 전중파 세대가 가진 통렬한 사회 비판 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이것은 그 세대가 가진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전쟁을 계기로 경제 부흥기에 접어든 일본은 전후 자기 반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 장면은 에부리의 회사 점심시간에 건물 옥상에서 펼쳐지는 젊은 직원들의 다양한 여가 활동 모습이다. 춤과 노래, 운동을 즐기는 그들을 에부리는 지루한 표정으로 홀로 떨어져 바라본다. 그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 침략 전쟁을 수행한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할 줄 아는 지식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의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영화였다.

  제작사 도호는 이 영화를 가벼운 코미디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찍기로 되어 있었던 가와시마 유조 감독의 급사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 키하치는 영화의 방향을 자신의 맘대로 틀어버렸다. 나중에 영화의 완성본을 본 제작 담당자가 길길이 날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영화는 결국 2주만에 영화관에서 내려졌다. 도호 소속의 감독이었던 키하치는 상당 기간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이 영화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단서는 키하치 감독의 젊은 시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영화계에 입문하고 감독 수업을 받고 있을 때, 일본은 전쟁 막바지에 다다랐다. 강제로 징집된 키하치는 육군 예비 학교에 복무했는데, 폭격으로 자신의 동료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것을 목격했다. 그런 그에게 이 영화의 원작이 보여주는 반전 메시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예술적 신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일본의 영화계는 키하치의 그러한 신념에 빚을 지고 있다. '에부리만 씨의 우아한 생활'은 전중파 세대의 치열한 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작가 의식을 가진 감독의 시대를 향한 진정성 있는 외침을 듣게 된다.



*사진 출처: archive.ica.art 주연 배우 고바야시 케이주


**사진 출처: berlinale.de 감독 오카모토 키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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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프로 2021-08-13 14: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 영화 정보를 찾다가 선생님 블로그에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결제하려고 했더니 서비스 제한 지역이라 안 되는 것 같아서요...

2021-08-14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삶은 계란. 일반적으로 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매우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로 쓰여진 범죄 추리 소설을 일컫는 'hard-boiled'는 완숙 달걀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에서 나왔다.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의 탐정 사무소의 두 인물, 탐정 우오츠카와 조수 고바야시의 유일한 먹거리는 바로 그 '삶은 계란'이다. 영화 초반부의 달걀 삶는 장면부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탐정은 단서가 풀리지 않자, 계란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는다. 이런 기발한 유머를 보여주는 감독은 하야시 카이조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To Sleep so as to Dream, 1986)'는 여러모로 유별나다. 흑백 필름으로 무성 영화의 형식을 취한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50년대의 도쿄 아사쿠사, 탐정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백발의 신사가 우오츠카(사노 시로 분)의 탐정 사무소를 찾아온 이유는 어느 노부인의 납치당한 딸 키코를 찾아달라는 것. 납치범들이 보낸 녹음 테이프에는 수수께끼와 같은 지시사항이 들어있다. 그들이 돈을 가져오라고 하는 장소를 수수께끼를 풀어서 알아내야 한다. 어렵게 풀어낸 수수께끼의 장소로 돈을 들고 찾아갔더니, 납치범들에게 돈만 뺏기고 얻어맞는다. 그들은 계속해서 수수께끼를 내고 우오츠카와 고바야시를 유인한다. 과연 이 어리버리 탐정과 조수는 수수께끼를 풀고, 납치당한 키코를 구할 수 있을까?

  지직거리는 흑백 화면에 무성 영화라니... 처음에 제작년도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진 해는 1986년. 하야시 카이조는 서른을 앞둔 나이에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들었다. 놀랍고 대담한 작품이다. 아마 이런 형식의 영화를 누군가 장편 데뷔작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너, 미쳤구나!'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그렇게 약간은 미쳐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균열과 불협화음들로 커다란 변화에 이르기도 한다. 하야시 카이조는 남들이 안하는 방식을 과감하게 택했다. 소리를 배제한 무성 영화이기는 하지만, 오직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지 않는다. 자전거의 경적 소리, 전화벨 소리 같은 외적 소음은 그대로 들린다. 인물들의 대사는 무성 영화 시대의 자막으로만 전달된다. 아, 영화의 후반부에는 변사(辯士)도 나온다.

  무성 영화는 하야시 카이조가 자신의 첫 영화를 독특하게 보이기 위해서 택한 하나의 방법적 도구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의 시원(始原)을 상기시키며, 그것에 대한 향수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초창기, 사람들은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도 영화라는 신문물에 매료되었다. '소리'는 영화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었다. 하야시 카이조는 '소리'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납치당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있고, 탐정과 조수는 반드시 여성을 구해내야 한다. 그들의 임무에는 수수께끼가 등장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이 영화의 서사를 흥미롭게 이끌어 간다.

  영화의 결말부에 관객들이 만나는 것은 '영원한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오래전 무성 영화이다. 경시청의 검열로 결말부의 촬영이 중단되서 결코 끝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영화. 거기에는 그 마지막 장면을 보고 싶어하는 한 노부인의 열망이 있었다. 그 열망이 우오츠카와 고바야시의 긴 추리여정과 만나게 된다. 노부인은 그토록 원하던 영화의 끝을 보면서 비로소 긴 잠에 빠져든다. 이 영화의 제목은 노부인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 관객들은 기묘한 감동에 휩싸인다. 평생을 두고 꿈꿔온 그 어떤 것의 마지막 완성을 본다는 것, 그런 일을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실제로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하야시 카이조는 자신이 만든 인물에게 그 꿈의 완성을 선물한다. 관객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그 꿈의 실현에 어디쯤 와있는가,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볼 수 있을까... 영화는 그런 질문들을 잔잔한 물결의 파문처럼 만들어 낸다.

  첫 데뷔작으로 이토록 매혹적이며 눈부시게 빛나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하야시 카이조는 영화 감독이란 타이틀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어쩌면 자신의 재능을 데뷔작에 다 써버려서 그 후속작들이 그저 그런 작품들로 채워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탐정'이란 직업의 주인공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찾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탐정'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 꿈꾸는 것,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어렵고 힘든 그 어떤 것에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여정. 그것이 인생이다.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그 인생의 여정을 소박하고 아름답게 구현해서 보여준다.        



*사진 출처: dsdramas.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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