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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사조영웅전을 읽었을때도 오늘과 같이 비오는 날이었고 다시 읽은
사조영웅전도 묘하게 비오는날에 다 읽게 되었다.
따뜻한 방에서 뒤에 쿠션을 깔고 이불덥고 앉아서 이책을 읽는 맛이란 정말
대장금에 나오는 음식 못지않게 달고 맛있다.
딱딱하고 교훈적인거 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라서 왠만한 무협소설은
섭렵했었는데 사조영웅전을 읽고나서부턴 김용의 작품만 눈에 들어올뿐 다른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은 시시하게 느껴졌었다.
사실 다른 무협소설 중에서도 재미난 책들이 있겠지만 다른 책들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라는것은 그만큼 이책이 주는 재미가 강력하였던 것이었다.
첨에 읽었던 것이 10여년 전이었는데 1년에 한번씩은 꼭 읽어야할정도로 그 내용
이 잊혀지지 않는다.우리가 담배를 끊을라고 해도 금단현상으로 끊기가 힘든것
처럼 이 책도 어떤 중독증상이 있는지 읽고 또 읽고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번에 새롭게 책이 번역되어 나온김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역시 그 향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의 송이 힘이 약해진 후 금과 몽골이 차례로 일어나면서
어지러운 난세에서 주인공 곽정과 황용을 축으로 징키스칸,왕중양같은 실제인물과 함께 황약사,구양봉,홍칠공,주백통 같은 허구적인 인물들이 적절히 교차하면서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일반적인 무협지는 시대도 불분명하고 인과관계도 너무 단순하고 무엇보다 나오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용의 책들은 우선
시대적인 배경을 나타냄으로써 좀더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보이고 실제인물
과 허구적인 인물이 함께 나오기때문에 인물들이 더욱더 생동감이 있다.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이나 면모가 하나같이 특징적이고 독특하여 생생하고 살아
있는 인물을 그린듯이 개성이 강하다.
굳은 의지력과 깊은 의리를 갖고있으면서도 어쩐지 둔해보이는 곽정,
꾀가많고 능력도 많지만 깊은 마음을 가진 영리한 황용,
정과 사가 불분명한듯보여도 딸에 대한 깊은 정을 가진 황약사,
먹는것에는 약하지만 불의에는 절대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홍칠공,
대단한 무공을 가졌으나 어린이같이 천진난만한 주백통,
비록 악인이지만 아들에 대한 지대한 사랑을 보이는 구양봉 등등 주요인물들의 캐릭터를 봐도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는 개성 강한 인물을 잘 그려내고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 무협소설에 나올수있는 성격 모두를 집대성한것
처럼 정말 생기가 넘친다.
이런 여러 인물들이 얽키고 설켜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 책의 주된 주제는
두개로 집약될수있다.
바로 정(情)과 의(義)다.
곽정과 황용과의 사랑,거기에 삼각관계를 만드는 화쟁공주.
대체 정이란 무엇이길레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것일까?
어릴적 정을 나누었던 화쟁과 나중에 중원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정을 쌓은 황용
과 누구를 선택해야할것인가..
그리고 곽정과 강남칠괴와의 정, 곽정과 홍칠공,주백통과의 정,황약사와 딸 황용과의 정,대금왕자와 양강과의 정 등등 여러 유형의 사랑이 나오면서 우리로하여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해야할까를 생각하게한다.
이 정과 맞물려서 의를 선택해야하기도 한다.
어릴때 돌봐주었던 징키스칸과 타뢰와의 우정을 지킬것인가 아니면 부패하고 망해가는 나라라도 조국을 지킬것인가로 고민하는 곽정, 비록 자신 생부는 아니지만 자신을 안락하게 살수있게 했으나 자신의 생부를 죽인 원수인 금왕야에 대한 선택으로 번민하는 양과등은 진정한 정과 의라는 것에대해서 우리 자신이라면
어떻게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정과 의가 두 축을 이루면서 전체적인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것이다.
마지막에는 징기스칸이 죽으면서 곽정과 영웅에 대해서 논하느 장면이 나온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진정한 영웅이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김용의 생각이 얼핏
드러나는거같이 보여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징기스칸이 진정한 영웅이었다면 오늘날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만큼 그렇게 소리없이 묻히진 않았을것이다.
무협에 관한 어떤 평론집을 보니 김용의 책은 무협소설의 형식을 완성했다고 평한다.더이상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수없을정도로 그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완성도
가 깊다는 의미일것이다.그말에 100% 찬성할수는 없다고 해도 수십년전에 지어진
이책이 수백만명이 읽고 열광했고 또 이것을 능가하는 책이 나오지도 않고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문학성을 인정하지 않을수없다.
이제 사조영웅전은 고전이다.
흔히들 말하는 서양고전이나 동양고전의 목록에 당당히 자리메김할수있는 새로운
고전이다.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고 읽을때마다 새로운 감흥이 일어나는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고전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