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엇다. 그것들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이데올로기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그 발명품은 당초의 목적대로 쓰이지를 못했다. 흡사 칼이라는 발명품처럼, 똑같은 칼을 주부가 들었을 때와 도둑이 들었을 때.......  결국 각국의 공산당원이란 칼이라는 유익한 도구를 잘못 든 도둑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인간......., 인간.......,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원들의 부패와 타락의 뿌리는 이기주의다. 이기성이라는 본능의 힘은 무섭다. 모든 종교의 공통된 미덕은 나만의 이기심을 버리고 남도 위할 줄 아는 이타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 지고한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다수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신의 이름을 팔아가며 타락하고, 사회 권력을 형성해 횡포를 자행하고, 심지어 신을 내세워 살인을 합리화 하는 전쟁까지 불사해온 것이 인류사였다. 그 막대한 해독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찍이 종교를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이기심이라는 본능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당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 인간이란 본능적 존재에 지나지 않은 것인가. 그럼, 인간의 이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이성의 힘에 의해 마르크시즘이 탄생했고, 그 이상세계를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다는 신념하나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내가 3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그냥 당원으로 살았다면 나도 인민들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을 것인가. 인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일생에 그 시대가 얼마나 담겨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선생님이야말로 우리의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떠안고 가장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무 일도 한 게 없다고 하시는데, 평생을 수난당하고 산 그것보다 더 치열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또 중요한 사실은, 수 많은 장기수들이 당한 고난은 엄연한 분단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묻혀버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건 꼭 기록으로 남겨져야 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전모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쓰고 싶어도 쓸 능력이 없어서 못 씁니다. 선생님은 쓸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안 쓰시는 건 겸손이 아니라, 죄송한 밀씀입니다만, 책임 회피고  비겁입니다. 그리고 자기 부정이고요."
                                                                                          -조정래 [인간 연습] 중에서-

프로필; 1943년 전남 승주 출생.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출간했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는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 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그 '큰 연습' 한 가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오다가 이 작품을 엮어냈다.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3년 전에 낸 산문집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다시 음미하게 되었다.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

  바햐흐로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은 온갖 유혹적 기능으로 독서 중심 세력인 젊은 층의 시간을 무한정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래서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문학은 영혼의 호흡 작용이니까! 
                                                                                        -[인간 연습] 작가의 말-

   
  며칠, 낯설고도 익숙한 동네의 길들을 어슬렁거렸다. 어슬렁거리기에는 추운 날들이어서 가끔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고양이들만 만날 수 있었다. 길마다 모퉁이를 돌면 마트란 이름의 작은 가게들, 미장원, 빵집, 쌀가게를 겸한 과일가게, 치킨집, 게임방, 식당들이 서로 사이좋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포장마차 리어카도 쉬는 날인가 보다. 무수한 골목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열려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 골목도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아무런 용무 없이는 저 막다른 골목의 끝까지는 가서는 안될 것만 같다고, 가서는 안되는 거라고  등 떠미는 바람이 있었다. 골목 앞에서 번번이 그렇게 돌아나왔다.
  저 낮은 지붕을 찍고 돌아서다가 빨간 집배원 오토바이와 마주쳤다. 은근슬쩍 마주쳤던 시선이 서로 황급히 돌려졌다. 113이란 숫자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프힛~! 우리 2007년 1월의 대낮에도 만나게 되는 빨간 악령. 헐렁헐렁한 우체부 아저씨 바지 사이로 골목 바람이 지나간다. 그의 손에 들린 고지서와, 독촉장과, 안내문 사이에 '죽었니?'라고 쓰인 관제엽서라도 떨어질 것 같다.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친구가 보내어  火印으로 남은  '죽었니?' '죽었니?'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행이다. 아직 살아있다.
 
  읽고 책상 위에 놓아둔 채로 이리저리 쓸려다니던 '인간 연습'을 꽂는다. 한시간 만에 읽어 버리고 아쉽고 아쉬워서 꽂지 못했던가,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너무 오래 책상 위에 있었다. 아마도 허기를 채우지 못한 쓸쓸함이었을 것이다. 메모 두 군데 하고나니 끝이 나 있던 책........ 그의 대하에 오랜 시간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작가도 이름으로 말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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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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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중산간을 떠나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영원한 것을 이곳에서 깨달으려한다. 말할 수 없으나 느낄 수 있고,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신비로움을 찾으려 한다.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며 마음을 씻고 닦아 모두를 사랑하려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끼고 확인하고 싶다.

  안개가 일순간에 섬을 뒤덮는다. 하늘도, 바다도, 오름도, 초원도 없어진다. 대지의 호흡을 느낀다. 풀꽃향기에 가슴이 뛴다.  안개의 촉감을 느끼다 보면 숨이 가빠온다. 살아 있다는 기쁨에 감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끼니 걱정도 사라진다. 곰팡이 피어가는 필름 생각도, 홀로 지내는 외로움도 잊는다. 촉촉히 내 몸 속으로 안개가 녹아내린다. 숨이 꽉꽉 막히는 흥분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기쁨. 그래서 나는 자연을 떠나지 못한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작업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탄력이 붙는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확신했던 것들이 불확실로 변하면서 마음이 혼란 속에 빠져든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혼자 가야 할 길이기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인다. 그럴 때는 다시 들판으로 나가 노인들을 지켜본다. 시련을 견뎌낸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혼란스러움이 사라진다.

  제주의 노인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기 몫의 삶에 치열하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몫의 양식은 스스로 해결하는 노인들을 통해 나는 해답을 찾곤 했다. 노인들은 나에게 답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만난 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크든 작든 한 덩어리의 한을 간직하고 있지만, 묵묵하게 자기 몫의 삶에 열중한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 유혹 따위를 극복하고 삶에 열중하는 섬의 노인들은 나의 이정표였다.


 


 
 
 
 
  나에게 내일이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허락된 것은 오늘 하루, 그 하루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아픔도 잊혀진다.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통증을 의식하지 못한다. 통증을 잊으려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또 다른 하루가 허락되면 또 다른 일을 찾는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은 끝이 없어서 찾으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오늘도 어제처럼 편안하다. 하루가 편안하도록 오늘도 하나에 몰입한다. 절망의 끝에 한 발로 서 있는 나를 유혹하는 것은 오직 마음의 평화이다. 평화만이 나를 설레게 한다. 
 

                                    출처: 사진작가 故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휴먼앤북스

                                    사진 故 김영갑 (1957~2005)  

                                    1957년 부여출생. 2005년 제주에서 지병인 루게릭병으로 타계하기까지 
                                    20여년 동안 제주의 바람, 오름, 사람, 안개, 공기, 중산간 곳곳을                                 사진에 담았다. 
                                    '김영갑사진갤러리 두모악'; 제주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함.

 

 

언니를 따라 갔던 종합병원,
시장통같은 분주함을 잠재우는 고요를 만났다.
아, 김영갑
제주의 바람, 오름, 안개, 공기가 병원 로비에 가득했다.
삽시간의 황홀.....
책상 머리에 압정으로 눌러박힌 은은한 황홀, 혹은 삽시간의 환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병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만나는
그를 사로잡았던 풍경들이 덥썩~ 쓸리어온다.
그의 전언을 듣는다.
몰입으로 통증을 견뎌낸 그의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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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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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드리는 고봉밥 한 그릇 

                                  손세실리아 시집‘기차를 놓치다(애지 간)’를 읽고

  손세실리아 시인의 첫 시집 ‘기차를 놓치다(애지 간)’가 지난 이월 십오일, 인터넷 교보로 주문한지 5일 만에 내 품에 안겼다. 그 이후, ‘기차를 놓치다’는 쭈욱 나와 함께 다닌다.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동안 순백의 겉표지가 조금 낡았고 자주색 속표지에는 가볍고 무거운 얼룩들이 훈장처럼 남겨진 ‘기차를 놓치다’ 언제 내려놓을지 모른다. 손에 잡혀서 열리는 어느 페이지를 펴도 따숩고 찰진 고봉밥 한 그릇을 마주한 것처럼 배부르고 넉넉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흔의 어머니는 소다와 부채표 까스활명수를 입에 달고 사셨다 무명실로 손가락 끝을 칭칭 감고 콧김 쐰 바늘로 자흑빛 걸쭉한 피 몇 방울 짜내는 일도 예사였고 탱자나무 성난 가시 울울한 체내는 집으로 직행하는 일도 허다했다 똥색 페인트칠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괴괴한 집 등짝과 가슴을 두드리고 문지르다 염탐꾼 같은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쑥 들이밀어 깔짝거리면 신기하게도 석 달 전 먹은 닭 가슴살 달포 전 제사 음복으로 집어먹은 생률 보름날 들깨 풀어 볶아먹은 거뭇한 고사리가 쭉 딸려나왔다 달거리하듯 그 짓을 해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양 볼에 화색이 돌던 어머니 무르지도 삭혀지지도 않는 게 어디 음식뿐이었으랴 가슴 한복판 해묵은 연민도 때론 묵은 체증으로 얹히거늘 어깨 곁고 살아 온 인연들도 가끔은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거늘

  그 집 앞을 지난다. 읍 소재지 체쟁이중에 최고라던 틀니할멈은 죽고 구전시술은 파했다 탱자꽃 말간 이마에 홀린 일벌 한 마리 꽃밥 속으로 파고들다 가시에 찔리고 만다 너덜거리는 날개 반쪽 눈에 얹힌다, 마흔이다

                                                            체滯내는 여자 - 전문

  ‘기차를 놓치다’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혼자 찾아내고 그 속에 있는 편 편의 글들에 홀려 저 시 속의 일벌처럼 파고들었다. 그러다 덜컥‘체滯 내는 여자’에 찔리고 말았다. 내가 달고 사는 부채표 까스활명수, 콧김 쐰 바늘로 자흑빛 걸쭉한 피 몇 방울 짜내는 일이 예사인 내가 어릴 적 엄마를 따라갔던 체 내는 집의 음산한 정경과 그 여자의 손가락이 목 속으로 들어올 때의 소름끼치게 섬뜩한 느낌, 그리고 마흔의 어머니가 탱자나무 가시를 무작위로 찔렀다. 가슴이 너덜거렸다. 나는 마흔의 어머니를 모른다. 아니, 누구보다 잘 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의 마흔에 세상으로 나왔다. 만삭의 몸으로 땔나무를 하러 간 시오리 밖, 햇살 바른 산에서 성질 급한 나를 낳으셨고 같이 간 동네 아주머니들 도움으로 낫으로 태를 자르고 묻고 돌아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엉겁결에 몸을 풀고 되 집어 돌아오는 시오리는 얼마나 멀고 먼 거리였을까? 당신의 검정 다후다 치마에 싸서 안고 오는 어린 핏덩이는 얼마나 많은 체증으로 얹혔을까? 내 나이 마흔에서야 가슴 서늘하게 생각했던 마흔의 어머니를 시인은 완벽하게 복원해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마흔을 앓았다. 어머니의 마흔을 앓았고 내 마흔을 앓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집 속에서‘마흔’을 만났을 때, 쫄쫄 굶으면서 밖으로 나돌다가 겨우 집에 찾아든 나에게 입으로는 혼을 내면서 잰 손놀림으로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상을 앞에 둔 것처럼  울컥 목이 메어왔다. 

 

먹어도 먹어도 허리가 줄고 시시로

목이 멥니다 마음과 몸이 삐걱대고

번번이 서로를 거역합니다

의연한 척 무연한 척하지만 기실은
매양 갈팡질팡 합니다 이따금
관계에 홀려 휘청대기도 합니다
시퍼렇게 날선 작둣날을 타는
어린 무녀의 연분홍 맨발바닥처럼
아찔하기도 하고, 차도를 건너는
민달팽이의 굼뜬 보행처럼
위태롭기도 한, 낙타도 수통도 없이
사막을 건너는, 독사의 축축한 혓바닥
도처에서 널름거리는, 이승의 무간지옥에
다름 아닌, 내딛는 곳마다 허방인 진창인,
생의 花根이며 化根이기도 한,
不不惑인, 
                                         마흔- 전문

  나는 어머니의 마흔, 당신 생의 花根이고 싶어 세상에 올수 있었는데 禍根인 채로 살았던 것이다. 서른여덟이던 2000년, 새 천년의 희망 가득한 미래보다는 내딛는 곳마다 허방인 진창인 마흔이 될 것이라는 대책 없는 절망에 휘청거렸다. 의연한 척 무연한 척 했지만 매양 갈팡질팡, 그 시기를 질러온 이제야 시를 앞에 두고 눈시울을 적신다.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의연했던 엄마의 마흔도 그랬으리라고

 

움츠린 허벅지 사이  

말끔히 지워져 버린 수태의 흔적
저 아득함 이라니
지상의 어떤 양식으로도
결코 메워지지 않는 썰물이다, 공터다    
한 존재를 내려놓고 통과해낸
지난 세월이 저러했던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그리도 깊고 오랜 절망으로 휘청거렸던가

                                            말복- 중에서

  싶어서 가슴이 막막하다. 열을 낳아서 셋을 잃고 일곱을 건사 하느라 잠시도 허리 펼 새 없던 당신의 평생, 잃은 셋이 준 결코 메워지지 않는 썰물을 짐작해본다. 단지 짐작만 해보는 것이다. 결코 알 수는 없다.

새새틈틈 갈라진 손으로
등 푸른 어육의 배를 째고
물컹한 내장 그악스레 훑는다는
수협 공판장 일용직 잡부 곰소댁
빈속에 해장이라도 한 잔 걸칠 양이면 
야속함도 탓함도 싹 잊어버리고
침 발라 헤아린 일당 단단히 챙겨
집으로 직행한다는 맹하고 선한 곰소댁  

휘어진 등, 곱은 손! 
                                          곰소댁- 중에서

  오 일장을 따라 생선을 팔러 다녔던 어머니의 발길을 재촉하고 그악스럽게 만들었을 젖먹이 딸래미의 주린 배가 곰소댁 아닌 정안네의 禍根, 바로 나였구나 싶다. 빈속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돌아오는 장날이면 당신이 몰고 오던 광폭한 설움조차도, 꺽꺽 통곡하던 긴 시간, 결코 끝날 것 같지 않게 느껴지는 그 사무치던 시간조차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어 그립기만 하다. 이제는 알아도 돌아갈 수가 없다. 

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온 어머니
저렇듯 온전했던 한 생을
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거였구나
그 불면의 충혈 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먹고 살았구나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국물이었구나

                                            곰국 끓이던 날- 중에서

  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던가, 어머니는 기꺼이 그러했던 것을.

누군가에게 길을 터주는 일이란
저토록 말끔히 자신을 비워내는 일임을
잘린 뼈마디 끈적한 진물도 감추고
살아온 날의 흔적마저 가셔내는 일임을
그리하여 마침내
완벽한 육탈보시肉脫布施에 이르는 길임을 본다

                                            봉안터널 - 중에서

  글을 쓰는 일이, 소설가나 시인이 무엇인지 돌아가실 때까지 몰랐던 어머니는 저 높은 데, 많이 배운 선생님들이 그런 일을 하는 거라고 알고 계셨다. 노상 책을 끼고 사는 내가 그런 일을 했으면 싶어 했고 그 뒷바라지를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돌아가실 때까지 책망하셨다. 그렇게 간절하게 길을 터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말끔히 자신을 비워내고 길을 터주셨다는 것을 이제라도 아실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름 석 자는커녕
전화 다이얼도 돌릴 줄 모르는 어머니를
세상은 까막눈이라 한다 
허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가 만나 본 어떤 사람도 사물의 이치에 대해
어머니만큼 해박하지는 않았다
바닷물의 들고남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던가
수백 리 밖에서 몰려오는 우기를
귀밑 스치는 바람자락만으로 예견하는 일 따위가
마음 외부의 시력을 필요이상으로 밝히는 동안
마음 안쪽의 눈은 청맹과니처럼 아득해져
낮고 소소한 것들의 아픔 따위
안중에서 지워버린지 오래인 뭇사람에게는
하찮고 미욱하게 여겨질지 모를 일이나
양쪽 눈 가운데 하나쯤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한길 우물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고요한 눈을 닮아도 좋겠다고
저문 하늘빛과 같이 쓸쓸해져도 좋겠다고
그렇게 한 생을 가만가만 내려놓아도 좋겠다고
열차 떠난 역사에 우두커니 서서
불현듯 생각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까막눈- 중에서

  시인을 처음 만나던 날, 얼굴보다 먼저 음성으로 만나게 된 시다. 눈을 감고 그윽하게 외우는 시인의 목소리가 체증으로 명치에 얹혀서 시인을 바로보지 못하고 노을이 퍼지는 고온포구,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간이 ‘까막눈’ 속에는 있다. 마음 외부의 시력을 필요이상으로 밝히느라고 어머니가 모르는 길로만 다니고, 모르는 일들만 하면서 살아온 청맹과니는 시를 듣는 동안 아득하고도 아득하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매화가 피지 못하는 황폐한‘매향리', 이 땅의 오랜 상처이고 우리들의 현주소인 그 곳의 풍경을 일시에 잠재우고 저문 하늘빛과 같이 쓸쓸해져도 좋겠다고 눈이 환해지던 그 때, 그날. 꾸밈없이 따뜻하게 반겨준 시인이 뒤풀이 장소에서까지 살뜰하게 챙겨주고 ‘시로 보다는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말씀으로 나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 이름 석 자는커녕 전화 다이얼도 돌릴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던 내 눈을 환하게 밝혀주신 것이다.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봉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얼음 호수- 전문

  ‘얼음 호수’를 처음 만난 날도 기억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간에 쫓겨도 습관적인 안부처럼 들르는‘기차를 놓치다’ 블로그에서 읽었다. 이월, 날씨 때문만은 아닌 서늘한 한기가 싸르르 전신을 지나갔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 후, 다시 들어갔을 때는 내려지고 없었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처럼 가슴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다.

  생일날 아침,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를 사흘 후 겨우 입관 전에야 도착해서 만났다. 스물 세 해가 지난 지금에도 또록또록 손바닥의 감촉으로 남아 있는 엄마, 이승의 마지막 의식인 염을 하면서야 비로소 당신의 몸을 만져보고 내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는데 당신은 이미 녹일 수 없는 얼음 호수였다. 겨울이면 위풍 심한 방, 책상에 앉아있느라 꽁꽁 언 내 발을 손으로 감싸서 녹여주던 당신의 항상 따뜻했던 손은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가슴을 후벼 파던 당신의 싸늘한 몸을 고통이 사라진 말갛게 갠 이마를 마주하고 보내 드릴 수 있었다. 저승 가는 길 노잣돈까지 챙겨주고 꽁꽁 동여맨 몸을 향해 절했다. 그렇게 손 놓아 드렸다. 고통 없는 세상에서 부디 편안하시라고.    

소행성과 대행성이 생성되고
해와 달과 별이 맞물려
빛을 놓친 적 없던 여자의 집,
감쪽같이 철거당했다
한 우주가 사라졌다 

                                           갠지스강, 화장터- 중에서

  '얼음 호수’와 함께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나를 전율케 한 시가‘ 갠지스강, 화장터’다. 두 편의 시 속에는 어머니가 말을 건다. 감쪽같이 철거당하고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여자의 집이 불쑥 불쑥 말 걸어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현대시학에 발표된 이후 우리 가게 화장실에 붙여 두고 날마다 읽어서 자연스레 외우게 된 두 편. 가게 식구들 중에서 ‘시’를 난생 처음 접하게 된 이까지도 띄엄띄엄‘ 얼음 호수’를 외워서 옮겨 적는 작은 수고를 한 나를 크게 감동 시켰고‘시집’속에서 두 편을 발견하고 어떻게 내가 미리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 해서 나를 즐겁게한다. 날마다 그날이 그날인 특별할 것 없는 삶을, 묵묵히 자신의 몫으로 사는 가게 식구들 모두가 바로 내 어머니이고, 각각의 우주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막 삶아 건진 수육과 탁주 한 말 마을회관에 들이던 날 필시 입막음용일 게라고 사람들은 속닥거렸다 집주인 박목수가 전기세 물세 똥세를 터무니없이 물려도 조목조목 셈하지 못했고 깔깔이 맞춤 원피스 품이 솔거나 장날 산 태양초에 희나리가 근 반쯤 섞여 있어도 첫 휴가 나왔다가 귀대 날짜를 넘겨버린 외아들을 고발할까 두려워 따지지 못했다 방범대원 호각소리 유난히 긴 밤이었던가 잔술 팔아 모은 뭉칫돈 쥐어주며 빌어먹더라도 대처로 나가라고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고 순경한테 붙잡히면 끝장이니 시비 거는 놈 있거든 무조건 져주고 파출소나 검문소 근처는 행여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같이 살아보라고 등 떠밀고 돌아와 그 길로 곧장 박목수 멱살 잡아 공과금 되돌려 받고 실밥 터진 원피스 다시 재단시키고 시장통 어귀에 희나리자루 패대기쳤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밤새 막걸리 독 바닥내던 어머니, 이 말을 끝으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오살헐 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 전문

  이 시를 읽으면, 번번히 눈물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을, 그런 욕조차 뱉아 내지 못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시를 읽고서야 떠올렸기 때문이다. 기억에서조차 몰아내고 싶던 무지막지한 절망, 꺼낼 수 없었던, 결코 꺼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시절을 시인은 토로하고 있는 것인데 그 절절한 마음이 짚어져서 눈물이 먼저 난다. 나는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것이다. 집에서 출, 퇴근‘방위’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 중이던 성실하기 짝이 없는 오빠가 탈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몇 달 돈 벌어 엄마 준 다음에 다시 복무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계획으로 감행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몇 달 뒤 자수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오빠를 엄마모시고 면회하러 가던 날의 참혹함을 나는 아직 풀어 놓지 못한다. 병역을 마치고 장삼이사로 사는 오빠도 애써 잊은 기억일 것이다. 또 엄마 떠난 이후, 서른에 세상을 떠난 오빠를 면회 가던 광주 교도소 가는 길, 세상에서 그렇게 먼 길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꺾이는 무릎을 곧추세우면서 기대오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내뱉던‘이 오살헐 놈의 시상!’만이 귀에 쟁쟁하다. 오살헐 놈! 절대 입 밖으로 토해 내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이다.   

무르고 죽고 썩어 목마른 토양 위에
메꽃 한 송이 거름으로 기꺼이 엎디는
조선의 납작코 같은 저 보리 알갱이
문드러진 삭신 속 지극한 모성을
떡잎도 씨눈도 박제되어 굳어버린
노랑머리 벽안의 씨앗은 모른다
터져 해체된 살 있어야 고물거리는 것들
그 안에 몸 풀 수 있음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놈!

                                            씨앗의 본분- 중에서

  살아생전에 단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한 어머니는 봄이면 어김없이 묵정밭을 일구고 놀고 있는 한 뼘의 땅이라도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그걸 투덜투덜 해찰하면서 겨우 깔짝깔짝 돌 줍던 나를 모른 척 엎디어서 씨를 뿌리던 모습이 보인다. 당신의 본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던 어머니와 그 자갈밭의 고추, 깨, 참외, 배추 팔아서 우리 밥 먹고 살았음에도 그걸 모른 무지몽매한 놈!  

 

갯구멍에 방 들여 사는 세발낙지처럼
갯바닥에 뿌리내려 피고 지는 칠면초처럼
내 몸의 일부였던 한순간
내 안의 꽃무더기였던 어느 한때
부디 다 내려놓고 열반하시기를
나였거나
내 삶의 무게였던 슬픔에게 당부하는

                                           퇴원하던 날- 중에서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나 내 것으로 욕심내던 것들 때문에 다치기도 했다. 좌절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가장 좋은 징후는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느낀다.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내 안의 욕심들에게 바란다. 부디 다 내려놓고 열반하시기를. 부처님께 탐, 진, 치를 빌었던 어머니도 좋아하시리라.

 

왜 유독 사람이 다녀간 길 언저리에는 상처가 남는지
꽃 지고 새소리 멎어 온통 황폐해지고 마는지 
                                          물오리 一家- 중에서

  어머니는 그토록 굶기지 않고자 애를 썼는데도 당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오래 배고픈 시절을 살았다. 그 때를 살던 성 밖 판자촌 동네가 '방화수류정'에 앉으면 물끄러미 보인다. 봄바람을 맞으며 정자에 앉아 있는데 용지를 헤엄쳐 가는 물오리 一家가 있다. 함께 한 친구에게 읽어준다. 시가 새롭게 읽힌다고 했다. 개발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갈 때마다 많이 달라지고 있는‘華城'. 어디, 화성에 국한 된 문제이련가. 쓸쓸함을 시로 달랜다. 막 꽃을 터뜨린 산수유도‘산수유 마을에서 일박’페이지라도 몰래 훔쳐보았을까, 배시시 눈웃음 짓는다. 남루했기에 화사함이 더욱 도드라지던 그 때의 봄날에도 개나리 밑에 앉아서 시를 읽었던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베어져서 이제는 흔적도 없는 촘촘한 벚나무들이 꽃비를 날리던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했는데.

지상의 어떤 아름다운 단 한 사람을 위한
이승의 밥으로 지어져 주발에 고봉으로 담겨지기를

                                            인사동 밭벼- 중에서

  몇 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밥상을 나르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어머니를 위해서는 단 한 번도 밥상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 글은 ‘기차를 놓치다’서평이 아니라 어머니, 당신께 드리는 찰지고 윤기 자르르한 고봉밥으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다. 이 고봉밥 한 그릇을 담기 위해 주발부터 열심히 닦았다. 이미 아실 것이다.

 

난바다를 헤엄쳐온 그의 근황을
막 지은 밥에 얹는다
골콤하고 섧다

                                           자리젓- 중에서

  당신 좋아하는 젓갈까지 준비했다. 당신이 고추 씀벅씀벅 썰어 넣고 무쳐주던 젓갈만큼은 아니더라도 맛있게 드셨으면. 부디 남기지 마시고 다른 사람 입까지 쩝쩝 다시게 할 만큼 맛나게 드시던 예전의 건강하던 시절처럼 드시기를 저문 산에 꽃등하나 내거는 마음으로 바래본다.  

 

산을 내려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늙은 나무의 흰 뼈와
바람에 쪼여 깡치만 남은 샛길이
세상으로 난 출구를 닫아걸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위가 침침하지만
곧 사방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들겠지요  

그렇다고 산에 갇힐까 염려는 마세요
설마 그러기야 할라구요
또 그런들 어쩌겠어요
혹시 보이시는지
점자를 더듬는 소경처럼
빛이 아물어야만 판독 가능한 
저 내밀한 것들의 아우성 말입니다
밤하늘을 저공 비행하는
반딧불이의 뜨거운 몸통과
흐르지 못하고 서성이는 시린 산그늘,
팥배나무 잎맥에 파인 바람의 지문과
억겁을 휘돌아 식물의 육신을 빌려
짓무른 환부를 째고 해산한
꽃잎 끝 눈물 같은 사리 한 알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다음 생엔 부디
이마 말간 꽃으로 환생하시기를
삼가 합장 또 합장하며
저문 산에 꽃등 하나 내걸고 내려옵니다

                                           저문 산에 꽃등 하나 내걸다- 전문

  이 간절한 염원이 어머니, 당신께 드리는 고봉밥 한 그릇에 담겨있음을 아실 것이다.

   

  그나저나 사람들은 알까? 내가 안고 다니는 것이‘기차를 놓치다’란 시집이 아니라 내 니인 것을. 아마 ‘강산숙 벗에게’라고 싸인해서 건네 준 손세실리아 시인도 모를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닌다.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동안 제 몫을 다해 준 나무들에게 내 방식으로 인사를 건넬 것이다. '갈참나무에게 절하' 는 마음으로. 또한 내 안의 '고장난 문'을 열어 어머니를 불러다 주고 고봉밥 한 그릇 놓아드릴 수 있게 해준 형형한 눈빛의 시인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제는 '틈새'를 열어 시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 차례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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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트 -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까지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빛의 유목


  모래바람이 지나가고 난 초원과 사막은 고요하다. 고비로 들어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동안 적막과 바람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막

은 바람처럼 흐르며 움직이고 있다. 아주 먼 시간부터 사막은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고 아주 먼 곳을 향해 가고 있다. 사막은 자신을 견디지

못해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먹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을 모래와

바람을 파고 그곳에 묻고 있는 것이다. 사막의 손톱은 다 깨져 있을 것

이었다. 빛은 인간이 지나갈 수 없는 사막의 그 손톱들을 유목하고 있

는 듯했다. 수백 년간 인간이 걸어간 것은 고비의 표면이 아니라 고비

의 시간 위였다. 인간의 시간은 고비의 시간에선 바람의 일부일 뿐이

었다. 바람이 뜨거운 것이 아니라 바람의 일부에서 나도 잠시 뜨거웠

던 것이다. 고비는 관계를 만들지 않았고 관계의 바깥에서 고비는 고

요했다. 나는 내 관계를 데려와 그 고요를 잠시 편애했을 뿐이다. 


   고비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새벽의 빛들은 사막의 기울기를 타

흘러내리고 있고, 고비의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시간

과 공간의 기울기들은 모두 사막의 빛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렁임 때

문이다. 사막의 냄새는 어떤 냄새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적막의 냄새

다. 적막의 한가운데서 나는 자주 넘어졌다. 눈과 코와 모래로 들어오

는 모래를 벗겨내면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으나

내 눈은 점점 깊은 곳으로 깊은 수심水沈을 내려 보내곤 했다. 노트를

펴고 일기를 쓰려고 하면 금새 잠이 들어버렸고 몸이 다 잠들었다고 생

각하면 두 눈은 깨어 있을 때가 많았다. 몸과 눈은 서로를 향해 강렬한

모순을 주고받으며 사막을 건너가고 있었다. 제 모순을 향해 필사적일 

수 있다면 그것이 사막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느낀 건 고비의 마지막 무

렵이 가까워서였다. 우리가 떠나지 않고 혼자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

는 적막이 있다면 그건 여행일 것이다. 여행의 적막을 두려워하거나 받

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늘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적

막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곳에서 몸을 구

부리고 오열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노트를 펼쳐놓고 자기 안의 알 수 없

는 지명地名을 적어두거나 그려 넣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에 그러한 적막이 꼭 근사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여행

은,결코 치료될 수 없는 중독인 셈이다.



  나는 하나의 여행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어디까지 필사적일 수 있을

지 늘 궁금했으나 그런 평화는 내게 자주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무명無

明을 정해놓고 그늘이 자신을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나와 내 언어는

그런 불가능한 것들 앞에서 인력을 놓치곤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

의 음악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음악을 만나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시

간으로 내 시간을 이식시키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기

도 했고 여행이기도 했고 하나의 시이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사랑과

여행과 시는 그것의 특성상 영원히 불시착하고 싶다는 우리들의 내적

인 안감이기도 하다. 도달한다면 우리는 인생의 목적론에 유린당하는

것이다. 아파트 욕조에 앉아 면도날로 순백의 둥근 동맥을 끊을 수 있

는 용기보다 끝까지 도달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용기가 더 적막할 수

있고 더 열정에 가까운 것이다.

  사랑이여 나는 당신의 지하를 사랑했다.......


순록의 심해


  얼어붙은 바이칼의 표면 위로 순록이 나를 끌고 간다. 순록은 가슴

에 붉은 살이 올라 있다.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겨울의 바이칼까지 온 것이다. 사슴

은 죽은 영혼을 나른다고 한다. 러시안계 몽골인 부랴트족의 믿음이

다. 그들은 바이칼의 섬 속에 통나무로 움막을 짓고 살고 있다. 숙소는

섬 속에 머물고 있는 순록의 방처럼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순록이 무

거운 내 몸과 배낭을 싣고 그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몇 미터 앞에서 얼

음이 지직거리면 순록은 특유의 예민하고 다정한 귀를 세우고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곤 여린 새순 같은 혀를 내밀어 얼음을 햝기 시작

했다. 얼음의 두께를 헤아리는 것이라고 했다. 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 혀가 만나고 오는 것이 무엇인지 나

는 알 수 없었다. 원주민의 습성처럼 순록들도 수심을 향해 주술을 내

려 보내는 것이다.

  몇만 킬로미터에 걸쳐 얼어붙은 바다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고요하

게 순록과 수심 사이의 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순록을 다

그치지 않고 잠시만 있자고 했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의 경

이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여행 중 언제나 한두 번 겪게 되

는 순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세상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몸

이 참여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순록들이 빠져나와 무수한 

꿈으로 나를 데려갔듯이 나는 아이처럼 순록의 목을 잡고 등에 잠시 머

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것은 혼미한 얼음 위에서 겪는 하나의 사건이

었다.


  순록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호수 주변으로 절벽과 산맥들이 솟아

있었다. 나는 멍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며 조는 듯이 달렸다. 내 아래로

뻗어 있는 수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수심은 하나의 허구처럼 느껴진

다. 수면은 얼었지만 수심은 얼지 못한 채 내 아래 몇천 미터를 거쳐 떠

있을 것이었다. 수심 아래에는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종류의 색들

이 울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색의 물고

기들은 바위의 구멍안에서 눈의 색을 바꾸고 있을 것이다. 수심의 따

뜻한 공중들이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에 이 호수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

로 바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건너가고 있는 이 수면을 나는 다시 

기억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층을 상상하거나 수

심을 상상하는 일은 대개 그러하다. 그곳을 인식으로 드나들었다 해도  

인간의 상상과 지질학은 옅어서 그곳에 닿지 못한다. 닿았다 하더라도 

원하는 순간에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드나들었어도 한 번도 깊이를 재어오지 못하는 심해들이 우리

의 인생에는 여러 곳 있었다. "맞아 그런 곳이 너무 많았지......" 늙어

가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랑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김경주 여행 산문집 패스포트(랜덤하우스)중에서

 김경주; 시인.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야설 작가와 대필 작가, 학원 강사,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겨우 시집 한 권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 시절 친구들과 독립영화사 '청춘'을 설립하여 무모하고

단종된 단편영화 작업들을 해오고 있으며,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 작품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워크샵 공연으로 올려 극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6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한강이 얼어버린 차운 날, 뒹굴대면서 책을 덮는다.

적막의 고비사막이 발을 끌면서 가슴 위를 지나가고

상상해보지 못한 바이칼의 심해가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로 다가온다.

올만의 포스팅, 타자 연습 삼아 독수리 자판을 열씨미

두들겨 보았다.

겨울 와우산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웃의 빨래 위로 쏟아지는 

볕이 오래보아도 한없이 따뜻하다. 

그 따뜻함,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에게선 바다 냄새가 날 것이라고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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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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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정호승

 
물의 깊이를 재는 넌

내 눈물의 깊이는 재어보았니

 
눈금을 새긴 돌기둥을 데리고

수표교 하나

내 눈물 속에 평생 잠겨 있어도 

 
난 아직 내 눈물의 깊이의

깊이는 재지 못했네

 
돌이 된 내 눈물의 무게도

재지 못했네

                                 시집 [포옹 (창비)] 중에서

 

정호승시인은 1950년 대구출생.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등.
소월시 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등을 수상.

 

때 아닌 여름 감기로 빌빌거리며 꾀 부린지 이틀째...

오늘은 결국 조퇴를하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꾸욱 맞고왔다.

약을 먹고 한 숨 잔 탓인지 늦게 잠이 안 온다.

아니다,

요즘 질질 짜면서도 끝까지 보는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을 보다가 잠이 다 달아난 모양이다.

오늘도 역시나 줄줄 울었다.

막힌 코가 더욱 막혀서 숨통이 막힌다ㅠㅠ

어쩔끄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오늘 도착한 알라딘 택배를 비로소 열어본다.

지난번 친구의 생일에 선물로 줘버린 '포옹'이 새로 왔다.

그런데 세상에 ~~~

정호승선생님의 자필 싸인이 있는거다.

"시는 인간을 사랑하게 합니다"

공감+공감,

끄덕끄덕...

그래서 40여일 만에 포스팅....

히힛~!

내일은 꾀 못부릴테니

어여 자야한다.

억지로라도 자야한다.

끄덕끄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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