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말벌을 바깥에 버리고 창문을 닫자 마음이 약간 가라앉은 카헐은 아래층 화장실에서 소변을 한참 눴다. 변기뚜껑을 올릴 필요가 없어서, 다시 내리고 손을 씻거나 씻은척할 필요가 없어서 살짝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기쁨은금방 사라졌고, 그는 계단을 겨우겨우 올라갔다.
카헐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어느새 난간을 붙잡고 있었고, 뻣뻣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올라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샴페인 탓이 아님을 알았지만 어느새 샴페인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읽은 끝에 관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쁘게 끝나지 않았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침실로 들어가서 셔츠 단추를 풀고 바지를 벗고 누웠지만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결국 눈을 감으니 옷장 문틈으로 비어져 나온 예복 셔츠의 흰 소매가, 뜯지도 않고현관 탁자에 쌓아둔 축하카드 더미가, 사빈이 그에게 굳이 - P48

보여주었던 웨딩드레스가, 그가 결코 갖지 못할 아들들이, 반품할 수 없었던 탓에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상자 안에서 반짝이고 있는 환불 불가 다이아몬드 반지가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또다시 아주 또렷하게, 그렇게 뒤늦게 생각이 바뀌었다고,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너무 늦은 시간  - P49

저 앞에 작은 만灣이 있고 흰 절벽 아래에 깊고 깨끗한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양 떼가 다니는 길을 따라서 만을 향해 걸어갔지만 길이 곧 사라졌고 가파르고 무서운 내리막이 나왔다. 그녀가 선 자리에서 전부 다 보였다.
완벽한 깊이의 웅덩이, 바위, 수면 아래 뒤얽힌 거무스름한해초 그녀는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 만 반대편으로 가서이탄지에서 흘러나오는 갈색 시냇물로 이어지는 다른 길을 찾아냈다. 평평한 갈색 돌을 조심조심 디디며 미끄러운길을 따라가자 하얀 햇살이 내리쬐는 만이 나왔다.
높은 파도에 쓰레기가 밀려들어 왔지만 그녀의 주변은 온통 표백된 돌들이 층층이 쌓여 반짝거렸다. 이렇게 예쁜 돌은 본 적이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발밑에서 델프트 도자기처럼 덜걱거렸다. 그녀는 이 돌들이 얼마 동안 여기 있었을까, 어떤 종류일까 궁금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녀가 그러는 것처럼 이 돌들도 지금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한번 살피고 아무도 보이지 않자 옷을 벗고 물가의 거칠고 축축한 돌에 어색하게 발을 내디뎠다. 물은 상 - P60

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다.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곳까지 걸어가니 미끈거리는 해초가 허벅지에 닿아서 오싹했다. 물이 갈비뼈까지 올라오자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뒤로 누워서 멀리 헤엄쳐 갔다. 바로 이 순간 자신이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느새 진정으로 믿지 않는무언가를 향해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제 웅덩이가 넓어져서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다다랐다. 그녀는 이렇게 깊은 물에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더 멀리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꾹 참고 한동안 둥둥떠다니다가 해안으로 헤엄쳐 돌아와서 따뜻한 돌 위에 누웠다. 그때 저 높이 절벽 위에 누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살갗이 마를 때까지 누워 있다가 얼른 옷을 입고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자동차로 돌아왔다. - P61

그녀는 그동안 알았던 남자들을, 그녀에게 청혼을 해서그때마다 승낙했지만 결국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것에대해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그들 중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애초에 청혼을 왜 받아들였을까 약간 의아했다. 그녀는 돌아누워서 집 주변 덤불을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오늘 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모든 여자에게 가끔 필요한 것, 즉 칭찬이었다. 뻔뻔스러운거짓말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녀는 칭찬을 자기가 먼저요구하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 나이에 말이다. 아무것도 배우질 못한 걸까? 그녀는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끓였다. - P78

뵐의 서재로 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 또 하루가 거의 지나갔지만 그녀는 어느새 책상 앞에서 그 유명한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 바깥에 넓은 바다와 높은 산, 벌거벗은 언덕이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의 종이 조각들을 보고 거기 적힌 메모를 읽은 뒤 한쪽으로 치웠다. 만년필 뚜껑이 빡빡했지만 결국 열고서 공책을 펼쳤다. 크림색 종이 - P78

를 실로 엮어 만든 새 공책이었다. 그녀는 종이에 만년필촉을 대고서야 손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애킬섬‘이라고 쓰고 날짜를 적었다. 그런 다음 잠시 멈추고 생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했다. 새벽 3시에 다리를 건넜던 것, 꽃이 지고 난잡하게 자란 진달래 덤불. 그녀는 절벽 너머로 몸을 던지던 통통한 암탉을 떠올리고 깔깔 웃은 다음 암탉이 어떻게 길을 건넜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려 애썼다. 그리고 흰 돌들과 따뜻한 물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글을 쓰다가 분명 뜨거운 돌이 해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데웠음을 깨달았다. - P79

그녀는 돌 위에 누웠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걸어갈 때발밑에서 돌이 무슨 소리를 냈는지 썼다. 그녀는 절벽 위의 독일인을, 아래의 광경이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했다. 그날 밤 그녀는 체호프의 단편에 나오는 쾌활하고 복잡하며결혼하지 않은 여주인공을 여러 번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많은 사람들이 여기 오고 싶어 한다던 독일인 교수의 말을, 그가 그녀의 케이크를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는지를 생각했다. 또 그의 성질을 생각했고, 교수의 아내가 그와 어 - P79

떻게 살았을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자땅 위로 흘러드는 빛이 보였다. 햇빛을 보니 자고 싶다는생각이 잠시 간절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제 막그에게 이름과 암을 주었고, 그의 병에 대해서 고심하는중이었다. 그녀가 작업하는 동안 태양이 떠올랐다. 거기 앉아서 아픈 남자를 묘사하면서 떠오르는 태양을 느끼자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또다시 자고 싶다는 생각이 새로이 솟구쳤다 해도 그녀는 그 갈망과 싸우면서 고개를 숙이고 공책에 집중한 채 계속 써 내려갔다. 이미 그녀는 장소와 시간을 절개하여 기후를, 그리고 갈망을 집어넣었다. 여기에는 흙과 불과 물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와 인간의 외로움, 실망이 있었다. 이 작업은 왠지 자연의 힘이 느껴지고 단순했다. 이제 그녀의 주인공은 식욕을 잃었다. 그녀는 친척들을 등장시키고 그의 유언장을 작성하는 중이었다. 그녀는아름다운 아내가 그에게 고깃국물을 주는 장면을 살펴보다가 문득 자신이 배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리에서일어나니 몸이 뻣뻣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흔들리는덤불 너머 도로에 내려앉는 아침을 내다보고 잘 시간이 왔 - P80

다가 가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전자를 가스불에 얹고 냉장고 깊숙이에서 케이크를 꺼냈고, 기지개를 켜면서이제 그의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 P81

마지막 작품인 「남극에서는 일탈을 꿈꾸던 
가정주부가 오랜 호기심을 실행에 옮기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평소 남편과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만 하던 주인공은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계속 물어보고, 씻겨주고,
요리해주고, 설거지까지 혼자서 다 하는 낯선 남자를 만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작은 일탈은 주인공의 기대와 달리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어둡고 심각하지만 키건은 오히려 엉뚱함과 유머를 더해 서술하고,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잉글랜드의 유서 깊은 소도 - P118

시를 누비며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가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착지에, 눈과 얼음의 땅에 도착한다.
클레어 키건은 이 책에 실린 세 작품을 통해 남녀 관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불균형한 권력관계, 엉뚱한 결말에 도달하는 작은 호기심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 결말은 씁쓸하거나, 귀엽거나, 섬찟하면서도 왠지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끝까지 읽는 순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는 점은 아마 똑같을 것이다. 처음 읽을 때에는 작가가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짐작할 수 없어서 더듬더듬 길을파악하는 데 몰두하지만 두 번째로 읽을 때에는 이미 지났던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꽃을, 조그만 웅덩이를, 따끔거리는 가시덤불을 가만히 서서관찰할 수 있다. 키건과 함께하는 산책은 평탄하지만은 않지만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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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사라져야 한다." 이 책의 처음에 적힌 필립 라킨의 시 한 줄을 끝으로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여기 실린 세 편의 소설을 끝으로 우리의일상은 계속된다. 그래 한쪽 눈을 뜨면 옷장만큼이나, 언제나, 굳건히, 눈앞에, 서 있는, 그것. 소설을 빌리자면 크게 그것은 흙과 불과 물일 것이고, 작게 그것은 남자와 여자와 인간의 외로움, 실망일 것이다. "분필과 치즈만큼이나 전혀 딴판인 한쪽의 이야기. 한쪽이 사라져야 한쪽이 살아나는 이야기. 이거 너무 단순한 구조 아닌가 해도 클레어 키건의 터치는 그 컬러를 흑과 백이 아닌 회와 회로 붓칠하는 데 능숙함이 있고, 이거 너무 자명한 사실 아닌가 해도 키건의 필치는 그 사유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게 하는 데 탁월함이 있다. 작가는 말한다. "수신자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똑같은 산더미 같은 편지를 쓰는 일"
이 삶이라고 지루한가, 따분한가 하여 온통 잿빛인가. 그럼에도 저기 매일같이출퇴근하는 사람이 있고 글쓰기의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고 밥과 빨래를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그들이 더없이 성실한 이유는 "얽히고설킨 인간의 싸움과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이미 아는 사연일 터다. 그냥 너무현실적이라고? "우리 둘 다 앞으로 젊어질 것은 아니지 않는가!_김민정(시인)

클레어 키건이 간결하고 섬세한 문장을 쓴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문장 같지만, 그 속은 온갖 감정들이 요동치며 들끓고있다. 때로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선명하게 드러낼 때도 많다. 얼음 속에서 끓고 있는 물처럼. 짧은 분량인데도 장편소설 못지않은 감정의 격랑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 역시 문장 하나하나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클레어 키건은 문장을 꼼꼼하게 다듬고 날카롭게 벼린 다음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놓은 남성의 세계를 해체하려 한다. 클레어 키건은 문장으로 싸우는 사람이다. 그 싸움을 응원하고 싶다. 김중혁(소설가)

우리가 아는 것, 항상 알았던 것,
피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은
옷장만큼이나 명백하다.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

필립 라킨, 「새벽의 노래 Aub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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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밤샘 집회를 하고 있다.
눈 내린다.
파주에도 서울에도 - P85

공식 집회가 끝나고 나는 자리를 떴지만 많은 이들이 어젯밤, 한강진 관저 앞을 떠나지 않았다.

‘한강진 대첩‘과 ‘키세스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아침뉴스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서울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사람들 몸을 덮은 은박 담요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처럼 또 누군가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으로 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돕고 살피며 밤을 보낼 줄은.
남태령 이후로도 이런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은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 내가 누리는 복일까.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 - P87

1월 15일 오후 여섯시 칠분
윤석열이 오늘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되었다. 오전 열시삼십칠분.
그를 체포하러 공수처가 들고 간 수색영장에 ‘내란우두머리‘로 죄명이 기록되어 있다. - P98

목적이 뭘까.
뉴스를 읽고 보는 동안 어리벙벙해 계속 생각했다.
이 폭동이 자기들 목적에 어떻게 이로울 수가 있나, ‘국민의 저항권‘(저항권이야, 씨발)을 운운한 모양인데 어떻게 이토록 멍청할 수가.
영상 뉴스를 끝까지 보기가 어려웠다. 떼로 모여 바글바글 들끓는 것 같은 뒷모습들을 보며 여러번 껐다 말았다했다. 그 폭력들이 화면을 넘어 바로 곁으로 다가오는 것같았다. 법원 안을 뒤지고 돌아다니며 구속영장을 발부한판사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너무 끔찍했다. 그 말투, 그 거리낌 없음, 그 오만함, 반드시 찾아내 치명적 상처를 입히고 말겠다는 적의며 앙심. 굳이 책상을 밟고 올라가 사무용품들을 내던지고 발로 차는 모습도 그 모든 게 내게는 정치적 입장의 표출이 아니고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는 영역 표시로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세상에 그 모습을 흩뿌리는 것 외에 목적이랄 게 없는 파괴들. - P101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이삼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 - P102

2월 27일 목요일 오후 여덟시 오분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탄핵 재판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내게무척 아름다웠다.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과 함께 이 사건 탄핵 결정문에서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 P112

3월 7일 금요일 오후 여섯시 이십오분
윤석열의 구속이 취소되었다.
지귀연 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 재판장.

어제는 경찰 쪽에 윤석열 라인이 대거 승진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오늘 법원에서 이런 판결이 있으니 몹시 불안하다.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해 그를 구속했는데, 한 판사가, 전례 없고 법에도 없는 방식으로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셈을 해 그를 석방하기로 했다. 각종 뉴스에 출연한 법조계 사람들도 이유를 몰라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상황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시민들의 불안이 얼마나 큰가. 사회를 향한 이 불신의 값을 누가, 어떻게 치르나. 그저 한때 공부를 잘해 그 자리에 들어간 한 사람이, 한사회 시스템과 공동체의 정서를 이렇게나 뒤흔들고 있다.
계속, 계속.
이것 봐. 나는 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닌데. 시스템이 고루하다고 믿는 입장이고,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 시국의 몇몇 사람들이 내게 다른 입장을 - P113

가능하지 않게 만든다.

읽을 책을 고르려고 책장을 넘기다가 우연히 본 문장. "연결성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모두가 동등하다." 나도 이런 말을 쓰고 싶다. 이런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인간을 향해 돌돌 구부러드는 생각은 접어두고, 보고 듣는 것만을, 찰나의 생각만을 기록하며, 삶이 내게 주는 감각을 편견 없이 흠뻑 음미하고, 그렇게 살고, 쓰고 싶다. 그런데 자꾸 더러워진다. 산다는 건 결국 더러워진다는 것이지만,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며 사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줄기, 다른삶에서 내 삶으로 흘러드는 물을, 타인의 삶에서 흘러나온피가 스며든 도랑의 물을 내 도랑의 물로 받아 마시며 사는 일이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삶이란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일이지만.
이런 오염은 싫다. - P114

이름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이제 지귀연.

공부를 잘한다는 건 뭘까. 내란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사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새삼, 정말로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가 구속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안심되는 일이었는가를 오늘 알겠다. 윤석열이 구속되고 내가 꼬박 이틀을 잤다. 계엄 이후로 오늘이 가장 불안하다. - P115

3월 10일 월요일 오후 세시 사십이분
윤석열은 금요일에 구속 취소가 결정되고 하루도 되지않아 석방되었다. 일주일은 구속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그 사이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판결이 있을 수 있다는희망 어린 예측들이 있었으나 그는 석방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바로 빠져나갔다. 개선장군처럼 퍼레이드를 하며,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초법적 존재들. 초법적 운명 공동체들.
초법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온갖 위법한 일을저지른 자들이 법의 보호를 이토록 꼼꼼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긴다. 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하는, 되니까 되는, - P116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 따로 있다.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일기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일 부르고 싶다.

정신에 척력으로 작용하는 이 괴리를 다스리려고, 고사리 화분을 책상 근처에 잔뜩 가져다두었다. 이게 내 요즘의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보고자, 그런 것을 곁에 두고자하는 욕심으로 고사리를 키우고 있다. 매일 만지고, 물을 주고, 흙 상태를 살핀다. 다바나 고사리가 가장 좋다. 만지면 고불고불한 잎이 종이처럼 사각거린다. 블루스타펀의 제멋대로 뻗친 청록색 이파리들도 그 굴곡이 멋지고 사자 고사리의 애교가 느껴지는 긴 줄기도, 에버잼 고사리의 기세있는 초록도 모두 좋다. 그간 적록색 잎에 분홍 반점이 흩어진 베고니아 잎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되었고 필로덴드론 이파리 두장 사이로 새 잎이 올라오는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스푼 아이비도 한 포트 받았는데 나는 아이비와 관계가 좋지 못해서 잘 클지 좀 걱정이다.  - P117

윤석열의 석방 장면이 내게 그랬던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안긴 충격이 상당한가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까지 매일 동십자각에서 저녁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 내란에 저항하는 모두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지난 토요일 집회에서는 비상행동 의장단이 단식투쟁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동십자각 앞에서 듣고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람들이 또 몸을 다치는구나. 그게 싫다. 이날 행진은 평소보다 좀 길었는데 김보리는 잘 걷지 못했다.

오늘도 수 차례 가정한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다면" 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걸 고민하면서 살아야하겠지. 지금보다 더.

머릿속이 맑지 않다.
제대로 생각하고 싶다. - P120

4월 4일 금요일 시간기록없음
윤석열이 오늘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 일치로 오전 열한시 이십이분에 선고되었다.

불신과 환멸과 걱정과 불안으로 말라 죽을 것 같던 마음이 단숨에 차올랐다. 세상을 향한 감이 그렇게 또 뒤집혀서, 나는 정말 얄팍하구나, 생각했다. 헌재 앞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을 뉴스로 들었다. "당신들하고 동시대를 산 덕분에 이걸 보았어, 영광입니다." 그 말을 내 집 거실에서 광장의 함성에 보탰다.

그 이름으로 시작되는 마지막 일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침.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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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오후 열한시 오십사분
남태령.
마중 나간 사람들.
배웅까지 완성한 사람들.
- P56

12월 23일 월요일 오전 한시 십육분
지난주 토요일 12월 21일.
광화문 비상행동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에 참석했다가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의 고립 소식과 연대 요청을 들은 사람들이 남태령으로 갔다.
서울시 경찰력에 가로막힌 트랙터와 농민들을 마중하러 간 사람들이 그 추운 고개에서 꼬박 밤을 버텨 막힌 길을 열었다.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은 서울 근처만 오면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늘 가로막혔다는 전농의 투쟁단이 처음으로 남태령을 통과한 날이다.

남태령을 어떻게 일기로 옮길까.
뭐라고 쓰든 남태령에서 나온 말들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남태령 소식을 들었다. 내가 습관적으로 체념한 자리에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 P57

이 그 자리를 지켰고 막힌 길을 뚫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다 거기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단편을 쓰려고 가지 않았다. 실시간 영상으로 현장의 말을 듣고 눈으로는 원고를 보면서 내 늙음을 돌아보았다. "전농이 지금 남태령에 와 있다." 나도 그날 광화문에서 그 말을 들었는데, 그게 되지 않을 거라고 먼저 믿는 마음, 보고 들은 바대로 학습된 포기. 부끄러웠지만 오늘은 그 부끄러움이 기꺼웠다.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마음들.

이미 그런 마음들이, 이 강렬한 정치적 국면에 광장으 - P58

또 나왔다가 다른 광장으로 번져간 게 아닐까.
2016년과는 비교되지 않는 속도로 광장이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이 사태 초반부터 광장을 채운 다수 구성원의 영향일 것이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여성들.
그들은 계엄 이전에도 이미 정치적이었지. 삶이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겪으며 살아왔고 바로 곁에 있는 다른 여성의 삶으로도 보고 듣고 배우며 살아오지 않았나.
이 탄핵이 어떤 결과에 이르든 남태령에서 서로 연결되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경이로 목격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사람이 이렇게 많다. - P59

12월 25일 수요일 오전 아홉시 삼십팔분
가수 하림이 어제 광화문 무대에서 
「별에게」를 불렀다.
성탄 전야에 광화문 앞에 서서 이 노래를 들었다.

하림은 어떻게 이 노래를 불렀을까.
어떻게 다 부를까.

너무 고마운 사람. - P60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까. 그런 것이 자신에겐 없으며 없을 거라고 믿는 얼굴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내게는 그런 입장 역시 악함의 기반이 되는 약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약함에내가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약함은 어느 정도가 그의 탓일까. 그리고 권력 가진 이들의 혼돈 그 자체인악함도 약함에서 그 탓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엔 정말 악한 게 있어.
정말 나쁜 게 있어.
사람의 다면성을 이야기하며 악을 고민하는 글을 읽을때마다 그 내용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바로 곁 여백에 연필로 부기한다.
타고나는 걸 나는 악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 P66

그건 자연.
그보다는 사람이, 사람들이 어쩌다 혹은 의지를 가지고하는 일.
멍청하게.
그중에 악이 있다.

종일 뉴스를 듣는다.
오늘, 어쩌면 어제, 어딘가에서 들은 말.
최종적으로는 "개개인의 양심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상황"
그런데 어떤 양심들의 상태가 내 예상이나 기대보다 처참하다. 그걸 목격하느라 매일 지치고 다친다. 기운을 너무잃지 않으려면 거리로 나가 사람들 얼굴을 봐야 한다. 이게옳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말을 듣고 그들 곁에서걷는 일이, 그런 사람들도 세상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내게 필요하다. (내란 옹호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도 이러하면 어쩌지.) - P67

12월 29일 일요일 오후 네시 오십구분
전남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소속 항공기 사고가 났다.
보잉 737기. 181명 탑승.
랜딩 기어가 내려오지 않아 활주로를 몸체로 밀고 가다가 벽에 충돌했다.
항공유를 버릴 틈도 없어 폭발이 컸던 것 
같다. - P74

12월 31일 화요일 시간기록없음
올해 마지막 날 예정된 비상행동의 탄핵 집회는 취소되었다.

끝까지 항공기를 멈춰보려 애쓴 기장의 마지막 모습이불쑥불쑥 생각난다.
희생자들.
유가족들.
올해 세밑이 너무나 가혹하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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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부정과 비리가 알려져도 그를 비롯해 그의 세력들이 하나같이 오만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고 오히려 화를 내는 꼴을 보면서, 저들이 장기 집권을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배경이 아니라면 이렇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안하무인일 수가 있을까 의심을 했고 그래서 ‘계엄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무심코 말하고 다니면서도 나는그것이 내가 겪은 불행에서 비롯된 불안이기를, 타인의 기록에서 내 기억으로 이동한 기우이기를, 방정이기를 바랐는데.


오후 여덟시 오십팔분
단편 원고를 이어 썼다.
김보리가 상심한 채 퇴근해 돌아왔다. 회사 
동료에게이번 계엄의 위법성을 설명하다가 이유를 모르게 언짢아졌다고 했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했다고 한다. 말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 - P43

찮아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김보리도 나도 건강이 좋지 못하다.
입술과 눈과 위장에 번진 염증 때문에 소염제, 항생제, 해열 진통제, 소화제를 계속 먹고 있다.
새벽에 자려고 누웠다가 숨을 쉴 수 없어 엎드려 있었다.


12월 16일 오후 11:03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말을 지난 뉴스에서 보았다.
"다름을 인정하는 게 정치의 출발"
깊은 모욕감. - P43

12월 18일 수요일 오전 네시 삼십구분
광주는 어떻게 견뎠을까. 1980년 이후로 
그 혐오와 오욕을, 타지의 이웃을 어떻게 견뎠을까.

어제 일기를 정리하지 않았다.
메모로만 떠도는 기억들.
하루에 일어난 일을 당일에 기록하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요즘은 늘 어제 일기를 쓴다. - P44

이 말과 얼굴이 생각나 걷다가 울었다. 내게도 그 얼굴이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서 물을 나눠주며 말하다가 울음이 터진 그처럼 내게도, 불시에 그 밤이 떠오르면 생생하게 그렇게 갈라지는 얼굴이.
그와 내가 같은 날 刀에 베였다.
우리뿐일까.

사는 곳도 이름도 얼굴도 다른 이 많은 사람이, 그 밤에 다 같이 베였다. 국민의힘이 2016년 탄핵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호소할 일인가.

계엄 이후로 보름이 넘었다.
보름 만에 윤석열의 지지율이 계엄 전과 같은 24퍼센트에 도달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와중에 지난 12월 6일, 음력으로는 11월 6일, 육십간지로 풀면 갑진년 병자월  - P46

갑진일, 청룡을 뜻한다는 ‘갑진‘이 둘이나 있는 날에 장어56킬로그램이 용산에 반입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걸 멍하니 읽었다.

그래도 이제 좀 차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렌 네미톱스키의 뜨거운 피(빛소굴 2023)를 오랜만에 몰입해 읽었다.
처음엔 좀 심심하고 무료한 소설이라고 느꼈는데 끝까지 읽고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농도의 이야기가 된다. 다 읽고 두번째 읽을 때에야 비로소 열리는 책.


오후 열시 이분
한덕수 권한대행이 양곡법 등 여섯개 법안을 거부했다.
그가 이 법안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윤석열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지가 지금은 너무나 중요한 조짐이고 지표였는데. 윤석열을 탄핵시키고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부정적 조짐이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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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7-15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라지기(대통령)를 새로 뽑았습니다만,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여러 장관 후보자 뒷모습을 하나하나 보자니, 우두머리만 갈아치운다고 해서는 하나도 안 바뀔 이 나라 민낯이지 싶습니다. 더구나 예전에 ‘아픈이(피해자)’한테 ‘피해호소인’이라는 뜬금없는 이름을 붙이면서 놀리던 분들이, 이제는 장관이 되고 싶어서 갑자기 “심심한 사과”라고 하는 일본말을 스스럼없이 들려주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어느 쪽에 있건 하나같이 눈을 못 뜬 채 사는구나 싶고요.

우리가 옳고 아름답고 참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려면, ‘선택적 분노’가 아닌 ‘제대로 짚고 따지는 까칠한 눈’을 뜰 줄 알 노릇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