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책을 사다보면 한 두 권쯤 꼭 여행기가 포함되어 있다. 시작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였을것이다. 당시 책방을 하면서 내 것으로 욕심내어 가진 1호가 된 책이다. 읽고나서 그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회한에 가슴이 벅차올라 그 책에 반했다. 딴에는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난 그저 눈뜬장님에 불과했다는 회한과 그저 스치고 지나친 무수한 절집들, 탑들, 풍경들이 오롯이 살아서 다시 담기는 데에 감동이었다.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 그저 국보 몇 호, 보물 몇 호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표현으로 길들여진 내 머리에, 거기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지, 어떤 조형으로 아름다운지,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언어들로 가득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알고 본 것은 그저 국어사전 속의 낱말들을 아는 것과 같았다. 그 낱말들이 이루어내는 문장의 묘미를 그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아가기 시작했다. 전문가를 위한 문장의 나열이 아닌 나 같은 얼치기의 눈에도 뭔가가 보이게 기록된 답사기, 그 책들을 끼고 참 많이 돌아다니며 더 많은걸 알았고 보았고 깨달아갔다. 아직 그 책 속에 있는 곳 절반도 안 돌아봤지만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곳도 그 책안에는 있어서 가끔 어딘가를 떠나고 싶을 때 다시 꺼내 읽는다. 저자와 다른 시선으로도 이제는 볼 줄 알고 저자의 역사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생길만큼 이젠 나만의 사관도 생겼다. 책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의 문화...]의 판매성공은 우후죽순으로 많은 답사기들을 세상에 나오게했지만 아직 그 책만큼 맘에 드는 책을 만나지 못해 내가 가진 답사기는 그 시리즈뿐이다. 그의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길을 떠나보면 알게 된다. 보이는 만큼 느낌도 커지고 마음을 열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을 나는 길 위에서 배워가는 중이다.

 



 

 

 

 

 

 

 

 

 

 

 

 

 

 

  그 다음, 나를 사로잡은 건 '바람의 딸, 한비야'다. 대체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책에서도 좋아하거나 맘에 드는 작가의 책은 거의 섭렵을 하는 편이라서 그의 책은 전부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리즈부터 [중국 견문록] 까지 다 가지고 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여행자의 숨결을 느끼고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휴머니티에 늘 감동한다.  그의 글을 통해 세계의 변방과 소수민족, 알려지지 않은 같은 지구인의 아름다운 사연들을 알게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 안에만 눈이 머물러 지구 어디쯤에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면서도 희망을 갖고 사는 이들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자신들만의 색깔과 습성으로 종족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길을 따라 시작했던 도보여행도 이제 나만의 방식대로 할줄 알게되었다. 그책의 인기는 정말 많은 베낭 여행책들을 양산하게 했고 서점 한 켠을 장식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책이 가장 잘 팔리고 있는 것 같다. 몇 권 아류의 베낭 여행기를 나도 샀지만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아직도 씁쓸하게 남아있다. 

 


 

 

 

 

 

 

 

 

 

 

 

  다음은 많은 여행 산문집들.
  작가들의 여행 산문집을 좋아한다. 지금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곽재구의 [내가 사랑한 세상, 내가 사랑한 사람]이 그랬고 강석경의 [인도 기행] [능으로 가는 길]들이 그랬다. 시나 소설속이 아니라 일상을 떠나 여행지에서 느끼는 작가의 시선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하는 듯 했다.
  신영복의 [더불어 숲]을 읽을 때는 날마다 여행지에서 엽서 한 장씩을 받아드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격리에서 비로소 자유로운 한 지식인의 고뇌가 명징하게 각인되는 한 장의 엽서를 받는 느낌이 그런 것이리라. 가슴 아파하던 그 새벽 희부윰한 안개 내음으로 남아있는 책이다.
  김윤식의 [문화기행]은 읽는 동안 내내 지식이 짧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신현림의 [시간 창고로 가는 길]은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박물관들이 어디에 있는지, 한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작은 박물관을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해 주었다.
  건조한 문체로 읽고나면 언제나 마른 모래가 서걱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은 말랑말랑한 빵처럼 부드럽게 나를 사로잡으며 여행자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오래 그의 곁에 앉아서 최면에 빠지듯 얘기를 듣고 싶은 느낌이 남는 책이어서 그를 따라 10번 국도를 오래 헤매고 걸으면서 그의 음성으로, 내 눈으로 감탄을 하며 본 풍경이며 느낌은 오롯하게 내 것으로 담겼다.
  이화이 시인의 [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여행]은 제목 그대로 연민어린 시선이 얹어진 풍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특히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를, 나희덕 시에서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내게 보여 주었다. 사실 아무런 생각도 감흥도 없이 그 나무 앞에 오래 서있다 온 적이 있는데 그런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를 가장 강력한 끌림으로 사로잡은 책은 구본형의 [떠남과 만남] 이다. 정말 이 책에 반했다. 다 덮기가 아까워서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둔 채로 며칠씩 갖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고르는데 나만의 원칙 같은 게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우선순위고 출판사도 선택 하는데 한몫을 한다. 대부분 어떤 책을 구입할지 메모해두었다가 책방에 나가면 앞 뒷 표지를 보고 특히 뒷면을 자세하게 본다. 사람도 그 뒷모습이 진솔하듯이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에. 다음은 발문이 누군지, 서문도 읽어보고 내용을 쫘르륵 훑어보고 살까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딴에는 까탈스럽게 그렇게 골라도 실망하는 책들이 더러 있으니 그 방법이 꼭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책을 골라서 살 때보다 책방에서 우연히 고르게 된 책일 때 책방을 나서는 순간 정말 뿌듯한 기대감이 크다. 책은 읽을 때도 그렇지만 고를 때의 기대감도 책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다. 요즘은 찜해 놓았다 한꺼번에 인터넷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책방에서 빈손으로 나오는 법은 없다. 알고 있는 작가도 아니었는데 그 책을 펼쳐본 것은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빠져있을 때여서 같은 출판사라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펼쳤을 때, 사진이 한 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읽는 동안 내내 그의 유려한 문장, 현실을 직시한 시선, 무거운 베낭에 담긴 많은 느낌들에 반했다. 또한 사진들은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내게 주었다. 내 고향 남도의 서정과 색깔들, 내 그리움의 길들이 거기 살아서 담겨있었다. 오래 그 책을 끌어안고 다니다 까맣게 밑 줄 그어가며 읽었던 첫 번째 책은 오랫만에 만났는데 선물할게 없던 친구에게 가있다. 그것을 시작으로 참 많이 그 책을 선물했는데 요즘은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출판사로 문의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그 책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호사가의 취미가 아닌 자기 충전의 내면의 시간이 된다는 것을 그 책으로 얘기해 주고 싶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사진속의 색깔들은 나를 한없이 바다에 가고 싶게 불러댄다. 그 유혹은 강열한 것 이어서 그 책을 품고 기차를 탔다가 그의 문장들이 바다 속보다 더 깊이 끌어내려 나를 익사시키곤 한다. 나는 아직도 자맥질을 반복하면서 그의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멸치 한 마리다.

  얼마 전에 읽은 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기대치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땅의 변방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끌고 걸어가는 행상 할머니 보따리 속에 담긴 삶의 애환이다. 굽은 등으로 그의 머리에 인 고단한 생의 보따리를 펼치면 고작해야 하룻저녁 술값에도 못 미치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슬프지만 외면할 수 없는 끈적끈적한 진창의 이야기들이 책을 덮고난 며칠동안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들의 충일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그 어떤 고고한 지성의 향기보다 나를 취해 흔들리게 했던것이다. 사람들속에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가는 여행이 이 시대의 진정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2003. 9. 14.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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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7-2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과 여행서에 대한 산 님의 글이 마음속 깊이 와 닿네요. 저도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산 님께서 이 글에 담아 소개해 주신 수많은 책들을 보고 나니, 나는 그동안 어떤 책들을 읽으며 여행을 다녔나 싶은 생각도 슬쩍 드네요.(저는 소개해 주신 책들 가운데 유홍준 님의 책과 한비야님의 책 몇 권만 읽은 것 같아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4-07-27 01:05   좋아요 0 | URL
에궁 이런~ 여기까지 걸음하셨군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지요.
여행도 결국은 사람 사는 모습의 한 단면일 테니까요.
까마득하게 오래전의 글이라 저도 다시 읽어 보았네요.
ㅎ~ 십년도 전에 썼네요.
제가 썼나 싶을 만큼... 색깔을 감출 수는 없지.
감사합니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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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 점에서 이제 열심히 치열하게 허심탄회하게 글쓰기 공부에 전념할 일만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 망설이거나 늦은 게 아닐까 회의하는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고병권 선생님의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다음은 2007년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새만금 대장정'의 선언문에 들어 있는 문구 일부이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금, 우리의 행진은 너무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대추리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군대의 투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의 행진은 한발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한미FTA 협정문 초안이 작성되었다고 하는 지금, 우리의 행진은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걷겠습니다.

                                                                     (고병권. 『추방과 탈주』. 그린비. 2009. 194쪽)

 

 

  모든 행동은, 모든 시작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행동은 결코 늦는 법을 모른다'는 놀라운 진리와 마주쳤다. 사십여 년을 엉거주춤 살면서, 내 행동은 늘 뒤늦게 후회하는 반응의 일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구절을 통해, 사십여 년 동안을 내가 행동에 대해서 적절치 않은, 검증되지 않은, 통념적 상식에 갇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안한 사람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잘못한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

  이 모든 소중함을 우리는 뒤늦은 후회로 깨닫고 알게 된다. 그래서 행동을 하고 싶을 때는 이미 때늦어 버린 듯이 느낀다. 그러나 실상은 '그 순간이야말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유일하고 빠른 변화의 시작' 이라는 놀라운 아이러니를 위 구절은 가르쳐 준다.

  정말이지,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이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 만큼 더 빠른 다른 변화 방법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 점에서 놀랍게도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르다. 행동은 결코 늦는 법을 모른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는 행동이,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는 반드시 가장 빠른 길이다.

  더구나 이제라도 공부를 시작하는 행동은, 잠시 후에 또 다시 저지를 후회를 막아 준다.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느낌과 생각이 이미 다른 계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렇듯 이제라도 시작하는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행동이기에, 행동은 또한 언제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모든 행동은, 언제나 가장 빠른 미래이기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혼자 외로이 여행을 떠나고, 어제와는 달리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고, 미칠 듯이 자신을 볶아 대고, 술에 만취해서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을 끄집어내 보는, 일체의 행동들이 즐거울 수밖에 없고 짜릿할 수밖에 없다. 마치 최선의 지름길을 알고 시작하는 탐험가처럼, 자기 행동이 가장 빠른 길임을 확신하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혹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 지금·여기 현실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는 것이다.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기때문에 지금·여기의 현실의 무언가가 결핍된 듯이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런점에서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힘이 잉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후회와 아쉬움은, 욕망과 희망의 첫 느낌일 뿐 절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망상까지 해보았다.

  이 막막한 우주에서,이 엄청난 인구수 중에서, 나라는 미약한 존재는 없어도 되는 개체이지만 그러나 없어도 되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라, 없어도 되는데 생겨난 '잉여'에서 오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어떤 책임이 부여되기보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마치 자식 많은 집의 없어도 되는 막내자식처럼 어쩌면 자기 마음껏 자기를 찾아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가 아닐까.

  국가나 기업이나 제도, 관습이나 이념이, 그리고 무엇보다 천민자본의 논리가 우리를 뭔가 '결핍' 된 존재로 여기고 우리를 관리하고 규율하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 우주의 남아도는 '잉여'로서 존재하기에 자기 멋대로 살아도 되는, 자기 멋대로 살아야만 즐거운, 이 우주의, 저 안드로메다의, 막내공주와 막내왕자들이 아닐까.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나를 이런저런 망상에 빠트리는 이 문구가 너무 좋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첫번째 행동은 아마 꿈을 꾸는 것이리라. 가장 빠른 첫번째 변화는 마음의 실질적 상태를 바꾸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장 빠른 첫걸음은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이만교.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그린비. 2009. 381~384쪽)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책을 덮으며 …… 뜨거워진다.

하~!!!

구월이구나.

2010, 9, 1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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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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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김사인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어쩌다 비 개인 여름 한나절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

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중에서

                                          시인은 1955년 충북 보은 태생. 1982년 [시와 경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있고

                                          신동엽 창작기금과 현대문학상 수상.

 

 

          

 

 

열어 논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는 새벽입니다.

여름... 지나가나요?

 

 

폭우에 가까운 비가 쏟아진 다음 날, 오랜만에 폭포가 이름값을 했답니다.

이번 여름에도 밥터와 집을 오가면서 보냈습니다.

일하는 짬짬이 더운 머리를 식혀주던 물소리가 없었다면 가슴까지 습기로 짓무르지 않았을까 -,-...끔찍하네요.

휴일이면 지난번 올레이후로 쭈욱 말썽인 발목인대 덕에 통증클리닉, 신경외과, 한의원을 골고루 돌아다녀보았습니다.

한의원이 그중 맞는듯하여 지난주 일주일 집중적으로 치료했더니 한결 나아졌네요.

그대는 어떠신지요?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1권,

[돌아다보면 문득 (정희성)] 1권,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6권,

[기차를 놓치다 (손세실리아)] 3권,

[떠남과 만남 (구본형)] 1권,

[끌림 (이병률)] 2권,

[마늘 촛불 (복효근)] 1권,

이번 여름,

생일에, 고마운 마음에, 태교에 도움이 될 듯해서 전해진 책들의 목록입니다.

반 이상은 책 선물이라고는 처음 받아본다는 이들에게 가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양식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모를 일이지요.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배가 부른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섬을 걷다 (강재윤)]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더 리더 (베른하르트 슐링크)]

[생각 없는 생각 (김흥호)]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고미숙)]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 (강은교 외)]

[공손한 손 (고영민)]

[무릎 위의 자작나무 (장철문)]

[껌 (김기택)]

여름동안 먹어 치운 책의 목록입니다. (ㅎㅎ 나름~ 포스팅 게으른 이의 은근 자랑 질)

리뷰는 늘 써야겠다고 벼르지만 다음 책이 기다리고 있어서 허겁지겁 패쓰하게 되네요.

 

 

바람돌이로 쌩, 오가는 길에 연꽃을 만납니다.

엄마 기일이 있는 봄,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기일이 있는 여름,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의 큰어른이 떠나셨습니다.

88일만의 떠남이 체증처럼 명치끝을 건듭니다.

오래~ 그럴 테지요.

부디.... 평온하시기를.

 

 

그렇게 여름은 떠나갑니다.

 

이제 구월입니다.

그대, 오시려나요?

가을, 기다립니다.

 

               2009, 8, 29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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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66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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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이유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중에서

              시인은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남, 1959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변경의 꽃] [평균률]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이 있고

               한국문학 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

 

 

가게에 국화를 심었습니다.

국화 한 송이, 마음 안에 들여놓아도 좋을 가을입니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사이 계절이 지나가고,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가듯 꽃도, 지고 말겠지요.

그 세월 앞에 우리들 마음 안에 꽃은 어떨지.......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어쩔까? 어쩔까?

자꾸 반문하게 됩니다. (빙그레)

마음껏 사랑하십시오.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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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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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중에서                

               황지우시인은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게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지치도록 기다려본 사람만이 당신의 부재를 이해합니다.

오래토록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대에게 가는 길을 시작합니다.

해 뜨는 아침부터 날마다 그대에게 천천히 가려합니다.

그대여, 당신도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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