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라는 말은 느낌이 좋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기거나 생각을 비우고, 잠시 멈추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닫기도 하는 호젓한 풍경이 떠오른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그런 데 시간을 쓰기로 작정을하고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이니, 적어도 산책하는 동안은느긋한 마음일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집 앞의 소박한 산책로는 작은 공원과 연결된다. 왕복해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오히려 그게 장점인 듯하다. 점심을 먹은 동네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다. 하긴 요즘 세상에 차도와 떨어진 길이 얼마나 귀한가. 이 동네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산책로였다. 이사를 오면서 나도 산책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P237
나의 산책길 풍경은 다채롭다. 작은 동물들이 바스락거리고, 중노년 여성들이 두 개 이상의 사투리가 섞인 대화를 나누고, 사슬 목걸이를 하고 덩실대는 미국 청년들이있는 곳이다. 호젓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나는 계속해서 바란다. 저 미국 뒷골목 청년들이 어서철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보아가며 자기 생활을 즐기면좋겠다. 어린이가 소음을 내면 ‘나도 한때 저랬지‘ 하며 너그러이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구든 잡채에 대해서는 좀 큰 소리로 말하면 좋겠다. - P246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린이한테는 ‘무심히‘ 하면안 된다고. ‘별 뜻 없이‘ 하면 안 된다고. 어린이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특별 대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가 있다는 걸 안 이상, 상대가 어린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비건인 친구와 외식을 하려면 비건 식당에 가야 한다. 당연하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과 식당에 가려면앉기 편한 식당을 찾아야 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주문에 시간이 걸려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어느 자리에 어린이가 있다면 그를 ‘무심히‘ 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한테야 "빨리 가세요" 할 수 있어도 (사실은 안 되지만), 어린이한테는 그러면 안 된다.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호자도 없는 어린이한테는.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일부러 누구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남을 방해하거나 - P252
다투는 것도 아닌 이상, 나는 무해하다고. 대체로 무심하면 무해하고, 무해하면 된 거라고. 그런데 어린이를 가까이에서 보면 무심한 것도 잘못일 때가 적지 않았다. 한번은 어느 대형 마트 입구에 카트의 손잡이를 닦으라고 소독제와 휴지가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소독제는 분무기에 들어 있어서 그걸 뿌리고 휴지로 닦으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귀찮아서 그냥 가고, 어떤 사람은 꼼꼼히소독했다. 나도 카트를 하나 꺼내려고 다가가면서 보니 어떤 분이 카트 손잡이에 호쾌하게 분무기를 뿌리는데, 바로 옆에서는 조그만 아이가 그분에게 매달리며 뭐라고 뭐라고 종알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아빠의 바람과 달리, 어린이 얼굴에 약이 뿌려지는 셈이었다. 순식간의 일이고 이미 끝나버린 데다 내가 용기가 부족해서 그분에게 뭐라고 말을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 P253
어린이가 있을 때 무심해지면 안 된다. 마지막에 탄 승객이 어린이일 때는 버스 기사님들이 좀 더 시간을 두고 출발했으면 좋겠다. 헬스장 광고에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신체 노출이 많은 거야 그렇다 쳐도, 같은 건물에 어린이가다니는 학원이 몇 개나 된다면 그런 사진이 담긴 광고판을 - P253
입구에 세워두면 안 된다. 담배를 피우더라도 어린이가 지나가면서 있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연기가 어린이에게 직접 가지는 않게. 식당에 어린이가 있으면, 암만 반주가 과했더라도 욕을 안 해야 한다. 일행이라도 그를 말려야 한다. 방송이나 영상도 어린이 시청자가 있다면 고려를...... 세상에 어린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내 결론은 우리가 무심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한테도 어른끼리도 어린이끼리도. - P254
쉬운 말이 좋다. 쉽게 쓸 수 있으면 쉽게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 명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좋은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느라 작가가 고생하더라도,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읽고 ‘해석‘하는 대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데 힘을 쓰는 게 좋다고 믿는다. 그렇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어렵게 써야만 한다면 어렵게 써야 한다. 복잡하게 설명해야 하는 건 복잡하게 설명해야 한다. - P261
그러니 ‘노키즈존‘이 없는 세상은 그저 이상일 뿐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노키즈존‘은 사라져야 한다. ‘어린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어린이의 정체성이다. 정체성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 출입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해도, 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차별이다. 이 차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면 ‘노 휠체어 존‘이, ‘노 시니어 존‘이, 또 ‘노 무슨 무슨 존‘이 생길 것이다. 사실 문제상황을 가정한다면 차별과 배제는 제일 쉬운 해결책이다. 나는 이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풀고 싶다. 평등을 찾아가는 길은 원래 어려운 법이니까. 나는 ‘노키즈존‘이라는 ‘쉬운 말‘이 없어지면 좋겠다. 말과 함께 그 개념도 낡은 것이 되어 사라지면 좋겠다. - P264
나는 어린이가 미워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어른스럽게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운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고 그런 걸 마주하면 불편한 게 당연하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까 그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생겨난 미움을 잘 처리하고 새 얼굴로 어린이를 보고 한 번 더 어린이를 다독이는 것이 어른의 몫이다. 그런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이론서에서 읽은 적은 없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안다. 오래전, 전단 광고 덕분에 만난 또 다른 어린이가 있다. 상담을 오신 어머니 곁에서 그 어린이는 조금 부루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겨울방학에 할 일이 늘어난 게 마음에안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의외로 나와 호흡이 잘 맞아서 - P286
사춘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친구 문제도 이야기했다. 그 어린이는 나와 다투다시피 한 적도 있지만 내게 안겨 울기도 했다. 내가 미울 때도 많았을 텐데, 서툴렀던 나를 참아준 고마운 어린이였다. 그 아이가 이번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본격적인 입시 준비가 시작된 뒤로 통 만나지를 못했는데 코로나19로 뒤숭숭한 가운데 시험을 맞이하는 것이 늘 마음 쓰였다. 시험 전날 안부를 전하면서 일부러 무심한 투로 "시험잘 보고, 끝나고 어디 가서 놀지 말고 집에 가!"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선생님, 항상 보고 싶어요. 끝나고 좋은 마음으로 연락드릴게요"라는 답이 왔다. 걱정하는나를 안심시키는 다정한 말이었다. 나는 이제야 겨우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데, 그때 그 어린이는 벌써 이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는 연말이다. - P287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윤동주, 「개 1」 전문 - P295
내 마음을 파고들어 본다. 내 마음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존경하는 어른들이 있으면서도 툭하면 ‘이 시대는 진정한 어른이 부족하다‘ ‘본받을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아쉬움을 부풀렸다. 내가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참조할 세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둔 것 같다. 어린이한테 어른은 절대적인 존재다. 어린이가 먹고 입고 자는 문제는 전적으로 어른 손에 달렸다. 물질적인 면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그렇다. 어린이는 어른이 사는 모 - P303
습을 보면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배운다. 세상은 어떻게돌아가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운다. 어린이는 모르는게 있으면 어른한테 물어본다. 어린이끼리 해결되지 않는갈등을 어른이 중재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화해시키거나떼어놓는다. 훈육하고 위로한다. 정확하게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은 대체로 어른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이 어른의 권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돌보고 책임지는 권위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모습이 어린이가 어른에 속해 있는게 아니라 어른에게 기대어 있는 장면으로 보인다. 나는 어른이니까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옳다. 내가 먼저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어른 뒤에 숨지 말고, 그분들한테 기대어서. - P304
한편으로 나는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처럼 좋은 어른이, 지금 당장 되고 싶다. 김장하, 박막례, 채현국, 김영만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제부터 안간힘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마치 그런 어른인 척하고 사는 것이다. 따뜻하게, 힘 있게, 현명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부조리를 잊지 않은 그 ‘젊은 어른‘처럼, 솔직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고싶다. 아니, 꼭 되고야 말겠다. - P306
나이가 드는 건 좋은데 노인이 되는 건 두렵다. 나는 생활의 경험을 쌓고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지금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노인이 된나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눈이 침침하고 근력이 부족하고청력이 떨어지는 신체상의 노화도 걱정이지만, 사회적으로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떠올리면 겁부터 난다. 모든 신기술에 꼴등으로 적응해온 나는 키오스크와 태블릿 주문에 익숙해지는 데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따라잡을 자신도 없고, 초연해질 배짱도 없다. 나는 도태될 것이다. - P307
이제 내 꿈은 수박 한 통을 해치우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저녁에 아파트 벤치에 앉아 산책 나온 동네 강아지들의 인사를 받는 할머니도 되고 싶다. 도서관에 ‘큰글자도서‘를 제일 많이 신청하는 할머니가, 철마다 버스를 타고 패키지여행을 다니는 할머니가 되겠다. 병원에서 검사실을 잘못 찾고 의사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는 할머니도 되겠지. 그 걱정은 그때 가서 하자. 2053 년의 ‘요즘 문화‘에 쩔쩔매는 할머니가 되겠지만 그때 가서 쩔쩔매자. 일단 머리가 까맣고 후드티를 입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노후준비는 수박 먹는 양 늘리기, 블루베리랑 파프리카 챙겨 먹기다. 나중에 만 보를 함께 걸을 친구들과 계속 술 먹기, 동네 강아지들 이름 많이 알기다. 잘하면 끝까지 살아남을것 같다. - P310
몇 번이나 마주 보고 울었고, 그보다 천 배는 많이 함께 웃었던 친구. 그날 친구가 베풀어준 도움은 모두 소중했다. 무엇보다 나랑 같이 있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고마웠고, 그런 친구를 둔 내가 자랑스러웠다. 곰 인형들을 기증해준 것도 물론 고맙고. 친구가 많다는 말을 들은 날, 나는 재연이한테 했던 말중에 하나를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꼭 필요한것 같긴 하다고. 근데 언제 누구와 만날지 모르니까, 독서교실 구경의 날 만난 내 친구처럼 착하고 멋있게 자라고 있으라고. 어린이들이 친구를 원하는 만큼,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친구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한 수고를 할 가치는 충분하다. 친구 덕분에 나도 계속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게 되니까. - P318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할 때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순식간에 판단하고 행동하는 분도 있지만 나는 어린이한테 화장실 순서를 양보할 때조차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도 계속 손톱만한 용기라도 내보려고 한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내 생각에는 ‘친절‘만큼 구체적으로 세상에 윤기를 더하는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친절하게 대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나의 친절을 이용하거나 나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럴 테면 그러라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줄 친절이 줄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내가 지는 게 되니까. - P325
날마다 보는 험악한 뉴스만큼, 험악한 뉴스에 무감해지는 나 자신에게 겁이 난다. 그럴 때 친절해지기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진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주려면 상황 파악도 잘해야 되고, 용기도 내야 한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낼 수 있는 용기는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게 ‘친절함‘이라면 나는 그에 걸맞은 판단력도, 용기도 갖고 있을테니까. 언제까지나 다정하고 용감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장래희망이다. - P327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자라서 더 나은 어른이 된다. 어딘가에 ‘세상이 이런 곳이구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어린이가 있다. 어른이 어린이를 보듯이 어린이도 어른을 본다. 어른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배운다.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면 더 나은 어른이 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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