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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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삶아 건진 수육과 탁주 한 말 마을회관에 들이던 날 필시 입막음용일 게라고 사람들은 속닥거렸다 집주인 박목수가 전기세 물세 똥세를 터무니없이 물려도 조목조목 셈하지 못했고 깔깔이 맞춤 원피스 품이 솔거나 장날 산 태양초에 희나리가 근 반쯤 섞여 있어도 첫 휴가 나왔다가 귀대 날짜를 넘겨버린 외아들을 고발할까 두려워 따지지 못했다 방범대원 호각소리 유난히 긴 밤이었던가 잔술 팔아 모은 뭉칫돈 쥐어주며 빌어먹더라도 대처로 나가라고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고 순경한테 붙잡히면 끝장이니 시비 거는 놈 있거든 무조건 져주고 파출소나 검문소 근처는 행여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같이 살아보라고 등 떠밀고 돌아와 그 길로 곧장 박목수 멱살 잡아 공과금 되돌려 받고 실밥 터진 원피스 다시 재단시키고 시장통 어귀에 희나리자루 패대기쳤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밤새 막걸리 독 바닥내던 어머니, 이 말을 끝으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오살헐 놈!

 

                                                           손 세실리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 전문]

 

    이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을, 그런 욕조차 뱉지 못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시를 읽고서야 떠올렸기 때문이다. 기억에서조차 몰아내고 싶던 무지막지한 절망, 꺼낼 수 없었던, 결코 꺼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시절을 시인은 토로하고 있는 것인데 그 절절한 마음이 짚어져서 눈물이 먼저 난다. 나는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것이다. 집에서 출, 퇴근‘방위’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 중이던 성실하기 짝이 없는 오빠가 탈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몇 달 돈 벌어 엄마 준 다음에 다시 복무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계획으로 감행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몇 달 뒤 자수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오빠를 엄마모시고 면회하러 가던 날의 참혹함을 나는 아직 풀어 놓지 못한다. 병역을 마치고 장삼이사로 사는 오빠도 애써 잊은 기억일 것이다. 또 엄마 떠난 이후, 서른에 세상을 떠난 오빠를 면회 가던 광주 교도소 가는 길, 세상에서 그렇게 먼 길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꺾이는 무릎을 곧추세우면서 기대오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내뱉던 ‘이 오살헐 놈의 시상!’ 만이 귀에 쟁쟁하다. 오살헐 놈! 절대 입 밖으로 토해 내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이다.

 

시집 [기차를 놓치다] 리뷰에서 썼던 글이다.

 

 

 

 

 

 

 

 

 

 

그의 서른의 생일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난 며칠 후, 그의 사고 소식을 듣던 날의 아침도 이렇게 차고 맑았다.

꽃들은 피었었을까.

기억이 없다.

팔십 오년의 시작과 함께 들려온 부음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두 달 만에 접한 참담한 소식에

정녕 꿈일 거라고,

꿈이었으면 싶었던 아득하게 먼 두 시간의 길.

그래서 그는 그렇게 섧게 울었던 것인가.

누구보다도 서럽게 고개를 꺾으며 꺽꺽 울던 그의 울음이 아직 귓전에 있는데,

그가 가다니.

도망치고 싶었지만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들어선 병원 영안실.

춥다.

 몇 년 후 느낀 죽음의 모습은 추위였다.

죽음의 기억은

기억만으로도 여전히 뼈가 시리다.

그때도 추웠다.

섬뜩한 한기에 딛는 걸음은 걸음마다 허방이어서 황망했다.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작은 언니의 애가 끓는 울음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놓았다.

더 먼 길을 눈물 바람으로 들어서는 큰언니는 영정 앞에서 혼절했다.

우리는 복받치는 설움에 무너졌다.

가난에

거듭되는 광폭한 재앙에 한 뜻으로 한 맘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십 구년.

벌써 그렇게 되어 버렸구나.

병아리 닮은 노란 스웨터를 사들고 왔고 한 타스의 연필,

보기만으로도 배부른 공책들을 처음으로 선물로 안겨 주던 그.

겨우 다섯 살이 많았을 뿐인데

어릴 때 그는 엄청 어른이었다.

그렇게 어른이고 싶어 했고,

얼른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가고 싶어 하던 그가

영영 자유롭게 떠나 버린,

오늘 그의 기일이다.

그리운 오빠.

.......

언제나 서른의 젊은 작은 오빠.

불러본지 오래 된 귀안 오빠.

강. 귀. 안 (姜貴安)

내가 욕심내던 미색 재킷에 흰 바지를 입은 채

그쪽 세상에서도 부지런히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겠지.

어질어질하게 찬란한 봄.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다.

떠나버린 사람들이 그리운 봄밤이다.

                                             201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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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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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편지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중에서

 

 

        

 

 

당신,

제가 보낸 봄 편지 받으셨는지요.

버드나무 머릿결을 닮은 바로 그 편지요.

안 받으셨다고,

에이~ 그럴 리가, 요.

틀림없이 보냈는데.......

아, 주먹을 꼭 쥐고 나온 아기 이파리들이

제가 당신한테 보낸 생명의 찬가요,

봄의 예찬인 편지였는데,

모르시는 당신 섭섭하네요.

무정한 당신,

행여 오며가며 지나는 길에

연둣빛 새 잎을 보거든

연두,

연두,

세상이 온통 연두인

찬란한 이 봄에 ‘당신, 사랑합니다.’ 라고 적은

제가 보낸 편지인줄 아셔요.

꼭이요~ ^_^::

꽃은 놔두고 연두만 보아도 마음까지 봄물 차오르는

환장하게 아름다워서 사무치는 봄밤,

당신이 많이 그립습니다.

라고 편지를 쓰고 싶네요.

꽃,

피어나는 이 밤

꿈도 없이 ​

잘자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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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사귀다 문예중앙시선 12
이영광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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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
                    이영광

평안하다는 서신, 받았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아침이 너무 오래 저 홀로 깊은
동구까지 느리게 걸어갔습니다
앞강은 겨울이 짙어 단식처럼 수척하고
가슴뼈를 단단히 여미고 있습니다

마르고 맑고 먼 빛들이 와서 한데
어룽거립니다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흔들고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일으켜 세우며
강심으로 차게 미끄러져갔습니다

이대로도 좋은데, 이대로도 좋은
나의 평안을
당신의 평안이 흔들어
한 겹 살얼음이 깔립니다

아득한 수면 위로
깨뜨릴 수 없는 금이 새로 납니다
물 밑으로 흘러왔다
물 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흰 푸른 가슴뼈에
탁본하듯

                                  시집[그늘과 사귀다]중에서

 

 

                            

 

 

 이영광시인의 신작시집 [나무는 간다]를 읽다가
옛시집을 뒤적거린다.
 '흰 푸른 가슴뼈에 탁본하듯 ' 박혀온 시......
시,
시,
 시들이 풍경처럼 댕강댕강 울려댄다.
바람이 불고 흙비가 쏟아졌다 개었다 하는 2014. 3. 20.
조퇴하고 테니스엘보에 주사맞고 물리치료 하는 긴 시간,
나는 이영광, 그와 사귀었다.
날 선 그가, 그의 시가 좋구나!
이렇게 삼월, 지나간다.
한 세상, 봄이다.
아직 매화도 산수유도 만나지 못했어도 봄이다.
화안한 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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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세트 - 전15권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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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 12~15권을 읽고

 

   “1992년에서 2006년 까지 매년 한 권씩 15권을 15년 동안”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1권 서문에서 그렇게 각오를 밝혔고 그렇게 했다.

  나는 로마인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것이 1998년이었고 마친 것이 2013년, 읽는 데에도 그와 같은 15년이 걸린 이 시리즈를 마친 소회가 각별하다.

 

  98년, 세계의 전부였던 책방을 그만두고 가지고 있던 잔액마저 누군가에게 완전히 털린 것을 실감하던 그 비장한 날들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세상은 바야흐로 난분분 벚꽃이 피었다 지던 봄날이었지만 오층짜리 낡은 아파트 월세의 작은 방에 스스로 갇혀 지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작은 언니의 손에 이끌려 지하상가 더 좁은 곳에서 김밥, 우동을 팔기 시작 했다. 먹고 살아야 했고 최소한 일이 필요했으니.(언니는 그 일을 두고두고 미안해한다. 그러나 그곳은 삶의 새로운 학교였고 나는 그곳에서 세상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좀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니 언니는 자랑스러워해도 되는데.......^^)

  그곳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호객행위를 했고 점차 넉살도 늘어갔지만 여전히 격리 수감 중이었다. 스스로 유폐를 풀 때 까지 세상과의 유일한 면회는 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동안 가난한 허기를 채우는 떠나는 영혼들과 책이 전부였을 것이다. 차츰 시간이, 사람들이, 책이 황폐한 심경을 치유해줬고 용기를 내어 혼자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걷는 여정도 길어졌다. 걸으면서 성장했다. 날 선 모서리들이 햇볕아래서 바람결을 따라 둥글어지기 시작했고 그 길 위에서 세상의 많은 책들에게 위무를 받았다.

  그렇게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한 15년, 여전히 두어군데 옮기기는 했지만 누군가에게 밥상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누가 믿든 말든 배고픈 이들에게 정성스런 밥 한 그릇을 내어다 주는 아주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어떤 15년이 위대한지는 자명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위대한 15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에 빠져 지내면서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잘난 체하는 버릇이 생겼다. 부끄럽게도 꽤 오래 그랬던 것 같다. 조금 모자란다 싶거나 묘사가 서투르다 싶으면 가차 없이 글쓴이를 무시하면서 ‘안 써서 그렇지 내가 쓴다면 발가락으로도 이 정도는 쓰겠다 뭐’ 하는 생각이 그랬다.

  활자에 목마른 시절,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 심지어 순정만화, 할리퀸 로맨스문고, 통속소설로 치부되는 온갖 로맨스 소설들, 무협지, 선데이 서울류의 잡지들, 영화대본들까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안목도 생겼고 나름 좋아하는 작가, 문체, 장르들이 터득되었던 것인데....... 스스로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어떤 글이든, 그것이 무슨 장르이든 시작을 해서 완성하기까지의 과정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저린 순간들이 담겼다는 것을. 그래서 이젠 어떤 책에든 겸손해지게 된다. 감사하면서 읽게 된다. 문장부호 하나하나들까지 거기에 숨은 의미를 읽으려 애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감동하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 그녀의 끈질긴 노력과 탐구, 인간에게의 접근은 그 긴 시간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도시국가 로마의 탄생에서부터 천년동안의 존재감이 역사로서만 아니라 문화, 이념, 정치, 책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방대한 철학서이자 교훈서였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생들이 그렇듯이 혈기왕성한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하다. 성장하는 로마도 그러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꿋꿋하고 멋진 지도자와 아우구스투스라는 착실한 지도자가 확고하게 굳혀둔 제국을 지키는 황제들이 있었던 시절의 로마는 빠르게 읽힌다.

  그러나 쇠퇴기, 노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읽어내는 일은 몰락해가는 오빠를 바라보는 일처럼 안쓰럽고 안타깝고 애통하다. 마침내 완전한 멸망 앞에서도 악다구니처럼 발버둥치는 치열한 동작들은 페이지를 더디게 넘기게 했다. 12권, 위기로 치닫는 제국에서부터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까지는 힘들게 마친 읽기였다.

  읽는 동안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읽으면서 노년의 자신을 떠올리게 되어서다. 어느 사이 끝을 향하고 있는 때가 되어서도 끝인지 모르고 과거에 매여 살아온 날들이 섬뜩하게 다가 온 것이다. 그래, 마무리를 준비하는 여정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우리라. 끝끝내 권력의 한 줌을 부여잡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악착같을수록 추하게 몰락해 갈 것이다.

  끝을 인정하자.

  언젠가는 끝이 온다.

  어떤 끝이든.

  놓을 것은 놓아 버리자.

  로마인 이야기와 시오노 나나미가 대단해지는 건 그 지점이다. 천년 제국의 역사가 우리 생의 모습과 닮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결국 역사는 미래인 것이다. 개인의 역사도, 국가의 역사도.

  다시 찬찬히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긴 시간을 건너뛰어서 앞부분을 봐야 했던 곳들이 많아 아쉬웠으니.

 

  다시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늘고 있다.

  책 읽는 방식도 책 선택 목록도 바뀌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독을 겨냥한 속독에서 정독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읽은 부분을 읽고 또 읽고. 꼭꼭 씹어 먹는다.

  신중해지고 있다.

  낡아간다.

  늙어간다.

  책읽기는 관찰이고 성찰이다.

  삶도 그러하다.

  내 삶 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그러하고 사물이나 풍경이나 자연을 대하는 관찰자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성찰 또한 다르다.

  다시 읽고 나서는 예전과 얼마나 다른 느낌일지 궁금하다.

  로마인 이야기는 끝에서 새로운 시작의 길을 열어 보인다.

 

 

  로마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지중해는 이제 로마인의 ‘내해’(Mare internum)가 아니었다. 다른 종교와 다른 문명 사이에 가로 놓인 경계선이 되었다.

  비행기를 타면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까지 가는 시간은 로마에서 파리에 가는 시간보다 짧다. 하지만 공항을 나오면 다른 문명권에 왔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문명이 더 우수하고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미술관에 가서 로마시대의 조각상이나 모자이크를 감상하거나, 교외에 나가서 지금도 많이 남아있는 로마 시대 유적 앞에 서면, 로마의 포로 로마노나 콜로세움에 갓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고대에는 지중해 남쪽과 북쪽이 같은 문명권에 속해 있었다. 양쪽이 분리 된 것은 7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연결 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로마인 창조해낸 로마 세계는 아니다.

로마 세계는 지중해가 ‘내해’가 아니게 되었을 때 소멸했다. 지중해가 양쪽을 연결하는 길이 아니라 양쪽을 갈라놓는 경계선으로 변했을 때 로마 세계는 사라져버렸다.

  그후 지중해는, 사라센 해적의 내습을 알려주어 사람들을 산으로 도망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토레 사라체노’(사라센 탑)가 절벽 위에는 반드시 서있는 바다가 되었고, 십자군 병사들을 태운 배가 동쪽으로 항해하는 바다가 되었다.

  서기 1,000년이 지날 무렵에는 동방의 이슬람 세계와 활발하게 교역하는 이탈리아의 해양도시국가들 -아말피·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등-의 배가 오가는 바다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후에는 고대의 부흥과 인간의 권리 회복을 기치로 내건 르네상스의 바다가 되어간다.

  성한 자는 반드시 쇠하고, ‘제행’(res gestae)은 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이치라면,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그것을 배웅하는 것이 인간 노력의 집적이기도 한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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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1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정말로 좋습니다.. 추천을 백번 쯔음 누룰 수 있으면 하고 바라보아졌어요.. ~~
즐찾하고 처음 인사드립니다..

그냥 돌아서기가 너무 아까워서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서재님..

뒤의 글들까지 읽으면서 .. 왜 이런 서재가 많은 분들께 알려져 있지 않는지 너무 안타까워요.. ㅠㅠ

2014-03-19 21:19   좋아요 0 | URL
훗~! 고맙습니다.
저 보다 훨씬 맛깔 난 글쓰기를 하시는 분께 받은 칭찬에 으쓱해지네요.

손 내밀기에 서툰 제게
먼저 손 내밀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자주 뵈어요^^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성례 옮김 / 부엔리브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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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 이야기를 11권까지 밖에 읽지 못하고 있었고 같은 저자 시오노나나미와 시인이자 번역가인 한성례의 지명도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구입한 책이었다.

  그런데 차일피일 지금까지 미루어오다 이번에 읽었는데 쩝~ 많이 실망했다.

  갑자기 본전생각에다 읽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 누구한테든 화를 싶을 만큼.

  배가 많이 고픈데 맛있는 거 먹겠다고 오래 기다리다, 드디어 맛있는 걸 앞에 두고 기대감에 한 입 먹었는데 맛이 없을 때, 돈 생각에 배고픔에 꾸역꾸역 먹긴 했는데 입은 버리고 배는 부르고……. 딱 그런 때의 기분 같은 거였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광대한 스케일과 소소한 설명 전개에 익숙한 내게 ‘중간 생략’이 너무 많은 마치 줄거리만 엮어 놓은 것 같았다. -결국 그 계기로 로마인 이야기를 마치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꼭 나쁘다고만 할 수 는 없다.-노고단까지 버스타고 올라갔다 와서 지리산 갔다 왔다고 말한 것 같은 찜찜함과 지리산의 일부분을 만나고 나니 그 산에 오르고 싶다는 심리가 발전했다고나 할까. 다행히 뒤쪽으로 갈수록 아깝지 않았다. 돈이든 시간이든.

  마지막 장인 9장, ‘로마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본다.’꼭지.

  전체를 메모해 두고 싶을 만큼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했다.

   "현재는 아무리 나쁜 사례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작된 원래의 계기는 훌륭한 것이었다." 카이사르의 이 말을 전한 사람은 1500년 후의 마키아벨리이고 거기에 그는 ‘그 말은 전적으로 진실이다.’는 짧은 코멘트만 덧붙였다 한다. 현재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 과거를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역사의 되풀이 속에서 신선하고도 서늘한 지적이다. 우리의 정치인들께서 그 지적을 기억하고 받아들였을까?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정치적 잇권과 견해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같은 이유로 사라지는 많은 입안들이 생기진 않을 테니. 그 속에는 사회복지 입안들도 그럴 것이고. 당연히 요즘 같이 듣는 것만으로도 추워지는 뉴스들을 만나진 않았겠지.

  참 추운 시절이다. 세 모녀의 자살 소식 때문인지, 이 꽃샘추위의 느낌은 오래 가겠단 생각이 든다. 엊그제, 광교산에도 한 청년의 자살에 구급차며 경찰들이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다행이 미수에 그쳤지만 중태더라는 등산객의 소식에 산그늘 어둠이 싸늘하게 다가왔다. 위태위태한 사람들이 한계치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록으로 덧붙은 ‘저자에게 듣는 로마 영웅들의 성적’은 재미있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일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다시 천년쯤 후에 세계 어느 역사에서 그를 능가할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난세에 영웅도 있는 법이라 했으니 태평성대이기에 그런 지도자가 나올 일이 없다는 역설이 되는 것인가.

  영웅이 그립다. 세기의 영웅 카이사르까지는 아니더라도 뛰어난 그의 업적과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팍스 로마나를 실현한 아우구스투스 같은. 그는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의 점수는 카이사르에 미치지 못하지만 자기 제어 능력과 지속하려는 의지는 동등한 점수를 받은 지도자였다.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에 부합된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카이사르는 그를 후계자로 지목했고 그는 성실히 그 임무를 수행했다. 성실한 지도자, 그런 영웅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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