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시선 235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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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게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 있는가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 나의 눈물이

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독극물이 든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더 이상 당신 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일은 독을 버리는 일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가던 독을 버리는 일

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



                            정호승 <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중에서>


 

 

꽉 막힌 코를 하도 풀었더니 이제 자동으로 줄줄이다.

코를 풀면 눈물이 묻어난다.

독이 묻어난다.

풀어도 풀어도 코 속이 가득하다.

毒이 가득하다.

언제쯤이면 毒을 버릴 수 있을까?

버리고 싶다.

더 이상 나의 눈물이 그 무엇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간절하다.

 

시월,

지는 해는 징허게 아름답다.

다시 코를 푼다.

毒을 풀어낸다.

 

다시 하루가 간다.

이천오년 시월 십육일이 가고있다.

살아간다는 일은 독을 버리는 일

.

.

.

끄덕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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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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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호수

               손세실리아          현대시학 2005년 6월호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물의 침묵


                이 규리          詩評 2005년 가을호


  물에도 길이 있고 눈이 있고 구멍이 있다. 물이 몸인 까닭이다. 몸을 지닌 물은 몸짓으로 말을 대신한다. 때때로 속삭이는가하면 크게 고함치기도 하고 다정한가 하면 완고하게 말문을 닫기도 한다.

  지난 겨울, 나는 여러 차례 금호강가에 내려갔었다. 물은 몸이 아주 차가워져 있었고 내심 뭔가에 골똘해 있었다. 그렇게 몸이 차가와진 물은 어떤 사유에 닿아 있는지 좀체 기척을 내지 않더니 어느 날 급기야 말문을 닫아버렸다. 투명한 비닐 랩을 척 덮어놓은 듯한 강은 일거에 스스로의 몸을 닫아걸고 묵언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돌아앉아버렸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나는 강물의 침묵하는 소리를 듣고자 했다. 침묵이란 말없음이 아니라 고요함이다. 그리고 소리내며 흐를 때 보지 못했던 물의 또 다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얼음 호수’를 읽으며 지난 겨울 얼어버린 강과 그 강 앞에서 느꼈던 차디찬 단절의 의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윽하게 아름다웠던 고용의 기운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몸과 호수, 소요와 침묵의 관계가 화자와 대상과의 거리 내에서 사유되고 있는 시이다. 즉, 물이 얼음이란 장치를 가지자 그것이 하나의 경계가 되었고 경계에서 바라보는 삶과 죽음의 거리, 혹은 소요와 침묵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구멍이 기능하는 몸이란 살아있는 몸이다. 구멍은 호흡하며, 공급하며, 배출하며, 바깥과의 소통으로 삶을 지속한다. 몸으로서의 구멍의 역할은 죄다 “틀어막고","생각까지 걸어 닫”고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렸지만 화자는 지금껏 소요뿐이었던 자신의 삶을 성찰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염’하다와 뒤에 나오는‘封’하다란 말이 좋은 짝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염’하다를 한자어 [殮]로 썼더라면, 아니면 뒤에 올‘封’해를 한글로 썼다면 통일성을 줄 수도 있었겠다.)

  염이란 죽은 이의 몸을 씻은 다음 온몸의 구멍을 막고 수의를 입혀 염포로 묶는 일, 즉 염습이라고 하는 이것은 죽음의 의식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의미는 죽음보다는 일체의 세상일로부터 분리되어 소요한 세상을 잠시 떠나 보고자하는 의미로 작용한다. ‘殮’해 버린 정도의 고립, 단절 속에서 시인이 찾고자 한 것은 침묵에 이르는 고요가 아닐까. 시인이 스스로 ‘시인의 시화(詩話)’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자신의 안에 자신의 호수를 지니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이가 차는 것은 고요일시 분명하다.

  언어를 발견하는 것은 언어 속이 아니며 침묵을 발견하는 것은 침묵 속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를 발견하는 일은 침묵속이며, 침묵을 발견하는 일은 언어 속이라는 가정은 매우 타당하다. 앞서 이야기한 얼어버린 강이 물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언어를 감추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얼어버린 강은 죽음의 강이 아니라 휴면의 강이다. 강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작은 물고기들과 물이끼며 플랑크톤이 살아있다. 호수 역시 마찬가지다. 시인이 얼어붙은 호수에서 발견한 언어는 온통 소요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발견이며 그 발견이 곧 언어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얼음이라는 장치, 얼음이라는 장애물로 인하여 시인은 하나의 경계에 눈 뜬다. 그리하여 시인은 세상과의 거리를 가지며 그 거리로서 자신과 삶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봉(封)’해 봄으로써 대상을 더 잘 볼 수 있으며 자신마저도 더 잘 보게 된다. 따라서 ‘封’한다는 숨은 의미는 ‘개봉(開封)’ 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마저도 열어둘 수 있다는 변증법적 결과에 도달한다. 수도자들이 ‘동안거 하안거(冬安居, 夏安居)’에 드는 것도 일정한 거리 바깥에서 자신과 세상과 삶의 이치를 보고자 하는 수행 방법에 다름 아니다.

  “사나흘”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시를 좀 상투적으로 하고 있다. 자신을 ‘봉(封)’해버리는 일이나 살아온 날들의 소요를 절감하는 성찰의 언어로 보면 그러하다. 더구나 “완벽히 봉(封)”하는 과정의 기간으로서 상정한 “한 사나흘”은 사고의 의심을 불러오게 한다. 물론 사나흘 아니라 단 서너 시간도 죽어볼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지만 사유의 타성적인 습관이 “한 사나흘”에 이어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행, 첫 단어 “없다”는 중복된 설명에 불과하며 화자의 의도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이 시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으며 돌연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애매성의 입장에서 다의적 해석을 요하기도 하는데, 지금까지의 관념적이고 사유적인 분위기를 아무것도 아니게 정말 ‘엄살’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염’하고 ‘봉(封)’한데 이어 죽음 운운하는 화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쓴웃음일 수도 있겠다.

  호수나 강은 얼었다 녹는 일은 반복할 테고 침묵이나 소요도 결국 삶이 지속되는 동안 반복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잘 얼고 잘 녹을 수 있는 삶이야말로 어떤 가치보다 우선할 것이며 그 가운데 시인의 언어 역시 적절히 얼고 녹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성찰이 어디 있으랴. 시인이 그린 꽁꽁 언 얼음 호수를 한 바퀴 휘 돌아나온 듯한 느낌이다.




손세실리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http://blog.naver.com/soncecil

이규리 경북 문경 출생. 1995년 [현대 시학]으로 등단. 시집[앤디워홀의 생각]이 있음. 

시인들이 함께 만드는 계간지 시평 (詩評) www.sip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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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 김수열 시인의 세상읽기
김수열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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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다....... 하나,


좋아하는 시인들의 산문집을 즐겨 읽는 편이다. 시인의 오롯한 시선과 마음의 행간이 산문들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에서 미처 읽어내지 못한 사유들이 담겨있다. 산문집을 읽고 난 후 다시 읽는 시에서는 시인의 목소리가, 영혼이 들린다.
시집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를 읽고 그가 가진 세계가 마구마구 궁금해지던 참이다.



읽고 싶다....... 두울,


http://blog.naver.com/soncecil/15147853
좀 긴 편이지만 이 서평을 읽고나서는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긴 책이 달려와 주기를 목 빼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 아직, 주문도 안했군.
요술램프를 작동시켜야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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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김지우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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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그새 또 지랄맞게 눈발이 날린다. 철 만난 한추위 원풀이라도 하듯, 달도 없는 섣달 그믐밤부터 진탕만탕 퍼부어댄다. 자우룩한 눈안개에 덮여 운장폭포 아랫길이 흔적조차 없다. 밤낮으로 익혀온 길눈이 아니라면 길을 틔울 수조차 없을 것 같다. 그믐치에는 없던 바람마저 살아 산등성이로 밭 언저리로 눈발을 휘몰고 다니고, 과녁빼기 운장사 풍경들은 소리를 놓아 버렸다. 아무래도 살짜기 지나가고 말 눈이 아니었다. 운장산성길 돌담 한군데를 호되게 다스려놓든 참나무골 버섯 막사를 그예 반병신을 만들어놓든 한바탕 북새질을 쳐놓을 심보다. 별나게 볕이 좋던 두어 날 새 골안개에 먹진 구름이 동무해 걸릴 때, 암만해도 재 넘어오는 바람이 수상쩍다 여겼어야 했다.


                                 김지우 단편, 눈길 중에서 <소설집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창비)>

 

 

 

낮에 한참 동안 쏟아진 비가 딱 저랬다.

아직 덜 여문 감들을 떨구고 가는 바람도 심상치 않다.

아람 벌어진 밤들도 이 바람에 쏟아져 내리겠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을비가 지나치리만큼 많이 내린다.

비 때문에 커피가 더 맛있다느니 하는 생각 끄트머리에

들판 걱정이 슬그머니 들이민다.

쯧쯔~

참 철딱서니 없다.

가난한 추석도 곧 인데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제발~!

이 글을 옮겨 적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친구가 보내온 문자가 생각난다.

"세상은 불공평해요. 어쩜 글도 잘 쓰는데 이리 미인이기도 하다지요."

맞다.

췟~!

나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덮고 나서도 그 생각만 했다.

최근에 읽은 작가들 다 그랬다.

윤성희, 이명랑, 천운영, 김별아, 전경린.......

시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글 잘 쓰는 블로그 이웃들의 미모는 또 어떻고.

진짜, 불공평한 세상이다.

약 오르다.

그럼, 내가 글이 안 되는 건

미모 때문인 것일까?

갸웃~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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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247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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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비행이 죽음이 될 수 있으나, 어린 송골매는

                                     절벽의 꽃을 따는 것으로 비행 연습을 한다.



근육은 날자마자

고독으로 오므라든다


날개 밑에 부풀어오르는 하늘과

전율 사이

꽃이 거기 있어서


絶海孤島,

내리꽂혔다

솟구친다

근육이 오므라졌다

퍼지는 이 쾌감


살을 상상하는 동안

발톱이 점점 바람 무늬로 뒤덮인다

발 아래 움켜쥔 고독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상공에 날개를 활짝 펴고

외침이 절해를 찢어놓으며

서녘 하늘에 날라다 퍼낸 꽃물이 몇동이일까


천길 절벽 아래

꽃파도가 인다



                                                  박형준 시집<춤- 창비>중에서

 

 

몇 번을 읽어도, 읽어도

저릿하다.

자라기도 전에 퇴화된 날갯죽지가

쭉 펴진다.

내 모국어가 자랑스럽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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