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의 별빛
라픽 샤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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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의 60년대를 살아가는 15세 소년의 이야기이다. 수시로 일어나는 쿠데타, 주변인물들의 억울한 체포와 고문,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학업의 중단 등으로 사춘기 소년은.... 반체제 신문을 제작하게 된다.

의식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은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 대한 서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올 때 우리는 작품에 공감하게 되고 감동을 느낀다. 반면에 기계적 변증법에 의해, 주인공이 어느 순간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 망설임 없이 신념을 위해 나아간다는 식의 서술은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뇌봉>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새마을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안타깝게도 라픽 샤미의 <한줌의 별빛>에서도 어느 순간 반체제 신문을 제작하고 있는 주인공을 보게 된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이 서술되기는 하나, 정작 주인공의 의식에서의 망설임, 두려움, 주저 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책은 주인공의 일기형식인데도 말이다.

1인칭 성장 소설들에서 흔히 그렇듯, 아직 미성숙한 주인공의 의식을 평가하고 이끌어 주는 역할로 70대 노인이 등장하고 '우정' 이라는 이름으로 관계 설정을 하나, 이 관계 역시 나에게는 그다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지혜가 넘치는 70대 노인과 15세 성장기 소년의 우정이란 것도 흔치 않거니와,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주인공의 일기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주인공의 사고의 방향, 작품의 교훈적인 내용의 대부분은 이 70대 노인이 말한바를 주인공이 일기에 옮겨 적으며 곱씹는 형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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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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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라는 것이 있다. Sports, Screen, Sex. 군사독재정권이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도입했다던 3S.

그 3S 중에서도 연고지별로 팀을 나누어 경기를 치루는 야구는 여러모로 그 기능을 톡톡히 해냈다. 지역별로 나뉘어 서로의 팀을 응원하는 시스템은 지역감정 내면화의 일등 공신이었고, 국민들의 삶에 대한 불만의 열기를 배출시키는 데도 결코 손색이 없었다. 유럽의 훌리건들의 행동 저리가라 할 굵직한 사건들도 있었으니 바로 상태팀 선수의 버스를 불태우는 사건이었다. 이렇듯 프로야구는 80년대 초반의 사회를 반영하는 축소판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의 시작 당시 열기는 2002 월드컵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동그란 종이딱지에는 선수들의 이름과 연봉이 적혀 있었고, 저녁때면 동네 슈퍼마켓 앞 평상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삼진아웃 당한 타자를 죽일놈 살릴놈 해가며 열심히 응원했었다.

그런 '프로' 의 세계에 유독 별쭝맞은 팀이 하나 있었으니 삼미 슈퍼스타즈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도 삼미는 참 지지부진한 팀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8살이었나, 내 또래 애들은 물론 자기 연고지 팀을 응원하긴 했으나 삼미의 독특한 캐릭터(슈퍼맨)로 연고지 팀의 경기가 없을 때엔 삼미를 응원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삼미는 경기에 나가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매번 지기만 했다. OB를 상대로는 16연속 지기까지 했다.

이 책은 그런 삼미슈퍼스타즈에 대한 기록이자, 그 당시 삼미를 응원했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프로가 아니면 나가 뒈져야 정상이라는 인식이 야구와 더불어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박민규는 아프리카의 가공의 야구단을 얘기하면서 이를 희화화 하는데, 순위가 이미 결정된 팀이고 이기고 있는데도 감독과 코치는 선수들에게 쪽지를 건낸다. '총체적 위기상황' 이니, '전 선수가 융합해야 하느니' 하는 쪽지들인바, 선수들은 영문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실체없는 위기상황을 내면화 하고 죽어라 달리고 죽어라 배팅하고, 삼진이라도 당하면 아주 죽을 맛이 된다. 엄청난 점수차로 이기지만, 선수 중 아무도 그 위기의 실체를 파악한 사람도 없고, 순위는 그대로이고, 감독은 골프를 치러간다. 그것이 우리의 80년대였다. 파이를 크게 만들어서 나누어야지 지금 나누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논리로 국민들은 죽어라 일만 했는데, 이제 나눌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90년대에 들어서자 IMF가 터졌다.

박민규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팀을 통해 날렵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당신들의 승률, 바로 1할 2푼 5리는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왜냐면 우리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민규의 이 책은 이런 점에서 무척 위험한 책이다. 이기는 팀이나 응원할 것이지 엉뚱하게 맨날 졌던 삼미슈퍼스타즈가 정상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해 버렸기 때문이다. 예전의 안기부가 있었다면 잡아갔을 것이다. 다운시프트적 결론에 실망하긴 했지만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삼미슈퍼스타즈와 인천 얘기에 간만에 유쾌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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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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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떠오른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의 특징은 미국문화를 바탕으로 하되, 그 외의 문화에 대해서는 보편성을 획득한 것만을 취한다는 점이다. 드래곤볼과 닥터슬럼프를 2000년대 후반인 지금 보아도 시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일본적인 것을 버리고 미국적인 것을 취했다는 점과, 미시적 사회현상에 대한 외면에 있을 것이다.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양복, 중국옷 등을 입고,(기모노를 입는 경우는 없다) 가공의 세계와 가공의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등장하는 자동차, 집, 소품 하나도 당시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미국에서도 이미 고전으로 인정받았을 법한 모델들을 차용한다. 이런 점들이 토리야마 아키라 만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보편성(?)을 획득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만화에 따지고 들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는 '만화가' 이며,  그가 그려내는 마을과 사회는 우리가 이상향이라 부를 그런 정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닥터 슬럼프를 읽으면 마음이 훈훈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게임 제작에만 몰두하는 그가 펜을 다시 들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 무국적이며 미시적 현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잠깐 <노르웨이의 숲>을 통해서 전공투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외도를 범한 외에, 그는 사회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이상을 위해서 고민할 지언정, 혹은 세계와의 부조화 속에서 괴롤워할 지언정, 쪼잔하게 생활고로 고민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트럭운전사 조차도 그런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본다. 순전히 자아에 대한 이야기라고 착각하고, 독서라는 행위를 즐기게 된다. 요새 말로 뉴요커 스타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독서가 끝난 후 현실을 둘러보면, 독자는 세계와 자아의 부조화를 형이상학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먹고사는 현실에 고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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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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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미덕은 소박하게 얘기하자면 '이야기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교훈과 감동' 이다.

이야기라는 것은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즐거움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교훈과 감동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가 술자리 농담과 달리 읽을만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존 스타인벡이나 에밀 졸라에게는 큰 존경심을 갖는 반면,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 같은 작품은 이해도 되지 않고 약간의 경멸감 마저 품는 경우가 있다. 나는 천상 리얼리스트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시간순으로 배열하면 이렇다.

 

동물학자인 셀리스와 조지프는 연수원에서 만난 사이다. 셀리스와 조지프 외에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이 동료로 참여했는데 둘이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는 동안 연수원에 불이나서 여자 동료가 죽는다. 셀리느는 이 사건이 삶에 짐으로 다가가는 반면, 조지프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30년 후 조지프는 문득 바리톤만에서의 옛 일이 떠올라 성욕을 느끼게 되고 셀리스를 설득하여 바리톤만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옷을 벗고 사랑을 나누다가 우연히 지나던 강도가 휘두른 화강암 돌덩이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딸인 실비가 이들을 찾아다니다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번역을 한 김석희씨의 '옮긴이의 말'을 보면 처음 대충 읽었을 때는 시큰둥 했으나 두번째 읽었을 때에는 처음의 느낌이 건방지고 어리석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두 번 읽더라도 시큰둥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흥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죽음에 대한 접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부모의 죽음에 반응하는 딸 실비의 태도가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내가 '상식' 이라고 느끼는 정서와 반하는 내용들에 불편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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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 이야기 - 2007년 제5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이승우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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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인 이승우의 '전기수 이야기' 와 동작가의 '도살장의 책'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문학, 작가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대한 그의 태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전기수 이야기'에서 제목 이외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고, '도살장의 책'에서 도서관 사서를 범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역겹기까지 하다. 문학적 상징은 작가와 독자의 공감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고 믿는데, 작가의 역량은 이 장면이 '상징'에 이르게 만들지 못하고 '사건'의 수준에서 머무는 것 같다.

 

김경욱의 '천년 여왕'은 흥미진진하다. 김경욱은 대중문화의 이슈를 적절히 작품의 소재로 믹스하여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주는 것에 능하다. 그러나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Nirvana의 커트 코베인, 영화 바그다드 카페, 장국영 등 익히 알려진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기 시작한게 근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말이다.

 

김애란의 '성탄특선'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 크리스마스날 그저 그런 남매가 그저 그렇게 '시간 보내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재미있게 읽힌다. 작가가 경험했을게 틀림없는 이야기들도 얼핏 보이면서, 나는 내 대학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한없이 유쾌해질 수 있었다.

 

김중혁의 '유리방패'도 유쾌한 소설이었지만,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든다.

 

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은 짜증이 치미는 소설이었다. 치매가 걸린 아내와, 이제는 퇴직한 남편이 자살을 위한 여행을 시작하는 도입부에서의 진지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키는 대로 파격적인 결말을 끼워넣었는데 박완서의 평처럼 '너무 했다' 싶었다. 도입부의 진지함마저 작가의 '장난질'을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또 떠오르는 작품은 기수상작가인 박완서의 '대범한 밥상'이다. 박완서의 소설은 술술 읽힌다. 마치 몇십년간 같은 일을 해온 장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보고 있는 동안은 시간의 결락을 느낄 수 없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박완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글이 한가한 오후 시간대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독자 사연' 코너 정도의 좀스러운 느낌 때문이다. 들을때는 재미있지만, 애써 듣기 위해 주파수를 맞춘적은 한번도 없는 라디오 코너 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0062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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