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제인 오스틴 지음, 앨리스 패툴로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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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 강수정 (옮김) | 지학사아르볼 (펴냄)

고전 읽기에 거의 매번 거론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십대에 읽었을 때는 소녀소녀한 마음으로 로맨스 소설로 읽었고 십년 후쯤 재독할 때는 제목에 충실하게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에게 집중하며 읽었었다. 다시 십 여년이 흘러 읽게 된 풀컬러 일러스트의 예쁜 옷을 입은 <오만과 편견>은 각 커플들과 주변인들의 캐릭터가 통통 튀는 개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빙리 양의 앞 뒤가 다른 태도와 캐서린 부인의 도를 넘은 무례가 신분을 떠나서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이고, 그런 그들에게 잘 보이려 전전 긍긍하는 콜린스, 결혼을 한탕의 장사처럼 남을 이용하려는 위컴, 금사빠인 리디아와 남일을 소문으로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지만 지금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다.

특히 베넷 부부는 이 '오만과 편견'을 마치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름다운 미모에 반해 아내를 맞았던 베넷 씨는 매사 아내와 의견이 맞진 않지만 무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대신 적당한 무관심과 위트를 지닌 남자다. 베넷 부인은 딸 다섯을 키우며 딸들의 결혼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엄마로, 남자가 가진 재력과 지위를 매너이자 인격으로 동일시 해서 보는 속물이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 배경인 그 시대가 여자의 행복은 재력을 갖춘 남자와의 결혼이었다는 점과 어리석기는 해도 악의는 없다는 것이 아마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그런 베넷 부인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은 엘리자베스와 나의 몫?)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교성이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말수가 지나치게 없다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기 일쑤인 다아시 씨는 만약 그가 지닌 재산과 지위가 아니었다면 그런 평가들을 만회할 기회를 가져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타인을 향한 냉정한 평가가 자신을 지적이고 수준있어 보이게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듯하다. 제인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다면 모두를 포용하는 그녀의 마음도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이 사회적 관습과 보이지 않는 경계로 어려웠다는 것에 비해서 빙리의 사랑을 그렇게 쉽게 가질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다아시의 품성과 사랑이 빛나 보였던 사건은 리디아와 위컴의 도피 행각에 대한 대처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금전은 물론이거니와 굴욕과 수치로 여겼던 사람들을 대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멋지게 비밀로 해결하려는 낭만도 지닌 채 말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엘리자베스는 소문 만을 듣고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반대하러 온 캐서린 부인에게 요즘 시각으로 봐도 사이다인 발언을 지혜롭게 한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후회할 줄 안다는 것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다른 인물들과의 두드러진 차이로 보였다.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으로 그를 바라본 엘리자베스이기도 했지만, 신분의 다름이라는 편견의 시각으로 엘리자베스를 보고, 냉랭한 다아시를 더 차갑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태도 또한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오만은 아니었을까.

근래 읽은 고전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극으로 치닫지 않고 해피엔딩 이었던, 그래서 좋았던! 역시 로맨스는 해피엔딩이 제맛!

#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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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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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 차은정 (옮김) | 민음사 (펴냄)

단편선이라 하기에 토막 토막의 별개의 이야기들 일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넬'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이라 보아도 무방할 만하다. 우리가 읽어 보았거나 들어라도 보았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각 단편은 이어져 있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어느 부분이?'라고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애트우드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살게 되었을 선택 받지 못한 다른 인생을 상상하며 쓴 글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한 엄마를 보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열 두살의 소녀 '넬'은 생각이 극단에 다다를 때면 가장 좋아하는 책 '요리와 접대의 기술'을 읽는다. 그 책에 등장하는 하녀의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수동적인 삶이 '아빠가 집을 비운 동안 엄마를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친 넬은 부럽다. 여동생이 태어나자 넬은 또래의 십대들이 누리는 일상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다. 불안증이 심한 예민한 아기였다.

49. "내가 왜 해야 해요? 내 아기가 아니잖아요.내가 낳은 게 아니에요.어머니가 낳으셨잖아요."

어머니는 단숨에 일어나 뒤돌아섰다. 그리고 내 얼굴을 세게 때렸다.~ 나는 당연히 상처를 입어야 했고, 실제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자유로워진 느낌도 들었다. 마치 마법에서 풀려난 것처럼.

학교에서 <나의 전 공작부인>을 배우며, 결혼이 거래이던 시절에 팔려가듯 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은 완벽한 미소에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라고 넬은 생각한다. 어릴 적엔 수동적인 하녀가 부러웠지만 이제 넬은 그저 미소만 짓다가 그 미소에 질려버린 공작에게 죽임을 당한 공작부인도, 차에 태워주겠다는 친절을 믿었다가 성폭행 당한 테스도 멍청하다고 여긴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기쁘게 해 주려고 애쓰는 삶이 탐탁치 않다.

그러면 넬은 그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생계를 꾸리기 위해 편집일을 하게 된 넬은 남자들과 오래 만나지 못하고 익숙해지면 떠나는 삶을 산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걸까? 남편과 아이들로 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오나의 짜여진 계획하에 티그와 동거하게 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결합이었기에 쓸모가 다 되면 버림받을거란 오나의 예상과 달리 둘은 노년까지 함께 한다.

어려서는 동생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다른 여자의 남편과 아이들을, 그리고 그들의 안심을 위해 오나까지도 책임지는 넬이 답답하기만 하다. 남의 남자와 사는 넬이 부도덕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위탁하듯 책임 전가한 오나가 부도덕 한걸까?

모두들 그녀에게 기대오면서 감사는 커녕 당당하다. 흰말을 맡기는 빌리도 오히려 '호의'를 베푸는 거라고 여기고, 불안증이 심한 아기였던 동생 리지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정신분열증이란 말을 듣자 부모님도 넬에게 의무를 지우려 한다. 천박한 여자들이나 남의 남편과 사는 거라고 만나지도 않으려던 양반들이!

알면서도 그저 내어주고 당해주면서도 큰소리로 항변하지 않는 넬이 고구마 백개쯤 먹은 답답함을 주지만, 애트우드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살았을 그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많은 넬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혼란>은 많은 여성들의 자전적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리지와 넬, 릴리의 대사가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73. 그를 비웃으면 안 돼.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야! 그냥 원래 그렇게 생긴 거야!

231. 경계선은 방어할 수 있을 때만 경계선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307. 어떤 사람은 원하는 걸 갖고 어떤 사람은 못 가지죠.

 

잘못이 아닌데도 비웃음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의 경계선을 침범 당하고,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남의 것이라도 뺏고 보는 사람들.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도 이 대사들이 잊히지가 않는다. 각자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한 이 대사가 결코 소설 속 그녀들만의 얘기는 아닐것이기 때문에.

 
                                        

#출판사의 지원릉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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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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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쥐스킨트 (지음) |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조나단 노엘은 7층 24번방에서 수십년을 지내며 오십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복도 끝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그는 오갈때 다른 이들과의 대면과 접촉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고 수치스러워 한다. 

《11. 그곳은 조나단에게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어린시절 겪은 전쟁과 차례로 실종되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군대에 다녀오니 이민 가버린 여동생. 친척 아저씨가 정해준 여자와의 결혼, 결혼 4개월만의 출산 그리고 아내의 도망.
조나단이 사람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감옥의 방 하나와 비슷한 크기의 24번 방에서 그는 안식과 안전을 보장받았다. 무엇으로부터의 안전과 안식이었을까?
타인에 대한 믿음? 기대? 배신?

어느 날 갑자기 문앞에 날아든 비둘기 한 마리로 그의 일상은 무너진다.
은행의 경비로 일하는 그는 자신과 스핑크스를 비교해 본다. 스핑크스는 도굴로 부터 피라미드를 지키지 못하고 자신은 강도로 부터 은행을 지킬 자신이 없다. 존재의 이유는 있는데 가치가 없는 존재인걸까?

《53.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휴가도 조금 받고,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도, 월급의 대부분은 세금이니, 임대료니, 사회 보장 보험 분담금 등으로 흔적도 없이 뺏기며 인생의 3분의 1을 은행 앞에 서서 허송하는 일로 지내는 노릇이 도대체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회의를 종종 품기도 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도시인의 고뇌는 만국 공통인 듯 하다. 서글픔...

​《55. 문 뒤로 슬쩍 사라질 곳이 이렇게 큰 도시에 없었다.》

군중 속에 익명으로 존재감없이 살면서 막상 슬쩍 사라질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익명성 부재의 아이러니.
단정한 자신은 바지의 구멍마저도 과민 반응하며 초조, 불안해 하는데 길에서 본 거지는 더럽고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노엘은 거지를 보며 오히려 심리적 박탈감을 느낀다.

​《80. 그 모든 것을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완전히 자동적으로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반복되는 일상,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비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도피를 한 노엘은 마치 관을 연상케 하는 좁디좁은 호텔방에서 인생 처음으로 내일을 계획한다. 자살 계획을!
스핑크스, 줄 끊어진 꼭두각시, 거지를 통해 자신과 비교하며 자기를 찾아가는 노엘은 용기를 내어 비둘기가 장악했을지도 모를 집으로 돌아간다.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조나단 노엘씨에게 박수를~!!)
심호흡 후에 눈에 담은 복도는 비둘기가 들어왔던 창문도 닫혀 있고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타인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개인이 지나온 과거와 경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일일까? 어리석어 보이거나 때로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내일의 일상은 오늘과 같겠지만 한 걸음 내딛는 내가 바뀌었다면 일상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조나단 노엘과 우리의 다른 내일을 기대해 본다.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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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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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이연식 (지음) | 아르테 (펴냄)



​드가는 인상주의의 핵심이었지만 가장 인상주의적이지 않은 역설적인 예술가이다. 자연을 그리지 않고 사람들을 그린 화풍이 그러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지만 훗날 그 존재 자체가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 또한 그렇다.

모사를 위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예술가들이 루브르를 찾는다. 이 곳에서 드가는 '지금의 드가'가 될 수 있게 영향을 끼친 마네를 만났다. (마네는 드가로 부터 별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보이지만) 마네를 만난 이후의 드가의 작품은 역사화가 아닌 일상이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주변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드가와 달리 체면과 명성을 중시한 마네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간다. 드가의 이런 당당함과 자유로운 작품 세계는 가정환경이 부유했기에 가능했다. 드가는 여러 기법 중 특히 '절단'을 잘 사용했다. 마네와 드가가 사용하던 '절단'도 그 표현이 다르다. 마네는 과시하듯 잘랐다면 드가는 섬세하고 신중하게 잘라 절단된 부분에서도 역동성이 느껴진다.

인상주의는 기성 체제에 반항하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과거 어느 사조보다도 고객의 성향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했지만 프랑스 부르주아의 취향은 그들의 기대보다 보수적이었다.  애초에 살롱에서 벗어나겠다며 모였지만 끊임없이 살롱을 의식하느라 결속은 위태로웠다. 가난한 계급 출신의 화가들은 생활을 위해서 대중의 사랑이 당장 필요했다. 점차 인정을 받은 화가들은 살롱으로 되돌아갔고 드가가 아니었다면 인상주의 그룹은 와해되었거나 프랑스 남성 화가의 작은 무리에 머물렀을 것이다.

​인상주의는 플라뇌르의 예술이고, 드가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상주의적인 화가이다. 해가 지면 붓을 내려 놓고 쉬었던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드가는 인공조명이 있는 실내, 플라뇌르들의 휴식처이자 지표인 까페를 배경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드가의 그림은 경마와 발레로 대표된다. 경마를 소재로 그리는 화가들은 많았지만 드가만큼 탁월하지는 못했다. 속도를 화폭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움직임을 탐구해 담았다. 그가 그린 경주마들은 서 있거나 천천히 걷거나 서성거린다. 발레리나의 그림들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녀들의 현실, 생활의 어둠을 함께 그려냈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사망하자 40대에는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렸고 잘 팔리는 발레 그림을 주로 그렸다. 50대에는 다시 생활이 안정되었지만 말년의 그는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30대 중반에 이미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70대에는 윤곽과 색채만 흐릿하게 볼 수 있었다. 나빠진 시력으로 그림보다는 조각에 눈을 돌렸던 듯 하다.귀도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고 독신이었던 그는 외로움을 파리를 배회하며 견뎠다. 플라뇌르가 드가의 마지막 정체성이었다.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로 만나는 네번째 예술가, 드가! 아는 이름이라 반가웠는데 몇 점의 발레 그림을 제외하면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시대적, 개인적 상황과 맞물린 예술가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나서 다시 보게 되는 작품은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예쁘게만 보아왔던 발레리나 그림들과 당연하게 보아왔던 경마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붓끝 한번 한번의 터치에 심혈을 기울였을 드가를 떠올리게 된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게 해준 감사했던 독서.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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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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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콘트라바스라 불리우는 이 악기의 이름이 낯설다.
국내에서는 콘트라베이스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내게는 콘트라베이스라는 이름도 익숙하지는 않다.
아마 예쁜 소리를 내지 못해서 독주 파트도 없고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서열이 낮아 관객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오케스트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악기다. 오케스트라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이며, 다른 악기들을 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얘기하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번에는 오케스트라의<콘트라바스>를 통해 인생과 존재감에 대해 말하는 듯 하다.

​책을 읽는 내게 주인공 콘트라바스의 연주자가 말을 걸어오지만 대화라고 할 것 없는 그의 넋두리이다.
콘트라바스를 사랑한다고 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박살 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 할 만큼 그 사랑이 쉽지 않음을 토로 한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가장 사랑해줘야할 것 같은 내인생을 어느 순간 스스로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도 간혹 있지 않은가.
처음 샀을 때는 얼마였는데 지금은 얼마까지 올랐다며 악기 값이며 부속품 가격을 말하면서 매번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라는 그의 모습은 빈곤한 음악가의 모습이자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어려움에 조금씩 지쳐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콘트라바스를 선택해서 연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얘기한다. 가장 크고 다루기 힘들며 가장 솔로를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부러 공무원인 '국립 오케스트라의 제 3열에 앉은 콘트라바스의 주자'가 되었다. 문법적으로는 틀림없는 남성인 콘트라바스를 불가피한 모태성과 잔인성을 이유로 주인공은 여성적인 악기라고 말한다. 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행위를 어머니를 범한다고 표현하며 매번 도덕적으로 힘들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러한 선택을 한 적이 없는가?
반항심에 어깃장 놓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괴로워 하는...


소프라노 여가수인 사라를 짝사랑 중인 주인공.그녀는 콘트라바스의 연주자인 이 남자의 존재도 알지 못하고 돈을 잘 버는 나이 많은 남자들과 만난다.
훌륭한 첼로 연주자였던 한 남자는 사랑하는 소프라노 여가수의 반주자가 되었다. 둘이 함께 무대에 서면 여자의 노래는 늘 남자의 반주를 압도했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남자를 우습게 여겼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내려놓은 일방적인 강요와 희생의 사랑은 온전해 질 수가 없다.
주인공은 사라에게 속물성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고,그녀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갈 수도 없는 것이다.

《43. 오케스트라가 인간 사회의 복사본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인간 사회건 오케스트라건 밑바닥에서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들에게 무시를 받습니다.》


《51. 빌어먹을 자식, 좀 조심하라고! 왜 항상 남의 길을 가로막고 그래, 이 멍청아! 혹시 여러분이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왜 항상 제 앞길을 가로막는 이런 악기와 계속 살아야 하는지. 인간적으로건,사회적으로건,성적으로건,음악적으로건,아니면 이동측면에서건 <항상> 방해만 되는 이런 녀석과 말입니다!》


《66. 나는 왜 이렇게 살면 안 되죠? 내가 왜 당신들보다 더 나아야 하죠? 예, 당신들보다! 당신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남과 비교하며사는 삶이 아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선택이 나의 진심이었든 타의에 의한 것이었든 지금 여기 서 있는 것은 <나>.그리고 그 선택들의 결정권자도 역시 <나>.
주인공인 콘트라바스 주자는 오페라 극장으로 가서 소리를 지를 거라고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믿기에 어디까지 내 존재를 자각하는 행동을 해봤을까? 그 행동 한번으로 모든 걸 잃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해도?

​나의 <콘트라바스>는 무얼까? 내 발목을 잡으면서도 벗어나거나 헤어질 수 없는 굴레.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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