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 - 의미로 읽는 인류사와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
이도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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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1 

이도흠 (지음) | 특별한서재 (펴냄)​





얼마전 티비 다큐에서 인공지능의 학습에 대해 보았다. 저장되고 학습되는 정보에 따라 인공지능도 사이코패스 성향이나 인종차별, 남성 우월주의 등의 편파적인 사상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책 후반에서 저자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의견을 보이는 부분에서는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불안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발빠르게 사교육 시장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불안감을 더 보탠다. 코딩교육이다 인공지능교육이다 뭐다해서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구석기 시대쯤으로 낙후될 것만 같은 두려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밥줄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신에게서 불을 훔쳐다 주었다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불의 사용은 인간에게 있어 획기적인 도구의 사용이었다. 농업혁명을 지나고 1,2,3차의 산업혁명을 거쳐 4차 산업혁명을 맞으며 이제 인간의 노동력이 로봇과 경쟁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사라지는 직업이 있을테고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도 있을 것이다. 이미 단순 노동은 사라지거나 대체되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전문가들 수준의 정보나 지식은 없기에 정부와 학계가 얘기하는대로 믿고 따라가게  되기가 쉽다.

저자는 AI강국은 신기루라고 말한다. 딥러닝 기술로는 원칙적으로 강인공지능을 만들 수 없다고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AI, 인공지능,딥러닝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뭘 알아야하고 뭘 준비해야 하는걸까?



4차 산업혁명을 다루고 있어서 과학 분야의 좀 더 많을 것이라 추측하고 기대했으나 인문학이 없는 자연과학은 프랑켄슈타인을 양산할 것이라는 말 때문인지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였다. 주로 '인간'에 관한 이야기.

결국 4차 산업혁명을 살아가야 하는 것도 인간이고 그것을 주도해야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당연해 보인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류사의 발전을 거듭해 오는 동안 이제는 인간 스스로가 생명을 창조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에 대한 고찰이 꼭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자유의지이다. 이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을 달리하고 있지만 자유의지가 없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제를 따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AI는 인간처럼 주변의식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맥락에 따른 의미의 다의성을 해석할 수 없다. 빅데이터를 입력한 주체에 따라 인공지능도 편견을 가진다는 것은 역시 인간의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40.인공지능 시대에서 인간은 안드로이드가 성취할 수 없는 생명성과 인간성,영성을 성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우리가 되짚어 봐야 하는 것은 인간성, 미래를 맞이하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결국 인간성인 듯 싶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특별한서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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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채석장 시리즈
필립 라쿠-라바르트.장-뤽 낭시 지음, 조만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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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장 뤽-낭시, 필립 라쿠-라바르트 (지음) | 조만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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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철학이나 사상만을 담은 책이라고 해도 어려운데 <무대>는 많은 철학자가 거론되며 그들의 사상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일이나 인생에 녹여냈다면 그 또한 어쩌면 철학이라 불리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대중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낭시와 라바르트. 두 사람의 의견의 차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자주 거론하며 해석의 차이를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편지로 주고 받는 방식이 신선하긴 하지만 이 역시도 이들이 의도한 '연출'은 아니었을까?

<무대>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은 연극, 오페라 등을 떠올리게 하지만 '옵시스', '스펙타클', '비극', '형상 대 비형상', '무대화' 등을 거론하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극적인 무대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채석장 시리즈> 중에 <무대>가 단연코 가장 어렵다는 독자들의 토로가 이해된다.



기술의 발달로 영화와의 경쟁이 엄청나게 심화되면서 무대 위의 공연도 놀랍도록 발전해 왔지만 오히려 특수효과에 기댄 연극이 흥미위주로 흐르며 본래의 순기능과 역할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라바르트의 각성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낭시는 무대와 비무대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닌 형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몸이 이미 무대이다"이라고 말할 만큼 형상과 현시에 주목했다. 반면 라바르트는 무대장식, 의상, 조명 등의 형상은 모두 '과잉'이며 독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연극 연출에 관여했던 역설을 보였다.



낭시와 라바르트가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어서 였을까? 무대를 통한 철학을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 철학을 끌어와 연극무대를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다 이해하지 못해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대화에는 무대의 형식에 관한 주제만 있을 뿐 문학과 예술에서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주고자 하는 공감과 감동에 관한 얘기가 없다.

형식이 먼저일까, 감동이 먼저일까? 인생이 먼저일까,철학이 먼저일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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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리커버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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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 정영목 (옮김) | 해냄 (펴냄)





전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백색 실명이 키워드라면 <눈뜬 자들의 도시>의 키워드는 백지투표다.

전체 투표에서 기권이 아닌 백지투표의 수가 70퍼센트를  넘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정부의 재 투표는 83퍼센트로 백지투표의 수를 더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민들의 이 백지투표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주장하거나 드러내고픈 의사가 없었다면 기권이라는 방법대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해가며 백지투표라는 권리를 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2,3번 안에 없는 다른 선택지를 원했던 국민들의 백지투표도 엄연한 투표권의 행사로 받아들여져야 했을 것이다.

《132. 그들이 백지투표를 한 것은 환멸에 빠졌기 때문인데 달리 그들이 얼마나 환멸을 느끼는지 분명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그랬을 경우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그들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투표의 결과를 음모론으로 몰고 간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개인을 사찰하고 군대를 동원하며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무력 행위 동원의 조짐마저 보인다. 수도를 옮기고(버렸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방치하며 남겨진 자들의 혼란과 파괴를 기대했지만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청소부들의 파업으로 도시의 혼란이 시작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들은 제복을 벗어두고 시민들과 함께 도시의 청결을 유지했다. "136.제복이 파업을 하는 것이지 우린 아닙니다."​



이제 정부는 백지투표를 모함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국민을 향해 폭탄을 터뜨리는 자작극을 펼친다. 이 폭발사건으로 우익정당과 중도정당의 지지자들이 크세노폰이라 불리우는 도시탈출을 감행한다. 백지투표를 한 사람들은 도시의 경계를 넘을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블랙코미디인가? 얼굴에 백지투표라고 써놓은것도 아니고 어떻게 구분한다는 건지? 결국 경계선을 넘으려는 자들중에 백색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 모두를 장벽을 넘지 못하게 했다. 이 긴 행렬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정부가 한 일은 선동과 가짜뉴스였다. 두고 온 집이 백지투표자들에게 약탈되고 있다는 거짓말.

사람들은 대열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갔지만 역시 정부가 원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화합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부는 정부가 맞은 위기 앞에 정작 자신들은 쏙 빠져나간 채 그들이 지켜줘야 할 국민들을 편가르기 하며 싸움을 붙인다. 허수아비 대통령을 세워두고 총리가 모든 장관직을 독점해 나가며 자기식대로의 해결을 하려한다. (특정 누군가가 딱 떠오르는 부분이다.)



대통령과 내무부장관 앞으로 온 편지를 도화선으로 백지투표 사건은 엉뚱하게 흘러간다. 4년전의 백색실명과  연관지으며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도 하듯이 모두가 눈멀었던 시기에 오직 혼자 눈뜬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안과 의사의 아내가 표적이 된다. 그때 그녀가 했던 살인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눈멀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더 문제화시키며 그녀를 공공의 적으로 세운다. 사건 수사를 위해 경계를 넘어왔던 경정은 거짓을 만들 수가 없었다.

《321.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이미 선고가 내려진 사건들도 있다는 뜻이오."

​335.그냥 목표로 삼을 과녁이 필요할 뿐이야, 이게 안 되면 다른 걸 찾을 거야, 그게 안 되면 또 다른 것, 또 다른 것을, 마침내 성공할 때까지, 아니면 단순한 반복 때문에 그가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그의 방법과 절차에 무관심해질 때까지 얼마든지 찾을거야. 어느 쪽이든 당은 이길 터였다.》

'보'. 진실을 밝히기로 용기를 낸 경정의 이름이 책에 거론되는 첫이름이다. "392. 하지만 이름이란 말에 불과하지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간의 수사기록을 손편지로 정리해서 의사 아내의 사건을 싣지 않았던 신문사를 찾아갔다. 신문사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문은 발생되었지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신문은 모두 수거되어졌다. 경정은 낙담했지만 신문기사는 복사되어 거리에 뿌려졌다. 도시가 스스로 문제를 받아내고 있었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정부의 권력층과 사실은 개,돼지가 아닌 국민들. 꼬리가 밟힐 때마다 꼬리를 자르는 몸통.

이 끝없는 순환고리 속 승자는 누구일까? 이 도시, 아니 이 시대의 눈뜬 자는 누구일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해냄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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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딱 좋은 고독 매일 읽는 철학 2
예저우 지음, 이영주 옮김 / 오렌지연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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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딱 좋은 고독

예저우 (지음) | 이영주 (옮김) | 오렌지연필 (펴냄)​





쇼펜하우어에 관한 전기적 내용이나 그의 철학이 주를 이루며 무척 심오하고 어려운 책일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딱 좋은 고독>은 철학의 실용서라 할 만큼 쉽게 풀어 씌여졌다. 쇼펜하우어의 사상보다는(그의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저자 '예저우'의 사상이 더 많이 녹아있는 듯 하다.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울거라는 선입견에 주저하고 있다면 '매일 읽는 철학'시리즈로 그 문을 열어보면 좋을 듯 하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의 인정을 받는데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고독과 함께 보내야 했다. 그 고독의 시간을 절망과 좌절로 보내지 않고 자기 개발과 성장의 시간으로 삼았으니 '딱 좋은 고독'이라는 제목이 정말 '딱'어울리는 표현이다.

처한 환경이 같더라도 개인의 내면에 따라 각자 보게 되는 세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풍요로운 세계관을 갖기 위해서는 내면을 풍요롭게 가꿔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확신을 가진다면 고난이나 역경에 큰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74. 인류 행복의 양대 적은 고통과 무료함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욕구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내면을 채워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단짠단짠'의 조합이라고 한다. 달기만 한 음식을 맛있다고 하지 않는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고통없는 인생은 삶을 무료함에 밀어 넣는다. 고통은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잊거나 내려놓거나. (인간은 망각이라는 축복도 가지고 있으니!)

 욕구를 많이 채운다고 해서 인생이 풍요로워지지는 않는다. 채워지지 결핍감을 괴로워 하기 보다 기대치를 낯춰 봄으로써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외적인 요인에서 행복을 찾기 보다 나의 내면을 채우는 것이 어렵지만 어쩌면 가장 쉬운 길일지 모르겠다. 타인의 내면이나 마음보다는 나의 내면을 채우는게 더 쉽지 않겠는가?



고독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우울감에 빠지거나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며 이른바 '관종'으로 불리는 행보를 걷기보다는 그 시간을 자기성장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진 것보다 없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욕구에서 오는 결핍을 피할 수 없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의 무한반복인 인생을 매번 얻고 잃을 때마다 일희일비 할 것인가?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때로는 한발짝 떨어져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지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과거를 현재에 끌어다 놓는다거나 지나친 미래의 걱정에 현재를 저당 잡힌다면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당신이 지금 무심코 흘려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이란 말은 함부로 쓴 시간에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고독은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타인에게 현혹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사고의 시간인 것이다.



내 곁의 타인의 존재나 부재와 관계없이 인생은 고독하다. 이 고독을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을 지, 끌려다니며 괴로워 할 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오렌지연필로부터 문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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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 140주년 고급 벨벳 양장본 최신 원전 완역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가영 옮김, 최행규 해설 / 코너스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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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이가영 (옮김) | 코너스톤 (펴냄)

러시아의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부터가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어려움을 주고 시작한다. 여자와 남자의 성이 다르게 불리워지고 애칭과 별칭을 포함해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져 처음부분을 읽기 시작할 때는 버벅대기 일쑤다.

그런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빨리 몰입되어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인물들 간의 헷갈림 없이 빠져 읽었다.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두번의 결혼으로 세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모범이 될 만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오로지 재산에 관한 일만큼은 솜씨좋은 재주를 가졌다.

첫번째 부인 아델라이나의 결혼 지참금이 탐났던 표도르는 결혼 후 아내의 돈을 갈취하고는 아내의 가출 후 모욕당한 남편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뻔뻔한 파렴치한이다. 당시 3살난 드미트리는 하인 그리고리가 아니었다면 방치된 채 죽음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있다는 것조차 잊은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재혼 후 두 아들, 이반과 알렉세이를 얻지만 두 번째 부인인 소피아 마저도 신경병에 걸려 죽으면서 이 두 아들의 신세도 드미트리와 다를게 없었다. 세 아이들 모두 고리고리의 돌봄을 받다가 친척들에게 보내져 성장한다.

드미트리는 아버지 표도르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듯 난봉꾼의 모습을 보이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루셴카라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대립, 경쟁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반은 지식을 쌓아 똑똑하긴 하지만 왠지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은 아니다. 형의 약혼녀 카테리나를 사랑한다. 그에 반해 알료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각별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언가의 재능이 있었다. 겸손하고 조용하며 수도사의 길을 걷고 싶어하지만 알료사가 존경하는 조시마 장로는 알료사를 속세로 보내려고 한다.

표도르의 집에서 요리사로 있는 스메르댜코프는 아이가 없었던 그리고리가 거두어 길렀지만 표도르가 생부라는 마을의 소문이 있었다.

코너스톤에서 나온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권과 2권으로 출판되었다. 1권에서는 각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등이 주로 설명되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의 암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반과 조시마 장로를 통한 도스토옙스키의 종교관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제목과 작가 말고는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읽기 시작했다.

돈과 여자에 관심있는 드미트리와 이성적인 지식인 이반, 가족 중에 가장 선한 인물인 알료사와 어쩌면 아들일지도 모를 스메르댜코프.이들이 그려나갈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코너스톤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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