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역사 - 늑대인간부터 지킬 박사까지, 신화와 전설과 예술 속 기이한 존재들의 흔적을 따라서
존 B. 카추바 지음, 이혜경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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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역사

존B카추바 (지음) | (옮김) | 미래의창 (펴냄)

제목부터 흥미롭다. 변신의 역사!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신화속 신들, 변신한 모습일 때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히어로들 그리고 저주로 인해 원치 않는 변신을 하게 된 동화속 주인공들에 이르기까지 변신의 범위는 넓다.

백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단군신화 속 웅녀는 동물에서 사람으로 변신했지만 수렵과 사냥이 생존의 방법이던 선사시대에 야생 동물들의 힘과 스피드를 동경하던 사람들이 동물을 숭배하던 토테미즘은 변신에 대한 바램의 투영일 것이다.

인간이 변신을 꿈 꿀 때는 언제일까? 사회적 제약과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누리고 싶을 때가 아닐까.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심리는 그런게 아닐까 싶다.

히어로물들에서 보게되는 변신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를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또 다른 나를 꿈꾸고 있는건 아닐까.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신이나 주술사, 사제, 성자와 같은 신의 대리자만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주술이나 민속신앙등은 기독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마녀사냥을 당하는 등 화형을 당하는 참사를 당하기 일쑤였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모든 답을 신에게 떠넘기던 질문들을 인간이 스스로 답하기 시작하면서 미지의 영역이라 여겨왔던 셰이프시프터도 과학의 힘으로 시도해보기도 했다. 도덕적으로 옳은일인가, 종교적으로 옳은가하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말이다.

모습을 바꾸고 그에 따른 내면의 변화도 이루고 싶은 욕망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유혹적이다.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상상만으로라도 자신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만은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142. 각각의 문화는 서로 다른 종교, 지리, 환경을 기반으로 발전해왔으므로 셰이프시스터 유형은 문화마다 다르다.

236. 우리는 셰이프시프터라면 으레 마법이나 주술로 모습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젠더 전환 셰이프시프터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른 성과 다른 모습이 되고 싶다는 내적 욕망을 표출한다.

하지만 많은 사회에서 복장 도착이나 뒤바뀐 성 역할은 불법은 아니지만 부도덕하다고 여겨지거나 조롱과 뒷말의 중심에 있어왔다.

대중문화 속 셰이프시프터는 문학과 영화 등에서 변화되어 온 모습을 보인다. 외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아의 발견을 위한 변신의 경우가 더 많다.

현대에는 가면을 이용한 코스튬이나 복장도착 등으로 내면의 다른 자아를 표현하기도 한다. 가면은 신체를 변형시키지는 못하지만 잠깐이나마 심리적 변신을 일으킬 수 있다.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와 같은 외형의 변화를 가지는 존재만이 아니라 또 다른 자아를 표현하는 것도 셰이프시프터에 포함시킨다면 다중의 인격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살아가야하는 현대인 대부분도 셰이프시프터가 아닐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미래의창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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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손병관 지음 / 왕의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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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손병관 (지음) | 왕의서재 (펴냄)

왜 그는 죽음을 택했나?

이 책을 읽고나면 알게 될까? 자극적인 기사들을 여과없이 다 믿을 순 없었기에 이 '<비극의 탄생>을 읽고나면 조금이라도 후련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한 독서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올라오는 화를 누르기가 힘들었다.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화'가 아니라 뒷전으로 밀려버린 진실 때문이었다.

진실은 무엇인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작 진실에는 관심없어 보이는 사회의 흐름이 답답하게 죄여왔다.

살아 생전 이루어놓은 일들이 있으니 죄가 있어도 덮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잘해왔다고 인정해왔던 일들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는 손바닥 뒤집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박원순 씨의 자살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고 마치 그 자체가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되어버렸다. 죽어서 변명할 수 없는 자가 모든 것을 짊어졌다.

억울함의 표출이던 자살이 박원순의 자살에서는 억울함보다 죄의 인정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이미 죽고 없는 그는 여론이라는 재판에서 사형을 당한 셈이다.

다른 성범죄나 강력범죄에서 늘 인권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있어왔다고 시민들은 목소리를 내어왔다. 하지만 박원순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인권만이 강조된 듯이 보였다. 박원순에게 향하는 비난이 먼저가 아니라 사실 확인이 먼저 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서울 시장이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이슈화가 되었을까?

정의란 무엇일까? 피해자와 한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해야만이 정의일까? 냉정하게 사건의 진위를 알아보자는 의견마저도 마치 범죄자체를 덮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비난이 빗발치던 분위기에서 언론에 보도되지 못한 내용 속에 진실이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박시장과 잔디 두사람 모두와 이해관계가 없던 주변의 3자들이 박시장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했던 인터뷰들은 정작 공식적 기사화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의도와는 다른 상황에 휘말리게 되고 자신의 의도가 매도되고 곡해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풀려진 얘기들을 바로 잡고는 싶지만 그게 나는 아닌 다른 누군가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말은 다 진실이고 반대쪽 증언은 거짓말과 2차 가해로 몰아붙인다면 누가 나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지상파의 뉴스도 여과없이 믿지 못했기에 이 한권의 책도 어디까지를 거르며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지 싶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 민주주의 안에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차 가해를 운운하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게 한다면 그또한 방향만을 달리한 2차 가해이지 않을까?

239. '영원한 강자'나 '영원한 약자'는 없는 법. 오히려 내 눈에는 피해자를 약자로 상정하고 그를 지켜주겠다고 모인 여성단체와 언론들이 거대한 성채를 쌓는 것으로 보였다.

12가지 혐의 중 몇 가지는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 보아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정작 진실에는 관심이 없을까?"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누군가 답했다.

"진실은 돈이 안되니까요. 그런 사람들에겐 진실이란게 돈이나 힘이 되야하는데 진실이 돈이 아닌가보죠."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왕의 서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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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봄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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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봄

후루타 덴 (지음) | 이연승 (옮김) | 블루홀6 (펴냄)

표지가 독특하다.

읽기 시작하기 전부터 책을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졌다. 렌티큘러 이미지를 붙여 제목처럼 '봄과 거짓'을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책을 요리조리 움직일 때마다 파란 하늘 배경의 꽃가지가 눈을 맞고있는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로 바뀐다.

가마쿠라시의 파출소 순경 '가노 라이타'가 매 사건마다 등장하며 다섯편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형사나 독자의 시점에서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 아닌, 범인의 관점에서 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심리를 보여주며 단순히 범죄 해결보다는 그 너머의 진실을 알려준다. 진실을 알게되는 과정에서 허를 찌르는 추리력을 보여주는 가노의 활약은 다른 미스터리물에서 보게되는 탐정이나 형사의 이미지들과는 다른 캐릭터다.

사건을 맡아서 조사하며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들로 실없는 아저씨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디테일한 관찰력과 추리는 사소해보이는 어느 것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첫번째 이야기인 <봉인된 빨강>은 배우 조진웅 님의 영화 '해빙'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다. 본능처럼 행했던 범죄는 기억을 잃은 후에도 잠재의식에 남았고 누구의 기억인지도 모르게 지워진 기억은 또 하나의 본능이 되어 자리잡았다. 범죄의 피해는 오랜 시간이 흐른뒤에도 결코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이 된 두번째 이야기 <거짓의 봄>에서는 노년의 결혼사기를 다룬다.

《135~136. "한심한 건 속는 사람이 아니라 속이는 놈들이니까요."

과연 그럴까. 속으로 반론해 본다. 자신의 욕망과 부주의 때문에 넘어간 피해자들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속고 속이는 꼬리물기에 예외는 없다. 피해자는 언제라도 가해자가 될 수있고 가해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할 말이 아닌듯 하다.

40대의 전과자인 쇼고에게 호감을 보이는 스물 넷의 간호사 하마모토 리에. 과분한 사람임을 알기에 도둑임을 밝혔지만 믿어주지 않는 리에는 사실을 증명해보라며 밀크티색 장미를 훔쳐다 달라고 한다.

그녀의 호감은 거짓이었을까? 계획된 접근이었던걸까?

《175. "부탁이 있어, 쇼고 씨. 나를 위해 한 번만 더 장미를 훔쳐 줘."》

네번째 사건과 다섯번째 사건은 5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하지만 이 말자체가 하나의 주술이 되어 가난한 미대생 미호는 나쓰키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부유한 집안의 나쓰키와 한 집에 살며 더이상 핑크살롱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나쓰키를 향한 커져가는 미움은 살의를 느끼게 한다.

진심이라는 것은 어떻게 표현해도 오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표현의 문제인걸까?

마지막 이야기는 아이돌 성우로 스타가 되었다가 인기 하락세 중 의문의 죽음을 맞은 에밀리의 독살로 시작된다. 에밀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전편 말미에 나온 사건과의 연관성이 더 깊다. 피의자 신문이 특기라 '자백 전문 가노'로 불리던 그가 왜 동네 파출소의 순경으로 지내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미스터리 소설의 속시원한 해결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미묘한 경계,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가노 형사가 활약하는 또 다른 소설을 시리즈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블루홀6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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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 중 열린책들 세계문학 268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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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중)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라는 수식어가 절대 공허한 소리가 아님을 알게 해준 <푸코의 진자>다.

아직 상,중,하 중에 하권은 읽지 못했지만 성전 기사단에 접근하는 단서를 풀어가는 스토리는 (중)권이 압도적이지 않을까하는 개인적 감상을 조심스레 펼쳐본다.

'움베르토 에코'.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이 이탈리아의 작가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이런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중학생 시절에 만났던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다.


성전 기사단의 비밀에 다가서게 되는 그 시작은 우연과 가라몬드 사장의 상술 때문이었지만 그 비밀에 한발짝 가까워질수록 카소봉도 나도 점점 더 빠져들며 즐기게 되었다. 무겁게 흐르기 쉬운 심각한 부분은 중간 중간 움베르토 에코만의 익살이 쉬어갈 여유를 주기도 한다.

진짜 성전 기사단원을 찾는 데 가짜 성전 기사단보다 더 나은 곳은 없는 법이지요. 이제 내가 이들과 교우하는 까닭을 아시겠소?

푸코의 진자 246쪽

'너울 벗은 이시스' 새 총서를 앞세운 시리즈 도서의 출간을 <헤르메스 계획>이라 칭하며 이른바 호구가 되어 줄 자비 출판 저자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전 기사단의 비밀들.

아직은 그들 중 누가 가짜인 척 하는 진짜인지, 진짜인 척 하는 가짜인지 알 수 없지만 진짜 성전기사단을 숭배하는 무리들은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보인다.

카소봉, 벨보, 디오탈레비의 자문 역할을 하는 알리에와 카소봉의 주위를 맴도는 듯한 안젤리스 경위, 사실은 경찰 끄나풀이라는 박제사 샬론. 그들 중 진짜 스파이가 누구일런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십자단이 왜 자신들을 숨기며 여러 곳으로 이름마저 달리한 채 살아왔는지, 왜 이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려 하는지 몹시도 궁금하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르덴티 대령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던 걸까? 숨은것인지 제거된 것인지 아직은 그마저도 알 수 없다.

잠깐씩 등장했던 인물들의 비밀스런 기사단 모임과 아불라피아에 소설처럼 써내려간 벨보의 이야기, 거기에 더해진 카소봉의 가설은 (하)권에서 어떻게 비밀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게 될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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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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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로저 에커치 (지음) | 조한욱 (옮김) | 고유서가 (펴냄)

십여년 전 '밤의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이 책은 새 옷을 입고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밤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밤의 이중성도 변하고 계급과 신분에 따라 밤을 이용하거나 맞이하는 방법도 달라져왔음을 알려준다.

20세기에 이르러 눈부신 과학의 발전은 인공 조명의 등장으로 밤은 제 2의 낮이 되어 노동의 연장과 유흥의 화려함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음지에서 살아가는 도둑, 밀수, 밀렵 등의 세력들은 밤이 주요 무대이다.

어둠을 인위적으로 밝힐 수 없던 시대의 밤은 위험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본다'는 감각을 불빛없이 오로지 시각에만 의지해야했던 시대의 밤은 공포와 위험 그 자체였다. 소리와 후각 등의 오감을 이용한 판단은 늦은 밤 방문객을 도둑으로 오인해서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고, 이런 공포심을 이용해 타인의 복종을 유도하기도 했다.

"밤의 두 얼굴".

세상만사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 밤 또한 이중성을 가진다. 현대인들이 밤을 휴식의 시간, 힐링의 시간, 개인의 시간이라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초기 사회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사회처럼 사회가 작을수록 이웃의 평판을 무시할 수가 없기에 낮의 생활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밤은 위험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표출할 수도 있었다. 귀족들은 밤이 주는 익명성 위에 가면이라는 익명성을 더해 그들만의 유흥과 향락을 즐기기도 했다.

어둠이 주는 휴식은 생계의 압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한 일은 밤에 이루어져야 했고 그런 일은 돈이 필요한 서민들의 차지였다.

가사일로 인해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일이 더 많았고, 산업화 이전 시대의 술집은 남자들의 사교 행위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술집에서 성적 만남도 이루어졌지만 성행위는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성적인 태도의 지역적 차이는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로 존재했고, 계급도 문제가 되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중간층과 상류층 사람들은 개인적 성찰을 위한 독서를 즐겼다. 하층 계급은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을 얻기 힘들었다.

평민들에게 밤은 유흥보다는 은신처였다. 낮에 몸을 숨겨야 하는 반체제 소수파는 어둠속에서 결의를 다졌고 질병이나 기형을 가진 사람들은 밤을 이용해 피신하거나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

하인들이나 견습공이 낮의 노동에서 벗어나 밤 외출을 하려하면 주인들은 막으려 애썼다. 도주하려는 하인과 노예, 견습공들이 주로 밤시간를 노렸기 때문이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자들에겐 유흥의 시간이고 없는 자에겐 노동의 시간..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양보다 질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만큼 자는가보다 어떻게 자는가하는 문제.

위생과 청결이 현재와 달랐던 과거의 수면은 '쉼'에 대한 자세가 지금과는 달랐다. 건강과도 직결되는 '잠의 질'에 있어서 '적정한 수면 시간은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적정한 수면시간은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계절과 노동의 양과 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많이 자면 게으르고 조금 자면 근면하다는 선입견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제 현대인들은 직장에 매인 낮시간을 밤의 여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낮의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밤의 역사를 이제라도 되찾으려는 듯이.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고유서가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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