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 -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외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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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관계

백상경제연구원 (편저) | 한빛비즈 (펴냄)

겉장을 넘겨보기도 전에 보이는 두줄이 심쿵이다.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 <관계>는 현대인들의 고민 중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의 주제다.

123. 갈등이나 문제가 커지는 경우 '다름'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 생각이 맞고, 네 생각과 견해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고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별나다', '모나다'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점심메뉴를 정할때도 '통일'을 외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성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긴다.

'다름'은 그저 다를 뿐인데 '틀리다'로 규정하고 삿대질하거나 몰아세우는 것이 관계를 대립적으로 만들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왜 타인이 나와 다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나보다 뛰어날까봐 견제, 질투하는 마음은 아닐까?

타인과의 관계에서 먼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시작, 자존감. 너무 낮은 자존감과 뒤틀린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를 망칠 뿐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망 속에 있는 타인을 모두 병들게 한다. 채워야 할 자존감 대신 질은 고려하지 않는 양적인 관심을 채우느라 투머치 토커인 꼰대나 관종으로 변모하기 쉽다.

자아를 표현하고 정의하는 데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 분야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내 관심을 끈 것은 '취향'이었다. 취향은 소비를 통해 드러난다. 소비를 하는 주체는 본인이지만 소비하는 과정에서의 선택이 진짜 순수하게 본인만의 의지였는지는 짚어보아야 한다. '취향'과'개성'이라는 그럴듯한 허울로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사치와 유행에 말려든 것이 아닌지를 말이다. 워라밸, 소확행 등의 젊은 층에서 시작된 주변의 소소한 행복이 더 값진 이유다.

본문 중간중간 가슴을 후벼대며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취향은 자유와 맞닿아 있다. 각자가 취향을 찾는다는 의미는 자유를 만끽하는 '나답게 살기'의 시작이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여행은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고 기억을 남기기 위해 가는 것이다.

여행이 국경을 넘는 일이라면 독서는 경계를 넘는 일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관계> 본문 중에서

콤플렉스와 강박증이 넘쳐나는 시대다. 진정한 자아찾기와 자존감이 있다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위축되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대신, 다름을 취향과 개성, 특별함으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라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읽어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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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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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민음사 (펴냄)

단순히 인공지능 로봇 AI의 이야기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라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 듯하다.

인간성에 대한 울림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서 받게 되니 그 울림은 메아리처럼 더 멀리 더 크게 증폭되는 것 같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도 참 좋았는데, 클론들이 주어진 숙명을 거부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가운데 희망을 보려 했던 것처럼 <클라라와 태양>에서도 희망을 보려하고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AF인 클라라다.

매장에 진열되어 쇼윈도를 통해 세상을 배운 클라라는 조시에게 선택되고, 스스로도 조시를 선택하며 특별한 AF가 된다. 조시의 엄마가 신형 B3가 아닌 구형 버전의 클라라를 선택한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왜 제목이 <클라라와 태양>인지, 제목을 이보다 더 잘 지을 수는 없었겠다고 생각된다.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클라라가 특별한 친구 조시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일. 기계인 클라라가 자신을 내어주는 그 행위가 어쩌면 사람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만큼의 무게를 가진 희생임을 알면서도 했던 선택.

조시 본인도, 조시의 엄마도, 카팔디도 모두가 희망을 놓아버리려 할 때 조차 클라라는 자신의 생명의 원천인 태양에게 매달리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클라라의 순수함에 물들어 그 허황된 논리를 응원까지 하게 되었다.

인간만이 희망을 갖고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누가 그랬던가!

인긴의 욕심은 어디까지 일까? "향상"되기 위해 부작용을 감수하며 유전자 편집을 하고, 그 부작용으로 이미 샐을 잃은 조시의 엄마는 조시에게도 같은 선택을 한다. 선택은 엄마가 했지만 그 선택의 결과를 인생을 걸고 감내해야하는 것은 조시다! 아이의 진로를 두고 "넌 공부만 하면 되. 엄마의 선택을 믿고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거야"하는 일부 잘못된 교육열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조시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해보지도 않았다.

가족같다고 했지만 끝까지 가족은 될 수 없었던 클라라.

조시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지만 클라라는 집에 남아 조시를 기다리면 안되었던 걸까? 그토록 좋아하던 창밖을 내다보며 가끔 집에 돌아올 조시를 기다리면 안되었던 걸까?

야적장에서 만난 매니저에게 클라는 말한다.

"저에게 최고의 집이었어요. 조시는 최고의 아이였고요. 조시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주변의 사람들과 클라라의 선택은 달랐다. 대체품을 찾으려던 엄마와 자신을 내어준 클라라.

442.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렇다면 클라라, 너의 특별함은 누구 안에 있을까?

한 켠 가슴 아프고 저릿한 울림이 있는 소설 <클라라와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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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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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셸리 (지음) |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펴냄)

메리 셸리가 열여덟살에 썼다는 과학과 공포가 콜라보된 소설 <프랑켄슈타인>. 한 남자가 괴물로 만들어져 태어난 이야기를 넘어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200년 전의 열여덟살 소녀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북극으로 향하던 항해도중 바다에서 조난당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로버트 월든이 구하며 그의 사연을 듣게된다.

​자신을 만든 창조자로부터의 버림받은 괴물과 그 괴물에게 사랑하는 이를 모두 잃은 프랑켄슈타인.

오, 프랑켄슈타인, 다른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면서 나 하나만 짓밟지는 말아주시오. 나야말로 누구보다 그대의 공정함, 심지어 관대함과 사랑을 받아 마땅한 존재란 말입니다.

내가 사악해진 것은 불행하기 때문이오.

강요당했던 지긋지긋한 고독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악했던 거요.

프랑켄슈타인 본문 중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지만 내면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던 생명. 어느 오두막집 헛간에 숨어 살며 그 집의 가족들을 몰래 지켜보고 남몰래 도움의 손길도 뻗칠줄 아는 심성을 가진 그이다.

외모만을 보고 그를 괴물로 정의내린 인간들과 외로움이 뒤틀려 살인자가 되어버린 이름조차 없는 그 중에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에게 실오라기같은 온정을 보였던들 내면마저 괴물로 변하는 그런 삶이 되었을까?

펠릭스의 가족에게 만큼은 사랑받고 친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바램에 대한 어긋남도,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주고 되돌려 받은 총상도 그가 마음에 얻은 상처와 비교가 되지 못했다.

버림받은 자와 버린 자. 내면과 외면.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가?

외로움, 절망, 고독...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살고 싶은 그.

사람들에게 보낸 선행과 친절은 언제나 고통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원했던 건 작은 친절과 사랑,공감일 뿐이었는데, 흉측한 외모 때문에 괴물로 정의된 그는 진짜 괴물이 되어갔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탄생이었음에도 창조자에게서조차 거부당한 그는 이름도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부당한 아이의 심정도 이러할까.

동생과 친구, 아내와 주변사람들을 차례로 잃어가며 복수심에 불타는 프랑켄슈타인은 끝내 숨지고 만다. 자멸에 가까운 죽음이다.

마지막까지도 괴물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후회만이 있을 뿐, 그를 버린 것에 대한 후회나 반성, 연민은 끝까지 볼 수 없다. 그런 감정들 마저도 동류의 인간들에게만 느껴야 하는 것일까?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그토록 철저한 버림을 받지 않았더라면 무명의 그는 내면마저 괴물로 변해버리는 일이 없었을까?

과학과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결과는 '프랑켄슈타인' 주변사람들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뤘다. 자신의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태어남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죽음은 자신의 의지로, 방법 또한 본인의 선택으로 그는 끝내 이름없이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과거의 소설속이 아닌 지금의 현실에서 누군가를 행동보다 외모,국적,배경 등을 이유로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밀어낸적이 없는가 돌아볼 일이다.

누가 진짜 괴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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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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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 차영지 (옮김) | 내로라 (펴냄)

표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벽지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위로 벽지의 무늬가 겹쳐진다. 할 말이 있지만 할 수 없는 표정이다.

사람으로 대접 받지 못하고 남자의 부속물이나 집안의 장식품처럼 대해지던 여성들의 시대. 그런데 벽지라니, 더더구나 누렇게 빛바래고 찢겨져 볼품없고 관심에서 밀려난 벽지라니, 그녀의 처지가 표지 그림 한 장으로도 짐작되고도 남는다.

일기의 형식을 빌어 소설 속 여인의 상태와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우울증과 일시적인 신경 쇠약의 진단을 받은 그녀는 의사인 남편의 처방으로 보호와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와 단절된다. 좋아하는 글쓰기도 남편의 눈을 피해 몰래 이뤄진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방안의 벽지를 쳐다보는 일 뿐이다. 처음에는 흉물스럽게 느껴지던 벽지에서 날이 갈수록 다른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67. 저 벽지 안에는 무언가가 있어. 아무도 모르고 오직 나만이 알아본 무언가가.

그건 마치, 허리를 굽히고 무늬 뒤를 기어 다니는 여인 같아 보여.

벽지 안에 갇힌 여자는 뚫고 나오려 애쓰며 무늬를 흔들어 댄다. 벽지의 무늬가 탈출을 막는 쇠창살이기라도 하듯이.

<93. 하지만 아무도 무늬 사이를 통과할 수가 없어. 무늬가 목을 조르거든. 내 생각엔 저기에 저렇게 많은 머리가 걸려 있는 이유도 바로 그거야.>

이제 그녀는 벽지 속 여자와 한 편이 되어 벽지를 뜯어낸다. 누런 벽지 속 여자를 탈출 시키며 자신이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대리 실현하려했던 것 같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남편은 이런 광경을 목격하곤 기절하고 만다. 기절한 남편의 몸을 기어서 넘어가는 것으로 마지막 열한 번째 일기는 끝이 난다.

벽 아래쪽 걸레받이 근처에 방을 빙 둘러 난 흔적, 누군가가 문지르고 또 문지른 것 같은 얼룩과 침대 프레임을 물어뜯은 자국은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을 탈피하고픈 그녀 이전의 또 다른 그녀들의 몸부림의 흔적이었던걸까?

산후 우을증으로 힘들었던 작가 샬롯 퍼킨스 길먼의 개인적 경험과 삶이 많이 녹아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게 하는 주제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르다.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페미니즘. 가부장제와 남녀평등 그리고 역차별. 그 미묘한 줄다리기와 차이 사이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짧았지만 역시 깊었던 '내로라'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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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진 - 일상의 시간에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아가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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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전진

백상경제연구원 (편저) | 한빛비즈 (펴냄)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즌1의 마지막 주제 "전진"이다.

문학, 건축, 음악, 역사, 미술, 문화, 고전, 과학, 사회 분야의 전문가라 할 지식인들의 강의가 수록되어 있다. 멈춤과 전환의 강의도 좋았지만 문학과 고전에 대한 색다른 해석과 풀이가 있어 '전진'편이 개인적으론 더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더 즐기게 되는 심리랄까.

창의와 혁신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정신, 그러나 그 중심에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이 있어야 한다.

건축 분야에서 편리함을 내세운 인터넷 서비스망과 기술에 집중된 설계는 자칫 인간이 배제되기 쉽다. 무채색의 도시에서 자연친화적인 도시로의 회귀를 원하는 추세가 이를 드러낸다.

책 속 PART1에서 소개 되어지는 다수의 작품 중, 반갑고 다행스럽게도 읽어보았던 몇 편이 눈에 띄었다. 그 문학 작품들에 대한 재해석과 해설을 보며, 그저 책이 좋아 즐기는 나의 관점과 다르게 인문학자가 바라보는 관점의 각도와 깊이에는 시야의 폭넓음이 함께했다. 책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그 책을 읽는 타인에게서도 배운다는 교훈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또 한번 배운다.

"전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선구자, 돌격, 혁명 등의 역동적인 느낌이다.

최초로 평민이 왕의 목을 친 영국혁명은 근대 시민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다. 신분 제도를 끝장내 버린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의 노동자혁명 그리고 무혈로 기록된 펑화적 정귄교체의 대한민국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전진하기 위한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테지만 나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야 한다. 나를 모르고서는 첫걸음을 내딛는 방향을 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방향을 잃은 전진은 혼란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알아가는 것! 그 시작에 인문학이 있다.

215. 자연의 빛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공간의 안과 밖에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고, 조명을 이용한 인공의 빛은 독특한 공간미를 연출해 건축을 완성한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이 빛이라면 인생에 있어 인문학이 차지하는 자리가 그 빛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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