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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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NOON세트]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전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과는 다르게 소설의 형식이 아닌 에세이의 느낌이 강하다.

​그녀의 생각이 시대상과 맞물려 표현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식어 만큼이나 그녀에게 붙는 또 하나의 꼬리표 "페미니즘 작가".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우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그저 남자와 여자를 떠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성의 역사.

도서관 이용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처지로 시작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매질에도 순종할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꼬집는다. 교육의 기회조차도 공평하게 가질 수 없었고, 공개된 공동의 장소에서 일상의 방해를 받으며 쓰던 글을 압지로 덮어가며 글을 쓴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남성에게 소유 아닌 소유물로, 명령을 거부하면 방에 감금되어지고 폭력에 시달리는 사실이 별다른 사건 사고랄 것도 없이 평범함이던 시대들. 고양이에게 조차 있는 영혼이 여성에겐 없다는 무시와 여성이 쓰는 글을 누가 읽어주겠냐는 비아냥 속에서도 자의식을 가진 여성들의 고뇌와 번민 속에 오늘날이 되었다.

'레이디 퍼스트'

어릴적에는 이 말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서양의 여성들은 양보와 배려 속에 사는구나' 하고. 하지만 실상은 결혼과 함께 주어진 성(라스트 네임)조차도 뺏기고 남편의 성으로 사는 그녀들이 가질 수 있도록 허락된건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과 편견은 현재에도 존재하지만, 약자라는 위치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역차별이 일어나는 곳도 있다.

성희롱을 당하는 여성을 대변해주는 단체들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예를 들면 매맞고 사는 남편과 여성 상사에게 성희롱 당하는 직장내 남성들의 얘기는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자 연예인이 여성 출연자에게 건네는 딱히 성희롱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 농담에는 분노하면서 여자 연예인이 나이 어린 남자 아이돌의 엉덩이를 대놓고 만지는 티비 프로그램은 웃음코드로 받아들이며 가볍게 넘기는 경우를 수차례 보았다. 미투사건에서도 고발 당한 남성은 있지만 여성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약자라는 이유로 여성이 보호받는 면책의 특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배려와 양보, 보호도 차별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역차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등도 기대할 수 없다.

울프는 돈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자기만의 방이 글을 쓰는데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찾는 것이나 자아를 드러내는 것과도 통할지 모르겠다.

현대에 이르러 자기만의 방, 공간이 필요한 것은 꼭 여자들 뿐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울프가 현재에 다시 글을 쓴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위해 시간을 대가로 지불함으로써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자유를 누릴 시간이 없다.

현대를 살아가며,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런 자유가 존재할 수는 있을까?

그녀의 글에선 왠지 인간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여성 뿐만이 아니더라도 군중 속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와 자유를 위해 돈과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 것은 남녀 모두가 아닐까.

그녀는 '살아있음'을 쓰는 행위로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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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의 책 - 인간의 정신을 전복시킨 위대한 심리학의 요체들 DK 생각의 지도
캐서린 콜린 외 지음, 이경희.박유진.이시은 옮김 / 지식갤러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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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의 책

캐서린 콜린 외 (공저) | 이경희 박유진 이시은 (공역) | 지식갤러리 (펴냄)

<심리의 책>. 제목을 보고 기대가 가득했던 책이다.

책을 펴 보곤 깜짝 놀랐다. 속지 한 장 한 장 종이 코팅이 되어 있어서 안에 담긴 내용 만큼이나 비주얼도 고급지다.

목차를 보니 '아! 이렇게나 많은 심리학자들이 있었구나'하고 놀라웠고,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훨씬 더 많아서 아직도 알아야할 게 많고 배워야할 게 많다는 자각이 되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마술이 호기심과 신기함의 대상이듯 어른들에겐 심리학이 주는 매력이 그런 것이 아닐까? 알다가도 모를 그 사람의 마음도 알고 싶고, 이유 모를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속시원히 이유를 알고 싶을 때 혹은 나 조차도 내 속을 도저히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심리테스트도 해보고 심리학 책을 펴보기도 하면서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는 변형된 심리학의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김국환의 '타타타'가 떠오른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 그러나 나는 알고 싶다. 내 마음도 그리고 너의 마음도.

보통의 심리학 책은 사뭇 진지하고 무겁고 무엇보다도 어렵다. "~~주의"의 끝없는 나열은 길을 찿고 싶어 발을 들여놓은 곳이 미로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만든다. 전문 용어와 이해가 안 되는 실험들, 읽고 있는 게 분명히 한글인데 내가 지금 읽고 있는게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심리의 책'은 지금껏 읽어왔던 심리학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분명히 심리학의 역사도 있고, '~~주의'도 나오고, 심리학자들의 이름과 이론이 줄줄이 나오는데도 읽어 내려감에 막힘이 없다.

"철학적 근원, 행동주의, 심리치료,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 차이심리학" 7가지 주제로 분류해 소개하는 각 주제마다 심리학자들의 소개와 이론은 한 페이지 혹은 서너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핵심정리만 잘 해놓아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길을 잃고 빙빙 돌게 만들지 않는다.

심리학은 깊이 있게 알려고 하면 어렵기도 하지만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와 많은 분야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어찌보면 철학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과학 같기도 한 심리학. 요즘 얘기하는 융합형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 아닐까싶다.

심리학에서 오랜 시간 논쟁과 연구가 되어 온 성격은 후천적으로 양육된 경험과 교육으로 형성된다는 이론과 태어나기 전부터 타고난 선천적 특징이라는 이론이 있다.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오늘날에는 이 두가지 모두가 상호작용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새롭게 변모하거나 어릴 적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성격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걸 보면 후천적인게 더 맞나 싶지만 사람 고쳐 쓰는게 아니라는 우리의 옛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선천적 유전의 힘이 더 강한 것도 같다.

전문적으로는 아니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며 깨닫고 좋아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체모를 감정에 우울의 심연에 빠지는 일이 줄고 역지사지가 좀 더 쉬워졌다고나 할까?

심리의 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읽고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시리즈로 꽤 여러 주제가 출간되었던데 다음은 어떤 걸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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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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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NOON세트]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아서 코난 도일 (지음) |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자네는 보기만 하지 관찰하지는 않잖아.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달라.

보헤미아 스캔들 중에서

'추리 소설'하면 아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빼놓을 수 있을까? 추리 소설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셜록 홈즈 시리즈" 한 두편 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다.

어떻게 누군가의 소지품 하나만을 보고서도 많은 것을 유추 해내는지 홈즈의 추리력에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설명을 듣고나면 너무 뻔해서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었지?' 싶지만 미스터리한 사건 앞에선 또 다시 그의 추리력에 놀라기만 할 뿐이다. 그런 감탄과 놀라움에 대해 홈즈는 비결 아닌 비결을 알려준다. 그 차이는 바로 관찰에 있다고.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을 맞아 출간된 [NOON세트]의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에는 홈즈의 관찰력이 빛나는 세 가지 사건인 '보헤미아 스캔들', '빨강 머리 연맹',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이 실려 있다.

'보헤미아 스캔들'에서는 홈즈가 놀라운 추리와 위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빠른 아이린 애들러가 먼저 도주를 하고,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에서는 의뢰인인 오펀쇼가 사고사로 위장한 살해를 당하고 만다. 홈즈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그가 맡은 사건이 모두 해피엔딩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풀리지 않는 의혹을 남겨둠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분명히 미해결로 남은 사건들도 있는데 왜 셜록 홈즈의 추리는 완벽하다고 기억되는걸까? 추리 자체는 언제나 완벽했기 때문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미스터리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공주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대공은 한때 애들러와 연인이었던 사실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고, 윌슨은 매주 4파운드를 지급하기로 한 빨강 머리 연맹의 해체가 탐탁치 않다. 석연치 않은 대가없는 행운에 의심해야할 사소함들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청년 존 오펀쇼의 의문의 죽음은 그에게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 사건의 시작이 그의 백부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젊은날의 과오가 자신은 물론 동생과 조카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대부분 의뢰인이 가지고 있었던 사건의 실마리는 홈즈 만의 관찰력으로 홈즈 만이 캐치할 뿐이지만.

세 편의 이야기 중 특히 '보헤미아 스캔들'에서는 왓슨과 홈즈의 케미가 돋보인다. 남남 커플의 케미나 브로맨스를 언급하며 이 둘의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느 심리학자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유형 분석을 한 걸 보니 홈즈는 소시오패스라고 했다.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홈즈 자신이 그런 성향을 범죄보다는 해결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그런 그에게 왓슨은 세상을 바로 살아가게하는 나침반이지 않았을까?

언제 읽어도 몇번을 읽어도 셜록 홈즈 시리즈는 재미있다. 집에 다른 홈즈의 이야기까지 마저 찾아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오늘 밤을 새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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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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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NOON세트] 백야

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 (지음) |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을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동일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백야"가 주는 분위기나 작가의 색깔은 많이 다르다. 책 뒷부분의 편집부 해설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도스또예프스키는 백야를 집필하고 난 후 빼쩨르부르그에서 10년의 유형을 보내고 난 뒤라는 것이다.

사상과 철학을 담아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는 달리 속지의 제목아래 한 줄처럼 "백야"는 감상적 소설이며 어느 몽상가의 회상이 담겨있다.

11.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주인공 '나'는 밤거리를 산책하다가 만난 여인 나스젠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거리를 거닐며 보게 되는 건물들과도 친하게 지낼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26세의 청년이다.

'나'는 여성 앞에서 수줍음을 무척 많이 타지만 연미복의 신사가 나스젠까에게 추근대자 용기를 내어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런 과감성의 소유자가 왜 모태솔로로 있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이미 따로 있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난 남자이긴 하지만.

주인공인 '나'와 나스젠까는 요새말로 금사빠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사랑에 빠질 수가 있을까? 순수해서?

나스젠까의 처지를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열일곱이 되도록 할머니의 곁에 붙어있어야만 했으니 이성을 접할 기회도 없었으리라.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살며 신사적인 배려를 보였던 남자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불보듯 뻔한 일이었는지도.

함께 도망가자고 보퉁이를 들고 한밤중에 찾아온 그녀를 이성적으로 설득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고 미래를 약속하는 그가 진짜 신사답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것이 없는 현재에 함께 고생하기보다는 안정이 되면 꼭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보이는 그의 사랑법이 듬직하다.

약속했던 일년이 지나고 돌아온 그는 나스젠까에게 연락을 주지 않는다. 그를 기다리면서도 연락없는 이유를 변심보다는 다른 데서 찾으려는 그녀가 측은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나'를 마치 어장관리하듯 우정이니 친구니 하며 곁에 두는 것은 얌체 같다. 나스젠까를 사랑하는 '나'는 그녀의 사랑 얘기를 듣는게 괴로운데 말이다.

돌아오겠다던 남자에게서 끝내 아무 연락이 없자 나스젠까는 나에게 마음을 열 노력을 한다. "104. 언제나 지금처럼 저를 사랑하고 싶으시다면, 그렇다면 저도 맹세합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저의 사랑이 마침내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게 될 거라는 걸...이제 제 손을 잡아주시겠어요?" 그러고는 자신의 집으로 이사를 오라며 '나'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래를 약속했던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를 불렀다.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나스젠까는 그를 향해 총알처럼 달려갔다. 이런이런...

오매불망하던 나스젠까의 사랑이 이루어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나'에게 주려던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너무 늦기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하려나.

4일간의 백야에 꿈꾸듯 했던 사랑.

아침이 되어 용서를 비는 나스젠까의 편지를 받는다. <아, 그 사람이 당신이었더라면!>.

용서해달라며 영원한 친구가, 오빠가 되어달라는 그녀를 '나'는 축복해준다. 한순간이나마 지속된 지극한 행복이면 족하다며.

115.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랑. 그 사랑이 어두운 밤도 환하게 만드는 백야와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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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전쟁 -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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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영목 (옮김) | 교양인 (펴냄)

466. 폭력이 불가피한 정치 세계에서 비폭력이 가능한가?

전쟁은 인간의 문명에 폭력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된 오래되고도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얘기다.

많고 많은 전쟁의 이유 중에 신의 이름으로 일어났던 전쟁들 그리고 죽음들. 폭력의 시작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신의 전쟁"에서는 농업의 시작으로 잉여 농산물이 발생하면서 생겨난 특권 지배층이 자신들의 여가와 부를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폭력을 행사하는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발명한 목적도 사회 통제였다는 점은 문명의 발전이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본문의 "43.문명의 증거는 동시에 야만의 증거이기도 하다"는 문장은 뼈아픈 직언을 날린다. 농민에게서 빼앗은 잉여가 기술, 과학, 예술, 철학을 뒷받침하는 경제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의 시작으로 형성된 계급이 누리는 부와 여가는 계급의 고착화를 가져왔다. 제국을 개인 소유물로, 군대는 사병으로, 농민은 종으로 보았던 당시의 지배자들. 시대가 변하고 변하고 또 변했음에도 그때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지배자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현타가 온다.

"110. 사회가 발전하여 무기가 치명적이 될수록 폭력으로 세워지고 유지되는 제국은 역설적으로 평화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주장이다. 강하게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폭력은 파괴의 힘이기도 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한 힘이기도 한 것이다.

종교의 핍박과 억압은 순교자 숭배로 이어졌다. 순교자는 소수지만 그 죽음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정치와 종교의 뗄 수 없는 관계의 단면이다.

각자의 이해관계, 각자의 도덕, 각자의 종교관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 도덕, 종교와 부딪히며 전쟁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근대에 들어서며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었지만 권력의 무게는 왕들에게 기울었다. 신보다 성직자에 대한 충성 맹세로 변질되고 종교 개혁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이단으로 몰려 많은 목숨이 사라졌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을 몰아내면서도 신의 이름으로 행한 것들에 조금의 가책도 없었을까?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 혁명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인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까지 이른다. 기술의 발전은 무기의 발명으로 이어지며 식민지를 지배하기 수월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노예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남북 전쟁은 종교가 개인의 이익에 따라 주관적으로 변형되고 해석되는 모습을 보였다.

인종주의,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그들에게 종교가 없어서, 신이 없어서 폭력적인 것인가!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을 찾는가! 신은 누구의 편을 들것인가?

종교를 국가에서 떼어낼 수는 있지만 민족에게서 떼어낼 수는 없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들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 종교의 이름을 앞세워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과 테러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치적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권력을 얻거나 지키기 위한 것이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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