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05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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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얘기할 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원작보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왔던 오래된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소설로 된 원작도 읽어보질 못했었고 심지어 영화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123.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코는 어떻게 해요? 코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늘 궁금했어요."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 대사 장면이 영화사에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되며 여러번 방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편이 갈려 서로를 죽여야 하는 국가 간의 전쟁도 있지만 정치적 이념과 이권이 얽혀 같은 민족이 한 국가 안에서 서로를 향해 죽음을 조준하는 내전도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1937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공화국 정부군에 가담했던 헤밍웨이의 경험이 이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던 듯하다. 그의 수많은 작품중 판매부수로는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철교 폭파의 임무를 띤 로버트 조던은 혼자서는 해내지 못할 이 막중한 임무를 위해 산속에 은거중인 게릴라 집시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곳에서 마리아를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예전에는 용감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죽음이 두려워 술에 빠져사는 대장 파블로는 로버트 조던의 임무에 도움을 줄 생각이 없지만 그의 아내 필라르가 적극적으로 돕는다. 다행스럽게도 나머지 집시들도 파블로보다는 필라르의 말을 더 잘 따른다. 결단력과 통찰력을 모두 갖춘 듯 보이는 필라르는 철교를 폭파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지만 마리아와 로버트 조던을 이어주는 일에도 이상하리만치 열심이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필라르가 로버트 조던의 손금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것과 연관이라도 있는걸까?

마리아가 열차 폭파때 집시들에게 구조되기 전 당해야했던 몹쓸 일에 필라르가 건넨 말은 인생을 달관한 자들에게서 보여지는 깨달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126. 사람이 스스로 거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만약 내가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없어져 버릴 거라고 했어요."

필라르가 살던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던 사람들이 파시스트와 공화주의자로 나뉘며 상대에게 보인 잔인성은 처음의 의도에서 멀어지며 분위기에 휩쓸린 궁중심리가 더 컸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한때는 이웃이던 사람들을 다른 때라면 그냥 용서해줄 수도 있는 일에도 주정뱅이들의 선동에 감정이 격양되어 무자비한 죽음을 만들어냈다. 죽음에도 존엄이 있을텐데, 이런 죽음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파블로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어쩌면 불보듯 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하면 죽인 사람들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파블로. 용감했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늘 술에 취한 모습인 파블로의 속마음은 이것이었을까?

죽음이 흔해져버린 시기,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중요 임무를 띠고 온 로버트 조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안셀모 영감 하나 뿐인걸까?

이어지는 하권에서 철교 폭파는 성공하게 될까? 마리아와 로버트 조던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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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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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지음) |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되었던 15편의 중단편 중 <애러비>, <가슴 아픈 사건>, <죽은 사람들> 3편이 실려있다.

더블린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일상이란 것이 밝고 희망적이지 않고 소외되고 어두운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애러비>에서는 주인공 소년이 짝사랑하는 이웃집 누나의 권유로 바자회에 가는 내용이다. 누나의 권유로 마음은 들뜨지만 누나는 다른 일정으로 가지 못하고 바자회에 가야하는 날에는 숙부가 약속을 잊어 너무 늦은 시간에 바자회 장소로 향하게 된다. 도착한 바자회장은 기대와 다르고 소년은 실망을 넘어선 괴로움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어느 것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가슴 아픈 사건>에서는 제임스 더피 씨가 딸을 하나 키우고 있는 유부녀 시니코 부인과 교류를 나누다가 절교를 선언한다. 그 누구와의 교제도 없이 자신만의 정신적 삶을 살던 그가 우연한 만남이 거듭되던 그녀와 자신의 지적 인생을 공유하던 어느날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교제를 끊은 것이다. 자주 둘이서만 보낸 저녁 시간은 부인으로 하여금 더피 씨의 친분을 오해하기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4년 후 석간신문에서 그녀의 죽음을 기사로 보게 된 제임스 더피 씨는 그녀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이 불운한 사고라고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녀에게는 평소 늦은 밤 선로를 가로질러 다니던 습관이 있었으며, 2년 전부터 폭음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증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그 누구도 그녀가 왜 늦은밤 선로를 가로질러 다녔는지, 왜 밤에 술을 사러 다녔는지, 왜 폭음을 시작했는지 이유를 알아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 자신의 쾌락 세계에서 철저히 아내를 배제해왔던 남편과 딸로 부터 느꼈을 외로움은 빈둥지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죽음에 정말 아무도 잘못이 없었을까? 더피 씨와 나눈 교류가 사랑이었든 우정이었든간에 시니코 부인에게는 살아갈 힘을 주는 작은 숨구멍과도 같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피 씨와의 교류가 끊긴 후 느낀 박탈감, 허무감, 좌절이 전보다 더 크게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록된 3개의 단편 중 개인적으론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수록 작품 중 가장 긴 편에 속하지만 가장 난해하고 어려웠다. 크리스마티 파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춤을 추고 웃고 떠들지만 진심이 담긴 상냥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겉으론 다들 파티를 즐기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 느끼는 불편함을 애써 숨기고 있다. 게이브리얼의 아내 그레타는 잊고 살았던 기억이 다시 듣게 된 노래로 소환되며 오래전 좋아했던 소년의 죽음을 떠올린다. 게이브리얼은 잠시 질투를 느끼지만 죽은 자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가까이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15편 전부를 읽으면 이해하기 쉬워질까? 억지로 밝게 그려내지 않고 일상에서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현실적으로 다가섰다. 지금은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지만 당대에는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진실에 가까울수록 아프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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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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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MIDNIGHT세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어릴 적 동화책으로 처음 읽었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외모가 변하는 공포 SF소설이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선과 악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의학자이자 법학자라는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에 여러 자선 활동으로 세인들의 존경을 받아온 지킬에게 한 번씩 하이드로 변신해 살아가는 일상은 처음에는 꽤나 자극적이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과 금기가 주는 쾌락은 매번 '한번만 한번만'이 되어 더이상 제어할 수 없는 중독에 이르기 전까지, 그리고 그 중독이 파멸에 이르게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잠들 때는 헨리 지킬이었다가 아침에 눈뜰 때는 하이드로 변해있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변신은 그 누구보다 지킬 스스로에게 큰 공포였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던 자신감은 차츰씩 하이드로 지내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수록 자신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향해가며 좌절로 물든다.

선과 악은 분리될 수 있는 걸까? 하이드 씨를 절대 악이라 본다면 지킬 박사는 절대 선이라 볼 수 있을 것인가? 일탈을 꿈꾸었던 것도, 폭행과 살인이라는 죄를 지은 하이드를 자신의 인격과 선을 그으며 존재 자체를 은폐하고 숨기려 했던 것을 보아도 지킬 박사를 선한 사람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킬 박사의 비밀을 맨 처음 알게 된 래니언 박사의 죽음은 그가 감당해야 할 진실이 엄청난 무게임을 알게 한다.

오래전 동양에서 맹자는 성선설을 순자는 성악설을 고자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하였다. 선과 악에 대한 고민은 동양과 서양에서 오랫동안 깊어져 온 듯하다.

세상일은 처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우연과 변수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처음 묘약을 만들었던 재료에 섞여있었던 불순물은 지킬 박사의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었지만 불순물이 섞인 재료를 다시 구할 수 없어 똑같은 묘약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을 보아도 그렇다. 결국 묘약 제조에 실패한 지킬의 선택은 죽음이었다. 이 죽음을 자살이라고 보아야 할까, 살인이라고 보아야 할까?

가설을 실행하며 목숨을 걸었다는 지킬의 고백은 실패를 되돌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며 그의 말대로 되고 말았다. 변신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실험실에 체경을 들여놓았다는 지킬. 체경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격 탄생을 지켜보고자 했던 오만함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마주하게 된 것은 양심이었는지도.

편집부의 작품소개에 실린 글을 보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극장용 영화가 123편이나 되고 연극과 뮤지컬, 티비나 라디오로 각색된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되어있다. 그만큼 많이 읽히고 많이 접해온 이야기다. 그저 재미로 읽기 시작했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이제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게 한다. 선과 악의 경계,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 할 수 밖에 없는 선악. 철학과 과학, 윤리와 호기심 사이의 불분명한 경계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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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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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김선영 (옮김) | 세움 (펴냄)

흔히들 결혼의 조건으로 사랑이냐 재산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사랑을 고르면 사랑이 밥먹여주냐하고 재산을 고르면 속물이라 그런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바르바라가 비코프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기보다 벗어날 수 없는 궁핍을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마카르가 바르바라에게 보여준 사랑은 조건이 없었다. 자신도 넉넉치 않은 형편임에도 오갈데 없는 먼 친척 고아 소녀 바르바라에게 보여준 사랑은 마치 아버지가 딸에게 해주는 듯한 보살핌과 가끔은 남성이 여성에게 보이는 사랑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마카르의 호의와 선의에 바르바라 역시 사랑으로 답하지만 그녀가 보내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기 보다는 후원자에게 보내는 깊은 감사로 보여진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이는 사랑이든, 남녀 사이에 보여지는 사랑이든 없어도 너무 없는 형편에 가불과 빚으로 이어가는 이들의 생활이 가엽고 측은하기보다는 궁상맞아보이기까지 한다. 자신을 후원함으로써 점점 더 쪼들리는 마카르를 지켜보아야하는 바르바라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설령 둘 사이의 마음이 가난과 나이차를 극복하는 이성간의 사랑이어서 둘의 결합으로 소설이 끝을 맺었다면 그것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마카르의 이웃에 살던 고르시코프 가족을 보면 돈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세속적인 결론에 이르기가 훨씬 더 쉬워보인다. 돈이 없어서 자식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아픈 가족을 의사에게 보이지 못하는 생활이 지속된다면 가족 간의 사랑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런지.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사랑과 행복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는 진리가 마카르를 떠나는 바르바라에게 마냥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위호식을 위해서 부귀영화를 위해서 선택한 결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에게 닥친 위기와 불행을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카르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안나 표도로브나와 같은 사람도 있다. 조카에게 재산상속을 하기 싫어서 하는 결혼이라며 빠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상인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비코프의 얘기에서 사람을 목적의 수단과 방법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생각을 알 수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는 얘기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그들에게 나눔은 더 깊은 궁핍으로만 몰고가니 말이다. 마카르는 방세를 내지 못해 집주인과 그 하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남의 조롱거리로 쉽게 입에 오르내리지만 반전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 아들을 잃고 재판에 승소하고도 끝내 죽음을 맞은 고르시코프, 포크롭스키 부자, 일에 치여 사는 테레자와 페도라, 쪽지를 들고 구걸을 다니는 어린 소년 등 모두 가난한 사람들로 이야기를 채우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희망을 볼 수가 없다. 물질 만능을 비판하면서도 동경하는 사회, 사람들.

부자를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가난을 꿈꾸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돈을 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안나 표도로브나와 비코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양귀자 님의 "모순"에서 안진진이 했던 선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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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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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MIDNIGHT세트]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 실격"은 그의 자서전이라 해도 될 만큼 그 자신을 무척이나 많이 닮았다. 화방에서 만난 연상의 미술 학도 호리키 마사오를 통해 술, 담배, 매춘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된다. 쾌락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주는 수단이었다는걸 보면 그의 또 다른 단편인 "기다리다"에서 사람이 무섭다고 한 것과도 연결된다. "인간 실격"에서 쓰네코와의 동반자살 시도 후 혼자만이 살아남은 사건은 작가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과도 일치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5번의 자살 시도가 매번 다른 여성을 동반했던 사실을 본다면 사람을 두려워했던 것만큼이나 사람에게 기대고 싶고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매번 여자였을까? 어려서 받지 못했던 어머니로부터의 사랑이 그리웠던 것일까? "인간 실격"에서 요조도 여성들에게서 특히 매춘부의 품속에서 안심하고 곤히 잠들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네도 이쯤에서 계집질은 그만하라고. 이 이상은 세상이 용서치 않을 거야."라는 호리키의 말에 "세상이란 게 당신 아닌가?"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남을 손가락질 하거나 지탄하고 싶을 때 '세상'의 이름을 빌어 쓰는 비겁자들과 그 앞에 당당하지 못한 소심자들이 겹쳐진다. 결국 세상이란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세상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힘이라도 되는 듯이 한 개인을 주저앉히려 들때마다 무기처럼 꺼내어진다.

"인간 실격"에서 주인공 요조의 소극성은 부끄러움과 소심함이기 보다 생의 미련이나 집착이 없는데서 오는 무성의나 자포자기로 느껴진다. 호리키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는 요조를 대하는 태도에도 요조는 적극적인 항변 대신 모른 척 속내를 감춘다.

읽는 내내 이상의 "날개"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내딛는 행보는 큰 차이를 보인다. "날개"에서 주인공은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에게 얹혀 사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다. 주인공에게 있어 '날개'의 의미는 새가 스스로의 날개짓으로 날아가듯이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인간 실격"의 요조는 진심이 아닌 광대짓으로 자신을 숨기며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약물 중독, 자살 미수, 부유한 집안의 원조로 해왔던 학업, 여러 여인들과의 동거 등 자신의 삶과 데칼코마니 같은 소설의 제목을 "인간 실격"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다자이 오사무는 거듭되는 자살 시도마저 실패하는 제 자신 스스로에게 낙제점을 주고 싶었나보다.

주어진 생을 살아갈 아무런 의지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실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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