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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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전집 당통의 죽음ㆍ보이체크 외

게오르크 뷔히너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개인적으로 희곡을 읽기가 쉽지 않다.

지문은 꼼꼼하게 읽으면서 대사를 하는 해당 인물은 쏙 빼고 읽는 실수 아닌 실수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페이지를 읽다보면 내용은 알면서도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럴때는 다시 읽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평균보다 못한 상상력이다. 인물들의 대사와 지문으로만 채워지는 희곡은 머리속으로 상황을 그려가며 읽어야 이해가 빠를텐데 상상력도 능력인지 내게는 부족한 능력이다. 그러면서 영화나 드라마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는게 스스로도 의문이지만.

아뭏든 그런 내가 <뷔히너 전집>을 통해 세 편의 희곡을 만났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몇 해전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리어왕과 멕베스에 이어 읽게 된 몇 안되는 희곡이다. 힘들거라는 예상과 달리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읽었다. 2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게오르크 뷔히너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았다.

<당통의 죽음>에서는 두 인물의 갈등이 보여진다.

함께 혁명을 시작했으나 공포로 미덕을 실행해야 한다는 로베스피에르와 이러한 과격함에 혁명의 모순을 깨닫고 자포자기적 향락에 빠진 당통의 길등을 보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의 정치 초기가 오버랩 되었다면 너무 멀리 간걸까?

타인을 단두대의 제물로 삼은 자와 스스로 단두대에 선 자. 최고 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자와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었던 김구 선생.

일제의 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후 이념을 달리하며 남과 북으로 갈라섰다. 분단된 조국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것은 정치가라는 어느 애국지사의 말이 떠올랐다. 처음 마음먹었던 혁명의 의미는 퇴색하고 권력에 눈이 멀어 동지를 배신하고 밀고와 숙청이 이어지는 역사도 어쩜 그리 닮았는지.

<보이체크>에서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이 겹쳐졌다. 월급만으로는 부족해 맞벌이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많은 가정들, 기러기아빠가 되어 외조하던 날에 비수처럼 날아든 배신은 뉴스에서도 보고 듣게되는 드물지 않은 이야기다. 보이체크의 살인이 백퍼센트 마리의 배신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누적되어 온 삶의 고단함이 그의 정신을 병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마리의 죽음을 대하는 주변의 시선도 호기심 뿐이다. 남의 일은 가십일 뿐인 현실과 닮아 이 역시도 씁쓸했다.

세 편의 희곡과 더불어 세 편의 단편도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단편은 <렌츠>다.

깊은 외로움, 우울증, 대인기피 등 마음의 병이 깊어 보였다. 298p."아무 소리 안 들리세요? 저기 지평선 곳곳에서 외쳐 대는 저 끔찍한 소리? 사람들이 보통 정적이라고 부르는 소리인데... " 이 대목에선 렌츠가 그저 한없이 가여웠다. 어쩌면 렌츠를 통해 게오르크 뷔히너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을 공부했지만 정치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그의 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희곡이 어려워 도전하지 못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명작을 읽어보고 싶다면 자신있게 <뷔히너 전집>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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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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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지음) | 이봉지(옮김) | 열린책들 (펴냄)

나는 두 가지 중에서 뭐가 더 불행한 건지 모르겠어요. (중략)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당한 모든 끔찍한 일들을 다 당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렇게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걸까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191페이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을 두고 흔히들 '낙천적이다, 긍정적이다'라고 한다. 부정적인 시각과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보다는 긍적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타인의 평가와 호감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련과 불운에 그런 마인드를 꾸준히 유지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노를 모르는 예스맨의 긍정적인 면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지 않은 요즘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를 긍정적인 마인드와 낙관적인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마인드와 철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일까, 주변의 환경일까?

흔히들 가난한 사람들은 순박하고 이웃간에 서로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도 알 정도로 사이좋으며 가족간의 정도 끈끈하리라 여긴다. 반대로 부자들은 심술맞고 이른바 싸가지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다. 하지만 오히려 세상의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그들은 상대적으로 더럽고 치사한 꼴을 당해본 일이 없어 사람들의 어두운 인간성을 잘 몰라 순수한 면이 있다고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를 했던 당사자도 재벌들 틈에 섞여 함께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남들과 같은 선입견을 가졌었노라는 고백도 함께였다. 환경과 인간성은 상호 긴밀한 관계임이 틀림없다.

캉디드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현재의 모든 것은 신의 뜻 안에서 최선의 상태라는 믿음을 가졌다. 자라온 곳에서 쫒겨나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불운에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더 한 불운을 겪은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위로는 되겠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낙관적인 태도와 철학은 인생을 살아가며 필요한 요소이지만 캉디드의 낙관적인 생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한 낙관주의로 보여지지 않는다. 진정한 낙관주의라면 처해진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고 도약을 꿈꿔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캉디드의 낙관주의는 타인의 더 큰 불행과 견주어 다행이라 여기고 상황으로 부터 도피하는데 그친다.

세상은 최선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팡글로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며 여러차례 속고 사기당하며 살인도 하게되는 캉디드.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퀴네공드와 마침내 결혼하게 되고 함께하게 되었으니 꿈은 이루어졌다고 낙관적으로 봐야할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부양가족이다.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않고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마르틴만이 불행을 토로하지 않고 현실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낙관주의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음담패설에 기대어 익살과 풍자로 가볍게 낙관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캉디드의 삶을 통해 던지는 볼테르의 질문은 전혀 가볍지 않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이라 믿는 것이 진정한 낙관주의일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말하는 강연과 자기계발서가 늘어나는 추세인 요즘, 무조건적인 트렌드를 쫒아가기 보다 스스로의 인생철학을 되짚어보고 세우는 계기를 가져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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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열린책들 세계문학 246
케이트 쇼팽 지음, 한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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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케이트 쇼팽 (지음) | 한애경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지난 세월이 꿈만 같아요. 계속 자면서 꿈을 꾼 것 같아요.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죠. 아, 그래요! 평생 망상에 사로잡혀 바보처럼 사느니 고통스럽더라도 결국 깨어나는 게 낫겠죠.

-각성 본문 234페이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알약 두 개를 보이며 선택을 요구한다. 하나는 진실을 알게 되는 약이고, 하나는 영원히 진실을 모른채 꿈을 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게 되는 약이다. 꿈보다 현실이 더 아프고 참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과연 어느 선택을 하게 될까.

부유한 상류층의 아내로 살아가는 에드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주변에 그 넉넉함을 나눌 수 있을 만큼의 풍요가 있다. 하지만 에드나 자신 역시도 남편에게는 자랑거리로 여길만한 소유물 중 하나일 뿐이고 관습에 따르는 현모양처로 사는게 당연한 여성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본 적 없던 그녀가 그토록 어려워 하던 수영 배우기를 성공하고 느끼는 성취감은 로베르에 대한 사랑을 깨달음과 함께 자신의 내면도 깨닫는 계기가 된다. 말하자면 각성 전의 삶은 꿈이고, 자신의 내면을 깨닫고 난 후의 삶은 고통이란 얘기다.

현모양처로서의 완벽함을 살아가는 라티놀 부인과 자기주장이 강한 라이즈 양과 가깝게 지내지만 에드나는 이 두 여성의 삶을 동경하지도 닮으려 하지도 않는다. 닮아가려 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진정한 의미의 각성은 아닐테다.

에드나는 늦은 밤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림을 그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감행하는 등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사랑하지만 사회적인 관습을 깰 수 없는 로베르와의 사랑도, 자유분방한 연애주의자인 아로뱅과의 만남도 에드나가 느끼는 고독감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인가? 남편 퐁텔리에의 보호와 체면, 경제적인 풍요로 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던 그녀지만 로베르와의 사랑이 설령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울타리만 바뀌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적한 해변가에서 꿈꾸듯 들었던 로베르의 노래 <Ah! si tu savais (아! 그대가 알고 있다면)!>은 로베르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 안에서도 에드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를 추억하게 한다. 햇볕의 나른한 따뜻함과 잠시 누려본 해방의 행복감이 그 사랑을 더 증폭시켰음에 틀림없다.

남성 작가의 시각에서 쓰여진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리>와는 달리 <각성>에서는 에드나의 사랑을 불륜이라 지탄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에 사랑이 가미된 정도랄까.

전통과 편견이라는 평원 위로 날아오르려는 새는 강한 날개를 가져야 해요. 약한 새들이 상처 입고 지쳐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지상으로 낙하하는 모습은 서글픈 광경이에요.

-각성 본문 174페이지

결국 에드나의 날개는 너무 약했던 걸까. 해변에서 멀리 헤엄쳐 나아가며 그녀가 멀어지고 싶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남편? 관습? 로베르? 어쩌면 닿을 수 없는 그녀 자신이었을지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에드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계속되는 꿈이려나, 고통스럽더라도 깨어나길 원하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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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4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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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 연진희 (옮김) | 민음사 (펴냄)

대한민국의 중2 학생들이 두려워 북한에서 제 2의 남침을 하지 않는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리고 사춘기라는 엄연한 정식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2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십대 중반의 아이들과 그 부모 세대간의 갈등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X세대로 시작된 신세대의 대표 명사는 여러 이름을 거치면서 요즘은 MZ세대라 불리운다.

세대 차이, 세대 갈등은 남의 얘기, 먼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내 아이가 중2가 되면서 시작된 감정의 골은 별거 아닌 일로도 아슬아슬 줄타는 하루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세대 갈등은 우리에게만 있는 일도 아니고 사춘기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만 한정된 일도 아니다. 직장에서 업무적인 관계와 업무의 연장이라고들 하는 회식 자리에서도 세대 갈등을 토로하는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한숨섞인 얘기가 자주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자식에서도 이런 세대 갈등이 그려진다. 아르카지의 큰 아버지인 파헬과 아르카지의 친구이자 정신적인 스승이라 불리우는 바자로프의 팽팽한 신경전을 통해 그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귀족에 대한 반감, 낭만과 사랑에 대한 비아냥, 농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그들을 조롱하는 바자로프는 니힐리스트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낭만에 젖어있는 사람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오진초바에게 금새 빠져버린 사랑과 페네치카의 아들 미챠를 치료해 주고 진료비로 붉은 장미 한 송이만을 바랐던 일, 무분별한 키스의 대가로 치뤄야 했던 파헬과의 결투에서 상처입은 파헬을 치료해 준 일 등이 그러하다. 늘 누군가를 비판하고 조롱하던 바자로프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농노들의 조롱거리였음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단정적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비아냥거릴 수 있었을까?

니힐리즘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허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철학적 견해라고 한다. 바자로프는 입으로만 니힐리즘을 따랐을 뿐 행동은 그러하질 못했다. 그에게 허무했던 것은 죽음 뿐이었던 듯하다. 이토록 허무한 죽음이라니...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만나보길 소원한 행동은 끝까지 니힐리스트답지 않다. 사랑을 고백하며 죽어가는 허무주의자라니, 오히려 낭만주의자에 가깝지 않은가! 이런 괴리가 아르카지로 하여금 조금씩 바자로프에게서 멀어지도록 하지 않았는가 싶다. 자신보다 어린 페네치카를 아버지의 새 아내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아르카지의 모습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고 포용하는 화합을 말하는 듯하다.

글쎄요, 아빠.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느냐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아버지와 자식 23페이지

도입부에서 무심코 넘겼던 아르카지의 대사가 완독 후에야 의미있게 들린다. 훗날 자신과 아버지의 결혼이 동시에 치뤄지는 것 또한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화합과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파헬과 바자로프의 대결 구도로 그려지는 세대 갈등도 흥미롭지만 바자로프 개인 안에서 벌어지는 낭만과 허무의 대립도 <아버지와 자식>을 완독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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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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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 (지음) | 조영실 (옮김) | 민음사 (펴냄)

기억은 허구다. 우리는 부끄러운 부분은 잊어버리고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만 선택하여 인생이라는 융단에 수를 놓는다.

-세피아빛 초상 본문 430페이지

출생의 비밀을 안은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다.

뻔히 보이는 비밀을 당사자만 몰라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 꽉 막힌 고구마를 안기기도 하지만 사이다같은 결말을 보여주리라는 희망을 비치기에 일희일비하는 그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결말까지 함께하게 된다. 막장 스토리라며 입방아를 찧어대지만 막장의 기본인 사랑과 배신,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은 드라마에서 보다 고전문학에서 더 자주 등장하는 오래된 소재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세피아빛 초상>은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가 빛 좋은 게살구마냥 실속없었던 베스트셀러들과는 달리 별기대없이 시작한 <세피아빛 초상>은 작가 이사벨 아옌데에 대해 검색하고 싶어질 만큼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운명의 딸>과 <영혼의 집>과 더불어 아옌데 3부작이라 불리우는 <세피아빛 초상>. 검색해보니 아옌데 3부작에 대한 극찬이 쏟아진다. 출간 순서로는 맨 마지막이지만 줄거리의 시간상 흐름으로 본다면 두번째라고 한다. 작년에 코맥 매카시의 <국경을 넘어>를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국경 4부작처럼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을 읽고 난 뒤엔 나머지 두권 <운명의 딸>과 <영혼의 집>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이 더해졌다.

<세피아빛 초상>에는 여러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자와 가난한 사람은 아는 게 없어야 고분고분하다 생각되어지던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 글을 배우지 못했던 파울리나는 사업적인 면은 타고났다고 할 정도로 앞을 내다보는 시야가 탁월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모하리만치의 용기와 강단을 보인 엘리사도 당대의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타오 치엔과 엘리사의 딸 린 소머즈도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어머니 엘리사 만큼의 현명함은 없었다.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며 신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니베아는 앞선 세 여성보다는 한 발 나아간 모습이지만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은 가정이라는 한계를 가졌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사라진 아우로라 델 바예는 피네다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이전의 여성들과는 다른 진취적인 지식인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우로라 주변에서 그녀의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나 선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순간에는 남성들이 있었다. 부모없이 자라게 된 아우로라에게 자신의 성을 준 세베로,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원인 모를 악몽이 계속되었던 이유의 중심 외할아버지 타오 치엔, 결혼이 아니어도 사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진정한 사랑 이반 라도빅과 사진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또 다른 나를 알게 해 준 스승 리베로 그리고 새할아버지 윌리엄스는 타오 치엔이 살아있었다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을 현명한 판단과 심정적 지원을 해주었다.

잃어버린 기억과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만난 아우로라는 변화하는 시대만큼 달라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왠지 아우로라는 그럴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사진과 글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 감춰지고 왜곡된 진실을 물리친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세피아빛 초상> 한 권으로도 좋았지만 아옌데 3부작을 모두 읽으면 더 완전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생의 비밀이 이토록 진부하지 않을 수 있다니, 박경리 <토지>의 칠레판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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