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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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 김도연 (옮김) | 1984books (펴냄)

자유와 사랑, 가벼운 마음을 향한 여정

-<가벼운 마음> 뒤표지글 중에서

프랑스 영화를 볼 때는 뒷 배경으로 잡히는 책장의 디테일까지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는 어느 영화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머물거나 지나는 장소의 한 컷 배경일 뿐이지만 책장에 꽂힌 책들을 어떻게 꽂아 놓아야 가장 아름다운 화면으로 보여질지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 무척 심혈을 기울여, 스크린 속 배경이 되는 장면이 말그대로 '영화의 한장면'처럼 아름답다는 얘기였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을 읽으며 오래전에 들었던 영화평론가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 데에는 주인공 뤼시의 인생을 스쳐간 이들에게서 그런 디테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사랑이었던 늑대를 묻고 그 무덤을 찾았다가 만난 간호사 아줌마가 들려준 우울증에 관한 설명은 전혀 우울하지 않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p20. 우울증은 월식 같은 거야. 달이 마음 앞에 슬며시 끼어드는 거야. 그러면 마음은 자신의 빛을 더는 내지 못해. 낮이 밤이 되는 거란다." 이름마저도 시인스러운 시인, 보뱅. 소설에서도 시적 표현이 넘쳐난다. "p80. 내 마음은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가 된다." 하...이런 표현이라니! 마음이 젖어든다.

가벼운 마음을 가진 주인공 뤼시. 뤼시의 가벼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벼움과는 다르다. 너무 작고 사소해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행복과 일상들을 가볍다고 말하고, 어디에나 있는 그 가벼움을 우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챶기 힘든 이유는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술 부족이 그 이유라고 말한다.

사랑은 다른 어디에도 아닌 사소한 것들에 깃들어 있다는 것과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뤼시는 성장해 나간다.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가고, 한 사람이 사라졌으니 다른 사람도 사라지는게 옳다는 뤼시의 만남과 이별들. 구속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며 그녀가 하는 사랑도 헤어짐도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정신병원에 수용될 요양원의 할머니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도 의미심장하다. 뤼시가 가출을 시작했던 곳, 서커스단으로 향하는 여행. 맨처음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행보는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은 탕아의 후회가 아니라 진짜 자유와 진짜 가벼움을 가진 자의 여유와 선택이지 않을까.

"웃음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눈물이다"라는 본문의 한 줄을 보니,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은 뤼시의 어머니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뤼시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직감을 수호천사라 불렀다. 그 수호천사가 엄마에겐 없었던 것일까? 깨어나자마자 좋은 날씨와 죽음을 기다리는 노부인은 뤼시를 향해 '나의 천사'라 부른다. 정신은 잃어가는지 몰라도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아는 그녀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지도.

소설 속의 디테일과 심쿵하는 표현들이 이 <가벼운 마음> 한 권으로 크리스티앙 보뱅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보뱅의 다른 작품들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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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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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 이창실 (옮김) | 1984books (펴냄)

시인 피천득 님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표현하셨다.

인생을 여행이나 마라톤에 비유하는 것은 비교적 익숙하지만 음악과 인생을 나란히 두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악보 위의 음표와 부호들이 잘 어우러져야 하모니가 되듯이 하나하나의 인생도 다른 인생들과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돌아가는 화음이 중요한 길고 긴 음악임에 틀림없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체제가 만들어낸 인간의 종.

꿈을 가진 한 청년의 미래가 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원치않는 휩쓸림을 당해 그 꿈과 젊음이 사라지는 피를 토하는 심경의 아픔은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살기 위해 밀고하고 출세를 위해 거짓도 만들어 내는 인간의 본능과 야욕. 정치가 무언지도 모르고, 체제와 이념이 무언지도 모른채 한줌의 쌀을 배급받기 위해 나갔던 부역이 이유가 되어 빨갱이로 몰리고 한맺힌 죽음을 당해야 했던 나이 어린 가장들과 여성들, 전쟁 고아들의 억울함이 우리에게도 그리 멀지 않은 역사의 한 켠에 있다. 죽은 자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베르그의 사연을 이해하고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는 이유이다.

여우를 피하러 들어간 굴에서 호랑이를 만난다고 했던가. 어디인지 모를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를 피해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베르그가 맞닥뜨리게 된 현장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죽음이 넘쳐나는 전쟁터였다.

살아남기 위해 했던 선택에 나를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꿈에서조차 철저하게 나를 부정하며 살아야 하는 불안과 거짓된 삶은 과연 살아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억눌러온 피아니스트의 꿈을 살짝 건드려 볼 기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척 연기를 해야 했고,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음에도 자신을 보호해왔던 가짜 신분이 오히려 벽이 되고 말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산산이 조각난 과거를 헤치고 그간의 불행과 공포를 잊은 베르그는 자신으로 돌아갔다.

이쪽도 저쪽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베르그의 삶은 죽은 군인의 옷을 입던 그 순간에 정지해 있었다.

'전쟁 전에는-'. 세르게이 말체프로 살아가던 알렉세이 베르그는 전쟁 전을 생각하며 베르그로의 귀환을 결심했는지 모른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겨보며 '그때'를 돌아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각자의 그때가 모두 다를 뿐.

지금도 이유와 이름을 달리한채 여러 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과 각자의 삶이라는 치열한 전쟁이. 수용소에서 십년을 보냈지만 베르그로 살 수 있었기에 어쩌면 노년의 베르그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젊음과 함께 꿈도 멀리 가버렸지만 불안과 거짓의 삶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

130페이지의 얇은 소설이 1300페이지 만큼의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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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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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 장용운 (옮김) | 고딕서가 (펴냄)

죄가 있는 곳에 평화가 스밀 수 없다.

-<숲속의 로맨스> 본문 382페이지

출생의 비밀은 많은 시청자들의 저녁시간을 책임지는 드라마의 주요 소재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출생의 비밀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흐르기도 하지만 여러 복잡한 사건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이 해결의 물꼬를 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들의 인생은 불행의 연속을 맞으며 지켜보는 이들의 한숨과 연민을 자아내며 공감을 일으킨다. '어떻게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싶지만 현실의 막장은 오히려 소설과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라고 하지 않은가.

고전문학의 한 장르인 고딕스릴러는 고전소설다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숲속의 로맨스>에서는 비운의 여주인공 아들린이 여러 불행과 음모를 이겨내고 마침내 행복에 이르는 결말을 맞는다. 시대적 상황에 맞게 기사도 정신을 가진 정의로운 남성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권선징악의 교훈도 남긴다. 여러 고전문학을 읽으며 매번 상황에 맞는 우리의 속담이 한두개씩 연상되곤 하는데 <숲속의 로맨스>에서는 "뿌린대로 거둔다", "99섬 가진 놈이 1섬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100섬을 채우려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등의 많은 속담과 격언들이 떠올랐다.

죄를 짓고도 반성은 커녕 법의 심판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선택한 라 모트가 몽탈 후작과 아들린을 상대로 늘어놓는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고, 몽탈 후작 역시 악행을 덮기 위해 더 큰 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에 귀를 닫지 않았던 라 모트는 몽탈 후작과는 다른 결말을 맞는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는 버려지다시피한 아들린에게 정신 차릴새 없이 몰아닥치는 불행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줄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수녀가 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아들린을 제물삼는 라 모트, 아들린을 향한 욕망이 살의로 돌변한 몽탈 후작에 이르기까지 <숲속의 로맨스>라는 제목과 달리 숲속에 고립된 아들린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운명처럼 아니, 운명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라 퀴크 가족과의 우연한 만남과 테오도르의 헌신과 사랑에 더불어 아들린조차도 몰랐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혈혈단신 고아인줄만 알았던 아들린에게도 친척들이 나타나게 되고 친부의 복수도 이룬다.

숲속의 외딴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비밀은 아들린에게는 불행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해준 장소이다. 수도원에 묻혀있던 비밀은 마치 아들린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계속되는 우연은 운명이라고들 한다. "죄가 있는 곳에 평화가 스밀 수 없다"는 본문 속 한 문장은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무겁게 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비밀로 묻으려 했던 악행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스릴러 속 로맨스가 더 낭만적으로 다가왔던 <숲속의 로맨스>. 해피엔딩이어서 그 결말이 더 아름답다. 고전문학이 주는 단순하지만 명쾌하고도 순수한 결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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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박한선.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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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 김병화 (옮김) | RHK (펴냄)

올해 여름 휴가엔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코로나19로 일상이 자유롭지 않은 후로 몇 년만의 장거리 외출이었다. 아이가 소원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광고로만 보던 서빙하는 로봇을 보고 아이도 나도 신기했다. 서빙 로봇 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은 조그만 상점에서도 키오스크가 보편화되어, 편리함과 노동현장에서 인간의 입지가 좁아지는 불안감을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인간은 편리와 효율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그 시작은 깨진 돌조각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누군가의 직업이 위협받는 현실에 이르렀다.

수렵과 채집,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고대인들이 농업으로 인한 정착으로 빈부가 생기고 계급이 생겼다. 풍요를 가져다 줄 것 같았던 농업의 시작은 고된 노동의 시작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면 부를 가져다 주리란 희망은 시대가 변하고 발전할수록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질뿐 경제력이 주는 계급의 위치는 요지부동이다. 많은 이들이 땀흘리는 노동보다 도박, 한탕주의, 로또당첨의 꿈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만이 굶주림의 변수이던 옛날과 달리 경제대공황, 불경기, 전쟁등으로 불황이 길어지는 요즘은 "일"이 주는 의미가 깊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노년의 문제와 노동 현장의 성차별과 학력의 차별 등 산업화를 지나오며 겪은 문제들은 모습을 달리하며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하는 팔방미인이 인정받던 시대에서 분업화에 따른 전문화로 전문가가 대접받던 시대가 통합과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모든 것을 잘해야 인재가 되는 시대가 왔다. 시대마다 그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도 변화하는 것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노동이라는 형태로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돈을 번다. 필요한 노동력을 자식을 많이 낳는 것으로 대체하던 농업의 시대는 생산보다 소비가 더 컸던 함정에 빠져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되었다. 돈이 돈을 버는 계급과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계급, 일의 역사는 계급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노동이 되고, 그 노동이 누군가에게는 여가, 휴식, 놀이, 취미가 된다.

일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시간의 의미도 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었다.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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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작은 아씨들 1~2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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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만화영화로 보았던 <작은 아씨들>.

마치 가의 네 자매는 물론이거니와 그녀들의 부모님, 옆집의 노신사 로런스 씨와 손자 로리, 가족이 된 존과 바에르 교수, 그리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해나까지. 모든 등장인물들이 너무 바람직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었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흡사하다.

출산 후 쌍둥이 양육에 지친 메그와 존의 갈등은 많은 부부들이 지금도 겪는 문제이고,에이미가 사랑과 돈을 두고 갈등하는 문제는 '이수일과 심순애' 보다 오래된 얘기다.

베스처럼 병약한 자식을 먼저 보내기도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규도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시몬 드 보부아르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작은 아씨들>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언급했다고 하니 근대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작은 아씨들>을 통해 위로받고 성장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오래전 기억에 자리잡은 <작은 아씨들>을 소환했던 이번 독서는 만족을 넘어서는 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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