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rain or come shine'이라는 노래제목처럼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도무지 더위가 가시지 않는 작은 방에서 인간다운 삶을 생각하는 일이 쉬울까요, 혹은 습도도 온도도 모두 적당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 실크 잠옷을 입고 한 손에는 온더락 잔을 들고 야경을 내려다보며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더 쉬울까요?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지만 짧은 생각으로는 전자는 그럴 여유가, 후자는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는 누가 생각하는 걸까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폴 발레리는 말했다던데.

물론 억울하지 않은 것도 아니에요.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데,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고?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울었다. 왜 사랑하는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배수아가 말했듯이. 왜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노력이 필요한가, 라고. 우리는 분명 사람이고 또 살아가는데. 왠지 소주를 마시면서 울어야 할 것 같은 탄식이지만.

책상 앞에 놓인 책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 어쨌거나,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배는 출발합니다. (단, 밀린 업무 때문에는 출발하지 못할 수도… 오늘의 배경음악은 촌스럽고 경박하지만 그럼에도 심금을 울리는 depeche mode의 'people are people' 정도?)


* 21세기에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쑥과 마늘, 아니 책들

"가치들의 하찮음이 압도적으로 중시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여기에서 어떻게 가치들의 진지함을 사유할 것인가? 일회적인 이미지들의 정서적.지적 영향이 두드러지는 변동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어떻게 교육에 대한 중심 물음의 자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21세기는 이상한 모순에 붙들리게 될 수도 있다. 일회적인 것이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을 위한 평생교육을 더 이상 단순한 하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의 실제적 기획으로 만들 지식 사회의 출현은 진지하면서도 유희적이고 젊은 장기적 가치들을 위한 새로운 도구의 비약적 발전을 예시해주는 것 같다."

유네스코, '21세기의 대화',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폴 리쾨르, 제레미 리프킨, 줄리아 크리스테바에드워드 윌슨, 나딘 고디머… 이토록 거창한 이름들을 담고 있는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적인 가치'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치는 결국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조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오늘을 만든 어제, 오늘이 만들 내일을 함께 사유합니다.

위의 이름들에서도 알 수 있듯 유네스코가 마련한 '21세기의 대화' 토론을 통해 발표된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교육 등 전방위에 걸친 석학들의 글은 윤리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고 영위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윤리는 무기한 연기되는 미래에서의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윤리, 그래서 나중에도 여전히 지금과 여기가 있도록 하기 위한 윤리이다." 어때요, 동의 하시나요?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 역시 <폭력의 시대>를 통해 '역사의 종언론'이 '종언'된 21세기를 조망합니다. <Globalisation, Democracy and Terrorism>이라는 원제에서 보여지듯이 그것은 '세계화, 민주주의 그리고 테러리즘'입니다. <폭력의 시대>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시대' 시리즈에 맞춘 티는 나지만) 그리 억지스럽지 않은 것이지요.

21세기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포괄적인 문제, 세계 제국들의 과거와 미래, 민족주의의 성격과 변화, 자유 민주주의의 앞날, 정치적 폭력과 테러의 문제의 다섯 개의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는 책은 다양한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원고를 모은 것으로 무겁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노학자의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제국의 종언'을 말하는 그는, 미국의 명분 없는 제국주의, 시장자유주의의 다름 이름일 뿐인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주의와 서방적 가치, 그리고 인권은 예컨대 기술의 도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 자전거든, 인명을 살상하는 AK47 소총이든,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공항 같은 기술적인 서비스든, 기술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오며 그것을 사용할 줄 알거나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똑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만약 제도나 가치가 기술처럼 받아들이기 쉽다면 (이론상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유사한 민주 헌법 아래 살아가면서 정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비슷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에서는 지름길이 없다. 이것은 저자가 특히 지난 세기 대부분을 살아 내는 동안 반추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극단의 세기'를 살아낸 노학자의 통찰이, 어쩐지 쓸쓸하기만 합니다.

이번에는 경제 분야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책소개를 빌려 올게요.

"'경제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이 전 세계를 돌며 각종 강연과 워크숍 등지에서 발표했던 글들 중 기아와 빈곤의 극복 문제 그리고 인간의 안전보장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모아서 엮은 센 경제 사상의 기본서이다."

흔히들 경제학이라고 하면 숫자로 이루어진 비인간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만 (저만 그런가요?) 그의 이름을 따 '센코노믹스'라고 불리우는 아마티아 센의 경제학은 조금 다릅니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아마티아 센, 기아와 빈곤의 극복, 인간의 안전보장을 이야기하다"라는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요.

굳이 먼 나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석훈 교수가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상세히 이야기하듯. 허울뿐인 경제대국, 그러나 내부로는 양극화와 무한경쟁으로 피폐해져 가는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왠지 어려울 것 같다고요? 걱정마세요. 저자가 각종 강연을 통해 발표한 원고들을 모은 책이니까요. 세계 어느 곳에도 이와 같은 형태로 묶인 적 없는, 센코노믹스 입문서.

그리고 지금, 바로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오늘을 담은 뜨거운 책(so hot!)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아고라 폐인들(!?)이 엮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가 그것.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그동안 답답한 시국 속에서 함께 분노하며, 함께 마음 졸이며, (재기 발랄한 촌철살인의 비평에) 함께 웃었던 바로 그곳, 아고라 토론방의 생생한 현장을 책으로 담았다는, 그 말 한마디 밖에는… 더 필요할까요?

그럼에도 굳이 덧붙이자면, 참 잘만들었다는 것. 정말로 수고하셨다는 것. 앞으로도 더많은 수고를 부탁드린다는 것. 책 표지에 써있는 이야기로 끝을 맺겠습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 - MBC 100분 토론,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 - 아고라 네티즌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법, 이런 게 아닐까요? (이런 국민들을 어떻게 바꾸겠어요?)


* 그리고…

하수상한 이 세월을 사람답게 살아내는 또 하나의 방법, 바로 놀이!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이 시국에 애들도 아니고 놀이는 무슨 놀이냐 할 일 없으면 영어 단어를 한 글자 더 외우던지 책이나 한 권 더 팔던지 이도저도 아니면 여자 친구한테나 잘해줘라 하시지 말고 한 번 읽어 보세요.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 씨는 이 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모든 천재 예술가들은 놀이를 통해 눈부신 영감의 샘으로 인도되었다. 놀이에는 두려움과 구속이 없다.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놀이는 다만 영혼의 맨살을 드러낼 뿐이다. 이 책은 우리의 어깨에 태양의 빛나는 권위에 도전했던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아준다. 나는 이 책을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와 바꾸지 않겠다."

결국, 상상력이 모두를 구원하겠죠?

어제 밤에는 한 시간 만에 얕은 잠에서 깨어나 뒤척뒤척 거리다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성경을 폈어요. 신자는 아니지만 어디선가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그것이 '맛나'인지 '만나'인지가 궁금해 편 것은 '출애굽기'.

배고픈 아이처럼 투정부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주시며, "하루에 자신이 먹을 만큼만 취하라, 내일 것을 남겨두지 말라"고 이르시지요. 내가 너희의 내일까지 걱정해 주니 나를 믿어라,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사람들은 '만나'를 챙겨요. 내일 굶으면 어떡하지, 하는 간난한 마음으로. 결국 그렇게 챙긴 '만나'는 다음 날이면 상해 먹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뿐이지만요.

저는 글쎄요, 나의 내일까지 앞서 걱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 눈물나듯이 고맙겠지만, 꼭 하나님의 '만나'가 아니더라도 내일이면 우리는 멋진 이웃을 만날 수도, 열매 가득한 나무를 만날 수도, 물고기 가득한 호수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 또한 신이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얘기는 하지 말고요) 걷는 걸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에요.

힘들어도 계속 걸어가는 것, 닿을 곳이 어딘지 몰라도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 결국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쓸데 없는 얘기가 길었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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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08-07-2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생각나는 것. 천일야화를 넷상으로 읽으면서 따놓은 구절.
"나는 나를 위해 세 번 기도를 올려 달라. 첫째는 내가 곤궁을 싫어하지 않게 될 것, 둘째 밤에는 내일의 양식을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지 않도록 할 것, 셋째 특별한 신의 배려로 인자하신 신의 얼굴을 배알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활자유랑자 2008-07-2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구절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http://blog.aladdin.co.kr/725667123/937489 예전에, 일하면서 보게 된 리뷰인데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행복하세요.
 

한복판으로 전차가 지나고, 축음기 소리통에서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멜로디가 울리던 그곳, 경성. 포마드 기름을 발라 넘긴 양복의 모던 보이와 에나멜 구두를 또각 거리며 다가오던 모던 걸 사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대륙경영의 꿈을 안고 조선을 정탐, 훗날 조선침략 시나리오의 바탕이 된 혼마 규스케의 수첩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요? 유교 중심의 문화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왕비의 역사로 조선사를 다시 쓴다면 어떨까요?

흥미로운 역사서들이 눈에 띄는 이번 주 만선, 출발 합니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경성,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최근 몇 년간 새롭게 조명 되고 있는 경성을 다룬 또 하나의 역사서가 출간 되었습니다. 이번에 포착한 것은 '연애'. 그 시절의 연애라고 하면 이광수의 <무정>이나 번안 소설 <이수일과 심순애> 정도가 떠오르시나요? 무슨 말씀. '모던'에 살고 '모던'에 죽던 그들의 화려한 스캔들을 공개합니다.

자살로 마무리 되고 만 비극적 연애 사건,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 윤리를 뒤엎고 당당하게 사랑을 외치던 신여성들의 낭만적 연애 사건, 여자를 사랑한 여자의 (당시로선) 충격적 연애 사건과 경성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혁명적 연애 사건까지… 각양각색의 흥미로운 연애 사건들을 담고 있는 책은, 그러나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주의에 그치지 않고 당시 경성의 공기를 충실하게 그려냅니다.

"당신은 왜 죽었나이까? 나만을 두고 죽는다면? 왜! 혼자 죽었나이까? 나를 두고. 나도 당신의 뒤를 따라가렵니다. 깨끗하게 죽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나 당신이 이미 한강을 택했으니 나도 당신이 죽은 한강을 취하려 합니다. 곱게 잠든 당신의 깨끗한 영靈은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나를 원망치 말고, 나를 기다려 주소서……."  -<애상의 한강파에 청년 의사 노병운 씨 투신>, 동아일보 1933년 9월 29일자


* "조선의 시국이 정말로 급박하다",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조선잡기>

개항 이후 공사관과 영사관이 설치되고, '대륙경영'이라는 큰 꿈을 안고 조선 반도를 밟은 일본의 낭인들. 그 낭인들에게 조선이란 그야말로 '기회의 땅' 이었을지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 조선은 그들의 큰 뜻을 위해 시급히 분석되고 파악되어야 할 공간에 다름 아니었지요.

혼마 규스케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로, 1893년에 처음 내한한 후 부산에 머물며 경성, 중부지방을 정탐하고 행상을 하며 황해도와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정탐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 후 도쿄에 돌아가 '이륙신보'에 조선 정탐내용을 연재하고, 154편의 글을 한 권으로 묶어 7월 1일 간행했으니 그 책이 바로 이 책, <조선잡기>인 것이지요.

근대 일본인의 시선으로 조선의 문화와 문물 풍속을 접하면서 느꼈던 여러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 책에서 드러나는 조선의 주된 이미지는 '순진함', '무사태평', '불결', '나태', '부패' 등입니다. (<이 영화를 보라>에서 근대를 '위생권력'의 문제로 다루었던 것이 떠오르네요)

'아름다운 동방의 아침의 나라' 일색인 서양인의 여행기와는 달리 조선 말기의 풍습과 일상생활을 민중들의 모습을 통해 세밀하게 다루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입니다. 불편한 서술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피식 웃음이 터져나오는 풍경도, 이런 소소한 것들이 어찌 정탐의 내용이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모습들도 가득한, 색다른 기록입니다. (그 포복절도 할 본문을 맛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를 펼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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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기인기사>

물재勿齋 송순기宋淳夔가 현토식懸吐式 한문으로 편찬한 '신문연재구활자본야담집新聞連載舊活字本野談集'인 <기인기사록>을 번역하고 저자 나름대로 매만져 놓았다는 이 책 <기인기사>의 정체는, 제목 그대로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야담집. 다시 말해,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말씀.

이 책의 원본이 되는 <기인기사록>의 하권이 일제 시대 금서였고, 그리하여 이 야담집이 우리 야담사에서 얼마만큼의 중요한 위치에 놓이는 지를 굳이 알아야 할 이유는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자체로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옛사람들의 삶을 엿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니까요.

(원문의 기기묘묘함이야 읽을 능력이 없으니 알 바 없지만, 그것을 풀어 우리에게 들려주는 '풀어 엮은이'의 뒤지지 않는 '말빨'이 궁금하시다면 아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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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의 사정 <여왕의 시대>, <조선 왕비 오백년사>

제목에서 느껴지듯 모두 여왕 혹은 왕비라는 정치 권력의 최정점에 존재했던 여성들을 통해 역사에 접근하는 두 권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역사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사정.

<여왕의 시대>는 클레오파트라에서 서태후와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한 여왕들의 모습을, <조선왕비 오백년사>는 유교적 여성관 아래에서 배제되었고 때론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었던 왕비들의 역사를 그립니다. 특히 후자의 작업이 더 흥미롭네요.

* 그 남자의 사정 <문학청년의 탄생>, <부랑청년 전성시대>

'청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근대의 풍경을 그려내는 문학평론가 소영현 씨의 책 두 권도 함께 출간 되었어요. 격변하는 소용돌이 속의 근대, 그 소용돌이를 만드는 '형성적 주체'가 바로 청년이라는 것.

<문학청년의 탄생>은 '문학'을 패션처럼 휘감고 온몸으로 예술의 자립적 공간을 마련코자 했던 새로운 계층이 나타나게 된 시대배경, 그리고 다시 그렇게 나타난 이들이 어떻게 근대일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부제는 '근대 청년의 문화정치학'.

조금 딱딱해 보인다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 <부랑청년 전성시대>가 있습니다. 부제인 '근대 청년의 문화풍경'에서 나타나듯 우리와 같기도, 또 다르기도 한 그들의 모습, 시대의 공기를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진짜 '청년'이 '청년' 같았던 시대. 가끔씩은 정말 그들의 시대가 부럽기도 합니다. 물론 '부랑(불량)청년'이 되고 싶습니다.

  
* 역사의 대반전,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세계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이 책이 등록되기 전까지 저자 박세길 씨의 알라딘 저자 소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운동권의 필독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의 저자. 진보적 역사 읽기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직설적인 정보라 이 책을 등록하며 다시 수정하긴 했지만, 사실 그 말처럼 박세길 씨를 심플하면서 정확하게 소개할 말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아도, 어쩐지 웃음이 나오는 소개네요)

그 '필독서'가 필독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가독성'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은 이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어서, 두께 때문에 부담이 되시는 분들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해요.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하는 책은, 러시아 혁명, 중국 혁명 등 혁명의 역사를 되짚어 오지만(혁명의 추억), 그것이 기왕의 혁명사를 다룬 책들과 다른 것은 바로 '미래의 혁명'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사회혁명은 바로 "민주주의의 본원적 가치가 전면적으로 실현 되는 과정이어야 함"을 역설 하는 저자는, 하여 '창조적 다수'에 주목합니다. 그렇다면 창조적 다수는 누구일까요? 글쎄요, 이미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포스트워 1>, <포스트워 2>

1권과 2권, 145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을 통해 이 책이 그리고 있는 것은 유럽의 역사입니다. 그것도, 제목에서 보여지듯, 그냥 역사가 아닌 1945년에서 2005년의 역사. 60년의 역사를 그리기 위해 왜 이토록 많은 글자들이 필요했을까요?

"지난 세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각 변동의 진원지이자 금세기 인류가 지닌 평화의 기회를 실험할 주요 실험실인 유럽. 이 막대한 서사적 중요성을 지닌 주제는 이제 그 무게에 합당한 저자를 찾았다." - 스트로브 탤봇, 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부터 냉전의 기원, 유럽 제국주의의 종언과 식민지 해방, 유럽경제공동체의 탄생과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구권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전쟁,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스포츠, 음악, 영화 등 전후 유럽의 거의 모든 것을 스릴있게(!) 그려내는 책은 전후 60년, 유럽인들이 건설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이 궁금하시다면-
>> 접힌 부분 펼치기 >>


* 그리고…

이번 주도 책들이 가득한 한 주였습니다. 특히나 '역사' 책들만 가득 실었더니, 어쩐지 타임머신이라도 된 것 같네요.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안다는 말, 그 말을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를 그린 책은 대개 흥미롭다는 것.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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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771 2008-07-04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인문MD님께

<기인기사>를 옮긴 간호윤이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란 말씀 한 자락 없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기에 이 지면을 빌려 글을 씁니다.
알라딘인문MD님께서는 참 글을 잘 쓰시는군요. 속도감도 여간 아닙니다. 여러 꼭지를 쉬이 읽었습니다. ‘만선’이란 명패만큼이나 그득한 글의 풍어더군요.

더욱이 <기인기사>는 ‘머리말’부터 촘촘히 읽으시고 책의 역사,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에 더하여 언어적 표현까지 짚어주셨더군요. 고심에 고심을 덧대어, 글을 적어 내려간 작가의 내밀한 마음을 살펴주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서평이 출판사의 원고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본 터이기에 알라딘인문MD님의 독서량과 필력에 더하여 글 쓰는 이로서의 애정까지도 볼 수 있더군요. 그래,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표하여야겠기에 두어 자 적었습니다.

한 말씀만 더 놓겠습니다.
이 <기인기사>의 원본인 <기인기사록>은 ‘일제강점기 금서(禁書)’에 ‘매일신보 연재’ 따위의 이유만으로도 문학사적 가치가 녹록치 않은 책입니다. 지명도 있는 이의 손에 ‘이 책이 출간됐으면―’하는 생각이 들만큼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알라딘인문MD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간호윤 근배 (011-9060-8710, 032) 217-8710)
2008. 7. 4.

활자유랑자 2008-07-0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인문담당MD 금정연입니다. 이렇게 먼 길을 직접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책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문학사적 가치에 대해 무식한 소리를 한 것은, 말 그대로 무식하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책이 재미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부탁 드리겠습니다. :)
 

대어들이 가득한 이번 주네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도 있다지만, 무슨 책이 있는지는 알아야 말이라도 할 수 있겠죠. 자 그럼 배 출발합니다~

* 마르크스, 하워드 진, 에드워드 사이드

드디어 마르크스의 <자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된 <자본론>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출간된 <자본>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어 중역본인 비봉출판사 판본과는 달리 독일어 원전을 번역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이번 주 신문에 기사를 받았고, 저자 인터뷰도 많으니 <자본> 출간과 관련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현재 구할 수 있는 판본 중 독일어 원전을 번역한 것은 이번에 출간된 책 하나 뿐이라는 것. 마르크스를 전공한 저자의 해제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

실은 그 동안 우리 모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셈이죠. <자본>을 다룬 책은 수없이 많았지만 정작 원전은 아무도 읽지 않았으니. 하여 '유령처럼 떠돌던' 마르크스의 사유가 이번 기회에 새롭게 조명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읽어야겠어요.

"하워드 진은 공인된 비밀과 잊혀진 역사를 폭로함으로써 힘 있는 사람들이 조작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던 공식적인 역사를 바꿔버린다. 또 인자한 미국의 빙긋 웃는 가면을 벗겨내서 그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낸다. 하워드 진의 저작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

<작은 것들의 신>의 저자 아룬다티 로이의 추천사에 동의를 하거나 말거나, 하워드 진은 분명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인 중의 한 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워드 진에 대해 궁금하지만(우리 자신한테 몹쓸 짓을 하긴 싫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시는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입문서입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인터뷰하고 강주헌이 옮기다'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은 쉽고도 생생한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하는 하워드 진의 목소리는 따뜻합니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로 시작한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의 두 번째 책은 <저항의 인문학>입니다. 몇 년 전인가 '공학의 미래', '공대 기피 현상' 등의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위기'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기까지 해요. ('괴사' 직전?)

인간 복제 등 현대의 첨예한 지식 논쟁을 이끄는 것은 모두 과학자들입니다. 사이드는 세상이 인문학을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린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제시하지요. 마지막으로 남긴 저작이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사이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우리가 누구이고, 권력의 하인이 아니라 도덕적 주체이고자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 노엄 촘스키


* 문제는 광우병이 아니라 '살인 단백질'이다!

이 책의 부제가 나열하고 있는 '식인 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눈치 빠른 분들은 바로 알아차리셨겠지요. 바로 <살인 단백질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그것은 바로 '프리온' 입니다. 최근의 광우병 열풍에서 우리도 전해 듣게 된 그 이름이요.

광우병을 다룬 많은 책들이 파푸아뉴기니의 '쿠루'병에 주목합니다. 그들 부족의 식인풍습, 다시 말해 동족식습에서 발발된 병을 통해 광우병 역시 초식 동물인 소에게 소를 먹이는 비윤리적인 행위, 인간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지요.

그 밖에 위생적으로 포장된 육류가 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도축되고 우리의 밥상까지 올라오는지, 그 위험성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국민들을 호도하는지, 등이 최근의 책들이 다루었던 주된 주제였어요.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내는 것은 바로 '살인 단백질'의 역사입니다. 스스로가 (프리온에 의한 질병은 아니지만) 변형 단백질에 의한 정체불명의 질병을 앓고 있는 저자는, 200년이 넘게 이어 내려오는 '치명적가족성불면증'을 앓고 있는 이탈리아 귀족 가문을 시작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살인 단백질을 탐구합니다. 흥미진진한 '의학 인류학'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 이 책들을 보라!

 

 

 

 

<이 영화를 보라>는 고전을 새롭게 읽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고미숙 씨의 책입니다. 책은 여섯 편의 한국영화를 통해 영화 속 '지금-여기', 곧 근대의 풍경과 서사를 잡아 냅니다. 여섯 편의 영화는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가장 대중적인 영화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통해 우리 시대의 초상을 그려내는 저자의 공력이 돋보입니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에서는 '책'이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탐구합니다. 성리학이라는 조선의 대표 이념의 밑에 가려졌던 수많은 사상들을 '금서禁書'를 통해 추적하는 것. 저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평범한 책들에서도 그 내면에 현실적 삶과 대결한 흔적, 하지만 결국 권력의 논리를 따르고 만 타협의 고백을 찾아냅니다. 흥미롭네요.

<20세기 신화 이론>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책입니다. '카시러·말리노프스키·엘리아데·레비스트로스'라는 부제는, 대학 교재처럼 심플한 제목이 나타내듯 '20세기 신화 이론'의 기둥이 된 네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신화 이론에 대한 입문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거장들을 철저하게 해부, 분석함으로써 그 자체로 '신화'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것! 앞의 두 사람은 그렇다 치고, 엘리아데와 레비스트로스라니! 그 기획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 않으세요? 다중적인 의미에서의 '신화의 탈신화'.


* 그리고…

이번 주 배에 마지막으로 탑승한 책은 <직선들의 대한민국>입니다. 어쩐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책의 저자는 바로 우석훈 교수. 지난 번 배에도 마지막으로 탑승한 책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였는데요, 이래저래 운항한지 얼마되지 않는 우리 배와는 인연이 깊으신 것 같네요. (조만간 인터뷰라도…)

<88만원 세대>로 시작한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인 <촌놈들의 제국주의>와는 달리, '건설지상주의'에 경도된 한국사회를 종합적으로 비판하는 책입니다. 청계천을 살린답시고 직선으로 '인공 어항'을 만들어 수돗물을 흘리고, 원래 청계천 물길은 그 아래 파이프에 가두는 나라. 그에 더해 '대운하'라는 이름의 거대한 직선 운하를 만들겠다는 나라, 대한민국.

"속도와 성과에 중독되고 불도저들이 만들어낸 직선의 미학에 감탄"하는 사회가 정말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제 우리의 이성을 이곳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한 방향으로 바꾸자.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적 가치관을 복원하자. 딜레마에 빠진 한국 사회를 명랑하고 멋지게 바꿔 보자."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책은 아직 미출간인데요, 16일 월요일이나 17일 화요일 정도엔 직접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 편집부의 친절한 배려로 먼저 원고를 받아본 소감으로 말하자면, 재미있습니다. 쏟아지는 '한국 사회 비평서' 속에서 어쩜 우리는 오히려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을 읽고 무언가 느껴지신다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는데요, 그 글을 다시 재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자, 이번 주 역시 빅 네임들로 배가 꽉꽉 찼네요. 아참, 저는 내일 아침, 진짜 배를 탑니다. '만선'을 쓰다보니 어쩐지 진짜 배가 타고 싶어져서… 여행을 떠날 때 들고 가는 책은 크게 세 종류인 것 같아요. 진짜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 원래 좋아했던 책이라 여행 하며 한 번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여행할 때 들고 다니면 폼날 것 같은 책. 참고로 제가 들고 갈 세 권의 책은 <로드>,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무진기행>입니다. 어떤 책이 어떤 용도 일까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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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1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잘 다녀오세요. :)

2008-06-16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자유랑자 2008-06-21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어느덧 휴가를 다녀오고도 새로 맞은 주말, 새벽이네여 :) 술 한 잔 했더니; (한 잔은 사실 아니지만요;)
 

모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의 반대겠지요. 우리는 어떤 것을 알거나 혹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똑 부러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 혹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는 어떨까요. 둘 다 그냥 모르는 것? 전자는 아는 것이고 후자는 모르는 것? 재미 없는 문제라고요? 그렇다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어떨까요?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는 것이기도 해요. 말장난입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해요. 단지 위 문장에 '모른다'와 '안다'가 포함되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무지의 사전>

저자는 '앎'을 육지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명확하게 아는 것들로 이루어진 넓고 단단한 (물론 코페르니쿠스나 다윈 같은 '지진'의 위험에는 항상 노출되어 있는) 땅.

이때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것'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의 어둠으로 존재하는, 짐작조차 할 수도 없는 그런 지점이겠지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늘에 가려진 땅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 '앎의 육지'에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바로 육지의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앎의 끝에서, 아는 것은 여기까지이지만 분명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무언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간 알아내고 싶은, 모험을 자극하는 그런 것.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과학적 탐구가 시작됩니다!

자,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무지의 사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들을 드러냄으로써 역으로 수많은 모험가(과학자)들이 넓혀온 앎의 영토의 끝, 즉 '지식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것! 어때요, 근사한가요?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세요. 실제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과학이 이렇게 진보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잠을 자지만 잠이 정확하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술에 필수인 마취제, 하지만 마취제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지는 미지수" 어때요, 놀랍지 않으세요?

결국 독서의 의미도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흔히들 '앎의 즐거움'이라고는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즐거움이아닐까, 라고. 그것이 우리의 독서가 실생활에 무용한듯 보이는 잡다한 지식들의 축적에 그치지 않는 이유겠지요. 사실 우주가 10차원이나 11차원이나 비전공자들에게 어떤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곳으로 빛을 비추어주는,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되는 쾌감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책들이 앎의 가장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줄까요? 자, 배 출발 합니다~ 


1. 근대 문학, 죽었니 살았니? <역사와 반복>

<근대 문학의 종언>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셨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에 한국에도 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풍'의 열풍을 기억하시나요. 오에 겐자부로는 어떠신가요. 오에 겐자부로가 작품의 구조 속에서 싸우려고 했던 것이 미시마 유키오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자, 두서 없지만 어쨌든 가라타니 고진입니다. 제가 할 말은 페이퍼 "근대 문학의 종언, 그 이후"에 적어 놓았습니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만약 소설을 쓴다면 그의 비평을 받아보고 싶다, 정도?)




2. 탯줄로 잡아낸 인류의 문화사 <탯줄 코드>

"그는 의사로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탯줄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체험을 신화와 상징의 근원으로 끌어올린다. 그에 의해 탯줄은 뒤르켐의 집단의식, 융의 집단무의식,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에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권자에 오른다." - 조현설(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금 호들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추천사들. 하지만 현직 개업의이자 '재야 학자'인 저자의 <탯줄 코드>에 현직 교수등 제도권 학자들이 보낸 찬사를 모두 호들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저작이라면 제도권에 의해 외면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출생의 과정, 무의식에 녹아있는 그 신비한 과정이 어떻게 신화로 창안되었는지를 탯줄이라는 코드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신화, 민속, 종교를 탐색하는 저자는 '탯줄'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무시무시하게' 잡아내내요. 우리에게 신화와 상징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런 저작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3. 철학 책 3종~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빈 중심>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은 '이데아와 시뮬라크르'라는 부재에서도 알 수 있듯,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전통 존재론과('신족') 베르그송.하이데거,들뢰즈.데리다 등 니체 이후의 현대 존재론('거인족')의 투쟁을 그립니다.

투쟁이라고 하자니 어딘지 거창하지만, 서양철학사가 플라톤주의와 반플라톤주의의 대립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거창한 표현은 아니겠지요. 결국 이정우 씨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시뮬라크르의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우리의 존재론입니다.

이정우 씨를 이야기하자니 어쩐지 이진경 씨가 떠오르네요. (제가 이 두 분을 함께 생각하게 된 것은 몇 해 전 있었던 노마디즘 관련 논쟁 때문인 것 같아요) 마침 책이 나와 함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기회에…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의 개정판입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고, 당시 영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거의 필독서처럼 읽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 개-개정판에는 모두 10편의 영화가 들어 있습니다. (<친구들>도 10편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제목의 책이에요. (이를테면 켄 윌버의 <무경계>처럼) 그리고 또한 제가 전형적으로 "재미있는 것 같은데 조금 어렵네"라고 생각하는 류의 책이기도 합니다. 하여 책소개의 한 문구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

"예술과 타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러한 ‘관계의 사건’, ‘빈 중심’에 다다르고자 했던 과정의 궤적이다. 니체, 데리다, 메를로-퐁티, 블랑쇼, 바타유, 레비나스 등의 철학자와 말라르메, 사드, 소포클레스 같은 문학가의 예술에 대한 사유를 오가면서, 예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타자의 목소리'를 살핀다." 어떠세요? 



4. 한국에서 살아남기! <주권 혁명> <시대와 소통>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손석춘 씨의 <신문 읽기의 혁명> 또한 대학 시절 선배들이 권해주는 (<필로시네마>와는 다른 의미에서) 필독 도서였어요. 표지의 촛불이 앙증맞으면서도 시의적절한 <주권 혁명>의 부제는 '피의 나무에서 슬기의 나무로'. 그렇습니다. '민주주의' 이야기이지요.

민주주의를 조명하며 시작하는 책은 한국 민주주의를 분석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을 해방하는 주권혁명의 철학과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시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시대와 소통>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월례회 강연을 엮은 책입니다. 최장집, 백낙청, 한홍구, 정수일, 김민웅, 이영미, 오한숙희 등 강연자들의 면면을 보자면 어떤 책인지 감이 오실 것 같은데요.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으로부터 되돌아보게 되는 것', '시민참여형 통일운동 제안',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문명은 충돌하는가', '법의 세계, 상상력은 유효한가', '대중예술 속에 나타난 법', '섹스로 풀어보는 부부 이야기' 등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였던 저자가 어느날 대학에 사표를 던진 후 5년 간 미국 전역의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며 노동 계급과 함께 생활하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의 이면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영원한 '워너비' 미국의 실태는 결국 우리의 내일을 위한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요? 미국 아마존 서평에도 간혹 '여행 정보는 하나도 없다'는 별 하나짜리 리뷰가 보이는데요, 당연하겠지만 '미국 싸게 여행하기' 같은 책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곤란하실듯.

 
그리고… <촌놈들의 제국주의>
 
오늘의 마지막 책이자, 바로 오늘 들어온 우석훈 교수의 신작입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니, 어쩐지 벌써부터 웃음이 나오지 않으세요? 너무 뜨거워서 오늘은 일단 소개만 드리고 말겠습니다. 노란 뒷표지에 써있는 말을 가져올게요.

"이제 한국 자본주의는 내적 불균형과 모순의 악화로 필히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DJ노믹스에서 씨앗이 뿌려지고 노무현 정권에서 싹이 틔워졌다. 북한을 일종의 내부식민지화하면서 대외적으로 제국주의 팽창의 길로 들어서는 한국은 중국의 제국화 및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조짐의 현실적 근거들을 경제학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보여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적어도 30년 안에 한.중.일 3국 사이에 전쟁이 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방지할 동북아 평화체제를 지금부터라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중.일 각국의 국민경제에서 생태적 전환이 시도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건설자본형 제국주의에 국민경제를 맡겨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책은, 이를 도모할 평화경제 세력을 지금부터 공동으로 가꾸어 가지 않으면 전쟁은 필연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담고 있다!


유후, <무지의 사전>에서 <촌놈들의 제국주의>까지 오늘도 쉴틈 없이 달려 보았네요. 역시나 오늘도 배가 꽉 찬 걸요.
아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도 출간되었습니다. 아직 웹상에 등록이 되지 않아 소개는 다음 기회로 연기 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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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 2008-06-1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소남자 2008-07-1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짤막한 책소개지만 MD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책이 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커다란 책이 보기에도 좋으니 더 좋은 책일까요, 작은 책이 들고 다니기 좋으니 더 좋은 책일까요. 책이 무슨 고질라도 아니고 "크기가 문제다!"라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쎄요. 결국엔 취향의 문제겠지만,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큰 책은 좋은 책이기 쉽다"라고. 어쩐지 말장난 같기는 하지만.

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연장'의 속성을 갖고 있는(!) 물질로서의 책,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인 책이라면 그 외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은 그대로 '보기 좋은 책이 읽기에도 좋다'라고 쓰일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책의 크기는 생각보다 미묘한 요소들을 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작비(따라서 가격)-보관상의 난점-오프라인 서점에서 진열-온라인 서점에서 배송 같은 것들. 그럼에도 '큰 책'을 내기로 결정했다면, 출판사 측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책'이란 야심찬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나 이건 저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제 앞에서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세 권의 '커다란 책'은 좋은 책이라는 것.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일반화에도 불구하고…)

* 크기 두 배, 기쁨은 서너 배?









 

 

  

      일반 단행본(신국판) 대비 2.6배                          2.4배                                                 2.3배
 

이 책들이 커다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같은 문외한도 절로 감탄하게 되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사진들 때문. 하지만 이 책들이 좋은 이유는 비단 그것만은 아니에요. 사진과 어우러지는 글 역시 보는 우리의 마음을 좋게 하니까요. 아름다운 사진과, 재미있는 글, 그것을 받치고 있는 만족스러운 하드웨어까지. "지·덕·체"를 겸비했다고 할까요? (하하;)

<세상에서 가장 큰 중국책>은 사진집도, 여행 가이드도 그렇다고 여행 에세이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난 서양 친구들에게 내가 태어난 곳을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책으로 가능해졌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지만 그들은 내 조국의 정수를 잘 잡아냈다"는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민안치의 말이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 같네요.

풍경, 역사, 인간, 문화, 건축이라는 5개의 키워드로 각각의 상황에 맞는 사진과 글을 담아낸 책은, 중국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중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신 분, 혹은 중국을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바로 제목. 이미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라는, 이 책보다 손톱만큼 더 큰 책이 나와 있어요)

많은 분들이 넋을 놓고 보았던 동명의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살아 있는 지구>가 마음에 드신다면 아마 <한국 곤충기>도 마음에 드실 듯 합니다. 제목 그대로, 표지 그대로 한국에 살고 있는 곤충들을 다룬 자연 도감입니다. 도감이라면 아이들만 보는 것 아니냐고요? 에이 설마요.

각 계절별로 정리된 곤충들의 사진은 25년 동안 곤충을 연구하신 저자 김정환 선생께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직접 찍은 것이라고 해요(마지막의 인덱스에서 해당 곤충을 찍은 시기와 장소를 적어 두는 꼼꼼함까지). 그야말로 곤충의 달인. 또한 '곤충기'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단순한 도감을 넘어 한국 곤충의 생활사를 담고 있습니다. (방바닥을 기어가는 이름 모를 벌레에게도 나름의 인생 아니 충생이 있다는… 먹고 살기 참 힘들겠죠


* 역시 커다란 책이 좋으시다고요? 그런 분들을 위한 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는 과거 오늘의책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출간한 책인데요, 화려한 도판들과 함께 '모세와 출애굽 : 신화인가, 사실인가',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는 어떻게 세웠을까?'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브라이언 M. 페이건의 팬이시거나, 절판되었던 책을 찾아 다니셨던 분들은 이번 기회에 장만하시면 될 듯.


* 커다란 책은 잘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권해 드립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상인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한 교양 과학서로, 생명과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스릴과 절망 그리고 꿈과 희망과 반역이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책" 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추천사가 눈에 띄네요)

 
 
* 크기보단 두께로 승부한다! 
 







        587쪽            598쪽             578쪽            463쪽 

두께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책의 두께라는 '외향적 결과'는 순전히 '내용'에서 비롯하는 것. 하여 두꺼운 책들이 뿜어 내는 포스는 이렇습니다. "어때, 읽을 수 있겠어?" 그렇지만 그런 책은 또한 젖과 꿀이 흐르는 피안을 약속하니, 다 읽어 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그것이 바로 독서의 묘미!

<지젝이 만난 레닌>은 2006년 출간된 <혁명이 다가온다>의 일종의 완역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 부분 중 레닌의 텍스트에 기반을 둔 지젝의 사유만을 엮은 것이 <혁명이 다가온다>라면, 지젝이 직접 편집한 레닌의 텍스트까지 포함한 것이 바로 <지젝이 만난 레닌>인 것. '좀 더 부자'가 되고픈 개인의 욕망에 밀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모두의 꿈이 사라진 지금, 많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만물의 척도>는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한 미터법 혁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계의 발명이 근대 이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듯, '절대공간'의 개념을 인식시켜준 미터법 혁명이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지, 과학이 세상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추적합니다. 프랑스 혁명보다 위대하다라, 조금 과장된 듯하지만 실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는지도… ("정복은 순간이지만, 미터법은 영원하리라!" - 나폴레옹)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라는 책,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테지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왕이 직접 내는 '책문'과 그에 대한 선비들의 답인 '대책'을 담고 있었습니다. <율곡문답>에는 바로 그런 책문과 대책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 조선유학의 최고봉,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에 대한 율곡의 17가지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신 지식의 최전선>은 다른 세 책에 비해 조금 빈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각각 평균 이상의 몸집을 가진 시리즈가 4권까지 함께 출간 되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지식의 최전선>(700여 쪽)이란 제목으로 과거 출간 되었던 책이, 변화된 세상에 걸맞는 새로운 지식들로 무장한 채 돌아 왔습니다. 각각 인문, 문화, 사회, 과학 분야를 다루는 네 권의 책은, 모두 21세기 현대학문의 최신 화두를 품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이번 주도 역시, 참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심리학의 고전 <마음의 해부학>이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나를 찾는 셀프 심리학>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왜 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남이 바라는 대로 사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삶을 찾을 것을 요구하네요. <경성상계>, <한국사傳 2> 등 다채로운 역사 신간들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크고 두꺼운 책들을 너무 많이 담았더니 벌써 배가 꽉 찬 걸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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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berry watches 2011-12-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의 최고봉, 율곡 이이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16세기 조선에 대한 율곡의 17가지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