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기억으로도 '마지막 황제'는 슬픈 영화였다. 무언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막연한 먹먹함-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너무나도 작은 황제 푸이의 모습은, 그보다 몇 살쯤 더 먹은 타향의 꼬맹이에게도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애정을 갖고 옆에서 지켜본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금성의 황혼>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군주제를 옹호했던 황제의 스승 존스턴이 그려내는 제국의 최후는 일종의 장엄한 애가(哀歌)다. 물론 귀한 사료들이 가득한 역사서이기도.

<한국의 주체성>의 탁석산이 21세기 첫 십년이 끝날 무렵에 다시금 내놓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책이다. 어느 순간, '사는 대로 생각'해 온 우리들에게 그가 제시하는 한국인의 상은 꽤나 흥미롭다. 그가 파악하는 한국인의 동력은 '실용주의'다. 실용주의라고? 윤리 시간에 익히 들었던 존 듀이 식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아니면 얼마 듣진 않았지만 이젠 이력이 나버린 MB정부 식의 실용주의? 물론 그런 내용이었다면 이렇게 소개하고 있을 이유도 없겠지만.

한국인의 멘탈 구조를 허무주의, 인생주의, 현세주의의 꼴로 설명하는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한국적 실용주의라는 개념을 풀어 나간다. 결국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이 전부이니 감각적 즐거움이 소중할 뿐인데, 원래 인생은 허무하니 낙담하거나 좌절할 것 없이 좋은 것만 하고 살자'가 한국인의 멘탈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제1원리로 작동하는 한국인의 동력이 바로 '한국적 실용주의'라는 것이다. 동의를 하거나 말거나, 꽤나 '문제적 발언'임은 틀림 없겠다.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아감벤의 책은 <남겨진 시간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강의>이다. 사실 아직 <호모 사케르>도 읽지 못해 '아감벤이 어쩌고' 운운할 입장은 되지 못하니 그저 출간 되었음을 알리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한번 훑어본 소감으로는... 어렵다. '아감벤 사상의 결정판'이라는 출판사 측의 주장은 진위를 확인할 길 없어 그저 옮길 뿐인데, 읽는 이가 판단할 일이다.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던 필립 짐바르도의 <타임 패러독스>는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다. 경제경영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에서 출간 되었기에 얼핏 자기계발서(시간 관리는 중요하니까) 같은 느낌의 표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한 심리학책. 물론 이 책을 보아야 하는 사람은 (심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시간 관리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다!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서 자기계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건 (이건 정말 인문MD 입장에서 말하는 거지만) 분명 넌센스다. (홍MD님 죄송해요)

책 뒤의 추천사도 꽤나 흥미로운데, 추천하는 이의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을 책의 장점으로 꼽고 있는 것을 보며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혹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양한 층위에서, 의미에서 (이 말들을 지금 나는 '실용'적인 뜻으로 썼다)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책이라는 말일 것이다.

"<타임 패러독스>는 단단한 과학적 토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기초로 하여, 대체될 수 없는 자원인 시간을 유익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 마틴 셀리그만, <긍정 심리학>의 저자

"<타임 패러독스>는 즉각적인 보상과 미래의 이익을 식별하는 데 중심이 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의사결정자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감탄할 정도로 명쾌하고 즐거운 책이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렙, <검은 백조The Black Swan>의 저자 (국내 번역서 제목은 <블랙 스완>)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읽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어야 겠다'고 잠깐 생각한 것이지만… 물론 그 전에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할 책들이 첩첩 구만리라 생각만 하고 말았다. 그대신 잡은 책은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었는데, 갑자기 <사랑의 역사>가 재출간 되어 나왔다. 꽤나 즐거운 우연. 물론 그 두 책이 '공식적'으로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얘긴 아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읽는 개개의 독자 입장에서라면, 이 두 책의 '커플링'은 분명 내밀하고도 멋진 만남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과 난망한 표정의 광대의 조합은, 바르트의 크리스테바의 조합하고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강렬하다. '행복을 찾아 3천년'이라니, 눈물나는 부제다. 원제는 <The Secret of Happniess>지만 <시크릿> 열풍으로 차마 그대로 쓸 순 없었다고. (세상엔 '시크릿'을 부러 달고 나오는 책과 부러 빼고 나오는 책이 있는 모양이다) 제목과 표지의 느낌과는 달리 책은 철학서다. '행복을 찾아 3천년'이라는 부제는 결국 철학의 역사를 뜻한다. 꽤나 깊이 있는 책이다.

<안녕하세요, 기억력>과 <메커니즘을 알면 간단한 기억의 원칙>은 직접적인 제목에서 드러나듯 기억력을 다루고 있다. <안녕하세요>가 기억에 관한 에피소드와 지식을 위트있게 엮어낸 책이라면 <메커니즘>의 목적은 기억의 원칙을 파악함으로써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기억과 망각에 대한 교양을 원하시는 분은 전자를, 기억력 향상이라는 실용을 원하시는 분은 후자를 선택하시는 것이 좋겠다.

 

 

 

 

 

 

 

<쿠빌라이 칸>은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쿠빌라이 칸 평전이다. "Dsching-Dsching-Dschinghis Khan, hey Reiter, ho Reiter, hey Reiter, immer weiter"라는 가사의 추억의 팝송으로까지 불리우고 있는 할아버지 칭기스 칸에 비해 역사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쿠빌라이 칸이지만, '정복'에서 '통치'로의 발상 전환을 통해 중국 전역을 통치하는 최초의 이민족 중국 황제이자 몽골 세계 제국을 통치한 쿠빌라이 칸과 그의 시대는 칭기스 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한다.

<이사, 천하의 경영자>는 2006년 처음 인터넷에 연재된 이후로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이다. 가히 중국역사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작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센세이셔널'함의 문제에서) '귀여니'라고 할만한 중국의 신세대 역사 스토리텔러 차오성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과거의 인물들의 심리를 '전방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위화, 인문의 이중톈에 이어 한 번 만나볼만 하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는 하워드 진의 역작 <미국 민중사>를 만화로 각색한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만화는 아니다. 꽤나 두터운 분량을 자랑하는 <미국 민중사>를 한 권의 만화로 압축했기에 부분 부분의 생략은 불가피 했겠지만, 깊이를 잃지는 않았다. <미국 민중사> 혹은 하워드 진 혹은 미국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싶은 분이라면 읽어 보시길.

<육체의 탄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웰빙, 다이어트 열풍의 기원이 된 100년 전 조선의 모습이다. 조선은 자고로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터럭하나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하지만 서양 문명과 맞닥뜨린 근대개화기의 조선은, 그동안 무시했던 '육체의 역습'을 당하게 되었다고. 우리 몸과 그 안에 새겨진 근대의 자국을 탐구하는 과정이 꽤나 재미있다. 우리의 근대는 여전히 꺼내올 것이 많은 (오랫동안 무언가를 잔뜩 쳐박아 놓은 채 방치한) 다락방 같다.

* 오늘 들어온 따끈따끈한 신간들!

이제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라고 해야겠지만 근무일 기준으로 치자면 아직 출근 시간이 안되었으므로 그냥 오늘이라고 하자면, 오늘은 정말 깜짝 놀랄 월요일이었다. 거창한 책들이 어찌 그렇게 쏟아지던지. 한정된 공간에 책을 '규모있게' 배치해야 하는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곤란할 지경. 그 중에서도 몇 권을 꼽아보자면 위와 같다. 이런 책들을 보면 경박하지만 마음 속으로 순위를 꼽아보게 된다. 아마 다음주 쯤엔 <***>는 *위, <***>는 *위, <***>는 *위, <***>는 *위를 하고 있을 듯… (고미숙의 <호모 에로스는 11/19(수) 부터 판매가 가능한 관계로 이미지만 넣었다)


* 잠을 자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깨있기는 피곤한 시간이네요. 왠지 정말로 새벽 출항을 하는 어선의 선원이 된 듯한 기분이;; 잠을 자거나 말거나, 오늘도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8-11-18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아니할 수가 없군요!

꼬마요정 2008-11-1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사랑의 역사 어렵게 어렵게 구했는데, 재출간되어 나왔군요~^^;;

글샘 2008-11-24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만선된 배를 보고 침만 삼키는 1인...ㅠㅜ

잉여인간 2008-11-2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ss 좀 열어 주세요.

활자유랑자 2008-12-0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 고맙습니다. 조금 부끄럽네요 ;
꼬마요정 님 / 종종 재출간 되는 책들은 잃어버린 옛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랄까요. :)
글샘 님 / 앞으로도 더 많은 침이 필요하실듯 ㅜㅜ
잉여인간 님 / 우측 메뉴 바의 하단에 있는 rss 구독하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한 번 시도해 보시고 이상이 있으면 다시 말씀해주세요~

마늘빵 2008-12-1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궁금한 것 하나. 이 새벽에 일을 하신 겁니까? 페이퍼질을 하신 겁니까? ^^a

활자유랑자 2008-12-20 15:30   좋아요 0 | URL
그건 아마 보시는 분들에게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 늦게까지 일 열심히 하네" 라고 생각하셨다면 일이고, "이 사람 늦게까지 페이퍼질 열심히 하네"라고 생각하셨다면 페이퍼질이겠지요? ㅎㅎ;
 

데이빗 보위를 들으며 아이라이너를 그리던 남자. 멀대 같이 큰 키에, 어딘가 풀린 눈을 하고 있지만 실은 그리 위험하진 않은. 워즈워스의 시를 외우고, 뉴욕에 가고 싶어하고, 시와 소설과 노랫말을 쓰던 남자. 낮에는 고용센터에서 일을 하지만, 밤에는 발작적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하던, 댄스 댄스 댄스 댄스 투 더 라디오, 라며 팔을 휘젓던 그 남자.

영화 '콘트롤'과 그 안에서 그려진 이안 커티스 얘기다. 안톤 코뷘의 이력에 비추었을 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무난한 영화였지만 그렇기에 감동적이었다면. 밥 딜런을 그렸던 영화 '아임 낫 데어'와 비교하면 명확하게 갈리는 지점. 여기에서 불거지는 것은 역사와 그 재현의 문제다. 일어났던 사건으로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 역사를 다시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라는.

(물론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은- 아 정말 어떻게 저렇게 똑같은 배우들을 캐스팅 했을까, 노래는 누가 하는 거지?, 버나드 섬너는 (웃음), 피터 훅은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후키'라고만 나온걸까, 그렇다면 New Order의 새 앨범은 당분간 요원한 걸까 같은…)

그래서 일단은, 역사와 그 재현에 관한 몇 권의 책들로 시작하는 이번 주의 만선.

 

 

 

 

 

 

 
지난 금요일이 10월 혁명의 91주년이었다고 한다. (10월 혁명은 당시의 구력 기준으로, 현재의 역법으로는 11월 7일이라고) 그에 맞춰 나온 책이 바로 <10월 혁명>이다. 부제는 볼셰비키 혁명의 기억과 형성. 기존의 연대기적 서술을 탈피, 새로운 역사 서술을 시도하는 책은 그러나 표지의 '요즘 취향'(?) 글자체와는 달리 그리 녹록한 책은 아니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어떻게 해서 '성공한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그 형성적 측면을 '기억'과 '내러티브'라는 테마를 통해 살피는 책이다. 또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모더니즘적 역사 서술을 피하고 사건의 주체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구술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혁명으로서의 사건'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러시아 혁명사 서술과 다른 차별점 및 신선함을 갖는다." - 알라딘 책소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혁명이지만 역시 '기억'의 문제로 혁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책은 <문화 대혁명 - 또 다른 기억> 이다. '문혁'이야말로 엇갈리는 평가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혁명임이 분명할텐데, 그 '사이'를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문화대혁명 시기 저자가 노동자의 신분으로 조반조직을 전두지휘하면서 경험한 일을 서술한 회고록이다. 조반조직의 세력 확장으로 열여덟의 나이에 당시 회사 혁명위원회 부주임까지 올라가고, 후난성 치안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지만, 결국 문혁이 끝나면서 그도 숙정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는 문혁 10년간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문혁이 단편적이라고 반박하며, 노동자들과 홍위병.중앙.당시 기층 민중들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 알라딘 책소개

이번엔 <폴 포트 평전>이다. 킬링 필드의 기억. <체 게바라 평전>으로 유명한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26번째 책은 킬링 필드를 다시 한번 소환하면서, 그 중심에 섰던 폴 포트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저자는 타인을 배려하던 젊은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정권의 지도자로 변해가는지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어떻게 캄보디아를 도탄에 빠뜨리는 최고기획자가 되었는지 냉정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일의 기획자는 폴 포트만이 아님을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폴 포트를 캄보디아 현대사와 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조명함으로써 다각도로 해부한다." - 알라딘 책소개

<사회 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은 위의 세 책과는 조금 다르다. 속칭 <사사방>으로 불리던 책은 사실 우리 세대의 책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이진경'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렸던 책이 다시금 '개정증보'라는 형식으로 우리 곁으로 되돌아 온 것. 이진경은 물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학자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함의는 무엇일까? 이 '사회과학서적'을 둘러싼 기억,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19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을 대표하는 저작이었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증보판. 초판 이후 20년간의 한국사회 변화를 보여 주는 새로운 글 4편을 더했다. 사회과학의 방법론으로서의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논의를 직접적 주제로 삼았다." - 알라딘 책소개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은 제목 그대로 심리학을 통해 조선왕들의 내면을 분석하고 있다. 옛말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면, 결국 왕 또한 사람일 터. 오히려 범부 보다 복잡하면 복잡했지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았을 그 속을 심리학의 틀을 통해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는 '사진'이라는 신문물을 통해 우리의 근대를 들여다 보는 책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혀있는 '근대'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사진에 찍힌 근대'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었을 '사진'이라는 당대의 신문물과 그로 인해 바뀌어 가는 근대. 생각만큼 도판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럼에도 의미있는 작업임은 분명하다.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선비의 탄생>은 위의 두 책과 비교하면 그리 멀리 나가지는 못한 책이다.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새로운 것만이 의미있는 것은 아닐 터. '사람다움'이 점점 사라지는, '선비 정신'이 도대체 뭥믜? 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요즘, 옛 선비들의 사람됨과 그들이 제시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살피는 것도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두 바퀴 탈 것>은 제목과 표지에서 드러나듯 자전거에 관한 책이다. 제목과 표지에서 잘 느껴지지 않지만 자전거에 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다. 자전거라는 탈 것이 어떻게 발전했는 가에 관한 과학사 일뿐만 아니라, 자전거의 발달과 보급에 따라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나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고급스런 교양서라는 것. 실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하드웨어 적으로 '그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내용도 좋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왜 자전거냐?"라고 물을 때, 단지 "건강에 좋아서"라고 하는 것보단 훨씬 폼나지 않겠는가.

<추의 역사>는 <미의 역사>에 이은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다. 시각 문화와 예술 작품 속의 '추'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탐구하며, 역사 비평을 통해 '추'의 기호학을 구축하고 있다. 품질 좋은 도판에 에코의 글. <미의 역사>를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군침 도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앨피 출판사의 Critical Thinkers 시리즈 16번째 책, 바로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다. 이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의 하나다.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표지에 내용 또한 훌룡하다. (시공 로고스 총서 또한 균형잡힌 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시리즈이지만, Critical Thinkers 쪽이 훨씬 더 압축되고 일관된 주제 선택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로고스 총서는 전부 절판 상태이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푸코의 삶과 사상에 대한 최적의 입문서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 주말에 읽은 모리스 나도와 바르트의 대담 중 인상 깊은 구절이 있어 옮겨 놓는다. 일테면 '겨우 존재하는 인간' 으로서의 '나'와 그 '조건'을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말.

모리스 나도 : "모리스 블랑쇼가 비평가란 비非 독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잡지나 신문의 편집장은 이런 면에서 제곱의 비독자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독서'하지 않으면서 '독서'합니다. 실제로 진정한 독서란 전자의 독서를 말하죠. 그런데 이 전자의 독서, 현재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 속에서는 나는 그걸 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나는 독서할 의무가 없는 순간에만 진정한 독자가 됩니다."

롤랑 바르트 : "통상 사람들은 극히 잘 다듬어진 완곡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책을 보았다고 말하죠. 그들은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현재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 속에서' 나는 아마 세제곱 정도는 되는 비독자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내가 '본' 책들의 목록이고, 그것을 옮기기에도 실은 벅차다. 쌓여있는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가혹한 일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그것은 '제곱'의 '목숨을 건 도약'이 된다!

"공통 규칙을 갖지 않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교환)은 반드시 '가르치다 - 배우다' 또는 '팔다 - 사다' 관계가 될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탐구 1> 중)

'가르치다 - 배우다'는 고진의 논리에서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나와 '타자'의 비대칭성을 전제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언어와 비극!) 물론 그것은 마르크스를 빌자면 '목숨을 건 도약'이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글은 (고진 적인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동시에 '팔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분명 '목숨을 건 도약' x 2 이 아닌가?

(계속 이런 헛소리를 하다간 정말로 목숨이 남아나지 않겠네요… )

* 헛소리는 그만두고 배는 떠납니다; 추운 월요일 아침이네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urberry sport 2011-12-2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제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언어와 비극!) 물론 그것은 마르크스를 빌자면 `목숨을 건 도약`이다. 그렇다면 내가 쓰고 있
 

역시 이번 주에 가장 먼저 소개해야 할 신간은 박문호 박사의 <뇌, 생각의 출현>이겠습니다. 첫 저작이기에 조금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연구공간 수유+너머, 카이스트, 서울대 등 그가 강의해 온 곳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왜 이제야 책이 출간 되었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나'는 뇌의 활동입니다.
뇌 세포의 집합적 활동 결과로
의식을 생성할 때 비로소 '나'는 존재합니다.
언어와 문화는 뇌 작용의 일부입니다.
인간에 이르러 비로소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하게 된 기원과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감각과 운동, 기억, 느낌, 의식
그리고 창의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탐구합니다.

표지의 하얀 부분, '뇌'라고 쓰인 좌측 상단에 쓰인 이 문구가 아마 이 책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말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뇌의 활동입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것처럼, 책은 기본적으로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창의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탐구'하고 있다는 말 또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구분되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과학 독자'와 '인문 독자'를 모두 아우르는 과학서이자 인문서라는 말.

뇌과학에 관한 친절한 강의노트를 표방한 책은 내용이 꽤 방대하고 분량또한 만만치 않다. 생물학과 입자물리학,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 과학계의 주요 이론과 분야를 두루 다루는 동시에 신경철학자들의 주요이론, 포스트모던 사상까지 접합시킨다. - 경향신문

신문 서평처럼 사실 만만치 않은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또한 분명해요. '뇌'와 '우주', '생명' 그리고 '창의성'까지. 그야말로 '우주적 통섭'이라 할만한 저작이 국내 저자의 손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지식의 대융합> 역시 주목할 만한 국내 저작입니다. 인문학은 이미 고사枯死하고 자연과학 또한 '살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우리의 현실에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당면 과제가 된지 오래지만, 뚜렷한 성과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추상적인 당위를 넘어 그 내용과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살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미래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융합 지식’과 ‘융합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서로서, ‘지식의 대융합’을 이루는 학문 간 연구의 성과와 새롭게 출현한 융합 학문의 탄생 과정을 담는다. 뒤쪽에 ‘지식 융합 도표’를 별도로 넣어, 지식 융합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했으며, ‘에필로그’에는 우리나라의 지식 융합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알라딘 책소개

자,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지식의 대융합>이라는 말씀. 제목은 <통섭>과 더 닮아 있지만, 실은 '통섭'의 필요성은 이미 전제로 두고(물론 단순히 '한문 간 연구'라는 기초적인 부분에서), 최신 융합 학문에 대한 전방위적인 소개를 하고 있는 이 책은 <지식의 최전선>을 더 닮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듯.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입니다! 먼저 이 일을 하게 된 이후에 책 내용을 보지도 않고, 단순히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손에 받아 쥐는 순간 가장 흥분했던 책이라는 사실부터 밝혀야겠네요.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해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중 한 명'이라는 식의 말을 제가 감히 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 중 한 명'임은 틀림 없으니까요.

'고생물학자 굴드의 자연사 에세이'라는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잡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자연과학사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에세이들은 모두 10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고, 이 책은 그 중 여덟 번째 책이라고 하네요)

예술과 과학, 진화론의 일대기, 선사시대의 인간, 역사와 관용에 대하여, 진화의 사실과 이론, 공통된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라는 이름의 6부로 나뉘어진 총 21편의 글은, 적어도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인 굴드의 위트와 날카로움이 넘치며 또 유려한 글맛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불가사의하리만큼 특이한 사람의 뇌는 진화의 산물로 탄생했다. 그 속에는 원래 목적이 다르거나 또는 뚜렷한 목적 없이 그때그때 발생했던 -때로는 오도된- 갖가지 사유 방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다음 뇌는 진화의 중심 진리를 발견하지만, 다른 한편 자신을 창조한 바로 그 과정의 여러 가지 양식과 함축을 배척하도록 편향시키는 희망과 편견들로 가득 찬 인간 문화와 사회를 세우기도 한다.

따라서 진화는 뇌를 구축하고, 다시 그 뇌가 자신의 창조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사유 양식과 진화에 대항하는 문화를 동시에 발명하는 셈이다. 이것은 가히 우주적인 규모의 심술궂은 회귀인 셈이다. 돌고 돌면서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고 영원할 수도 있는 소용돌이로 들어간다. 그러나 작게는 이 글에 대한 주제를 주고, 크게는 우리 존재의 본성에 대한 얼마간의 통찰을 제공해주는 이 나선 속에서 우리는 점차 이해가 증대되는 몇 가지 형식의 특징을 파악해지는 것 같다. - 서문 중에서

굴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도 함께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화의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어떻게? 바로 C.S.I. 에서 자주 보던 그것, DNA를 통해서. 진화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가? 왜 지금 구태여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이라고 강조까지 해야 하냐? 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새로운 DNA 증거는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을 넘어 매우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다. DNA 증거는 학교 차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느냐 마느냐, 사회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을 것이다.

배심원들더러는 유전적 차이와 DNA 증거에 의존해 용의자를 살려주고 석방시킬지를 결정하라고 하면서 그러한 증거와 생물학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진화의 기본원리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그저 아이러니로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다.

진화론 반대운동은 진화와 진화 과정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할 새로운 증거들은 진화가 생명다양성의 밑바탕이라는 주장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남지 않도록'해줄 것이다. - 서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 미국이지요. (아마 저자도 꽤나 열받은 모양입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위해 바보 같은 미국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물론 이 표현은 '모든 미국인'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증거들을 잘 정리하고 있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책이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나라 미국의 진정한 속내가 궁금하시다면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를 추천합니다. 우리에겐 <슬럼, 지구를 뒤덮다>로 친숙한 마이크 데이비스가 폭로하는 발가벗은 미국의 속살.

1부에는 워싱턴 D. C.를 중심으로 한 정치계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정가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이기에 상당히 유용한 읽을거리다. 2부에는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미국이 저지른 깨끗하지 못한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까닭, 그 전쟁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 전쟁을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의 태도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담는다.

3부는 자본주의 미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4부는 카트리나 이후에 인위적인 인종 청소에 내몰린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빈곤 문제, 인종 문제, 사라져 가는 좌파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5부는 아직도 혁명을 믿고 사회주의를 꿈꾸는 맑시스트 사회주의자인 저자의 면모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 알라딘 책소개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어쨌거나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고 하지만 그게 미국이기에 더 통쾌하고 또 분노하게 되는 책입니다. 읽으신다면, 날도 스산하고 미국 대선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가장 좋겠죠.

명확한 주관과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 남경태 씨의 신간 소식도 전해 드립니다. <철학>에 이어 그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역사>. 687 페이지라는 두툼한 볼륨을 자랑하고 있는 이번 책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역시 '유니크한 향취'의 '남경태표 역사'입니다.

독일산 벤츠와 이탈리아산 페라리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자전거용 수동 브레이크조차 없다. 질주 본능에 사로잡힌 그들은 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물론 시민들은 두 나라에도 있지만 시민사회는 없다. 오히려 두 나라의 시민들은 국가의 질주에 박수를 보낼 뿐 자신들이 제동장치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프로이센과 영방국가의 시민들, 이탈리아 반도의 시민들은 그동안 자동차가 없어 설움을 받았다는 생각뿐이다. 통일국가가 수립되자 이제 우리도 고속도로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에 국가를 견제하기는커녕 전폭적으로 국가를 밀어준다. 레이스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어 조급한 마음뿐이다. 초조한 레이서들은 조만간 대형 사고를 칠 게 뻔하다. - '시민사회의 부재: 파시즘' 중에서

남경태만의 뚜렷한 주관과 거칠 것 없는 입담은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비슷비슷한 기획물들로 점철되던 국내 역사서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고 올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재미는 보장.

자,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천하나의 고원>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제목이라고요? 저자는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네요(아직도 이 직함이 유효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이제 좀 감이 오지 않으세요?

그렇습니다. 노골적인 제목과 저자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난해하기로 소문난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대한 일종의 해설 혹은 '새롭게 읽기'입니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에티카의 측면에서 <천의 고원>을 읽어냄으로써 이 시대를 위한 사유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천 개의 고원>도 읽어내지(!) 못한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요…

이 기회에 <천 개의 고원>도, <천하나의 고원>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침 11월 5일까지 새물결 브랜드전이 진행중이고 그 중에서도 <천 개의 고원>이 35% 할인행사 중이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참고만. (책장 한구석에 먼지와 함께 풍화되어 가는 <천 개의 고원>을 오랜만에 꺼내봤는데,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졸음이…)


* 날이 많이 춥네요. 사실 이런 날은 따뜻한 방에서 이불 돌돌 말고 앉아 책이나 읽어야 하는데…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mani online 2011-12-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도, <천하나의 고원>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침 11월 5일까지 새물결 브랜드전이 진행중이고 그 중에서도 <천 개의 고원>이 35% 할인행사 중이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 참고만. (책
 

 

 

 

 

 

 

 

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곳엔 모든 것이 - 어둠만 빼고 - 아주 적은 양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빛도 소리도 사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낮의 세계에 차고 넘치는 그것들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빛도 소리도 사람도- 실은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라고.  

물론 <밤의 문화사>가 반가운 이유가 밤을 좋아하는, 그래서 이런 페이퍼를 일요일 밤에 쓰고 앉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이야 역사, 특히나 '문화사'라고 하는 영역이 한 풀 두 풀 세 풀은 꺾였지만 한때는 꽤나 사랑받던 분야가 아니었던가. 이를테면 <고양이 대학살>. 그 후 12년, 그 책을 번역했던 조한욱 교수가 새로 번역한 책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물론 시대도, 시장도 모두 변하긴 했지만.

방대한 양의 거창하고 또 자질구레한 자료들 속에서 튀어 나오는 놀랍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 어떤 소설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아마도 문화사의 매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화사가 인기가 없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 그렇지만 삶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노래한다.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다른 방식으로. 어쨌거나 저자 로저 에커치는 굉장한 이야기꾼, 혹은 노래꾼이고 그래서 즐겁다. 더군다나 그가 노래하는 것이 밤이라는데!

인기가 없어진 분야로 이야기하자면 고고학/인류학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삶과 인류와 세계의 역사에 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관심들이 자기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문사회 담당자나 할 법한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하며 <고고학의 즐거움>과 <최초의 인류>를 바라보자니 어딘지 쓸쓸해지기도…

<고고학의 즐거움>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우리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 힘든 거대한 고대의 유적들은 도대체 어떻게 세워졌는지. 먹고 살아가는데 하등 도움 될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최초의 인류>는 고인류학계의 영원한 관심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관망하자면 물리학의 '최종이론'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도?) '미싱 링크',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자신이 서로 경쟁하는 네 탐사 팀을 쫓으며 담아낸 생생한 내용들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일반적인 띠지의 약 2.5배 정도 되는 크기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우리나라에서 큰 인지도가 없는 철학서 저자를 표지에 저렇게 크게, 그것도 띠지로, 넣은 전례가 있는지 문득 궁금. 이 책에 관한 얘기는 얼마전 도서팀장님 페이퍼를 빌어 한 적이 있으니, 여기에 옮겨 놓는 것으로만.

"독일의 미남 학술 전문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 철학서로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지난 1년간 45만부가 팔린 화제의 책. 철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핵심사상을 요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현대인이 직면한 존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또한 철학자들의 사상뿐 아니라 심리학자, 뇌신경학자, 인류학자 등의 최근의 연구성과를 함께 제시하며 통합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독일의 슈피겔 지는 이 책을 가리켜 "독일 통일 후 최근 20여년간 가장 성공한 대중 철학서"라고 평했다." (당시 '미남'이라고 표현한 것은 출판사의 입장을 십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야겠다…)

<중력과 은총>- 아 '중력'과 '은총'이라니! 끊임없이 아래로 잡아 내리려는 힘과, 밝고 따뜻하며 또한 사려 깊게(혹은 잔인하게?)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힘. 시몬(느) 베(이)유의 고뇌가 녹아있는 이 책은, 감히 뭐라고 말할 수도 없이 아름답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끊임없이 사유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에스프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괜히 거창하게 한 번 말해보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자기 밖으로 퍼뜨리려는 성향. 너무도 약해서 타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타인을 괴롭히지도 못하는 사람은 우주의 표상 자체에 어긋나는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아름답고 선한 것이 모두 모욕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한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가 나에게 답장으로 써 보내는 것은 결국 내가 그의 이름으로 나 자신에게 말한 것과 같은 말이다. / 사람들이 줄 거라고 우리 스스로 상상하는 것. 사람들은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빚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채를 면해줄 것.

실제의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모습과 같지 않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 이것은 신의 자기희생을 본받는 것이다. / 나 역시 스스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용서이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와 <쓰여지지 않은 철학>에 이은  라티오 출판사의 세번째 책이다. '우연적 삶에 관한 문학과 철학의 대화'라는 부제에서도 느껴지듯이, 앞의 두 책들 보다는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가을에 어울리는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다.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은 사실 '광기' 보다는 '멀쩡함'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광기어린 천재들의 영웅담 혹은 '광기의 역사' 등- 우리가 언제나 흔히 접하는 것은 '광기'다. 물론 우리는 멀쩡함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도대체 그 멀쩡함이 뭔지(멀쩡함이 뭥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멀쩡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살지만, 실은 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재미있는 문제의식. 역시 제법 독서의 계절에 어울린다.


* 진짜로 소설보다 재미있는 인문 신간도서들이긴 하지만, 설령 더 "나는 이 책들 보다 훨씬 재미있는 소설을 알고 있다!"라고 하신대도 환불은… (사실 저도 알아요)
* 마지막으로 시몬(느) 베(이)유의 눈물 나는 아포리즘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인간의 비참함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진정 견딜 수 없으리라.
인간의 비참함이 희석되지 않도록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게 할 것.
"그들이 눈물에 지쳤을 때" (<일리아스>) - 극심한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해 주는 한 가지 방법.

위로 받을 수 없도록 눈물을 흘리지 말 것.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흡수 2008-10-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 덕에 제(읽고픈 혹은 읽고 말) 인문도서 목록 또한 만선입니다.ㅎㅎ

곰탱이 2008-10-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인기 없어진 분야를 공부하는 저는 그럼 블루오션 개척??
하나하나 골라서 읽어봐야 겠어요.

글샘 2008-10-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문화랑 고잉인세인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 돌아온 우석훈과 '괴물'의 탄생

오랜만에 기어코 쓰게 된 '만선'의 첫머리에 우석훈 박사의 신작이 오르게 된 건 좀 우스운 일이다. 벌써 두 달은 훌쩍 지나버린 이 서재의 마지막 페이퍼 몇 개를 그의 인터뷰와 <촌놈들의 제국주의>,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장식하고 있었던 탓이다. 이거 자칫하면 편애모드- 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책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잘 팔리는 책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더 팔려야 한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이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네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에서, 우석훈 박사는 드디어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이라는 단어를 분명히 달고 있는 시리즈 명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때론 통쾌한 분석만 있었을 뿐, 별다른 대안은 사실 없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만하다. 물론 그 대안의 효용 및 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 대안을 밝히는 일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생략하기로 하고.

'괴물'이란 물론 현재 우리 사회를 말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같은 인간의 조건. 굳이 레비아탄(혹은 리바이어던)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생활의 발견]의 대사처럼 "사람 되기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의 괴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겠다. 결국 사람되기 힘들어서 모두 괴물이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괴물의 뱃속에서 사람이 되긴 힘들다는 얘기일까?)

개인적으로는 <몬스터>의 대사가 떠올라 버렸다. "날 봐, 날 봐, 날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자랐어" <괴물의 탄생>이란 어쩌면 조금쯤 때늦고 식상한 제목일지 모르지만,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괴물은 어느덧 이렇게 자랐다. 그리하여 그 괴물에게 먹히고나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이 우리가 고민할 무엇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화 속의 영웅처럼 누군가 나타나 괴물의 목을 자르길 기다리기에는, 21세기는 너무 빠르고 삶은 너무 짧으니까.

하지만 기억할 것. 캠벨 식의 영웅 신화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국 내면의 여정이고, 어느새 자라버린 괴물도 '내 안의 괴물'이라는 것. 괴물 없이 살아가기는 생각만큼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오래된… (하지만 한 번도 증명된 적은 없는) 레토릭.

시리즈의 완간과 더불어 시리즈의 두번째 책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가 개정되어 새로 나왔다. <조직의 재발견>이 그것. 난해하기로 소문(!)났던 서문을 고쳐 쓴 개정판이 나오게 되면서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88만원 세대>-<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의 A 버전과, <88만원 세대>-<조직의 재발견>-<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의 B 버전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동방신기 새앨범을 광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위 내용은 우석훈 박사의 입장 및 알라딘의 입장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 심리학 도서 출간 러쉬

 

 

 

 

언젠가부터 심리학 책들이 참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서 나오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사실 수박 겉핥기 식의 책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그 범위도 깊이도 다양하고 깊어졌다.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몇몇 책들만이 관심을 받고 읽힌다는 것은 꽤나 슬프다. 이것은 직업적인 감상. 이렇게 많은 책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멀고 험하다는 것은 꽤나 잔인하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상. 물론 둘 다 어디에도 쓸모는 없다.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는 자극적인 제목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제목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재미가 있다. 책은 자극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말초적인 흥미를 끌려하지 않는다. 다만 '변태'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서 단죄되고 배척되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며, 우리 안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다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이중 인격>과 <다중 인격의 심리학>은 비슷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다른 책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이중 인격자의 패악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자기 자신의 이중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 확인해보자는 것이 <이중 인격>의 메시지라면, <다중 인격의 심리학>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마음 속에 여러 인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억지로 부정하거나 하나로 통합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

거칠게 말하자면 전자는 한때 유행했던 '싸이코패스'류의 책을, 후자는 대니얼 키스의 <빌리 밀리건>을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물론 <빌리 밀리건>은 '찢겨진 영혼'을 탐구한 논픽션이므로 방향은 다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 역시 더 없이 재미있을 듯. 특히나 전문 번역가 김명남 님의 매끄러운 번역에 출판사 편집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도…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미신과 속설이다. 생각해보면 미심쩍기 그지 없는 그것들을 인간은 어떻게 철썩같이 믿을 수 있을까, 정도. 귀가 얇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물론 우리는 주변에 귀 얇은 친구들을 하나 쯤은 알고 있으니,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잭팟 심리학>은 <괴짜 심리학>의 저자 리처드 와이즈먼이 들려주는 '행운의 심리학'이다. (로또 같은 한탕주의 심리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는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는 항상 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나기 마련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말하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정말 운이 좋은 삶(최소한 그렇게 생각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답은 책 속에.

<심리학 초콜릿>은 이 리스트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 저자의 책이다. 삶에 힘겨워 하는 20대 여성들의 고민을 담은 책, 이라고 한다면 역시 국내 저자의 책이 더 가까울 터. '관계 맺기에 힘들어하면서도 소통에 중독되고, 진정한 사랑을 꿈꾸면서 ‘나쁜 남자’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남자친구의 폭력, 잦은 바람, 경제적 의존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그래도 사랑한다"며 헤어지지 못한다.'라는 알라딘 소개처럼, 너무 상투적이지만 사는게 결국 그런 것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히 살자, 뭐 그런 것.

<나쁜 유전자>는 사실 이 심리학 책들 중에서 가장 비중있는 책이다. 얼핏 <이기적 유전자>를 닮은 책은 사실 <루시퍼 이펙트>를 더 닮았다.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성공하는가?'라는 부제는 "Why Rome Fell, Hitler Rose, Enron Failed, and My Sister Stole My Mother's Boyfriend"를 보면 더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은 왜 그런 것일까? 뇌과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직조하며 그 과정을 밝혀내는 작업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보살핌>은 <나쁜 유전자>와 반대편에 있는 책이다. 신경생리학과 뇌과학, 발달심리학, 진화생물학 등을 통해 밝혀내는 것은 인간의 '보살핌 본능'이다. 이 본능을 개인의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 갈수록 약화되는 사회적인 유대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들 또한 예방할 수 있다는 책의 주장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슬프기도 하다. (슬픈 이유는 잘 모르겠다)


* 562돌, 한글날!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제목은 사실 이상하다. '~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기실 번역투에 가까우니. 출판사 분은 '사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다'고 하시니, 그만큼 책에 대한 자부심으로 읽어도 좋을 듯 하다.

한글과 관련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짚어가며 상세히 설명하는 책을 통해 우리가 항상 사용하지만 실상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는 못하는 (영어 몰입이니 뭐니 하는…) 우리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살면서 한 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국어실력이 밥먹여 준다> 시리즈의 세번째 책은 바로 <국어 독립 만세>다. 조금은 시대착오적으로도, 선동적으로도 느껴지는 책의 제목이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게 된다. 주로 어휘에 집중했던 앞의 두 권과는 달리 이번 책의 주된 내용은 한글과 영어와의 비교.

'영어강박'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서 '영어의 화장발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는 우리말의 맨얼굴'이라고 한다면 "국어 독립 만세!"라고 할 수도 있잖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의 문제의식 또한 우리에게 절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는 말들. 두 주에 한 개꼴로 지역 고유의 말이 살아지고 있는 오늘날, 과연 언어의 종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책의 물음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이대로라면 한글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문득 터키에 여행차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이 "터키어를 배워라.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랑 터키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니까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쩌면 우리는 그 터키인 보다도 우리말에 더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 끝

Verve의 10년 만의(!) 새앨범을 연속해서 5번은 듣고 있는데 하나도 좋은지 모르겠다면, 김연수의 신작 <밤은 노래한다>를 불과 3시간 전에 완독하고 오늘 오후에 있을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하나도 설레지 않는다면, 그건 다 월요일이기 때문. 그리하여 개가 짖는 월요일 새벽 (왜 B01 호에 사는 두 마리의 개들은 새벽에도 쉬지 않고 짖어대는 걸까?) 책들을 싣고 오늘도 배는 출발합니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이 글을 쓰는 동안 한 마리의 개도 다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anel handbags 2011-12-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이대로라면 한글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문득 터키에 여행차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현지인이 "터키어를 배워라.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랑 터키어는 같은 우랄-알타이 어족이니까 쉽게 배울 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