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번째 회신 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 거다 천기를 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詩 : 고정희 美 : Wallpapers 術 : 플레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5-03-1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예쁘다. 추천!

비연 2005-03-1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정희님의 시..좋아합니다. 넘 이쁘게 꾸미셨네요..^^ ㅊㅊ 과 퍼감니다..~~

플레져 2005-03-1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를 읽으면 무언가 좀 끄적여 보고 싶어져요. 추천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비연님 ^^

릴케 현상 2005-03-1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일단 고정희 시는 추천해야 할 듯
 

시인 문태준, 문인들이 뽑은 작년 가장 좋은 시에

"詩 '가재미'는 암으로 세상 등진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
글=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사진=이기원기자 kiwiyi@chosun.com
입력 : 2005.03.09 17:55 07' / 수정 : 2005.03.10 01:03 02'


 


▲ 시인 문태준씨
문인들은 문태준(文泰俊·35) 시인의 ‘가재미’를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시 중 가장 좋은 시로 뽑았다.

선정작업은 도서출판 작가(대표 손정순)가 이시영 문정희 최동호 정일근 안도현 등 시인·평론가 120명을 대상으로 했다. 문 시인은 지난해에도 시 ‘맨발’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선정작업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가슴에 다가오는 절절한 체험을 주위 사물과 결합시켜 재현해 아름답고 진한 서정을 길어 올렸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재미’는 말기암 환자에 대한 기억 속 장면들이 언어의 표면으로 서서히 인화되는 순간을 채록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 두 눈이 한쪽에 몰려 붙어 있는 가자미(‘가재미’는 경상도 사투리)는 목전에 다가온 죽음만을 응시하는 환자를 상징하고 있다.

문 시인은 이 시가 “어렸을 적부터 고향(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마을에서 같이 살다가 작년에 돌아가신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1994년 등단해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을 냈으며, 동서문학상 등을 받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5-03-1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저민 시네요. 문태준님은 플레져님을 통해 처음 알았네요. 예전에 올리신 < 맨발 > 말이죠.

릴케 현상 2005-03-1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서정성이 강한 시들이 계속 부각되나 봐요

플레져 2005-03-1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자명한 산책님, 저 시 너무 좋지 않나요? 가슴이 저려요...

릴케 현상 2005-03-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네요 약간 복잡해지는데요-_-

플레져 2005-03-1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출처 : urblue > 젊음 - 파블로 네루다

 

         젊음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냄새,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性的 과일,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
          집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 설레는 방들,
          지난날 속에 잠자고 있는 요들,
          높은 데서, 숨겨진 창에서 바라본
          야생 초록의 골짜기 :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는 한창 때.

                                    ─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번도 더 입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詩 : 이가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5-02-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우와~~~~
플레져님, 설연휴 잘 보내셨죠?
이가림 시인의 저 시 그 중에서도 특히 서정적인 제목을 참 좋아했었죠.
그림이 뭔가 충격적입니다.

물만두 2005-02-1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그림 많이 본 그림인데 생각이... 잘 보내셨죠^^

플레져 2005-02-1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얀 사우덱의 그림 같아요. 제가 저장해놓은 파일명이 확실하지 않아서 이름은 올리지 않았어요. ^^
 

  방문객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詩 : 마종기



Edward Hopper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2-04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5-02-0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서재 방문자 수가 10000을 넘은 지 이미 오래군요. ^^
(이 좋은 페이퍼에 이게 도대체 뭔 소리래... ㅜㅜ)

플레져 2005-02-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 : ^^
그러게요. 그날이 언제였는지...좀 아쉽지요? ㅎㅎ

진주 2005-02-0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저 아줌마는 스커트 밑에 뭘 입기라고 했나요???왜 난 안 보이지? ㅎㅎ
(이 좋은 페이퍼에 이게 도대체 뭔 소리래...ㅜㅜ)하얀마녀님,이런 것두 찌찌뿡인가요?

플레져 2005-02-0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박찬미님...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