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빛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짐에 따라
그대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흰 먹빛이 말라버리는 날
나 그대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
꽃의 영광이여 !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그때 영광 찬란한 빛을  얻으소서.

윌리엄 워즈워드 詩



edward dufner - morning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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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1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원의 빛하면 꼭 생각나는 여배우가 있죠... 쓸려다 이름 까먹음 ㅠ.ㅠ 아, 나탈리 우드...

플레져 2005-09-1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제가 어제 나탈리 우드가 나온 초원의 빛을 봤거든요. 그래서 흑흑...
영화페이퍼 쓰려구요. 흑흑...

icaru 2005-09-1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원의 집...도 생각나요..

2005-09-12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12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망록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치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물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 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 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詩 김경미



henri matisse - 붉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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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9-1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들이 요즘 이러니까...수필가들은 밥 굶은 게야...암..

icaru 2005-09-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방...맘에 들어요...
잘 닦은 빈 와인잔도 좋고..

근데 이 시...읽어보니... 물망초가 생각나는 시네요..

비로그인 2005-09-1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저런 붉은 빛깔 남방 함 입어봤음 좋겠어요..(플레져님댁에서두 남방 열혈마니아 모드로..)

플레져 2005-09-12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수필가들도 시를 쓴다면...흠...
이카루님, 나두 저 붉은방이 넘 좋아요. 마티스의 붉은방이 저거 말고도 또 몇 편 있는데....어디있더라... 암튼 잊지 않고 있다가 찾아서 올릴게요 ^^
복돌님, 어떤 여자애는 남방을 난방이라고 써서 늘 저를 헷갈리게 했었어요. 붉은 빛깔 남방 뿐만 아니라 모든 색이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

여울이 2005-09-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신경숙의 모음시집 <내 마음의 빈집 한 채>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경숙 소설가의 취향답게 감성적인 시들이 많았죠. 제 취향하고도 맞았던 것 같은데.... '비망록'은 유난히 가슴을 치던 시입니다. 뭐랄까? 24살 그 즈음에 겪었던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발이 제대로 땅에 닿은 것 같지 않은 감정들이 느껴진달까요...

icaru 2005-09-1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럼..마티스네 방도 구경하러 다시 오갔어요!!

검둥개 2005-09-1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가 그 안도현 시인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었던 그 신춘문예 당선작이 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 (이런, 야사에 강한 모습 같으니라고 =3=3=3)

플레져 2005-09-1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보리밭님, 스물 네살이 아닌 이 가슴도 치고 가는 김경미 시인의 시를 좋아해요 ^^
이카루님, 그러슈!
검둥개님, 네 맞아요. 야사를 더 들려주세요...ㅎ

검둥개 2005-09-1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다 아시면서 =3=3=3

잉크냄새 2005-09-1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날같이 살고 싶었던 한철....
"아무 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은 한동안 저의 MSN 아이디였습니다.

플레져 2005-09-1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
잉크냄새님, 그렇게 멋진 아이디를!! 전 msn 안해서 친구 목록이 다 사라졌어요 ㅎㅎ
 

밤 난간에서



누가 슬픔의 별 아래 태어났으며
누가 슬픔의 별 아래 묻혔는가.
이 바람 휘황한 高地에서 보면
태어남도 묻힘도 이미 슬픔은 아니다.

이 허약한 난간에 기대어
이 허약한 삶의 규율들에 기대어
내가 뛰어내리지 않을 수 있는
혹은 내가 뛰어내려야만 하는
이 삶의 높이란,
아니 이 삶의 깊이란.

詩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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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9-0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의 높이....절망의 깊이....

마태우스 2005-09-0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사진 플레져님 사진이죠! 멋지세요
-플레져님의 모든 면에 다 열광하는 마태-

플레져 2005-09-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절망의 깊이는 오늘도 또 한 눈금 내려갔어요...
마태우스님, 헉. 님 덕분에 또 제 절망의 깊이와 희망의 높이가 한 눈금씩 늘어났어요 ㅠㅠ ^^
 

흔들지마

흔들지 마, 사랑이라면 이젠 신물이 넘어오려 한다.
내 잔가지들을 흔들지 마.
더이상 흔들리며 부들부들 떨다 치를 떠느니,
이젠 차라리 거꾸로 뿌리뽑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프라하에서 한 집시 여자가, 운명이야, 라고 말했었다.
운명 따윈 난 싫어, 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었다.
아름다움이 빤빤하게 판치는 프라하, 그러나 그 뒤편
숨겨진 검은 마술의 뒷골목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누렁개를 옆에 끼고 땅바닥에 앉아
그녀는 내 손바닥을 읽었다.
나는 더이상 읽히고 싶지 않다.
나는 더이상 씌어진 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운명이라 말하지 마, 흔들지 마.
네 바람의 수작을 잘 알아, 두 번 속진 않아.
새해, 한겨울, 바깥 바람도 내 마음만큼 차갑진 않다.
내 차가운 내부보다 더 차가운 냉수 한 잔을
마시며, 나는 차갑게 다시 읊조린다.

흔들지 마, 바람 불지 마, 안 그러면
난 빙하처럼 꽝꽝 얼어붙어버리겠어.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오고 가면서
내게 수상한 바람 소리들을 보낸다.
그때마다 나는 접시 깨지는 소리로 대답한다.
"접근하면 발포함"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나는 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한 게 아닌,
내부를 향한 내 안의 폭탄이다.

詩 최승자





Tadahiro Ues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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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9 0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평행선

 

우리는 서로 만나 본 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태어났기에
어쩔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와지면 가까와질까 두려워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를 져 버리며 가야만 합니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둘이 되어 본 적도 없습니다

詩 김남조



rafal olbinski - other people's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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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9-0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아하는 시지요. 특히 마지막 구절...캬....

플레져 2005-09-0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어린 나이에 저 시를 읽고 캬~ 이랬으니... 근데 지금은 절로 캬~ 에요,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