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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강의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책을 읽는 중에도 끊임없는 사고를 하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선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지금까지 내가 내렸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를 되돌아보게 된다.
30년 가까이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Justice)에 대해서 강의한 강의노트가 책으로 엮어 나왔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를 보자. 국어사전(동아 새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정의(正義) : 1)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바른 도리
2) (법전 따위의) 바른 뜻 (반) 불의(不義)
저자는 책에서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학생들과 독자의 사고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에서 책 제목이 그러하니까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답은 내가 내려야 한다. 그러기위해 생각을 해야 한다. 딜레마에 빠져도 할 수 없다. 하버드 학부생들도 종종 겪는 일이라고 한다.
최근 천안함 사태가 국내외적으로 남긴 문제점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천안함 근무자이자 생존자들에 대해 염려되는 점이 남아 있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그 생각들을 어떻게 가라앉힐 것인가?
천안함 이야기는 저자가 상이군인훈장이야기를 예로 들 때 생각난 이야기이다.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을 놓고 벌어진 최근의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미군은 1932년부터, 전투를 벌이다가 적의 군사행동으로 다치거나 사망한 군인에게 훈장을 수여해왔다.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은 영광과 함께 재향군인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특전을 얻는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래 ‘외상후 증후군(스트레스 장애)’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는 재향군인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은 잦은 악몽이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들에게도 상이군인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신 손상도 신체 손상만큼이나 사람을 쇠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자문단은 이 문제를 논의한 끝에 , 2009년 상이군인훈장 대상을 신체 손상을 입은 군인으로 한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적이 군사행동을 통해 의도적으로 유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묻는다. 국방부의 결정은 과연 옳았는가? 이유만 놓고 볼 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상에 따른 정신장애는 다리가 부러진 경우보다 진단은 어렵지만, 그 후유증은 더 심각하고 오래간다. 훈장의 의미와 훈장이 칭송하는 미덕이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훈장과 관련한 미덕은 무엇일까? 다른 무공훈장과 달리 상이군인훈장은 용맹이 아닌 희생을 칭송한다. 영웅적 행동이 아니라 적에게 입은 손상만이 기준이 된다. 문제는 어떤 손상이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재향군인이 모인 상이군인훈장협의회(MOPH)는 훈장 수여대상을 정신손상까지 확대하는데 반대하면서, 그렇게 할 때 영광을 “깎아내리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의 대변인은 “피를 흘린”행위가 훈장 수여의 자격요건이 되어야한다고 했다.
‘정의’의 정의는 무척 어렵다. 시대마다 , 나라마다, 집단별로, 개인별로 각기 틀리다. 이쪽에서는 정의가 저쪽에선 불의가 된다. 저자는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논하면서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강의(책)에는 우리보다 앞서간(사상, 삶)현자들, 고대와 근현대 정치철학자들이 게스트로 초대된다. 제레미 밴담, 존 스튜어트 밀,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존 롤스 등이다. 이들을 초대하면서 저자는 이 책이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고 표현한다. 정치사상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연명치료중단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 할머니는 201일 만인 지난 1월 11일 별세했다. 이후 연명 치료중단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말기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이 나왔다. 7월 15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연명치료중단의 제도화를 위해 운영해온 사회적 협의체 활동을 종료하고 발표한 주요합의사항에 따르면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특수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수분이나 영양공급 같은 일반적인 연명치료는 중단 될 수 없다.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선 환자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말기환자에 대한 ‘환자가 연명치료중단을 원할 것’이란 추정에 의한 중단 인정여부는 사회적 협의체에서 의견이 엇갈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연명치료중단과 안락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락사 문제 역시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이 정의로운 생각과 행동이냐고 묻고 있다. 2007년 79살의 잭 케보키언 박사가 삶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 말기 환자들에게 치사 약물을 투여한 죄로 미시간 교도소에서 8년간 복역하고 출소했다. 그는 가석방조건으로, 앞으로 환자의 자살을 돕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케보키언 박사는 1990년대에 안락사 허용운동을 벌었고, 자신의 설교를 실천에 옮기면서 환자 130명을 도와 생을 마감하게 했다.
언뜻 보기에, 안락사 논쟁은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교과서적으로 적용한 사례 같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에, 안락사를 금지한 법은 부당하다. 내 삶이 내 것이라면, 내게는 그것을 포기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 내 동의를 받아 누군가 내 죽음을 돕는다면, 국가는 여기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안락사 허용에 찬성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한다거나 우리 삶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 다수가 소유권에 호소하기보다 존엄과 연민을 내세운다.
저자는 각 챕터마다 독자의 자유로운 지적 유희를 위해 정의의 개념을 돕는 단정적인 표현을 조심스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반영되어지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법한’가언적 선택일수 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 챘겠지만,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