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리 시편 - 심호택 유고시집
심호택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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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건 그럭저럭 나았소 / 올해도 김장 몇 포기 담갔소 //

사랑이여 / 당신이 사준 고동색 파카는 / 시골집 수도펌프가 입게 되었소

            -  ‘겨울편지’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는, 읽으면서 그림이 그려지던가, 가슴이 촉촉 해진다던가 해야 한다.
시인의 시는 우선 쉽다. 그리고 언어의 기교도 없는 편이다. 언어의 절제 또한 적절하다.
이 시집은 시인의 유고시집으로 출간 되었다. 불문학자인 저자는 1991년 『창작과 비평』겨울호에 「빈자의 개」등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늦깍이 시인 데뷔인 셈이다. 『하늘밥도둑』외 3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원광대 불문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시작(詩作)을 하던 중 2010년 1월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1947년생이다.

이 시집은 유년시절의 스케치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그 여린 정서를 지금껏 가슴에 고이 싸놓았는지, 천성 시인의 마음이다. 아울러 농촌 마을의 여러 심성들이 그려진다. 

모르는게 없으면 / 그게 선생인데 / 농부는 사양 한다 / 국졸이라 선생 자격 없다고 //
형님으로 모신다니 /  그는 한 자랑이다 / 혀가 곧을 때나 꼬부라졌을 때나 / 아 글쎄! /
개울 건너 선생님이 자기를 / 형님으로 부른다고 //
이날까지 육십 평생 / 자기가 이렇게 대단한 줄 / 처음 알았다고 
   

                                                 - ‘선생의 형님’ 전문

내 생애의 수많은 저녁 중에 / 가장 포근했던 한 때는 /... (중략)
“어서 밥 먹고 학교 가거라”  / 잠결에 들려오던 식구들 말소리가 /
한바탕 웃음 끝에 / 거짓말로 되는 순간이었다. //
낮잠 자는 아이를 놀리자고 / ...(중략) 시간이 많이도 생겨서 /  

부자가 된 듯 한 동안이었다. 
 

                                            - ‘수많은 저녁 중에’ 

 

시를 읽다가 미소를 짓게 하는 분위기도 여럿 만난다. 
 

우리 육학년 나이 든 반장이 / 대막대기 하나 들고 / 애들한테 학교 우물물 떠오게 해서 /
변소청소 시키고 있었다 // 나 좀 들어갔다 나오자 / 젊은 여선생이 볼일 보고 나온 뒤 /
녀석이 문 열어보고 / 막대기로 더러운 데 톡톡 두드리며 / 말했다 //
가시내두 참 ! / 기왕이면 여기다 좀 깔기지 ! 
                                          

                                            -  ‘청소시간’ 전문


한번은 이장 마누라가 / 어머니와 상의하는 눈치였다 /
어린 내가 있거나 말거나 / 성님, 어쩐대유.... / 또 애가 들어섰어요 ..../
낳아놓은 것들 키우기도 심난한데 / 한 걱정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 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 가만히 들어보고 싶었으나 /
어머니도 뾰족한 수 없는 눈치였다 / 기다란 한숨이나 내쉴 뿐 /
그러니께 그놈의 관계 ....  /  안 맺고 살 수도 없고... 

                                                   - ‘관계’ 전문

63세에 되던 1월 30일 새벽, 동료 교수의 상가에 문상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타계한 시인이 안타깝다. 가족들을 위해서도, 후학들을 위해서도, 시문학을 위해서도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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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음 주지마라 - 다 지난 후에 깨달은 한 가지
웨인 W. 다이어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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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 솔직해보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열을 올리는 자아에게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자아는 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는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라고 해도 기꺼이 조종자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고 나면 자신이 어떤 개인이나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그런 방해가 그릇된 자신의 월권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저자는 이 책을 그의 또 다른 저서를 내용으로 제작된 영화 〈시프트(the Shift)〉와 더불어 의미와 목적이 없는 삶을 벗어나 의미와 목적으로 가득한 삶에 다가가는 여행에 동참하라고 손짓하는 초대장이라고 한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여행에 몸을 담은 사람은 어떤 전환이나 변화과정을 거쳐야한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거치는 첫 번째 전환은 우리를 비존재에서 존재로 데려간다. 다시 말해 정신과 같은 무형의 것에서 일, 경계, 물건이 존재하는 물질세계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글의 진행은 어디에서부터로 시작해 욕망에서, 어디로?  의미로 등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근원을 에너지라고 표현한다. 물론, 새삼스러운 이야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 각 사람 또는 생물은 다양한 주파수를 가진 진동일 뿐이라고 한다. 진동이 빠를수록 신성에, 우리의 기원에 대한 이해에 더 접근하기 쉽다고 하는데, 글쎄..선뜻 동의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빠르다는 생각이 그렇다. 저자의 이론은 신체운동학에서 도입했다. 빠르게 진동하는 생각은 힘을 생성하지만 느리게 진동하는 생각은 약한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하는데, 그 속도만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은 좀 무리다.

저자는 서양인이면서 노자의 책을 깊이 본 듯하다. 노자의 「도덕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일체성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우리가 ‘타자’로 보이는 것들의 세계에 지나치게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도덕경》첫 편에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는 내용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도는 도라고 불리는 순간 종적을 감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분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일체성은 오직 하나를 의미한다. 수학의 ‘0’처럼 나누거나 떼어낼 수 없다. 우리가 그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그것을 부르자마자 그것은 다른 것으로 분리되고 결국은 일체성을 가진 통일체가 되지 못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잘못된 자아의 여섯 가지 거짓말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1. 나는 곧 나의 소유물이다.  2. 나는 곧 내가 하는 일이다. 3. 나는 곧 남이 생각하는 나다.   4. 나는 남과 다르다.   5. 나는 내가 잃은 것과 분리되어 있다. 6. 나는 신과 분리 되어 있다.

자아가 유턴을 하고 우리가 온 장소를 향할 때 벌어지는 일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내면의 역량이 커진다.  2. 타인과의 유대를 느낀다.  3. 도덕, 평화, 생활의 질을 통해 동기를 얻는다.  4. 인생의 기적을 기대한다.  5. 명상 수행을 추구한다.  6. 자신이 아름답고 정교한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7. 비판이 줄고 이해와 용서가 늘어난다.

“세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마라. 대신 자신에게 무엇 때문에 숨을 쉴 수 있는지 물어봐라. 세상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살아 있는 남자와 여자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열정을 바치며 사는 사람들이 본래부터 갖고 있었던 진실성이다. 그런 것이 진실의 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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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 / IVP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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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카리스마, 정신적인 총명함, 정서적인 힘, 조직적인 능력 등과 같은 천부적인 재능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어떤 때에는 그것이 영적인 생명력과 깊이로 오인될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기독교 문화는 영적인 깊이를 가진 사람과 재능이 많은 사람을 쉽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밀과 가라지처럼 그 둘은 구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이들이 실은 난쟁이에게 조종당하고 있으면서도 영적인 거인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인 ‘내면세계’와 ‘영적성장’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본다. ‘내면세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적성장’은 왜 필요한가? 
 

저자는 목회와 강연,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목회자다. 이 책이 태동하게 된 계기 또는 발아 상태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 때부터 목사 집안에서 성장한 저자는 통속적인 표현을 빌리면 ‘한창 잘나가는 목회자’였다. 상당한 규모의 교회에서 그야말로 정신없이 사역을 하던 어느 날, 연달아 닥치는 일을 처리하느라 그 일에 대한 우선순위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던 저자는 30세가 되던 해 어느 토요일,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벽에 부딪힌다는 표현도 좀 진부할 정도로 아주 절박한 상황을 겪게 된다. 그것은 그의 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서 배터리 표시기가 깜빡이며 비어있는 공간으로 처리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날 아침에 일어난 일을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내 내면세계는 마치 홍수로 완전히 침수된 지하실과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감정이자 그 이면에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침수된 지하실처럼 그 물을 퍼내야만 했다. 그것이 눈물바다를 이룬 것이었다.”

이 책의 초판을 읽은 독자들이 저자에게 다가와 “당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삶의 질서를 잡을 수 있으니 참 좋겠군요.” 하고 말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 때 저자는 이렇게 답을 하곤 했다. “그 책은 천성적으로 질서정연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닙니다. 그 책은 자신이 어떤 인물이라도 되려면 삶을 제대로 정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사람이 쓴 것입니다.”  대부분은 저자의 이런 말을 듣고 격려를 받는다고 한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잠 4:23)

성경의 기자들은 무엇보다 우리들의 내면세계를 잘 가꾸고 유지하는 일이 최우선이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면세계로부터 외부세계를 지향할 때 가장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이것을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향하는 접근’(inside-out approach)이라 부른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불러 세우실 때 예수님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제자들을 선택하셨을까? 하고 저자는 자문해본다. 그리고 그가 내린 답은 '쫓겨 다니는 경향'(drivenness)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쫓겨 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은 우선 목적의식이 이기적이다. 최선의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의식이 강하다. 쉽게 동요된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도 잘 모른다. 그들의 목적은 언제 예수님을 따라 나서겠다거나 그런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기 원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나에겐 그런 면이 없는가? 우리에겐 그런 모습이 안 보이는가? 생각하게 된다.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그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영적 훈련가 찰스 카우먼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해본다.
19세기 한 탐험가가 아프리카의 오지를 탐험하기 위해 일단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고용했다.  처음 사흘 동안은 예상 밖의 속도로 빨리 진행되어 원래 일정보다 훨씬 앞서 갔다. 이 탐험가는 무척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나흘 째 되던 날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아침에 텐트에서 일어났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들리는 말이, 아프리카인 지원팀이 그 날은 거기서 그냥 머물기로 정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지금까지 그들이 너무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이제는 잠시 멈추고 그들의 영혼이 그들의 몸을 따라잡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몸이 마음보다 앞서 가서 좋을 것은 없다.

저자는 쫓겨다니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1. 오직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에만 만족감을 느낀다.
2. 성취를 표시하는 상징에 집착한다.
3. 고삐 풀린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4. 온전한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5. 대인관계 기술을 닦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6. 경쟁심이 강하다.
7. 화산처럼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다.
8.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고, 노는 것을 싫어하고, 영적인 예배를 피한다.

한 부부가 저자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들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서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부인은 남편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한 상태였다. 부인이 설명하는 그 이유는 남은 식구가 평화롭게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남편의 기질과 가치관을 참으면서 계속 살 마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헤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내가 왜 그러는지도 이해가 안 간다. 남편 본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쫓겨 다니는 남자와 그 아내의 모습이다. 그의 과도한 성취욕 때문에 결혼 생활과 가족 그리고 본인의 건강까지 희생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식구가 모두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가서, 거의 막내가 이미 자고 있는 늦은 밤에야 귀가했다. 어쩌다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그의 머릿속엔 업무와 관련된 사항 밖에 없었다. 당연히 식사 중 전화가 오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전화통에 매달려 있다. 
 

가족과 충돌할 때면 화를 폭발하곤 했음을 그도 시인했다. 그는 가족에게 무척 괴팍하고 위압적이었다.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도 대화를 귀찮아하고 혼자 떨어져서 술이나 마시곤 했다. 어떤 친구들이 있냐고 묻자 사업상 거래하는 사람들 외에는 이름조차 대지 못했다. 사업 말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느냐고 묻자 스포츠카니 보트니 골프 회원권이니 하는, 사람이 아닌 물건들뿐이었다. 대개 너무 바빠서 즐길 수도 없었던 것들이지만..

“쫓겨 다니는 사람도 과연 변화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한 변화는, 쫓겨 다니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이 부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런 발견은 그리스도를 만나 눈부실 정도로 강력한 빛을 받는데서 비롯된다. 열두 제자들도 발견했듯이 인생에서 한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쫓기는 삶의 뿌리와 모든 양상들이 모두 폭로되고야 만다. 쫓겨 다니는 삶을 해결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동기와 가치관을 가차 없이 파헤치기 시작해야한다.”

저자는 영적 성장을 위한 훈련 네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침묵과 고독의 추구,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 사색과 묵상, 예배하고 중보 하는 기도 등이다. 그 외 독서와 일기쓰기를 권유하고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의 일기에 써 있는 이 말은 우리가 내면세계의 질서를 회복하고 영적성장을 이뤄야 할 당위성을 말해준다.
“나는 10년 전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 온화해지지도 않고 더 활기 있게 변한 것도 아니고 노련해지지도 않은 채 그저 뻣뻣하게 굳어 있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챔버스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어땠을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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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특별판)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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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그냥 못 지나친다. 그래서 이 책을 뽑았다. 그런데, 판타지소설이다. 한번 읽어보자! 라는 마음이 움직였다. 혹자는 판타지 소설을 주류문학대열에 끼워주기 힘들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주류, 비주류는 고루한 분류방법이다. 문학작품에서 주는 영감이나 상상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화책을 즐겨 보다가, 소설가나 시인, 희곡작가도 될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발터 뫼르소’ 도 시작은 만화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활동했다.

이 책의 원저는 차모니아 출신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 라고 한다. 저자의 표현이다. 물론 허구다. ‘차모니아’ 라는 대륙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궁금하면 목차 다음에 그의 초상이 있다. 날개 달린 공룡이다.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는 머리를 좀 비워 놓아야 한다. 아니, 좀 내려놓아야 한다. 읽어가면서 황당하다는 생각이 멈춰지지 않으면, 별수 없다. 책을 덮어야한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것은 병약하고 겁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한테는 차라리 이 책을 다시 진열대 위에 놀려놓고 슬그머니 아동문고 쪽으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통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책 공화국 부흐하임을 향한 미텐메츠의 탐험 기이자 여행기록이다. ‘부흐하임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고서점의 수만 해도 무려 오천 개가 넘었으며, 대충 짐작하기로 완전히 합법적이지는 않은 소규모 서점들의 수도 천여 개는 되었다.’

저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등장 생물들(사람이 아님)의 입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 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성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도덕적인 책이나 비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이란 잘 쓰였든가 못 쓰였든가, 그게 전부다.” 
 

“우리는 독서를 하면 배가 부릅니다. 독서처럼 아주 고도의 정신적인 일을 하면 음식을 소화할 때와 같은 평범한 현상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어떤 책이 얼마나 잘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 말은, 네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네 안에서 얼마나 환하게 오름이 타오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목적을 달성했다. 긴 여정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서, 그 힘들다는 ‘오름’의 느낌을 느끼고, 찾고자 했던 『피비린내 나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해피 엔딩!

“바로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오름의 힘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바람처럼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부흐하임의 불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머릿속으로 불어오더니 단어들의 소용돌이로 꽉 채웠다. 그러자 그 단어들은 잠시 흥분한 심장이 고동치는 사이에 문장이 되고, 페이지가 되고, 장(章)이 되더니 마침내 방금 그대들이 읽은 이 이야기가 되었다. 오, 내 충실한 친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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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츠지 - 조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오오이시 스스무 외 지음, 임희경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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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여러해 전, 대한극장이 리모델링되기 전 그곳에서 「쉰들러 리스트」를 보았다. 유태인들을 도와 그들을 단 한사람이라도 나치 치하에서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독일인 쉰들러. 그 영화를 보면서 나치의 잔혹한 행위에도 몸서리쳤지만, 나치 집단의 시야로 볼 때는 이적행위로 단정할 수밖에 없는 쉰들러의 목숨을 건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고 위험한 상황 속으로 뛰어들게 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는 나의 이익과 반대되는 일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일상에 적응되어 있는 일이 다반사이다. 나 역시 나와 상관없는 일, 나의 이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는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어떤 생각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그 마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곧 사라져버렸다. 밝은 불이 켜지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햇빛 속에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그렇게 없어졌다.

그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되살아났다. 책 표지에는 조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후세 다츠지 라고 씌어있다. 소제목은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라고 되어 있다. 저자들은 4사람이다. 일본인 오오이시 스스무 외 재일한국인 고사명 그리고 두명의 한국인 교수 이형낭, 이규수이다. 2000년 2월 29일, 삼일절 기념일 전날 밤 방영되었던 MBC 프로그램 ‘일본인 쉰들러 - 후세 다츠지’가 한국인들에게 소개되었다. 
 

뒤이어, 같은 해 11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 〈후세 선생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2004년 10월 12일, 한국정부는 후세 다츠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때 나종일 주일 한국대사가 한 말이 후세를 간결하게 표현한 듯 싶다.

“다른 나라 국민을 사랑하는 자야말로 자국민을 사랑할 수 있다. 후세야말로 일본의 애국자다. 이 훈장 수여는 한일 발전을 기원하는 한국민의 맹세다.” 
 

변호사인 후세가 변호 활동과 사회운동을 한 때는 1905년부터 1953년까지 라고 한다. 이 시기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에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제도를 확립한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후세는 누구보다도 조선인을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변호했다. 그 범위는 조선독립을 지향하는 학생과 애국지사부터 일본의 관, 민에게 토지를 빼앗긴 농부들, 위험천만한 술 밀조로 체포된 사람들에게까지 미쳤다. 특히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시기에 목숨을 걸고 조선인 구원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후세가 40세를 맞이하던 1920년은 후세가 새롭게 태어난 해로 기록되고 있다. 이미 후세는 변호사가 되고 난후 도쿄에서 손꼽힐만한 훌륭한 사무소를 차리고, 가문(家紋)을 새겨 넣은 인력거(아마도 승용차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전인 이 당시에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을 듯)
를 맞추는 등 시민적 성공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 부와 출세의 길을 스스로 끊은 것이 바로 1920년이었다. 마음속 중대한 결심을 내린 후세는 「자기 혁명의 고백」을 선언하면서 그 내용을 보도기관, 지인, 피고인들에게 보냈다.

“뚜렷하게 사회운동의 급격한 조류를 느끼는 바, 종래의 나는 주로 법정의 전사라고 불리던 변호사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요 활동장소를 법정에서 사회로 옮기고, 사회운동을 더욱 솔선수범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사무소와 주택의 차이를 구별하겠다. 한편 취급사건을 도쿄에서는   

1) 관권 등의 인권 유린에 우는 누명을 쓴 자의 사건.
2) 재벌의 횡포에 시달리는 약자의 사건.
3) 진리의 주장을 압박하는 언론범 사건.
4) 무산계급의 사회운동을 박해하는 사건 등.
사회적 의의를 포함한 사건에 한해, 지방에서는 사법제도 혁신을 위해 사건의 종류와 성질 여하를 막론하고 되도록 출장 변호 의뢰에 응할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운동의 첫 번째 기수로소 먼저 자기 혁명을 단행한다.
덧붙여 상세한 이유 및 무료법률상담, 사회시사 강연계획 등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서는 오는 6월1일부터 발행하는 잡지인 「법정에서 사회로」를 따라주길 바란다. 하여튼 이 통지까지다.      그럼 이만.
추가해서, 이미 맡은 사건은 사건의 성질에 관계없이 이전처럼 열심히 성실하게 처리해서 의뢰자의 기대에 부응하겠으니 안심해도 된다.      1920년 5월 15일    후세 다츠지

이와 같은 「자기혁명의 고배」후 후세는 이 혁명서 에서 밝힌 대로 그의 남은 생애를 그의 의지대로 불태웠다. 법정에서, 심지어 변호사 단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후세는 법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리고 1933년 후세는 신문지법, 우편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금고 3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는다. 그 후로도 다시 징역 2년의 실형. 그리고 변호사 등록도 완전히 말소 된다.

후세의 에피소드 중 1948년 8월 아키타 지방법원에서 아키타 주세법 위반사건(탁주밀조사건)이 있다. 이 당시의 배경은 조선인의 일상생활은 의식주 모두 극한의 상태였다. 일본 정부는 애당초 귀국선을 준비하지 않았고,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모두들 조국으로 돌아갈 여비조차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조국으로 귀국했다가도 이승만 정권의 혼란에서 도망쳐 일본으로 재입국하는 자도 많았다. 이렇게 조선인들은 차마 굶어 죽을 수 없어서 탁주 밀조를 시작했다. 이형낭 교수는 면밀한 실증에 기초해 미야기현에 있는 조선인의 70%가 탁주와 엿 제조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추계한다. 아키타 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주세법 위반 사건으로 당시 유일한 무장 집단이었던 경찰대를 동원해서 조선인 부락을 습격했다니 이는 도가 너무 지나쳤다.

이 사건후 후세가 변론하는 법정에서 경관을 증언 심문대에 세웠다. 
 

후세  “당신(증인)은 무장을 하고 수색했는가?”
증인  “무장을 하고, 라니...무슨 말씀입니까?”
후세  “무장의 정의는 가죽 행전을 두르고, 군화를 신고, 곤봉을 휴대하고 출동한 것을 말하는 거다.”
증인  “그렇다면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후세  “분명히 무장하고 조선인을 폭도 취급했지!” 
 

책을 읽다보면 후세 개인적 삶의 흔적은 물론 그 시대적 무대인 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이 많이 그려져 있다. 
 

좀 경우가 다른 이야기일지 몰라도 최근 우리나라는 점점 많은 외국 근로자들이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고, 다문화가정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머잖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미국만큼은 아닐지라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공존해가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젠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의 정의에서 벗어났다는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단일민족’여부를 가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인 후세가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우리가 우리 땅,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급여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나 다문화 가정을 이루면서 오는 골 깊은 갈등과 문제점들을 매스컴을 통해서 알게 될 때 마음이 아프다.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후세 다츠지’의 삶을 통해서 되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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