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낯설다 - 내가 모르는 나, 99%를 찾는 심리여행
티모시 윌슨 지음, 진성록 옮김 / 부글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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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있을 것 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쏠린다면,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될 것이다.


최근 심리학 분야에서 떠오르는 핵심 주제 중 ‘자기 지식’(self-knowledge, 자신에 대한 지식)이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이후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지식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자기통찰에 실패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하는 의문을 꾸준히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 분야에서보다는 자기계발 분야에서 ‘자기 지식’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 티모시 윌슨은 심리학 교수로서 이 ‘자기 지식’ 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갖고 있다. 지은이는 감정예측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다. ‘감정예측’의 대가라? 이 사람과 같이 다니다간 좀 피곤할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보다 앞서가며 내게 이야기를 해준다면 매우 혼란스럽겠다. 이런 경우엔 진짜 내가 누구인지?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들겠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뼈를 깎는 통찰을 한다 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비(非)의식(nonconscious)에 숨어 있는 성격적 특성과 감정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비의식에 들어 있는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일이 언제나 우리들에게 유익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학계의 연구원들이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재발견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자기지식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연구 할 수 있는 대상이긴 할까?

앞으로 내가 더듬어 볼 질문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참으로 놀라울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우리의 일상에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주요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계획이라고 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나 잘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와 사람들은 자기지식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무의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몸에는 자기자극감수 또는 자기수용성이라고 부르는 여섯 번째 감각인 프로프리오셉션(Proprioception) 이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근육과 관절과 피부 등 지각기관으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피드백이다. 이 기능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의 위치를 조정하면서 부드럽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능이 손상되었을 때. 우리의 팔다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팔이나 다리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고 만다. 이러한 것이 결국 무의식적인 자기자극감수 기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과 언어, 운동계(motor system)를 조종하는 정신작용들은 대부분이 자각 밖에서 이뤄진다. 대통령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연방정부의 거대한 활동과 아주 비슷하다. 만약 행정부처의 하급 공무원들이 몽땅 일을 하지 않는다면, 행정부의 일은 거의 처리 도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에 어떤 사람의 지각, 언어, 운동계가 작동을 멈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제대로 기능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고차원적인 기능들은 어떤가? 생각하고, 추론하고, 숙고하고, 창조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능력은 어떨까? 저차원의 기능들(예를 들면, 지각과 언어이해 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반면 보다 고차원적인 기능(예컨대, 추론과 사고 등)은 의식에서 이뤄진다.”



과학자들은 각각의 감각기관이 가진 수용기 세포(receptor cell)와 이 세포에서 뇌로 가는 신경의 수를 헤아려 본 결과 매순간 우리의 오감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1천1백만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40개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그 방대한 정보들은 어찌 된 걸까? 다행히도 우리는 이 정보 중 많은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모습 그대로, 나도 나를 보고 있을까?

사람의 성격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한다. 즉, 비의식적 성격과 의식적 성격이 그것이다. 리처드 루소의 소설 〈진지한 남자 Straight Man〉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하는 말을 들어본다. “진실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 길은 전혀 없다는 것이지.,.... 우리는 어떤 일을 한 뒤에야 겨우 우리가 무엇을 하려하는지 알 뿐이야.... 우리가 배우자와 자식, 부모, 동료와 친구들을 두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더 잘 알지.”

책의 지은이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들어본다.

사람이 자신의 성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내용사이에 일치하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공감한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차례에 걸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결과가 뒷받침 되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본인이 내린 평점 또는 예측 결과와 타인(친구 또는 직장 동료들)이 내린 평점 을 비교해 본 결과 본인이 내린 예측은 실제 상황과 많이 차이가 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거룩하고, 더 친절하며, 도덕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때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때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 할 때,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과거에 한 행동을 반복해서 보아온 경험에 의존한다. 우리 자신의 행동을 예견할 때는 주로 자신의 성격에 대한 ‘내부정보’(타인의 의식 속에 심어진 실증적 정보가 아니라, 추상적인 정보 - 나는 다른 사람을 즐겨 돕고자 하는 친절한 존재이다)에 의존한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사람들의 내부 정보는 그들의 성격에 대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며, 완벽하게 정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즉, 실제적으로는 일상에서 친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그런 사실도 없으며,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도 본인은 꿋꿋하게 ‘나는 친절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이렇게 할 것이라고 혼자서 주장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성격에 대해 누가 더 훌륭한 판단을 내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를 묻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한 사람을 두고 여러 명의 친구들이 각기 다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마무리를 이렇게 하고 있다.

「훌륭한 일을 하라. 그러면 훌륭한 존재가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을 보살피는 행동을 하다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을 보살피는 존재로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친절한 일 한 가지를 했다고 해서 성자가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파트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단지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다시 사랑에 빠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면 감정과 성격 역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행동을 신중히 바꾸는 것은 새로운 행동 방식을 열어주는 것 이상으로 도움이 된다. 그런 노력은 또한 자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기회를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의 행동을 신중히 바꿔나가다 보면 자기지각까지 바꿀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던 사람들을 돕는 일에 많이 적용되고 있다. (....) 만성적으로 우울증을 보이는 사람을 치료하는 전략이 있다. 항우울제와 심리요법 등 여러 가지 치료방법이 있지만, 심리 요법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먼저 행동을 하고 그 다음에 감정이 따르도록” 지도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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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막내 2011-07-12 07:50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
 
삼매경 三魅鏡 - 세상을 비추는 지식 프리즘
SERICEO 콘텐츠팀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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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이 한 사람 또는 한 기업의 생명력을 키우거나 반대로 빼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대구의 한 골목에는 세 여자가 운영하는 주점이 있다. 이 가게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바로 간판이다.

3004


이를 어떻게 읽을까? 세 명의 여주인이라고 했으니 ‘삼천사?’ ‘세 천사?’

힌트는 뜻밖에도 그녀들의 고향에 있었다.


정답은 3004 = 삼천포


인문지리학(삼천포) + 수학(3004) +어학(four) 3가지 학문이 교묘하게 섞인 뜻밖의 만남

크리에이티브의 탄생이라고 불러도 좋을 대단히 수준 높은 작명법이 아닌가.”


이 글의 저자 김춘영은 서로 다른 장르의 지식을 자연스럽게 녹여 ‘짬뽕’시키는 능력! 이것이 크리에이티브의 첫 번째 조건인 ‘크로스오버’라고 한다. 여기에 ‘대단한 꿈’이 추가 되어야만 비로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위대한 아이디어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인류 역사에는 유명한 사과들이 있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애플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 이 사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인류의 운명을 바꾼 사과’라는 것!


“ 당신이 원하는 놀라운 창조는 멀리 있지 않다.

한 손은 다양한 분야와 마주 잡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가슴속의 담대한 꿈을 움켜쥐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에이티브의 조건이다.”



이 책의 제목은 삼매경(三魅鏡)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지식 프리즘이란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1년부터 CEO를 위한 동영상 지식정보 사이트인 SERICEO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주요기업 경영자들에게 경제. 경영 분야의 최신 정보뿐 아니라 리더십, 인문학, 역사, 문화예술 등 리더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리더들에게 가장 인기를 모은 콘텐츠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삼매경’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삼매경(三昧境)은 불교용어입니다. ‘세상의 모든 잡념을 떠나 하나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 삼매경은 한자가 다릅니다. 삼매경(三魅鏡)입니다. 풀이하면 3가지 매력적인 거울, 즉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책은 3부로 나위어집니다. 1부 세상에 없던, 발상을 하는 방법. 2부 위대함의 시작, 마음을 읽는 방법. 3부 인생에 한 번 쯤, 기적을 만드는 방법 등입니다. 이 책의 필진은 SERICEO 콘텐츠팀의 7 PD가 참여했습니다. 짧지만, 흥미롭고 발상의 전환을 유도해주는 글들이 여럿 실려 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이 개미를 이길 수 없는 이유 3가지는 유머의 한 토막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스토리입니다. 개미굴의 입구를 막고 있는 거북이개미는 평생을 그의 병두껑 처럼 생긴 머리로 막고 있습니다. 병정개미는 적군이 나타나면 먼저 자신의 몸을 던져 동료들이 군대를 모아오고 지하 개미굴이 방어태세를 갖출 시간을 벌어준답니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희생 DNA'는 인간이 개미를 이길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리스크 대처능력’입니다. 개미들은 사건이 터지는 즉시 가동 할 수 있는 80%의 대기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직원의 80%가 휴식하는 기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직원의 80%가 비상대기조인 조직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보는 불개미가 이집트에서 왔답니다. 전 세계 아파트를 석권했다는 불개미들의 정식이름은 ‘이집트 애집개미’. 개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체구로 어떻게 이역만리 한반도까지 정복한 것일까? 번식의 다변화를 위해서 공주개미들은 한배에서 형제 수개미들에게 정자를 받아 몸에 저장해놓는답니다. 그리고 여행자, 자동차, 여객기 등 움직이는 것은 뭐든 올라타고 각자 세계로 떠납니다. 식물도 피한다는 자가수분, 말하자면 ‘근친상간’ 인간이 감히 이런 금기를 깰 수 있을까?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이 시도할 수 없는 ‘금기에의 도전’ 이것이 개미를 이길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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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문명 - 고통 없는 문명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조성윤.이창익 옮김 / 모멘토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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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문명’이라하는 ‘무통문명’은 무엇인가?

이 책의 지은이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윤리학박사. 현재 오사카 부립대학 종합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생명학, 철학, 과학론 등으로 인문학의 연구 틀을 넓히고 새로운 인간학인 ‘생명학’을 제창하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중 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대사회는 ‘무통문명’이라는 병리(病理)에 삼켜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여서..‘끝없는 쾌락속의 불안, 기쁨을 잃은 반복, 출구 없는 미로 속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라고 적고 있다.


지은이가 ‘무통문명(無痛文明)’이라는 말을 처음 떠올리게 된 것은, 어떤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고 한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그 간호사는 의식이 또렷하진 않지만, 죽은 것도 아닌 그저 ‘편안하게 잠자는’ 상태의 환자를 돌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현대문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지은이는 다시 질문한다. 현대문명이란 중환자실에서 편안하게 잠자는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활기차게 일하고 즐겁게 노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단지 편안하게 잠자는 인간들을 도시라는 이름의 중환자실 속에서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와 같은 함정을 만든 것일까. 왜 문명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일까.


지은이는 인간들이 문명을 끌고 온 것은 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욕망 중에서도 ‘신체의 욕망’이다. 이를 다섯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생각한다.

1) 쾌락을 찾고 고통을 피한다.

2) 현상유지와 안정을 추구한다.

3) 틈새가 보이면 확대 증식한다.

4)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5) 인생, 생명, 자연을 관리한다.

인간은 신체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욕망을 꽃피우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 때 인간은 바깥세계와 인간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콘트롤(Control 이성’을 사용했다. 콘트롤 이성이란 미리 예상된 틀 속에 일들의 운행방식을 담아두는 지혜와 기술을 생산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자연환경과 인간자신을 관리하기 위한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이성을 신체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인간 안팎의 자연을 인간이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이성’의 역할을 지적하고, 이것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불렀다.


무통문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은이는 ‘생명의 기쁨’을 설명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는 어떤 조직에서 일을 하므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 안정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지금의 일이 가져다주는 수입과 안정을 지키고 싶은 것은 ‘신체의 욕망’이다. 그런데 일을 계속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모순이 자신의 안팎에서 축적되면, 나는 점차 어찌할 수 없는 불안이나 초조함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일의 양을 늘리거나, 술에 빠지거나, 혼외정사를 하거나, 자해행위를 반복한다. 일시적으로 괴로움이 사라져도 또 엄습한다. 일이 가져다주는 수입과 안정을 확보한 채, 거기서 비롯되는 괴로움을 얼버무리기 위한 선택을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이 고통 없는 문명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생명의 기쁨은 내가 얻으려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그 기쁨의 정의와 범위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잘산다는 것’이 꼭 평수 넓은 아파트에 고급 외제 승용차, 온갖 가전 신제품등은 물론 소위 호화로운 삶이 행복의 정의로까지 간다면 ‘살다 가는 삶’ 이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래도 이 땅에 살다갔으면 무언가 향내 나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떠나 가야하지 않겠는가? 즉, 생명의 기쁨에 대한 정의조차도 내가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얻고자하면 얻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 무통문명론에서의 ‘고통(痛)’과 ‘무통화’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지 짚어본다. “‘고통’에는 육체와 정신의 아픔이 다 들어있다. 많은 글에서 ‘고통’이란 단어는 그런 의미에서 사용된다. 한 인간에게 무엇이 아픔과 고통이 되는가는 다른 사람이 외부에서 정의할 수 없다. 무엇이 아프고 괴로운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사람은 아픔과 고통을 겪는 당사자뿐이다.(...) ‘무통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실히 비판해야 하는 무통화다. 그것은 예방적 무통화와 눈가림구조를 이용하여 고통에서 계속 도망치는 무통화다. 나는 그런 무통화와 싸우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무통문명’하에서의 인간적인 소통은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

“무통문명에서는 현재 자신의 쾌적한 틀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서로 그것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한다. 그러므로 만약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부분적으로 관계를 조정한다. 물론 각자의 쾌적한 틀은 손대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안될 경우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청산한다. 지금의 쾌적한 틀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기분 좋은 자극만을 골라 서로 제공하려는 사랑의 관계. 이에 반해서 지은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무통문명에선 가능하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정념(情念)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 정념이야말로 무통문명 하에서 지금의 쾌적한 틀을 일격에 부수어 버릴지도 모를 파괴력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무통문명과의 싸움. 그것은 ‘신체의 욕망’과 싸우는 일이다. 신체의 욕망은 우리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따라서 무통문명과의 싸움은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는 ‘신체의 욕망’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무통문명을 추진하는 연쇄(連鎖)를 도중에서 단절시키는 것만을 목표로 해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내면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무통화 장치’의 해제가 필요하다.

무통화장치란 나의 외부와 내부에 존재하며, 우리들의 신체의 욕망을 계속해서 ‘무통격류’로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이것을 ‘장치’라고 부르는 것은 외부의 영향으로 간단히 파괴되지 않는 안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고, 스스로 내부에 인간을 끌어들임으로써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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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대니 로드릭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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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모티브를 머리말에 실었다.

“몇 년 전 라틴아메리카의 작은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재정부 장관을 만났는데, 그는 상세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여주면서 최근 경제 동향을 설명했다. (...)

그 나라와 재정부 장관은 국제 경제기구와 북미의 학계에서 말하는 개발 정책의 교훈을 잘 따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주 착실한 학생이었다. 경제에도 소위 ‘정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 나라의 착실한 노력은 빠른 경제성장과 빈곤 퇴치라는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경제성장은 미미했고, 민간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저자 대니 로드릭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최우등으로 졸업했다는 소개 글은 좀 생뚱맞다.)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사회과학연구회가 제정한 앨버트 하시먼 상의 첫 번째 수상자다. 세계화와 국제경제, 경제개발 및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좋은 경제정책’과 이를 실행 할 수 있는 ‘좋은 정부’의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세계화는 너무 멀리 간 것인가?』『새로운 세계경제와 개발도상국』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성장과 제도 그리고 세계화라는 상당히 광범위한 주제를 다룰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따르겠다고 한다.

첫째, 신고전주의(neoclassical) 경제 분석을 바탕으로 함.

둘째, 경험적 증거를 신중히 해석

셋째, 정부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넷째, 최적의 성장정책이란 대부분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다섯째, 우선순위와 정책의 순서를 정하고, 가장 크게 제약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선택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겸손해야한다.

경제학자가 국가정책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업적보다 개발도상국가에 끼치는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 윈스턴 처칠이 경쟁자이자 그의 뒤를 이어 1945년 총리가 된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겸손한 사람, 하지만 겸손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은 사람”이라고 조롱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조롱을 뒤집어 말하자면, 경제학자들은 거만할 것도 별로 없으면서 거만한 인물들이란 것이다.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에 대한 코멘트에 관심이 간다. “한국과 대만의 산업정책을 본다. 이들 국가의 정부는 기업과 상호 독립적 관계를 유지하라는 통상적인 권고를 거부하고 중점 산업분야의 민간투자를 적극적으로 조율하는 정책을 펼쳤다. 여기에서도 이러한 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경제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나는 과거에 1)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게 작용하여, 일정 규모에 도달해야만 수익을 거둘 수 있고, 2) 전후방 산업이 함께 발달 해야만 육성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활동의 경우, 사적 투자수익이 사회적 수익 수준 아래로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요한 초기투자가 매우 크기 때문에, 산업 육성을 통해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처음 투자한 기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윤이 작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정책은 사회적 수익성이 높은 투자를 촉진하는 조정기구로 여겨질 수 있다.” (1970년대 중반의 상황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문제 진단 프레임워크는 모든 종류의 주요 개발전략을 포괄하며, 동시에 각각의 전략이 어떤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할지를 보여준다. 해이자금 조달 및 국내저축 증대로 자원의 유동화에 집중하는 전략은 투자수익률과 수익의 전유성이 높을 때에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시장자율화와 경제개방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투자의 사회적 수익률이 높고, 정부의 과도한 세금과 규제가 전유성을 제한하는 심각한 걸림돌일 때, 가장 효과가 크다. 산업정책을 강조하는 전략은 사적 수익이 정부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할 일 을 하지 않아서 문제일 때에만 유용한 전략이다.”


저자는 우리시대 경제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은 ‘개발’은 이루어지지만 ‘개발정책’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일부 몹시 가난한 나라들에서 수억 명이 물질적 조건의 엄청난 진보를 맛보았다.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영향력 있는 다국적 기구 및 원조기관, 북미의 학자들과 북미에서 훈련받은 기술관료(technocrat)들이 이해하고 옹호하는 방식의 개발정책은 대체로 약속한 성과를 거두는데 실패했다. ‘우리는 겉보기에 상충하는 두 가지 조류가 합류하는 지점에 서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정부가 경제정책에 얼마나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정부의 강력한 개입 없이는 빈곤 국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오랜 믿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개입해서 실패하면 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가 경제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 쪽에도 친절하지 않았다. 수출대체, 기획경제, 국영기업 등의 정책이 일부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오랜 시간 뿌리를 내려 굳어져버리면, 실패와 위기를 불러왔다. 경제자율화와 시장개방은 수출산업 및 금융 산업, 숙련노동자에게 혜택을 선물했지만, 경제 전반의 성장률(노동생산성 및 총 요소 생산성의 측면에서)은 과거에 ‘나쁜’ 정책을 펼칠 때보다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제안하는 10가지 산업정책 설계

1. 인센티브는 반드시 ‘새로운’ 활동에만 주어져야 한다.

2. 뚜렷한 기준점, 성공과 실패를 측정하는 척도가 있어야한다.

3. 지원책은 일몰조항(sunset clause)을 포함해야한다.

4. 공공지원은 특정 ‘산업’이 아니라, 특정 ‘활동’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5. 파급효과 및 전시효과를 낳을 만한, 잠재력 있는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6. 검증된 역량을 갖춘 기관이 산업정책의 실행권한을 가져야한다.

7. 실행기관은 결과의 최종 책임을 지는 최고위 정치지도자의 긴밀한 감독을 받으며 움직여야 한다.

8. 지원책을 실행하는 기관은 민간부문과 대화 창구를 열어두어야 한다.

9. ‘패자를 선택하는’ 실수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10. 산업정책 활동은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발견의 과정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인 ‘더 나은 세계화’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화의 규칙이 빈곤국에게 더 친화적이게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특별 이익단체가 옹호하는 정책이 마치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을 위한 것인 양 꾸며대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선진국 자신이 어떤 역사를 거쳐 왔는지 기억한다면, 빈곤국에게 자율성을 허락하여 그들 고유의 전략을 통해 제도를 수립해가고 경제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개발도상국은 더 이상 금융시장과 다자간 기구가 경제성장의 해법을 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를 꼽자면, 경제학자들은 더 겸손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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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역사 -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통찰
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 박수철.유수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최초의 언어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어느 한 사람이 어딘가에서 최초의 단어를 내뱉었고, 다른 누군가가 그 말을 이해했다? 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문자로 기록 될 수 있는 것만 언어일까? 식물도 말을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통상 말이라고 표현하지만 동, 식물 간에도 엄연히 소통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단지 우리가 입에서 내는 소리만 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스티븐 로져 피셔(Steven Roger Fischer)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 소장으로, 100여권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하고 편집했다.

이 책은 『문자의 역사』『읽기의 역사』와 함께 언어에 대한 그의 탐구를 정리한 3부작 중 하나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에서 현대를 거쳐 미래까지, 모든 동물의 언어에서 인간의 언어까지,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다른 언어학 관련 서적에 비해 다른 면이 있다. 다른 책들은 잘 알려지거나 재생되고 있는 인류의 언어들에 대한 언어학적 변화를 전문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 책은 인간의 언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생물의 언어까지 아우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조류와 고래류, 영장류를 대상으로 행해진 혁신적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언어의 역사에는 인간 언어외의 언어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원시 형태의 언어들은 여전히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 존재를 깨닫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연계의 의사소통들을 감지해내는데 현대 기술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실험에 정밀한 모니터 징비들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외 동물의 ‘언어’라는 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단지 실제적으로는 비언어인 것에서 언어적인 면을 억지로 읽어내어 동물들에게 언어를 ‘부여’하고 있을 뿐인가?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야생에서 이루어지는 대형 유인원의 의사소통은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유인원사이의 의사소통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몸짓 언어와 소리의 풍부한 결합으로 구성되는 반면, 후자는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해서 인간의 상징기호나 단어에 유인원이 반응하게 만든 것뿐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험이 행해진 결과,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일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아무리 매개수단이 인위적이고 그 결과가 훈련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동물 사이에 의미 있는 정보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이미 존재하는 신경통로를 이용해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와 대화를 나눈다.


인간의 음성 언어 역사에서 핵심이 되는 근본적인 의문이 두 가지 있다. 어떻게 ‘단어’가 출현했으며, 어떻게 ‘구문체계’가 생겨났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문제에 가장 잘 대답하기 위해서는 언어 보편소들을 조사해볼 수밖에 없다. 가장 기본적인 ‘어휘목록’은 그 표현법이 개미는 페르몬으로, 꿀벌은 춤으로, 호미니드는 음성언어로 각기 다를지라도 모든 생물이 똑같이 공유하는 법이다. 그러나 유아의 음성 어휘목록 속 어휘들은 더 긴 구조의 문장으로 결합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단어로 설명되지도 못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의 언어처럼 유아의 언어에는 구문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어린이들에게는 ‘내재적 소인’이 있어서 문장을 만들 때 어떤 공식적인 원칙을 저절로 선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인공 언어가 이러한 원칙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으면 인공 언어는 익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통의 어린이가 자연 언어를 익히는 것만큼 ‘쉽고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가설은 실험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내재성’이라는 개념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이 개념은 역동적인 사고 과정에서 유추되는 보편적인 언어의 특성을 규명하기보다는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내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음성언어는 수십만 년에 걸쳐서 인간의 뇌와 발성기관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다. 인간의 뇌 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말이 더욱 명료해졌고 이와 동시에 화학적 신호나 몸짓 언어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졌다. 이렇게 되자 발성기관은 더욱 특화되었고 말의 발달로 사회는 더 복잡해졌으며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뇌 용량은 더욱 늘어났다. 이렇게 인과관계는 양방향으로 작용했다. 한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을 촉진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낸 것이다. 점진적인 진화의 속도에 발맞춰 원시적인 사고와 말은 더욱 정교한 사고와 말로 발전해갔다. 현대의 인간 언어도 이런 식으로 계속 진화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원시적인 화학적 신호나 몸짓 언어는 거의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물러난 듯 보인다.


언어적 분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형적 분류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계보적)분류이다. 유형적 분류는 특별한 언어적 현상을 기반으로 해서 언어를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 같은 언어는 고립어에 속한다. 고립어는 단어 하나가 하나의 형태소(뜻을 가진 최소의 언어 단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가 많은 형태소로 이루어져있고 그 경계가 불분명한 언어도 있다. 이런 언어를 굴절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라틴어를 들 수 있는데, 문장에서의 쓰임새에 따라서 하나의 단어가 corporis, corpori, corpore 등으로 형태가 달라진다. 세 번째 유형의 언어는 교착어로, 하나의 단어가 많은 개별적인 형태소로 이루어지는 언어이다. 또한 이 형태소에는 독립형태소와 종속형태소가 있다(영어의 ‘drive'처럼 홀로 설 수 있는 형태소는 독립형태소이고, 영어 ’driver'의 ‘~r'처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홀로 설 수 없는 접미사 같은 것들이 종속형태소이다).


문자언어의 세계를 더듬어본다.

약 4,000년 전에 익명의 수메르 사람이 “입과 손이 서로 어울리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서기이다.”라고 점토에 새겨 넣었다. 문자는 말없는 그림으로부터 서서히 ‘진화’하지 않았다. 문자는 애초부터 실제적인 인간의 말의 도해적(圖解的) 표현으로 출발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남아있다. 심지어 자칼에게 불멸의 생명을 부여한 기원전 3400년경의 가장 오래된 이집트 성각문자(hieroglyph)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칼’이라는 이집트어 단어를 즉각 떠오르게 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레너드 블룸필드는 “언어과학은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의 한 수단이다.”이라고 썼다. 그 수단은 수천 년을 가로지른다. 문어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고대인들은 인간의 말을 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로 신성시했고, 그런 믿음은 아직도 서로 무관한 여러 문화에서 남아 있다. 체계적인 언어 연구는 기원전 1000년기에 인도와 그리스에서 출발했고, 지금까지 상호보완적인 전통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라틴어로 번역한 그리스어 문법용어, 즉 명사. 대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관사. 타동사. 자동사. 어형변화. 격변화. 시제. 격. 성(性). 주어. 목적어 등은 지금도 대부분의 서양사회에서 언어를 설명할 때 쓰인다.


저자는 결어(結語)를 이렇게 맺고 있다.

“언어는 인류의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학자 로버트 딕슨의 말이다. 아닌게아니라 인간사회는 언어 없이 상상하기 어렵다. 언어는 우리 삶을 규정하고,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나타내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원천이다. 그러나 언어는 영구적, 안정적, 고정적 존재가 아니다. 줄기차게 흐르는 역사의 강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부단한 흐름 속에 있고, 끈질기게 변하고,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바꾸고, 죽어가고, 생기를 되찾고, 자란다. 비록 수천 년에 걸친 언어 변화의 일반적인 특징을 확인 할 수는 있지만, 개인용 컴퓨터 같은 기술혁신을 통해 변화 자체의 동력이 바뀌어 전례 없는 양상의 언어 변화가 나타날 수 도 있다. 이런 식으로 언어는 인간사회의 가장 가변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으며,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는 한 항상 언어는 존재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언어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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