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 기도문이 떠올랐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 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불황은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 기업은 명퇴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를 만나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합니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습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보여준 다소 난해한 기하학과도 같은 문장들을 '치유의 방법론'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셀리 케이건 교수에게 하는 말인듯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자유인은 죽음을 성찰하지 않으며, 그(자유인)의 지혜는 삶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셀리 케이건 교수가 한 마디 안 하고 지나갈 사람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시원. 그저 앉아서 책을 볼 공간과 누우면 더 이상의 여백이 없는 곳. 스피노자는 이 시대의 외로운 사람들, 때로는 좌절의 무릎을 꿇고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길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매일 밤 성냥갑 같은 고시원의 우중충한 화장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각 질환을 앓고 있는 대상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20대 백수, 학업과 친구들과의 건강한 관계가 힘든 여고생의 우울증, 감시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증, 가족이 나를 구속하고 있다고 믿는 신경증, 몽크와 같은 강박증,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과대망상증, 성적으로 또는 물건에 대한 도착까지 포함하는 도착증,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과 발작의 공황장애, 현실을 외면 또는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것이 중독이 되는 경우, 집착을 넘어 넘어 경계선 인격 장애, 기분의 업 앤 다운이 심한 조울증,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의 관계망상, 광기가 드러나는 분열증 그리고 끝없는 공포감 등.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위의 증상을 몇 가지 브렌딩한 칵테일을 가끔 한 잔 씩 목으로 가슴으로 넘기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평정심을 흩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저자가 이런 증상들을 나열하면서 현학적인 설명만 늘어놓았다면 이 책은 참으로 무거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입니다. 겉으론 매우 평범해보이는 그 사람들입니다.


등장 인물 중 '상시로 우울증 약을 지니고 다니는 소녀'를 만나볼까요? 

우울증(憂鬱症, depression)은 병리적인 수준의 우울한 상태를 말합니다.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우울감과는 다르지요. 우울증에 대해선 각 나라마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 미케니즘이 명료하게 밝혀지진 않은 상태입니다. 워낙 그 기저 원인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고 1년생인 이한별. 어느 날 저녁 이 소녀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 놓지만, 편의점 알바의 눈에 소녀의 점퍼 안에 소주로 추정되는 물체가 숨겨져 있다는 의심을 받자 가방을 던져놓고 도망을 갑니다. 가방안에는 우울증 약과 함께 다량의 수면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자를 통해 스피노자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우는 우울증에 대한 처방을 내려줍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내재성의 차원을 갖습니다. 이 내재성의 차원은 관계 맺기의 차원을 의미하며, 관계는 사랑과 욕망을 형성합니다. 부부, 가족, 학교, 감옥, 병원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생각은 그것이 어떤 관계 맺기인가에 달려 있지 개개인의 마음 상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어서 스피노자는 사람은 어떤 관계를 갖느냐, 어떤 식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정서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답니다.  따라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울감을 만들어내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색다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결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큰 걸림돌이지요. 상대방이 부모일 경우,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의 상사인 경우 등..어쩔수 없이 감당해나가야 하는 관계일 경우가 문제이지요.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욕망은 감소되고 위축되며 우울해질 수 밖에 없지요.


스피노자의 말이 이어집니다. (책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말은 저자 자신의 직설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에티카]에 씌여져 있는 글들을 현대적 해석으로 집어 넣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예속된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색다른 것, 특이한 것이 생성되고 창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변용의 힘이겠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색다른 아이디어가 생기고, 어떤 말이든 자꾸 건네고 싶고, 그 사람과 무엇인가 창조해 보고 싶은 생각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서의 기쁨만이 아니라, 창조와 생성의 욕망이 극대화하는 경우겠지요. 저는 그런 관계의 차원이 공동선에 기반한 민주적 관계망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거나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는 새롭게 배치되고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관계의 차원을 바꾸어야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습니다.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는 셈이죠."


에티카 본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리 19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파괴되는 것을 표상하는 사람은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유지되는 것을 표상한다면 기뻐할 것이다.'  자신의 활동 능력을 촉진하고 증대시키는 것은 기쁨이겠지만, 자신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고 억제시키는 것은 슬픔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쁨을 가져다주는 관계를 찾아나서라는 조언을 해주는군요. 관계의 배치를 바꾼다. 슬픔의 관계를 떠나서 기쁨의 관계 속으로 떠난다. 이 떠남이 결코 셀프서비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럴 때 바로 우리가 주는 위로의 말과 손내밈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틱한 상황만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책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굳이 [에티카]를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티카]를 아직 구경도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책에 그 엑기스가 녹아있으니 그냥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스피노자를 만나보시면 되겠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글들을 읽으면서 '철학' 열차를 탑승한다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단, 스피노자가 우리의 눈물을 닦으라고 건네주는 손수건은 그(스피노자)가  안경 세공을 하다가 건네주는 것인만큼 대충 닦는 시늉만 하시고 꼭 되돌려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이란 무엇인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이란 단어..웬지 피하고 싶은 단어이긴 합니다. 맞닥드리는 순간이 언젠간 오겠지만, 미리 앞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입니다. 4자는 '死'와 동음어라는 인식때문에 비호감 숫자가 되었지요. 언제부턴가 새로 짓는 건물엔 4자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습니다만..여전히 4는 F로 표시되어 있는 엘리베이터. 4층은 건너뛰고 5층으로 월반해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병원은 병실 호수조차도 아예 4자를 없앤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이젠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볼 때 어르신들을 양로원이나 요양원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자식들 입에서 나오면..'천하에 없는 불효자식들'이라는 원성이 여기저기서 나왔지요. 좀 더 레알한 표현으로 '후O 자식들' 소리를 들어야했지요. 이젠 어르신들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하긴 좀 그렇지만, 아뭏든 인식의 변화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저자인 셀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교수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강의 때마다 가부좌를 틀고 교탁 위에 올라 앉아 있기 매문에 '책상 교수님'이라 불리우기도 한답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셀리 케이건 교수도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들지만,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더 기특하게 느껴집니다.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청년들은 그 만큼 '삶'역시 치열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이 죽음에 관한 책이자 삶에 관한 책이며 동시에 철학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죽음에 관한 기존 책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은 청자 또는 독자가 스스로 죽음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저자가 이 책에서 어떤 최종 결론을 내릴 의도는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머리말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책은 총 14장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를 시작으로 현 사회의 가장 큰 근심거리인 '자살'까지 이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삶의 끝'을 의미합니다. 삶의 끝을 죽음으로만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 뒤의 삶(영혼의 삶)이 이어지리라 믿을 것인가?는 전혀 주관적인 사항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후자 쪽에 기대를 하며 살아가겠지요. 


저자는 "육체적 죽음 이후에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적'물음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육체와 영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몸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 한 영혼은 육체에 머무른다는 생각은 일반적이기도 합니다만, 저자는 영혼과 육체를 설명하는 이원론자들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죽음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은 셈이다. 그러나 정말로 영혼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저자는 '영혼'을 '정신'이란 단어로 바꿔쓰고 싶다고 합니다. 정신 또는 영혼이 육체에 영향을 준다고 말할 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정신적 기능을 담당하는 육체의 특정 부위가 다른 부분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겠다고 합니다.


책이 무겁군요..주제인 '죽음'의 무게가 '삶'의 무게보다도 몇 배 더 근수가 나갑니다.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서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인간이라는 이원론, 육체만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물리주의,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플라톤도  강의에 초대되어 한 마디 하곤 열마디를 듣고 강의실을 떠납니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이 강의를 들으며 예일대 학부생들이 제대로 이해를 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한 번 들어서 이해가 안가니, 재수강..재재수강까지 하며 17년 동안 연속으로 강의를 하게 만든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요?

 

좀 건너 뛰어서 11장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죽음'이야기 보단 '삶'이야기가 부드럽겠지요? "삶에서 계속 좋은 것들을 얻고 있다면, 죽음이 그런 축복 모두를 앗아가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전체적인 차원에서 삶이 좋은 것들을 전혀 제공해주지 않고 있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이라면, 그때 죽음은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라 하겠다. 좋은것으로 가득한 삶을 앗아갈 때라야만 죽음은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어두운 미래만을 빼앗아간다면,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이쯤되면 '자살'을 옹호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하게 되지 않을까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는 대사입니다.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한 순간에 끝난다면 모르지만, 고통속에 죽어감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내공이 상당한 사람은 짐짓 두렵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겠지요. 실제로 그렇게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 들일 수도 있겠구요. 그러나 대부분 죽음앞에 두려움을 갖습니다. 어떤 위기 상황이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은 아마도 내가 이 땅에 두고 갈 것이 많은 사람이 그러하겠지요. 재물,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유형적인 존재들입니다. 재물 이야기를 좀 더 드리면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다 쓰지도 못하고..' 가면 억울하겠지요. 재물이 많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겠습니다.


저자와 함께 '죽음'을 생각하며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다른 많은 책들 속에 소스처럼 얹혀져 있는 삶과 죽음을 맛 볼 때마다 이 책에 나온 주장과 논지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 남긴 말을 옮기며 리뷰를 마무리 하렵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나거든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다시 사는 것이다."


잘 사는 삶. 이 또한 무박삼일동안 생각해봐도 쉽게 풀리지 않을 과제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 모두 각자 '잘 살다' 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스를 해고하라 - 익숙한 경영과의 결별
김인수 지음 / 부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놓고 볼 때 보스들은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뭐라고 써있나 궁금해서 펼쳐보는 보스라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지요. 함께 갈 만한 사람이지요. 반대로 보스를 해고한다고 그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기도 합니다. 고쳐서 같이 가야 정상이지요. 책의 부제는 '익숙한 경영과의 결별'입니다. 


뭐라고 써 있나, 어떤 생각을 전해주고 있나 들여다볼까요?  언론인인 저자 김인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영은 결국 실패할 수 없으며 현대인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은 타인을 착취하지 않는 문명화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 믿음에 한 표 찍습니다.


책 서두에 재밋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7가지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1. 윗사람 눈치 무진장 살핀다.  2. 윗사람이 말하면 사소한 것도 한다. 3. 아랫사람 감정은 무시한다.  4. 아랫사람이 뭐라고 말하면 먼 산 바라본다. 5. 직접 하는 게 없다. 오로지 시키기만 한다.  6. 책임은 안 지려 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도 윗사람에게 물어보고 결정한다. 

7. 욕심은 무진장 많다.     답은 '보스 병'입니다. 부장급 이상의 보스들에게 발병률 90퍼센트이며 치유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보스, 즉 ~장을 그렇게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던 사람들이 막상 그 자신이 ~장이 되고 나면 이미 전염이 되고, 오염이 되어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쫄병때 군생활을 힘들게 하면서 내가 고참이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를 많이 사랑해줘야지 그렇게 마음 먹긴 하지만 막상 그 위치에 서면 그렇게 하던가요?


사실 위 질환의 증상을 옮기면서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내 안에도 그런 증상이 한 두 가지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스가 되면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인성마저 변한답니다. 인간은 마약에 중독되듯이 권력에 쉽게 중독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보스가 되면 두뇌의 생리학적 작용이 정신장애인과 비슷해진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습니다. 


'보스를 해고하라'  저자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기업이 되려면 보스 제도를 없애버리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래야만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조직의 성과도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당장 보스를 폐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직원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악질 보스부터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하기 위해 '내성적인 리더'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자율적인 분위기로 일을 해나갈 때 '외향적인 리더'보다 '내성적인 리더'들이 직원 융화는 물론 더 높은 성과를 낸다고 합니다. 


내성적인 리더의 성공 사례와 전략은 물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각 기업이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기업 운영에 실제 적용하는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소비자를 직원처럼 훈련시켜 성공한 기업의 사례와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업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관계(사이)'를 맺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제시합니다. 기업은 내적으로는 직원과의 관계를 통해, 외적으로는 고객과 자연 환경, 협력 업체, 공동체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모닝스타 컴퍼니라고 들어보셨나요? 매출이 연간 7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토마토 가공 회사라고 합니다. 이 회사는 여러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 중 '보스가 없다'는 점이 압권입니다.  회사 설립자인 크리스 루퍼가 창업 멤버인 직원들을 불러 모아 "어떤 회사가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직원들은 토론 끝에 다음과 같은 3가지 결론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 할 수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하다.

- 인간은 생각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창조적이고, 타인을 돌보는 성실한 존재다. 

- 타인에 의해 관리되지 않으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최고의 조직이다. 이곳에서는 스스로가 인간 관계를 관리하며,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헌신한다.

이런 생각을 뽑아낸 직원들 대단합니다. 크리스 루퍼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군요. 이 세가지는 이후 모닝스타의 핵심 경영 철학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간의 사회생활 경험에서 얻은 나의 결론은 조직이나 기업이 잘 되기 위해 필요한 단어는

[신뢰]입니다. 이 신뢰감이 깨지면 그저 시늉만 열심히 하는 일상이 됩니다.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입니다. 캠벨의 코넌트가 '신뢰'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당신(리더)은 신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일단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면 당신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셈이다. 신뢰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협력하여 일을 완수하기까지 필요한 활력을 줄 수 있다는 허가증과 같다. 신뢰가 있어야 탁월하게 실행 할 수 있고, 뛰어난 결과물도 내놓을 수 있다. 일단 탁월하게 실행하고 결과를 내놓는다면 더욱 쉽게(사람들에게) 신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례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탈장 치료 전문 병원인 숄다이스 병원의 사례입니다. 이 병원은 자신들의 치료법에 적합한 환자들을 골라 입원시킨다는 것입니다. 재발률과 치료 비용을 낮추는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의료사고 역시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적인 의료 현실에서는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참고를 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듭니다. 숄다이스 병원에서 수술 받기 위해선 탈장 문제이외엔 다른 검사상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릅니다. 환자 입장에선 "뭐 이래?"라는 반응이 따르겠지요. 그러나, 병원 방침이 부적합한 고객은 아예 버스에 태우지 않겠다는데, 버스 문손잡이 붙잡고 매달리거나 버스 앞을 가로 막고 태워달라고 떼를 쓰느니 얼른 자신에게 맞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겠지요.


이 병원이 단순히 환자를 초이스하는 병원이라면, 좋은 케이스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이 병원에서는 하루에 대략 30명의 신규 환자들이 수술 전날 입원을 합니다. 이들은 마치 한 반의 동급생과 같습니다. 몸무게, 혈압, 심전도 검사를 받으면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어울리게 됩니다. 배정된 병실은 모두 2인실 입니다. 숄다이스 병원은 환자의 직업과 개인적 관심사 등을 고려해 최대한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병실을 배정합니다. 직원들이 환자를 케어하는 경우보다 회복기의 있는 수술 선배(?)들의 케어가 많습니다. 경험적으로 수술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 의료진이 아무리 말로 달래고 이해를 시켜도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앞서 같은 병명으로 수술한 환자(수술 결과에 만족하고 현재 상태가 양호한 사람)와 면대면 연결을 시켜줍니다. 10사람의 의료진이 매달리는 일보다 그 한 사람의 역할이 당연히 큽니다. 


보스를 해고하라~!!  막상 보스가 되고나서 이런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것입니다. 해고 되지 않고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보스가 되고 나선 늦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팀장이니 실장, 부장, 차장, 과장 이상의 직급에 오른 사람들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기 되는 책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보스'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 된 '보스'적인 생각입니다. 

스스로 "그래도 내가 '보스'인데.."하는 우쭐한 생각은 지금 '보스'병  3기에 들어섰다고 진단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시간을 의식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탐구한 시간 심리 분석서라는 점에 관심이 갑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진실을 인류학, 물리학, 철학, 문학, 초심리학을 동원해 폭 넓게 조명하고 있다네요. 시간을 지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간 자체를 초월하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안내한다고하니 그 길을 따라가 볼까 합니다.

 

.................................................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철학·문학비평·소설의 영역에서 방대한 양의 글을 쓴 모리스 블랑쇼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블랑쇼의 후기 사유가 단상들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마치 하루하루의 일기를 쓰듯 단상 형식으로 구성된 그의 글들은 그의 삶이 드러나지 않는 은거의 삶이었던 것처럼, 그의 언어 역시 현실을 설명하고 체계적으로 조명하는 구성적 전망의 언어가 아니고, 현실의 맹점을 밝혀 보이는 명철하고 비판적인 언어도 아니며, 드러나지 않는 침묵의 언어임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

 

 

우리는 왜?  대답은 안 들려도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질문 조차도 못 던진다면 우리의 의식 또한 잠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욕망을 파헤치며 문제의 근원을 탐색할 뿐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33가지 질문을 탐색하노라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결국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욕망에 굴복하고 정치와 경제에 영혼을 판 건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시대를 초월해 명작의 반열에 든 작품들. 사람들 개개인이 생각하는 명작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명작이라고 평가한다면, 그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어떤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보편적 가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

 

 

혁명의 첨단에 선 사람들의 생각을 모은 책이라고 합니다. 5년에 걸쳐 예술가, 물리학자, 저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유전학자, 무용가, 소설가, 철학자 등 ‘지금 여기’ 현대의 최고 지성 44인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눕니다. 과학에는 미리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종교처럼 중심인물도 없고, 단일한 교리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특징이 역설적으로 과학의 독특한 힘과 안정성의 원천이라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홀로 문을 두드리다 - 오늘의 중국 문화와 예술 들여다보기
인지난 지음, 김태만 옮김 / 학고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예술 작품이나 예술 현상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고 해서 모두 결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마음과 부딪혔을 때라야 남을 수 있다. 모든 예술의 문을 다 두드릴 수는 없지만 오늘도, 여기서 나는 홀로 문을 두드린다.”


문학도 마찬가지지만, 회화 또는 설치미술같은 경우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난 후엔 감상자에게 넘어갑니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오롯이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작가 어떤 작품을 놓고 '이 작품은 이러이러한 의도로 창작되었으니 이 범주내에서만 받아들이시오'하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평론가는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을 관람자 또는 감상자에게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줍니다. 작가가 그의 작품을 놓고 사족을 단다는 자체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평론가의 평론은 작품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모티브가 되고 있습니다.

 

예술은 그 시대의 트렌드가 반영됩니다. 시대적 사조가 태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그 예술의 마당을 중국이라는 나라의 시대적 상황에 국한시켜 봅니다. 중국은 문화혁명기간 동안 정치적, 사회적 급변을 겪은 후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초까지 중국 예술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중국'속에 은폐되어 있던 '표현의 욕망'이 개혁개방이후 서서히 터져나오게 됩니다. 1980년대의 정치적 개혁개방은 당시 중국 사회 최대의 주제였고, 중국의 예술 역시 이들 주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예술연구원의 랑사오쥔은 이 책을 놓고 '문화대혁명 이래 가정 영향력 있는 미술비평집'이라고 평했습니다. 저자 인지난의 부친 윤재원 선생은 경남 통영 출신의 음악가였다고 합니다. 어려서 중국으로 건너가 동북의용군에 가담했고, 모친 김애현 여사는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으로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중국의 선양, 스좌장, 베이징 등을 전전하다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평양으로 귀화했다고 합니다.  저자의 부모는 남북한의 결합이라고 표현됩니다. 음악을 하는 남한 출신의 윤재원 선생과 북한 출신의 사학도 김애현 여사사 평양에서 첫 사랑의 연을 맺게됩니다. 저자는 자신의 학구적 태도나 예술적 감성을 부모로부터 전승받았다고 믿습니다.

 

저자는 중국 단동에서 고교 생활을 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 대학 역사과 고고학 전공에 입학하게 됩니다. 베이징 대학에 재학하던 20대, 저자는 치열한 독서와 엄격한 감정(鑑定)실습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재학 중에 저자가 발표한 고고학 관련의 몇몇 논문들은 발표될 때마다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깊고 철저한 관점과 논지는 '전인미답의 성과'라는 극찬을 받습니다.

 

이 책은 저자에게 중국에서 출판된 첫 번째 저술입니다. 미술평론서이기도 한 이 책은 중국 현대 예술사에서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던 1985년에서 1993년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 스스로 중국 예술 평론서 출판사상 최다 쇄수(刷數)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출간후 전국 각지에서 무수한 해적 출판이 출현할 정도로 대단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치적 예술만이 지배하던 자리에 이 책은 중국에 "자유로운 글쓰기의 전형"이라는 칭호가 붙기도 했다는군요.

 

"예술은 인생을 뒤섞어 혼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허장 성쇄의 거대 관념에 사람들이 지쳐있을 때 생명에 대한 관찰을 중시하는 '근거리' 경향이 출현했다. 이런 경향은 지나치게 평화롭고 고요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소리 없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근거리'에 대한 궁금점이 생깁니다. 저자가 어떤 의도에서 '근거리'라는 호칭을 붙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근거리'와 다르게 '신생대'라는 표현도 눈에 띕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두 의미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의 평론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생대 예술인들은 대부분 베이징에 집중되어 있다. 1960년대 출생한 이들은 홍위병과 지식 청년이라는 역사 기억 속의 트리우마가 없기 때문에 195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확연한 정신적 단층이 존재한다. 그들은 대체로 집단의식이 약하고 상호 인정할 만한 통일된 인생 원칙이나 예술적 주장이 없다. 신생대가 연령상 개념이라면 근거리는 예술 상태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이른바 근거리라는 것은 예술과 관념, 예술과 생활이라는 삼자 간의 정신적 거리를 좁히자는 것이었다. 생활과 관념, 이 두 개념은 줄곧 중국 예술가들 생각의 양극단이었다."


봇물처럼 번진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그 작품들을 대하는 중국 인민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띕니다. 저자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이 부분에 대한 깊은 평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유화인체예술전'이 그것입니다. 예술계를 통해 크나큰 사회적 충격을 준 한 해 였다고 합니다. 이 전시회는 지금까지 중국에 존재했던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최고'들을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최대 규모, 최고강의 입장료와 최고의 판매 수익, 최다 관람객 수와 최다 화보 판매량...이 전시회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유화인체예술'이라고 표현된 '누드화'입니다. 누드의 모델들이 전시회측에 소송을 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한 이 전시회.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던 한 화가는 이러한 사태를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어떤 관객은 그림을 보러왔고 어떤 관객은 벗은 엉덩이를 보러왔다."   관객 중 한 노인은 "2위안으로 벗은 몸뚱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합니다.

 

"정말이지 중국의 성 문화가 독립하지 못하고 여전히 변태와 기형의 상태에 처해 있다면, 중국의 문화와 예술은 지속적으로 고통과 조롱을 당할 것이며, 중국 민중도 마찬가지로 조롱과 고통을 받을 것이다."

 

책의 내용도 충실하지만, 책이 참 잘 만들어졌습니다. 140여 장에 달하는 작가와 작품, 그리고 전시회 상황과 관련된 사진이 매우 훌륭한 인쇄로 담겨져 있습니다. 당장은 눈이 즐겁습니다. 책말미엔 중국 당대 예술가 60명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이 그들의 사진과 함께 실려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중국의 1980~90년대를 관통하는 대표적 예술가들인 만큼, 이들을 알면 중국 현대 예술 전체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회화를 전공하는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물론 중간에 언급한대로 중국에서'자유로운 글쓰기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저자의 글들이 주는 깊은 사색과 고독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홀로 두드린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 보는 계기'를 마련해보시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