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OOO 채용 설명회 참가와
신청서 제출에 감사드립니다.
한분 한분 답장 드리지 못하고 일괄로 하는 점에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몇 분이 모여서 상의를 했는데
채용면접은 OOO시로 잡았습니다.
이미 문자 연락은 받으셨을 것이고
OOO님을 통해서도 연락이 가겠지만
저희들의 일방적인 결정이라 혹시 어려우신 분들은 사전에 연락부탁드립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면접방식과 관련하여 몇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애초 생각대로 다(多) 대 다(多)의 방식으로 모두 모여 진행하되
워크숍처럼 진행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저희들이 미숙하게 진행하면 실례를 범하게 될까 두려워
너무 복잡하게 진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구상중입니다.
제출하신 서류를 여러 분들에게 보여드리는 것도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어
OOO.OOO 최소한으로 한정하기로 했습니다.
 
당일 진행 내용으로
1) 저희 쪽에서 채용 개요와 관련된 소개를 다시 한번 하고
2) 채용 희망자 발표로 5분 정도에 걸쳐
    (1) 본인 소개(경력, 장단점 등)
    (2) 채용을 희망하는 분야 1,2,3지망
    (3) 그 이유 등을 설명해주시고
3) 5~10분 정도에 걸쳐 의견 교환(질의응답,토론) 등이 있고
4) 마지막으로 종합토론과 향후 일정 소개 등의 순서로 잡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짧은 시간에 자기의 진정성과 능력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고
또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어려운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전에 여러차례 접촉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대체로 5시에는 마치는 일정으로 생각중입니다.
원하시는 분을 위해, 또 당일 참석 못하신 분을  다음날까지
일정을 비워두고 있습니다.
 
상세한 진행내용은 다음 주 초에 다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채용을 통해 서로가 힘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는데
진행 미숙이나 오해로 상처가 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OOO 드림
 

 정중하고 간결한 면접 채용 공고. 

채용 공고를 보고 반할 수도 있는거구나 싶다.

문득, 혹시 내가 결혼한다면 이 글을 보낸 사람한테 주례를 부탁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전까지 주례 일순위는 강준만 선생님이었는데. 물론 그분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 글을 보낸 분을 뵌 적이 있다. 이 분은 말 많기 딱 좋은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다. 논쟁적인 이야기를 회피하거나 정면승부하지 않는다.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세상 사람들과 좀 다른'사람들만의 배척하는 분위기도 없다.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설득당하거나 설득하려고 말하는게 아니란걸 그제야 깨달았다. 누구의 의견이 중요하고 더 가치있는지를 논하려고 대화하는게 아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아. 너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기본적인 상식인데 맘처럼 쉽지 않다는 말로, 감정적으로 그 사람 말은 아예 싫다는 이유로 혹은 그 밖의 많은 핑계로 상대방의 진심을 왜곡하고 나 편한대로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 선생님, 자신이 몸담은 분야를 공격하면 화날 수도 있고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설득하거나 자기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어떻게 대화할 수 있나요, 비결이 뭔가요.

- 제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좀 두리뭉실한가봐요.

 

 유머 감각도 있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떻게 하다가 피아노 학원 문지방을 넘었다. 그 뒤로 악착같이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사오 사사키의 곡을 완벽하게 치고 싶다라던가 멋있게 피아노 연주를 하고 싶다, 혹은 반주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목표나 바람도 없이 말이다. 그 날 저녁은 동생이 쉬는 날이라 여유가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어디든 페달을 굴려 돌아다니고 싶은 날이었다. 몇년 전에 레슨했던 선생님과 다르게 이번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장단을 맞춘다. 지난 번 선생님이 전문적이고 세심했다면 이번 선생님은 기운을 북돋아주는 느낌이랄까.

 

 목표도 바람도 없었지만 저녁 시간을 쪼개서 다니다보니, 연습할 시간도 없다보니 한번 자리에 앉았다하면 쉬지도 않고 내리 연습을 한다. 이렇게 열심인 내가 나도 좀 신기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자꾸 나를 열심히 한다고 추켜세우니까 안 되는 집중력 발휘하며 더 열심인척을 하는거겠지만.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전에는

 

 이 책으로 공부했다. 그냥 코드표만 보고 막 치던 것에서 멋진 반주를 하고 싶던 바람에서 보기 시작한 책이다. 메이저와 마이너 코드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르겠지만 혹시 반주를 처음 시작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전문가도 아니고 초보가 적극 추천하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겠지만 초보가 추천하는만큼 쉽다는건 보장하는 것 아니겠냐는 맘.

 

 

 학원에 다니면서 재즈 피아노나 소곡집을 칠줄 알았는데

 

  어린이 피아노 반주완성을 친다. 너무 쉽고 시시할줄 알았다. 웬걸, 조금 어려운 코드가 나오거나 곡에 변화가 많이 생기면 헷갈리기 일쑤다. 처음엔 선생님이 내 수준(그런게 어디 있다면)을 낮게 보고 이걸 치라고한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레슨을 받다보니 악보와 코드를 보는 실력이 좀 나아졌다. 아, 그런거였구나. 행여나 처음부터 왜 이렇게 쉬운걸 치냐고 궁시렁대지 않은걸 얼마나 다행으로 여겨지던지.

 

 

  일이 끝나고 피아노 학원에 가기 때문에 내가 레슨을 받는 시간에는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 가고 없다. 어느 날엔가 선생님은 아이들도 없고 심심해선지 피아노 열심히 치니까 대학 가서 피아노학과 나오면 선생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피아노가 예전만큼 인기는 없지만 열심히 하면 여자 직업으로는 괜찮다며. 뒤쪽 문이 닫히지 않았는데 앞쪽 문이 열린다.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는건 내 몫. 어떤 문에 머무는게 더 좋을지 아직 모르겠다. 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고 할만한지는 뒷전.

 

 강약을 조절하고 곡의 흐름에 따라 감정을 실어본다. 아직 잘 모르겠다. 왜 피아노를 잘 치고 싶고 왜 예전에 피아노를 배우다 말아버린 사람들을 위한 '잃어버린 피아노'란 기획의 콘서트를 열고 싶은지. 그렇지만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즈음에 뭔가 열심히 했다는 그저 그런 자기만족이 나쁘진 않다.

 

 피아노를 좀 더 치다보니 내가 진도를 빨리 빼려고 악착같이 애를 쓰는거다. 진도 빼서 피아노 콩쿨이라도 나가보려고? 그냥 욕심이었다. 퇴근 후 퍼져있는 시간에 피아노를 치는거니까, 저녁도 안 먹어서 배가 고픈데 피아노를 치니까. 아무래도 선생님의 칭찬이 독이 된 것 같다. 더 칭찬받으려고 집중은 뒷전, 무작정 치기만하니 말이다. 

 

 계속 피아노를 치다보니 목표같은게 생겼다. 바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쳐보는 것.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작은 아씨들 비디오 테잎이 있었다. 비디오 테잎은 그거 하나라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볼 때가 있었다. 베스였나, 셋째가 피아노를 너무 치고 싶어 옆집에 몰래 들어가 피아노를 친적이 있다. 그때 베스가 쳤던 곡이 쇼팽의 즉흥환상곡이었다. 베스가 뭔가에 홀린 듯 치던 피아노 곡, 커서도 계속 그 곡이 귓가에 맴돌았다.  '쇼팽의 곡을 칠 때까지 피아노를 치는거야'라며 의지를 불살라보지만 가늠되지 않는 어지러운 음표를 보니 현기증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3-02-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장님이 이르되 기교와 음감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의 이름으로 일어나 쳐보라 하고 (바이엘복음 3장 6절 말씀)

..는 뻘소리구요. 피아노를 배우시는군요. 저도 아주 예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기타를 배운다고 했다가, C코드만 반복하다가 포기...는 제 경우구요, 꾸준히 하시면 언젠가는 쇼팽의 곡을 칠 수 있겠죠!

금요일이네요..회식있는 금요일. OTL (아..그리고 위에거는 사도행전 3:6 말씀을 살짝.^^)

Arch 2013-02-26 14:23   좋아요 0 | URL
오늘 밥 먹고 오다가 맥거핀님의 댓글을 떠올리며 실실 웃었어요. 가끔 보면 님은 좀 천재인 듯.

기타도 배우고 싶고 드럼도 배우고 싶어요. 피아노 치는거보면 박자감이 전혀 없는 것 같고 노래 부르는거 보면 음악적인 재능도 그닥 없어보이는데 막 배우고 싶어요. 이게 다 k팝스타 영향?
저는 오늘이 회식날. 물어보지도 않고 장소 정하는 센스와 사장님까지 친히 납시는 불편한 진실, 왜 그런걸까요,.

이진 2013-02-2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너무 부러워요!!
저도 피아노 정말 배우고 싶어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을 실력은 되지만, 그 이상이 못되어 늘 안타깝고 아쉬워요. 소박한 꿈이 있다면, 즉흥환상곡까진 바라지도 않고, 그저 모차르트의 소나타 한 곡을 제 마음에 쏙 들게 쳐보고 싶네요. 대학 졸업하기 전까진 피아노 배우는 건 어림도 없을 듯하고... 나중에 돈이나 조금 벌면 등록해보려구요. 클래식 전문반으로... 크크

Arch 2013-02-26 14:26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저도 교회 피아노 반주 출신이에요. 세븐 코드는 물론이고 마이너 코드도 다 원코드만 치는 우직함으로 단조롭고 무미건조한데다 계속 틀리기만하는 반주를 했었는데. 그땐 뭐가 그리 용감했는지.

저도 피아노 학원 다니고 싶었는데 나이 들어서 다닐 수 있어서, 나이 들었는데 칭찬까지 받아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진짜 즉흥환상곡은 무리겠죠? 소나타도 버벅대는데

마태우스 2013-02-2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 아내도 피아노 열심히 배우던데..근데 피아노를 책으로배우는 게 가능한가요? 저런 책이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암튼...꼭 목표달성하기 바라옵니다. 저는 아랍어, 님은 피아노!

Arch 2013-02-26 14:2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코드를 책으로 배우는거예요. 음악의 화음도 수학처럼 딱 떨어져서 코드를 익혀두면 반주하기 편하거든요. 저도 대학교 때 아랍어?- 아! 그건 희랍어였나- 그리스 신화 읽었어요. 그땐 따분했는데 좀 더 배웠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운 맘이 들어요. 몇년 전에 산 스페인어 책은 아직도 잠자고 있어요.
어찌됐든 아랍어 화이팅!
 

 

 

 

 

 

 

 

 

 김두식의 책을 보다가 정혜신씨 인터뷰를 찾아봤다. 인터뷰에서 소개한 책을 보고는 정혜신의 칼럼과 이전 저작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통찰과 감탄할만한 이야기들을 읽길 바랐다. 헌데 웬걸, 무슨 잠언집 같은 이야기만 잔뜩 씌여져 있는 것이다. 제목이랑 저자만 바꾸면 '좋은 생각'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물론 두분이야 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지만 책을 읽는 입장에선 참 맥 빠지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고 세상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면 좀 납득이 될까 싶은 이야기들.

 

 그래서 설렁설렁 책을 봤다. 그만 봐도 될 것을 설마 정혜신인데, 남자vs남자를 쓰고 '식판의 슬픔'을 쓴 정혜신인데 싶어 계속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을 좀 더 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답지 않아'란 부분에서 말이다.

 

 지나가는 말로 친구에게 그랬다. '공무원 시험 준비할까봐. 지금처럼 하루를 출근과 퇴근으로 반복하느니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의 삶도 나쁘지 않겠어.' 친구는 그 얘기가 도저히 납득되지 않으며 왜 '너답지 않은' 얘기를 하느냐고 질책했다. '그럼 나다운건 뭔데'란 호응구 대신 살짝 겁이 났다. 이 친구가 알고 있는 나다움을  잃어버린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어렸던 내가 안정을 추구하는건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며, 나는 다르다며 열과 성을 다해 '다름'을 말로만 보여주는 동안 누군가는 정말 다르게 살거나 기반을 닦아놓은 다음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변해야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던가, 실은 나다움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던가.

 

 나는 여태 좀 모자라게' 하기 싫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해야하는 일:돈이 안 되지만 하고 싶은 일'로 모든걸 나눠왔다. 그런데 조금 오래 일을 하다보니 월급=권태와 무임금=불안정=자유로움만은 아니란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역시 남들 진작 알고 있는걸 이제 와서 알게 됐다고 뒷북치는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업의 본질'에서도 길게 푸념하긴 했지만 일의 어떤 면은 설레고 어떤 면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이런 맘은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렇지 않겠나 싶은거다.

 

 알바를 할 때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데도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돈을 쥐고선 함부로 미래를 꿈꿀 수 없었다. 지금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저 그런 흔한 일을 하면서 흔한 불안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업의 본질을 꿰뚫고 원하는대로 살려면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월급을 위해서 일하는거냐고 되묻는건 우문이다. 일의 기간이 늘어가면서 일에 연관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업의 본질만큼이나 융통성 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험같은게 쌓이는 것도 꽤 짜릿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써보고 싶었던 책, 하지만 벌써 나온 책.

이 책에서도 일 얘기가 나온다. 뱃일은 끝이 없어 힘들다는 막내에게 큰형님이 말한다.

 

 그래, 뱃일이 힘들지. 그치만 무슨 일이든 다 마찬가진 기라. 막내야 바라, 니가 평생 여 있을 거 아이다 아이가? 이 세상에 있제, 이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다. 무슨 일이든 다 힘든 기라. 니 당장은 뱃일이 제일 힘든 거 같제? 여만 나가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제? 근데 그게 안 그렇다. 니 앞으로 무슨 일을 하건 그거 다 힘들 끼라. 내가 앞날이 창창한 아한테 악담을 하는 게 아이고 일이란 게 그런 기라. 일은 우찌 됐든 힘든 기라.

 그러니까 뭐든지 있다 아이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 니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해내는 기라. 내는 있다 아이가, 여 아들은 이런 얘기함 비웃는다만 그냥 바다가 좋았다. 내는 언제나 바다가 좋았어. 내가 힘들고 답답할 때 아무 말 없이 품어주는 게 바다뿐이었거든. 그니까 내 이적까지 이라고 잇는 거 아니겠나?

 

 일은 우찌 됐든 힘든거다. 왜 일을 재미있게 해야한다고 생각했지? 인생이 행복할거라고 믿는 인간들을 조롱했던 철학자처럼 전제가 잘못된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무원은 어때란 말이 나온거고 이 페이퍼까지 이르게 된거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의 범주에 넣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은 어떨까. 여러명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제대로 진행시키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거나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는 줏대를 기르는걸 업으로 삼던가, 혹은.

 

 '너답지 않아'의 결론은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낸 언니랑 통화를 하다 요새는 나도 나답지 않다고 느끼고 내가 그런 소리를 들어서 충격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언니는 어렸던 내가 독특했다면서 좀 더 까졌어야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 방구석에서 여행을 꿈꾸고, 불만만 말하면서 자유롭길 바라고 말이지.

-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어른이 되는건 그런거 같아. 뻔하게 안정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자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도 보듬을 수 있고 일상의 권태도 견딜 수 있는거 말야. 우리가 안정을 추구하는 어른을 뻔하게 봤지만 그것도 얼마나 힘든지 이젠 느끼잖아.

- 그럼, 그럼 나는? 그때 난 뭘 믿고 그렇게 까불었대

- 다 젊으니까 그렇지. 아직 덜 여물고 어리니까.

 

 언니란 거울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다운 게 뭔지 모르면서 혼자 생각하고 읽은걸 내 것마냥 떠벌리고 다니며 위악을 부릴 때, 너 나중에 그렇게만 안 해봐라 벼르는게 아니라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2-0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도 arch 님이 있어서 늘 좋고 고맙게 여기리라 느껴요.
힘들거나 고달픈 일이 있음
그 삶 그대로 하루를 찬찬히 돌아보며
새로운 마음 되어 어떤 이야기가 나한테 찾아오려는가 하고
생각해 보셔요.
이제 겨울도 얼마 안 남았어요.

Arch 2013-02-07 09:38   좋아요 0 | URL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나는 또 나인지라... 그래도 가끔 정신을 번쩍 깨우는 소리를 들으면 각성하고 반성하게 돼요.

맥거핀 2013-02-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것들이 그 때가 되어보지 않으면, 스스로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말만 들어서는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아는걸까...아, 이 말도 말이군요.

Arch 2013-02-07 09: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페이퍼에 자기합리화 속셈이 들어있는 것도 아직 전 몰라서 뭔가를 더 증명하고 싶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뷰리풀말미잘 2013-02-0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여쓰기도 하고, 문단 사이 간격 띄우기도 하는군요. 왜죠?

Arch 2013-02-07 09:40   좋아요 0 | URL
원래 그랬거든요! 뒷북 미잘

M의서재 2013-02-0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 님,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남기네요. 저 또한 한때 나다운 게 무언지도 모르면서 위악을 부린 적도 있는 것 같아서요.ㅎㅎ 이제야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는 법을 좀 알아가고 있어요.. 말씀하신데로, 생각보다 짜릿하네요^^

Arch 2013-02-07 09:42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도 아직 나를 잘 몰라서인 것 같아요. 누군가의 일상에 일희일비하거든요. 나를 잘 알아야 남도 잘 안다고 하는데 말처럼 쉽진 않아요.
 

* 무도의 '어떤 가요'가 욕을 먹고 있다. 논란의 본질은 '완성도 떨어지는 노래가 공중파 방송 프라임 시간대에 홍보가 돼 음원차트에서 인기를 얻는건 부당하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번 논란에는 거대 기획사와 신인 작곡가, 음원 유통체계, 대중의 취향 등등의 문제가 걸쳐져 있다.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각자가 표명하는 입장도 다르다. 사람들의 의견을 읽다보니 애초에 내가 직관적으로 느꼈던 지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북 멋쟁이'는 좀 뻔했고, 박명수는 대단하고, 무도의 기획은 살짝 아쉬운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하기는 어떤 문제마다 의견을 갖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 강심장에는 여러 명의 연예인이 나와서 토크 배틀을 벌인다. 어느 회에선가 안타까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여자 연예인이 화장을 고치는 장면이 캡쳐됐다. 찌라시 신문에서는 '태도 논란'-이게 왜 논란거리인지 모르겠지만- 문제를 네티즌의 날카로운 눈썰미 운운하면서 기사를 띄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라면서 자신들이 기대하는 바대로 웃고 울기를 바라는걸까.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온건지 참 역겹다. 

 

* 누가 자기도 성기 수술을 해야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중년 남성들이 많이들 하는데 자기도 그래야할 것 같다고. 러프한 비교지만 도서 정가제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사고, 잘 읽지 않는다, 책과 연관된 인프라라고 해봐야 공공 도서관의 책읽기 프로그램이 다인데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가까운 곳에 서점도 없다. 도서정가제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도서정가제만 시행되면 인터넷 서점은 어려워지고 출판계와 서점은 살아날 것 같은 분위기다. 수술만 한다면 중년의 자신감이라도 샘솟을 줄 아는가보지?

 

 끝장토론 형태가 아니더라도 그냥 서로 좀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그간의 사정과 서로의 입장차가 좀 더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같은 업계 사람들끼리 한방이 아닌 여러 방의 정책 제안 같은 것도 할 수 있을테고 말이다. 독자들도 참여하고 출판사, 인터넷 서점, 동네서점 사람들 모두 모여서 얘기를 하면 좀 더 낫지 않을까.

 

* 술 먹다가 음악 배틀이 벌어졌다. koop에 이어 nujabes의 Aruarian dance가 나온다. 곡 중간 중간에 하모니카 연주가 나오니까 바로 뒤를 이어 하모니카 연주곡이 나온다. 저가의 스피커와 잭, 핸드폰 혹은 mp3만 있다면 가능한 주접이었다. 우리 둘은 주접 떠는 줄도 모르고 겸손한 벼처럼 고꾸라진 동생 옆에서 새벽 깊어지는줄 모르고 찧고 까불었다. 딱 주접 수준의 감상이었다. 그래서 그 노래들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아이와 개성과 조직에 대해 나눈 이야기는 간간히 떠오른다.

 

 자신의 개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금의 회사에서 뜻한 바가 있어 참고 있다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자기가 훼손되거나 달라지지 않냐고. 확고하게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싶다. 불평불만을 일삼던 아치가 회사에서 웃음과 침묵, 고개 끄덕임으로 버티는 동안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른 분출되지 않은 욕구 혹은 욕망 같은 것이 회사 아닌 곳에서 막 튀어나와서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니 말이다. 옆에 사람은 물론 나를 변화시키거나 각성시키지 못하는 불평불만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한편으로 나의 모남만큼 좀 다른 조카에 대해서 숙제를 잘 하고, 이를 잘 닦고 등등의 바람을 갖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아이 사이'를 읽다보니 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이모 말을 잘 듣는 조카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할 일을 하고 자신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아이가 되길 바랐는데 나는 조력자가 아니라 지휘자였다. 나의 개성만큼 누군가의 개성도 받아줄 수 있는 아량이 있는가 앞에서 한참 동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 예전에 다른 서재분도 말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다른 건 정말 책을 좀 더 읽는다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책에 짚어 놓은 문제의식, 다른 사람의 진보적인 생각,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나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읽는 행위에서 끝나고마는거다. 그런데 남의 생각을 자꾸 입으로 말하다보니 표리부동이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조카들에게 말이 안 먹히는 이유다.

 

* 아침에 아이들 방학 중 프로그램을 까먹었다고 지희한테 '이모 치매 아니냐, 병원 가봐라'란 소리를 들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주미힌 2013-01-2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면에서 밑줄을 긋게 하네요 ㅋㅌㅋ

Arch 2013-01-22 19:45   좋아요 0 | URL
ㅋㄷㅋㄷ 비아그라가 더 세던데요.

숲노래 2013-01-2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하다고 하셔요~ 나이 먹으면 다 잊어버리기도 한다고 ^^;;

Arch 2013-01-22 19:45   좋아요 0 | URL
아침에 좌절했다고 앓는 소리 냈어요. 히~

이진 2013-01-2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도가 욕을 먹는 건... 그러니까 참 보기 안 좋아요.
음원 수입을 자기네들이 다 챙긴다면 몰라, 좋은 일에 쓰는데.
다른 가수들의 시장을 침해했다는 의견은 개인적으로 와닿지 않네요.
무도도 다른 가수들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정도로 큰 호응을 얻는 거지,
만약 무모한 도전때 이런 특집을 했으면 과연...

Arch 2013-01-22 19:50   좋아요 0 | URL
음원 수입 기부 가지고도 뭐라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음원 유통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큰 기획사의 기획력을 따를 수 없는 열패감도 있을 것 같아요. 예술하는 분들의 정통 의식 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전 가요제와 다르게 '어떤 가요' 기획이 더 욕을 먹는지도 모르겠어요.

카스피 2013-01-2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돈 문제로 귀결되는데 Arch님 말처럼 '완성도 떨어지는 노래가 공중파 방송 프라임 시간대에 홍보가 돼 음원차트에서 인기를 얻는건 부당하다'가 이번 논란의 본질이겠지요.

Arch 2013-01-23 11:3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전 꼭 음악이 그렇게 완성도가 높아야하나, 음악하는 사람의 선민의식 같은 것도 느껴져요.
 

 한가로운 오후였다. 발 뒤꿈치가 가끔씩 찌릿하고 몸도 찌뿌등했지만 모처럼 까미랑 산책을 나오니 참 좋았더랬다. 언제 내린 눈인지 기억도 안 나는 눈이 아직도 안 녹았다. 아무 곳이나 무턱대고 디디던 까미가 젖은 발로 나를 타고 올랐지만 별로 문제될 게 없었다. 옷은 빨면 되고 까미는 목욕할 때가 됐으니.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벤치에 앉았다. 지난번에 봤던 할아버지도 강아지랑 산책을 나오셨나보다.

 

 몇개월 전에 봤던 할아버지의 개, 또또는 정말 귀여운 강아지였다. 까미가 돌아다니는건 신경도 안 쓰고 할아버지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얌전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폴짝 폴짝 뛰면서 할아버지 말은 귓등으로 죄다 흘리고 아주 신이 났다. 까미는 집에서 보여주던 고집과 식탐과 호기심 가득한 성향을 까맣게 잊고 또또 앞에선 자꾸 피해다니기만 한다. 또또는 그게 또 신났는지 까미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장난을 건다. 할아버지는 또또가 집에선 안 그러는 나오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신다. 저도 모르겠어요.

 

 강아지와 생활하는데 초보인 내가 이것저것 질문하면 할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간혹 질문이나 호응이 없어도 큰 개를 만나도 쫄지 않는 또또, 핸드폰을 물어뜯는 또또, 아내의 무릎 수술, 자녀의 내력 등의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나도 내 얘기의 어느 지점을 털어놔야하지 않을까, 왜 어른들은 자꾸 말을 하는 걸까, 자신을 드러내는 대화가 아니라 분위기 환기용 대화라면 날씨 얘기 정도는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던가 안 했던가. 큰 개를 만나도 쫄지 않는 또또가 큰 개의 주인에게도 쫄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몇 번인가 더 듣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날이 추워선지 사람이 많이 없어 까미와 또또는 아주 신났다.

 

 까미 쫓아다니기가 시들했는지 나무 옆에서 안 나오는 오줌을 싸는 시늉을 하던 또또가 내게 다가왔다. 으응, 나랑 놀자고? 까미처럼 나한테 올라오려고 발을 타는가 싶었다. 부드러운 개발이 나를 감싼다. 또또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땅을 딛은 또또의 두 다리가 리드미컬한 한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음악적인, 혹은 무의식적이면서 의식적인 행위였다. 또또는 내 다리를 몇번 감싸다가 할아버지에게 붙잡혔다. 할아버지와 또또는 인사말도 남기지 않은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13-01-21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승전...어머나 군요. 까미는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는 그레이하운드로 또또는 푸르고 귀가 아주 큰 시추로 내 맘대로 상상하고 갑니다. (물론 이것은 제 마음대로의 상상.)

Arch 2013-01-21 13:05   좋아요 0 | URL
둘 다 아니에요. 까미는 까만 미니핀이구요. 또또는 생소한 종의 강아지였어요.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가고 싶어요. (물론 이것은 그냥 꿈일지도)

숲노래 2013-01-21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키우는 분은
개랑 마실을 다니며
개한테도 사람한테도 좋은
풀내음과 흙내음을 찾아다닐 수 있어
즐거우리라 느껴요

Arch 2013-01-21 13:06   좋아요 0 | URL
네. 혼자 다닐 때보다 배는 즐거워요. 저는 음악 듣고 까미는 냄새 맡고 돌아다녀요. 가끔 까미를 부르면 기절할 것처럼 뛰어와서 아는척하는게, 참.

카스피 2013-01-2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어려서는 참 강아지를 많이 키웠는데(변견부터 도사견까지...),남의 집 살이는 하면서부터는 동물키우기 참 힘들더군요^^;;

Arch 2013-01-23 11:31   좋아요 0 | URL
지금 남의 집 살이 하고 있어요. 까미가 문짝을 다 긁어놔서 나중에 이사갈 때 어떻게 해야할지 눈 앞이 깜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