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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작정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알게 모르게 개개의 사정을 드러내는 알고자하는 욕구로 질문을 한다.

 밥 먹었니. 뭐 좋아하니.
이건 일상적 질문의 유형. 이럴땐 응 아니오 내지는 아무거나라고 답해도 무방하다. 

 학교는 어딜 나왔니. 부모님은 무얼 하시니. 넌 뭐하고 있어?
이것 역시 흔히들 하는 질문이지만 나같은 경우엔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편견을 조장한다거나 너무 뻔하고 내 진면목을(그런게 있기는 한거야?) 알기도 전에 내 배경을 진단하는거 아냐라고 비분강개하며 말하고 싶지만 기실 어렴풋이 당신도 공감하고 있듯이 그닥 내세울게 없는데다 내세울게 없는 답변이다보니 행여 오바하거나 무심하게 말하기조차 상당히 꺼려진다는 것. 오바하면 저거 자격지심이라고 볼 수 있고 무심하게 말하면 단련됐다고 말할테니. 피해자 놀음의 다름 아니다.


 그 다음 질문으론 어떤 체위 좋아하니. 자위는 어떻게 하니란 식의 성적인 코드로 중무장한 질문들.
 솔직한걸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나이지만 이런 질문은 하품 먼저 나와서 그냥 아무렇게나 답하곤 한다. 침대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자와의 이런 덜떨어진 질문을 나눠받고 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그걸 또 당당한 여자 운운의 꼬임에 넘어가 술술 얘기하는 나란 애의 정체성이란.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살짝 동할지도 모를 질문들을 받고 대답도 제대로 못한채 쩔쩔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를 만나는거, 왜 하는거야? 외로워서나 심심해서인거 말고. 정말 니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거야.
-욕구라... 사람들 알고 싶고 내가 어떤식으로 반응하고 움직이는지 궁금해. 시뮬레이션 체험은 아니고 뭐라고 해야나. (아 이 그지같은 말빨.)

 넌 꿈이 뭐니.
-내 꿈은 세상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책을 쓰는거야. 그 책이 말야. 내가 죽은 후에도 남는다면 끔찍하게 기분 좋을 것 같아. 약간의 허영심, 아니 다량의 허영심을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꾸준히 생각한거거든. 그래서 지금 내가 붕 떠있고 친척 모임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썩소만 날리고 있어도 조급하진 않아. 사실 좀 조급하기도 하다. 아닌척 하는거지.

  외로울때 뭘하니.
-요즘은 주로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요리를 해. 비상시엔 무한도전으로 1시간 분량의 위안을 얻어. 지금 일을 안 하고 있으니 사람들도 곧잘 만나는 편이고. 


 그리하여 나의 허접한 답변은 그가 나란 인간을 느끼게하는 계기를 마련해줬고, 차마 난 그에게 같은 질문을 하진 못하게 만들었다. 이건 주로 내가 하는 질문의 유형이었으니 선빵을 맞고 질문의욕을 상실했다고 해야나. 그런게 왜 궁금하냐고 하면 뭐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사람을 좀 더 알고 싶은데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자신있는 신체부위가 어디인지 아파트 시세는 어느정도인지를 물어선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해본다.

 그동안 인터뷰어처럼 질문만 해대서 이실직고 좀 섭섭했다. 나의 모든 존재를 오감으로 받아들인다는 사람도 있었고 차차 알아가는거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난 비유적인 표현이나 농담도 구분 못하는 메타포치에다 차차 알아갈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인연이란게 복잡다단한 삶에서 가능한지 알 수 없어서 그들의 진의조차 의심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전에 본 귀여운 녀석이 대화 중에 꺼낸 얘기 중에 '아는 여자'의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그동안 늘 아는 여자라고만 일컬어진 이나영에게 정재영이 헤어지면서 이름이... 나이가... 라고 묻는 장면 말이다. 혹시 우린 그저 아는 사람 아는 여자로 지칭된 내가 아니라 어떤 색을 지니고 어떤 색을 발현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관심을 일찌감치 접고 있는건 아닐까. 나를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만남의 수요를 재느라 정작 상대방을 알아주고 그 존재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것조차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상대에게 집중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노력하는거고, 적어도 자위하듯 표현 욕구만 앞세워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하진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대화가 통한다는게 어떻게 말을 끊임없이 한다는 것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그건 분명 공감의 힘이고 나를 알아주는 상대에게 자극받아 더 그를 알아가는 과정일진대.

 질문에 이력이 나면 다른 형태의 소통 방식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지난한 내 식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다만 그 방식이 무례하거나 집요한게 되지 않도록 세련된 포즈로 진의를 표현하는 것과 일방적인게 되지 않도록 좀 더 타이밍과 질문의 질에 대해 고민해야겠지. 과연 그게 잘될지 한참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사뽀로 덕에 아침부터 알딸딸하다. 이 나른한 감각이 일요일의 더없이 나른한 기분과 조응하면 어떤 색이 나올까. 난 매일매일 내가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의 일요일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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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6-1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저로 하여금 이런 저런 얘기를 마구 꺼내놓고 싶게 하는 글이네요.
그래서 그냥 추천만 드리고 갈렵니다 ^^

Arch 2008-06-1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댓글 다셨으면서^^/ nabi님 반가워요. 크. 저도 좋은걸요.^^
 

 30여명이 사는 고시원에 밤 12 20분경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조금 시끄럽다 말겠지하곤 방에 버티고 있다가 우왕좌왕할 어린 중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떠오르긴. 단지 너무 시끄럽고 온 밤내 그 소리가 계속될 듯해 오싹한 거겠지.- 잠에 취한 몸을 비틀대며 나가봤다. 역시나 몇몇 낯익은 얼굴들과 여기 살았어 싶은 얼굴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들은 걱정만하고 있지 적극적인 제스처는 취하지 않았다.  나는 대번에 나서기 좋아하는 기질을 발휘해 화재경보기함을 열었다. 선이 콘센트에 연결되어 있음 뽑을 요량으로 이리저리 선의 행방을 쫓는데 도통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총무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선 거들었지만 맹한 나나 아직 연애 한번 못할 정도로 순진하기만한 그 애나 심오한 화재경보기를 파악할순 없었다. 대체 이 소릴 어떡해야할지, 고막을 잠시 드러내놓고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최근 고시원에 입주한 열혈 여성이 나타나 가위를 달라고 했다. 그녀는 가위로 경보기에 연결된 선을 하나씩 잘라냈다. ? 그럼 그거 작동 안 되잖아요. 얼떨결에 내가 묻자, 그녀는 피복선 벗겨내고 다시 연결하면 된다고 정말이지 화재경보기 까짓것 별거 아니란 표정으로 계속 선을 잘라냈다. 6개쯤 잘라냈을까. 소린 그쳤고 모여있던 무리들은 안도하며 자거나 혹은 씻으려고 고시원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들 얼굴엔 손바닥만한 그늘이 드리워졌고 그건 우리가 공통적으로 분명하게 느낀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거창한 설명이지만 짧게 얘기하자면 대충 이런 속마음 정도 되겠지.
 

 “ 아 씨발, 이러다 다 뒈지는거 아냐.”
 

 그날 이후로 난 고시원에 틀어박혀 부단히 냄새를 맡고 낌새를 살피고 있다. 구체적으로 가스밸브를 잠근다 화재경보기를 재설치해야한다, 소화기 작동법을 배워야한단 식의 자력갱생법을 말이다. 아울러 얼굴 익힌 몇몇에게 소방시설과 원장이 관계된 음모론-모종의 커넥션이 있을지도 모른단-을 퍼트리고 다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불이 나면 정말 냅다 뛰더라도 통로가 좁고 출구가 하나라서 위험할지 모르니 다이어트를 해야한다는둥 아예 화재의 싹을 뽑아야하니 불과 밀접하지 않은 생활습관-생식하라던지, 전자렌지로 음식 조리에 박차를 가하란-을 들이란식의 허무맹랑한 소리만 왈왈대다 개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화재가 나면 순식간에 불이 번질 위험이 주거지보다 높을 뿐이지 고시원 자체는 생활하는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 고시원에서 얼굴 익힌 친구들과 만든 억지 간을 한 설익은 재료를 요리랍시고 깔깔대며 먹는 재미도 있고, ‘고시원이란 고시스런 분위기 덕분에 조용히 좀 해달란 부탁을 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 모두 별거 아닌걸로 받아질 수 있는 야박하지 않은 소통이 있고, 생활터전이다보니 이러저러한 물건들이 창을 통해 옮겨다니기도 해서 물자절약도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원이다.
 

 뭐 공동생활의 불편함이나 가끔 일어나는 경미한 도난사건 말곤 사는데 지장있을만한 일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고. 내 방이 아니라 내 공간이 있고, 내 삶을 스스로 꾸린단 자부심도 있으니 이건 일석이조원. 고시원 산다고 했을 때 사람들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과 재깍 반응하는 말들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깡도 키웠으니 난 대단한 고시원 적응형 인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건 욕망할 수도 없고 욕망해서도 안 되는 무기력한 20대의 구차한 자기변명으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해서 고민 안 한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봤을 때나 내 안의 욕구 정도로 미루어 짐작해도 꼭 포도를 먹을 수 없어 시고 떫다고 말한 여우의 맘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욕적인 극한의 결핍까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늘 내 곁엔 어떤식으로든 부족함이 존재해왔다. 허리에 탄탄한 고무줄을 묶어놓으면 아무리 멀리 뛰어도 다시 제자리이듯 이런저런 방식으로 날 독려해도 허린 너무 아팠고 고무줄은 질기기만 했다. 그래서 가끔씩은 불행하다고 느껴지고 지겹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진데도 위험은 늘 잔존해 있고, 계속 얽매이는거라면 고무줄의 탄성은 더 뛰어난 상태가 될테니 차라리 고무줄과 약한 허릴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물론 함정은 있다. 친구말처럼 적당히 벌어서 절약하는데 쓸 에너지를 다른데로 좀 돌리고 싶기도 하고, 나누면서 살고 싶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암담함쯤은 흔히들 하는대로 보험이나 적금으로 담보 잡히고 싶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이게 담보잡히는 성질의 것은 아닌데 그럴 듯 해보인다.- 하지만 어느 것도 완전한게 아니고 안정적인건 더더군다나 기대할 수 없는거라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더 나을거란 생각이다.  밤중에 울린 화재경보기 덕에 난 짧은 글을 짓고, 나의 결핍감을 생각해본다. 결핍감은 간질 환자가 경험한다는 일초간의 공명상태처럼 때론 투명하기까지하다. 풍족한 가운데선 가당치도 않았을지 모를 일.


 아직은 괜찮다. 괜찮은 말미를습지생태보고서의 마지막 읊조림으로 대신한다.


  우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걸까? (그렇겠지?) 그것이 싫은 논리적인 이유를 백가지는 더 댈 수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도망이 아닌 선택일 수 없을까.
패배할 것이 두려워서 출발선에 서기를 피하고 있는걸까? 혹은 어른이 되는 날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걸까? 불안한 눈빛으로 친구의 연봉을 묻거나 부동산 정보를 뒤적거릴 어쩌면 슬플 그 날에 한때는 이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했노라 자위할 기억을 만들고 있는 것 뿐일까? 세상 안으로 성큼 들어서지도 발을 빼지도 못한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금, 그래도 조금씩은 자라고 있는 것일까?
자기 안의 수많은 모순과 세상에의 두려움을 한 가득 품고도 영문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기분좋은 외침은...... 단지 어리석은 때문만은 아니겠지?

이르든 늦든 청춘에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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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6-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씨발, 이러다 다 뒈지는거 아냐.”

ㅎㅎ, 헉스입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사실적이네요.
오우~~~ 노우~~ 시니에님 답지 않아보여요.ㅋㅋ

Arch 2008-06-1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알라딘에서 다시보니 반갑네요.^^ 정말요? 나름 수위조절인데. 사실 입밖으론 저렇게 말 못해요. 상황이 조금 급박한 탓에. 앞으로 저다워보이는거 많이 깨질지 몰라요.

순오기 2008-06-18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시니에님이 고시원에서 생활한다는 거에요?
옥찌들이랑 사는거 아닌가요? 몰라~ 헷갈린다.^^

Arch 2008-06-18 09:0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그러니까요. 저는 홍탁처럼 좀 삭힌 다음에 사진, 올릴게요. 뒷북 전문 시니에잖아요.

hnine 2008-06-18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원 풍경이 자주 등장했던, 얼마전에 읽은 김애란의 소설집이 생각나네요.
시니에님, 글 쓰시는 내공이 마구 보입니다. ^^

Arch 2008-06-19 09:51   좋아요 0 | URL
hnine님 마구 보일 정도래야는데. 저도 김애란씨 좋아해요.

마노아 2008-06-1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틀 전에 올라온 글인데 왜 저는 이제사 보게 되었을까요? 이상하다. 다 클릭했었는데...
시니에님 혹시 글쓰는 꿈 갖고 계세요? 보통 필력이 아니에요. 난 좀 많이 뭉클했고 콧날이 조금 시큰거리기도 했어요.
꼭 오즈마님 글을 볼 때 받는 느낌과 비슷했고, 예전에 계시던 작게작게님 글 느낌 비슷했어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글이에요. 마음이, 잔뜩 묻어있는 그런 글이요.

Arch 2008-06-19 16:52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감사해요.^^ 제가 한꺼번에 올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마노아님 울릴려고 한건 아니니까 뚝!!^^*
 

 얼마 전, 네이트 뉴스를 보다가 자신을 철도청 직원이라며 KTX에는 조중동 위주로 비치를 해놓았다는 글을 써놨더라구요. 기사도 기사였지만, 그 글에 괜한 공명심이 발동해 당장 코레일에 가서 다른 신문사 신문도 비치할걸 건의했죠. 

 그 답변입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항상 저희 코레일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심에 감사드리며, 고객님께서 말씀하신 KTX 특실서비스인 신문 공급과 관련하여 고객님께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

코레일 직원이라고 주장한 어느 네티즌이 인터넷 포탈 NATE에 “KTX 특실에 조선, 중앙, 동아신문이 수 천부씩 편중되어 있고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1~2부씩 밖에 없다”고 주장한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KTX특실은 다양한 고객이 이용하고 있으며 특실 신문도 이러한 고객들의 서비스를 위하여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KTX 특실에 공급되고 있는 신문은 중앙일간지, 경제지, 스포츠지, 영자지 등 총 28종을 일평균 약 10,000부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문이 발행되는 평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 조선, 중앙, 동아는 각각 약 5.5% 내외의 수량이 공급되고 있으며, 경향신문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의 경우도 약 5%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코레일에서는 고객의 의견을 서비스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덩치가 커서 쥐구멍 사양이라고 누가 귓속말을 해줘서. 이건 정말. 저처럼 삽질하는 알라디너 분들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사실확인 하지 않고 숙제하시면 다시는 숙제 의욕은 커녕 며칠 동안 삽질 후유증으로 인터넷은 들여다보기도 싫을거에요.

 평화적인 촛불 시위에 갖가지 잡음이 섞이고 있습니다. 그 속에 제가 한몫했다는 생각에 자책도 되지만, 이 점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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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12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셨어요~~~ 이런 고객이 있다는데 그들도 뜨끔해서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을 할테니까요! 화이랑~~ ^^

Arch 2008-06-12 12:3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좀 오바였어요.
 

 말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글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페이퍼에 분명히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간다고 쓴 덕에 사지 늘어짐증과 귀차니즘의 발동으로 집에서 뭉개고싶어 죽겠는 맘을 떨쳐낼 수 있었다. '서재 의무감'이란 단어가 생각날 정도였다. 집에 계시는 부친께 같이 나가보자고 했지만 예전 시위 당시 최루탄 때문에 곤혹을 치르셨다며 싫다고 하셨다. 아빠,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빠를 설득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플러스 저지하려고까지 하시길래 그만뒀다. 이거, 괜히 뻘쭘해지는거 아닌가 싶은 맘도 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지방에서 해봤자 어떤 의미가 있겠어란 나름 자조적인 생각이 끼어들기도 했다. 걔중에는 직접 시위 참여하는 사람들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굳이 서울까지 가서 시위를 한다는 사람들까지 있는 판이니. 그래도 안 하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보다 해보고 판단하는게 더 낫단 생각에 몸을 질질 끌며 집을 나섰다.


음향시설차량

 시민문화회관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었다. 다들 삼삼오오씩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예전엔 효순,미선 촛불시위때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통통 튀었다.

 


피켓을 만드는 친구들

 한쪽에서는 피켓으로 쓸 구호를 적는 친구들이 보였다. 어디서 저런 말을 생각했을까 싶은, 창의력 부재형 인간으로선 저중에 졸작이라도 좋으니 하나 물려받고 싶은 마음까지 들정도였다.

 나이도 바라는 바도 다 달랐지만, 우리가 분명히 원하는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이 원하는바를 말하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고

 자유발언 시간. 아저씨들이 주로 나오셨다. 100분 토론 관련해서 서울 시위가 폭력 시위가 아님을 피력하신 분도 있었고, 당신들의 일상에서 건져올린 정치적인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단연 기억에 남는 사람은 1분 1초가 아깝지만 도저히 공부가 할 수 없어 나왔다는 고3 여학생. 그녀는 말을 하는 도중 감정이 격해져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너무 감상적일 수도 있었지만, 모든게 다 논리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말도 너무나 똑부러지게 잘하고, 자신은 어떤 문제로 이 광장에 나오게 됐는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나 고3때는 노느라 바빴는데. 격세지감은 나중 평이고 사실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건 그곳에 나온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못미까지는 아니어도 대체 무엇을 위한 교육이고, 소신있게 아이를 키우는게 어떤건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다같이 공감 했으리라 생각된다. 학교 가고 싶어 아침 일찍 잠이 깨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녀 어깨의 짐을 같이 져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할아버지도

꼬마 친구도


거리시위내내 피켓을 들고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던 친구까지

 모두가 바라는건 각각 달랐다. 누구는 0교 폐지를 위해, 정말 그야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오빠들이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운하는 결사 반대(그래, 군산은 새만금이 있다. 그것 자체에 어쩌면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검역 주권 지키기 등. 하지만 지금 우린 여기에 모였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 하나.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가장 큰 힘이 되는 사실.


천지연, 사물놀이패와 같이 걸었다



  당신들과 같이 걷고 같이 노래해서 전 하나도 안 뻘쭘했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렇게 당연한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분위기에서 불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군산에선 과격한 분위기도 없었고, 문화제 형식으로 이어져 시종일관 평화로운 집회의 면모를 보여줬다. 군산고 친구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홀딱 반할 정도로 정말 잘했다. 여학생들 춤솜씨도 압권이었고. 사회자 말처럼 이 친구들이 공부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난 촛불집회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말 살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구가 뭔지, 어떤식으로 사회와 조율을 해갈 수 있을지 광장으로 나와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건 옥찌들이 공부는 좀 못해도 다른 재미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이 되는 사회, 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지 않은 사회, 연대의 힘을 믿는 사회, 돈이 아닌 가치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 다양한 의견이 그 나름대로 의미를 압아가는 사회. 뜬구름 잡는 얘기 같지만 난 그런 사회가 올거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힘을 분산시켜 꾸준히 집회에 참여해야겠다.

 다음 10일엔 옥찌들과 참가해야지. 이건 정말 '서재 의무감'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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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12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을 하나 밝히는 것, 우리 모두의 희망이고 힘이지요! 수고하셨어요 토닥토닥~ ^^

Arch 2008-06-13 13:45   좋아요 0 | URL
^^*
 


 나중에 조금 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먼데 나설땐 자전거를 굴리고, 마당에는 고추랑 상추를 심고, 마당엔 포장을 하지 않아 비오는 날이면 땅이 좀 패이고, 바람에 흙먼지도 날리게 하고싶다.

 옥찌들이 놀러오면 작은 밭에 심어둔 옥수수를 따서 가마솥에 쪄내고 놀이터 모래흙보다 더 찰기있는 마당흙으로 소꼽놀이를 할 수 있게 하고싶다.

 나중에 아주 가까운 날엔

 꼭 이런 집에서 두런거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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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난 어릴 때 저런 집에서 살아서 그런 로망은 없어용! ^^
시니에님이 살면 그때 놀러갈게요~ 괜찮죠? ㅎㅎ

푸하 2008-06-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런데서 살고 싶네요. 뭐가 필요할지 차차 알아봐야 할듯...^^:
안녕하세요 시니에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Arch 2008-06-0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뭐 사람에 따라서 다르니까요. ^^ 놀러오신다면 제가 온돌 좀 뜨끈하게 해놓겠습니다.// 푸하님 반가워요. 필요한건 글쎄 뭘까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것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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