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날
넘 땡볕인데 나설까 말까
모자를 쓰고 양산도 썼네
도토리묵을 먹고 싶은 마음이 땡볕을 이겼다
15분을 걸어 장에 갔네
묵 옆에 있던 우무를 발견하고 룰루랄라
옛날 옛적 어머니는 우무를 채썰어 콩국에 말아주셨지
고소하고 짭조름한 콩물에 담겨있던 날캉날캉한 우무
후루룩 들이키면 씹을 것도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우무를 우물우물
우물거리는 맛이 재미났네
묵과 푸딩 사이
재밌고 신기한 우무
아무 맛도 없으면서 맛있는 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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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려고 작심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수도자 생활.
와이파이 없는 곳에서 최소한의 요기를 하며 풀을 뽑고 물을 주고
햇볕이 좀 가시면 산책을 하고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안할 수 있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하던 마음에 미안하게
오늘은 맛있는 커피 한 잔이 너무 그리워
15분을 걸어서 문명의 세계로 나갔다.

오호 꿈결같은 와이파이 빵빵, 진한 커피 한 잔. 평소엔 먹지도 않는 달달한 빵 한 조각에 업되어 룰루랄라. 땡볕 15분을 걸은 보람이 있었다.

처음보는 아직 꽃이름을 못찾은 꽃도 보고
흔하디 흔한 마냥 길가의 풀꽃도 넘 예뻐서 자꾸 걸음을 멈추며
갔던 한낮의 길. 그냥 보통의 길. 보통의 풀꽃.

괭이밥.금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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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애도 주간이라 로스의 책을 다시 읽기 하고 있다. 처음 로스 입덕의 계기가 전락, 아니면 죽어가는 짐승인데 정작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두 책을 다시 읽었다. 어떤 책이 먼저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두 책을 휘몰아치듯 정신없이 연달아 읽었던 기억만 난다.

뭐, 이런 작가가 있었단 말이야? 그런 좀 충격적인 감상이 첫인상이었는데 다시 천천히 읽으니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알고 싶지 않은 분야의 친절한 묘사. 죽음을 앞둔, 죽어가는, 살아 생전 명망과 지위 모든 것을 가졌던 참 잘났던 남자도 피해가지 못하는 나이듦과 스러짐에 대한 정직한 발악과
현실 한국 내가 아는 세계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또는 모르는 세계에 대한 필요 이상의 묘사라고 생각되는 거침 없는 서술, 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

그게 다인가, 그 너머에 뭐가 있는 건가. 죽음, 섹스로 대표되어 버린 이미지 때문에 사이 사이의 뭔가들이 묻혀버렸구나. 미국의 역사, 여성주의, 철학, 음악, 미술, 없는 게 없이 차린 밥상. 아 정말 잘난 사람이었구나.

얇다고 깔보고 후루룩 들이켰는데 다시 들이키려고 하다 목이 메인다.
퍽퍽한 고구마 다섯 개쯤 먹은 기분이 되었다.
좀 똑똑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 이게 대체 뭐냐고.

두 작품 모두 자기분야에서 성공한 60대가 주인공, 로스가 70대에 쓴 소설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젊은 여성과 사귀었다기보다는,
탐하고 집착하고 위로 받는 노년의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전락, 죽어가는 짐승, 휴먼스테인을 묶을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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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마나부의 브랜딩 디자인 강의를 읽었다.

‘팔다에서 팔리다로‘가 제목이다. 무엇을? 이란 의문을 가지고 책을 폈다.
사진이 많고 두께가 얇다. 둘 다 좋아하는 컨셉이다. 총 4강의 강의를 풀이했는데 강의자는 굿디자인컴퍼니의 대표이자 게이오 대학 특별 초빙 교수인 미즈노 마나부이다. 판매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이겠지만 강의의 주제는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감이나 마인드 같은 것,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제는 브랜딩 디자인, 수강생은 디자인전공자로 한정하지 않았다.
브랜딩 디자인이란 개념이 우리의 일상과 사회생활 전반에 어떤 영역으로 들어오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실제 기업에서 성공적으로 이끈 브랜딩 디자인을 예를 들고 개념을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1강 ‘왜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것일까?‘에서는 발명하라, 붐을 만들라, 로 시작해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브랜드 만들기는 하나의 커다란 돌이 아니라 작은 자갈들이 미묘하게 균형을 맞추며 힘겹게 쌓여 하나의 산을 만들어 가는 것. 즉 ‘브랜드란 보이는 방식을 컨트롤하는 것이다‘로 결론 짓고 있다. 애플이나 다이슨 그 외 저자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를 예로 들고 제품, 로고 사진들을 곁들여서 이해가 쉬웠다.

2강 ‘디자인은 누구나 다를 수 있다‘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센스란 도대체 무엇일까요‘라는 화두이다. 우리나라에서 쓰자면 ‘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하다. 번역가가 출판언어로는 좀 부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센스로 번역했거나 저자가 센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직한데. 디자인업계에서라면 더욱이 우리가 사용하는 그 ‘감‘일 것 같다.

‘센스란 집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최적화하는 능력이다‘ .

센스를 익히고 싶다면 우선은 지식을 쌓아야하고 그러므로 센스는 노력으로 익힐 수 있다는게 저자의 요점이다. 센스를 기르는 방법, 구체적인 지식 쌓기의 방법이 뒤이어 소개된다.

3강 ‘브랜딩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에서는 나카가와 마사시치 상점의 브랜딩에 참여한 저자의 경험을 차극차근 상세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독자가 실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컨설턴트의 역할을 체험하게 해준다.
브랜딩이란 막연한 의미가 일반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4강 ‘팔리는 매력을 찾는 방법‘에서는 자신이 참여한 기획의 프레젠테이션의 실제 화면을 사진으로 다 공유하는데 업계 종사자라면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신중하게 전달한다.‘등의 몇몇의 문장들이 실제적이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206쪽의 그립감 좋은 가벼운 책인데, 비교하면 베스트셀러인 지적자본론과 컨셉이 비슷할 것 같다.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 요즘 인기 있는 주제의 강의를 4강 들은 셈이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하고 진솔한 어조가 거부감이 없다.

딱히 전공자나 업계 독자가 아니더라도 삶의 전반에 꽤 유용하고 흥미로운 책이었고, 강의를 이렇게 풀어놓으면 참 부담없고 좋구나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큰 가르침을 받는 것 같지 않아 거부감이 없었고 뭔가 꽤 현실적이고 고갱이만 정리한 강의였다. 거품 빼고 이 책처럼만 살아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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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모를 의무감에서 나선 길이었는데
몇번이나 가본 곳이어서 기대감도 없었는데
활짝 핀, 피어가는 색색의 장미와
하얗고, 노란, 붉은 인동초를 보고
책에서도 못보았던 누운애기주름풀을 보고
흐드러진 찔레꽃을 보고
서양버즘나무, 튤립나무, 단풍나무...
큰 나무 그늘 아래를 걷고
박물관에서 옛 것들을 실컷 보고
근대건축물들의 아우라가 번져있는
골목길을 헤매다닌 것이 이만큼이나 즐거울 줄.

끌림 책을 가져가서 근대건축물을 배경으로 책사진을
좀 찍어야겠다 생각해놓고 오래 걸을 일을 걱정하느라
막상 집을 나설 때는 파라솔 하나와 휴대폰만 챙겼다.

세븐틴의 진영이 NCT의 도영에게 선물했는데
재현이 먼저 읽었다는 ‘끌림‘
아이돌들 좀 좋아하는 나님이 몰라라 할 수 없어
다시 읽으려고 보다가 깜짝 놀랐다.
기억 속의 끌림은 사진과 짧은 글 위주였는데
이 책이 이렇게 긴 글이 많은 책이었던가.

제천의 어느 산 계곡길을 걷고
평창의 어느 시골집 다락방에서 업드려 읽었던
그 때의 분위기만 생각나고 글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재현이가 천천히 읽고 있다고 하니 나도 좀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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