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엄마집에 왔다. 집 근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20분 휴식 시간을 포함 3시간 반이 걸리는 곳이지만 1년에 한 두번 올까말까.

버스에서 내려 다시 차로 이십여 분을 더 골짜기로 파고 들어야 엄마집 평상에 몸을 뉘일 수 있다. 어제는 중간에 다른 가족과 합류하느라 잠깐 터미널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가 은어낚시 하는 모습을 봤다. 지금이 은어철이라고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그런 풍경 비슷한데 좀 더 소박한 모습이다.

은어, 라는 말만 들으면 윤대녕이 생각나는데 그의 첫 작품집 제목 때문이다. 칼과 입술로 제목이 바뀌어 재출간 된 어머니의 수저에 보면 그가 젊은 시절 이 고장을 사랑해서 쌍계사 앞에 아예 방을 얻어놓고 살았단 이야기가 나온다. 아름다운 고장엔 어느 문인의 에피소드 하나쯤은 깃들기 마련이다. 이 곳에 와보면 그런 사연의 주인공이 윤대녕임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제 밤늦도록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금성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 까지 다 보고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공기 좋은 곳에 오면 즐기는 새벽산책을 놓쳤다. 6시 30분, 산골의 아침은 이미 해가 너무 쨍하다.

가방에 넣어 올 가벼운 책을 찾다가 수개월째? 베스트셀러 순위권의 <언어의 온도>를 가져왔다. 너무 유명해서 손이 안갔었는데, 저자의 신간이 나와서 다시 환기가 되었다. 한 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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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도 어렵지만 결혼은 더 어려운 세상에, 남부럽지 않은 직업에 결혼까지 한 남자가 있다. 최근에 신혼일기겸 독서일기를 묶어 낸 오상진아나운서이다.
짐작할 수 있는 캐릭터가 짐작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쓴 글편들.
좋은 의미로 모범 답안 같은 일기장이라고나 할까.

어떤 독자는 굳이 책으로 엮을 필요가 있나싶은 글들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던데, 문학성이 뛰어나고 훌륭한 글을 읽고 싶으면 고전문학을 읽으면 되는 것이고, 마음가는대로 쓴 이런 글이 주는 소소하고 편안한 재미는 또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같이 책을 좋아해서 아내는 책방을 차려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고
저자 또한 오상진의 북스타그램으로 꾸준히 책을 소개하고 있으니 부부가 모두 젊은 독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오아나운서가 넘 대중적이지 않아서 소개는 못했다며 본인이 좋아하는 책으로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언급한 적이 있다. 흠. 거장과 마르가리따라, 풍자코드를 잘 읽어야 하고 양도 많아서 왠만하면 좋아하기 어렵겠다라고 생각한 그 책이다. 내가 읽다가 포기하고 영화로 겨우겨우 봐낸 작품인데, 오상진이 추천하는 책이라고 하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중이다.

암튼, 이런 책을 읽고 책도 읽고 싶어지고 결혼도 하고 싶어진다면 좋은 거지 뭐.

비슷한 맥락으로, 뭐 이런 잡다한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굳이 책으로 낼 필요가 있나 싶은 대표적인 책들이 음식에세이. 관심 없는 독자들이 본다면 참 쓸데 없는 책들이다.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는 노랑이라는 표지색으로 나로 하여금 두 권의 음식수다책을 더 불러 내었는데, 세 권 중 가장 무겁고 큰 책 <칼과 황홀>, 중간무게 중간두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가장 얇고 가벼운 책이 <오늘 뭐 먹지>다.

음식수다책 세 권의 공통점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 쓴 유머코드가 있는 책‘이란 것이다. <칼과 황홀>을 <오늘 뭐 먹지>의 그립감과 사이즈, 두께로 재출간하면 두 권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읽어도 재밌다.
그냥 묻어두기 아깝다. 칼과 황홀을 제목도 바꾸고 디자인도 바꿔서 재출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며 읽고 글의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오늘 뭐 먹지>의 내용은 뭐, 공감 백이십퍼여서 말하면 잔소리.
시래기를 삶아 겉껍질을 벗기는 장면에선 머윗대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껍질을 벗기고 앉아있는 내가 오버랩됐고, 두부 부추 숙주 고기 당면이 들어간 정통만두를 좋아한다는 부분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이다 못해 냉장고를 열고 주섬주섬 있는 재료만으로 만두를 빚어 먹었다. (맛집프로그램 보고 만들어먹는 스타일)

암튼, 그렇다는 얘기고, <오늘 뭐 먹지> 때문에 괜히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와 <칼과 황홀>을 소환해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정말 참 글 잘쓴다 싶은, 이런 게 에세이를 읽는 맛이다 싶은 글들이었다.

속초의 청어와 후쿠오카의 청어, 두 작가가 가진 청어 에피소드.
참 다르게 감칠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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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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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이지는 않은데 충분히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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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와 오에겐자부로, 배수아는 원래 있던것이었고 시마자키 도손과 헤르타 뮐러는 내게 없는 책이었다.‘

이런 문맥이 나왔으므로 ‘최미진은 어디로‘가 무조건 좋았다. ‘최미진은 어디로‘는 이기호 5년만의 신작소설집의 첫번째 단편이고 여기엔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기존의 소설집이거나, 문학상 모음집에서 읽었던 작품이고 ‘한정희와 나‘도 다른 소설집에 실려있는 단편이다.

이기호를 떠올리면 거침없는 시원함, 유머, 구수한 입담이 연상된다. 어딘가 성석제와 새끼 손가락 정도 걸고 있고 천명관 옆동네 쯤 살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이기호는 이기호다. 그에게 생긴 믿음은 ‘차남들의 세계사‘가 연원이었는데 불행히도 나는 ‘차남들의 세계사‘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필립 로스의 책들을 다시 읽기하는 것처럼 이기호도 발표순서대로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이기호인지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될만한 말로서 정리하고 싶다.

‘한정희와 나‘의 내용은 사회적 현실과 나를 보여주는데, 제목에서 한정희와 나를 대등하게 병치함으로서 내용이 현실을 약하게 그린 것을 보완하고 끌어올렸다. 제목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래서 멋있는 소설이 되어버렸다. 초기의 소설들이 사회비판적인 골계미가 돋보였다면, 지금의 한기호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책임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교회오빠 강민호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역시 이기호는 인간탐구보다 사회탐구에 더 재능이 있구나 생각한 순간, ‘최미진은 어디로‘를 보면 그것도 아니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최미진은 어디로‘의 마지막 문구인데, 그는 종일 허허실실 웃으며 전개한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예전의 그의 소설들에서는 작중화자인 작가가 거의 안보였는데 이번 소설집은 화자의 무게감이 크게 다가온다.
그것이 소설적 기법인지, 로스 소설들에서 네이선 주커먼,
이기호 소설들에 등장하는 시간강사 ‘나‘의 비중들이 소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염두에 두고 다시 읽고 싶다.

이야기를 기억하고 구분하려고 <전락>과 <죽어가는 짐승>을 다시 읽었는데
그 때 뿐이고 또 가물가물하다. 옆에 두고 정리하고 자주 보지 않으면 모든 것은 망각되기 마련이다. 늙어가는 이유라고 너무 자괴감을 갖지 않기로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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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습한 바람이 마구 부는지, 샤워를 두 번이나 했다.
어제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그새 나온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돌아와서 냉장고 청소,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니 진땀이 삐질삐질. 시간도 금세 갔다. 여기서라도 쓰레기 안나오는 생활을 해보자 맘먹었는데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쓰레기와 설거지거리가 생기니 숨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지구에 유해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하루 종일 비를 즐기며 마지막 날을 장식하리라 했건만 어쩌면 내일까지도 비는 못 보고 가겠다. 이후의 일주일은 계속 비예보던데 왠지 억울한 느낌.


뒹굴뒹굴 읽을거리가 뭐 없나하고 서가를 보다가 박찬일의 <뜨거운 한입>을 빼들었다. 수년 전에 읽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끝으로 그의 책을 안읽은지가 꽤 되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북토크에서 치킨스톡을 쓰지 않고 아침에 장을 봐서 제대로 국물을 내서 장사를 하려면 임대료 인건비에 값하느라 늘 적자고 적자를 메우기위해 새벽까지 글을 쓴다던 그.

주말에 왔던 친구가 먹고 싶은 걸 얘기하라고 했을 때, 생각난 건 파스타다. 알리오 올리오를 가장 선호했는데 요즘은 해물이 들어간 매콤한 토마토소스 스파게티가 좋아졌다. <어쨌든 잇태리>, <보통날의 파스타>에서 이태리 유학시절이야기, 파스타와 재료들에 대한 구수한 입담 가득한 글들을 읽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그간 책이 꽤 나왔다.
아직도 글을 써서 식당을 운영 중인건지, 어쨌든 <뜨거운 한입>에서도 음식에 대한 에피소드와 식재료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가을엔 여수에 가서 삼치회를 먹어야겠고, 제주토속음식 중엔 애저회라는 것도 있으며 이태리에선 토끼고기와 흰염소를 먹는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 감자 얘기엔 신경숙의 <감자>, 김동인의 <감자>,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까지 이야기가 끝도 없다.

˝먹는 일을 글로 써서 책을 펴내는 일이 벌써 여러권째다. 부끄럽다. 나는 순수하게 먹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소매를 걷어 붙이고 밥을 해본 이만이 아는 기쁨이다. 그러나 돈을 받고 밥을 팔게 되면서 그 기쁨을 잃었다. 거기에다 그 밥 파는 이야기를 글로 써서 두번씩 남우세스럽게 되었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로 밥을 지어 바친다. 맑은 술 한 잔을 반주로 맛있게 드시길 바란다.˝ - 후기 중

그가 만들어내는 요리 못지않게 그의 글 또한 맛깔난 밥상이다.
글밥을 파는 일이 부끄럽다는 것은 그의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보일만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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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8-06-2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워요~ 습하고... 옷을 벗어 짜면 한바가지는 나올듯~~

삼치회는 처음 한 두점은 부드러워 먹을만 한데 많이는 못 먹겠는것이 난 미식가는 아니구나~ 했어요^ ^

2018-06-26 1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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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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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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