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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울다 잠든 숲 ㅣ 청년사 고학년 문고 3
최나미 지음, 류준화 그림 / 청년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떨어지는 단풍잎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이 몸짓을 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끄윽끄윽 피울음을 감춘 단풍잎 하나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듯 그렇게 무연히 이별을 이야기하는 책 <바람이 울다 잠든 숲>. 가을이 오면 마음에 부는 바람 소리 마저 더 크게 들리고, 우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겨울을 대비하고,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 간다. '주하' 역시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진짜 아픈 것은 소리 내어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더 고독한 소녀, ‘주하’의 내면 풍경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톤으로 담담히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팽팽한 갈등구조 속에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모험이야기가 아니기에 초반부는 지루하다. 그 더딤은 아직은 생기발랄한 삶의 에너지가 넘쳐나야 하는 소녀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독자의 시선이 애처롭고도 갑갑하게 투사되기 때문이다.
예고 된 불행을 앞에 두고 낯선 곳에서 사는 주하를 바라보는 독자의 읽기 속도는 주하가 인식하는 삶의 시간과 무관하지 않다. 시간은 주하의 심리를 좇아 더디 흐르기도 하고, 한 문장으로 세월을 건너뛰기도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하가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 주하의 거부할 수 없는 현실과 맞물려 느리게 때로 빠르게 전개 되며 긴장감을 부추긴다. 그 긴장감은 탄탄하진 않지만 은근하며 독자를 인물의 내면으로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도 하늘 말나리야’가 떠올랐는데 ‘너도 하늘 말나리야’는 주인공들의 구도와 심리가 사뭇 그 시기의 아이들보다 성숙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나오긴 했지만, 적어도 중학생 정도가 읽어야 공감대가 형성 될 것 같다. 하지만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은 고학년 추천도서로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거부할 수 없는 두 번의 이별을 겪으면서 성장하게 되는 주하의 모습은 또래의 모습과 크게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적응해야 하는 그 또래 아이의 심리적 외로움과 공포감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또한 내 안에서 걸어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눈을 돌려야하는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를 통해 관계를 돌아보게 하며 타자를 인식하게 한다. 나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이 아니며, 하염없이 슬프고 괴롭기만 해 ‘나’를 인식할 수 없었던 그 순간에도,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아이들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숲을 키우듯 엄마의 부재와 상실이 소녀 ‘주하’를 성숙하게 했다면, 우리 곁에서 울고 있는 바람 또한 우리를 그렇게 키워 줄 것이란 따듯한 희망을 선사한다.
사족을 치면서 주인물을 부각시킨 짜임새와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을 가게 만드는 호소력에 반해, 이 책이 주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소 진지하게 느껴진다. 주제가 그런 분위기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 만한 독자들은 무거운 분위기를 못 견디는 속성을 가진 족속들이다. 그래서 작가도 부분이나마 유머?를 구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웃다가도 울 수 있는,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분위기, 다 읽고 나서 명징하게 가슴에 남는 문장 하나가 아쉽다. 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던 만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고대하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