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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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다를 봤을 뿐인데
바다가 가물어 보인다

끝간데 없는 출렁거림도
다만 거기 있으면 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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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3월에 마젤란 함대는 처음으로 이 미크로네시아 해역에 진입했고, 그로부터 3백여 년 뒤에 피츠로이 선장의 비글호는 이 해역의 남쪽을 멀리 돌아나갔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미크로네시아에 다녀왔다.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하여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향하여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태어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우글거린다. 열대의 숲은 '사납고 강력하다'고 써봐도 숲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다. 열대의 숲은 사납거나 강력하지 않고 본래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79

 

 

 

 

 

 

 

 

 

 

 

 

 

<라면을 끓이며>를 읽는데 마음이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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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조용하고 간결했다. 베이비 석스 성녀가 쓸데없는 말은 허락하지 않았기 떄문이다. "세상만사는 적당한 정도를 아느냐에 달려있어" "멈춰야 할 때는 아는 게 좋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147

 

강기슭을 따라 움푹한 곳에서 자라는 푸른고사리의 포자들이 수면에 둥둥 떠서 강한가운데로 흘러갔다. 그 푸르스름한 은빛 행렬은 햇살이 낮고 희미해졌을 때 강기슭에 누워서 그 쇼ㅗㄱ이나 바로 가까이에 있찌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종종 벌레로 잘못 보기 쉬웠지만 사실 그것들은 한 세대가 미래를 확신하며 잠자고 있는 씨앗이었따. 잠깐 동안은 모두에게 미래가 있따고 믿기 쉽다. 포자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이 실현될 거라고, 정해진 수명을 다할 거라고, 하지만 이런 확신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포자의 수명보다는 오래가겠지만.

 

그래도 세서는 그런 노력이 고맙기만 했다. 베이비 석스가 먼 곳에서 보내주는 사랑은 가까이 살을 맞댄 그 누구의 사랑에도 뒤지지 않았다. 그 손길은 물론이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은 그녀의 영혼을 일으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끌어올려주었다. 뭔가 분명한 말을 해달라고,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소식을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이 머리로 그런 소식을 전하길 기꺼워하는 이 세상을 어떻게 계속 살아가야 할지 조언을 해달라고 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162

 

깊은 우울에 빠진 개들이 누워 있는 헛간을 지나, 경비 초소 두 곳을 지나, 말들이 자는 마구간을 지나, 부리를 깃털 속에 파묻은 암탉들을 지나, 그들은 앞을 헤치고 나아갔다. 달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예 없었으니까, 들판은 늪이었고 길은 낙수받이였다. 조지아 주 전체가 미끄러지며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길을 가로막는 참나무 가지와 싸울 때면 이끼가 그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187

 

한 달 전 홍수처럼 쏟아지던 비가 온 세상을 물안개와 꽃으로 바꿔 놓았다.

 

꽃나무를 따라가시요. 꽃이 피는 나무만 따라가시오. 꽃이 지면 떠나시오, 꽃이 모두 지면, 원하는 곳에 이르게 될 거요.

 

그는 말채나무에서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로 달려갔다. 복숭아꽃이 듬성듬성해져 벚꽃을 쫓아갔고, 그 다음에는 목련, 멀구슬나무, 페칸, 호두나무, 손바닥 선인장을 따라갔다. 마침내 그는 꽃송이가 있던 자리에 이제 막 조그만 열매가 맺힌 사과나무밭에 이르렀다. 봄이 북쪽으로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가는 동안, 폴 디는 이 동반자를 따라가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야 했다. 2월부터 7월까지 그는 꽃의 마수꾼 노릇을 했다. 어쩌다 꽃을 놓쳐 길을 인도해줄 꽃잎 한 장 찾을 수 없을 때면 발길을 멈추고 언덕 위 나무에 올라 주위를 둘러싼 녹음의 세계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분홍빛이나 흰빛을 찾으려 지평선을 살펴 보았다. 꽃을 만지거나 잠시 서서 향기를 맡아보는 법도 없었다. 그저 뒤따라갈 뿐이었다. 곷이 만개한 자두나무의 안내를 받는 누더기 차림의 검둥이.

190

 

 

 

폴 디가 조지아 주 앨프리드 수용소와 식소, 학교 선생, 핼리, 형제들, 세서, 미스터, 쇠 재갈의 맛, 버터가 만들어지는 모습, 히커리 나무 냄새, 공책을 하나하나 가슴속의 담배 깡통 속에 집어넣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그가 124번지에 당도했을 무렵에는 이 세상 그 무엇도 깡통의 뚜껑을 열 수 없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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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토막으로는 새를 쏘아 잡기는커녕 총을 쏠 수도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그저 놀이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의자를 타고 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나긴 겨울 저녁에 우리가 안락의자에 천을 덮어 마차로 꾸미고는 한 사람은 마부, 다른 사람은 하인이 되어 여자아이들을 가운데에 싣고 의자 세 개를 세 마리 말 삼아 여행을 떠났던 일을 볼로댜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으리라. 이 여행에서 온갖 모험을 하곤했다. 그러면 겨울 저녁이 얼마나 즐겁게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던가..? 일일이 이치를 따지고 들면 놀이가 불가능하다. 놀이가 없어진다면 무엇이 남는가...? 50쪽

 

아버지는 지난 세기 사람이었다. 그 세대의 젊은이들에게서 공히 찾아볼 수 있던 기사도 정신과 진취성, 자신만만함, 친절함과 무분별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요즘 사람들을 경멸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런 태도는 타고난 오만함 탓이기도 하지만, 그 옛날의 영향력이나 성공을 오늘날에는 누릴 수 없다는 울분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정열을 쏟은 두 대상은 카드와 여자였다. 평생 수천만 루블을 땄으며 모든 계급을 망라하여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계급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 특히 아버지가 마음에 들고 싶어 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53쪽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도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 있었다. 최상류층이 아니었으면서도 항상 그 사회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존경을 받았다. 또한 다른 사람을 모욕하지 않으면서 세평에 오르내릴 때도 자신을 드높일 수 있는 자긍심과 자부심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았고, 상류사회 구성원이라는 지위나 부를 대체할 수단으로 독창성을 이용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버지를 놀라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빛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타고난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소심하게 후회하고 늘 실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친숙한 삶의 어두운 부분을 타인들에게 능숙하게 감추고 자기 자신의 삶에서도 멀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아버지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편리함과 만족스러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모조리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알았다. 자신의 인맥을 자랑스러워했는데, 그것은 아내의 가계를 통해, 그리고 젊은 시절의 친구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아버지는 감성적이었고 심지어 곧잘 울었다. 소리를 내어 책을 읽다가 감동적인 장면에 이르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여러 번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지인인 A의 로망스와 집시 노래, 오페라 한 대목을 부르곤 했다. 그렇지만 전업 음악가는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반적인 견해엔 아랑곳 없이 베토벤의 소나타는 졸음과 권태만 불러온다며, 세묘노바가 부른 <나를 깨우지 마세요>나 집시 여인 타뉴샤가 부르는 <혼자가 아니야>보다 더 훌륭한 음악은 없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아버지는 세간의 이목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 그가 좋다는 것은 곧 세상이 좋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어떠한 윤리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의 일생은 각종 오락들로 가득해서 윤리적 신념 따위를 갖출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일생 행복했기 때문에 사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에게도 사물을 바라보는 항구적인 시각과 불변의 원칙들이 생겨났지만, 그것은 오직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행복이나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행동이 삶의 방식을 좋은 것으로 여겼고, 언제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매우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능력으로 원칙을 탄력 있게 적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행동을 두고도 가장 사랑스러운 장난으로, 아니면 저급하고 비열한 짓으로 이야기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55쪽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엄마는 피아노 앞에 앉았고 우리는 종이와 연필, 물감을 가져와 둥근 탁자 주위에서 그림 그릴 준비를 했다. 나는 파란 물감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사냥 장면을 그리기로 했다. 파란 말을 탄 파란 소년과 파란 개들을 아주 생기 있게 그렸는데 파란 토끼를 그려도 될지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아빠에게 의논하러 서재로 갔다. 아빠는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파란 토끼가 있어요?" 하고 내가 묻자 아빠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있단다, 있고 말고"라고 대답했다. 나는 둥근 탁자로 돌아와서 파란 토끼를 그렸으나 파란 토끼를 덩굴로 고쳐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덩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덩굴을 나무로, 나무를 낟가리로, 낟가리를 구름으로 고쳐 그렸다.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종이 전체가 파란색 범벅이 되었다. 화가 난 나는 종이를 찢어버리고 낮잠을 자려고 안락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자신의 선생인 존 필드의 2번 협주곡을 쳤다. 나는 잠이 들었고 상상 속에서 가볍고도 환하고 투명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했고 그러자 이번엔 슬프고 무겁고 어두운 무언가가 연상되었다. 엄마는 그 두 곡을 자주 연주했기에 그 곡들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 감정은 기억과 비슷하였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기억인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에 대한 기억 같았다.

 

저 반대쪽에는 서재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나는 조금 전에 농민 외투를 입고 수염을 기른 사람들과 야코프가 그 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문이 닫혔다. '또 무슨 일인가 벌어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세상에 서재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소곤거리면서 발끝으로 걸어 서재 문 쪽으로 다가갔기에 이런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그 방에서 아빠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항상 나를 사로잡았던 담배 냄새가 났다. 매우 익숙한 장교의 삐거덕거리는 장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잠을 깼다. 카를 이바니치가 발끝으로 걸으며 어둡고 단호한 표정으로 손에 쪽지를 들고서 문 쪽으로 다가가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의 등 뒤로 다시 문이 닫혔다.

'나쁜 일이 생기면 안되는데'하고 나는 생각했다. '카를 이바니치는 지금 화가 나 있어. 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난 나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한 시간 후 아까 들은 장화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깼다. 카를 이바니치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그는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아빠가 거실로 들어왔다.

57쪽

 

 

 

지난 세가 중반 하바로프가 마을의 농가에는 양볼이 빨갛고 통통하게 살진 발랄한 처녀 나타시카가 평상복을 입은 채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클라리넷 연주자 바바였다. 그동안 쌓아온 공을 인정하고 그의 요정을 받아들여 내 할아버지가 나타시카의 지위를 올려주었다. 할머니의 하인으로 삼은 것이다. 하녀 나타시카는 온화한 품성과 열의로 하녀들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엄마가 태어나서 유모가 필요하자 할머니는 나타시카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새로운 임무를 맡은 그녀는 어린 주인에 대한 애정과 신뢰 그리고 행동거지로 볼 때 칭찬과 상으 ㄹ받아 마땅했다.

 그러던 중 업무상 나탈리야와 자주 만나야 했던 젊ㅁ고 혈기왕성한 급사인 포카와 사랑에 빠졌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조임쇠 달린 스타킹을 신은, 투박하지만 애정 가득한 그녀의 심장에 불꽃이 일었다. 심지어 그녀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포카에게 시집가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녀의 간청이 배은망덕하다고 여겨 화를 냈으며, 그에 대한 벌로 가엾은 나탈리야를 초원 마을의 외양간으로 쫓아버렸다. 그러나 여섯 달이 지나도록 나탈리야를 대신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영지로 돌아와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낡은 무명 옷을 걸치고 추방지에서 돌아온 그녀는 할아버지 발밑에 엎드려, 다시 호의와 친절을 베푸시고 자신과 관련된 어리것은 일들은 잊으시기를 간청했다.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녀는 실제로 맹세를 굳게 지켰다.

 

그때부터 나타시카는 나탈리야 사비시나가 되어 부인용 두건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간직한 모든 사랑을 주인댁 아가씨에게 쏟았다.

 새로 온 가정교사가 자신을 대신하여 엄마를 돌보게 되자 그녀는 곳간 열쇠를 받았다. 그리하여 모든 식료품과 세탁물 등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녀는 열과 성을 다해 이 새로운 임무를 이행했으며 자신의 삶을 주인에게 득이 되는 일에 바쳤다. 모든 항목에서 낭비나 훼손, 절취를 발견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결혼을 하면서 엄마는 20년간의 노동과 애정에 대해 검사를 전하고 싶어 나탈리야 사비시나를 불렀다. 다정한 말로 고마운 마음과 사랑을 전하면서, 나탈리야 사비시나가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었다는 내용의 공식 서류를 하사했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 집에 계속 머물지 여부와 상관없이 매년 300루블의 연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말을 듣기만하던 나탈리야 사비시나는 손에 든 서류를 쏘아보며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중얼거린 후 쾅하고 문을 닫고 방에거 나갔다. 그런 이상한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엄마는 잠시 후 나탈리야 사비시나의 방으로 갔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그녀는 손수건을 들고 트렁크 위에 앉아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찢어진 종잇조각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일이에요? 나탈리야 사비시나? 엄마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님 그녀가 대답했다. 이제 제가 보기 싫으신거지요. 그러니 절 영지에서 내보내려고 하는 거겠죠.. 좋아요 제가 나가겠어요.

그녀는 엄마에게 잡힌 손을 빼내면서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방을 나가려 했다. 엄마가 그녀를 붙잡아 얼싸안자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를 사랑해온 나탈리야 사비시나의 상냥한 모습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이제야 올바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그 할멈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바람은 조금도 말하지 않았고 자신을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일생은 사랑과 희생으로 가득했다. 우리에게 베푸는 사심 없이 온화한 사랑에 너무나 익숙했던 나는 다른 모습을 한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탈리야의 사랑에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았고 그녀가 행복한지, 만족스럽게 살아가는지 의문을 품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수업 도중에도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공부방을 빠져나와 그녀의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그녀가 있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아 생각하는 것을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녀는 항상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는데, 양말을 뜨거나 방에 가득한 궤짝들을 뒤적이거나, 세탁물 목록을 만들었다. 내가 "장군이 되면 놀랄 만큼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고 갈색 말을 사고, 유리로 만든 집도 짓고, 작센에서 카를 이바니치의 식구들을 불러 올 터"라는 둥 헛소리를 해대도 그녀는 "네, 그럼요, 도련님"하고 말하곤 했다. 내가 일어나서 나가려 할 때엔 그녀는 하늘색 궤짝 (뚜껑 안쪽에 채색된 경기병 그림, 포마드 병에 붙어 있던 그림과 볼로댜의 그림이 붙어 있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도련님, 이건 아차코보 담배랍니다. 고인이 되신 도련님의 할아버지께서, 굽어 살피소서, 터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시면서 가져오신 거랍니다. 이게 마지막이랍니다"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의 방을 가득 채웠던 궤짝에는 없는 게 없었다. 식구들은 무엇이 필요하든 간에 보통 "나탈리야 바비시나에게 물어봐야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녀는 궤짝을 조금 뒤져 필요한 물건을 찾아내서는 "그것 봐, 간수해 두길 잘했잖아"라고 말했다. 궤짝들 속에는 오로지 그녀에게만 쓸모가 있을 수천 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낸 적이 있는데, 사연은 이랬다. 식사 후에 내가 크바스를 따르다가 목이 긴 병을 떨어뜨려서 식탁보에 크바스가 묻었다.

"나탈리야 사비시나에게, 아끼는 꼬마가 저지른 일을 한 번 와서 보라고 하세요." 엄마가 말했다.

 그녀가 들어와 내가 저지른 실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후 엄마가 무언가 귓속말을 했고, 나탈리야 사비시나는 위협하는 몸짓을 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식사 후 기분이 아주 좋아진 나는 깡충깡충 뛰면서 거실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문 뒤에서 나탈리야 사비시나가 식탁보를 손에 들고 나타나더니 나를 붙잡아 세웠다. 젖먹던 힘을 다해 그녀의 손을 뿌리쳐보았지만 그녀는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식탁보를 더럽히지 말라고!"나는 너무 창피하고 분한 나머지 마구 울부짖었다.

 "어떻게!" 나는 홀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눈물에 목이 메여 말했다. "나탈리야 사비시나, 나탈리야가 감히 내게 반말을 하다니, 거기다가 하인의 자식에게 하듯이 내 얼굴을 젖은 식탁보로 문질러대다니!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나탈리야 사비시나는 내가 흐느껴 우는 것을 보더니 얼른 방에서 나갔다. 나는 방을 서성거리며 뻔뻔한 나탈리야에게 당한 모욕을 어떻게 앙갚음할까 그것만을 생각했다.

 

잠시 후 나탈리야 사비시나가 방으로 돌아와, 주춤거리며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달래기 시작했다.

"그만 꾹 그치세요. 도련님,. 울지 마세요..이 바보를 용서해주세요..내가 잘못했어요..나를 용서해 주세요..귀여운 도련님, 여기 이걸 받으세요."

그녀는 손수건에서 붉은 종이로 싼 것을 꺼냈다. 그 안에는 캐러멜 두 개와 말린 무화과 한 개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내밀었다. 나는 착하디 착한 할먼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어서 몸을 돌려 선물을 받았다. 눈물이 더욱 세차게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노여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그리고 부끄러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내가 여섯 살이었을 무렵 식사 시간에 사람들이 내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던 장면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 얼굴에서 예쁜 구석을 찾으려고 애쓰던 엄마는 내 눈이 영리해 보이고 미소가 기분 좋게 만든다고 말했지만, 결국 분명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아버지의 논증에 굴복하여 내가 못생겼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식사가 끝난 후 감사 인사를 할 때 엄마가 내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아둬, 니콜렌카, 네 외모 때문에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거야. 그러니 너는 영리하고 선량한 소년이 되도록 애써야 해요."

 이 말에 나는 미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했을 뿐 아니라 반드시 착하고 영리한 소년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절망적인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이렇게 펑퍼짐한 코에 두꺼운 입술, 조그만 회색 눈을 한,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께서 기적을 베푸시어 나를 미남으로 만들어주실 것을 기원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수만 있다면  지금 가진 모든 것, 앞으로 가질 모든 것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93쪽

 

자네야 내 친구이니 말해 주지 슬픈 표정으로 할머니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건 여기서 사위 혼자만 따로 살기 위해 둘러대는 핑계 같네. 그가 이 클럽 저 클럽 놀러나 다니고 이 집 저 집 만찬장을 돌면서 무엇을 하는지 누가 알겠나 나타샤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네. 잘 알다시피 그 애는 천사같이 착해서 남편을 전적으로 믿는다네. 사위가 아이들은 모스크바로 데려가야 하고 나타샤는 혼자서 멍청한 가정교사와 함게 시골에 남아야 한다고 설득했겠지. 나타샤는 사위를 믿는 게야. 사위가 바르바라 일리니치나처럼 자기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야 한다고 말해도 곧바로 그렇게 하자고 할 걸세." 할머니는 심히 경멸하는 자세로 의자에서 몸을 들썩이며 말했다. "그래요, 내 친구"  할머니가 한순간 말을 멈추고 눈물을 닦으려고 두 개의 손수건 중 하나를 손에 쥐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는 나타샤의 가치를 알 수도 없고 그애를 이해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네. 나타샤의 착한 성품과 그를 사랑하는 마음, 슬픔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말이네. 그럼에도 사위와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네. 내 말을 기억하게, 만일 그가..."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닙니다. 누이!"" 공작은 질타하는 투로 말했다. "누이의 분별력이 좀 떨어진 것 같군요. 상상으로 만들어낸 슬픔에 항상 상심하고 눈물을 흘리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나는 오래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어요. 신중하고 선량하며 훌륭한 남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아주 고결한 인간으로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지요."

들어서는 안 될 대화를 무심결에 들어버린 나는 몹시 당황했지만 조심조심 발끝으로 걸어서 방을 빠져나왔다. 99쪽

 

이빈 가

볼로댜 볼로댜 이빈네 식구들이 왔어. 비버 털로 만든 옷깃과 주름 장식이 달린 파란 외투를 입은 세 소년을 본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젊은 멋쟁이 가정교사를 따라 반대편 이니도에서 우리 집 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이빈 형제는 친척으로, 우리 또래였다.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그들과 사귀게 되어 친해졌다.

둘째 아들 세료쟈는 단단하고 작은 들창코와 앞으로 약간 튀어나온 하얀 윗니를 완전하게 가리지 못하는 선홍빛 입술, 어두운 하늘빛의 아름다운 눈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담은 가무잡잡한 얼굴의 곱슬머리 소년이었다. 세료쟈는 절대 미소 짓지 않았다. 사뭇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아주 매력적인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세료쟈를 처음 본 순간 나는 그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다. 한때는 그 애를 보고 싶은 열망에 휩싸이기도 했다. 세료쟈를 모 ㅅ보면 사나흘도 지나지 않아 너무나 보고 싶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자나 깨나 온통 그 애 생각만 했다. 꿈에 만나기를 바라며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세료쟈를 떠올리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취하기도 했다. 세상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털어놓을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그가 소중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자기를 바라보는 내 불안한 눈동자에 싫증이 났을까. 아니면 내게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는 나보다는 볼로댜와 노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그래도 나는 만족스러웠고 무언가를 원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세료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료쟈가 있는 자리에서 나는 그에 대한 열렬한 애정 말고도 무언가 다른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를 실망시키거나 기분 나쁘게 만들지나 않을까,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들이었다. 그 이유는 세료쟈의 오만한 얼굴 표정 때문일 수도 있고, 외모에 자신이 없던 내가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필수요소일 것이다. 나는 세료쟈에 대해 사랑만큼이나 두려움도 느꼈던 것 같다. 세료쟈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을 때, 그런 행목을 예상하지 못한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창백해진 얼굴을 붉히며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생각에 빠려 있을 때면 코와 눈썹을 찡긋하며 한곳을 응시하면서 쉬지 않고 눈으 ㄹ깜박거리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습관이 그를 망친다고 했지만, 그게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은연중에 내게도 똑같은 버릇이 생겼다. 그와 친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내가 부엉이처럼 눈을 껌벅인다며 눈이 아프냐고 묻기도 했다. 우리 둘은 단 한 ㅓㄴ도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내게 무척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고, 아이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이지만 독선적으로 그 힘을 사용하곤 했다. 그에게 솔직히 마음속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그가 너무 두려웠다. 나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려 애쓰며 묵묵히 그의 뜻을 따랐다. 때로 그의 영향력이 너무 크고 참을 수 없게 느껴졌지만  내 힘으로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심 없는 무한한 사람이라는 그 신선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분출되지도,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덧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슬프다.

  아이일 때는 왜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어 애를 썼을까.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면 왜 가끔씩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을까. 이상하기만 하다. 세료자와의 관계에서도 어린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감정을 억제하고 위선을 떨기도 하였다. 때로 너무나 원했지만 감히 그에게 입을 맞추거나 손을 맞잡고 너를 만나 얼마나 기쁘닞 모른다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를 세료쟈라고 애칭으로 부를 용기조차 없어서 꼭 세르게이라고 불렀다. 우리 관계는 그렇게 맺어졌다. 감정 표현이 아직도 유아기르 벗어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어린애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어른들이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스러운 시험을 거치면서 더욱 조심스럽고 냉정한 태도를 얻게 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오로지 어른들을 모방하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어린아이다운 사랑의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102쪽

모스크바로 돌아 온 후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견해 그리고 그들과 내 관계를 바라보는 내 관점은 눈에 띄게 변해갔다. 할머니를 처음 본 날, 주름투성이 야윈 얼굴과 쑥 들어간 두 눈을 보자 전에 느꼈던 비굴한 존경심과 두려움은 동정심으로 바뀌었다. 사랑하는 딸의 시신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류보치카의 머리에 얼굴을 대고 통곡하는 할머니를 보고 내 마음 속 애정까지도 동정심으로 바뀌었다. 우리를 만날 때마다 비탄에 젖는 할머니를 봐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할머니에게 우리는 당신의 추억에 얽힌 존재로만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내 얼굴에 퍼붓는 입맞춤은 오로지 한 가지만을 표현하는 듯 했다. 나탈리야가 없다. 나탈리야는 죽었다. 나탈리야를 더는 볼 수가 없다.

모스크바에서 아빠는 우리를 거의 보살펴주지 않았다. 검은 프록코트나 연미복 차림에 언제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식사 시간에만 얼굴을 내밀었다. 넓은 셔츠 깃이나 실내복, 촌장이나 관리인, 곡식 창고  나들이, 사냥 등 많은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카를 이바니치는 무슨 까닭인지 갑자기 단정한 대머리 대신 머리 한가운데에 실로 가르마를 탄 붉은 색 가발을 쓸 생각을 했는데, 그건 몹시 이상하고 우습기까지 했다. 어떻게 예전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와 여자아이들 사이에도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그들과 우리는 각자 비밀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더 길어진 치마를, 우리는 그들에게 바짓단을 매는 끈이 달린 신식 바지를 자랑하는 것 같았다. 미미까지도 매달 첫째 일요일 점심 식사 시간에는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예쁜 리본을 달고 등장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골을 떠났고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187쪽

 

나는 볼로댜보다 겨우 일 년하고도 몇 달이 어릴 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자랐으며 함께 배우고 언제나 함께 놀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위아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부터 나이로 보나, 성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볼로댜가 내 동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볼로댜도 자신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느껴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오래일지도 모르는 이 믿음 때문에 그와 충돌할 때마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볼로댜에게 주름 잡힌 네델란드 식 셔츠를 맞춰 주었을 때 그런 셔츠를 내게도 맞춰주지 않아 속상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마음이 분명 더 가벼웠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가 셔츠 칼라의 배무새를 고칠 때마다 나를 놀려 먹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 볼로댜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할 때 무척 괴로웠다.

형제나 친구들 남편과 아내 주인과 하인처럼 늘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솔직하지는 않을 때 이들의 보이지 않는 미소나 동작 혹은 시선 속에 드러나는 말 없는 관계를 누가 모르겠는가! 당신들의 눈이 소심하게 조심스럽게 마주칠 때 그 우연한 단 한 번의 시선 속에는 이해받고 싶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열망과 생각 그리고 두려움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던가!

하지만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고 지나치게 꼬치꼬치 파고드는 성격 탓으로 내가 오해한 것 같다. 볼로댜는 내 생각을 조금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솔지갛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에다 취미도 변덕스러웠다. 사랑하는 대상에 열정으 퍼부었고, 온 마음을 다했다.

 

어느 날 갑자기 볼로댜는 그림에 폭 빠졌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리고 미술 선생님과 아빠와 할머니에게도 그림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이번엔 책상 장식에 빠져서 집 안을 온통 뒤져서 물건을 끌어 모았다. 소설 읽기도 볼로댜의 취미 중 하나였는데 그는 조용히 책을 가져다 밤낮으로 읽곤 했다... 은연중에 나도 볼로댜의 취미생활을 쫓아가게 되었다. 그를 따라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새롱운 것을 선택하기에 나는 너무 어리고 독립심도 부족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볼로댜의 고상하면서 솔직하며 너그러운 성품이 가장 부러웠다. 볼로댜의 성품은 특히 우리가 싸울 때 극명히 드러났다. 나는 볼로댜의 행동이 훌륭하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처럼 행동할 수는 없었다.

볼로댜가 책상 장식에 몰두하던 때였다. 내가 그의 책상 위에 있던 화려한 빛깔의 목이 긴 병을 실수로 깨뜨렸다.

"누가 너더러 내 물건을 만지라고 했지?" 방 안에 들어선 볼로댜는 책상 위에 잘 정리해 둔 장식들이 나 때문에 어질러진 것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병은 어디갔지? 분명 네가..."190쪽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열렬한 요구가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이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본성은 물리적 본성보다 생명력이 더 강한 것이다. 인간은 절대 슬픔으로 죽지 않는 존재다.

 157쪽

 

 

일주일 후 할머니는 울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정신을 차린 할머니는 맨 처음 우리    생각을 했다. 손자들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더욱 지극해졌고 우리는 한시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를 상냥하게 보살펴주었다.

 애통해 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녀가 슬픔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그 슬픔은 강하고 애틋했다. 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나탈리야 사비시나에게 더 공감이 갔다. 마음에서 우러난 순박한 사랑을 베푸는 타탈리야만큼 엄마를 진정 순수하게 사랑하고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지금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엄마의 죽음과 함께 나의 행복한 유년시절은 끝나고 새로운 시대, 청소년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 감성에 그토록 크고 선한 영향을 미친 나탈리야 사비시나에 대한 기억이 이 첫 번째 시기에 속하므로 그녀와 그녀의 죽음에 대해 몇 마디 해야겠다.

 

우리가 떠난 후, 마을 사람들이 나중에 전해 준 바에 따르면 그녀는 할 일이 없어서 매우 쓸쓸해 했다. 비록 모든 궤짝을 그녀가 관리하며 쉴 새 없이 그 궤짝을 헤집고 정리하고 걸어놓고 늘어놓았지만, 유년 시절부터 늘 들어왔던 주인댁 식구들, 시골 귀족 가족의 소음과 번잡함이 그리웠던 것 같다. 지극한 슬픔과 변화된 생활, 무료한 일상으로 그러잖아도 나이가 많은 그녀의 지병이 깊어졌다. 엄마가 돌아가긴  지 정확히 일 년 후 그녀는 주종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되었다.

 

나탈리야 사비시나는 사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친척도 친구도 없이 텅 빈 페트롭스코예의 커다란 집에서 홀로 죽는 것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집안 사람들 모두가 나탈리야 사비시나를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그녀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주인의 신뢰를 받으며 전 재산이 든 수많은 궤짝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자신이 누군가와 친하게 지낸다면 그로 인해 불공평한 일을 할 수도 있고 범죄에 해당하는 선심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하인들과는 전혀 공감하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 또한 자신에게는 대부도 인척도 없으니, 주인의 재산을 넘보는 사람은 누구든 결코 눈감아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뜨겁게 기도드리며 자신의 감정을 신께 고백하여 위로를 구했고 마침내 그것을 얻었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살아 있는 존재의 눈물과 공감이 최고의 위로가 되는 때에, 그녀는 침대 옆에 발바리(노란 눈동자로 응시하며 그녀의 손은 핥았다)를 데려다놓고 녀석에게 말을 걸거나 다독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발바리가 애처롭게 울부짖을 때면 그녀석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하며 이렇게 말했다. "됐어, 네가 그러지 않아도 내가 곧 죽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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