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시간이 제일 싫어! (준석이의 일기)

 

나는 미술실로 가는 복도가 정말 싫다. 계단을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내 사랑 컴퓨터실이 있는데, 왜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미술실로 가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밥도 먹었겠다, 졸리기도 하겠다, 하고 싶은 컴퓨터실을 코앞에 두고도 못가는 속상함에 맘껏 억지를 부려 본다.

으아악! 으아아아아아아!”

준석아! 하고 싶은 걸 참는 것도 공부야

담임 선생님의 무서운 목소리에 억지로 오긴 했지만, 나는 미술이 정말 싫다. 내가 좋아하는 물감을 눈앞에 두고도 실컷 빨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풀도 물감도 정말이지 손도 못 대게 하신다. 어쩌다 운 좋게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게 되면 그 땐 여지없이 화장실로 가서 입안을 헹궈내야 한다.

내 나이 여덟 살.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지 못하니 내 이마는 펴질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나를 인상파라고 부르신다. 식욕이 채워지지 않으니 나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 오늘 미술 시간은 최악이다. 내가 좋아하는 물감을 내 손에다 묻혀 놓고 그걸 핥아 먹지 못하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한 입 먹으면 소원이 없겠는 맛난 노랑물감을 미술선생님이 내 손바닥에 맘껏 바른다. 그리고 가을이니 단풍잎이니 하며 도화지에다가 쾅쾅 찍기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준석아 이쁘지? 준석이 정말 잘했다!”.

하면서 온갖 호들갑을 떠는 선생님. 정말이지 미술선생님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꾸만 잘했다, 잘했다하니까 이상하게 물감을 먹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참아졌다. 물론 내가 칭찬을 못 들어 물감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물감이나 풀 같은 것을 먹고 싶게 태어나졌을 뿐이다. 그걸 몰라주는 미술선생님이 야속할 뿐이고 나는 미술 시간이 참말로 싫다. 하지만 오늘은 어쨌건 나는 물감을 안 먹고, 물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름 하여 가을 동시 화첩’. 선생님이랑 단풍잎에 물감을 발라 도화지에 찍었는데, 내가 싫어하는 미술선생님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한다.

이야~! 우리 준석이가 제일로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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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의 눈망울을 한 아이가 있다. 이름은 현이. 열한 살이다. 현이는 편마비를 가진 소년이다. 말도 하지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한다.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그리 되었다 한다. 오늘 현이는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점심시간, 내 무릎위로 올라와서 내 옷을 물어 뜯고 손으로 티셔츠의 목부분을 잡아 당겨 나의 노출을 감행했다. 자칫 모유수유를 받으려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점심 시간에 나는 현이의 밥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놓아준다. 현이는 마비 되지 않았다하는 오른 손을 들어 간신히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떠먹이면 더 빨리 먹겠지만 현이의 미래를 위해 나는 현이가 팔을 들어 숟가락을 잡고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는 걸 바라본다. 더디다. 현이 밥숟갈 위에 밥을 얹고, 내 밥을 한 술 뜬다. 점심 시간 만큼은 현이와 나는 한 세트다.

 

나는 현이를 떼어놓으려다 식당 바닥에 떨구어 버렸다. 식당 바닥에 널부러져 일어날 생각을 않는 현이. 다른 사람의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게, 나는 현이의 손을 잡아 끌고, 교실로 돌아와 생각의자에 앉혀 놓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나는 화나지 않았다. 현이가 어떻게 해도 나는 현이가 귀엽다. 사랑스럽다. 현이는 그런 나의 속마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곳에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나는 큰소리로 현이를 혼냈다. 현이는 움찔한다. 그런데 혼내는 나도 연극 혼나주는 척하는 현이도 연극, 잠시 서로 그런 척 할 뿐이지 현이는 다시 말썽을 피울 것이다.

 

아이들은 자꾸 혼나는 상황을 만든다. 그렇게라도 자극 받고 싶은 것임을, 나는 안다. 부드러운 말과 칭찬으로 그들은 애정을 확인 받지 못한다. 더 강한 애정을 원하고 표현을 원한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꾸짖는 상황일 때의 그 긴장감에서 '존재의 있음'을 느끼는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현이가 하교하고 나서도 나는 오래 현이를 생각한다.

 

내가 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 이 일은 고통이라는 것을 안다. 대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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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 무한 재생으로 하루 시작

 

커투에서 사온 니카라과 한 잔 내려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

 

모두 굿모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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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주말을 지내고 푹푹 가라앉는 월요일이다. 지난 주 택시와 접촉사고가 난 이후로 운전이 편치않다. 당분간 운전을 안하는 게 예의 일 것도 같은데, 아이가 늦잠을 자서 차를 가지고 와야 했다. 마음이 강팍하니 울긋불긋 가로수들을 보면서도 어여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찬바람을 쐬며 아침 체조를 하고, 주말 새 환해진 은행나무를 보니 정신이 좀 돌아왔다. 일정이 일찍 끝나는 날인 건 그나마 다행이다.

 

녹차 티백 두 개를 서버에 우려 놓고,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임수진의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펼쳐 들었다. 밴드 '가을 방학'의  보컬 계피, 임수진의 산문집이다. 연필로 서걱서걱 써내려간 듯한 진솔함이 마음에 와 닿는다.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쓴 생활글은 확실히 독자에서 주는 힐링의 요소가 있다. 마스다 미리의 무심한 듯 툭 뱉어 낸 한 줄의 문장이 공감을 일으키는 것처럼, 임수진의 글도 담박한 맛에 애써 읽지 않아도 저절로 읽히며 마음이 열린다. 꾸미지 않은 그녀의 독백이 지금 이 순간 무척이나 위로가 된다.

 

 가을 방학하면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가 떠오른다.

 가라 앉는 마음에, 깊어 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다.

 

 

 

 

 

 

 

 

 

 

 

 

 

 

 

 

 

 

 

 

 

사랑이 뭔진 몰라도 그냥 소박하게, 내 맘대로 안되지만 그래도 아껴주는 거 정도로 하면 안 될까? 이해는 안 되지만 지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눈감아주고, 감기 걸리면 목도리 한 번 여며주고, 울면 괜찮다고 안아주는 정도로 하면 안 될까?

 당신은 열정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욕, 아닌 거 맞나요?137

 

양극단 사이를 진동하는 내 얼굴을 거울로 비추어본다. 내 감정은 믿을 수 없다. 내 생각도 믿을 수 없다. 감정이 나를 속인다.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감정에 사로잡힌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분명히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177

 

 조용했으면 좋겠다. 사막이나 북극에 갔으면 좋겠다. 먼지 묻은 바람에 싸여, 혹은 칼처럼 베어내는 바람에 기대어, 아무도 아무 말도 없는 곳에서 아무 말도 아무 독백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 속내도 전하지 않고, 그래 전할 속내조차 없을 수 있다면,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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