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 안개가 끼고 계절은 가을로 가고 있다. 술은 고요하고 곳곳에 숨은 마을들... 산도 계절을 걷고 있다. 새벽 꿈속에서 중요한 비밀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비워지지 않는 안타까움. 꿈도 삶도 원하는 것을 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 남아 있는 허기. 그 허기 때문에 계절 위를 걷는지 모르겠다.

 

떠나오면 혼자가 되어도, 혼자서 걸어도 마냥 행복하다. 새벽녘의 음산한 웃음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도 두렵지 않다. 세상 그 누구와 공유할 수 없어도 괜찮다. 백 퍼센트의 나를 만나기 위해 걷는다.

 

갈대가 한창이다. 흔들림도, 멈춤도 아픔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밝은 갈대가 웃음 같다. 갈대가 선명한 하늘 같고, 풍성한 수국 같다. 근심이 자리할 곳이 없다. 돌길을 걸으며, 여유를 걸으며 그렇게 길을 묻고 있다. 12

 

사람, 책, 음악 등 무언가를 만나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는 일이 있다. 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라리 엄마도 밤잠을 설친 아침. 아이를 시험장소에 데려다 주고, 차가 필요치 않을 것 같아 집에 주차를 하고 전철로 학교에 왔다.

 전철 안에서 <서촌 오후 4시>를 읽느라  한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내리는 역을 놓칠 뻔했다. 가만가만한 생활글들. 생각이나 글솜씨 모두 어찌나 시원시원한지 속이 다 후련했다. 사고방식나 생활 태도 모두 결단력 있고 줏대가 있어 어찌 살아도 참 타의 모범이 될 분이구나 생각했다.

 

나도 어릴 때 부터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늘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곤 하였는데, 평생 그리지 않고 살아 온 걸 보면 덜 그리고 싶었던 거였구나.하는 생각도 하며.. 하지만 어느 순간 야외에 앉아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촌 오후 4시>를 재밌게 읽었다.

 

11월도 중반으로 치닫는 늦가을인데, 어제 오늘은 조금 걷고도 가디건을 벗어야 하는 포근한 날씨였다. 날씨가 좋고, 학교 주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나날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걸어 먼 곳까지 진출했는데, 올 때가 문제였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현이가 몹시 애를 먹였다. 딱 주저앉아 다리에 힘을 빼고 걸으려 들지 않아 학교까지 데려오느라 진을 뺐다. 하교 시키고 나니, 사지가 늘어지는 게 팔다리가 쑤신다. 딜레마다. 현이는 다리 힘을 길러 줘야 하는데 본인이 저렇게 안 걸으려고 하는 날은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무 데나 주저 앉기 때문에 옷도 흙투성이가 되는데, 차로 넓은 잔디밭 같은 데 데려가서 걷기 연습을 시키는 도리 밖에. 어쨌든 그러느라 오늘 하루가 어찌 지나갔는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5-11-12 16:55   좋아요 0 | URL
쑥님도 자녀분이 오늘 수능시험보는 수험생인가요,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바래요^^

조선인 2015-11-12 17:28   좋아요 0 | URL
아이가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 얻었기를 바랍니다.
 

약수터 가는 길이 그렇게 좋다고 소문이 짜해서 무리해서 다녀왔다. 실무사샘께 죄송해서 비포장도로는 잘 안가려고 하는데, 샘께서 기꺼이 먼저 가자고 해주셔서 큰 맘 먹고 다녀왔다. 안 갔으면 어쩔 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소한 꽃그림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림이 목적이라기 보다 다과가 목적인양 주로 이야기 나누고 그림은 그리는 시늉만 하다 오기 일쑤였지만 일단 스케치북을 가지고 모였으니 그림모임이라고 해두자. 그 모임에서 우연히 김미경작가님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김미경작가님은 그 모임 어느 분의 여고 때 국어선생님이셨다. 학교 때 김미경선생님은 아마 여고생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좋은 선생님인가 보았다. 그 분이 서촌을 그려서 전시회를 여는 날 그 때의 많은 여고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정도만 기억난다.

 

언니집에 들렀다가 <서촌꽃밭>전시회 소식을 들었다.

실은 그 전부터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그 전시회 포스터를 보긴 했는데 가야지..정도만 하고 정작 날짜나 장소등은 챙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월요일 강의를 듣기 전에 시간이 여유가 있어 <창성동 실험실>을 찾아 갔다. 전시장은 아담했고 소박했으며 그림들은 넘치게 어여뻤다.

 

 무엇보다 꽃을 찾고 꽃을 보고 꽃을 그리는 그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기에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했다고 해얄까..먹먹했다고 해얄까. 암튼 이상 야릇한 그러면서도 참 좋은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는 초입에 작가님이 있다가 낯 모르는 나를 반겨주셨다. 사시 사철 눈으로 훑으며 그리지 못해 괴로워 했던 꽃들이 그 안에 한 가득.

 

나는 아는 체가 하고 싶어, 작가님이 건네주는 색인표를 마다하고, 다 알아요. 라고 말해 버렸다.  (이런 나, 귀엽지 않은가..ㅠㅠ )작가님은 언제 어디서 그렸는지도 나와 있어서...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색인을 제자리로 갖다 놓으셨다..(죄송했어요..ㅎㅎㅠㅠ) 일 년동안 이틀에 한 점꼴로 그렸다고 전시장을 찾은 지인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살났겠다..라며 나중에 나에게도 와인을 한 잔 건넨 그 지인 분은 작가님과 한겨레 문화센터 그림 모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이이는 이렇게 전시회를 연다구..너무 부럽다고 하셨다.

 

세어보진 않았는데. 대충 80여점이라 들은 것 같은데, 그 그림들은 이미 완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빨간 딱지가 붙지 않은 그림이 없었다. 나는 그림 가격이 일괄 십오만원이라는 것을 들을 때 부터 이미 한 점 사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으므로 스텝에게 물어 보았다. 빨간 딱지가 안 붙은 건 어디있어요? 스텝이 가르쳐 준 것은 분홍 낮달맞이와 채송화였다. 그림을 보고 있는 사이 낮달맞이가 주인을 찾았고, 채송화 한 점만 남았다.

 

 나는 마지막 아이를 데려 올 수 있음에 기뻐했다. 끝까지 선택 받지 못한 못난이. 인 셈이 아닌가! 색인을 보니 인왕산에 살았던 아이였다. 완판녀라며 작가님의 지인분들이 우루루 사진도 찍어 주셨다. 늙고 뚱뚱한 몸,사진 찍히는 것이 괴로웠지만 기뻐하며 찍었다.

 

 정확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괴로워만 하고 정작 그리지는 않았던 십수년 세월의 '나를 깬'기념이었다. 감상적인 마인드로 논리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끙끙대니 그림이 될 리가 없었던 것. 이게 내 결론이다. 암튼 '서촌 꽃밭'전시회에 다녀와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연필을 놓은지 몇 년은 되나..까마득하지만 털별꽃아재비가 그리고 싶어 몇 년 땅을 보고만 다녔다. 너무 작아서 그릴 수가 없었다. 털별꽃아재비 잎에 돋아난 솜털을 어떻게 그리나 끔찍했다. 저 작은 꽃을 잎과 대비해서 보이게 그릴 수 있나 한숨 쉬며 들여다 보았다.

 

 털별꽃아재비 같은 작은 꽃을 그리는 것은  순전히 자기 만족인데 시작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려질 텐테 그 시작이 안되었다.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서, 솜털이 안보여도 되고, 꽃이 흐릿해도 되고, 그래도 느낌은 살아 있는 그림. 털별꽃아재비. 아..저렇게 그려도 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그림 한 점 한 점 구도랑 느낌들을 보며 얼마나 열심히 그려왔는지의 느낌도 왔다. 얼마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대상을 보아왔는지, 꽃을 그렸지만 인생을 그렸구나 삶을 살았구나 하는 순간의 열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싶다'가 아니라 '그려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작가님과 이거 저거 터놓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주저앉아 와인 마시고 오자라퍼 할 뻔 했다. 뒷 강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못다한 아쉬움은 책 한 권 사  나오는 걸로 대신했다. 이 속에 다 있겠지...하는 마음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5-11-11 15:17   좋아요 0 | URL
옥상그림 그리는 분의 이야기를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쓰신 분인가봐요. 저는 오래전에 들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요.
첫번째 사진 속의 들풀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인데, 이름은 낯설게 들려요. 전시회 사진 구경 잘 했습니다. 쑥님,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5-11-11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정의 단풍이 붉어 터졌다. 붉어도 어찌 저리 붉을 수 있나..붉다. 라는 표현 말고..더 없나..레드. 핏빛, 선홍, 붉디 붉다. 빨강. 빨갛다....나름. 노력해서 단어들을 떠올려 봐도 저 붉은 것의 붉어터짐을 표현할 길이 없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많고 많겠지만, 사람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아름답고, 어떤 순간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 마음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그 찰나가 너무 벅차다. 순간이 다다. 다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망연히 서 있게 되는 11월 어느 날. 안개 낀 아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15-11-10 12:37   좋아요 0 | URL
단풍이 꽃처럼 화사하게 물들었어요,
사진에도 잘 담으셨네요,
교정이라 하시니, 매일 저 나무를 보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쑥님, 좋은하루되세요^^

2015-11-10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