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탄생
캐롤 길리건 지음, 박상은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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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길리건은 문학적 필력을 바탕으로 심리학을 쉽게 풀어내는 학자이다. <다른 목소리>의 저자로 유명한 길리건은 <다른 목소리>에서 남녀의 도덕관과 도덕발단단계에 성차가 있음을 밝혀냈다. 남성심리학자들이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한 도덕발단단계를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며 여성을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풍토를 비판하고 남성과 다른 여성만의 독자적인 도덕적 목소리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2002년 저작인 <기쁨의 탄생>에서는 <다른 목소리>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남녀간의 사랑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이유를 규명한다. 길리건 스스로 기쁨이 넘치는 사랑에 이를 수 있는 '사랑의 지도'라고 명명한 <기쁨의 탄생>에서 그녀는 줄기차게 여성들이 내면 깊숙히 숨겨둔 참다운 자기 목소리를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자기목소리를 내기 위해 관계를 무시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것은 둘 다 목소리와 관계의 상실을 불러온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인용했던 '오이디푸스 신화'는 무리하게 가부장제를 지키기 위해 관계가 단절되어 일어나는 비극이다. 그러나 아풀레이우스의 '변형'에 나오는 '프쉬케와 큐피드 신화'는 프쉬케가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게 사랑에 따랐던 결과 비너스와 큐피드가 자기 정체성을 재인식하며 변화에 이르게 한다. 프쉬케와 비너스는 마치 고부간의 갈등처럼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던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변신하며 신화는 가부장을 허무는 사랑과 관계의 이야기가 되어 더 나아가선 민주주의와 사랑의 상관관계를 간파하게 한다. 사랑에 성공한 프쉬케와 큐피드 사이에서 낳은 딸이 바로 기쁨(Pleasure)이다.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숨기는 관계는 죽은 관계이다.

그러나 오래 묻어둔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전문가와 상담하며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는 일은 그래서 매우 소중하다. 가족을 위해, 집단을 위해 참아 버릇하는 한국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회복하여 행복한 사랑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상담소를 찾아 목소리 찾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세익스피어, 안네의 일기, 희랍고전 등 문학작품을 통해 여성들의 참된 목소리를 찾아내고 생생한 상담사례를 제시하여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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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걸 - [할인행사]
카트린느 브레이야 감독, 아르시네 칸지앙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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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모든 남성들이 팻걸에 등장하는 인물들 같진 않을 것이다. 사랑과 욕정을 동일시하거나 혹은 구분하지 못하고 낭만적 꼬드김으로 하룻밤을 낚아 무모하게 엄마의 오팔반지를 받치기도 하지만, 춘향이와 몽룡이 같은 인문적 진정성이 결핍된 이태리 법대생과 프랑스여고생의 과잉열정은 성숙한 사랑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모든 남성들이 그들 같진 않을 것이고, 모든 여자애들이 그 여고생 같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남녀는 그러할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여자애는 사랑이라 믿고 싶었지만 그 남자애의 엄마가 등장하면서 고드름에 살이 닿듯 사랑의 허울은 벗겨지고 얇팍한 관계의 실상은 드러난다.

청소년의 성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양상은 춘향이몽룡이와 사뭇 대조된다. 시절이 다르고 한 인간을 교육시키는 시간이 대폭 늘어난 현대사회는 그만큼 오래도록 청소년을 부모에게 종속시킨다. 물론 부모의 캐릭에 따라 그만한 나이의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와 허용하는 행위범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대교육은 막대하게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대는 부모와 자식은 주로 그 비용을 대는 아버지의 캐릭에 따라 성적 결정권 또한 예속되기 쉽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그동안의 사태가 발각되어 휴양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가도 반납하고 직원들 휴가도 잘라먹는 돈잘버는 사장인 아버지에게 몸을 검사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죽고 싶어진다. 대사를 놓쳤다만 어떤 검사를 어떻게 한다는 걸까. 아버지가 없는 춘향이의 상황과 다시 한번 대비 되는데, 허긴, 춘향이는 기생딸이었다. 당대문화의 아웃사이더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일치감치 인정되는 영역의 인물이었던 데다, 가부장의 그늘에 속박되는 환경도 아니었던 것. 그에 비해 프랑스 부르조아 딸은 참 안 돼 보인다. 프랑스라는데, 거기에도 마초나 가부장의 속박은 그 나름으로 버거운 모양이다. 가족 사이의 관계란 것을 읽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버지는 건조하고 돈버는 일에 중독되어 있고 그 돈 벌어 넉넉한 휴양지로 가족들을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기회를 제공하나 첫경험과 사랑에 신비에 몰두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딸들의 정서와 관심은 그닥 고려대상이 아니다. 돈으로 공간을 제공하고 성적 통제권을 지닌 인물로만 잠시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런 딸이 만난 남자들은 그녀들의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두 딸, 여자들만 모여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위는 어지럽고 위태롭다. 대형트럭들은 속력을 내거나 앞을 막고, 검은 밤에 그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운전해야 했던 엄마는 피로에 지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는데, 괴한이 망치로 차의 앞유리를 부수고 조수석의 큰딸을 내리쳐 즉사시키고 엄마도 살해한다. 뒤에 앉은 팻걸은 괴한에게 끌려 숲으로 가고 강간이 시작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팻걸의 표정이 묘하다. 팻걸은 이쁜 언니와 달리 이쁜 언니의 허울로 끝날 로맨스를 지켜보고 남친이 없는 그녀는 B사감처럼 풀장 사다리를 오가며 사랑을 연기하며 사랑과 첫경험의 상상을 풍선처럼 키워가던 인물이다.  그녀들의 첫경험이란 이렇게 그녀들의 낭만적 환타지와 관계가 먼 거칠고 폭력적인 경험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20살이 넘었다면 그녀들의 첫경험은 어떻게 달랐을까. 영화의 분위기대로라면 과연 달랐을까?

첫경험을 신비화하고 동경하면서도 불안한 소녀들의 처지는 남성의 그것과 육체적으로 다른 경험이라 그럴 법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처녀신화로 이어지면 여성들에겐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 의미부여란 조심스러워야 한다. 때론 너무 쉽게 사태를 환상적 이미지를 덧씌워 붕 띄우는 일은 심리적으로 무언가에 종속되는 길이기도 하다.

제눈에 안경이고 누구나 선택은 스스로 한다. 남자 보는 눈도 필요한 사람, 원하는 사람은 키워볼 일이다. 그닥 재미는 없는 영화인데 현실이란 것이 대개는 그런 모양새라 기대에서 비롯된 환상적 이미지를 걷어내면 재미가 없다. 

세계는 종류가 다양하다, 아님 영화가 여러 종류일 뿐인 걸까? 인굿컴퍼니 같은 세계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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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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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경주 감은사탑과 문무대왕릉이 있는 바닷가에서 일어나던 질문이다. 호국을 위해 위태로운 탑을 세워두고 죽어서도 호국하겠다며 왕은 스스로 수중에 묻혔다. 모래사장에는 여기저기 삼삼오오, 혹은 홀로, 술병을 세워두거나 과일을 늘어놓고 추운 곳에서 미동하지 않고 수평선을 향하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빌며 제사지내는 이들이 있었다. 묘한 대조라고 생각했다. 탑 쌓기를 지시하고 무덤을 세운자들과 제사지내는 이들은 서로 바라는 바가 다르다. 경계가 중요한 자들과 생이 중요한 자들은 바라는바가 서로 다르고 전쟁의 의미도 서로 다르다. 도모유키는 민초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여전히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등등의 내전과 외전 가운데 전쟁을 지휘하지 않는 이들에게 전쟁은 적아의 구분없이 대개는 생을 멸하는 폭력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진행된다는 것은 가끔은 의아한 일기도 하지만 거부와 저항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모파상의 '비계덩어리'에는 독일병이 프랑스농민을 도와 농사일을 나누며 이웃처럼 동병상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로 돌아가면 그도 농민이고 전쟁이 어서 끝나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기를 바라는 독일병사에게 프랑스 농가는 지켜주고 싶은 가족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 사사로운 적대감이나 대립해야할 이유는 딱하니 없다. 도모유키는 임진왜란을 겪는 일본인 민초와 민초출신 병사들의 삶의 내력을 그리며 전쟁의 실상을 직시하게 한다. 민초들에게 전쟁은 대개가 허무하다. 극단의 폭력인 전쟁은 거부되어야 한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력이 개성있는 문체로 뒷받침 되어 좀더 작가의 색깔과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에게, 특히, 전쟁을 전략구사와 게임의 하나로 여기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이겠다. 성인들에게도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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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 운영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
조현설 지음, 김은정 그림 / 나라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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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는 우리고전, 운영전


운영전은 사랑이야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조선시대 풍속의 일단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나라말에서 펴낸 운영전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방울” 은 우리 고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기획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한문소설을 우리말로 쉽고 아름답고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게 번역했고 안평대군과의 인터뷰나 한시나 궁녀들의 풍속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적절히 삽입하여 작품을 다각도로 접근하게 한다. 이는 하이퍼텍스트적 편집으로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고전을 친숙하게 접근하게 한다. 여기에, 수묵화와 민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그림과 글자체를 더해 고전에 대한 느낌과 이미지를 적절하게 빚어낸다. 고전을 낯설게 여기는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더없이 좋은 책이다.


2. 궁녀 운영과 젊은 김진사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선비 유영이 전하다.


운영전은 임진난이 끝난 직후 선비 유영이 수성궁에서 혼령을 만나 운영과 박진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세상에 전해지게 된다는 구조이다. 다시 신선에 세계로 돌아간 박진사와 궁녀 운영에게 속세에서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전해들은 속세의 사람 유영은 쓸쓸함을 가누지 못하다 명산을 찾아다니며 살아가게 되고 그의 자취를 알 길이 없다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직접 신선을 만나 신선계를 체험하고 그들로부터 신선계와 현격히 구별되는 속세의 한계를 접했으니 유학을 하는 선비 유영은 세계관에 변화가 생길 법도 하다. 명산 속에서 그는 신선되는 길을 찾아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속세에서 상처받은 최치원 같은 지식인처럼 은둔하며 한계 많은 세상을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을까.


3. 궁녀들의 애끓는 삶을 전하다.


궁녀는 왕의 여자들로 그 수가 지나치게 많다. 왕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는 궁녀는 어린 시절부터 차원 높은 교육을 받으나 그것은 왕의 여자로서 갖춰야할 품격을 위한 것으로 개인의 독자적인 삶이 결여된 노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식수준은 높은데 그것을 선택해서 쓸 기회가 없고 자신에게 걸맞는 배우자를 고를 권리가 주어지지 않으니 월하인연은 즐길 수조차 없다. 궁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그네들에게 자기결정권이 없는 지식쌓기나 예술행위는 그 깊이가 깊어갈수록 행위자 자신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런 처지의 궁녀들에게 한 서린 사연들은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운영전은 바로 그런 궁녀의 한 서린 사연의 일단을 보여준다. 안평대군이 귀하게 여기는 젊은 진사와 바로 그 안평대군이 귀하게 여기던 궁녀 간에 사랑이야기인 것. 조선시대 궁녀들의 일상과 그네들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도록 그네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중요한 소설이다.


4. 왜 고전에는 귀신이 자주 등장할까.


김진사는 선비지만 운영은 부처님께 공양을 하는 것을 보면 불자인 모양이다. 도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당 소격서가 있는 소격서동이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데 무녀의 역할도 중요했던 운영전에서는 조선의 유불선이 총동원되고 있다. 최치원전도 귀신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인데 장화홍련은 말할 것도 없고 이인보전이나 금오신화의 소설들은 거개가 귀신과 산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귀신과 함께 했던 고대인들이 지닌 세계관의 특징이기만 할까. 운영전의 경우는 유영이란 선비가 귀신과의 접촉으로 현실을 다시 해석하는 기회를 얻고 최치원전과 이인보전의 경우는 외로운 선비들이 사랑을 나누는 기회이며 최치원전의 경우는 그것을 기화로 최치원 말년에 은둔한 사연을 설명하기도 한다. 고골리 작품 ‘외투’에 등장하는 귀신은 캐릭터와 사건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내는 것을 보면, 창작자들이 귀신을 등장시키는 맥락과 동기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에 비해 구운몽은 꿈 이야기고 춘향전은 꿈도 귀신도 없는 매우 리얼한 배경을 깔고 있으니 시대에 따라 이야기 풀어가는 양상의 변화 또한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5. 우리 고전 속 데이트 풍속 - 한시 나누기


최치원전이나 금오신화 운영전 등 고전 속에는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는 데이트가 하나의 풍속처럼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최근 영국에서는 인텔리데이팅이 유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 낭송 모임이나 정치토론회 등을 통해 데이트를 하며 말초적인 것 이상의 지성을 꾀하는 새로운 데이팅 것이다. 우리 고전에는 인텔리데이팅이 이미 하나의 풍속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데이트는 어떻게 다를까. 고전을 읽으며 고대와 현대의 데이트를 비교해 보는 일도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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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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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잉게 숄著. 박종서譯. 靑史. 188면. 값 1,900원



"어머니 오셨어요?"

"오냐, 잘 지냈니?"

"네."



(사이......말 없음)



"애야, 내일이면, 네가 그 자리에 없겠구나"



황지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전문



1. 20년 만에 다시


중고생 시절인 80년대에 처음 이 책을 읽었다.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청사에서 출판된 낡고 바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이 의미없는 과거의 이정표처럼 한동안 덩그마니 꽂혀 있을 뿐이었다. 문맹인이 아닌 덕에 다시 그것을 읽었고 20년전 중고생이라 읽어낼 수 없었던 과거와 의미를 서른넷이라 읽어낸다. 세월은 유심한 모양이다.


2. 숄 남매


숄 남매는 히틀러 체제를 반대하는 격문을 뿌리다 체포되었고 체포된지 나흘만에 사형 당한다. 그들이 하고자 했던 수세적 저항운동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격문을 뿌리고 히틀러유겐트를 탈퇴하게 하고 편지를 보내던 저항방식은 그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저자인 또다른 숄남매 중 하나인 잉게숄은 그렇게 말한다.


"현존하는 바벨탑에 상처를 입히는 그러한 최소한의 일에 모든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은 확실히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부터 히틀러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와 달리, 성장기에 히틀러유겐트를 접한 이들은 처음엔 그 재미에 빠져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아버지는 강제하지 않았으나 덕분에 그들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파시즘의 본질을 간파해 간다. 그들이 좋아하던 스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금서가 되는 이상한 증후에 의심하기 시작하고, 중대장 시절 제작한 독수리 깃발이 다른 부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허되자 어린기수에게 가해지는 명령을 못견디고 한스숄은 상급자의 따귀를 때린다. 신앙을 억압하는 체제에 저항감이 증폭되고 고전을 읽는 나이에 이르러 히틀러체제를 비판하는 언어를 그 속에서 획득해 간다. 러시아 전선에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목격하고 아버지가 투옥된 채 남형제들은 모두 전선으로 파견되는 불우함을 가족 모두가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신앙이 있었다.


3. 인격과 품위는 어디서 오는가.






'2년 전 숄 남매의 사망 60주년을 기념한 기사에서 그때까지 발표된 적 없던 게슈타포 심문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소피 숄의 심문 자료 첫 번째 페이지엔 그녀의 거짓말이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그 문서를 배포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어떤 독일인도 소피가 거짓말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전형적인 순교자이자 영웅으로 받아들여졌으니까. 하지만 이 기록을 보면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부인했다. 그녀를 다그치던 매우 터프한 수사관은 심문 3일째에 이르러 서서히 바뀐다. "네 행동을 후회한다고만 하면 넌 살 수 있다." 그녀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똑같이 행동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타고난 영웅은 아니지만, 심문당하는 3일 동안 매우 극적인 심리 변화를 겪는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새롭게 돌이켜보고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존엄함을 찾아낸다. 그리고 죽음을 택한다. 그건 하나의 몸 속에 전혀 다른 두 개의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정말 놀라웠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에 있었던 모든 상황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나날>의 감독 인터뷰 가운데



백장미 단의 상당수는 기독교인이었다. 투옥과 전장으로 가족에게 위기의 나날이 지속될 때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어디서든 가족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는다. 체포되어 사형을 눈앞에 두고도 그들은 말한다. "먼저 가서 준비를 해둘 테니 나중에 다시 만나요 어머니." 사형 전날 소피를 면회간 어머니가 말한다. " 얘야, 예수님을 믿어라" 딸이 답한다. " 어머니도 그러세요" 단두대에 오른 수많은 사형수들과 달리 그들은 끝까지 꼿꼿했던 이들로 널리 회자된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재판에서 아버지는 울부짖고 어머니는 실신 했지만 그들은 신앙으로 자식들의 선택을 품위 있게 지켜낸다. 문화민족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기독교인으로 존엄성 상실을 견딜 수 없었던 이들은 엄혹한 상황에서 작은 저항일지라도 당당하고 심각하게 선택한다. 그들의 신앙이 놀라운 선택과 행동을 이끄는 힘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가 중고생 시절이었을 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읽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4. 이들이 살았다면 대전 후 그들은 무엇을 선택했을까.



군부독재 시절 저항했던 이들이 현재 다채로운 영역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며 그들이 독재에 저항했던 이유가 모두 다 제각각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절이 단순해서 선악이 분명한 상황과 달리 그것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선 오히려 사람들은 혼란과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그들이 저항했던 바탕의 동기가 무엇에 근거했는가, 얼마나 건강했는가를 시험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운동을 선택한 각자의 특별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의식했건 못했건간에, 그 각각의 이유가 궁금하다. 적어도 숄남매와 그들의 친구과 가족들은 신교에 바탕을 둔 신앙과 거기서 비롯되는 개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매우 중요한 동기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이 살았다면 대전 후 자유주의자로 살았을 수도 있고 국경없는 의사회와 같은 봉사자들이 되었을 수도 있고 저널리스트나 혹은 또 다른 어떤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해방직후의 조선의 혼란과 환멸의 역사와 민주화 이후의 변화들을 생각해 보면 엄혹한 시절의 삶과 그 후의 계승과 단절이 간단치 않음에 그들의 선택은 어떠했을까, 간단히 추측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가족 전체가 보여주는 믿음에 뿌리를 둔 인격과 품위는 계승과 단절이, 희망과 환멸이, 어디서 갈라지게 되는지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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