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 로리와 함께 글쓰는 기분

최초의 아이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4
로이스 로리 지음, 강나은 옮김 / 비룡소 / 2024년 9월

독일 빈데비 늪지대 토탄 채굴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사람의 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토탄이 형성되는 조건은 시신을 미라 형태로 보존된다는 상황 자체도 극적인데, 타고난 이야기꾼 로이스 로리는 이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발견된 시신의 이름과 캐릭터를 부여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마치 독자와 이야기 나누듯 전개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정말 '에스트릴트'와 '파리크'라는 철기 시대 실존 인물의 이야기인 것처럼 몰입했다. 

작가는 이미 결론(이미 죽은 아이라는 점)은 정해졌다면서 두 아이에게 각각 '최초의 아이', 당시 살던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특별한 아이로 되살린다. 

에스트릴트는 최초의 여자 전사를 꿈꾼다. 오랜 세월 반복된 임신과 출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의 역할에 반기를 든다. 남자 어른들과 오빠들에게는 언제나 중요한 역할이 주어지고 새봄 의식에서 전사가 되는 현실에 도전한다. 에스트릴트 이후의 여자아이들에게 기회를 꿈꾸게 해주고 싶었다. 

인생 게임처럼 늪지대에서 발견된 10대의 시신은 여성이었다가 남성으로 바뀐다. 작가는 이미 만들어 놓은 캐릭터 '파리크'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한 편 더 들려준다. 파리크는 신체적 약점이 있어 전사가 될 수는 없지만 특별한 관찰력으로 과학이 등장하기도 전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춘다. 자신만의 '배움의 선반'에 죽은 새나 송아지 뼈를 모아 인체의 구조를 파악한다. 이러한 지식은 파리크를 구원하지는 못 한다. 

'역사'라는 제목의 작가 에세이와 '에스트릴트 이야기'와 '파리크 이야기' 두 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장마다 이야기가 단절되는 것 같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몰입한 독자가 되어 이야기에 빠져드는 매력있는 이야기다.

판타지 같은 설정이지만 완전히 환상은 아닌 것인지도 모를 이야기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늘 전교 1등을 유지하고 싶은 주인공 희진(이름이 나와 같다^^)은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 어느 날 밤, 문득 잠에서 깼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엄마를 봤다. 상상도 못한 곳에서 나오는 엄마를.

희진의 엄마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그런 엄마 대신 희진의 생계를 챙기는 것은 외힐아버지이다. 희진은 아빠가 없다. 온전하지 않은 부분을 희진은 자기 노력으로 전교 1등을 유지하는 것으로 메꾼다. 그조차 사라질까봐 늘 불안하다.

1등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같이 다니는 독서실, 늘 함께 어울리는 친구 윤아와 상우가 희진의 일상이다.

엄마의 얄궂은 취직과 소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평행 우주처럼 TV 속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며 희진이 만들어 놓은 일상에 균열이 가고 희진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혼자가 편하고 혼자여야 했던 희진과 엄마는 채널을 이동하며 비로소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운다.

부캐 전성 시대에 살고 있다. N잡러라고 해서 생업을 위해 해야하는 일도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분화에 익숙한 지금 세상은 채널을 돌려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희진의 엄마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이미 살고 있는게 아닌가?

여러 역할 중 내가 꿈꾸는 것도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고,

소중한 사람을 돌보고 지키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역할도 있으니 말이다.

보통과 일반적인 것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유별난 관심과 조언 대신

손 내밀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다 각자이고, 저마다의 삶이 있는 거니까.

기묘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ㅣ 트리플 26
단요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8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남깁니다. 

긴 연휴동안 쉬고 자고 그렇게 몽롱한 상태에서 기묘한 이야기를 만났다. 

타인의 뇌에 연결해 생명(실존이라고는 뇌밖에 없는) 건록은 하루의 일정 시간을 목향의 뇌에 연결해서 지낸다.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대리 충족해야한다고 해야하나? 

단요 작가의 3편의 소설이 묶여 있는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은 3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소설집 제목과 같은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과 <제발!> <Called or Uncalled>. 세 편 모두 아직 다가 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인데, 첫 번째 수록작인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은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떄문인지 읽는 내내, 읽고 나서도 기묘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원래도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라, <제발>을 읽으면서 누나가 보낸 메시지 속 종교적 메시지에 대해서 갸우뚱하게 된다. 스무해가 넘게 떨어져 지내던 누나, 그것도 데이터화된 존재에 대해 반응하는 주인공에 대해 반쯤 공감할 수 있었다는 편이 맞는 표현이겠다. 

<Called or Uncalled>는 어려웠다.

세 편 모두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며 가족이 없는 건록과 데이터가 되버린 누나, 그리고 누나와 엄마가 등장하는 가족이 등장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왜 이런 설정을 했을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나도 율이었고, 진욱이었다.

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남기는 글입니다. 

청소년이 느끼는 존재감은 말그대로 나라는 존재의 유무에 대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율과 진욱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기 존재를 표현한다 율은 어릴 적 사고로 아빠를 잃었는데, 횡단보도 교통사고를 당한 아빠를 아무도 돕지 않는데에서 상처를 입었다. 이 일로 율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자기를 감추고 상대의 비위를 맞추며 생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율에게 진욱은 함께 다니면 유리한 친구일 뿐이었다. 

진욱은 공부, 운동, 외모 모든 면에서 우월한 존재감을 뽐내는 친구이다. 진욱에게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허름한 동네의 얇은 담벼락 사이로 가정 폭력의 신음을 공유하지만 서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과 주식 투자로 재산을 날리고 슈퍼를 운영하는 아버지, 그리고 도망간 엄마까지. 어느 날 율에게 비밀을 들킨 진욱은 그 만의 방법으로 율을 입막음한다. 

진욱이랑 사귀는 것만으로 학교 안에서 견고한 보호막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 지민은 진욱에게 고백하지만 차인다. 쪽팔려서 올라간 옥상에서 율을 만나고 둘은 쪽지로 대화하게 된다. 율이 도해를 통해 새로운 관계 맺음을 배운 후 친해진 친구이다. .

이도해.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친구, 보여도 못 본 척하게 하는 지저분하고 야윈 이 아이는 스스로를 '북극성'이라 부른다. 늘 바닥을 향해 있는 율의 시선을 하늘로 옮겨 준 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율이 꿈꿀 수 있게 해준다. 

율, 진욱, 지민, 도해 그리고 동휘, 민우는 우리 주변의 청소년들이다. 이 아이들이 느끼는 고민과 감정은 정도가 다를 뿐 이 또래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여리고 예민한 상처가 건드려질 때 자기를 애써 보호하려고 하는 진욱이가 있고, 거리낌없이 표현하지만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도해가 들어 있다. 율처럼 안전 지대에서 비로소 자기를 느끼기도 한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가 발견되지 않기를, 엄청난 폭력 앞에서 자기를 애써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대와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율과 그 엄마가 도해의 집을 청소하며 도해를 기다리는 것처럼 힘든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떤 힘이 가장 강력할까?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ㅣ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24년 7월

세계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하니, 거대한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부제처럼 표지에 쓰인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이 다섯 가지 개념들이 세계사를 움직였다는 데 동의하며, 세계사의 흐름은 결국 인간의 공동 저작인 셈이다.

교과목으로 공부하던 세계사보다 TV 프로그램, 유튜브에서 얻게 된 역사적 지식이라 단편적이고 키워드 중심인 역사적 지식에
작가의 해박한 인문학 지식으로 덧붙여 설명하는 내용이 덧붙여져 소박하기 그지 없는 세계사 지식이 좀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며 이제 껏 변화해 온 역사적 사실보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변화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욕망‘의 장에서는 커피와 홍차, 금과 철에 대한 욕망이 식민지를 만들고, 그 땅을 빼앗기 위해 일어난 전쟁에 대해 설명한다. 고작 커피와 홍차라니…
지금은 그 욕망의 핵심이 ’브랜드와 도시‘라는 점은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욕망을 가시화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내가 사는 미래는 예전의 그것보다 더 팍팍해지리라.

’모더니즘‘의 장에서는 근대로의 변화가 서양 중심, 기독교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제국‘의 장에서는 세계사를 배울 때 큰 줄기로 등장하는 누가누가 가장 큰 영토를 가졌었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연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고대 그리스 때부터 연설은 영웅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면모였고, 그에 비해 작가의 나라 일본은 연설도 청중의 태도도 빈약한 편이란다. 그 원인을 이집트와 일본은 모두 태양신을 숭배하며 신관이 통치하는 지배 구조라는 데서 찾았다. 그 상황에서는 ’내가‘라는 자기 주장이 강한 모습이 권장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피라미드 건설 당시, 파라오가 시킨 강제 노동이 아니라 나일강 범람 시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민중을 구제하는 노역이었다는 설명이 신선했다.

’몬스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발생한 자연적인 시스템이라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인 시스템이다. 인간의 욕망을 배제했다는 점이 이상주의적이고 이론적인 사회주의의 한계점을 이미 포함하고 있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고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관료제’가 주요하다는 점을 막스 베버가 일찌감치 사회주의 체제 초기에 예견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정리하게 됐다. 단편적이고 지엽적이던 지식이 재정리되는 느낌~

“이런 극도의 인플레이션은 독일 경제를 몰락으로 이끌었습니다.그리고 그떄까지 중류로 살았던 사람들은 하류로 내몰리게 됩니다.하지만 하층으로 밀려났어도 ‘우린느 하류층과는 다르다’라는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하류층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사회주의 혁명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 계층이다, 하며 하류층과 단결하기를 거부했습니다.이러한 중간층 특유의 계층의식을 간파하고 그 틈을 치밀하게 파고든 거이 바로 히틀러와 나치스였던 것입니다.”

파시즘의 대표격인 독일 나치당의 지지율이 백 프로에 가까웠던 이유를 읽으며 현 상황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자국 중심의 고양과 강력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반복된다는 데 이 시대의 몬스터는 언제 어디서 등장하게 될까?

마지막으로 ‘종교’.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강력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종교와의 결탁은 필요 조건이었던 것 같다. 단순한 종교 전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이권 다툼의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는 왜 싸우는지 본질을 알 수 없는 그저 갈등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