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 '글밥' 먹은 지 10년째, 내 글을 쓰자 인생이 달라졌다
이하루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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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 이하루 지음


#내하루도에세이가될까요 #이하루 #책추천 #쓸만한하루 #글밥



고로 '쓸 만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정성껏 써내려가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이하루 작가의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는 한 줄로 요약하자면 글을 잘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자신의 삶이 너무나 시시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왜냐면 저자가 알려주는 글쓰기 팁은 멋진 소설쓰기가 아닌 에세이 쓰기며, 에세이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글감이 내 안에서 나와야만 한다. 내 안에서 글감을 찾는 다는 것은 내 삶에, 스스로뿐 아니라 가족, 지인뿐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마저도 감싸안을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엄마를 인터뷰했던 내용이나 늘 다른 사람을 인터뷰어로서 만나다가 작가가 되어 인터뷰이가 되어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실제 유사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공감이상의 마음이 뭉클해졌다. 우선 엄마를 인터뷰한 경험은 없지만 결혼 한 후 자주 볼 수 없는 엄마를 만날 때면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하려는 나 때문에 늘 엄마는 버거워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엄마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거나 맛집에 가서 별로 드시질 않으면 서운해하던 못난 딸이었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건 그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인데, 말하지 않고 묻지 않으면 다 알수가 없으니 서로를 위한 다는 생각에 상처를 주고 받았던 것이다. 




 

그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잊고 싶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글감으로 바꾼다면 제법 괜찮은 흑역사가 되겠구나 싶기도 했다.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혹은 너무나 괴롭고 아픈 과거마저도 글감으로 어루만지다보면, 그렇게 쓰여지고 나면 어느새 치유가 된다는 말도 공감이 되었다. 자신의 삶을 글감으로 만드는 방법도 유익했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작문 팁도 꽤나 유용했다.



글을 쓰다보면 감정이 격해지거나 지나친 묘사로 겉만 멋진 글을 쓸 때가 있다. 중요한 정보나 특징이 없이 그저 잘꾸미기만 한 글은 얼핏 보면 멋져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다 쓰고 난 후 읽어보란 저자의 팁도 꽤 유용하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막힘없이 잘 읽히는 글이 잘쓴글이라는 말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사실 문창과 출신에 기획과 홍보에 기자로 근무했던 저자의 이력을 보면 과연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잘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를 속시원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보기, 기승전결의 구조에 맞춰 써보기, 첫 문장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기 저자가 알려주는 팁만 잘 따라해도 최소한 읽기조차 부담스러운 글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세이를 쓸 때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아있다. 얼버무리듯, 부끄러워서 대충 적게되면 쓰는 나도 괴롭고, 읽는 사람들도 피곤해질 뿐이다. 그렇게 다 토해내듯 써내려간 글은 적어도 나 스스로는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 발췌문처럼 자기 삶에 애정을 가지고 쓴다면 누구라도 쓸 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은 '글, 작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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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
슛뚜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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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일상을찾아틈만나면걸었다 

#슛뚜 #여행에세이 #유럽여행 #아이슬란드여행 #유튜버슛뚜



여행의 이유는 저마다 다 다를테고 같은 지역에 대한 추억도 같을 순 없다. 심지어 똑같은 일행과 같은 식당, 숙소와 장소를 다녀온 패키지 여행일지라도 여행자의 마음에 따라 그 극과 극으로 나뉜다는 것을 아마 잘 알 것이다. 슛뚜의 <낯선 일상을 찾아, 틈만 나면 걸었다>는 그런 점에서 다녀왔던 여행이 모두 별로였다, 집나가면 고생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에세이다. 그녀는 불평을 늘어놓을 때는 세상모든 것이 불만인것처럼 늘어놓다가도 아주 소소한 것에 기뻐하고 타인의 작은 배려에도 감사할 줄아는 그야말로 삶을 기쁘고 즐거운 것으로 채워갈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낯선 장소를 방문하면 당연히 내 맘같지 않을때가 많다. 심지어 언어도 다르고 문화과 관습이 다른 지역에서 그것도 저렴한 숙소, 알뜰한 여행을 즐길 계획이라면 슛뚜의 여행방식이 필요하다. 불만을 가질 순 있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필요한데 이 책은 지난 4년동안의 그녀의 여행기를 총망라한 것으로 영국, 포르투, 아이슬란드 등을 거쳐 제주까지 꽤 여러곳이 등장한다. 로마에서는 로마라는 지역명만 보고 숙소를 잡아서 도심에서 2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아 고생하지만 친절한 호스트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 파리에서 만난 두 호스트의 경우는 한 사람은 냉장고에 치즈와 와인을 무한으로 제공하지도 또 다른 호스트는 해준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 않는 등 여행의 쓴맛과 단맛을 마치 설정이라도 한 것처럼 잘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저자의 생일에 맞춰 떠난 여행지에서 친구의 배려로 멋진 뷰가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낯선 이를 만나 함께 동행하는 로맨틱한 여행 스토리도 등장한다. 고되고 힘든 도보여행이지만 다음 여행 때는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려 함께 걸어볼 것을 권하기도 하고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은 혼자서라도 꼭 가보라고, 그럴만한 장소라고 적극 추천하기도 한다.

힘들고 불편해도, 혼자거나 여럿이어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이렇게 멋진 여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사정상 해외여행은 당분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추억을 무한 반복재생하며 다음에 간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할지를 머릿속에만 그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왜 과거에 더 많이 여행을 떠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마음이 컸다. 저자 프로필란에 슛뚜는 하고선 후회하는 삶을 살겠다는 글귀가 책을 읽는 내내 와닿았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떠나지 않는 것도 물론 자유겠지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여행에세이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면, 여행은 반드시 멋지고 화려해야만 한다는,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 많아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슛뚜처럼 생각하자. 복잡한 일상을 떠나 잠시라도 쉴 수 있는 낯선 일상을 찾아갈 뿐이라고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나라로 떠날 것이다. 굳이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잠깐잠깐 바쁜 삶을 쉬어가기 위해서.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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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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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습관


메이슨 커리의 전작 <리추얼>을 읽으면서 책에 포함된 유명한 작가들의 습관을 따라하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었다. 하지만 그런 책이 출간된다는 건 그들의 습관이 아무나 쉽게, 단기간에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여러 번의 기회 중 한 번 이었을 뿐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되든 안되든 일단 정해진 원고지 매수를 채우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책장에 계속 꽂아만 두면 언젠가는 다시 시도할테고, 그렇다보면 습관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그런 습관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예술하는 습관>의 그녀들의 이야기를 알고서는 순수하게 인정했다. 나는 여자라서, 가정주부라서 리추얼의 그들의 습관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열정, 간절함이 없었다라는 것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녀는 출산을 하고 얼마되지 않아 그 명작을 썼다. 흔히 임신을 하면 몸이 무거워서 그렇지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가롭게 태교를 핑계로 아무때나 자고 일어나도 된다고 말이다. 경험해보니 그것은 임신이 체질인(이렇게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극소수의 여성이거나 임신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착각이었다. 요약하자면 글을 쓰기는 커녕 읽기에도 버거운 상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시인인 남편의 배려로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눈치를 안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살림과 육아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1800년대니까 그랬을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도리스레싱은 아들 피터를 양육하면서 글을 썼다. 전업작가로 살기 전까지는 심지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비서일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하루일과는 아들의 기상시간 5시부터 시작된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교 갈 준비를 도와준 이후라야 그녀에게 온전히 글쓰기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 온전히 글쓰기의 시간을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매우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는 메이슨 커리의 말에 나도 동감한다. 도리스 레싱은 더더군다나 밤을 새서 글을 쓸 수 있는 체력의 소유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밤늦게 까지 놀고 난 다음날에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야 했을까. 그렇다면 화가들의 삶은 또 어떨까. 지난 해 아이를 임신중이었던 나는 안타깝게도 졸업반, 즉 졸전을 앞둔 상태였다. 결론은 졸전에 아예 참가자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또한 핑계아닌 핑계였던게 아닌가 자문하게 만든 아티스트가 있었으니 '니키 드 생팔', 국내 전시회에도 갔었고 리뷰도 남겼었던 터라 여전히 그녀의 화려하면서도 특징적인 조각작품이 단번에 떠올랐다. 생팔은 화가인 미첼의 단 한 마디, "그러니까 당신이 작가 남편을 둔 그림 그리는 여자들 중 하나군요."(157쪽)라는 말을 듣고서 일년 뒤 두 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났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아이보다 일을 더 사랑해서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어쨌거나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만큼 열심히 작품을 했으니까.


가사와 양육을 전담해야 하는 여성의 삶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성을 비난하거나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의 <리추얼>에서 보던 정해진 시간이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산책을 한 후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남성들에 비해 동일한 조건으로 글을 쓰거나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은 극히 드물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메리 셸리처럼 글쓰기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격려해주는 남편을 고마워 하는 것 또한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위에 적어두었다. 내가 그 일(예술활동)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 또 이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을 도리스 레싱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자신에게 양분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본능적인 리듬과 일정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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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와의 대화 - 노벨문학상 작가 23인과의 인터뷰
사비 아옌 지음, 킴 만레사 사진 / 바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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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작가와의대화


인터뷰를 통해 축적된 자료와 사진들을 정리하며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대부분이 문학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고 그들이 문화 너머의 일들과 담을 쌓는 작가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작가들은 여러 측면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것들과 뜻을 함께 했으며 권력의 저변을 이루는 근본적인 속성에 맞서거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이데아를 품고 있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노벨문학상 작가와의 대화>를 읽기 전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일상이었다. 마치 잡지화보를 연상하듯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친 내 손이 민망할 정도로 묵직한 이야기와 그 보다 더 엄숙한 그러면서도 소박한 흑백 사진들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덕분에 뻔하지 않은 이야기, 왜 이 작가들의 공통어가 '노벨문학상 수상'인지를 알 것도 같았다. 위의 발췌문처럼 그들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다른 이들이 말하지 못하는 혹은 꺼리는 이야기들, 심지어 문서가 아닌 입과 입을통해 전해지는 '소리들'을 문자로 담아낸 사람들이었다. 노벨상은 내게 절대로 방패가 아닙니다.​ 62쪽 어느 작가의 인터뷰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밝히지 않는 까닭은 이유는 달라도 그들에게 있어 문학은 아픔을 전달하는 장치였기에 누구의 말인지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노벨상을 받게되면 엄청난 부가 보장되며 수상소식을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자면 로또당첨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나의 아둔함은 책을 읽는 동안 지속적으로 깨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노벨상을 받는 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나아진다기 보다는 수상을 계기로 그들의 이야기가 해외가 아닌 자국민에게 읽힐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정작 자국에서는 쉬쉬할 수 밖에 없는 것들, 내 아이의 상처와 그 상처를 바라보는 찢긴 부모의 마음이 녹여져 있는 글들을 쓴 사람들에게 상금이나 명예가 방패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만 적으면 이 책이 그저 무겁기만 하고 암울한 반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인터뷰집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절망으로 가득한 현실의 민낯을 보여준다 할 지라도 거기에서만 머물렀다면 애초에 그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나오지 않고 뉴스의 한 꼭지 기사를 차지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그들은 가려진 것을 보려고 애썼다는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안 들리세요? 하루 종일 시끄럽고 난리를 피우며 엄청난 말로 떠드는 총소리 말입니다! 95쪽 ​그들의 시선으로 나와 같은 이들을 보고 있자면 아마 두 귀도 멀고 두 눈도 먼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설마 보이고 들리는 데 저렇게 태연하게 살 수는 없을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할 수 있는 능력, 땅을 파고, 무기를 장전하기도 했던 그 두 손으로 글을 썼던 것이다.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함구하고 눈을 돌린 나와 같은 이들에게. 그리고 이와 정반대로 지독한 고통과 괴로움과 두려움으로 제 목소리와 두 눈을 빼앗긴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도 그들은 글을 썼다. 


"어려서부터 나는 우리 육체가 어떤 식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낚시를 따라갔습니다.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바둥거렸습니다. 끔찍한 고통을 겪는데도 소리내지 않았습니다. 아니, 소리 지르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아팠으면 소리 조차 안 낼까! 그것은 나를 소설가로 만든 최초의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189쪽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들어주는 청자이자, 정말 몰라서 혹은 모른척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전달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문학이, 그들의 작품이 중요한 까닭은 실제적인 경험 여부를 떠나 진정으로 그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화자'로서 그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 할 대상에게 끊임없이 소리치는 까닭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들의 집에서, 혹은 수많은 시민들이 저마다의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같은 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지하철에서 인터뷰와 촬영이 진행된 까닭, 그리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빼앗기지 않도록 흑백으로 보여지는 이 책 덕분에 다시금 그들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요즘 작가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에이즈다. 그는 최근 새로운 지역 특히 카리브 해 연안 국가들에서 급속이 퍼지는 치명적인 질병 앞에서 관게 당국이 수수방관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개탄한다. "들을 것도 없어요. 그래도 그 문제에 대해 그 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곁에 있던 그의 아내가 방점을 찍는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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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 타이포그래피 편 - 세계적 거장 50인에게 배우는 개성 있는 타이포그래피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스티븐 헬러.게일 앤더슨 지음, 윤영 옮김 / 더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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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에서 출간한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시리즈의 타이포그래피편은 세계적 거장 50인에게 배우는 개성 있는 타이포그래피로 거장 50인 각각의 타이포작품과 함께 해당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는 무엇이며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적인 타이포제작 스킬이나 작법을 원하는 사람들보다는 제목처럼 평범한 타이포가 아닌 가독성 혹은 심미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원할 때에 펼쳐보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가독성은 알겠는데 심미적이고 창의적인이라는 단어가 애매해진다면 바로 이 책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가령 I ♥ NY IBM로고를 보면면 LOVE 라는 단어대신에 이를 상징적인 기호로 사용한다는 것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977년 밀턴 글레이저가 위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전까지 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LOVE, 사랑을 떠올릴 만한 이미지, 기호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창의적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타이포를 디자인할 때 대부분 컴퓨터에 설치된 그래픽서체중에서 알맞는 것을 고르는데 가장 흔한 예로 전통시장이나 축제의 포스터를 떠올려보면 그래픽서체가 아닌 손으로 휘갈겨 쓴듯한 수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Gray318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영국 디자이너 존 그레이가 사용했던 방법으로 손으로 쓴 것을 그대로 이미지화 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타이포로 남겨두려면 렌더링을 해야한다. 이때 직접 손으로 썻다는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좀 더 가벼울 필체로 쓰거나, 서로 살짝 다른 스타일로 쓰기(59쪽)로 작업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아이디어는 액체를 표현하는 유동성을 이용한 것으로 <fsh언리미티드>표지에 사용된 폴 시크의 더 딥이라는 타이포작품에 적용된 아이디어다. 타이포 작품 옆 페이지는 물속에 잠겨있는 모델이 있고 이를 좀 더 극대화하면서도 사진을 압도하지는 않을정도로 글자가 마치 사진 속 모델처럼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효과를 준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글자 자체에 생동감을 부여할 뿐 아니라 함께 배치한 이미지를 잘 뒷받침해주는 방법으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응용해보고싶은 아이디어였다. 이때 저자는 그래픽 효과로 액체효과를 줄 수도 있지만 직접 붓이나 잉크 등을 활용해 번짐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아이디어를 마구 활용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뉴욕디자이너인 스티븐 도일의 '적'이라는 타이포작품은 3차원의 이미지를 타이포에 적용한 것으로 영화관에서 3D 영화를 볼 때면 유사한 방식으로 입체로고가 뜨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입체로고를 사용하면 2D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을 더 주목시킬 수 있기도 하지만 작품이 가지는 분위기 자체를 단번에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래서 쉽사리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케빈 캔트렐의 '테라'포스터처럼 정교하고 디테일한 타이포부터 마치 아이가 쓴 타이포를 활용한 듯한 흑판에 분필로 쓴 듯한 타이포까지 이미 보았거나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는 아이디어 등 의외로 어렵지 않지만 쉽사리 떠올리지 못하는 활용도 높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라면 이 책에 등장하는 방법부터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도록 훈련한다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열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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