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
손길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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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겨울 #바른북스 #손길 #한국소설




저자의 책을 처음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자 했던 까닭은 <나의 겨울>이라는 제목 속 계절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겨울이, 저자가 화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겨울의 모습이 나의 지난 겨울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기도 했다. 20대의 겨울, 대학생인 화자가 방학 중에 시골에 내려와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과 상황은 나의 20대의 겨울과 무척 닮아있었다. 대학교 2학년. 사업에 실패한 부모님이 귀향을 결정하시고 방 세칸짜리 아파트에 나만 홀로 남았었다. 소설 속 화자처럼 나 또한 방학중에 무언가 열심히 배우러 다니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학은 성적맞춰서 어찌저찌 왔다하더라도 길게는 평생동안 해야 할 직업만큼은 꼭 하고 싶은 일을, 그 일은 자격증과도 어학증명서와도 무관한 일이었기에 학기보다 방학 때 더 바쁜 친구들과 거리가 벌어져있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안부를 걱정하는 듯 하면서 결국 일꾼 한 사람을 밥 한끼로 구하려는 모습.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20대의 화자와 그 시절의 내게는 이 세상이 반드시 타인과의 교집합이 필요한 곳이라는 인식이 없기에 힘들었다. 그렇게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시골생활 중 '선생님'을 알게 된다. 자신을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냐는 말에 화자는 말한다. 그 언젠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사실을 알고 있다고.


"우린 모두 서로에게 선생이라네.
나도 이곳에서 많은 걸 배웠지." 58쪽

선생님의 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이 주어진 몫이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주는 것이 몫이니 각자의 위치에서 몫을 해내고 있다면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선생이란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선생님을 만나 후로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선생님이 나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계속 주셨기 때문일까?
나는 어쩌면 선생님께서 이 겨울을 끝내주는 봄이라고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142쪽


화자의 말처럼 겨울은 세상에 펼쳐진 색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다. 얼핏보면 무채색이 단조롭고 타의에 의한 고립 혹은 처절하게 외로운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싹과 뿌리가 생명을 움트고 아기 고양이 '겨울'이와 어린 생명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같은 계절을 보아도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지차이다. 이렇듯 화자는 선생님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하거나 볼 수 없었던 것들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던 '겨울'을 보여준다. 덕분에 화자의 나이때에 깨달았어야 했던 것중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나 또한 배워가는 '겨울'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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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예찬 - 타자 윤리의 서사 예찬 시리즈
왕은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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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예찬 /왕은철 지음/ 현대문학 #추천신간 #애도예찬 #트라우마와문학 #환대예찬


왕은철 교수의 <환대예찬>의 띠지에는 다음와 문구가 쓰여있다. 


타자에 대한 환대는 결국 자신을 향한 환대다




지난 해 읽었던 돌봄과 자비 등과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그 모든 것의 귀결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인 것처럼 환대 역시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문구가 책을 펼쳐 본문을 읽기도 전에 머릿속을 깨웠다. 우선 책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전체적인 필자의 문체와 분위기를 이야기하자면 영문학 학자이자 교수자이다보니 언어와 관련된 의견이 이전에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에 의해 쓰인 산문집과 비교했을 때 다른 시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의 주장 혹은 시선을 보면서 옳고 그름이라는 단적인 판단을 멀리하다보니 저자가 언급하는 번역문과 원문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을 새로 알게 된 앎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환대는 성서에서 또 불교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 수 있는데 성서(성경)를 혼자 묵상하거나 누군가에게 교수를 받았던 사람들 모두 마땅찮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들이 꽤 많다. 신앙을 떠나서 그 시대의 분위기나 사회체제를 고려한다고는 해도 현대인이자 여성으로서 못마땅했던 부분들에 대해 저자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서에서의 '환대'가 그만큼 의무에 가까울 만큼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가하면 불교에서 환대는 무조건적인 나눔이자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보다 더 와닿았던 부분은 다음 발췌글과 사진에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인간이 가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낄 줄 아는 능력, 즉 공감 능력이다. 69쪽


성서에서 무조건적인 환대가 반드시 환영받는 환대가 아닌 것처럼 공감하는 것도 완벽하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는 없다는 점을 깊게 사고해봐야 한다. 예전에 몇 번 리뷰에 적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의 한 마디에 위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중을 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만큼 그런 아픔을 겪지 않은 이의 이해와 포용 혹은 공감은 결국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달라졌을 때 의심과 회의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환우들의 상황을 바로 공감이라는 주제로 엮어낸 것은 기독교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가하면 영화로도 잘 알려진 존 보인 작가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속 환대는 어떠한가. 이 장의 첫 줄은 다음과 같다.


환대는 교육과 학습을 통해 습득될 수 있는 것일까. 385쪽


우선 서두에 언급했던 자비와 공감 및 돌봄과 관련한 책들에서는 후천적 교육과 학습으로 인해 그런 능력 혹은 마음가짐이 습득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왕교수는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환대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소설 속 어린아이가 부모의 가르침과는 달리 줄무늬를 입은 철조망 안에 갇혀 있는 아이와 교감을 나누고 '환대'에 가까운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역시 이성이 아닌 철조망이 없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 때문인 것이다. 


다양한 매체 속에 등장하는 환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타자를 대하고 또 그런 결과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예시로 든 작품이나 성서를 미처 알거나 읽지 않았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산문이기에 이웃과 함께 하는 삶, 혹은 나 자신을 위해 더불어 사는 삶을 희망하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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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3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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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서모든게달라졌다 #북폴리오 #쓰루타니가오리 #BL #동인지 #추천만화 #만화추천

#툇마루에서모든게달라졌다3


쓰루타니 가오리의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BL만화를 좋아하는 여고생 우라라와 예쁜 그림체를 보고 이제 막 BL만화에 입문한 75세의 유키 할머니의 만남을 담고 있다. BL이란 Boys Love를 뜻하는 단어로 또래라면 모를까 부모님 세대에게, 심지어 만화를 좋아하는 것도 모자라 드러내놓고 좋아할 만한 장르는 아니다. BL장르 작품의 대부분은 양쪽 모두가 첫 눈에 반하거나 서서히 가까워지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중 하나가 이성애자이거나 아직 양성 혹은 동성임을 모르면서 괴로워하거나 오히려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싫어할까봐 가슴졸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마치 우라라가 BL만화를 좋아하는 자신을 주변사람들에게 들키진 않을까 마음 졸이는 것과 대구를 이루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75세 유키할머니는 우연찮게 그림체가 예뻐서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작품 속 인물들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 때문에 애태우고, 세상의 시선을 이겨내가는 모습을 보며 이미 많은 세월을 살아온 입장에서는 그런 용기와 세상과의 싸움에 응원을 하고 때로는 그럴 수 있는 청춘이 부럽기만 하다. 마치 우라라가 자신의 능력과 성향을 타인에게 감추는 것이 안쓰러운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BL이란 장르와 소녀와 할머니라는 나이차가 큰 두 사람의 만남을 비교하자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는 있으나 BL에서는 성별이, 소녀와 할머니에게서는 나이가 드러내놓고 서로에 대한 호감과 관계를 누군가에게 거리낌없이 말할기에는 어렵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툇마루'는 어떤가. 일본작가의 작품이라 배경이 일본이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툇마루가 있는 집이 요즘에는 흔치 않다. 툇마루가 없는 지금의 생활방식은 누군가의 집에 방문했을 때 집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섣불리 그 집안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사방이 갇힌 현대의 주택은 정적과 부담스러움만 남을 뿐이다. 툇마루가 있는 집은 어떨까. 주인도 자신의 방을 내보이지 않아도 되니 툇마루가 없는 집들에 비하면 누군가의 방문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친해지기 이전의 관계일지라도 편히 앉아서 굳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라고 하는 것은 우라라가 살아오던 사방이 막혀있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설명하거나 이해받아야만 했던 삶에서 이제는 누군가와 '어우러진' 그것도 비밀스럽게 좋아했던 취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삶으로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 달라짐은 우라라 뿐 아니라 남편을 먼저 보내고 간간히 수업을 통해 이웃과 만남을 가지긴 하지만 거의 모든 식사를 혼자 하고, 자신도 젊었던 시절 가 본 후에 갈 수 없었던 장소를 당당하게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BL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여고생과 할머니의 만남이 신기할 뿐 아니라 실제 만화를 보는 독자들의 나이는 여고생과 할머니의 나이의 중간즘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쪽은 이미 살아본 삶, 다른 한 쪽은 이제 만나게 될 삶이기 때문에 호기심과 설레임 그리고 추억을 되살릴 수도 있는 적정한 연령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지만 일단 읽게되면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것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거나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는 스릴과 괴로움으로 인한 동병상련까지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만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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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밤은 너에게로 흐른다
제딧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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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밤은 너에게로 흐른다

어느 겨울 밤,
수신인을 정하지도 않고 편지를 써본 적이 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묻는 것이 낯간지럽다기 보다 설레임으로 다가온다면 분명 제딧의 <나의 모든 밤은 너에게로 흐른다>가 맘에 쏙 들것이다. 이 책은 연애를 시작할 때 설레이는 그 마음, 상대방을 잘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것처럼 계속 끌리는 그 마음이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다.

바이얼린을 켜던 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제딧.
그래서일까. 마치 현을 하나하나 건드려 아름다운 선율을 이어가듯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색채가 사랑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 털이 복실복실 한 개. 혹은 여우 한 마리. 그들이 때로는 소녀에게 때로는 소년곁에서 머물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함께 밤하늘을 지켜주는 파수꾼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코아 한 잔이 달래주던 한 밤을 이제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하면서 더 달달하고 진한 밤을 채워간다.
밤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연인과 함께 라면 모든 시간, 모든 계절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된다.


 
혹 이런 달달함이 부담스럽거나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진다면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고 돌아 결국 만나게 될 거에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말입니다.

만나지 못했다면
그건 아직 때가 아닌 것뿐입니다.

22쪽



 
한 장 한 장 다 떼어서 액자에 넣거나 정말 소중한 연인 혹은 친구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저자가 모를리 없다.
책 맨 뒷페이제는 부록처럼 본문에 수록된 일러스트 4점이 엽서 사이즈로 실려있다.


책의 장면 장면은 밤 하늘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숲을 배경으로 때로는 평범한 길가나 방안에서 함께 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마치 사소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듯 말이다.

우리가 어디로 향하든,
길을 잃어버리든,
당신의 손은 절대 놓지 않을 거에요.
우리는 그런 약속을 했어요.
사소하지만 중요한 약속을.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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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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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439.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영재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를 처음 만났을 때 표지에 적힌 책의 제목보다 책표지에 무수히 그려진 잎맥을 바라보았다. 되어간다는 건 다른 편에서 보자면 '만들어지는 것' 혹은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잎맥을 통해 양분과 수분이 잎 전체에 퍼져나가듯 그렇게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이 책에 담긴 작품들에 영양을 주고 수분을 주었을거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짧게 표현하자면 어려웠다. 전병준 문학평론가의 해설 속 말을 빌자면, '투명하면서도 모호한 언어의 배열에서 자주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처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싶어 읽고 또 읽었다. 시를 읽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인지도 모른채 계속 읽었다. 결국 맨 뒤에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다시금 돌아와 시를 읽으니 조금씩 시인이 열어둔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 [흰검정]의 '흰검정'이 무슨말인가 싶었는데 동시에 드러날 수 없다고 정해져있는 것들이 사실은 동시에 보여질 수도, 혹은 정의내려질 수도 있는 실제를 표현한 것이란 말에 흰검정...의 상황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비평가는 이를 혼돈, 카오스를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고 했고 나는 그냥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난다.' 라거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든가. 이어진 작품들도 비평가에 의존하다보니 시인의 언어가 아닌 비평가의 '해설'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슬럼]은 해설이 없었다. 


보이는 걸 보고 있다 올려다보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을 구태여 하지 않는다

보다가

본다

운명을 믿는 사람을 보고 있다

시간이 불타는 걸 보고 있다

포로들은 멈춘 버스에서 단장 중이다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슬럼] 중에서-


시를 읽기 전에는 시인이 되어가는 기분이라는 줄 알았다. 비평가도 시인도 아니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시 속에서 '되어가는 기분'은 철저하게 수동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포로'가 되어가는 중일수도 있다. 어쨌거나 '운명을 믿는 사람'을 '보고'있는 걸 보면 완벽하게 수동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지 되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의지도 보인다. 비평가는 말한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 중 시인은 '언어'를 선택한 것이고 화가는 '붓과 물감'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이 반가우면서도 쉽지 않은 그의 작품들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시대의 아픔을 '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라 알아듣지 못하는 나조차도 알아들을 수 밖에 없는 시대가 가진 아픔이 느껴졌다. 


건물을 올리며 네명이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략-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명이 더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청사진] 중에서-


최근에 내 머리와 마음속을 어지럽혔던 것들은 연대라는 단어와 글쓰기를 통한 치유,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현장에 없던 가해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뉴스를 통해 수많은 사고 소식들이 들려오지만 안타까워 할 뿐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그다지 오래, 크게 아파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조차 하지 않고 살다보니 이런 작품이 눈에 들어올 때가 아니면 아예 내가 가해자는 커녕 '피해자'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가해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 시집을 덮고서, 또 이 리뷰를 다 적고나면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잠깐의 다짐을 까다가 깬다'. -[노루잠]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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