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성경으로 - 이수화 목사 설교집
이수화 지음 / 가나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교자는 성경에서 길을 찾고 생명을 얻는 예수님을 만나도록 성도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은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는 온전한 하나님 중심의 말씀을 증거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요5:39)-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 사랑하지만 힘든 걸 어떡해
캐런 클아이먼 지음, 몰리 매킨타이어 그림, 임지연 옮김 / 한문화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런 책이 출간될 때마다 드는 생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구매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가정의 남편은 물론 주변인들이 읽고 독후감을 의무로 쓰게해야한다. 아이는 엄마혼자 키우는게 아니라 그 마을이, 나라가 키워야하니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굽는건축가 2020-03-0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리 어린이를 1년이상 아빠 육아할 때 느낀 감정들이 있었어요. 남편과 주변인들 독후감에 무조건 한표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케이틀린 도티의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란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염세주의자인가, 아니면 비관론자인가. 아니면 무언가 초월 그 이상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가 싶었다. 케이틀린 도티라는 저자의 이름을 보고서야, '장의, 장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는 그녀의 직업다운 또 그녀의 성격에 꼭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시체를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선진국에서만 누리는 특권이다. 바라나시의 보통날, 인도의 갠지스 강둑 위에는 80개에서 100개쯤 되는 화장터가 자리 잡고 불이 타오른다. 매우 공개적인 화장이 끝나면 뼈와 재는 성스러운 강물 속으로 흘려보낸다. 89꼭

도티의 말처럼 죽은 시체를 아무때나 쉽게 볼 수 있는 어린이는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거의 없다. 심지어 도티처럼 아주 어린 아이가 죽는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한다는 것은 '운이 나쁜, 그것도 매우 나쁜'에 해당될 뿐이다. 죽음을 쉽게 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아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흔히 말하듯 죽음 그자체를 떠올리는 순간 불쾌하고 불행하며 가장 참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죽음이 유쾌한 사람은 없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역시 저자의 말처럼 희망보다 절망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있는 이들도 있으니 그 끔찍한 죽음이 덜 아프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택하는 최후의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던 8살의 도티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죽음은 '소리'되어 그녀의 꿈속에 찾아와 '쿵'소리를 내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도망은 그녀가 성장하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듯하고 어느순간 더이상 그녀곁에 머물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녀가 선택한 전공이나 봉사활동 중의 파트는 '시체', '장례'에서 멀어지지 않고 꼭 붙어 있었다. 도망칠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이 그녀에게는 죽음 이었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 그자체를 명징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은행이나 어린이집에 취직하면 적당할 법한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녀가 선택한 직장은 장의사. 시체를 운반하고 면도하는 것 부터 레토르트(간편조리용 음식의 그 레토르트가 아니다!)에 넣고 버튼을 눌러 시체가 가루가 되는 순간, 또 그 순간 부터 유골함에 고운 가루로 담기는 과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모두 담당하며 그녀가 만(?)났던 시체들과의 인연들을 바로 이 책에 담아낸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전공했던 중세사에서 배웠던 과거 동서양을 포함한 원주민들의 장례문화와 장례문화에 숨겨진 인류의 의식과 문명에 관한 이야기들이 양념처럼 등장 해 과연 인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이며, 죽은 후에 과정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그들의 편의에 의해 변화되어왔음을 알려준다.

홀로 내버려두면 인체는 썩고 부패하고 분해되어 영광스럽게 원래 나왔던 흙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막기 위해 시신을 방부처리하고, 무거운 보호용 관을 사용하는 관습은, 불가피한 것을 모면해보려는 필사적 시도이며 우리가 명백하게 해체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228쪽

사후 자신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에 대해 가족과 미리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련없이 강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해부용 시체가 되어 의학발전에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내어주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그런 방식들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드다. 단순히 남겨질 가족들의 편의나 국토부족의 이유를 넘어 자신이 어떻게 소멸하기를 바라는지를 생각하다보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잘해봐야 '시체'가 될 우리가 죽음보다 삶을 선택한 이상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안내서인 이 책은 당연하겠지만 '출처'에 대해서도 애정을 담아 자세하게 책 뒤에 참고서적과 저자들을 위해 페이지를 할애해주었다. 편집마저도 장례전문의 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성인, 아마조니언 되다 - 삼성, 아마존 모두를 경험한 한 남자의 생존 보고서
김태강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아마존에서 근무하는 김태강 저자는 전직장이 삼성이다. 다른 말 필요없이 그의 현, 전직장 네임만 봐도 부럽기도 하고 분명 명문대에 엄청난 회화실력 그리고 놀라운 연봉 등 퍼져나가는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러움도 있고, 무엇보다 테크기업 중 하나인 아마존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로 궁금한 사항이 많아 읽고 싶기도 했다. 제목을 써진 것처럼 삼성인이라고 언급한 것은 삼성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부분, 현직장과의 차이점을 알려주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마조니언 되다'라는 부분을 부각시키면서 아마존이란 기업에서 배워야 할 점, 직장이 갖춰야 할 좋은 점과 반대로 직장인으로서 가져야 할 목표와 함께 인생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면 좋은지에 대한 조언도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해 이제 막 직업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쌓기 시작하는 중학생부터 제2의 인생을 위해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내용이 담겨져 있다.


아마존에서는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서슴없이 손을 들어 질문한다. 누군가는 임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강아지 데리고 출근하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 뜬금없는 질문에 모두가 좋은 질문이라며 박수를 쳤다. 아마존에는 똑똑한 질문과 멍청한 질문이 없다. 궁금한 사항만 있을 뿐이다." 111쪽


모르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과연 내가 하려는 질문이 '똑똑한 질문'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질문을 망설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과거 상사로 부터 불필요한 질문은 본인 뿐 아니라 상대방의 시간도 낭비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질문하기전 먼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의었기에 질문을 하기전에 평가하는 습관마저 생겼던터라 저자가 말하는 아마존 내의 분위기가 정말 부러웠다. 고민하지 않고 질문할 수 있다면 전 상사의 말처럼 누군가의 시간을 낭비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답을 찾기위해, 질문의 질을 판단하기 위해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가하면 최근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퇴사와 관련된 영상과 관련된 저자의 의견이었다. 자유롭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밀레니얼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면서도 퇴사 후 여행을 다니거나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지면 다소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일리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퇴사한 이후에 뚜렷한 계획이나 제대로 실천할 수 없는 공상들로 안타깝게 나이만 먹고 경력단절 상태에 놓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일을 할 때는 100명 중 어떤 90명을 실망시킬지 잘 고민하고 일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돌이켜보며 10명에게만 집중한다면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222-223쪽


저자는 상사가 말했던 위의 내용을 매일 아침 출근 후 노트북을 열 때 마다 떠올린다고 한다. 90명을 실망시킬 수 있음을 인지하고 다만 그 들이 누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말은 저자 뿐 아니라 내게도 그리고 다른 독자들에게도 울림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비단 직장 뿐 아니라 인생을 살다보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때 내가 실망시키게 될 사람이 가족인지, 연인 혹은 친구 때로는 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실망시키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면 좌절하게 되거나 상대에 대한 미안함 마음에 관계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하루의 절반이상의 시간을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시간과 생각들이 회사에 집중하게 된다. 회사생활을 잘하는 것은 내 미래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저자가 아마존에 근무하며 받았던 상담 내용들을 자신에게 잘 대입해보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혹은 하고 싶은 삶을 위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보는 독서, 독후 시간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 - 살기 싫어 몽테뉴를 읽었습니다
이승연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전을 읽고 쓰는 에세이는 대략 그 에세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가지는 심리적 불안에 대한 설명과 위로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책 제목앞에 다음의 글이 쓰여있었다. '살기 싫어 몽테뉴를 읽었습니다'라고. 제목과 붙여서 읽으면 결국 어쨌거나 몽테뉴의 수상록, 에세를 두 번 읽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의 약력을 떠나서라도 누군가 만만찮은 고전을 두번이나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들어봄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다. 나 자신을 얼마나 드러냈느냐보다 얼마나 솔직했느냐 하는 점.184쪽

얼마전에 읽었던 이하루 작가의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를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 다름아닌 '솔직'이었다. 솔직할 자신이 없으면 에세이는 쓸 수 없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의 이승연 작가도 이전에 집필했던 책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드러낸 것이고, 그렇게 쓰고 난 후에는 스스로 얼마나 솔직했느냐를 생각했다는 말에 SNS에서 만난 친구들도 친구가 된다는 그녀의 말처럼 이렇게 한 번 만날 수 없더라도 독자와 작가사이에도 '친분'이 생겼지 않았을까. 사실 이 책의 초반 부분은 그녀가 왜 에세를 읽게 되었고 어떤 부분이 그렇게 와닿았으면 무엇때문에 책으로까지 쓸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독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여과없이'토해내주었다. 덕분에 그녀가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는 부분에서는 독자인 나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리며 속이 후련해지는 뜻하지 않은 '행우'도 누릴 수 있었다. 초반을 지나 그녀가 잘 알고 잘 하는 '영화'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면서 사실 책은 밤낮으로 읽으려는 시도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읽어왔다. 그런데 영화만큼은 아이를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그것도 긴 시간을 비울 수 없어 영화시작과 동시에 입장,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나와서인지 어떤 영화를 봐도 크게 감동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보고 싶던 영화를 찾아 예매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어떤 내용일까? 혹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어떻게 각색하고 영상으로 재연되었을지를 기대했다면 출산 이후 시간이 정해져있다보니 극장에 도착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내가 보게 될 영화였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육아에 몰입하다보니 감동을 곱씹을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임신 전이었다면 엄청난 감동과 공감으로 박수를 쳤을 영화들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이야기를 했던 저자의 책을 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간단히 밝혔다. 어쩌면 나에게는 본문보다 프롤로그가 중요할 수도 있는데, 일부러 솔직하게 짧게 쓰려고 노력했다. 구구절절 말할 수도 없었다. '운명'과 '인연'이라는 두 단어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183쪽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고전이 특정한 사람들만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 역시 타깃을 정해두고 쓴 것은 아니라고. 다만 저자처럼 어떤 이유로든 헤매고 방황하며 고통에 무너지고 있다면 몽테뉴의 글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고 싶다고 말이다. 비유로 든 영화 [줄리&줄리아]가 다른 시대를 살면서도 요리라는 공통된 주제로, 비슷한 삶의 형태로 공감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몽테뉴와 저자는 무려 3세기나 차이가 났지만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몽테의 에세가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아마 저마다의 그런 책들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고 싶었던, 어릴 때는 억지로 숙제나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읽었어도 기억나는 문장이나 대사가 있어 다시 펼쳐봐야지 싶었던 그런 책들. 내게는 성서의 구절과 헤세의 데미안이 그랬었다. 사실 몽테의 에세는 이 책 덕분에 이전보다는 가깝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저자만큼 힘들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펼쳐보고픈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에세보다 저자의 이런 노력,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자체에 더 큰 공감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에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마중물이 되거나 바로 열리는 열쇠가 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