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 인문학의 첫걸음 <천자문>을 읽는다
윤선영 편역 / 홍익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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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흔 무렵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른이라면 삶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기 위해 다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인문학을 통해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의 첫걸음이라 할 <천자문>을 권하는 것입니다. -10쪽-


인문학을 공부한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문학의 정의나 의미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문학이 실제 삶의 적용되기 위한 공부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 유명고전을 읽고 관련 강의를 들어도 잠시뿐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다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이 책은 천자문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또 삶에 적용하여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천자문외에도 언급된 성어를 잘 전달하기 위해 그 배경이 되는 역사와 관련된 문서등으로 이해를 높여주어 읽으면서 마치 내가 천자문을 통째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체화되어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하늘 천 땅 지. 하늘과땅은 자연을 대표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흔히말하는 생명의 시작인 잉태와 양육을 기본으로 한다.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 두발을 딛고 서있는 땅의 힘을 믿는 것. 그렇게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나고 그 힘으로 자라난다. 육으로 맺어진 부모는 자연과 새 생명을 연결지어 주는데 그렇기에 내 몸을 함부로 훼손하면은 안된다. 이 이야기는 [사자소행]효행편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진정한 효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저자는 풀이해준다. 여기에 좀더 나아가 인간이 지켜야할 덕목 중 자주하게 되는 '실수'와 관련된 내용도 있다. 천자문 뿐 아니라 [논어]의 학이편, [위령공]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하며,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볼 줄 아는 정직의 미덕을 강조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5쪽


성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과거에는 질병이 인간의 죄로 인한 벌로 여겨졌는데 그를 치료하면서 예수가 말하길 '다시는 죄 짓지말라'라고 말하거나 재단에 재물을 바치기 전에 다툼이 있는 형제와 먼저 화해하라고도 말한다. 잘못을 알면서 그냥 놔두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것은 불교 용어를 빗대어 말하는 천자문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동서양의 어떤 종교나 철학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어른이라면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으로 스스로 고쳐가려고 노력하는 것일테다. 인간의 덕목을 지나고 나면 배움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활동 및 관계와 관련된 내용도 당연히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다룬곳까지도 천자문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것이다. 천자문을 외웠다고 한 이들조차도 이부분을 만나면 그저 읽고 쓸 줄만 알지 풀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外受傅訓入奉母儀(외수부훈입봉모의)'. 밖에서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들어가서는 어머니의 법규를 받든다.102쪽. 스승과 부모에 대한 도리를 설명하는 부분으로 요즘의 사람들을 보면 안팎으로 '휴대폰을 받드는'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휴대폰의 좋은 점도 물론 있지만 스승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없거나 부모가 그저 돈을 주는 사람, 나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사람정도로만 생각된다면 부모뿐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欣奏累遣慼謝歡招 흔주루견척사환초

좋은 일로 나아가고 나쁜 일은 떠나보내면 슬픔이 떠나가고 기쁨이 찾아올 것이다. 187쪽


인간의 도리, 지켜야 할 규범과 관련된 이야기만 늘어놓다보니 다소 이 책이 무겁고 지루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천자문 자체가 그렇게 답답한 책은 아니었다. 위의 흔주루견 척사환초는 도치된 문장으로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두 구의 의미가 중복된 것이라고 풀이해준다. 이와 유사한 사자성어가 익숙한 만큼 지나치게 한가지 생각이나 감정에 묶여있지 않지 않도록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몇 가지를 발췌했지만 한 자 한 자에 담긴 의미와 실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풀이를 보다보면 마치 과거로 돌아가 한복을 곱게 있고 천자문을 공부하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을 많은 이들이 느껴가며 천자문이 과거의 학문이 아닌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도움이 될 만한 어른으로 가는 지침서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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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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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잠시의 승리일 뿐이다. 너희 모두는 곧 내것이 되리라.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것이다.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마." 211쪽


다산책방에서 출간한 딘 쿤츠의 소설 <어둠의 눈>은 '코로나19를 40년 전에 예견한 소설'로 회자되고 있지만 코로나19를 굳이 연결짓지 않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위협적인 작품이었다. 아직 어린 아기지만 아들엄마라는 이유로 이야기의 시작이 아들을 잃은 엄마 티나가 죽은 아들과 버릇마저 똑같은 아이를 만났을 때의 충격은 마치 영화나 실제 사건을 보는것처럼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버스사고로 아들 대니를 잃은 후 이상한 일들이 엄마인 티나에게서 일어난다. 처음에는 대니의 방과 유품을 정리하지 않은 자신에게 정신병적인 증세가 일어나고 있는거라고 애써 무시하지만 점점 대니가 살아있는 것이 분명한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대니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조차 하지 못했던 그녀기에 아들의 무덤을 파헤쳐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째서 코로나와 이 소설이 관련이 있는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19가 우환지역에서 발생하여 퍼졌기 때문에 우환바이러스라고 명명되지만 소설속에서는 우환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진행된 실험 우환-400이다. 고작 그정도로 연결짓지에는 무리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깨닫게 된다. 바로 내 옆에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 사실이 아닌 정보나 의혹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것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거대한 세력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실험 기관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다라는 사실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서두에 밝힌것 처럼 아이를 둔 엄마라서 그런지 전염병이나 연구소의 비밀연구,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다루는 스릴러라는 부분보다 아이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엄마 티나의 심정과 심리변화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지금 무서운 이유는 자신이 대니를 찾아내고도 혹시 구해내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이가 어디 있는지 찾는 과정에서 자신과 엘리엇이 죽을 수도 있었다. 285쪽


소설을 읽을때면 아마 누구라도 소설속 주요인물들의 감정을 이입하며 '만약 나라면,'이라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화려한 티나의 삶보다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가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거듭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비단 코로나뿐 아니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혹이 일어나는 일에는 누구나 음모론을 떠올리게 된다. 어떻게든 사실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라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소설에 몰입해갈수록 이미 출간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결론이 궁금해져 뒷페이지를 먼저 읽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둘의 손이 닿았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엄마의 손가락을 꽉 쥐었다. 대니는 맹렬하고 필사적인 힘으로 엄마의 손을 쥐고 있었다. 428쪽


아이가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바이러스로 인해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다시 읽다만 부분으로 되돌아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대니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손이 닿았다는 아들은 대니인가 아니면 대니를 닮은 또다른 아이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스릴러이면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 정말 잘도 어우러져 결말을 알아도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엄마의 입장으로 읽다보니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다가선 부분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힘이 때로는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대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이 소설처럼 개개인만의 사랑으로 싸워내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약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내 일이 아니니까 무시해버리거나 그만 잊고 살자고 하는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결말을 알아도 흥미로운 스릴러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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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일주 가이드북 - 대한민국 전국일주 여행 백과사전!, 2020-2021 최신 개정판
유철상 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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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일주 가이드북 2020-2021 최신개정판
우리나라 최초 전국일주 코스 가이드북

#전국일주 #국내여행 #국내여행가이드 #드라이브코스 #추천드라이브코스 #추천국내여행





해외여행은 최소 몇 달 전부터 꼼꼼하게 방문할 도시를 검색도 하고 책을 펴보지만 이상하게 국내여행을 할 때면 '일단, 우선, 출발!'이 익숙해진 것 같다. 그렇게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 좋을 때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떠날 예정이라면 즉흥적인 것 보다는 먹는 것 부터 체험활동을 포함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는 것이 현명하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야외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는 꼼꼼하게 실내에서, 혹은 드라이브만으로도 충분한 코스를 확인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철상, 김충식, 신지영, 신지혜 등 4명의 작가가 직접 발로 뛰어가며 쓴 <전국일주 가이드북>을 펼쳐보면 여행코스가 한 눈에 보이는 상세지도는 물론 이런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여행 중에는 유명인사의 생가부터 체험장까지 골고루 둘러보며 국내에는 왜 없냐며 불평했는데 내가 몰랐다는 것을 알게된다.

  • 파트1 동해안 7번 국도
  • 파트2 1번 경부고속도로 
  • 파트3 50번 영동 고속도로 
  • 파트4 60번 서울양양(동서)고속도로 
  • 파트5 15번 서해안고속도로 
  • 파트6 25번 호남 고속도로
  • 파트7 27번 순천완주선 고속도로
  • 파트8 35번 중부 고속도로
  • 파트9 45번 중부내륙 고속도로
  • 파트10 55번 중앙 고속도로

전국지도, 인덱스(지역.관광지)정보 수록






 
평소에 주로 이용하는 도로는 경부와 영동고속도로지만 책을 펼쳐보면 왜 이 많은 도로를 외면하고 살았나 싶을만큼 각 지역별로 가고싶은 장소가 정말 많다는 사실에 신이 날 정도다. 부산의 경우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으로 알려졌지만 경험상 부산만큼 또 차로 가봐야 할 지역도 흔치 않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 감천마을, 국제시장 태종대 등은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혹 차가 없어서 이 책이 그다지 도움이 안될 것 같다고 피할 이유는 없다. 사실 어딜 가고자 맘만 먹으면 대중 교통으로 가지 못할 곳은 거의 없다. 문제는 '어디'를 가야 할 지를 모를 뿐이다.

책을 보다보면 자녀의 연령에 따라 어디가 좋을지도 계획할 수 있는데 가령 파트2에 소개된 경부고속도로 중 북수원IC~신탄진IC를 경유할 때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수원화성부터 청주고인쇄박물관, 독립기념관 등 교과서 연계로 체험학습이 잘 되어 있는 기관이 즐비하다. 개인적으로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성인들이 체험하기에도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아 강추한다.
책에서는 금속활자 작업공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실등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자녀가 없는 부부 혹은 연인들을 위한 장소들도 다양하다. 데이트의 명소로 이제는 안가보면 연인이 아닌것만 같은 대관령양떼목장을 경유할 수 있는 코스는 파트3 영동고소도로 구간1 횡성IC~대관령IC 도로로 평창무이예술관도 들릴 수 있다. 맛있는 안흥찐빵마을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어느 장소에도 들리지 않고 차안에서만 안전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다면 역시나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이 좋은데 파트7 순천완주고속도로 구간3 하동IC~사천IC를 소개하고 싶다. 특히 보기만 해도 예쁜 독일마을의 아기자기함은 물론 가천다랭이마을 지나 상주은모래비치까지 낭만적이면서도 광활한 자연의 멋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코스로 저자들도 추천하는 코스다.

혼자떠나도 좋고 가족과 함께여도 좋지만 무엇보다 잘먹고 잘 쉴 수 있는 숙소 및 맛집 추천리스트까지 책에 실려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잘 읽다보면 어느새 어디에 누구와 함께 언제 가면 좋을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다소 움츠러든 요즘 당장 떠나기가 부담스럽다면 계절별로 떠나기 좋은 추천코스를 참고해서 여름이후 가을그리고 겨울에 떠날 장소를 미리 계획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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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수집 에세이
신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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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최소취향이야기 #신미경 #상상출판





 
프롤로그에서부터 느낌이 확 오는 책이 있었던가. 신미경 작가의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는 프롤로그의 첫 문장부터 남달랐다. 요가를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는 문장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소한 일정이 특별하게 시간을 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남다르게 다가왔다. 내 몸의 건강과 내 마음의 평온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저 한 문장에서 이미 다 드러나 있었다. 최소 취향이라는 말에 얼마나 특별하고 부러울 만한 취향을 이야기하려나 싶었던 나의 착각이 민망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뒤에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사람들, 고전에서 삶을 배울 수 있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지만 이처럼 당장 하나하나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적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당장 시작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체화되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는 저자의 생활방식은 다름 아닌 비움과 배움 그리고 '지금을 사는 것'이 었다.





나는 일이 좀 안풀린다 싶으면 집에 있어서는 안 될 게 있는지 샅샅이 수색한 뒤 버린다. -중략-
내게 고통의 기억을 안긴 거슬리는 물건을 없애고 나면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부정적으로 느낀 기운이 사라지면 어느새 막힌 운이 뚫려 원활히 순환되는 느낌. 
매우 미신적인 접근이지만 불행한 기분이 들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34쪽

미니멀리즘을 실천에 옮기는 이웃블로거들의 글이 거의 매일 새글로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이란 말을 달고 살았다. 학업이 끝나면, 퇴사를 하면 등의 수많은 이유들이 나의 실천을 방해하곤 했다.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과거 어느 때라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었던 때라는 것을. 아직 돌 된 아이를 기르게 되었으니 미니멀리즘은 더 멀어진 것 아닐까 싶었지만 신기하게 아이의 짐을 늘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내 짐, 내게 불필요하거나 미련으로 남았던 물건들을 치우게 되었다. 버리고나서 많이 후회할 것 같았지만 육아로 지친 몸과 맘은 버려진 물건을 추억하기에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다. 더군다나 비어진 틈사이로는 아이가 주는 기쁨과 아주 잠깐이지만 놓칠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으로 가득채우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쉽사리 버려지지 않았던 것은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을 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내 눈에 예뻐 보였던 스타, 모델, SNS 인플루언서들의 옷차림이 나에게도 어울릴 거란 보장은 없다. 남들의 스타일링을 참고하면 대부분 실패하는 쇼핑을 했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고 싶었다. 
나의 욕망은 그들이 가진 이미지였다. 64쪽


육아템을 검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들의 글과 리뷰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을 구매하면 육아가 좀 더 수월해지고 조금은 멋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접는다. 수백개를 넘어 수천개의 리뷰를 읽어보아도 결국 아이는 모두 다 다르고 아이를 키우는 나 또한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아이템은 결국 내 아이와 나에게 가장 잘맞는 것을 찾는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극찬하는 바운서가 내게는 아이의 옷을 걸쳐두는 용도로 밖에 쓰이지 않았던 반면 극소수의 맘들에게만 극찬을 받았던 아기베개가 내게는 정말 고마운 아이템으로 남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영화 <패터슨>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를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해가 간다. 일상에서 예술을 하는 것. 시인이 되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퇴근길에 모임이나 혼술을 상상하며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글 한 줄을 적거나 제대로 선을 치진 못해도 종이와 연필을 들고 애써보는 자세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장황하게 늘어놓는 다른 강의나 연설보다 직접적으로 예술화된 삶 그자체를 살아가는 단조롭지만 명징하게 드러나는 패터슨의 하루하루에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 괴로울수록 꿈은 또렷하게 다가온다. 
절벽 끝에 매달린 기분에서 벗어나게는 해주지만 나는 결코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테다. 
'언젠가는 오늘이고, 언젠가는 지금 당장'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렇다. 152쪽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학문으로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바람을 오래도록 간직만 하다가 마흔을 앞두고 편입을 하고 올해 2월 졸업을 했다. 그 덕분에 미술분야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언젠가라는 말 뒤에 숨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최소 취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권을 다 읽고도 어렵다면 저자의 에필로그에 적힌 열 가지라도 삶에 녹여내보면 어떨까. 최소라는 것은 결국 '꼭 필요한'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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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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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해볼까 #권남희 #번역가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몇 년 전 번역공부를 시작하면서 역자들의 에세이를 찾아가며 읽었던 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는 당장 공부를 앞둔 당시의 내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실무능력 고양을 위한 책들은 부담으로 다가와 피했었다. 그 때 만났던 권남희 역자의 에세이는 내가 원하던 역자들의 생생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성으로도 유익해 수강을 위한 책을 구매할 때 함께 구매했었다. 그렇기에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가 신간으로 그것도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이 정말 반가웠다. 


목차소개

1장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2장 잡담입니다

3장 남희 씨는 행복해요?

4장 자식의 마음은 번역이 안 돼요

5장 신문에 내가 나왔어

6장 가끔은 세상을 즐깁니다




읽어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결국은 내가 번역을 맡았다. 번역을 잘할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고, 이 책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내게 온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36쪽


1장의 내용 중에서는 번역경험과 관련하여 작가에게도 운명적인 순간이 다가와 하룻밤 혹은 몇 달을 집중해서 집필하게 되는 때가 있듯 역자에게도 운명처럼 다가오는 책이 있는가보다.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고 한다. 번역 공부를 하면서 즐겨 하던 위와 같은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책처럼 번역하기에 이런저런 우려가 들 때에도 그럴 수 있고 무엇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진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2장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잡담입니다'라는 소제에서 알 수 있듯 마치 하루키의 에세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판 하루키, 혹은 여성 하루키라고 해야할까. 별개 아니라는 듯 흘려가며 적은 내용에 읽는 내내 피식피식했다.






.....대체로 쫄고 있는 사람들이 쫄지 말자고 말하지. 78쪽


위의 내용은 번역이 주업무가 아닌 사람들이 역자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저자가 쫄고 있을 정도면 그야말로 다른 역자분들은 얼마나 조마조마 할까 싶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역서를 반기는 편이다. 특히 전문 자격증 혹은 그와 관련된 학업을 수료한 사람들이 한 번역과 그렇지 않은 번역의 차이가 커서인지 역자의 전공을 한 번씩 훑어보게 된다. 물론 간혹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번역된 - 독자가 다 알거라고 짐작하는 번역- 경우보다는 초보자도 잘 읽을 수 있도록, 혹은 딱딱한 학술적 술해를 마치 소설처럼 은유적으로 풀어내되 이론적 오류는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번역하는 경우도 있기에 역자들의 역할과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나는 번역가라는 수식어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라는 말이 더 좋다. 113쪽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보고픈 호기심은 아마 거의다 있을 것이다. 특히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서재가 그러한데 권남희 번역가는 지금껏 서재를 가져본 적도 없지만 아이와 함께 어우러진 곳에서 작업하는 것이 익숙해진데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따뜻한 번역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따뜻한 번역'. 역자 권남희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쩌면 스스로 말한 '따뜻한 번역'이라서가 가장 적확하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되고보니 4장, '자식의 마음은 번역이 안 돼요'가 공감이라기 보다는 후배맘으로서 조언처럼 새겨듣게 되었다. 이전에 읽었던 역자의 에세이가 선배 번역가를 바라보는 호기심과 부러움의 마음이었다면 이번에 출간한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는 그런점에서 더 다양하고 깊게 공감도 되고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혹 역자 권남희, 엄마 에세이 등의 이유로 이 책을 보고자 한다면 미처 이 리뷰에 다담지 못한 온전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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