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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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가장 먼저 카오스가 생겨났다.“ (19쪽)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나오는 말로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세상의 첫 장면이다. 카오스 하면 나 또한 ’혼란, 혼돈‘이란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텅빈‘, 즉 빈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카오스가 생겨나고 그 이후에 대지의 신 가이아, 그리고 죽음의 신과 에로스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신의 자녀들이 또 각각의 신이 되는 등 그야말로 엄청난 신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데 죽음의 신인 하데스와 타나토스는 처음에는 그 깊이가 나뉘어졌다가 점점 모호하게 유사한 의미가 되었다. 로마 신화의 최초는 누구였을까. 바로 야누스로 두 얼굴을 가진 존재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단순히 얼굴이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성격 자체가 상반되는 인물로 많이 인용되는 데 실제는 앞 뒤의 얼굴이 다른데 앞은 미래를, 뒤는 과거를 뜻하는 것으로 과거를 살필 줄 알아야 미래에도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양한 신이 생겨난 이유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을 ’신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태도가 반영된 까닭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가 결코 해결할 수 없거나 납득할 수 없는 일에 ’신의 뜻‘을 언급하는 것과 같다. 이런 절대적인 신들의 미움을 받은 사람 중 단연 손꼽히는 인간은 다름아닌 시쉬포스다.

이 이름 자체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호흡을 흉내 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쉬-푸-쉬-푸- 인간이 곧 시쉬포스인 셈이죠. 그런데 다시 다시 생각해보면 (...) 강력한 신들의 힘에 굴하지 않고 생존을 지키기 위해 지혜를 짜내고 용감하게 싸워 나간 그의 모습에서 삶을 살아가는 용기와 힘, 지혜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342쪽

시쉬포스는 저자도 본문에 적은 것처럼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시에 인간의 삶이란게 그토록 무의미한 반복, 혹은 불합리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데 위의 발췌문처럼 생각하니 그동안 시쉬포스를 떠올리며, 혹은 시쉬포스와 같은 상황이라며 좌절했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여러 차례 죽음의 신에게 끌려가면서도 마지막까지 기지를 발휘해 ’죽을 때 까지‘신들의 눈을 피해 아내와 잘 살았다는 것만 보더라도 시쉬포스에게서 배울 점이 있었다. 분명 시쉬포스도 신들의 노여움이 결국 피할 수 없으리란 것은 알았겠지만 사는 동안 즐겁게,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 정말 멋진 삶이지 않은가. 반면 지혜를 넘어 욕망의 화신이 되어버린 메데이아의 사정은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거기에 마법의 약을 발라 놓았죠. 잠시 후 머리띠에서는 불길이 솟아올랐고, 옷은 조여 들어 살을 파고들었습니다. (...)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여인, 희대의 팜므 파탈 메데이아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복수였습니다. 417쪽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메데이아를 두고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연인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었다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것을 뺏으려 했던 사람들을 벌하는 것, 이것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의 흉내를 내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코 얇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개인적으로는 순서대로 읽어도 좋은)읽기 시작해도 지루함 없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그만큼 저자의 필체가 친근한데다 이해가 쉽고 무엇보다 ’우리 인간의 모습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된다. 위의 몇 가지 발췌문을 연결지어 감상을 적은 부분만 봐도 짐작이 될 것이다. 여러 번 재독을 해도 재미있을, 그리고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그리스 로마신화를 김헌 교수님의 책으로 읽기를 추천한다. @eul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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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의 길 -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향한 카운트다운
에번 토머스 지음, 조행복 옮김 / 까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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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히로시마 #원자폭탄 #전쟁사 #역사 #전쟁 #핵폭탄 #오펜하이머 #까치 #핵 #에번토마스 #도서협찬 @kachibooks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정해진 결론이었지만, 일본이 항복할지는 미지수였다. 16쪽

까치 출판사에서 출간한 <항복의 길>은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성공한 오펜하이머도, 히로시마 생존자도 아닌 지금껏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세 사람의 시선에서 당시 상황을 맞추어간다. 핵폭탄 투하를 명령한 사람, 그리고 실제 지시에 따라 폭탄을 터뜨린 사람 그리고 세 번째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일본이 항복하도록 애썼던 한 사람이다.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 태평양 전략폭격 사령부 수장 칼 스파츠 그리고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오펜하이머>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나와 직접적인 조부모 중 누군가가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이어오고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때 느꼈던 감정과 무의미한 질문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저자가 왜 그들의 상황을 ’기록‘이 아닌 ’현재시제‘로 표현해서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듯한 실재감을 주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람을 죽여 사람을 구할 (83쪽)‘수 밖에 없는 그 결정이 마지막까지 후회로 남을 줄 알면서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마음이 느껴져 괴로울 정도였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가장 걱정되는 일은 핵폭탄, 민간인의 죽음으로도 ’일본의 항복‘이 확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도고 시게노리의 활약을 눈여겨 봐야한다.

도고는 충격을 받는다. 군사참의원 회의는 항복은 없다는 ’기본 대강‘을 채택한다. (...)
그날 일기에 이렇게 쓴다. ”스즈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육군의 입장을 이해하고 예상도 했지만, 내각총리대신은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116쪽

도고는 당연히 항복을 선택하고 기아로 고생하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군부 내에서 항복을 하자는 의견과 반대의견은 3:3이었다. 심지어 일본이 여전히 승기를 잡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나미 장군은 도쿄에 관한 맥딜다의 경고를 신뢰할 만한 정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믿을 수 없게도, 아나미는 미국이 핵폭탄 100기를 투하할 수 있어도 일본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전히 말한다. 216-217쪽

만약 교토 혹은 도쿄에 핵폭탄을 투하했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트루먼은 자신의 일기에 ’노아의 방주(146쪽)‘를 언급하며 ’불의 심판(같은쪽)‘이라고 표현했는데 지금껏 접한 비유중에 가장 적절했다고 느꼈다. 천황과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의 교토, 그 교토에 떨어진 핵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도고가 선택한 것은 바로 천황을 설득하는 것이었고, 스즈키 수상의 도움으로 성단, 종전을 성공시켰다.

”나는 일본이 국내외에서 맞딱뜨린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뒤, 이 전쟁을 계속하면 그 결과는 조국의 파멸과 세상의 더 많은 출혈과 냉혹함뿐이라고 결론 내렸소.“ 223쪽

일본의 항복으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았을테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이제 인류에게는 핵이라는 무기가 탄생했고, 그 무기가 미칠 파급력 또한 증명되었다. 다만 죄책감과 두려움을 안고서도 냉전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혹은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 또한 핵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전범으로 형을 받은 도고의 말년은 정신적으로는 화해와 용서를 이루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핵을 투하되고, 일본은 항복했다. 이렇게 간단했던 역사의 한 줄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결코 ’간단할 수 없는‘문제라는 것을 새삼깨닫는다. 스팀슨의 말처럼 누군가를 신뢰하기 위한 방법이 먼저 신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불신하는 것이라는 말이 무겁게 남아있다. 우리는 누군가 혹은 국가를 신뢰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상대가 이미 우리를 그런 존재로 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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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Short Story Collection 1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센텐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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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로 잘 알려진 영국의 의사이자 소설가다. 셜록 홈즈는 책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로도 인기가 많은데 특히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베데딕트 컴버배치를 배우로서 각인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준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셜록이 아닌 바다 위 선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바다위의 선상'은 사방이 모두 트여있지만 동시에 파도로 인해 어디로도 쉽게 갈 수 없는 열려있지만 닫혀진 공간이다. 그곳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육지에 있는 가족보다 더 가깝지만 적으로 등을 돌리는 순간 저 깊은 심연으로 나를 밀어버릴 수 있는 무서운 존재이기도하다. 그리고 또 하나. 선상위에서 일어나는 소동은 인간이 빚어낸 것이 아닌 '유령'일 수 있다는 미신 혹은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거나 생계를 위해, 먼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이동수단으로 탑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물리적 거리를 내면에서도 가지고 싶을 때 우리는 배 위로 오른다. 몇 개의 작품안으로 좀 더 들어가보면, 에피소드 1 조셉 하바쿡 제프슨의 성명서는 사람들이 사라진 배, 해적들의 손길이 닿은 것도 아닌 한 척의 배가 등장한다. 탑승원 중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한 난파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치 연쇄적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 결국 마지막 한사람이 외로움과 죄책감으로 자살을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 초반에 시작되는 신비로운 '보물'이 그냥 등장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 보물, 돌은 과연 이 난파선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읽게 된다. 자극적이진 않지만 상상을 해보면 참혹하기 그지 없는 이 작품은 초반부터 이 책이 얼마나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설인지 기대를 키운다. 에프소드 4 폴스타호의 선장은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지만 실력은 뛰어나며 과거를 결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크레기 선장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만약 제작자 입장에서 영화로 만든다면 크레기 선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원들의 불만이 터질 무렵 모두 앞에서 지난 영광과 앞으로의 벌어질 위험조차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며 내려앉은 그들의 어깨를 일순간 다시 긴장시키는 연설 장면은 상상만 해도 멋지다.

그동안 원서로만 읽을 수 있었던,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을 이렇게 한글로 읽을 수 있어서 반가웠다. 특히 잔잔한 파도가 부서지던 해변의 모래밭에서, 호텔 방 침대위에서 아껴 읽었던 소설책으로 아직 휴가를 떠나지 못했거나 긴 여운으로 파도 소리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물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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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워크 저널 -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
카일라 샤힌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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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정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행길에 나를 위한 책이자 노트로 챙겨간 섀도위크저널.
내면치유와 관련된 에세이를 몇 해 전 여름 휴가때 챙겨갔을 때, 어느 때보다 나를 들여다보기에 좋은 환경이란 걸 알았다. 낮동안 물놀이로 피곤해진 아이는 깊은 잠에 들고, 나는 호텔 방 스탠드를 켜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나를 불안하게 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망치는 이유 중 하나인 ‘그림자’를 찾아내고, 치유하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심각한 상태이거나 혼자 맞서기에 두려움이 크다면 전문가의 도움 혹은 종교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가급적 숨기거나 피하고만 싶었던 그림자를 홀로 맞서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그런 날들을 거친 후에 빛으로만 가득한 십자가를 올려다 보며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꺼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 혹은 특정 부분에서 느껴지는 부러움을 살피다보니 이전에 찾지 못했던 그림자도 보였다. 그런가하면 이전에 이미 결별한 줄 알았던 그림자가 다시 보이기도 했다. 책 첫 페이지에 부모님이 읽었어야 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정말 그랬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내 아이의 엄마인 나는 이 책을 진지하게 읽었으며 기회가 된다면 배우자 뿐 아니라 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솔직히 나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이들과 나누고픈 마음이 제일 크다.
여름에 더위를 피해 여행을 떠났지만 어쩌면 마음 속 그림자로 인해 내면은 늘 날카로운 얼음으로 채워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밤 한 밤, 여행이 길어질수록 빈칸이 채워지고 그림자도 옅어져 갔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또 불행인지 아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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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요 창비 아기책
김효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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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아이랑 #유아 #영유아그림책 #책읽는아이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내가 있어요

아이가 비행기를 처음 탄 날, 이 책을 꺼내들었다.
내가 먼저 보고 무슨 이야기를 준비하면 될까 고민도 했었지만 역시나 아이는 기내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이리저리 바라보며 알고 있는 단어가 아닌 바로 옆 비행기 창문에서 보이는 구름을 먼저 말하며 좋아한다. 여기도 구름이 있다며 책을 한 번 보고 창밖을 한 번 보며 들떠있는 기분이 점점 더 떠있는 하늘보다 더 오르고 있었다.

혼자서 이 책을 먼저 살펴볼 땐, 좀 더 어린 영아들에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래’를 향해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무엇이 등장하게 될 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래, 아래, 아래로 내려가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곳에 아이가 아닌 ‘내가 있’었다. 그건 나였다. 아이를 안고 아파트 옆 공원의 언덕위로 올라가 아이와 함께 바람을 맞으며 숨을 돌리던 나, 그런 내가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서두에 밝혔던 고민을 접고 더이상 넣을 곳도 없는 여행가방에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넣었던거다. 내가 나를 발견하듯, 아이도 그시절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 아니면 ‘엄마’를 알아보게 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지금은 아이를 안아주기에는 너무 자라서 책에서처럼은 안아줄 수 없다. 저 시절에는 정말 아이를 앞으로 띠에 넣고 여기저기를, 이런저런 것들을 거뜬히 해내곤 했다.

아이는 하늘아래 있는 것들을 줄지어 계속 이야기한다. 해, 구름, 무지개, 풍선. 풍선! 풍선을 좋아하는 아이는 역시 풍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풍선이 하늘에서 비행기와 만나면 어떻게 되느냐를 시작으로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풍선을 가지고 싶다까지. 아이의 아이다운 표정과 말들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내가 있어요’.

거기 있는 나와, 이 책을 이제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와 함께 있는 ‘나’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더이상 이 책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 아이를 키우는 내가 볼 때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상이 스쳐지나갈까. 잘 모셔둬야지. 아이가 처음 떠난 여행지에서, 비행기 안에서 연신 웃음을 머금고 읽었던 책이니 계속 모셔둬야지. 그리고 선물하고 싶다. 나처럼 아이가 어느정도 자란 엄마 뿐 아니라, 책에서처럼 저렇게 아이를 안고 있을 엄마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창비 #창비어린이 #김효은 #내가있어요 #엄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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