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용기 - 대담하게 일하고, 냉정하게 대화하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하여
브레네 브라운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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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용기 / 브레네 브라운 저, 강주헌 역 / 갤리온


나는 '변화'란 단어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진정성과 용기를 상실해가는 세상이 더 두렵다. 입으로만 떠드는 평론가와 냉소주의자, 두려움을 퍼뜨리는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갑옷을 벗고, 취약성을 인정하며,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고, 열린 마음으로 대담한 신뢰를 구축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게 혁명적 변화라는 것이 내 믿음이다. 376쪽


많이 배우는 세상, 그 배운것을 내 안에서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면 결국 섣부른 교만과 아집으로 타인에게 허세를 부리거나 갑을로 나누는 잘못된 결과로 치닫게 된다. 한 집단이나 조직의 리더도 아닌 내가 브레네 브라운의 <리더의 용기>를 읽고자 했던 것은 책의 서문에 적힌 '내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다'라는 저자의 글 때문이었다. 리더라는 것이 무언인가. 누구나 제 삶의 리더라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아닌 제대로 배운 것을 잘 나누는 것, 그것이 리더라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의 리더가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리라. 저자는 위의 이유로 책을 집필했으며 정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20년동안의 연구, 150명의 기업체 리더와의 인터뷰자료 등 약 40만개의 자료를 정리 및 해석과 분석을 통해 쓰여졌다고 한다. 단순하다는 표현은 대충했다는 것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집필했다는 그의 열정과 바탕이 출중했다는 의미였다. 앞서 기업체 리더들과의 인터뷰에서 빠짐없이 던졌던 질문은 '급속하게 변화는 환경에서 리드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하는가'였다고 한다. 그들의 공통된 대답은 '더 대담한 리더와 더 용기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고 하며 이 책의 제목이 왜 리더의 용기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용기란 무엇인가.


1. 취약성을 인정한다

2. 가치관에 따라 살아간다

3. 대담하게 신뢰한다

4.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위의 네가지 능력이 결합된 상태가 그들이 말하는 용기를 만드는 데 개인적으로는 다변하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3, 4번째, 대담하게 신뢰하는 것과 다시 일어서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공감이라는 것이 반드시 동일한 경험에 노출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담하게 신뢰하려고 할 때의 공감은 반드시 리더의 경험을 답습해야 하는것일까 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에게 고충을 털어놓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 비판적으로 훈계하지 않으려는 것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등의 노력이 우선시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빌게이츠 회사의 사원들이 해고를 당하고서도 회사를 비난하거나 욕하지 않는 까닭도 그들에게 해고를 통보할 때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등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사원을 평가할 때는 반드시 그에 맞는 피드백을 해주는 것, 그로인해 사원도 회사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집필한 이 책을 나 또한 그와같은 이유로 선택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또 상대방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 할 때 배움이 가진 가치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때라고 본다. 이 책의 부제가 대담하게 일하고, 냉정하게 대화하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하여라는 의미를 잘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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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 젊은 창작자들의 연필 예찬
태재 외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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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 자그마치북스


"어떻게 연필을 수집하게 되었나요?" 우리가 흑심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저 질문이다. 이렇게 대답하면 실망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처음부터 연필을 좋아해서 모은 것은 아니다. 172쪽


서랍장의 한 칸을 내어 연필만 모아두었다. 위의 발췌문과 같이 나 또한 처음부터 모으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전시회나 여행 중에 기념품으로 택한 것이 연필인 경우가 많아서였다. 값도 값이지만 사용하는 기간이 길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벼워 이동중일 때 연필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사실 책<여전히 연필을 씁니다>를 읽기전에 내가 기대한 것은 필자들이 수집한 다양한 연필사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특이하거나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은 사진들 뿐인 것이 아쉬웠다. 작은 판형인데다 분량이 많지 않아 포함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필자들의 상황을 그려놓은 일러스트는 한 장 한 장 아기자기하니 맘에 들었다. 또한 그들의 손으로 전해지는 연필 사용기, 혹은 애착기는 같은 유저로서 반갑고 정감이 갔다. 문구편집솝 디자이너 흑심의 경우는 연필이 주는 친근함과 더불어 어느 집이나 연필 한자루 가지고 있기에는 어렵지 않은 접근성이 연필수집을 하도록 이끌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데 적극 동의한다. 기념품처럼 모았다고는 해도 애초에 집에 굴러다니는 연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연필 대신 자석 혹은 엽서나 우표 등 대체할 수 있는 소품들은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공간디렉터 최고요씨의 핸드백속에 혹은 필통속에 연필 한자루를 꼭 넣어가지고 다녔다는 사정은 내 이야기 같았다. 용돈을 받으면 편지지를 사러가거나 연필을 골랐다는 그와 달리 나는 스티커와 스탬프를 고르는 일을 우선순위로 했다. 어쨌거나 둘다 편지나 메모등을 할 때 연필과 함께 글을 꾸며주는 요소들이니 크게 다르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듯 개인의 취미나 관심사에 한정되어 있는 연필이야기도 있지만 편집자 김은경의 글은 편집자로서 오타수정과 관련된 헤프닝과 함께 ㅋㅋㅋ를 보면 떠올렸다는탕웨이와 김태용 감독과의 러브스토리까지로 번진다. 연필이 주제다 보니 이번에는 김혜원 에디터의 일기장과 관련된 얘기도 꺼내게 된다. 연필로 쓴 것만이 진정한 일기라고 생각했기에 오랜시간 일기를 적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을 보면서 어린 시절 부터 빠짐없이 써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절시절 추억을 할 정도로는 명맥을 유지한 내 일기장들을 떠올려보았다. 펜으로 휘갈기듯 그날의 괴로움을 토해낸 일기장도 있었고, 나중을 위해 또박또박 정자로 써내려간 일기장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필로 적었던 미래일기도 있었다. 미래일기는 반드시 연필로 적은 후 내가 예상한 혹은 바랐던 것과 실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우개로 지워가며 일기를 수(?)정 하기도 했던 부끄러운 일들도 함께 떠올랐다.


연필을 쓴다는 것은 고리타분한 것도, 편집증 적인 것도 그렇다고 낭만에 취한 상태로 살아서도 아니었다. 눈에 띄는 것이 연필이었고, 주술처럼 반드시 그 연필을 책상위에 혹은 서랍속에 넣어둬야 할 것 같아서였을 뿐이다. 수집하는 연필들이 지나치게 고가이거나 오래된 연필들이라 쓰기를 주저하고 수집하기만 하는 이들도 있지만 필자의 말처럼 그럴수록 소중한 날에 연필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전히 연필을 쓰는'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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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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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음식을먹는여자들 #문예출판사 #히틀러 #시녀이야기

비극적인 상황을 눈앞에 펼쳐보이듯 생생하게 표현할 때 격앙된 어조의 소설보다 차분하고 덤덤한 톤으로 별일 아닌 것처럼, 누구나 이런 일 한 번은 겪지 않느냐는 듯 말할 때 더 마음이 괴로워진다.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결국 내게도 그런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거란 생각때문이다. 소설<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히틀러가 총통으로 있을 당시 음식으로 인한 암살을 방지하기 위해 그보다 먼저 음식을 먹어야 했던 실제 생존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쓰였으며 '로자'가 그녀를 대신 해 당시의 상황을 전해준다. 결혼한지 1년 밖에 안된 상태에서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어느 날, 그녀는 총통이 그녀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끌려간다.






그곳에서는 자신과 같은 이유로 끌려온 열명의 여인들이 있고 그녀들은 전쟁중이라 음식이 넉넉하지 못한 때에 잘차려진 식탁앞에 앉는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히틀러의 음식을, 그를 죽음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싶을 지경이지만 생앞에 무기력할 뿐이다. 로자는 여성의 삶이 그렇지 않은 때는 없었다고 말하지만 여성을 포함한 나약한 민초들의 삶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늘 그래왔다. 로자의 일은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 일이며, 그녀의 엄마는 먹는 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저항이라 하였지만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변태라고, 그레고어가 말했었다. 구역질이 또다시 맹렬히 온몸을 뒤흔들었다. 나는 히틀러의 음식을 토해냈다. 히틀러가 절대 먹지 않을 음식을 토해냈다. 목에서 새어나오는 듣기 싫은 신음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소리였다. 내게 인간적인 면이 남아 있기나 할까? 208쪽




서두에 말한 것처럼 전시상황이며, 독재자의 음식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특수 상황이긴 하지만 그 분위기가 로자의 삶이 완벽하게 낯설지가 않다. 일제강점기 때 살기 위해 일본인들의 비위를 맞춰야했던 사람들이나 한국전쟁 당시 피난중에 부부가 헤어져 휴전 후 물리적인 이유로도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인간의 본능을 탓으로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새로운 가정이 있어 못돌아오는 경우도 있기때문에 그녀의 삶이 아주 먼 곳에서 있는 일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연은 늘 그 위대함과 다정함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내겐 그 몇 달간의 기억이 별로 없다. 어느 날 크라우젠도르프로 향하던 버스 차창 너머의 잔디밭 사이로 솟아나온 보라색 토끼풀을 빼고는. 보라색 토끼풀을 보는 순간 나는 수도승 같은 일상에서 깨어났다. 봄이 온 것이다. 130쪽




이전에는 무조건 살아만 남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쟁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면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거라고. 하지만 정작 로자처럼 타의에 의해 공공의 적이 되버린 경우 대부분이 숨어살거나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기도 했다. 끝까지 그녀가 살아남아 있었던 것은 결국 그녀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소설로라도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전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주어야 함을 알려주기 위한 또다른 의미의 타의적 생존이라 생각한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 가제본으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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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미술 -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휘트니미술관 기획, 리사 필립스 외 지음, 송미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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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미술관 기획으로 출간된 20세기 미국 미술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운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자 한 이유는 도슨트로 활동중인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주제를 달리하긴 해도 결국 1층 기획전은 백남준의 작품으로 변주되는데 그의 비디오 아트의 배경이 1970년대에서 2000년으로 이 책에서 제시한 기한과 같을 뿐 아니라 실제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작품은 물론 그의 협업했던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햄은 물론 존 케이지등 관련 인물들 거의 모두 언급될 뿐 아니라 그동안 이들의 작품 세계를 백남준이라는 통로로만 보았다면 이 책을 통해 독자적인 활동 및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 등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우선 이 부분은 뒤로 미루고 20세기 미국 미술을 기획한 휘트니미술관의 발간 의도와 목적을 알아보는 것이 나와는 다른 이유로 이 책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 미술이라 했지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주요 문화와 예술활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장은 히피를 비롯하여 당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감이나 사회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팝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역할을 낳았다. 그렇기 때문이 이책은 아방가르드측면에서 보자면 20세기 이전의 주류 문화에 반하는 활동을 두고 보았을 때 그 범위와 스스로 아티스트라 말하는 이들의 범주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작업자체가 쉽지 않았고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유럽의 전위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은 추상표현주의를 시작으로 50년대에는 재즈문화가 등장하게 되었다면 60년대는 그야말로 팝아트, 팝이 다채롭게 영향을 미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90년대에는 힙합의 탄생으로 인한 변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미술사조의 흐름과 더불어 다양한 관련 용어의 탄생배경과 관련 작품도 만날 수 있는데 가령 우리가 쉽게 사요하는 '헤프닝'이 예술사에서 누구의 입을 통해 어떻게 보여졌는가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케프로 역시 50,60년대 카운트컬쳐와 관련된 인물로 존케이지, 그리고 백남준과도 연결고리가 생성된다.



백남준은 한국 작가이긴 하지만 일본, 미국 그리고 독일까지 전방위로 활동했던 사람이며 비디오 아티스트로 위성을 통해 다른 문화권은 물론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을 선보인 소위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아티스트이다.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세기말로 설치예술과 합께 80년대부터 본격화되는데 기존에 미술관이나 방송국을 통해 보여지던 비디오 매체가 설치미술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과의 조우가 작가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 체계의 흔들림과 연관지어 발표된 데라 번바움의 <천안문 광장>과 같은 정치적 성격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와 같은 자연과 기계가 하나의 주제로 표현되는 아이러니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책을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백남준과 그와 연관된 아티스트들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지만 전쟁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비트문화와 개념미술 그리고 팝아트로의 연결고리를 살펴보는 방식 등의 다양하 주제로 여러차레 읽어보며 20세기 미국 미술이 아닌 20세기의 예술계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유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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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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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콜렉터 #캠론라이트 #카멜레온북스

책의 시작은 쓰레기더미가 정원이자 이웃인 기 림과 상 리 부부의 아침 풍경이다. 쓰레기에서 나오는 가스로 인해 불이 붙는 것은 늘 있는 일이고 비가 오는 날에는 갈색물이 집주변을 채워 강을 만든다. 열악하다라는 표현마저도 실례가 될 것 같은 상황. 그곳에 아기까지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고 시작부터 어이없어 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안되서일까. 잦은 설사로 일어나자 마자 웃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대신 바닥에 흐른 설사를 닦아내는 것, 심지어 문밖에는 그보다 더 한 쓰레기가 있기에 설사를 닦는 것즘 그 부부에게 전혀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초반부터 마음이 짠해졌다. 그런 와중에 집세를 걷어가는 렌트 콜렉터 이자 암소인 소피프는 저녁때까지 남은 집세를 내지 않으면 대기중인 사람들에게 집을 넘길거라고 협박까지 하는 상황이다보니 시작부터 깊게 몰입하게 된다. 그런와중에 소피프가 책을 읽을 수 있음을 알게 된 상리는 마치 꿈속의 할아버지의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글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글을 읽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 리는 소피프에게 아기의 병을 낫게 해줄 수도 있는지를 묻고 소피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피프는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난 쓰레기 더미에 사는 힘없는 노인네일 뿐이야. 이것이 자네에게 올바른 방향인지 아닌지는 내가 장담할 수 없어. 그건 앞으로 자네만이 답할 수 잇는 문제야. 다만 한 가지 충고해주고 싶은 건 있어" 164쪽


글자중독이라 부를만큼 심각하게 읽는 것에 집착했던 경험이 있던 내게 책을 읽는 다는 것, 문학을 마주한다는 것의 영향력을 누군가 물어본다면 무조건 읽어보라고 말하기는 주저하게 된다. 마치 소피프가 상 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삶을 윤택하게? 혹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작 쓰레기더미에서 집세나 걷고 산다고 말할까 겁도 나고, 스스로는 자기만족에 가깝게 산다고 하면 주위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 비사회적인 인간이 문학하는 사람인 것처러 보여질까봐 마찬가지로 두렵다. 무엇보다 문학을 한다고 해서, 혹은 수십 권의 고전을 독파했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완벽은 커녕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소피프의 답처럼 '책이 독자에게 질문을 건넨다'라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싶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 내가 깨닫지 못한 부분을 답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고, 그 과정속에서 삶의 이유를,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소개문을 처음 접했을 때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란 책이 떠올랐다. 나이든 여자수위지만 방안 가득 책을 쌓아놓을만큼의 독서가이지만 누군가 자신의 본모습을 알게 될까 걱정하는 모습이 소피프를 연상테했기 때문이다. 소피프에게서 글자를 배운 상 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동안 많은 단어와 문장을 배웠음에도 이런 감정을 어떻게 멋지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다. 더럽고 오염된 곳인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주변이 온통 하얗고 깨끗한 담요로 뒤덮여 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랄까. 불결하고 불확실하고 두려웠던 모든 감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에 에워싸인 안도감이랄까. 450쪽


배경이 캄보디아이다 보니 전에 읽었던 <캄보디아의 딸>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소피프의 슬픈 과거와 맞물리자 지식인의 삶이라는 것이 정권에 따라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모될 수 있는지, 글을 안다는 것 즉 사고하고 사유한다는 것, 이를 알리는 장치이기도 한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작가의 아들이 제작한 다큐를 통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도 앞에 언급한 소설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좋은 날'이란 결코 지금의 나의 작은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에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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